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스탱 트뤼도/비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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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탱 트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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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판
1.1. 과한 이념주의
1.1.1. 반론
1.2. 직권남용
1.3. 교사시절의 분장
1.4. 대한민국의 마스크 지원 은폐 및 횡령 기도
1.5. 그 외
2. 논란
2.1. 성추행 의혹
2.2. 코로나 시국 가족여행 논란
2.3. 위 채리티 공권력 사유화 논란


1. 비판[편집]



1.1. 과한 이념주의[편집]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행보는 정체성 정치의 전형을 띤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2015년, 취임하자마자 내각을 성별 기준 50:50으로 구성한 것은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캐나다에서 선거를 통해 당선된 여성은 22%를 웃도는 수준이었기에, 선거 결과를 기반으로 내각을 구성했다면, 대략 남자 75: 여자 25의 성비가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트뤼도는 선거 결과를 무시한 채 성비만을 맞춘 내각을 구성했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의 언론이 트뤼도의 파격적인 행보에 관심을 모았는데, 이에 대한 트뤼도의 답변은 '지금은 2015년이다' 였다. 본인의 이념주의를 강조하려는 쇼맨쉽적인 성격이 강한 문장인데, 이 때 후술할 내각 의원들의 경력을 잘 설명했다면 반대 여론을 회유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던 피터슨 교수는, 이같은 트뤼도의 과감한 선택과 답변을 향해 "총리로써의 책임감은 전혀 보이지 않고 내각을 구성하는 게 너무나도 머리가 아팠기에 아무 생각없이 내각을 대충 구성하기 위해 내놓은 변명이다"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또한 구색을 맞추느라 역량이 부족한 사람을 기용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일례로 2015년 초선 의원에 당선되된 마리암 몬세프는, 불과 31세의 어린 나이에 고 여성 & 성평등부 장관 자리에 올랐다. 몬세프의 학력은 2010년 취득한 학사 학위가 전부이며, 경력으로는 그 이후 3년간 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다인 사실상의 사회 초년생이다. 물론 학벌이 사람의 모든 것을 증명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달리 스스로의 유능함을 입증하기 어려운 사람을 장관에 임명했으니 시민들의 우려를 사기에 충분하다. 캐나다의 국세청 격인 Ministry of National Revenue의 장관 다이앤 르부틸리에 역시 공무원 경력은 고객 담당이 유일하며, 환경 & 기후변화부 장관 캐롤라인 메리 매케나도 마찬가지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사람을 무리하게 환경부에 앉혔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여러모로 이념 실현을 위해 능력이 의심 되는 인물을 기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안 우파를 위시한 반(反) PC주의 세력은 아예 트뤼도의 발언 자체를 비판하는 경우도 잦다. 트뤼도는 공식 석상에서 발언할 때 중립적, 특히 성 중립적인 표현을 쓰려고 노력하는데, 이는 최근 영어권 진보주의자들의 행보와 깊은 연관을 보인다. 문서 상단 영상에서도 보이듯 트뤼도는 한 질문자가 'mankind'라고 발언하자 이를 'peoplekind'라는 성 중립적인 단어로 교정하는데, 이미 'humankind'라는 대체어가 존재하는 마당에 굳이 신조어를 만들어서 쓸 이유가 뭐냐, 공식 석상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후 바보같은 농담이었다며 사과했다.

1.1.1. 반론[편집]


다만 쥐스탱 트뤼도 내각의 대부분은 그들의 성별, 소수자성을 떠나 충분히 유능한 인물이라는 의견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토론토 대학 법학교수를 거쳐 공공 서비스 조달청(Public Services and Procurement) 장관에 오른 아니트 아난드, 2004년 당선 이후 쭉 과학 부문 상임위에 있다 과학 산업 부문(Innovation, Science and Industry) 장관으로 임명된 네브딥 베이스, 의사 출신으로 마약 중독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8선 출신 의원이자 원주민 부문(Crown-Indigenous Relations) 장관이 된 캐롤린 베넷 등, 단순히 정치적 올바름으로 묻어가기엔 유능한 사람들이 매우 많다.

