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현 제7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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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까지 히로시마현의 후쿠야마시를 관할했던 일본의 중의원 선거구다.
주고쿠 지방의 선거구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곳도 자민당 강세 지역이며, 미야자와 기이치 전 총리의 지역구였다.
미야자와 총리 은퇴 후 조카인 미야자와 요이치에게 물려줬는데 45회 총선에서 민주당에게 헌납했다. 미야자와 가문은 히로시마에서 백 년 이상 정치를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1]
46회 총선에서 사카모토 다이스케가 일본 유신회 소속으로 이 선거구에서 비례대표 당선되었다.
현재 지역구 국회의원은 자유민주당 소속 고바야시 후미아키. 청년 정치인이지만 흙수저는 아니고 지역에서 큰 기업[2] 을 하는 집안의 아들이다.[3]
2022년에 공직선거법 개정안(일명 10증10감법)이 통과되면서 제5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부터 히로시마현 제6구로 명칭이 바뀌어 폐지될 예정이다.
기존 중선거구였던 히로시마 3구가 소선거구제 개편에 따라 분리되면서 자민당의 당 내 거물 중 한 명인 미야자와 기이치 전 총리가 이 선거구를 선택했다. 본인은 도쿄 태생이지만 본적지로 본인의 정치적 근거지가 된 후쿠야마시가 이 선거구로 포함되었기 때문.
정권교체를 노리는 신진당에서는 민사당 출신으로 舊 히로시마 3구에서 함께 경쟁했던 야니기다 미노루 의원을 공천했다. 다만 신진당에서 선거 개혁 주장의 일환으로 일부 예외를 제외하곤 비례대표 중복 입후보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소선거구에만 도전하게 됐다.
전 총리 출신의 거물이 있는 선거구니만큼 자민당이 아무래도 우세한 선거구였지만, 미야자와 전 총리의 총리 시절 이미지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고 관료 출신이라 그런지 지역구 관리를 잘하는 편도 아니라 이 점이 야당으로서는 공격 포인트가 되었다.
선거 결과, 자민당의 미야자와 기이치 후보가 47%를 득표해 신진당의 야니기다 미노루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11선 고지에 올랐다. 전반적으로 신진당 돌풍이 기대했던만큼의 수준이 아니었고, 신사회당 후보에게 비자민-비공산 야권표가 10%나 분열된 영향으로 미야자와 전 총리의 압승으로 선거가 끝난 것.
선거 이후 미야자와 전 총리는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요청으로 1998년 대장대신을 맡게 되어 각료로 복귀했고, 낙선한 야니기다 후보는 참의원 쪽으로 방향을 튼 뒤 1998년 참원선에서 당선되어 전업하게 되었다.
기존 소선거구를 지키던 자민당의 미야자와 기이치 재무대신이 비례 주고쿠 블럭으로 이동하는 대신 조카이자 의원 비서를 지낸 미야자와 요이치 전 총리비서관이 그 소선거구를 물려받게 되었다. 관료 출신인 백부와 마찬가지로 미야자와 요이치 역시 대장성 관료를 지낸 관료 출신 인사다.
1997년 해산한 신진당의 뒤를 이어 제1야당이 된 민주당에서도 관료 출신 후보로 맞불을 놓았는데, 후쿠야마시 출신으로 통상산업성에서 관료를 지낸 야마다 도시마사가 공천을 받았다.
1. 개요[편집]
2022년까지 히로시마현의 후쿠야마시를 관할했던 일본의 중의원 선거구다.
주고쿠 지방의 선거구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곳도 자민당 강세 지역이며, 미야자와 기이치 전 총리의 지역구였다.
미야자와 총리 은퇴 후 조카인 미야자와 요이치에게 물려줬는데 45회 총선에서 민주당에게 헌납했다. 미야자와 가문은 히로시마에서 백 년 이상 정치를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1]
46회 총선에서 사카모토 다이스케가 일본 유신회 소속으로 이 선거구에서 비례대표 당선되었다.
