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하 야신 라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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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이라크의 부통령. 이라크의 전직 정치인이자 군인이다. 소속 정당은 바트당.
그의 집안은 쿠르드족으로 주로 농업을 하며 생활하던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모술에서 거주하였다. 군사학교를 졸업한 후 1956년 바트당에 합류해 사담 후세인, 이자트 이브라힘 알 두리 등과 쿠데타를 일으켰고 그렇게 바트당이 집권하게 되었다. 1991년 3월부터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후세인 정권이 몰락한 2003년까지 이라크의 부통령을 재임했다. 2003년 8월 19일, 체포되어 2007년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3월 20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2. 일생[편집]
1938년 2월 22일, 이라크 모술에서 태어났다. 그는 쿠르드족 출신으로, 그의 가문은 농업을 하던 농민 가문이었다. 그는 군사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고 이후 이라크 육군에서 1959년까지 복무했다. 4년 후인, 1963년 2월 8일부터 1964년까지 다시 이라크군에서 복무했다. 1966년 이라크 바트당 지역사령부의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69년 11월 이라크 혁명사령부 위원회의 의원으로 임명되었다.
1970년 이라크 산업부 장관에 임명되었고, 1976년에는 이라크 주택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이후 친 바트당 성향의 민병대인 이라크 인민군의 사령관을 재임하였다. 1974년 다시 바트당 지역사령부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같은 해 11월부터 1976년 5월까지 이라크의 기획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1979년 7월 16일, 이라크의 부통령으로 선출되었고 서유럽의 국가들과 구 소련을 방문하며 외교 활동을 하였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고 그는 미군에 의해 수배당했다. 결국 후세인 정권이 몰락하고 수도인 바그다드가 함락당하자 그는 도주하다 8월 19일 모술에서 쿠르드 애국 연합에 의해 체포되었고 미군에게 넘겨졌다,
2006년, 그가 1982년 이라크의 무고한 민간인들을 체포하고 처형했다는 이유로 사담 후세인, 바르잔 이브라힘 알 티크리티 등과 재판을 받았다. 11월 15일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으나, 형이 죄에 비해 너무 낮다는 이유로 12월 26일 항소심이 열렸고, 2007년 2월 12일 사형 선고를 받았다. 결국 2007년 3월 20일 새벽, 교수형이 집행되어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후 고향에 묻혀졌다.
3. 같이 보기[편집]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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