일각에서는 결국 정치적 올바름 그 자체를 비판하기 위해 애먼 트뤼도 내각을 겨냥하는 행위라는 의견도 있다. 사실 상술한 모든 사람들이 백인 남성이었다면 전혀 비판받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실제로 수준 미달의 백인 남성 정치인들도 역사와 문화를 가리지 않고 정말 많다. 더구나 해마다 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며 다문화 친화적인 행보를 이어 가는 캐나다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무시하고 주류 백인으로 구성된 낡은 내각 구조를 계속 유지한다면 그 역시도 큰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행보가 파격적이라서, 또는 정치적 올바름을 따르기 때문에 트뤼도의 내각에 불만을 품는 태도는 다소 무리가 있다.

1.2. 직권남용[편집]


하지만 2017년에 나온 다른 조사에 의하면 여전히 48%의 제법 괜찮은 지지율이 나오고 있고, 이는 과거 총리들의 취임 15개월 이후 지지율과 비교해도 특별히 나쁜 수치는 아니다.

2019년에도 보수당 대표인 더그 포드의 연이은 삽질이 동반되면서 정작 총선 선거 때 오히려 이득을 볼 가능성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6월 들어서서 자유당 지지도 소폭 올라간 상태이다.#

2019년 7월에도 지지율은 44%로 전혀 나쁘지 않으며, 소속 자유당의 지지율 역시 보수당의 삽질에 힘입어 1위를 차지했다. # 비판 단락의 서술이 자세해서 그렇지 지지세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 캐나다의 정치지형은 보수당, 강한 리버럴의 자유당, 좌파 사민주의 신민주당으로 3분되어 있어서 오히려 진보세가 강한 편이라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2019년 8월, 대형악재가 등장했다. 캐나다 공직윤리위원회에서 트뤼도의 직권 남용 결과를 확인했다. 마리오 디온 윤리위원장은 "트뤼도 총리가 조디 윌슨-레이볼드 전 검찰총장 겸 법무장관에게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며 "이는 검찰의 기소 독립권이라는 헌법상 원칙에 어긋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직권남용 스캔들을 2019년 초에 폭로한 조디 윌슨-레이불드 법무장관[1]은 트뤼도 총리에 의해 집권 자유당에서 출당당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으니, 윌슨-레이불드 전 장관은 2019년 총선에서 기어이 무소속으로 본인 지역구인 Vancouver Granville 지역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한다.[2]


1.3. 교사시절의 분장[편집]


파일:0002963683_001_20190919212213630.jpg

9월 18일 18년 전 교사 시절 코스튬 파티에서 얼굴을 새까맣게 칠한아랍인 분장’ 사진이 공개돼 현지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실제로 구글에 트뤼도의 이름을 검색만 해도 연관 검색어로 이 사건만 줄줄이 뜰 정도로, 엄청난 논란이 되고 있다. 인종의 다양성과 사회통합을 최우선 가치로 둔 ‘진보정치의 아이콘’이 인종차별적 행위를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정계 입문 전 교사로 일하던 사립학교 웨스트포인트그레이 아카데미의 2001년 ‘아라비안나이트’ 파티에서 찍힌 문제의 사진을 공개했다. 그해 졸업 앨범에 담긴 사진 속에서 트뤼도는 얼굴은 물론 목과 손 등 외부에 노출된 부위는 모두 짙은 갈색으로 칠한 채 터번을 쓰고 있었다. 트뤼도가 당대표인 자유당의 캐머런 아마드 대변인은 “사진 속 인물은 트뤼도가 맞다”면서 “당시 그는 알라딘으로 분장했던 것”이라고 확인했다.

