정신옹주(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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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의 왕녀
정신옹주 | 貞信翁主

출생
1408년 혹은 1409년
사망
1452년(문종 2년) 10월 17일[1]
(향년 44세~4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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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 이씨
부왕
태종
생모
신빈 신씨
부군
영평위 윤계동
(鈴平尉 尹季童)
자녀
슬하 1남 1녀
아들 - 윤삼원(尹三元)
딸 - 이파(李波)의 처
봉호
정신옹주(貞信翁主)

1. 개요
2. 생애
2.1. 결혼 관련 사건
3. 가족 관계



1. 개요[편집]


조선 제3대 국왕 태종과 후궁 신빈 신씨 딸.

후술할 결혼 관련 사건으로 유명하다.

2. 생애[편집]




2.1. 결혼 관련 사건 [편집]


1417년(태종 17), 정신옹주의 아버지 태종은 딸의 사윗감을 고르기 위해 지화(池和)라는 점쟁이를 시켜 당시 춘천 군수를 지낸 이속의 아들의 사주를 알아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속은 지화를 쫓아내면서 "내 아들은 이미 죽었다. 만일 권궁주(權宮主)의 소생이라면 내 자식이 살아날 수 있다." 라는 망언을 하였다.[2][3]

당연히 태종자신이 총애하는 후궁과 딸을 모욕하는 말에 분노했고, 이속에게 장형 100대의 형벌을 내리고 관직을 삭탈시켰다.

조말생과 김효생 등 일부 신하들은 이속의 죄는 대역죄이므로 삼족을 멸해야 한다고 간하였으나, 태종은 재산을 몰수하고 지방의 관노비로 만드는 데에 그쳤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평생 장가들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4] 나중에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아들들의 금혼령은 풀렸다고 한다.

결국 정신옹주는 1418년(태종 18)에 당시 유배갔던 명문가 출신 윤향(尹向)[5]의 아들 윤계동에게 하가하였다.

3. 가족 관계[편집]




  • 시부 : 호조판서 소도공 윤향(戶曹判書 昭度公 尹向, 1374 ~ 1418)
  • 시모 : 남양 홍씨(南陽 洪氏) - 남양군 문경공 홍길민(南陽君 文景公 洪吉旼)의 딸
    • 부마 : 영평군 의간공 윤계동(鈴平君 懿簡公 尹季童, ? ~ 1454)
      • 장남 : 윤삼원(尹三元)
      • 며느리 : 원주 변씨(原州 邉氏) - 감찰 변상동(監察 邊尙同)의 딸
        • 손자 : 윤준(尹峻)
        • 손자 : 윤순(尹峋)
        • 손자 : 윤완(尹岏)
        • 손자 : 현감 윤지(縣監 尹漬)의 처
        • 손자 : 호군 신필(護軍 申泌)의 처
      • 장녀 : 찬성 이파(贊成 李波, 1434 ~ 1486)의 처
        • 외손자 : 이덕윤(李德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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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9월 26일[2] 태종 17년 9월 2일 갑인 4번째기사[3] 또는 "길례(吉禮)가 이미 끝났는데, 또 궁주(宮主)가 있는가? 만일 권 궁주의 딸이 결혼한다면 나의 자식이 있지마는, 만일 궁인의 딸이라면 내 자식은 죽었다. 나는 이렇게 연혼하고 싶지는 않다." 라는 버전도 있다.[4] 이익의 저서 성호사설에 기록되어 있다.[5] 윤향은 정신옹주를 자신의 며느리로 맞이하고 싶다는 의미로 아들의 사주 단자를 택배로 보냈다. 태종은 뼈대있는 명문가에서 살살 치료해주자, 매우 기뻐하며 윤향의 유배를 풀어주었다. 참고로 윤향은 왕명을 거역했다는 죄목으로 유배를 간 상태였는데, 하루아침에 천하의 충신으로 바뀌었다. 이속과는 정반대의 운명을 걸은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