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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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의 왕녀
정소공주 | 貞昭公主


파일:정소공주묘.jpg

정소공주묘 전경
출생
1412년
조선 한성부 충녕대군 사저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의동)
사망
1424년 4월 3일(음력 2월 25일)
(향년 13세)
묘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 왕자·왕녀 묘역[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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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 이씨
부왕
세종
모후
소헌왕후 심씨
형제자매
18남 4녀 중 장녀
봉호
정혜공주(貞惠公主)
정소공주(貞昭公主)[1]

1. 개요
2. 생애
2.1. 사망
3. 대중매체에서




1. 개요[편집]


조선 제4대 국왕 세종과 중전 소헌왕후의 첫 자식.[2] 동복자매로는 정의공주가 유일하다.


2. 생애[편집]


세종이 16세의 나이에 낳은 딸로, 할아버지인 태종의 첫손녀였기 때문에 아들·딸 막론하고 왕실의 모든 어른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정소공주의 성품 또한 총명하고 슬기롭기가 남들과 달랐다고 한다.(세종실록 23권, 세종 6년 3월 23일 기해 5번째 기사.)

어렸을 때는 이맹균의 집에서 자랐다는 기록[3]이 있다.


2.1. 사망[편집]


하지만 1424년(세종 6) 2월 25일에 천연두에 걸려 불과 13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세종의 여동생인 정선공주가 죽은 지 불과 한 달여 만이었다. 딸의 죽음에 상심한 세종이 정소공주의 시신을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공주의 염을 하는 시간이 늦어졌다는 야사도 존재하는데, 정작 실록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또 세종은 이후로도 정소공주가 생전에 타고 놀던 그네를 바라보며 무척 슬퍼했다고 한다.

당시 정소공주의 장례식은 공신과 의정부 육조 당상이 성문 밖까지 장송할 정도로 크게 거행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공주의 죽음으로는 이례적으로 아버지 세종과 당시 왕세자였던 남동생 문종이 지은 제문(세종 제문, 문종 제문), 예문 제학 윤회가 지은 묘지명까지 상세히 실려있다.


3. 대중매체에서[편집]


  • 대왕 세종(KBS)》: 배우주아름, 김지원[4]. 의젓하고 심성이 착한 공주로 나온다. 질투심으로 세자에게 물벼락을 퍼부어 골탕먹이는 불경을 저지른 동생들 때문에 대신 종아리를 맞기도 했다. 노비가 된 외할머니의 생신상을 차려드리기 위해 세종과 잠행을 약속하였으나 장영실에게 벼슬을 주는 문제로 세종이 단식투쟁을 선언하며 틀어박혀 대신들과 대치하는 바람에 정소공주 혼자서 빗속에서 오지 않는 세종을 기다리다 병에 걸렸고, 궁에서 사망했다. 정소의 죽음이 소원해졌던 세종과 소헌이 서로 의지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어린 딸을 잃은 세종소헌왕후의 슬픔을 잘 표현해냈다. 해당 드라마 자체가 다른 사극들에 비해 세종과 자식들의 관계나 부모로서의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드러내는 작품이다.

  • 태종 이방원(KBS)》: 31화에서 세자로 책봉된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의 손을 잡고 궁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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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는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있엇는데, 1936년 다른 왕자, 왕녀들의 묘와 함께 서삼릉으로 이장했다.(서삼릉 홈페이지 내 '왕자·왕녀 묘역 소개')[2] 문종세조를 비롯한 세종의 모든 자식들은 정소공주의 동생이다.[3] 정소공주가 사망한 후의 기록(세종실록 23권, 세종 6년 2월 26일 임신 2번째 기사)에 "왕녀의 시체가 광연루(廣延樓)의 서문(西門)으로 나가 총제(摠制) 이맹균(李孟畇)의 집에 빈(殯)하였다. 이것은 왕녀가 일찍이 맹균(孟畇)의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집에다 빈하라고 명한 것이니, 종친(宗親)·부마(駙馬)가 다 모였다."라고 적혀 있다.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도 이 부분은 고증대로 반영했다.[4] 김지원이 아주 어린 시절을 연기했고, 뒤이어 주아름이 성장한 버전으로 연기했는데, 정작 김지원이 주아름보다 3살 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