문제의 사진 주인공이 다양성과 사회통합을 최우선 가치로 둔 진보정치의 아이콘 트뤼도였다는 점에서 정치적 논란은 더 커졌다. 선거가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와 있다는 점도 트뤼도에게는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뤼도 총리는 논란이 확산되자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어리석은 짓을 했다. 그 일에 대해 사과한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는 유세장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서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면서 “그때 (그런 분장이 인종차별적 행위였음을) 더 잘 알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론 선거에 예상만큼 큰 영향을 끼친건 아니었는데, 18년 전 사진이다 보니 유권자들이 그땐 그랬다 정도로 인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카데미 프랑세즈에서 일하는 퀘벡의 작가 다니 라파리에르라디오 카나다와의 인터뷰에서 이 논란에 대해 "그러한 분장은 대상이 있고 조롱의 의도가 있을 때 차별이 성립하는 것이고, 알라딘은 가상의 인물인데다 조롱의 의도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차별이 성립하지 않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하였다.


1.4. 대한민국의 마스크 지원 은폐 및 횡령 기도[편집]


2021년 3월 4일 CBC의 보도에 따르면 자유당 소속 트뤼도 행정부 관료들이 한국 정부가 캐나다군 6.25 전쟁 참전용사에게 지원한 마스크를 은폐하고 압수해 재분배하려던 것이 드러나 큰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20년 5월 각국의 6.25 전쟁 참전용사들에게 마스크를 지원했고 캐나다 또한 당연히 포함되었는데, 캐나다에는 5900여 명에게 총 3만 5천여 장의 KF94 마스크를 보냈다. 그러나 개인용 보호장구(PPE) 확보 및 수급에 실패한 트뤼도 정부는 한국 정부의 지원이 본인들의 무능함[3]과 비교될 것을 우려했다.
트뤼도 정부는 한국의 마스크 지원이 대중에 알려지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준비한 보도자료를 폐기시키고 소셜미디어에 포스팅하는 것으로 그쳤으며 심지어 주캐나다한국대사관에 기부 공개를 보류하라고 압박했다. 한 관료는 심지어 참전용사들에게 가야할 마스크를 빼앗아 재분배하는 것을 제의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보수당 소속 존 브래서드는 정부가 노년의 참전용사에게 주어진 마스크를 몰수하는 것에 대해 검토했다는 사실을 두고 "지독"하다며, “그것은 한국 정부가 캐나다 참전용사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다”고 비판했다.


1.5. 그 외[편집]


또다른 비판으로 오사마 빈 라덴의 최측근 부하의 아들이자 관타나모 수감자에다 미군 의무병을 살해한 소년병이었던 오마르가 캐나다 정부를 상대로 낸 피해 배상 소송에서 정부가 오마르에게 한화로 100억이 넘는 합의금을 지급했던 사례도 있다. 물론 이는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됨으로 인해 캐나다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비판과 키배를 불러왔으며 이에 대한 번복을 요구한 시민들이 많았지만 정부와 트뤼도 측에서 결국 밀어붙여 엄청난 논란이 되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발동한 이후 위협을 느낀 미국 내 아이티 난민 등의 캐나다행을 원활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우방국인 미국을 지금까지 믿고 있어 멕시코랑 국경이 접한 미국이랑 상황이 달라 국경 통제가 미국만큼 안 된 측면도 있다. 캐나다는 다 받아준다?···트뤼도의 난민 포용책 시험대 캐나다와 미국 국경에는 그냥 들판에 도로 하나 있는 곳도 부지기수이니...

