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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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편

제41-49대
이시바 시게루


현직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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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huugiin_logo.png 일본 중의원 (돗토리현 전현구)
제39대
이시바 시게루
노사카 코켄
타케베 분
아이자와 히데유키

제40대
이시바 시게루

히라바야시 코조
노사카 코켄
아이자와 히데유키

선거제도 개편











일본국 제67-68대 방위청장관
일본국 제4대 방위대신

일본국 제48대 농림수산대신
일본국 제38-49대 중의원 의원
이시바 시게루
石破茂 | Ishiba Shigeru


파일:large_bd2ba0e36c.jpg

출생
1957년 2월 4일 (67세)
돗토리현 야즈군 야즈초
현직
제49대 중의원 의원
재임기간
제4대 방위대신
2007년 9월 26일 - 2008년 8월 2일
제48대 농림수산대신
2008년 9월 24일 - 2009년 9월 16일
서명
파일:이시바 서명.png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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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이시바 지로[1], 어머니[2]
배우자
이시바 요시코
자녀
슬하 2녀
친인척
할아버지 이시바 이치조[3]
학력
돗토리대학 교육학부 부속중학교 (졸업)
게이오기주쿠 고등학교 (졸업)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 / 학사)
종교
기독교 (개신교, 일본기독교단)[4]
신체
179cm
소속 정당

파벌
목요 클럽정책과학연구소개혁포럼21헤이세이 연구회수월회 → 무파벌
지역구
돗토리 전현구돗토리 1구
의원 선수
12 (중)
의원 대수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약력
미쓰이은행 행원
중의원 의원
농림수산 정무차관
중의원 운수위원장
농림수산 총괄정무차관
방위청부장관
제68·69대 방위청장관
제4대 방위대신
제48대 농림수산대신
자유민주당 정무조사회장
자유민주당 제50대 간사장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지방창생)


1. 개요
2. 생애
3. 방위 전문가
4. 정치 성향 및 활동
4.1. 대한민국 관련
5. 부정적인 당내 평가
6. 여담
6.1. 오타쿠
7. 소속 정당
8. 선거 이력
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자유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1957년 2월 4일 돗토리현 야즈군 야즈초 출생. 방위청장관, 방위대신, 농림수산대신, 자민당 간사장을 지냈다.


2. 생애[편집]



파일:이시바 어린시절.jpg

부모님과 함께, 어린 시절
출생 당시 아버지 이시바 지로는 48세의 상당한 고령이었고, 어머니는 국어교사였다. 어머니가 교사출신이기에 교육에 열심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1958년 돗토리현 지사로 취임했고, 이시바는 어린 시절을 돗토리현에서 보내며 돗토리대학 교육학부 부속중학교를 졸업하고 게이오기주쿠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게이오기주쿠 고교 졸업 후 내부진학으로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를 졸업한다. 법 공부에 나름 열심이었다고 하며 2학년 때인 1976년, 제26회 전일본학생법률토론회에서 1등을 한다.


파일:이시바 사회인.jpg

미쓰이은행 행원 시절
졸업 후 1979년부터 미쓰이은행에 다니다 1981년 당시 참의원 의원이던 부친 이시바 지로가 사망하자[1] 부친의 친구였던 다나카 가쿠에이에게 부름을 받아 정계에 입문, 1983년부터 은행을 퇴직하고 다나카의 파벌인 목요 클럽 사무국에서 근무했다.


파일:이시바 젊은시절.jpg

중의원 최연소 의원 시절
1986년 중의원 의원이 되었고(당시 29세, 최연소 당선), 이후 한 번도 낙선한 적 없이 연임 중이다. 아무래도 지역구인 돗토리현 제1구가 전형적인 시골 자민당 텃밭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듯 대부분의 자민당 세습 의원과 비슷하게 가업 정치가로서의 정치 궤적을 밟아왔다.

차기 총리 유력주자 중 하나이면서 보수우익적 측면이 옅고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전향적이다.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들에 대해 피해국가인 한국과 중국이 납득할때까지 일본 정부가 사과하는 태도를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주목받는 인물이다. 다만, 아래 항목에도 나와있듯 방위 분야를 주로 맡아왔으며 방위 측면에서는 자위대의 국군화에 찬성하는 입장이라 한국의 시각에서는 평가가 엇갈릴 여지가 있다.

자민당의 계파 중 하나인 수월회(水月会)의 회장을 맡았었으나, 저번 총재선 참패 이후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3. 방위 전문가[편집]


일본의 정치인들 중에서는 보기 드문 방위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두 차례에 걸친 방위청장관 및 방위대신 역임 기간 동안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해서 적어도 제복조, 즉 자위관들 사이에서는 절대적인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대신 사복조로 불리는 방위청/방위성 소속 문관들이나 동료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좌파에게는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추구한다는 평판을, 우파에게는 일본의 방위에 소극적이라는 이율배반적인 평가인데, 이유는 이 사람의 방위정책이 매우 중도적이거나 어떤 면에선 좌파적이면서도, 정작 자위대 해외 파병 등에 적극적이어서 일본의 재무장에 유리한 포지션을 확보해 온 것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또한 이 문제를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문예춘추와 같은 잡지에 수시로 기고했고, 만화가들과 손을 잡고 방위 문제를 다루는 만화책을 출간한 적도 있다. 이래저래 방위 전문가로서 일본 국민들에게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

또한 고무라 마사히코의 뒤를 이은 방위대신 재직기간 중에는 자위대와 국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홍보에 특히 관심이 많아, 본래 자위대가 그리 선호하지 않았던 자위대의 영화 촬영 협조 명령을 자주 발령했다. 특히 자위대는 영화에서 자위대 항공기가 추락하거나 자위관이 죽는 장면이 나올 경우, 또는 자위대가 우익적으로 비칠 우려가 있는 부분이 작중에 있을 경우 절대 영화촬영에 협조하지 않거나 심지어 조직적으로 영화 촬영을 방해한 전력이 많은데, 이시바가 재직한 기간 동안에는 억지로라도 협력하게 만들었다. 이시바의 재직기간 중 만들어진 대표적인 자위대 지원 영화가 바로 '전국자위대 1549'이다.

