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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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아프가니스탄
1. 개요[편집]
탈레반 치하 아프가니스탄의 2022년 내용을 정리한 문서.
2. 1월[편집]
2.1. 1월 1일[편집]
탈레반 정권이 매매혼을 금지했지만, 경제난에 매매혼이 성행하고 있다.#
2.2. 1월 4일[편집]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정부 대변인은 아프가니스탄 현지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에서 '자살폭탄 부대'를 정규군으로 편성하겠다고 밝혔다. #
탈레반 정권이 술을 압수해 술판매 및 마시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2.3. 1월 5일[편집]
헤라트시에서 탈레반이 마네킹의 머리 부분을 떼어내라는 지시를 내렸다.#
2.4. 1월 7일[편집]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국제사회에 편견없이 아프간 지원을 호소했다.#
2.5. 1월 8일[편집]
권선징악부가 카불의 카페와 상점에 히잡을 쓰라는 포스터를 붙이는 조치를 취하고 있어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2.6. 1월 15일[편집]
탈레반이 헤라트와 발흐의 여성들이 공중목욕탕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명령했다.#
탈레반측이 3월 21일부터 여학생들의 등교를 허용하되 학교에서 여학생들을 분리하는 교실을 신설하는 것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2.7. 1월 19일[편집]
물라 모하마드 하산 아쿤드 탈레반 총리는 카불에서 경제난과 관련해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정권 인정을 호소했다.#
탈레반의 모하메드 나임 대변인은 하자라족 여성을 살해한 탈레반 대원을 체포했고 유족들에게 60만아프가니(약 680만원)의 위로금이 지급될 것이라고 밝혔다.#
2.8. 1월 21일[편집]
탈레반이 여성운동가의 자택을 잇달아 급습해 시위 관련자들을 체포했다.#
2.9. 1월 24일[편집]
탈레반은 오는 3월 21일부터 남녀 모든 연령대의 학생에게 학교가 재개방될 것이라고 밝혔다.#
2.10. 1월 30일[편집]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후 100명이 넘는 아프간 전 관리, 군인과 국제 연합군 협력자가 살해된 것으로 파악됐다.#
3. 2월[편집]
3.1. 2월 2일[편집]
탈레반의 고위급 간부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중국 외교부장 왕이와 만났다. #
3.2. 2월 6일[편집]
탈레반은 이웃국가로 탈출한 조종사 5명이 귀환했다고 밝혔다.#
3.3. 2월 7일[편집]
탈레반이 재집권한 뒤 아프간내에서 알카에다, 다에쉬 등 테러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유엔 보고서가 나왔다.#
3.4. 2월 15일[편집]
탈레반이 동결된 자국의 해외자산 일부를 9.11 테러의 희생자 유족 배상에 사용하려는 미국 정부의 조치를 거듭 비난했다.#
3.5. 2월 16일[편집]
탈레반은 11만 정규군을 창설하고 필요시 증원한다고 밝혔다.#
3.6. 2월 17일[편집]
바다흐샨주 나시 지역에서 불륜을 저지른 남녀가 샤리아 법정에서 투석형에 처해져 사망했다.#
3.7. 2월 18일[편집]
우물안에 빠져 3일간 갇혀있던 3세 소년이 사망했다.#
3.8. 2월 19일[편집]
탈레반 정권이 미국과 영국 출신 민간인들을 구금하고 있다고 밝혔다.#
3.9. 2월 27일[편집]
자국민의 해외 대피를 당분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4. 3월[편집]
4.1. 3월 2일[편집]
국내외 비난 속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4.2. 3월 18일[편집]
탈레반이 남녀 교육을 허용하지만, 여학생들은 여교사에게만 수업을 받는다고 밝혔다.#
4.3. 3월 23일[편집]
탈레반이 갑자기 입장을 바꿔 여학생들의 등교를 막은 일이 발생했다.# 이에 국제사회는 탈레반 정권을 비판했다.#
4.4. 3월 24일[편집]
남성 보호자 미 동행 여성의 여객기 탑승까지 금지했다.# 게다가 놀이동산조차 남녀분리 실시한 것이다.
