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이란 시위/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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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2년
1.1. 9월
1.1.1. 18일
1.1.2. 19일
1.1.3. 20일
1.1.4.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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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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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4일
2.2.2. 5일
2.2.3. 14일
2.2.4. 17일
2.2.5. 28일
2.3. 3월
2.3.1. 12일
2.3.2. 17일


1. 2022년[편집]



1.1. 9월[편집]



1.1.1. 18일[편집]


  • 쿠르디스탄 지역의 사난다즈 시를 중심으로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이란 언론 Fars News에 따르면 사난다즈 시 아자디 광장에 시위대 500명이 운집했다. 마흐사 아미니가 태어난 곳이며 빈소가 있었던 사케즈 지역에서도 시위대 1000명 이상이 경찰과 대치했으며 3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

  • 이란 경찰은 마흐사 아미니가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며 고문이나 학대는 없었다고 밝혔다. 내무부는 마흐사 아미니가 5살에 뇌종양 수술을 받았고 간질과 당뇨를 앓고 있었다고 밝혔지만 마사 아미니의 가족들은 마흐사 아미니에게 심장병 병력이 없었고 고문을 당하여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마흐사 아미니의 시신에서는 물리적 충격으로 추정되는 귀 부분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 목격자들은 아미니가 호송 차량 안에서도 구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테헤란 경찰서장 호세인 라미히는 이를 부인했다. #

  •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아미니의 유족과의 통화에서 진실 규명을 약속하고 "마치 내 딸에게 일어난 일처럼 느껴진다"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고 이란 정부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 현재 오리지널 사이트 접속 불가.


1.1.2. 19일[편집]


  • 이란 사법부가 마흐사 아미니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19일 보도에 따르면 테헤란의 도덕경찰청 장관 아흐메드 미르자에이 대령이 현재 정직 처분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

파일:이란 시위 1.jpg
파일:이란 시위 4.png
이란 내에서 호응이 큰 시위 삽화[1]
시위 도중 사망한 한나네

  • 시위 진압을 위해 경찰은 최루탄과 고무탄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시위대, 경찰 양 측에서 부상자가 발생했다. 시위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이란 일부 지역의 인터넷 접속 역시 통제되었다. # 19일에 일론 머스크는 이란 정부의 인터넷 차단에 대처하기 위해 스페이스X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대 이란 제재 면제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

  • 19일에 이란 서부 쿠르드 지역에서 4명이 사망하고 10세 어린이가 총에 맞았다. 테헤란에서는 히잡을 쓰지 않은 여자들이 "여성, 생명, 자유"(woman, life, freedom)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 쿠르드 지역 인권단체 헹가우(Hengaw)에 따르면 이 날 13개 도시에서 시위가 일어났으며 250명이 체포되었다고 전했다. #


1.1.3. 20일[편집]


  • 어나니머스는 이란 정부의 웹 서비스 '스마트 서비스'를 해킹해 다운시켰고 해킹 당사자의 것으로 보이는 트위터 계정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란 사람들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발언하는 어나니머스 특유의 목소리 변조 영상이 게시되었다. #


1.1.4. 21일[편집]


  • "히잡 반대, 터번 반대, 자유와 평등 찬성", "독재자에게 죽음을"을 외치는 시위가 테헤란을 넘어 미국 뉴욕튀르키예 이스탄불 등지로 확산되었으며 이란 국영 언론에 따르면 15개 도시에서 경찰이 최루탄을 사용했다. 헹가우에 따르면 사망자 2명이 추가로 발생하여 최대 6명이 되었다. #


  • 18일의 라이시 대통령의 전화 통화에 이어 알리 하메네이의 보좌관도 아미니의 유족과 접촉해 진상 규명을 다시 한 번 약속했다. #


1.1.5. 22일[편집]


  • 반정부 조직인 이란 인민전사기구(PMOI/MEK)는 7~9명이 사망했으며 수백 명의 사람들이 부상당하거나 구금당했고 테헤란을 포함한 86개 도시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

  • 같은 날 나온 이후의 보도에서 또 다른 단체는 사망자 31명이 발생했다고 주장하였다. 이란 관영 언론에서 인정한 사망자만 해도 17명이다. #

  • 아미니의 아버지는 BBC 페르시안과의 인터뷰에서 딸의 시신에서 얼굴과 발만 확인할 수 있었으며 나머지 부위는 가려져 있었고 매장할 때에도 이란 당국이 시신 확인을 금지했다고 말했다. 또한 발에서도 멍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의사들은 이에 대한 대답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

  • 이란 혁명 수비대는 마흐사 아미니의 유족들에게 조의를 표하면서도 사법부가 가짜 뉴스 유포자들을 기소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

  • 이란의 친정부 준군사조직 바시즈 소속 인원이 이란 북동부 마슈하드에서 칼에 찔려 사망했다. # 마슈하드는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출신지로 시아파 최대 성지 중 하나이자 종교 도시이다.


