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대 중화민국 입법위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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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선거 과정
3. 선거 이후


1. 개요[편집]


1948년 1월 21일부터 1월 23일까지 진행되었던 중화민국선거이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대륙에서 시행된 직접선거였으며, 당선자는 총 759명이었다. 당시 중화민국의 인구가 4억 6천만명 가까이 되었으므로 1명의 입법위원이 약 60만명의 국민을 대표하는 셈이었다. 실제 투표에 참여한 인원수는 약 2억 명 가량이었다.


2. 선거 과정[편집]


선거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국공내전은 여전히 진행중이었으며 중국공산당은 당연히 선거를 거부하였다. 이에 따라 중국공산당이 점령한 지역에서는 정상적인 선거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선거에 참여한 정당은 중국국민당, 중국사회민주당, 중국청년당이 있었으며 그외 소수의 무소속 후보가 있었다. 만 20세 이상의 국민들에게만 투표권이 있었다. 특정 직업군에 속하거나 몇몇 소수 민족은 투표권이 없었기에 불완전한 보통선거로 평가된다. 선거는 총 3일 동안 치러졌다.

3. 선거 이후[편집]


1949년, 장제스의 국민정부는 국공내전에서 패배함에 따라 타이베이로 정부를 옮긴 상황이었다. 당선된 759명의 입법위원 중 380명은 국민당 정부를 따라 타이베이로 이동했다. 당시 중화민국 헌법에 따르면 입법위원의 임기는 3년으로 헌법대로라면 이들의 임기는 1951년 5월에 종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미 대륙을 공산당에게 뺏긴 터라 대륙에서의 선거는 불가능한 상황. 결국 중화민국 사법원은 대륙에서의 선거가 불가능하여 의원직을 계속 유지한다는 유권 해석을 내놓았다. 정확하게는 국민대회의 개회지점이 중앙정부 소재지인데 당시 타이베이는 임시수도였지, 정식 수도가 아니었고 난징이 중화민국의 정식 수도였는데 난징이 이미 중국공산당에게 점령당한 상황이므로 국민대회가 정상적으로 개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그러한 해석을 내린 것이다.

물론 중화민국이 난징을 수복하고 국민대회가 개회될 경우 이들의 임기는 즉시 종료되고 새로운 선거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현재까지 중화민국은 난징을 수복한 적이 없다. 즉, 3년짜리 국회의원이 종신직이 되는 셈이었다.

결국 훗날 개헌을 하기 전까진 차기 입법위원 선거는 열리지 않았고 간간히 이루어지는 선거는 모두 증원선거, 즉 보궐선거만 열렸으며 그 보궐선거조차도 1969년에 시행되었으므로 20년 넘게 국민의 직접선거가 없었다. 결국 이들의 임기는 1991년에 종료되었고 이때까지 생존한 입법위원들은 무려 43년간 그 의원직을 유지하였다. 하도 장기간 의원직을 해먹는 바람에 이를 두고 만년국회라고 비꼬는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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