4.5. 3월 28일[편집]
전 세계의 언론매체 송출을 막았다.#
4.6. 3월 29일[편집]
공무원의 턱수염을 의무화했다.#
5. 4월[편집]
5.1. 4월 16일[편집]
탈레반은 파키스탄군이 국경을 공습해 아프간인 수십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5.2. 4월 19일[편집]
카불시에서 연쇄폭탄테러가 일어났다.#
5.3. 4월 25일[편집]
탈레반 정부 고등교육부는 카불대 등에 공문을 보내 남자 대학생과 여자 대학생의 등교일을 분리하라고 지시했다. 공문에서 여학생은 토요일, 월요일, 수요일, 남학생은 일요일, 화요일, 목요일에 등교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6. 5월 [편집]
6.1. 5월 5일[편집]
이슬람 성직자들이 여학교를 다시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6.2. 5월 7일[편집]
모든 여성들에게 외출 시 차도르를 강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6.3. 5월 10일[편집]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탈레반의 부르카 착용 강요와 관련된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6.4. 5월 12일[편집]
부부의 식사 동석까지 금지하는 조치를 했다.# 그러나 이틀 만에 폐지했다.#
6.5. 5월 17일[편집]
인권위원회, 국가화해최고위원회(HCNR), 국가안보위원회 등 구 정부 내 조직 5곳을 해산했다.#
6.6. 5월 24일[편집]
탈레반이 19일부터 여성 앵커들의 얼굴을 가리라는 지시를 내리자, 남성 앵커들이 항의의 표시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7. 7월[편집]
7.1. 7월 1일[편집]
탈레반이 카불 기술대에서 3,000명이 모인 지도자 회의를 개최했다.#
8. 8월[편집]
8.1. 8월 1일[편집]
탈레반 집권 1년이 지났지만, 아프간 국민들이 탈레반의 폭정과 가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거기에다 아프간 여성들의 부르카 강제 착용까지 존재했다.#
8.2. 8월 3일[편집]
알카에다의 2번째 지도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탈레반의 고위 지도자인 시라주딘 하카니의 보좌관이 소유한 집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이 알카에다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3. 8월 13일[편집]
카불에서 여성 인권 향상을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 했으나, 탈레반이 무력 해산했다.#
8.4. 8월 15일[편집]
탈레반이 재집권을 한지 1년이 되었고, 경제파탄, 대중문화 탄압, 아프간 여성들에 대한 인권 억압이 심각해졌다.# 그리고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70억 달러 규모의 아프간 동결 자금을 해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9. 9월[편집]
9.1. 9월 1일[편집]
미군 철수 1주년 기념으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했다. 열병식도 진행했다. #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진행했는데, 스커드 미사일도 선보였다. #
9.2. 9월 16일[편집]
미국이 아프간 동결 자금으로 구호재단을 출범시키자 탈레반이 반발했다.#
9.3. 9월 28일[편집]
탈레반이 러시아로부터 휘발유, 가스, 밀 등을 잠정 수입하기로 했다.#
10. 10월[편집]
10.1. 18일[편집]
주 카타르 대한민국 대사관이 국경일 행사에 탈레반 인사를 초청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탈레반 정권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국제사회의 오해를 살 수 있는 일이지만, 외교부는 대사관 측의 '단순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
11. 11월 [편집]
11.1. 10일[편집]
탈레반 정권이 여성들의 공원 출입마저 금지시키기로 밝혔다.#
11.2. 14일[편집]
탈레반이 여성들의 헬스장 출입마저 금지시켰다.#
12. 12월[편집]
12.1. 20일[편집]
탈레반이 여성 대학교육을 금지시켰다.#
12.2. 24일[편집]
국내·외 구호단체의 여성 자원봉사자 활동도 금지했다.#
12.3. 26일[편집]
아프간의 한 교수가 탈레반의 여성 억압 정책에 항의해 석사, 박사 학위 증서를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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