  • 이란군이 BMP-2 장갑차를 투입했다. #

  • 이란군과 혁명수비대 전차가 교전을 했다거나(미검증), 시민군이 무기고를 습격해서 자체적인 무장을 하는 등 시위 규모가 점점 쉽게 진압하기 힘들 정도로 커지고 있는 징후가 여럿 나타나기 시작했다. # # # 참고로 이란은 징병제 국가이다. 심지어 아예 진압경찰 출신 민간인이 대처법까지 알려주는 사례도 나타났다. ## 일부 경찰까지 시위에 협조하기 시작했다는 말도 있다. ## 징병제 국가는 많은 민간인들이 군 경험이 있어 저항권이 크게 발휘된다는 특징이 있다.

  • 로이터는 시위에 맞서는 친정부 관제 데모 역시 일어났다고 보도하였다. # 그들은 통상적인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과 같은 구호 외에도 시위자 처형을 요구하는 등 강한 어조를 보였다. 이란 군부 역시 '혼란을 야기하는 세력'에 대한 대항을 선포한 상태여서 공식적으로 군부가 시위대에 합류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다만, 위에서 나열된 일부 사례처럼 징집된 이란군 병사들이 개인이나 소대 단위로 시위대에 합류할 가능성은 있다.

  • 시위대와 대치하던 도덕경찰 소속 장군이 사망했다고 한다. #


1.1.6. 24일[편집]



파일:이란 시위 3.jpg
파일:이란 시위 4.jpg
국경도시 오쉬나비에를 장악한 시민들
히잡을 불태우는 여성과 박수 치는 군중

  • 9월 24일 시위대가 우르미아 인근 인구 8만 5천의 이라크 접경 도시인 오쉬나비에를 장악했다. # 혁명수비대의 철수와 함께 도시를 접수한 시위대는 동포들이 사는 이라크 쿠르디스탄페쉬메르가에게 개입을 요청했다 한다. 하지만 곧 혁명수비대가 도로 장악했다. #

  • CNN 보도에 의하면 현재까지 최소 1200여 명이 체포되었으며 사망자 중에는 어린이도 있다고 한다. #


1.1.7. 25일[편집]


  • 어나니머스의 해킹으로 유출된 내부 문건에 의해 이란 정부가 레바논의 무장단체 헤즈볼라 대원 4천 명을 테헤란에 투입시켜 자국 시위대를 진압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 드러났다. 자국 내 병력으로 진압하는 것이 버거우니 말 안 통하는 외국인 용병을 투입시켜 자국민의 시위를 진압하려 한 것이다. #

파일:PYH2022092603620034000_P2.jpg

  • 테헤란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 이에 맞서는 친정부 시위대도 등장했다. #

  • 시위대가 돌격하자 놀란 경찰이 후퇴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


1.1.8. 26일[편집]


  • 사제 수류탄이 시위에 등장하였다. # 경찰차에 명중했다는 얘기도 있다. #

  • 미확인 비행기의 이륙이 확인되었다. # #

  • 여러 대학에서 총궐기가 일어났다. #

  • 이란인들은 트위터에서 이란이 세계 최초의 인권 헌장(키루스 대왕의 원주)을 반포한 나라인 것을 상기하며 의지를 다졌다. #

파일:Fdj2degVIAAUiMN.jpg
파일:Fdf5Dh9WAAAK_uh.jpg
경찰에 맞서는 시위자
아자디 타워를 형상화한 삽화


1.1.9. 27일[편집]


  • (미검증) 정부 요인 몇 명이 떠난다는 소식이 있다. #

  • 혁명수비대의 자금줄인 이란 국립은행이 어나니머스에 의해 해킹당했고# 이란군은 시위에 대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 일부 경찰이 시위 진압을 거부하고 파업에 돌입했다. #

  • 한 여성이 대낮에 히잡을 벗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 이란 정부는 히잡을 벗고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SNS에 올린 여성을 바로 체포해 인권유린으로 악명높은 에빈 교도소에 투옥하는 등 SNS 상에서도 여성의 히잡 미착용에 대해 강력한 탄압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히잡 안 쓴 여성 또 끌려갔다…SNS에 올라온 사진이 문제


1.1.10. 28일[편집]


  • 발루치스탄 차바하르에서 경찰이 15세 소녀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건이 발생해 시위가 격화되었다고 한다. # 정부청사까지 불에 탔다고 한다.


