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론 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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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론 우즈의 KBO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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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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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KBO 리그 MVP

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 KBO 한국시리즈
2001 한국시리즈 MVP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8 KBO 리그 홈런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98, 2001 KBO 리그 타점왕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0 KBO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우승자


타이론 우즈의 NPB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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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론 우즈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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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 두산 베어스 등번호 33번
김광현(1997)

타이론 우즈(1998~2002)

마이크 쿨바(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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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론 윌리엄 우즈
Tyrone William Woods

생년월일
1969년 8월 19일 (54세)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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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출신지
플로리다 주 브룩스빌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8년 MLB 드래프트 5라운드 (MON)
1998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OB)
소속팀
몬트리올 엑스포스 산하 마이너 (1988~1994)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 마이너 (1995)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마이너 (1996~1997)
페트롤레로스 데 미나티틀란[1] (1997)
OB-두산 베어스 (1998~2002)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2003~2004)
주니치 드래곤즈 (2005~2008)
등장곡
프란츠 폰 주페 - 경기병 서곡
응원구호
즈, 홈런![2]

1. 개요
3. 평가
5. 이모저모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우즈세리머니.jpg


OB-두산 베어스 소속의 외국인 선수. 본명은 타이론 윌리엄 우즈(Tyrone William Woods)로 '흑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일본 시절 애칭은 'T'

베어스 팬들에겐 절대 잊지 못할 외국인 선수이며 펠릭스 호세, 제이 데이비스, 야마이코 나바로, 에릭 테임즈와 함께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외국인 타자. 외국인 선수 제도가 최초로 도입된 1998년도에 OB 베어스를 통해 드래프트 뽑혀서 첫 국내땅을 밟았다.

역대 최초로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40홈런을 기록한 선수이자[3] 사상 최초의 외인타자 잠실 홈런왕, 외국인 시즌 KBO MVP, 사상 두번째 외국인 한국시리즈 MVP를 달성하였다.

8~90년대 팬덤과 08년 이후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 이후 유입된 초보 팬덤 사이에 상당한 단절이 있는 두산팬들 사이에서 올드팬덤과 밀레니엄팬덤을 구분할 때 자주 언급되는 선수.[4]


2. 선수 경력[편집]


타이론 우즈의 선수 경력


3. 평가[편집]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라고 불릴 정도로 온갖 다양한 스탯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 선수의 평가가 매우 활발하다.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낸 것 같은 선수도 별별 부분에서 비판적인 지적, 논쟁이 끊이지 않곤 한다. 그런데 우즈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활동한 외국인 타자들 중에서 이런 논쟁에서 자유로운, 순수하게 자신의 실력으로 입증해낸 몇 안되는 이들 가운데 하나다.

  • 지속적인 출장 - KBO 5시즌, NPB 6시즌. 가장 적은 표본이 태업설이 있는 02시즌의 469타석으로 '반짝', '거품' 같은 말이 나올 여지가 없다.

  • 구장의 영향이 없음 - 잠실 야구장나고야 돔은 투수 친화 구장이자 홈런 안 나오는 구장으로 유명하고 요코하마 스타디움도 중립 구장 수준이다. 대구구장을 홈으로 썼던 이승엽과 달리 한번도 타자친화 구장에서 뛴 적이 없다.

  • 한일 양 리그에서 모두 활약 - KBO 리그에서 지배적 활약을 해도 NPB, MLB에서는 눈에 띄게 성적이 부진했던 외국인 선수가 많다. 그런데 우즈는 그렇지 않았다. 어떤 기록, 부문에서는 오히려 좋아졌을 정도. 게다가 양 리그 다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7년 일본시리즈 우승이 있는데 소속팀의 우승 횟수도 그렇게 많지도 않은 만큼[5] 우승에 공헌할 수 있는 타자임을 부정할 수도 없다.

  • 꾸준하다 - 한국 시절 가장 성적이 나빴던 것이 마지막해인 02시즌인데, 이때의 우즈는 태업설이 돌았다. NPB 넘어가서 펄펄 난 것이 태업설에 더욱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그외엔 리그를 막론하고 OPS가 0.900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어느 정도의 슬럼프, 기복, 노쇠화에 따른 부진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우즈는 그런 면모가 거의 없었다.