또한 트뤼도의 내수정책이 대외정책에 비해 빈약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캐나다가 직면한 문제들인 부동산 값 폭등(특히 밴쿠버), 낮은 취업률, 인상되는 물가, 잇따른 기업의 파산/파산 위기(석유, 봉바르디에), 높은 가계부채 등은 다른 나라에서도 해결한 바가 없기는 하고 석유같은 경우는 사실 국제 경제가 다 얽혀있는 경우라 캐나다 혼자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기도 하다. 그리고 국회 회의 때 보수당이 이 문제를 걸고 넘어지면 총리는 항상 같은 답변으로 대답해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 #. 그래서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다음 총선에는 재신임이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가족과 친분이 있는 청년 봉사활동 전문 자선단체에 정부 사업을 맡겼다가 청문회에 증인 신분으로 섰다.#

2021년에 9월 30일 '진실화해의 날'에 추념식에 불참하였는데, 이는 가족들과 휴가를 갔던 것으로 밝혀졌고 큰 비판이 쏟아졌다. 몇 주 뒤 참석했다.#

코로나에 걸린 후 자가격리를 하며 가족과 오타와를 떠났는데 하필 타이밍이 트럭커들의 대규모 백신 의무화 반대시위가 열리고 있는 중이라 도망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이는 상당한 문제인데 나라의 수장이 단지 안전이 위협된다는 이유로 해결의지 없이 한국으로 치면 청와대를 버리고 도망간 셈이라 더 큰 비판을 받고 있다. 당장 오타와 시내는 시위로 마비 상태이지만, 시위 진압의지는 커녕 강건너 불구경 중이라 시민들의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

결국 긴급조치까지 발령해 겨우 시위를 멈췄으나, 이미 온타리오 주 등 대부분이 백신패스를 폐지하기로 결정나면서 사실상 시위대에게 굴복한 셈이 되었다. 그와중에 시위대의 계좌를 동결조치 하는등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2. 논란[편집]


반대파인 보수당에서는 트뤼도 총리가 경험이 없고 준비도 되지 않았다며 열심히 깠었다. 심지어 보수당 광고에서 쥐스탱 트뤼도의 이름을 이용해 그가 준비가 안 됐다는 드립을 날리기도 했다.(Justin Trudeau? Just not ready) 관련 영상. 좋아요 싫어요 수 비공개 및 댓글 기능 차단으로 보아 많은 키배가 있었던 걸로 추측된다.

미국에서 오바마와 만나거나, 이방카 트럼프와 연극을 보기도 했다. 이런 면을 꼬집어 보수당은 총리 자신의 이미지 관리만 하지 말고 나라 관리도 좀 잘하라고 아우성이다. 저유가 때문에 당분간 경제 전망이 그리 좋지 않은 상태로 갈 것 같다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중. 이에 편승하여 경험도 없는 총리가 의료용 마리화나 합법화한다고 캐나다의 보수적인(주로 백인층) 사람들은 그를 매우 싫어한다. 이와 관련해 아버지와 비교하며 까는 사람들도 있다.

우파로부터 정책이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라는 평가도 받는데, 특히 다문화주의와 관련해 일부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해 별 반감을 보이지 않는 등의 태도로 말이 많다고 한다. 다만 이는 이슬람권 출신 이민자들을 급진파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결부시켜 제노포비아적 성향을 나타내는 부류의 의견이라 어느 정도 걸러들을 필요는 있다. 대표적인 예로 시리아 난민을 받기로 결정했는데, 이때도 일부에서는 테러리스트를 무차별적으로 들여온다고 선동했지만 실상을 보면 캐나다에 연고가 있는 사람 우선이고, 부인과 자식들이 있는 가족 단위 난민들만 받는(즉, 1인 남성 및 여성은 제외) 등 나름의 방비는 하고 있다. 그리고 난민이나 이민자들의 재정착 관련해서 적응 교육을 상당히 빡세게 시키는 편인데, 여기에는 이슬람권이나 남아시아권 이민자 이외에도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도 해당된다. 물론 제노포비아 성향의 사람들은 닥치고 국경 폐쇄같은 정책 아니면 만족을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캐나다는 미국이나 유럽 등에 비해 개방적인 난민 및 이민자 정책을 펼 수 있는 이유는 육로로 난민들이 불법적으로 유입되기 어려운 지리적 요인 때문이다. 캐나다가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캐나다 역시 이민에 비용이 많이 드는 편이다. 캐나다의 이민 장벽이 마냥 낮았으면 아이티인 난민들이 캐나다로 수백만 명씩 몰려오고도 남았다.