정작 이 사람이 물러난 뒤 만들어진 TV판 전국자위대 세키가하라의 전투 편은 자위대로부터 협력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볼 때 전국자위대에 대한 자위대의 시각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라고 판단된다. 실제로 1979년작 때는 아예 대놓고 방해를 한 나머지, 모든 피복과 총기, 심지어 전차 같은 중장비까지 영화사에서 자체 조달, 개조해서 영화를 촬영했고, 이때 만들어진 소품은 훗날 자위대 협조를 받지 못하는 자위대 등장 영화를 찍을 때 아주 잘 활용됐다.


4. 정치 성향 및 활동[편집]


자민당 내에서 온건파에 가깝다고 평가받는다. 물론 이시바도 기본적으로는 우파이고, 특히 안보정책 면에서는 일본 주류 우익들의 주장과 큰 차이가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비록 조건은 달았지만 일본의 보통국가화에 찬성하는 편이고, 일본은 그 실력만큼 국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논지로 자위대 해외 파병에도 적극적이었다. 또한 국민의 국방 직접 참여가 국민의 방위 의식을 고취한다는 점에서 징병제 같은 제도의 가치를 옹호하는 언행도 제법 했다. 일본도 해병대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유사시 재외 일본인을 구출하기 위해 자위대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발언도 했다. 경제에 있어서는 경제 성장보다는 악화된 재정 상태를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보이며 소비세 인상에 적극 찬성하고 있다. 또한 극우 국수주의 단체인 일본회의 소속이다. 일본회의는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여러 신뢰도 높은 인용을 통해 극보수주의, 국수주의, 반동주의 단체로 평가하고 있으며# 심지어 우익적 서술이 강하다고 평가받는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도 극우로 분류한다.#

또 다른 현실주의자의 면모는 상술했던 '보통국가화의 조건'이라는 것이 한국, 중국, 러시아, 아세안, 미국 등 주변국들의 동의를 반드시 얻어야 하며 지금의 상태로는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자위대 해외 파병은 어디까지나 사람들을 도우러 가는 것이지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니며, 싸움을 도우러 가는 것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수시로 해 왔다. 징병제 문제에서도 "정치적 가치는 확실히 있으나, 과연 하이테크 전쟁인 현대전에서 가치가 있을지 모르겠다. 더구나 일본의 방위는 전수방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특성상 하이테크로서 불리한 점을 극복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는 결국 징병제보다는 지금의 모병제가 더욱 효과적이다"라는 견해를 확실히 밝힌 상태이다.

위에 언급되었듯 주변국들과의 우호관계가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우익적 견해를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확실히 표방하고 있다. 중의원 시기에는 "북한을 비난하기 전에 먼저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김일성 사망 당시 조문을 가기도 했을 정도다. 게다가 "태평양 전쟁은 침략 전쟁이며 대동아 공영권은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다!"라고 TV 프로그램에 출현하여 공개발언을 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아소 다로와 협력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자민당 내 강경파 세력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물은 아니다. 좋게 봐주자면 중도우파 정치인으로서 강경파와의 협력에도 부정적이지 않은 정도. 다만 당내 강경파의 상징으로 꼽히는 아베 신조와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사이가 안 좋아졌다. 오죽하면 아베에 대항하는 자신의 파벌을 따로 만들었다. 아베의 개헌 시도에 대해서도 "허무맹랑한 소리"라며 반대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심지어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한국이 납득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했을 정도다. 오늘날 자민당에서 비주류가 되어 영향력이 축소된 보수본류의 대표적인 인물이라 보면 된다.

2012년에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놓고 중국과 갈등이 심해지자 자위대에 해병대를 창설하자고 주장했고, 실제로 육상자위대 산하에 해병대로서의 기능을 하는 수륙기동단이 창설되었다.

2019년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선언에 대해서는 일본이 전쟁 책임을 정면으로 마주 보지 않는 것이 문제의 근본이라며 지적했다.#

2012년 9월에는 자민당 총재 후보로 나서서 여론조사 1위를 차지하면서 총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었다. 실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는 1위를 차지했으나 2차 결선투표에서는 아베 신조 전 총리에게 박빙으로 패배하였다. 하지만 간신히 승리한 아베 신조가 당내 화합을 위해서 이시바 시게루를 간사장으로 기용하였다. 간사장은 한국으로 따지면 원내대표 정도의 위치로 보통 당 대표로 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력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그도 아베 이후 차기를 노릴 수 있는 유력한 총리감으로 꼽혔으나, 상술했듯 2010년대 중반 이후 아베와 사이가 급격히 나빠져 대립하고 있다.

2018년 3월, 가라앉을 줄 알았던 모리토모 학교 비리 사건이 아사히 신문 보도로 재점화되면서 아베 신조 총리가 코너에 몰리게 되자 이시바가 차기 총리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3월 13일 발표된 산케이 신문 여론조사에서 차기총리 적합 설문에 이시바(28.6%)는 아베(30.0%)와 불과 1.4%포인트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이렇듯 국민적인 인기는 상당하지만, 자민당 내의 지지 세력이 미약해 2018년 9월에 열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실제로 당선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본인의 계파와 소수계파인 이시하라파를 합쳐도 호소다+아소+기시다의 과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시바는 당내 세번째 계파인 누카가파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었는데...

2018년 4월 누카가파의 수장에 이시바와 가까운 관계로 알려진 다케시타 와타루 자민당 총무회장이 선출되고 다케시타파로 간판을 바꾸면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5월 27일 다케시타 총무회장이 '반년 전이라면 아베 총리의 총재 3연임이 확실하다는 분위기였지만, 나중에는 '좀 기다려 보자'는 분위기가 됐다' 라며 아베 총리에 대한 지지를 유보했다. 이어 사학스캔들에 따른 아베 내각 지지율 급락을 언급하며 2019년 여름 일본 참의원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인물을 당 총재로 뽑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당 내 유력 계파 중 하나인 다케시타파의 수장이 공개적으로 총리의 연임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학스캔들과 내각의 지지율 급락을 언급했다는 점은 이시바 시게루에게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다케시타파가 자율투표 방침을 정하고 파벌 내 중의원 다수가 아베 신조를 지지하는 것으로 전망은 더 어두워지고 있다.