  • 중동연구소가 이 시위가 심상치 않다고 하며 이란 정권의 존속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

  • 17개 은행이 불탔다고 한다. #

  • 기존 이란군 대신 혁명수비대가 시위 진압에 나섰는데 주로 비살상 무기로 진압한다고 한다. #


1.1.11. 29일[편집]


  • 이제는 소방차까지 동원해 시위 진압을 한다고 한다. #

  •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연대 시위가 일어났다. #

  • 이란 전역에서 인터넷이 차단되어 사람들은 인쇄물을 배포하며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고 한다. #


1.1.12. 30일[편집]


  • 히잡 없이 SNS 인증샷을 찍은 여성이 체포되었다. #

  • ISW에서 혁명수비대가 23일부터 29일까지 6일째 이라크 쿠르디스탄을 폭격했음을 확인했다. #

  • 쿠르디스탄 폭격으로 미국인 1명이 사망하면서 미국 정부가 이란산 석유를 거래하는 외국 기업을 제재한다고 한다. #

  • 테헤란에서는 아직도 활발하게 시위 중이며, 소산가르드는 완전 진압되었다고 한다. 사복군대도 투입되었다고 한다. # 또한 서부 지역의 시위도 활발하다고 한다. #

  • 바시즈 출신 중에서도 전향자가 나왔다는 미검증 소식이 있다. #

  • 발루치스탄에서 시위를 유혈진압했다고 한다. #


1.2. 10월[편집]



1.2.1. 1일[편집]



  • 이란 시위에 대해 전문가가 분석한 글이 있다..#

  • 시스탄-발루치스탄 주에서 무장 괴한들이 경찰서를 습격하여 19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당했다. 사상자 대부분이 지역 경찰이며 혁명수비대 4명도 사망했다. #


1.2.2. 2일[편집]


  • 시위 거점 중 하나인 테헤란의 샤리프 기술대학교에 이란 보안군이 총격을 가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그나마 졸피골 과학기술연구부 장관이 직접 개입해 참사를 막았다 하는데 보안군이 기숙사로 피신한 학생들을 향해 실탄을 사격하고 있다 하여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 학생들을 납치하고 사살했다는 미확인 정보도 있다. #

  • 동남부 시스탄오발루치스탄 주도 자헤단에서는 시위대와 군경의 유혈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이란 인권단체는 10월 1일 기준 41명이 살해되었다고 밝혔다. 이란 국영방송은 아예 '교전'이라 표현하며 혁명수비대와 바시즈 민병대 5명이 사망하고 32명이 부상당했다고 보도하였다. #


1.2.3. 3일[편집]


  • 시위 촬영자에게 총격을 가했다고 한다. #

  • 한 의원이 이번 시위의 규모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

  •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이번 시위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계획한 것이라고 말했다. #

  • 이란 국회의장 모하마드 바게르 갈라바프는 이날 의회 연설에서 “개혁과 개선을 요구한 과거 시위와는 달리 이번 시위는 정부 붕괴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게 분명하다”며 더욱 매섭게 진압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


1.2.4. 5일[편집]


파일:이란 여성.webp
호메이니-하메네이 초상화에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여학생들

  • ISW에서 시위 상황을 게시했다. #


1.2.5. 8일[편집]


  • 도덕경찰이 16세 소녀를 숨지게 하고 은폐했다는 의혹이 있다. #

  • 이란 시위 소식들을 요약한 것이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 발루치스탄이 아직도 무장투쟁 중이라는 미검증 소식도 있다.


1.2.6. 9일[편집]


  • 일부 경찰이 추가로 시위대에 합류했다고 한다. # #

  • 이란 국영방송이 사이버 공격을 당해 저녁 뉴스 도중 반체제 영상이 11초간 방송됐다. # # # 이번 사이버 공격은 '알리의 정의'라는 해킹 조직이 벌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후 사망한 4명의 여성의 얼굴 및 알리 하메네이에 총구를 겨냥한 모습을 내세웠다.