  • 나이가 들어도 잘한다 - 우즈가 KBO에 입단했을 때 이미 만 28세였다. 이때가 선수로서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나이고, NPB에 진출했을 때는 선수로서 황혼기라 할 수 있는 나이다. 처음 한두해야 몰라도 38세 시즌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다른 선수들이 은퇴를 생각할 나이에 도리어 더욱 나은 성적을 내며 리그 선두권을 차지하는 것은 우즈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증해주는 것은 물론이요, 선수 간의 논쟁에서도 우위를 점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 외국인이다 - 야구는 심판의 영향력이 지대한 스포츠이고, 해외 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은 불리한 판정을 받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판정뿐 아니라, 상대 팀과의 대결에서도 외국인 선수는 집중 견제의 대상이 되기가 쉽다. 그런 면에서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외국인이었던 우즈는 좋을 게 없었다.

물론 우즈도 수비가 부족했다는 한계는 있었다. 하지만, 우즈와 비교할 수준의 타자들이 수비가 엄청난 선수들은 아니었기 때문에 별로 고려되지 않는다.[6] MLB 성적이 없지만 직전의 마이너리그 두 해 성적과 황혼기 NPB 성적이 워낙 뛰어나고, KBO 리그 타자들 중 테임즈 외에는 MLB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경우가 드물어서 이것도 별로 고려되지 않는다. 이미 MLB에서도 스타였다가 1년 한국에서 뛰었던 훌리오 프랑코라면 모를까.

이러한 이유로 우즈는 한국을 거쳐간 외국인 타자뿐만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빛낸 장타자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존재로 평가할 수 있다. 과거에야 '국민타자'라는 타이틀로 국내 팬들의 전폭적 응원을 받은 이승엽과의 라이벌 구도가 있어서 우즈에 대한 평가가 인색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 이승엽이 은퇴하고 우즈가 일본에서 거둔 호성적이 주목받으면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졌다.


4. VS 이승엽[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승엽 vs 타이론 우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이모저모[편집]


  • 밀어치는 우월홈런이 상당히 많았는데, 밀어쳐서 도쿄돔 상단 광고판을 때릴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7]

  • 국내 시절 훌륭한 활약을 펼쳤지만, 2002년까지 5시즌만 뛰었기 때문에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로 늘어난 야구를 처음 접한 팬들, 베이징 뉴비들은 타이론 우즈를 몰라 이에 대한 일화가 생기기도 하였는데,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 한 두산팬이 2010년 포수 양의지의 스윙폼을 보고 우즈 닮았네라고 하자 어느 유동이 댓글로 "저 선수 불륜 안했거든요?!"라고 언급한 것이 캡쳐되어 떠돌아 다녔고, 자기 팀 레전드도 모른다며 야갤에서 까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를만도 한 게, 2회 WBC 이전에 아예 은퇴를 해버린 데다가 '우즈'하면 과거부터 야구를 봐왔거나 일본 프로야구를 어느 정도 아는 팬들을 제외하고는 대개 골프 선수인 타이거 우즈를 떠올리기 때문. 이름도 아주 비슷하다. 이를테면 일종의 세대 차이라고 할 수 있다.[8]

  • 자신의 완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이걸 이용해서 언론을 통해 의도적으로 도발을 하거나 경기 중 상대팀의 견제가 들어올 경우 먼저 나서서 시비를 트는 대단한 재능이 있었다. 이승엽의 성격이 예민한 편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일본 시절에 자주 이승엽을 도발했으며 실제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전혀 관계도 없는데 이승엽에게 달려들기도 했다. 사실 우즈는 겉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영악하고 잔머리가 잘 돌아가서 일본프로야구에 데뷔후 일본인 선수들이 체격들이 작고 시비에 소극적인 성향인걸 파악하고는 조금만 거슬리거나 아니면 전혀 상대가 시비걸지 않아도 의도적으로 난폭하게 행동하고[9] 적극적으로 상대선수에게 주먹을 휘둘러대면서 상대가 자신의 플레이에 방해하는 요소를 차단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하곤 했다. '나는 막 나가니까 건들지 말고 알아서 기어라' 식의 심리 효과, 이른바 평판효과(reputation effect)를 이용한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우즈가 이득을 보는 것을 보고 다른 외국인 선수들도 따라하게 되었다는 게 문제였다.