2018년 9월 20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 아베 신조한테 참패하였다. 아베는 국회의원 405명 중 329표, 지방당원 405표 중 223표를 차지하였다. 이시바는 국회의원 73표, 지방당원 181표에 그쳤다. 이시바가 상대적으로 우위일 것이라 예상되던 지방당원 투표에서도 이시바가 패배하면서 격차는 68% vs 32%로 벌어졌다. 다만 아베에게 크게 패하기는 했지만 이시바 진영은 총재 선거 결과에 어느 정도 만족하는 분위기이다. 이시바 진영은 초기에는 압도적인 열세가 예상되는 가운데 차기 총재 선거에 다시금 도전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200표 이상 득표를 목표로 했었다. 한 측근은 기자들에게 '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말했다. 당초 아베는 지방 당원 득표도 70% 이상 가져가는 것을 목표로 했었으나 이시바가 44%나 되는 득표를 함으로써 무산된 상황이다. 이런 이시바의 선전에 대해 일부 일본 언론들은 아베 1강이라는 일방적인 국정 운영에 피로감이 드러났다고 평했다. 특히 아사히 신문 같은 경우 '무너진 압승'이라고 혹평한 상황. 원래 아사히 신문이 모리토모 비리 사건을 통한 공격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에서 알 수 있듯 아베와 사이가 많이 안 좋다. 아베의 독재적인 행보가 마음에 안 드는 상황에서 언론탄압까지 기획하는 태도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이에 관해 정치 저널리스트인 이즈미 히로시는 이 선거 결과는 아베 진영의 압승으로 보이지만 실은 패배에 가깝다고 평했다. 그가 분석하기로는 계속되는 국정선거 압승으로 아베의 3선이 확정된 가운데 아베 진영에서 원한건 이시바 진영의 차기 대권의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압력을 가해서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을 회유하는데 성공했다. 심지어 이시바 파 소속인 사이토 겐 농림수산대신에게까지 '당신 내각에 있으니까, 이시바 지지할거면 사임해라'라고까지 한 상황이었다.

아베는 이런 폭로에 사이토에게 그런 말 한 사람은 없다고 강하게 부정했으나, 총재 선거가 끝나고 나서 바로 사이토 겐을 경질했다. 이건 그냥 알아서 찌질함을 인정한 셈이며, 아베의 독재적인 행보로 인해 4명 카레먹튀 같은 소동이 벌어지는 등 아베의 문제점이 점점 드러나는 상황이다.

그는 아베 진영의 진정한 승리 조건인 트리플 스코어를 달성하지 못했으므로 아베 1강이라는 상황에 의문부호를 띄운 것과 이시바의 차기 당권 가능성이 열려 있는 이겨도 이긴 상황이 아니라고 평했다. 아베는 이번 선거를 압도적으로 이기기 위해서 온갖 꼼수를 다 부린 상황이었다. 앞서 언급된 국회의원 대상으로 한 압력 외에도 홋카이도 지진, 러시아 방문 등으로 이시바와의 토론을 꽤나 회피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생각보다는 격차가 크지 않았으니 입맛이 쓸 상황이었다.

이런 정황을 감안해 보면 이시바는 이번 총재 선거를 이기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차기 총재 선거를 위한 밑바탕을 위해 나왔고, 그게 실패하지는 않았다고 여겨진다.

2019년 2월 10일에 있었던 자민당대회에서 아베는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한 것을 말하며 '(그 때의 일로)악몽과 같은 민주당 정권이 탄생했습니다'는 말로 당시 민주당 정권을 비판하며 선거 승리 의지를 다졌는데, 이 발언에 대해 이시바는 과거에 끝났던 정권을 끌어내서 그 정권보다는 나았다는 걸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말로 아베를 비판했다. 이시바는 2018년 총재 선거 전까지는 아베와는 선명한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피해왔는데, 선거 후에는 자신감을 얻은 탓인지 아베와의 대립을 피하지 않으며 강력하게 맞섰다.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계파들의 의원들이 낙선되면서 다시 급부상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한국과 관련된 것 때문에 다시 자민당 내에서 팽당했고 9월에 아베 신조 2기 4차 개조 내각에서 시게루 계열 의원들이 완전히 쫒겨났다.

벚꽃 스캔들에서 아베 총리가 각종 의혹에 관해 솔직하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아베 총리가 추진한 검찰 정년 연장 법안에 대해서는 표결 강행 반대하였다.# 또, 국민 이해가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도박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구로카와 히로무(黑川弘務) 도쿄 고등검찰청 검사장 사임도 당연하다고 발언했다.#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요시다 히로시(吉田博美) 전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의 지역구였던 나가노현을 방문해 요시다의 옛 지지자들을 만났다.# 총선을 앞두고 본인의 지지세를 확대하기 위한 전술로 보인다.

그리고 아베가 총리직에서 사임하자 총재 선거에 나갈 생각이 있다고 하였다.# 다만 공식적으로 출마 신청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전 당원을 포함한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 이유는 이시바의 세력과 관계가 있다. 이시바는 인지도가 높은 대신 자민당내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의원은 소수이기 때문에, 당원까지 포함한 선거를 가져야 이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아베 정권과의 차별화를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처음에는 지지율 1위를 기록했지만, 예상대로 당내 의원들의 지지는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에게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다. 이때문인지 결국 9월초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 1위 자리도 내주고 말았다. 1년 짜리 보궐선거라 간이 선거 방식으로 치러져 일반 당원보다는 현역 의원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 중요한 선거가 되어버린지라 당선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8일 열린 정견 발표회에서는 "올바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그레이트 리셋, 이 나라의 설계도를 다시 쓰겠다"라고 아베 정권과의 차별화 및 개혁 의지를 다시 강조했다.# 특히, 장점인 당 지방 조직의 지지를 굳건히 하기 위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당내 7대 파벌 중 5대 파벌과 무파벌 의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스가 장관의 독주가 확실해지면서 사실상 기시다 후미오 정책조사회장과의 2위 싸움이 됐는데 NHK 자체 분석에 따르면 도도부현 지부 연합회 대표 투표에서는 기시다에 앞서나, 국회의원 투표에서 기시다에 크게 밀려 3위가 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9월 14일, 투개표 전 발표된 NHK 종합조사에 따르면 이시바 전 간사장이 도도부현 지부 연합회 대표 투표에서 141표 중 42표(29.79%)를 획득하는데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개표 결과 총 68표를 얻으며 세 후보 중 제일 낮게 득표하였다. 지방표에선 기시다 후보보다 훨씬 많이 득표했지만 국회의원표에서 기시다 후보에 압도적으로 밀려 결국 기시다 후보보다 21표 낮은 68표를 얻었다.