2016년, 안락사법 관련 투표가 고의로 지연되고 있는 행태에 화가 나 야당인 보수당 원내대표를 완력으로 끌어냈는데, 그 와중에 신민주당 여성 정치인의 가슴을 팔꿈치로 건드려 사과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 재미있는 것은, 이와 관련해 총 4번에 걸쳐 사과를 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식 사과장에서 팔꿈치 사건(Elbow Gate)에 대해 사과했는데, 이것 때문에 1914년 일어났던 코마가타 마루(Komagata Maru) 사건[4] 공식 사과가 묻힐 것 같다고 또 사과했다.

2016년 피델 카스트로의 사망에 애도를 표하며 그를 칭찬했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 피델 카스트로가 잘한 것도 있을 테고 쿠바가 당시 서방권과도 다소 훈훈해지던 분위기이긴 했지만(오바마 대통령 때 미국과 국교 정상화), 아무리 그래도 인권을 짓밟은 독재자 평가를 받는 카스트로에 대해 너무 과한 칭찬을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총리도 이후 표현을 수정했다.

2016년 말, 유료 입장권이 있는 정치 후원 행사에 참석해 후원자들에게 '면담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휘말려 야당이 제소해 연방윤리위원회의 조사를 받게 됐다. # 다만 후속보도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별일없는 듯.

2018년, 인도 델리에서 열리는 영국연방 대사관 축하파티에 칼리스티나주의자 [5] 자스팔 앳월을 초대해서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특히 이 사람은 법원으로 부터 유죄 [6] 를 받은 인물이라서 캐나다와 인도 양국에서 문제가 터졌다.

2019년, 검찰의 사법수사에 압력을 가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무아마르 카다피한테서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아 재판을 받게된 SNC-라발랭[7]재판에 트뤼도가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조이 윌슨-레이불드[8]을 이용해 검사들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윌슨-레이불은 1월 퇴역군인장관으로 담당이 바뀌었는데 2월 사임했다. 야당은 트뤼도가 윌슨-레이불의 비밀유지특권을 해지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대정부 질의 응답 시간에 트뤼도는 물론 장관들까지 앵무새처럼 같은 답변을 내고 있어 보수당 의원들이 엄청 까고 있다. 뉴욕 타임즈 기사. 이어 재무장관 제인 필포트도 3월 4일,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었으며 “더이상 트뤼도 내각의 편을 들어줄 수 없다”라고 언급하며 재무장관직에서 사임했다.# 윗문단에서 상기된 논란들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주관적 견해 차이도 다소 섞여 있기에 논란은 됐을지언정 대대적인 정치적 스캔들로는 발전하지 않았으나, 이번 사건은 집권후 최대 위기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국내외적으로 비난과 의혹이 뒤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평민원 해산 후 치른 9월 총선에서 원내 1당을 사수했다.


2.1. 성추행 의혹[편집]


때는 2018년 여름. 당시에 페미니스트로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던 트뤼도에게 성추행 의혹이 일었다. 내용은 18년 전, 트뤼도가 교사일 때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 있는 크레스턴이란 곳에서 어떤 여자를 성추행하고, 그 여자가 기자라는 걸 알았을때 사과하고 꼬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캐나다 언론들은 잠깐 떠들어대다가 어느 순간 보도를 싹 끊어서 결국은 흐지부지됐다.


2.2. 코로나 시국 가족여행 논란[편집]


2020년 코로나 때문에 논란이 터졌다. 부활절을 맞아 많은 가족들 모임들을 경계해서 총리 본인이 "스카이프로 파티를 대체해달라" 라고 충고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총리 본인은 코로나 완치자인 자기 부인을 만나러 밖의 총리 공식 별장으로 여행을 나가서[9] 논란이 일었다.