  • 시위대가 주영 이란대사관을 습격해 현 이란 국기를 끌어내린 후 이란 제국 시절 국기를 게양했다. #

  • 새총 시위가 등장하였다. #


1.2.7. 10일[편집]


  • 이란의 교수급 경제학자들이 현재 정부 상태로는 더이상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문제는 경제라는 의견과 문화적 다양성 등을 포용하고 사회를 돌보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 여기에 유혈 진압에 성공한다 해도 이런 대규모 시위가 또 벌어질 거라고 예측한 것은 덤.

  • 이란 국영방송 PD 및 진행자들이 사표를 냈다. #

  • 시위 현황을 한국어로 번역한 자료가 있다. #

  • 시위 지지자들이 교도소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

  • 유럽연합이 이란 경제제재를 고려한다고 한다. #

  • 석유화학공업단지 노동자들도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 #

  •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이 반정부 시위의 배후세력을 공격하겠다고 선언했다. #


1.2.8. 11일[편집]


  • 추가 시위 현황 지도 한국어 번역본이 업로드되었다. #

  • 이란 정부는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에게 반정부 시위 선동 혐의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


1.2.9. 12일[편집]


  • 시위 혐의로 혁명수비대에 체포된 17세 소녀가 석방 후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유족들은 이 소녀가 혁명수비대에 의해 고문과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

  • 테헤란 도심 곳곳의 분수대가 핏빛으로 물들었다. 유혈 진압을 비판하고자 기획한 퍼포먼스로 보인다. *


1.2.10. 13일[편집]


  • 이란 경찰 내부 문서가 유출되었다. # 내용은 이란 성직자, 정부 고위 관료, 혁명수비대의 부정부패 관련 자료이다.


1.2.11. 15일[편집]


  • 테헤란의 에빈 정치범수용소에서 폭동이 발생해 최소 8명이 부상당했다. # 이 교도소에는 시위 참가자들도 다수 구금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란 정권은 "금융 사기와 절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죄수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진 뒤 화재가 발생"했다고 변명했지만, 교도소 내에 있는 재소자들이 창문 밖을 향해 '하메네이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포착되었다. #


1.2.12. 16일[편집]


  • 서울의 한 대회에 참가한 이란 국적 스포츠클라이밍 선수가 예정보다 일찍 본국으로 귀국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대한민국에 대한 주권 침해가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다. # 해당 선수는 히잡을 벗고 대회에 참여했다고 한다. 휴대폰과 여권을 압류했다는 미검증 소식도 있다.# 해당 선수는 무사히 귀국했지만 외국에서도 안심할 수 없는 이란인들의 심리가 투영된 해프닝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그리고 해당 선수의 가족의 이 철거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韓 대회서 히잡 미착용한 이란 선수, 가족 집 철거 당해

  • 이란의 한 도시에서 시위가 격화되었다. #



1.2.13. 19일[편집]


  • 이란 정부가 반정부 시위와 관련된 외국인 14명을 체포했다. #


1.2.14. 21일[편집]




1.2.15. 23일[편집]


  • 이란의 원자력청이 사이버 공격을 받았다. 사이버 공격으로 해킹한 단체는 이란 내부 해킹 단체로 알려진 '블랙 리워드'(Black Reward)로 이번 사이버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


1.2.16. 24일[편집]


  • 이란의 샤리프 공대 여학생들이 단체로 히잡을 벗고 반정부 시위를 했다. #


1.2.17. 27일[편집]


  • 쿠르드 민족주의의 상징인 마하바드를 시위대가 해방시켰다고 한다. # 이게 사실이라면 인구 20만 규모의 도시가 시위대 수중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1.2.18. 30일[편집]


  • 이란 정부가 마흐사 아미니 사건을 보도한 여성 언론인 2명을 미국 스파이로 규정했다. #


1.3. 11월[편집]



1.3.1. 3일[편집]


  • 한 성직자가 시위에 휘말려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


1.3.2. 4일[편집]


  • 폴라드샤르 주민들이 하메네이의 이름이 적힌 표지판을 부쉈다. #


1.3.3. 5일[편집]