스가 요시히데 내각 하의 학술회의 임명 논란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0월 22일. 당대표 선거 진 것에 대한 책임으로 계파 수장에서 물러났다.#

한편 스가 요시히데와 아베 신조의 정치적 대립을 노리고 다시 정치인으로서 재기를 꿈꾸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 바 있다. 특히 스가의 지지율이 3개월 만에 큰 폭으로 추락하면서 이런 전망이 커지고 있다.#

다만, 여론조사상 여전히 후보로 들고 있긴 하나 차기 총리 주자 1위는 고노 다로 행정개혁대신이기 때문에 과연 이시바의 뜻대로 될 지는 알 수 없다. 의원 내각제는 대통령제와 달리 총리 출마를 위해 당 내의 지지가 필수적인데, 당 내에 아군이 너무 없다(...). 거기다 코로나19 상황 대처를 위해 스가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의미에서 총재 선거에는 불출마하는 쪽으로 무게추가 기운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2021년 9월 3일, 스가 총리가 전격적으로 총재 재선 도전을 포기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하지만 당내 지지 기반에 대해서 약한 것이 큰 단점이라 당내 지지기반 문제가 가장 큰 변수가 될듯 싶다. 게다가 이시바 시게루는 9월 6일 본인은 총재 선거에 불출마하는 대신, 고노 다로를 후원하는 쪽으로 고민 중이라고 한다.

2021년 9월 10일 단독 인터뷰에서 총재 선거 출마 여부에 대해 "출마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연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일단은 당내 동향을 살피고, 선거 일정 고시일의 하루 전날인 9월 16일까지 출마 여부에 대해 최종적인 결단을 내리겠다"라고 대답하였다. 지난 총재 선거에서 3위로 패배하였고, 그 내상으로 인한 후유증이 출마를 망설이고 있는 원인으로 보인다.

2021년 9월 14일 결국 고노 다로를 지원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고, 다음날인 9월 15일에 확실하게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이미 그 이전에 이시바와 친분이 있는 이토 다쓰야, 다이라 마사아키 의원 등이 고노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

고노 다로와 손을 잡아 자기 파벌 의원의 내각 진출의 길을 트고, 자신은 간사장 등의 자민당 간부직을 노려 고노 이후를 노리기 위함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고노 다로가 결선 투표 끝에 기시다 후미오에게 패하면서 다시 한번 꿈이 좌절되었다. 오히려 선거 이후 고노 다로가 제2의 이시바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농담이 나오는 상황. 실제로 본인의 파벌인 수월회 탈퇴자들이 늘어나면서 이시바의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 결국, 수월회는 2021년 12월 2일에 최종적으로 의원 그룹으로 이행하기로 결정되어 더 이상 파벌이 아니게 되었다.

2021년 10월 31일 치러진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이시바 본인은 당선됐지만, 자민당 내에서 어떠한 역할도 부여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자민당에서 이시바 축출이 가시화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49대 중의원 개원 초반에 이시바가 당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다면, 이시바한테 남는 선택지가 자민당 탈당 또는 정계 완전 은퇴 두 개밖에 남지 않는다.

그런데 2022년 7월 자신의 강력한 정적이었던 아베 신조가 참의원 선거 유세 도중 총탄에 피격되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다시금 정치인으로서 부활할 기회가 생겼다. 이미 3A 중 아마리 아키라 전 간사장은 지역구 낙선으로 입지가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아베 전 총리까지 사망하면서 여든이 넘은 아소 다로 부총재만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특히 본인과 손잡았다가 3A와 기시다 총리로부터 경원시당했던 고노 다로 전 방위상이 2022년 8월 10일 개각을 통해 재입각하는데 성공하면서 재기의 활로를 모색해볼 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아베 신조 피살 사건으로 점화된 통일교의 정치 개입 의혹의 당사자 중 한 명으로 지목당하고 있는지라 사실이 아니라면 이에 대한 해명이 먼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가 아들 문제와 마이넘버를 둘러싼 문제로 기시다 총리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2023년 하반기를 전후하여 다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2023년 12월에 불거진 아베파 비자금 문제에 다른 파벌에서도 나오면 자민당 정권은 무너지며, 기시다 총리가 내년 봄에 사퇴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4.1. 대한민국 관련[편집]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와 유사한 의견을 밝히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전쟁범죄중 하나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의 납득을 얻을 때까지 사죄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2019년 한일 무역 분쟁으로 지소미아가 종료될 위기에 처하자 일본이 전쟁 책임에 대해 제대로 마주하지 않아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였다며 일본에 책임을 돌렸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한일관계에 대해 배울 필요가 있다고 블로그를 통해 주장하였다.#.

이러한 배움 덕인지 2019년 10월 한 강연회에서는 창씨개명을 언급하며 한국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 만약 오늘부터 "너는 스미스다" 라고 들으면 기분이 어떻겠냐고... 한일관계에 대해 역지사지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였다. # 2019년 하반기에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부를 하며 보냈다고 한다.#

다만 한국에 대해 무조건 우호적, 또는 친한파라고 결론 내리기에는 애매모호한 면모가 있다. 이시바가 과거사 문제, 한국 관련 공부하며 읽었다고 한 책이 바로 반일종족주의와 한국의 비극이라는 책이다. 반일종족주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 책이 한일 양국에서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만큼 유명한 책이긴 하나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서술과 관련해 논란이 있고 한국에서도 제법 시끌시끌했었다. # 또 이 기사에 따르면 이시바는 징용공(강제징용)은 전쟁 말기까지 자발적 취업이었으며 월급도 높았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일본이 일제 강점기에 조선에 인프라를 건설해주고, 조선인을 교육해줬다는 것이 사실이어도 병합이 정당화 돼서는 안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즉, 강제병합과 식민지배에 이른 과정은 정당하지 않았으나 결과론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은 맞다는 것. 한술 더떠 한국의 (역사적) 통설에 오류가 많으며 반일종족주의의 저자가 한국에서 박해받은 동시에 (저자가) 한국을 걱정한다고 말했다. 타 극우 인사와 다르게 반성을 언급하지만, 잘못된 역사적 배경을 짚어 공부한 부분이 많아 보이며 역사에 대한 인식은 다른 극우적 인사와 비슷한 지식을 갖고 있다. 이 부분은 여러 교류를 통해 설득할 방향에 따라 좌지우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일본회의 소속이며 향후 행보에 우익적으로 모습을 바꿀 가능성도 적지 않다.