  • 일본에서 보여준 공격적인 성향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경기 중에 눈에 띄게 물의를 일으킨 적은 없다. 이에 대해 당시 팀 내에서 코치 양승호김태형 등이 우즈가 사고를 치지 못하게 기강을 잡은 덕이라는 설명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10], 일본 체육계에도 이런 문제는 비일비재한 일이고, 돌출 행위 역시 타 팀 선수들에게만 그랬지 자기 팀 선수들에게는 그러지 않았다는 걸 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경기 중 선수들이 흥분하거나 거칠게 반응하는 면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덜한다고 판단해서 그걸 믿고 행동했던 것으로 해석하는 편이 더 정확할 듯.[11][12]

  • 야구 팬들사이에서 두산 시절 보너스를 혼자 받아먹으려는 타이론 우즈를 당시 주장이었던 김태형 전임 두산 감독이 커튼 뒤로 끌고 가서 참교육을 했고 그 다음부터 고분고분해졌다는 일화가 있다. 이 일화를 바탕으로 김태형 해설위원에게 붙은 별명이 바로 튼동이다. 김태형 해설위원도 감독 재임시절 그러한 별명이 있었던 것을 알고 커튼 뒤로 끌고가서 선수 잡는 긍정적이지 않은 별명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해설위원이 되면서 자신의 별명이 우즈와의 일화로 부터 비롯되었음을 알았다. 다만 김태형 해설위원의 회고에 따르면 우즈의 덩치가 무서워서 1:1로는 뭐라고 하지 못하고 선수단에게 우즈와 말도 섞지 말라고 하는 방식으로 소외시켜서 우즈가 자기 멋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잡았다고 한다.

  • 한국에서 지낼때, 당시 어느 스포츠 신문에서 인터뷰하면서 한국에서 좋은 점을 질문받자 단번에 치안이 너무나도 좋다라고 한 바 있다. 총소리 걱정없이 지내고 밤이나 새벽에 여자가 돌아다니는 걸 보고 제정신이냐? 라고 처음에는 놀라워했다고 한 바 있다.

  • 당시 두산 베어스 팬들은 우즈가 타석 등장곡인 경기병 서곡이 울려퍼질 때 타석에 들어서면 전부 일어나 북소리에 맞춰 흰 막대풍선을 머리 위에서 빙빙 돌리면서 우~ ~ ~즈!! 우~ ~ ~즈!!를 반복해서 외치곤 했다. 송창훈 당시 OB 응원단장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이 응원구호는 뭔가 주술적인 분위기마저 풍기면서 상대팀 투수는 물론이고 상대팀 팬들조차도 공포에 질리게 하는 위압감을 풍겼다. 주니치 시절에는 메인 응원가 전에 에미넴의 'Without Me'의 코러스 반주에 맞춰 "T!"를 외치는 응원이 있었다.

  • 일본프로야구시절 임창용이 우즈 킬러로 유명했는데 특히 인터뷰에서 우즈를 까내리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대해선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얻어맞은 것에 대한 분풀이라는 썰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우즈는 임창용을 인정했는데 주니치 드래곤즈 간판 스타인 와다 츠요시의 말에 의하면 임창용이 야쿠르트에서 첫 등판할때 선수들이 임창용을 잘 몰라서 그냥 보고 있었는데 우즈가 낯빛이 변하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저 친구 볼 죽이니까 조심해라." 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가서 임창용 볼을 보니 '와.. 이건 못치겠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 와다 본인이 직접 밝힌 에피소드.

  • 2015 시즌 중반 잭 루츠가 방출당한 후 스카우터는 우즈를 잊지 못한 두산 팬들의 향수를 위해 이 선수를 데려왔으나, 시즌을 마감하고 나니 흑인이라는 것 빼고는 공통점이 없었다.