그것에 대해 질문받자 "자기는 3주 동안 일을 했고, 가족들을 만나러 간 것"이라는 답변을 해서 빈축을 샀다. 이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데, 첫번째로 가족들을 만나는 것은 캐나다 연방 정부에서 제시한 필수적이지 않은 여행 사유다.[10] 이 사건이 총선이 끝난 지 반년 이후에 일어났으니까 다행이지, 반년 이전에 일어났으면 트뤼도 입장에서는 큰일 날 뻔했다. 하지만 온갖 스캔들이 터졌음에도 재집권한걸 보면 캐나다에서는 트뤼도에 대한 반감보다 보수당에 대한 반감이 더 크기에 이런 논란 하나가지고는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2.3. 위 채리티 공권력 사유화 논란[편집]


총리 부인과 관련이 있는 위 채리티(WE Charity)라는 조직에 공금 9억 달러[11]를 지원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거기다가 이 조직에서 트뤼도의 모친과 남동생이 유료로 연설을 한 일까지 밝혀져 당연히 총리 본인과 연관이 있어 보이는 상황. 캐나다 판 모리토모 학교 비리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2.4. 2021년 총선 논란[편집]


아직 코로나가 한창일 때 총선을 선언해서 욕을 많이 먹었다. 기존에 소수 정부여서 권력이 불안정했기 때문에 백신 보급으로 지지율이 올라 과반수를 노릴수 있는 상황에서 총선을 치러 다수 정부를 꾸리겠다는 계산으로 보는 분석이 많다. 덕분에 자기 정치 권력을 위해 국민들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욕을 엄청나게 먹었으며, 높았던 지지율은 이로 인해 하락하면서 결국 제1당은 사수했으나 지난번 총선하고 의석수가 거의 변동이 없었기에 사실상 무의미한 선거라는 평이 많다. 특히 이 선거에 공금 6억불이라는 거금이 들어갔기에 더욱더.

[1] Attorney General. 미국과 캐나다 법무부의 장관은 Secretary(미국)나 Minister(캐나다)로 불리지 않고 Attorney General이라 불리며, 이를 직역하면 검찰총장이다. 즉, 이 두 나라에서는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이 동일 인물.[2] 해당 선거 유일의 무소속 당선자이다. 참고로, 캐나다와 한국과 지역구 국회의원 선출방식은 완전히 동일하나, 캐나다는 한국과는 달리 무소속 당선자가 배출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3] 당초 캐나다 국가비상전략비축기구(NESS)가 PPE 부족을 경고했고 미국의 대기업 Honeywell사가 N95 마스크를 캐나다에 공급하겠다고 제안했지만 트뤼도 정부는 모두 무시하여 결국 코로나19 의료진들이 마스크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소독해 재사용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4] 1917년에 일본 선박인 코마가타 마루 호를 통해 인도 출신 대영제국 식민지인들이 캐나다로 이주하려다 총 376명 중 24명만 받고 나머지 352명은 인도로 되돌려보내버린 캐나다 이민사의 흑역사 중 하나. 피해자의 대부분이 시크교도로, 아마 국방부 장관이 시크교도인 것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 같다.[5] 인도의 펀자브 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시크교도들이 인도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국가의 건설이 목표[6] 1985년에 캐나다 BC 주지사를 구타한 사건과 1986년에 인도정부 각료를 살인미수한 사건[7] 퀘벡 기업이라 프랑스어 발음으로 라발랭이라고 한다[8] 윌슨-레이불이 성이다. 영문 표기는 Wilson-Raybould다.[9] 여담으로 서양권 국가들은 대체적으로 별장 문화가 발달하여서 캐나다에는 아예 별장촌이라고 불리는, 평시에 거주하는 인구는 아주 극소하지만 별장들이 많아서 휴가철이 되면 비교적 붐비는 마을들도 있다. 이런 문화라서 총리는 거주용 공관 이외에도 공식 별장이 있다.[10] 해당 사유들은 국제여행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때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요소들 이외의 이유로 외출을 하는건 필수적일 수가 없다.[11] 한화 8천억원에 이르는 거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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