과거사 문제와 별개로 독도를 비롯한 영토 문제에 대해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사실 이는 일본공산당과 같은 일부 좌파 성향의 정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본 정당에게 해당되는 말이긴 하지만. 2011년 8월 1일,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며 울릉도를 시찰하겠다고 온 신도 요시타카를 포함한 자민당 국회의원 4명이 '영토에 관한 특명위원회' 소속이었는데, 이때 이 위원회의 위원장이 바로 이시바였다고 한다. 이때 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한국 정부가 독도에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 적극 반대하기도 하는 등 # 영토 문제에 있어서는 타협점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강제징용에 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과 마찬가지로 청구권이 한일기본조약으로 종결되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점 때문에 만약 이시바가 일본 총리가 된다고 해도 한일관계가 순탄하게 풀려나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아베 신조의 경우 2006년 총리로 있을 당시에 과거사 사죄 발언 등 친한 성향을 띄우다가 2012년대 일본의 우경화에 휩쓸리면서 혐한 성향의 정치인으로 전환된 케이스가 있듯이 한 성향을 영원히 지닌다는 보장은 절대로 없다. 다만, 아베 신조가 2006년에 보여준 친한 성향도 그저 단순한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의회에선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사실을 부정한 바 있다.

2020년 8월 25일 방송에서는 "일본은 한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습니다.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라고 발언하였다. 영상

여담으로 2008년에 손석희가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당시 이시바는 사전에 정해진 질문만 받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는데,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질문자인 손석희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고 대답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이에 손석희는 부아가 치밀어 준비되지 않은 질문들을 마구 던져 나름의 복수를 했다고 회고했다. 그래도 마지막 손석희의 질문 내용엔 웃으며 답변함으로써 서로 마무리 자체는 깔끔하게 했다. 하지만 인터뷰 중 발생한 마찰은 기본적으로 일본인 사이의 합리적 보수주의자들 중에서도 한국에 대해 어느정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적다는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그러한 부분이다. 이 인터뷰가 계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시바는 이후 아예 한국 언론과의 단독 인터뷰를 가지지 않았다.

2021년 11월,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일관계는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대로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며 문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정상회담은 필요하고 정상회담 과정에서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본인은 한국 역사를 깊이 공부하고, 한국인들의 사고 근간에 무엇이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일제강점기 시기에 일본이 대한제국 궁전이 있는 곳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해 한국 국민의 자존심을 무너뜨렸고, 독립 국가였던 대한제국을 합병해 국가를 빼앗았다고 발언했다. 그는 또 이런 말을 하면 일본 국내에서 강한 비판이 나온다고 하면서도 자신은 양국이 양호한 관계가 되는 게 지역 평화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용기 있게 말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용기 있는 사람이 일본에도, 한국에도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5. 부정적인 당내 평가[편집]


한국에서는 혐한 성향을 보이는 아베 신조와 대비해 이시바에 대한 비교적 긍정적인 보도가 주류를 이루며, 일본 내에서도 비교적 높은 인지도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민당에서 총재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자민당 내의 파벌은 여러 개로 갈려 있고 이들 파벌은 각자 정치적 스탠스가 다르며 사안에 따라 대립하기도 협력하기도 하는, 어찌 보면 정당 내의 정당의 특성을 보인다. 일본 총리가 되기 위해선 의회에서 의원들의 표를 받아야 하고 이 투표는 각자 자기 당의 총재에게 투표하는 것이므로 총리가 되려면 최대당의 총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민당 총재 선거의 선거권은 당원들(지방 지부 대표들)의 표와 소속 의원들의 표가 1대 1 비율로 분배되어 있다. 그러므로 총리가 되기 위해선 일반 국민의 지지와 별개로 당내 인망 및 장악력이 중요한데 이시바는 지방 당원들의 지지는 상당히 받는 편이지만 원내 의원들과의 관계에서 정치력을 전혀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 점은 다음과 같은 같은 당내 정치인들의 그에 대한 평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아소 다로 - "10년간 얘기한 적 없다."
아베 신조 - "회동에 초대해도 안 온다."
고노 다로 - "대화를 나눈 적 없다."
스가 요시히데 - "대신실, 각료실에서의 각의 말고는 대화한 적 없다."
다니가키 사다카즈 - "8년은 대화한 적 없다."
사이토 겐(이시바 최측근) - "인망이 없음을 자각하라."
다이라 마사아키(이시바 최측근) - "파벌 회식 정도는 나와줬으면 좋겠다."
가네코 메구미 - "인사도 안 돌아오는 희귀한 사람"
스기무라 타이조 - "너무 싫어, 인망이 없어."

현재 자민당 내 유력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같은 수월회 파벌 내 인사들에게조차도 붙임성이 전혀 없는 모습을 보이는지라 측근, 정적 할 것 없이 의원들 사이에서 인망이 없다며 까이는 실정이다. 파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자민당에서 한 파벌의 수장이라면 부지런히 회합을 가지면서 내부 결집은 물론 계파의 확대를 위해 노력해야 하나, 정작 당내 사방에서 식사 한 번도 같이 못한다고 까이는 실정이니 계파 확대는 요원한 상황이다. #

결국 수월회 회장직에서 사퇴했다.# 앞으로 총리가 될 가망이 없단걸 본인도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더해 자민당의 지지율 폭락과 요코하마 시장선거에서의 대패를 두고 "스가를 뽑은 자민당 의원들이, 우리 당이 스스로 결자해지해야 한다"며 다가오는 중의원 선거는 스가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한편 자신은 총재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고 천명하여 향후 수 년 간은 총리직에 대한 꿈을 접었다. 좋게 말해 거시적인 책임감이 엿보이나 정작 자기 스스로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하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일단 수월회는 집단관리 체제를 가진다.# 이시바 은퇴 후 수월회의 집단관리체제 영도자이자 대표간사를 맡아오던 든든한 지지자인 가모시타 이치로 의원이 고령으로 인한 차기 중의원 선거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 내부사정도 있는게, 현재 이시바가 우경화된 자민당에선 가장 왼쪽인데다, 아베의 벚꽃 스캔들 재수사천명으로 폭발한 당내 유력 정치인들의 적대감이 자칫 수월회 멤버 개개인에게 번질 것을 우려한 의도적 거리두기라는 평도 있다. 위 사각형 안에 열거된 사람들 중 아베는 당내 극우 계파인 보수방류의 수장이고 아소는 계파 자체는 보수본류지공회에 속하지만 아베와 가까운 사이이며 스가나 다니가키같은 정치인들은 당 내 극우의 눈치를 보는 우파 및 중립 성향의 정치인들이다.