현재 지역구 국회의원은 자유민주당 소속 고바야시 후미아키. 청년 정치인이지만 흙수저는 아니고 지역에서 큰 기업[2] 을 하는 집안의 아들이다.[3]
2022년에 공직선거법 개정안(일명 10증10감법)이 통과되면서 제5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부터 히로시마현 제6구로 명칭이 바뀌어 폐지될 예정이다.
2. 역대 국회의원[편집]
3. 역대 선거 결과[편집]
3.1.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기존 중선거구였던 히로시마 3구가 소선거구제 개편에 따라 분리되면서 자민당의 당 내 거물 중 한 명인 미야자와 기이치 전 총리가 이 선거구를 선택했다. 본인은 도쿄 태생이지만 본적지로 본인의 정치적 근거지가 된 후쿠야마시가 이 선거구로 포함되었기 때문.
정권교체를 노리는 신진당에서는 민사당 출신으로 舊 히로시마 3구에서 함께 경쟁했던 야니기다 미노루 의원을 공천했다. 다만 신진당에서 선거 개혁 주장의 일환으로 일부 예외를 제외하곤 비례대표 중복 입후보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소선거구에만 도전하게 됐다.
전 총리 출신의 거물이 있는 선거구니만큼 자민당이 아무래도 우세한 선거구였지만, 미야자와 전 총리의 총리 시절 이미지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고 관료 출신이라 그런지 지역구 관리를 잘하는 편도 아니라 이 점이 야당으로서는 공격 포인트가 되었다.
선거 결과, 자민당의 미야자와 기이치 후보가 47%를 득표해 신진당의 야니기다 미노루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어 11선 고지에 올랐다. 전반적으로 신진당 돌풍이 기대했던만큼의 수준이 아니었고, 신사회당 후보에게 비자민-비공산 야권표가 10%나 분열된 영향으로 미야자와 전 총리의 압승으로 선거가 끝난 것.
선거 이후 미야자와 전 총리는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요청으로 1998년 대장대신을 맡게 되어 각료로 복귀했고, 낙선한 야니기다 후보는 참의원 쪽으로 방향을 튼 뒤 1998년 참원선에서 당선되어 전업하게 되었다.
3.2.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기존 소선거구를 지키던 자민당의 미야자와 기이치 재무대신이 비례 주고쿠 블럭으로 이동하는 대신 조카이자 의원 비서를 지낸 미야자와 요이치 전 총리비서관이 그 소선거구를 물려받게 되었다. 관료 출신인 백부와 마찬가지로 미야자와 요이치 역시 대장성 관료를 지낸 관료 출신 인사다.
1997년 해산한 신진당의 뒤를 이어 제1야당이 된 민주당에서도 관료 출신 후보로 맞불을 놓았는데, 후쿠야마시 출신으로 통상산업성에서 관료를 지낸 야마다 도시마사가 공천을 받았다.
3.3.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3.4.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3.5.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3.6.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3.7.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3.8.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3.9.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1] 미야자와 기이치는 "세계의 미야자와(世界の宮澤)"를 자칭했지만, 정작 지역구 주민들의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였다. 해당 지역구 주변의 유력 정치인들은 지역구의 요구 사항을 반영해서 도로망 정비를 했지만, 후쿠야마시는 도로망 정비가 지지부진해서 그 영향이 현재까지 남아있다보니 지역구에서의 평판이 좋지 못했다. 조카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이후에도 평판이 이전과 다를게 없다보니 비례부활을 두 번씩이나 허용했고, 결국 45회 총선거에서 민주당 돌풍에 휩쓸리면서 낙선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2] 어망(漁網) 및 각종 망(網)등을 제조하는 업체이다.[3] 현재 회사 경영은 친형인 고바야시 히로아키(小林宏明)가 맡고 있다. 그리고, 조부 고바야시 마사오(小林政夫)는 1950년부터 1956년까지 참의원의원(전국구)을 지냈다.[공] A B C 추천[4] 추천[5]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