  • 파일:external/3.bp.blogspot.com/111111111.jpg
    국내에서 활동하던 시절 순풍산부인과카메오로 나온 적이 있다. 순풍산부인과 277화에서 박미달(김성은)과 선우용녀(선우용여)가 우즈의 팬이 되는 설정으로 결국 우즈를 찾아가서 만나게 된다.[13]

  • 2010년에는 한 TV프로 녹화방송과 관련하여 주니치에서 퇴단한지 약 1년 5개월만에 일본을 방문해 옛 동료들을 격려했고, 시즌 개막 직전 나고야 돔을 전격 방문해 자신의 후임 4번타자인 토니 블랑코에게 많은 조언과 격려를 해줬다고 한다.

  • KBO 사상 유례없이 긴 배트인 36인치짜리 배트를 쓰는 선수로 유명했다. 국내 배트 제조업체들에선 이걸 어떻게 휘두르냐며 제작에 난색을 표하기까지 했다. 세계적으로도 타이론 우즈보다 더 긴 배트를 쓴 선수는 일본 프로야구의 후지무라 후미오의 37인치 배트였으며 실제로 우즈는 바깥쪽 공에 아주 강한 선수였고 보기와 달리 윙스펜이 아주 길어서 바깥쪽 볼이라 생각되는 볼도 중심에 맞춰 넘겨버리던 선수였다. 즉 타고난 팔길이 + 장대배트의 버프였다.

  • 박명환유튜브 2019년 5월 27일자 박명환야구TV에서 정수근이 폭로한 바에 따르면, 샤워를 하는데 선수들이 우즈랑 떨어져 샤워하길래 '왜 그러지?' 하면서 자신은 우즈 옆에서 샤워하다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 자기도 떨어져 샤워했는데, 왜 그러냐고 박명환이 질문하자 정수근은 그만 우즈의 그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며 자기 팔뚝을 보여주며 이 정도라고 하는 순간 방송심의를 위한 의 배경음악[14]이 나왔다. 즉, 최고의 자질 가졌다는 뜻이다.

  • 2022년 9월 12일, 팬들의 선택을 받아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에 마지막 40위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 선정 이후 시상식을 위해 두산 구단 측에서 접촉하였으나 아직 답장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15] 워낙 근황이 알려지지 않아[16] KBO 측에서 연락을 계속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고 아쉽게도 시상식은 개최되지 못했다. 이후 11월 1일 한겨레의 단독 인터뷰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 그래도 선수 본인이 한국으로 올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면 꼭 시상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긴 했다.

6. 관련 문서[편집]