거기다 2021년의 분위기는 그때와 다르게 지난 10년간 아베 정권의 연이은 실정으로 자민당은 큰 타격을 받았고 모두 최근의 코로나 확진자의 전국적인 급증 및 요코하마 시장선거[2]에서의 대패[3]로 알 수 있듯 전국적으로 지지율이 크게 떨어져 식물내각 직전의 상태에 처한 것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쉽게 말해 이시바를 극혐하는 극우의 거물들이 현재는 이전만큼 힘을 못 쓰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비교적 합리적 중도성향으로 당원, 유권자등 대중적 지지도와 충성도가 높은 이시바의 정치적 생명력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이시바가 현재 60대 중반에 총재 선거에서 3번이나 패해 한국인의 시각으로는 정치인생 끝난 사람에 가깝지만 일본은 세계 최장수 국가이자 초고령 사회답게 70대 총리, 80대 중의원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10년을 바라보고 한 발언일 수 있고, 더군다나 2021년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의 바닥을 기는 지지율을 두고 당내 5선 이하 젊은 현직 의원 또는 의원 후보들이 아베나 스가가 간판인 총선은 무조건 진다, 그런 이유로 이번 선거의 간판은 반아베로 가야한다는 이유로 이시바를 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2021년 9월 최신 당원 여론조사에서 이시바가 29%대 지지율로 1위라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때문에 당내에선 거의 왕따에 가까운 인물임에도 오히려 그로 인해 정치적 생명력을 유지하고, 차기 총재 후보로 끊임없이 거명되는 것이다. 애초에 일본 중의원은 의원내각제라는 특유의 폐쇄적인 정치 구조 때문에 자기들끼리만 나눠먹으니까 이시바의 인망이 도마 위에 오르는 거였지, 당원들이나 일본 국민들도 바보가 아닌데 그런 인망없고 정치력 없고 총재가 될 가망없는 사람에게 꾸준히 여론조사 29%대의 지지율을 몰아줄 이유가 없다. 그정도로 당내 이너서클보다는 당원과 일본인들에게는 신용과 지지를 계속 받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전후 사정을 알고 있는 혁신 진영에서는 현재 자민당 내 반 아베 & 친 이시바 성향을 가진 의원들을 이시바 시게루가 총리 되는 거 도와줄 테니까 우리 편으로 넘어오라는 말로 꼬드기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상술했듯이 아베 신조가 사망하면서 그의 총리직 도전에 있어서 장애물이 하나 사라진 셈이 되었으니 총리직 도전이 한층 더 수월해 질 수 있다.

6. 여담[편집]


  • 불교신토, 아님 무종교가 강세인 일본에서 보기 드문 개신교 신자다. 아소 다로가톨릭 가문 출신으로 스스로 종교를 "가톨릭"으로 표기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상당부분 냉담자인 것과 달리 이 사람은 진짜 독실한 개신교도. 일본 국내의 개신교 연합체인 일본 기독교단의 목회자가 친척 중에 다수 있어서 그 영향을 받은 것이며, 본인은 18세 때 세례를 받은 후 지난 40여 년 동안 신앙 생활을 계속해 왔다고 한다. 특히 친척 어른들 중에는 과거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연루되어 투옥된 사람도 다수 존재했다고 한다.

  • 김경진의 전쟁소설 작전명 충무에서 이름이 살짝 바뀌어 일본 총리로 등장했다. 정치적 성향으로 보나 뭘로 보나 이 사람이 모티브임에 틀림없는 캐릭터. 여기서는 상당한 개념인으로 나온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것처럼 잠깐이지만 실제 총리 자리가 가시화되기도 했었다.

  • 2011년 3월 15일, 간 나오토 총리에게 맞서 도쿄전력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그의 장인이 도쿄전력과 거래처이고 그의 딸이 도쿄전력 사원이라는 사실이 <주간문춘>을 통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 2017년 7월 25일, 산케이 신문이 총리로 적합한 인물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1위로 뽑혔다. 아베가 모리토모 학원과 가케 학원 사건으로 지지율이 점점 떨어지면서 반사효과를 본 것으로 보인다. 아베가 사임 선언을 하고 이후 스가가 총리 출마 선언을 하며 당내 의원 다수가 스가를 지지하기로 결정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랫동안 지켰던 여론조사 1위 자리마저 스가에게 내주고야 말았다.

  • 또한 2019년 11월 30일에 발표된 벚꽃 스캔들과 관련된 추측에 따르면 이 인물을 견제하기 위해 아베 신조가 벚꽃 모임을 이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시바를 지지하고 있는 교토 및 시가현의 자민당 의원들을 벚꽃 모임에 초청하여 이시바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라고 회유한 것이라고 한다.

  • 이시바의 유력한 경쟁자 중 한명인 고이즈미 신지로가 돈세탁 및 불륜 논란으로 인해 차기 총리 유력 후보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현재 아베 총리도 코로나19 대처에 상당히 무능한 능력을 보이고 전례없는 비난을 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시바가 차기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윗 문단에 언급한대로 이시바 시게루의 아킬레스건은 자민당내 포스트 아베 후보군 중에서 당내 지지기반, 특히 중앙정치쪽 기반이 매우 빈약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다수당 총재 자리에 올라서야 하는데, 일본은 대통령제인 한국이나 미국과는 달리 의원내각제라서 총재 경선 투표권을 소속 의원+동수의 지역 대의원들(2020년 기준 394명)만이 가지고 있다. 당헌상 긴급 총재 경선에 들어갈 경우 지역표를 도도부현당 3표로 제한하는 약식 경선이 가능하다. 이시바는 지역 대의원들의 지지도가 높지만 같은 의원들의 지지가 약하다. 파벌이 작고 주류 파벌도 아니지만 아베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반(反)아베 성향 지역 대의원들의 지지를 받아 컸기 때문이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이중에는 한국발 관광불매운동과 고 투 트레블 정책의 강행으로 지방 경제를 파탄낸게 주요 요인이다. 이런 이유로 여전히 아베 총리는 정치적 라이벌로 이시바에게만은 총리직을 넘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주류파벌들과의 연합과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을 설득해 총재 경선 방식을 전당원 투표가 아닌 의원총회를 통해 정하는 식으로 밀어붙여 이시바를 노골적으로 배제했다.

