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사와 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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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54년 6월 10일, 오카야마현 미쓰군 미쓰정(현 오카야마시 키타구)에서 태어났다. 아이사와 집안은 대대로 오카야마에서 정치를 해 온 정치인 가문으로, 조부 아이사와 간은 운수정무차관과 9선 중의원 의원을, 아버지 아이사와 히데오도 3선 중의원 의원을 역임했다.
1979년 게이오기주쿠대학 공학부(현 이공학부) 관리공학과[3] 를 졸업하고 1980년, 정치학원인 마쓰시타 정경숙에 1기생으로 입학해 1985년 졸업했다.
1986년 제38회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 공천으로 구 오카야마 1구에 출마,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다.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으로는 첫 국회의원 당선자였다.[4]
1992년 미야자와 개조내각에서 통상산업정무차관으로 첫 입각했다. 1997년에는 중의원 외무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2003년 제1차 고이즈미 제2차 개조내각에서 외무부대신으로 입각해 제3차 고이즈미 내각 때까지 직책을 맡았다.
2005년에 자민당 간사장대리로 취임하고, 2006년 중의원 의원운영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또한 2007년에는 중의원 예산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했다.
2010년 9월에 제51대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에 취임하고, 다음 해 위원장을 퇴임해 제2대 자민당 총재 특별보좌관이 되어 다니가키 사다카즈를 보좌했다.
2012년 9월, 다니가키의 총재 퇴임으로 동시에 퇴임, 같은 해 10월 굉지회를 탈퇴해 유린회에 참가했다.
2013년에 두번째로 중의원 의원운영위원장에 취임, 2014년에는 중의원 국가기본정책위원회 위원장에, 2015년에는 자민당 1억총활약추진본부 본부장에 취임했다. 2016년에는 중의원 정치윤리심사회장에 취임했다.
정계 입문도 빨랐고 선수도 높은 편이지만 단 한번도 대신직으로 입각하지 못하였고[5] 정치의 중심에 선 적이 없다. 중의원 의원운영위원장과 예산위원장이 요직이긴 하나 그냥 정치를 오래 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경향이 강한 자리다.[6] 전반적으로 내각에 중용될 정도의 능력은 없는 직업 정치인이다.
3. 기타[편집]
4. 소속 정당[편집]
5. 선거 기록[편집]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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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88~1982, 운수정무차관, 9선 중의원 의원 역임.[2] 1926~2016, 3선 중의원 의원 역임.[3] 산업공학[4] 이후 1993년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야 정경숙 출신이 대거 국회에 입성한다. 노다 요시히코와 다카이치 사나에, 겐바 고이치로, 이토 다쓰야 등.[5] 현재 각료 미경험자 중 최다선인 12선이다. 게다가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대신직을 지내지 못해 각료 취임이 아이사와 가문의 비원이라고까지 말해질 정도. 참고로 정경숙 출신 최초 입각자는 이토 다쓰야 의원인데, 고이즈미 내각에서 중의원 4선만에 금융담당대신으로 입각했다.[6] 내각과 당에서 중용되는 의원들은 중의원 위원장을 여러 차례 지낼 겨를이 없다. 딱 4-5선때 한 번만 지내고 이후로는 대신과 당 요직을 오간다. 그렇기에 일반적 상임위원장보다 높은 선수의 의원들이 맡는 상임위원장인 예산위원장, 징벌위원장 등의 보직은 자연스레 선수만 높고 현재 한가한 의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아이사와 의원은 내각에 입각하지 못하고 중의원 상임위원장만 6번을 지냈다.[7] 일본의 마지막 중선거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