[1] 멕시코 서머리그 팀. 소속은 되었으나 공식경기 출장은 없었다.[2] 응원가는 아니고 응원구호다. 응원용 막대풍선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반복하는 방식.[3] 이 기록은 2018년 김재환이 기록할 때까지 무려 20년 동안이나 유일한 기록이었다.[4] 1990~2000년대 초반 LG 트윈스가 잘 나가던 시절 베어스는 서울 야구 팬덤에서 소수 세력이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두산의 재도약을 계기로 야구에 입문한 신세대 두산팬들은 그 이전의 베어스 선수들(우즈는 물론이고 원년 스타 박철순조차)에 대해 잘 모른다. 하기야 그들이 활동할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초등학교도 안 들어갔을 때의 나이였을 테니. 이건 홍성흔에 대해서도 두 팬덤이 완전히 상반된 편이다. 올드팬덤은 넘칠 만큼 최강의 포수 라인업을 뚫고 주전을 따낸 신인, 2001년 한국시리즈의 우승 주역, 하위 타선에서 상위 타선으로 올라올 정도의 준수한 타격을 기록한 점에서 스타 대접을 해주지만, 밀레니엄팬덤은 한동안 타팀(롯데)에서 뛰다가 돌아온 말년의 부진, 지명타자 철밥통, 부전드 발언등의 부정적 기억 때문에 스타 대접을 별로 해주지 않는다.[5] 2021년 현 시점에서 두산은 총 6회 우승으로 KBO 리그 우승 순위 3위에 랭크되어 있는 우승을 많이 한 팀이지만 이는 훗날의 이야기고 우즈가 뛰던 시절에는 총 3회 우승에 그쳤다.[6] 이승엽의 1루 수비는 매우 뛰어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수비 부담이 적은 포지션인 1루수의 수비는 아무리 잘 하더라도 선수의 종합적인 평가에 반영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7] 두산 시절 잠실 홈경기때 만원 관중이 아닌 날을 제외하면 우중간 외야석에는 이라는 플래카드가 항상 걸려있었다. 우타자 슬러거의 홈런이 대부분 좌측 펜스를 넘기지만 우즈가 잠실에서 치는 홈런은 대부분이 우중간을 넘기는 홈런이었기 때문에 생긴 일.[8] 다만 타이거 우즈의 성인무대 데뷔 년도가 타이론 우즈의 한국 데뷔년도보다 2년 빠르다. 세대차이로 보긴 타이론 우즈 전성기와 타이거 우즈 전성기는 겹친다. 물론 타이거 우즈가 미국 유럽 일본 한국 을 제외한 전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게된 사건은 2009년 터진 불륜 스캔들이였지만 하지만 타이론 우즈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이름을 얻었지만 타이거 우즈는 미국에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운동선수중 하나다. 2020년 현재도 전미에서 타이거 우즈랑 비교할 수 있는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현역 운동선수는 미식축구 선수인 톰 브래디와 농구선수 르브론 제임스를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야구선수중 가장 인기있다는 마이크 트라웃의 인지도도 LA지역에 한정되어 있는 판이다.[9] 특히 투수들이 몸쪽으로 던질때 이런 행동을 보여주며, 투수들이 바깥쪽으로만 던지도록 유도했다.[10] 당시 코치였던 양승호가 의자를 집어던지면서 기강을 잡았다는 이야기가 있다.[11] 사실 일본인 선수들의 신체조건이 한국인 선수들에 비해 상당히 왜소한 것도 한몫 단단히 했을 것이다. 이대호만 해도 한국에서는 우유돼지와 같은 푸근하고 친근한 이미지였지만 일본에서는 아군 일본인 선수들 위에 대장으로 군림하면서 상대팀 선수에게는 거대한 체격으로 위압감을 풍기는 두려운 최종보스와도 같은 이미지였다. 실제로 이대호가 오릭스시절 퇴장처분 쳐먹고 심판에게 달려들때 심판은 겁을 단단히 먹었다.[12] 일본야구는 이미 80~90년대부터 연말예능프로에서 덩치 큰 용병선수들이 작고 호리호리한 일본 선수들을 위협하거나 때리는 영상특집프로를 할 정도로 힘 쎈 용병선수들을 겁내하는게 일상화 되었다. 일단 덩치의 차이도 있었고, 실력이 좋은 선수들도 많았기 때문에 투수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일본에서 무섭기로 소문났던 근육질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브락스 같은 경우엔 인코스 바짝 붙는 볼에 투수가 연신 90도로 사과를 할 정도였고, 어떤 투수는 농담조로 자기는 방출되는 한이 있더라도 브락스에게 인코스는 절대 안 던지다고 할 정도로 겁을 냈었다. 정말 기요하라 정도 되는 선수들이나 되어야 용병과 맞장을 뜨지 다른 선수들은 전체적으로 무서워했다. 다만, 일본도 체격이 점점 커지고 리그수준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이런 문화가 많이 완화되었다.[13] 링크, 19분40초 부터. 여담으로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티배팅볼을 던져주고 사진 찍어주는 사람은 당시 두산 1군 배터리코치였던 김경문 감독이다.[14] 원곡은 김세환의 목장길따라. 신서유기에서 강호동이 동료들을 힘으로 제압할 때마다 '화면조정시간입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나온다.[15] 사실 두산 구단은 이전 부터 우즈의 시구를 위해 계속 연락을 취해봤으나 번번히 실패하였다.[16] 먼저 시상한 김동주의 말에 따르면 부동산 사업으로 매우 바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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