  • 코로나19 와중에 9명과 회식을 가지다가 비판을 받고 사과했다.#


6.1. 오타쿠[편집]


진성 오타쿠다.(...) 일단 방위 문제에서 군사오타쿠, 밀리터리 마니아 소리를 들은 것은 둘째치고, 프라모델 만들기가 취미 중 하나다. 중학교 때 이후로는 완성작이 별로 없다라는 소리를 종종 하지만, 러시아 국방장관이 방문하자 자그마치 1/350 스케일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 항공모함 프라모델을, 놀랍게도 이틀 철야해서 완성 후 선물했다. 이 함선 키트는 예나 지금이나 중국 트럼페터제밖에 없었는데, 모양새는 좋지만 항모 특성상 완성은 대단히 어려운 물건이다. 결코 2일만에 만들 수가 없는 것인데 보통 실력이 아니라고 짐작 가능한 수준. 모형지에 밝힌 자신의 과거 모형 약력에서 마지막으로 만든 것 1/200 야마토(!)임도 밝혔다. 중학생이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일본 모형지 "아머 모델링"에 기고까지 했다. 또한 매년 시즈오카시에서 열리는 모형업체 연합행사인 시즈오카 하비쇼에 자위대 중장비, 특히 전차와 장갑차를 출동시켜 자위대 홍보에 임하도록 지시한 적도 있다. 전에도 인접 후지교도단에서 자위대 장비를 지원하긴 했지만, 보통은 일반차량 정도만 지원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모델러가 일본의 방위에 그나마 관심 많은 계층이라는 거지만, 모델러의 고령화 및 우익화가 지속되는 지금의 일본 모형계 사정상 자위대가 직접 홍보할 이유는 없는데도 그랬다. 이것 때문에 일본 모형계에선 모델러의 피는 못 속인다 라는 소리도 나왔다.

또한 철덕후이기도 하다. 고향과 도쿄를 오갈 때 보통 비행기를 이용하는 다른 의원들과는 달리 철도를 주로 이용하는데, 매번 타는 기차나 노선을 바꿔 가면서 사진을 찍고 티켓을 수집하는 등 철덕후 짓을 자주 했다. 특히 몇몇 노선이 자기가 타보기 전에 편성을 바꾸거나 침대차를 없애는 등의 일이 생길 때마다 대놓고 아쉬워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것도 철도와 아무 상관이 없는 플레이보이 지 인터뷰에서. 철도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같은 철덕인 마에하라 세이지[4]와도 자주 엮여서 버라이어티 방송에도 함께 출연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면모 때문인지, 정치가를 모티프로 한 상품을 많이 내놓는 어느 식완업체에서 이 사람을 소재로 전대물 아이템을 이 사람의 고향이자 지역구인 돗토리현 한정판으로 내놓기도 했다. 이른바 "희망전대 ISHIDAM".

덤으로 국회 대정부 질문 중 어느 의원이 외계인의 지구침략 시 자위대의 포지션에 대해 질문하자 답변하기를 다양한 위협에 대처할 준비가 필요하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그저 불성실한 질문에도 성실히 대답하는 좋은 모습이랄 수도 있지만, 앞의 오타쿠적 측면들을 볼 때 어쩌면 진심으로 외계인 위협에 대처 중일지도 모른다는 소리가 저 문답이 방송을 탄 후 일본 오타쿠들 사이에서 돌았다.(...) 고지라나 가메라는 재해로 분류해야 되는 것 아니냐 받아쳤다고도 한다.

2016년에는 영화 신 고지라 개봉에 맞춰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일본 정부의 여러 대책들을 실제 방위상 역임 경험을 바탕으로 분석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7.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1986 - 1993
정계 입문

[[무소속|
무소속
]]

1993 - 1994
탈당
자유개혁연합
1994
창당


1994
합당


1994 - 1996
합당

[[무소속|
무소속
]]

1996 - 1997
탈당[5]


1997 -
복당


8.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선거구
정당
득표수(득표율)
당락
비고
1986
제3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돗토리현 전현구


56,534 (14.82%)
당선 (4위)
초선
1990
제3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82,169 (21.54%)
당선 (1위)
재선
1993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무소속|
무소속
]]

137,025 (40.37%)
3선[6]
1996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돗토리 1구
94,147 (62.47%)
4선
2000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91,163 (49.06%)
5선
2003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14,283 (71.60%)
6선
2005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06,805 (59.25%)
7선
2009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18,121 (61.97%)
8선
2012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24,746 (84.50%)
9선
2014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93,105 (80.27%)
10선
2017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06,425 (83.63%)
11선
2021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105,441 (84.07%)
12선


9. 둘러보기[편집]





