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대 국회의원 선거/지역구 국회의원/대구직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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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본 항목은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의 대구직할시 지역구 선거 결과를 정리하는 항목이다. 선거구는 가나다순이 아니라 지역 선거관리위원회가 설치된 순서로 한다. 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쓰는 공식 발표법이기 때문이다.
2. 결과[편집]
2.1. 중구[편집]
민정당 유수호 후보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판사로써 소신있는 판결을 내려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고, 변호사 시절에도 무료 변론 등 사회활동에 앞장섰다. 다만 본격적인 정계입문 때는 경북고 동기인 노태우, 김윤환, 정호용 등과의 인연으로 인해 민정당을 선택했다.
민주당은 구미시-군위군-칠곡군-선산군 선거구에서 3선을 기록한 야권 중진인 김현규 의원을 공천했다. 김현규 후보는 소선거구제 하에서 민정당 실력자인 김윤환을 상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는데, 하필 대구의 중심지인 중구 선거구에 마땅한 거물 후보가 없자 지역구를 옮겨 출마했다.
유수호 후보가 19% 차이로 승리했다.
2.2. 동구[편집]
신군부에 의해 정치규제를 당한 박준규 전 의원은 제13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 노태우 대통령 후보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여 민정당에 입당했고 대구 동구 선거구에 공천을 받는다. 민주당은 현역 의원인 목요상 후보를 공천했다.
대구가 워낙 민정당 강세 지역이고, 박준규 후보도 거물인지라 상대인 민주당 목요상 후보를 두 배 가까운 격차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2.3. 서구 갑[편집]
전두환 전 대통령과 현직 노태우 대통령의 육사 11기 동기이자, 전두환 정부 시절 육군참모총장, 내무부장관, 국방부장관 등을 지낸 정호용 예비역 대장이 민정당 공천을 받았다. 민정당 텃밭인 대구에 공천을 받았고, 본인도 거물인지라 손쉽게 승리했다.
문제는 당선 이후에 터진다. 정호용 의원은 5.18 민주화운동당시 특전사 사령관으로써 진압 작전에 적극 참여했기에, 광주 특위를 거치면서 5공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어 많은 지탄을 받는다. 정호용은 결국 정권 이미지 악화와 3당 합당 과정에서 발생할 차질을 우려한 노태우 정부의 압박을 받고[2] 반강제적으로 의원직을 사퇴한다. 보궐선거에서는 민자당 문희갑 후보가 당선됐다.
한편 이 선거에서 2위로 낙선한 백승홍 후보는 이후 꼬마민주당, 민주당을 거치며 1990년 재보궐선거와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낙선하다가 무소속으로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을 지냈으며[3] , 3위로 낙선한 서훈 후보는 고향이 있는 동구 을로 지역구를 옮겨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출마해 석패했다가 1993년 재보궐선거, 15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재선 의원을 지냈다.
2.4. 서구 을[편집]
인지도만 놓고 보면, 현역 전국구 의원인 민정당 최운지 후보보다 현역 지역구 의원인 민주당 유성환 후보가 앞섰다. 게다가 유성환 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노신영 국무총리에게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가, 정권이 면책특권을 무시하고 구속해가는 바람에 유성환 국시론 파동의 주인공이 되어서 더 유명세를 탔다. 또한 최운지 후보는 야당인 신민당에서 여당인 민정당으로 갈아탄 철새 정치인이라는 약점도 있었다.
투표 결과, 민정당 최운지 후보가 인지도에서 밀렸지만 보수적인 민정당이 우세한 지역 정서를 등에 업고 여유있는 표차로 승리했다.
2.5. 남구[편집]
이정무 vs 김해석 1Round
민정당은 기업가이자 정치신인인 이정무 전 대구백화점 사장을 공천했다. 하지만 공화당 김해석 후보도 2번이나 낙선했지만 유의미한 지지율을 얻었고, 동정여론을 기대할 수 있는 무시못할 후보였다. 대경권 최대의 중등교육기관 사학법인인 협성교육재단의 이사장인 신진욱 전 의원도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이정무 후보가 9.8% 차이로 김해석 후보를 꺾고 처음 당선되었다. 김해석 후보는 대구에서 당세가 약한 공화당 후보치고는 꽤 선전했지만, 3번째 패배를 맛봐야 했다. 4년 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설욕전에 성공한다.
2.6. 북구[편집]
현역 재선 의원인 민정당 김용태 후보가 민정당 텃밭인 대구에 출마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민주당 박승국 후보와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박승국 후보는 현역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등을 지냈으며 지역에서 예식장을 경영하는 재력가이기도 했다.
결국 김용태 후보가 겨우 이기면서 민정당이 대구 관내 8개 선거구를 모두 석권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1위와 2위와의 격차가 3.9%밖에 나지 않았으며, 이는 8개 선거구 중 가장 적은 격차였다.
2.7. 수성구[편집]
80년대 후반 수성구는 대구의 신흥 중산층 거주지로 떠오르고 있었다. 따라서 대구의 중심인 동성로가 있는 중구 선거구와 함께 민정당과 민주당이 대구에서 유독 관심을 가진 선거구였다.
민정당 이치호 후보와 민주당 윤영탁 후보 모두 관료 출신의 현역 의원으로, 안정을 추구하는 이곳의 중산층 성향에 부합하는 후보였다. 4개월 전 대선 때보다는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결국 민정당 텃밭이라는 이점을 살린 이치호 후보가 승리한다.
2.8. 달서구[편집]
한국국민당은, 4개월 전 대선을 전후해 소속 국회의원들이 모두 민정당이나 공화당으로 이탈하면서 이만섭 총재의 1인 정당이 된다. 이 총재는 당의 마지막 운명을 걸고 후보로 출마했지만, 결국 민정당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정치신인 김한규 후보에게 패배한다. 선거 직후 국민당도 해산되었다.
이후 이만섭 전 총재는 더 이상 지역구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으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등 유력 정치인들과의 인연을 등에 업고 전국구 의원으로 3번이나 더 당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