파일:자유민주당(일본) 흰색 로고.svg
자유민주당
제48대 중의원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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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속 정당과 국회 내 소속 회파(会派)는 다를 수 있음
가네다 가쓰토시
가네코 마스오
가네코 슌페이
가네코 야스시
가도 히로후미
가도야마 히로아키
가메오카 요시타미
가모시타 이치로
가미야마 사이치
가미카와 요코
가미타니 노보루
가쓰마타 다카아키
가와무라 다케오
가와사키 지로
가지야마 히로시
가토 가쓰노부
가토 간지
간다 겐지
간다 유타카
간케 이치로
고가 아쓰시
고노 다로
고무라 마사히로
고바야시 다카유키
고바야시 후미아키
고이즈미 류지
고이즈미 신지로
고지마 도시후미
고쿠바 고노스케
고테라 히로오
고토 시게유키
고토다 마사즈미
구니미쓰 아야노
구도 쇼조
구마다 히로미치
기무라 데쓰야
기무라 야요이
기무라 지로
기시 노부오
기시다 후미오
기우치 미노루
기카와다 히토시
기타무라 세이고
기하라 미노루
기하라 세이지
나카사카 야스마사
나가시마 아키히사
나가오 다카시
나가오카 게이코
나카네 가즈유키
나카무라 히로유키
나카소네 야스타카
나카야마 노리히로
나카야마 야스히데
나카타니 겐
나카타니 신이치
네모토 다쿠미
네모토 유키노리
노나카 아쓰시
노다 다케시
노다 세이코
누카가 후쿠시로
니시다 쇼지
니시메 고사부로
니시무라 아키히로
니시무라 야스토시
니와 히데키
니카이 도시히로
다나카 가즈노리
다나카 류세이
다나카 히데유키
다나하시 야스후미
다니 고이치
다니가와 도무
다니가와 야이치
다도코로 요시노리
다무라 노리히사
다바타 히로아키
다이라 마사아키
다치바나 게이치로
다카기 게이
다카기 쓰요시
다카이치 사나에
다카토리 슈이치
다카하시 히나코
다케다 료타
다케모토 나오카즈
다케무라 노부히데
다케베 아라타
다케시타 와타루
다케이 슌스케
데바타 미노루
도가시 히로유키
도미오카 쓰토무
도이 도루
도카사키 나오미
도카이 키사부로
마쓰노 히로카즈
마쓰모토 다케아키
마쓰모토 요헤이
마쓰모토 후미아키
마쓰시마 미도리
마키시마 카렌
마키하라 히데키
모리 에이스케
모리야마 마사히토
모리야마 히로시
모테기 도시미쓰
무네키요 고이치
무라이 히데키
무라카미 세이이치로
무타이 슌스케
무토 요지
미노리카와 노부히데
미쓰바야시 히로미
미쓰야 노리오
미야시타 이치로
미야우치 히데키
미야자와 히로유키
미야자키 마사히사
미야지 다쿠마
미야코시 미쓰히로
미타니 히데히로
미하라 아키히코
사사가와 히로요시
사사키 하지메
사이토 겐
사이토 히로아키
사카모토 데쓰시
사카이 마나부
사쿠라다 요시타카
사토 쓰토무
사토 아키라
사토 아키오
사토 유카리
세키 요시히로
소노우라 겐타로
소바야시 다카유키
스가 요시히데
스기타 미오
스즈키 게이스케
스즈키 노리카즈
스즈키 다카코
스즈키 슌이치
스즈키 준지
스즈키 하야토
시게모토 모토루
시모무라 하쿠분
시바야마 마사히코
시오노야 류
시오자키 야스히사
신도 요시타카
신타니 마사요시
쓰시마 준
쓰지 기요토
쓰치야 시나코
아나미 요이치
아마리 아키라
아베 도시코
아베 신조
아소 다로
아오야마 슈헤이
아이사와 이치로
아제모토 쇼고
아카마 지로
아카자와 료세이
아키모토 마사토시
아키바 겐야
안도 다카오
안도 히로시
야기 데쓰야
야나 가즈오
야마구치 다이메이
야마구치 쓰요시
야마기와 다이시로
야마다 겐지
야마다 미키
야마모토 고이치
야마모토 고조
야마모토 다쿠
야마모토 도모히로
야마모토 유지
야마시타 다카시
야마구치 슌이치
에사키 데쓰마
에토 다쿠
에토 세이시로
에토 아키노리
엔도 도시아키
오구라 마사노부
오구시 마사키
오노 겐타로
오노데라 이쓰노리
오니시 히데오
오니시 히로유키
오니키 마코토
오다와라 기요시
오미 아사코
오부치 유코
오시마 다다모리
오시카와 다케루
오쓰카 다쿠
오오카 도시타카
오자토 야스히로
오치 다카오
오카시타 쇼헤이
오코노기 하치로
오쿠노 신스케
오쿠마 가즈히데
와다 요시아키
와시오 에이이치로
와카미야 겐지
와타나베 고이치
와타나베 히로미치
요시노 마사요시
요시이에 히로유키
우에노 겐이치로
우에노 히로시
우에스기 겐타로
이나다 도모미
이노 도시로
이노우에 다카히로
이노우에 신지
이데 요세이
이마무라 마사히로
이마에다 소이치로
이바야시 다쓰노리
이부키 분메이
이시다 마사토시
이시바 시게루
이시카와 아키마사
이시하라 노부테루
이시하라 히로타카
이와야 다케시
이와타 가즈치카
이즈미다 히로히코
이케다 미치타카
이케다 요시타카
이토 다다히코
이토 다쓰야
이토 신타로
이토 요시타카
가토 아유코
테라다 미노루
하기우다 고이치
하나시 야스히로
하라다 겐지
하라다 요시아키
하마다 야스카즈
하세 히로시
하시모토 가쿠
하야시 모토오
하토야마 지로
햐쿠타케 기미치카
호리이 마나부
호리우치 노리코
호소카 야스시
호소노 고시
호소다 겐이치
호소다 히로유키
호시노 쓰요시
혼다 다로
후나다 하지메
후나하시 도시미쓰
후루야 게이지
후루카와 야스시
후루카와 요시히사
후루타 게이지
후지마루 사토시
후지와라 다카시
후지이 히사유키
후쿠다 다쓰오
후쿠야마 마모루
후쿠이 데루
후쿠자와 요이치
히라구치 히로시
히라사와 가쓰에이
히라이 다쿠야






주고쿠 지방 국회의원


[ 중의원 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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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 이시바 지로는 1908년생으로 이시바 시게루와 나이차가 50살 가까이 났다. 그래서 요절은 아니었다.[2] 한국으로 치면 부산광역시장이나 경기도지사급의 위상을 지닌 선거라 할 수 있다.[3] 자민당 추천 후보이자 요코하마가 지역구인 스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입은 오코노기 후보가 패하고 입헌민주당의 추천을 받은 40대의 젊은 전직 의대 교수가 당선.[4] 단, 이시바는 타는 걸 즐기는 노리테츠(乗り鉄)이지만, 마에하라는 SL과 철도 사진 분야가 전문인 토리테츠(撮り鉄)이다.[5] 오자와 이치로의 독단적 당 운영에 반발해 탈당했다.[6]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의 마지막 중선거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