  • 이란에서 성직자의 뒤통수를 때리는 행위가 유행한다고 한다. #

  • 보안군 병사가 시위대에게 집단 폭행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

  • 지금까지 10,000여 명이 체포당했다고 주장하는 기사가 있다. #

  •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이란의 초청을 거부했다. #


1.3.4. 8일[편집]


  • 이란의 한 고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이 교장을 내쫓고 학교를 점거했다. #

  • 학생들이 교과서의 호메이니 사진을 잘라 육교에서 버렸다고 한다. #

  • 학생들이 히잡 없이 걷는 운동을 시작했다. #


1.3.5. 11일[편집]


파일:이란 배우.jpg
  • 이란의 유명 배우 타라네 알리두스티가 시위를 지지하며 히잡을 벗은 사진을 공개하였다. 피켓에 쓰여 있는 문구는 시위 구호이기도 한 '여성, 삶, 자유'이다.

  • 시위에 참가한 유명 래퍼가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혐의는 신과의 전쟁. #


1.3.6. 13일[편집]


  • 우크라이나의 한 언론이 이란 시위의 진행 양상이 유로마이단 혁명과 유사하다는 칼럼을 내놓았다. #


1.3.7. 18일[편집]





1.3.8. 19일[편집]


  • 혁명수비대 정보국장과 이란 남부 한 도시의 대법관이 시위대에게 살해당했다. #, #


1.3.9. 20일[편집]


  • 시위의 규모가 한층 더 격화하고 있다. 마하바드에서 쿠르드족의 저항도 더해지고 있다고 한다. #


1.3.10. 21일[편집]


  • 잉글랜드와 이란의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이란 선수들이 자국 국가를 부르지 않으면서 시위에 대한 암묵적 지지를 표했다.

  • CNN이 이란 경찰의 성폭력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CNN이 파악한 사건은 최소 11건에 달하며 피해자 3명의 사례를 상세히 소개했다. #


1.3.11. 23일[편집]


  • 독가스를 시위대에 살포했다는 영상이 나왔다.# 일부 경찰이 시위 진압을 거부하기 시작하였고## 현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와 같은 시위는 또 벌어질 거라는 의견이 나왔다. #


1.3.12. 24일[편집]


  • 전차에 시위대가 불을 질렀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1.3.13. 25일[편집]


2022 카타르 월드컵 B조 웨일스 대 이란의 경기에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 국가를 부르지 않았으며 축구팬들이 국가가 끝날때 울음을 터트렸다.


1.3.14. 27일[편집]


이란 최고지도자의 조카 파리데흐 모라드카니가 이란 정부를 비판하여 최근 당국에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 고객의 업무를 처리해준 은행 지점장이 해고됐다.#


1.3.15. 28일[편집]


이란 정부가 자국 내 반정부 시위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의혹에 대한 유엔 조사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이란 축구팀이 웨일스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자축하는 뜻에서 반정부 시위대 등 죄수 700여명을 석방했다.#

반정부 시위를 지지한 이란의 유명 래퍼가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3.16. 29일[편집]


미국이 자국 대표팀을 꺾자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일부 이란 도시에서 환호성과 함께 축포가 터졌다.#

이란의 축구 영웅인 알리 카리미가 이란 정부를 비판했다가 이란 정부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았다고 밝혔다.#


1.3.17. 30일[편집]


27세의 남성 메흐란 사막이 이날 경기 직후 카스피해에 접한 이란 북부 도시 반다르 안잘리에서 자신의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이란 대표팀의 패전을 축하하다가 이란 보안군의 총에 살해되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이란 대표팀의 주전 미드필더인 사에이드 에자톨라히의 어린 시절 유소년 축구팀에서 함께했던 친구라고 한다. 이에 반정부 성향이었던 에자톨라히도 슬픔을 표했다.


1.4. 12월[편집]



1.4.1. 12월 3일[편집]


10월 한국에서 열린 국제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에서 히잡을 쓰지 않고 경기를 치렀던 이란 선수 엘나즈 레카비(33)가 가족 주택이 철거당하는 보복을 당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1.4.2. 12월 4일[편집]



이란 검찰이 도덕경찰을 폐지하겠다는 발표를 했다는 말이 돌고 있다.##


1.4.3. 12월 8일[편집]


  • 이란 사법부가 사형 선고를 받은 반정부 시위대에 대해 처음으로 형을 집행했다.#

  • 한국과 미국 등이 이란에서 여대생 의문사로 촉발된 시위를 인터넷 통제 등의 방식으로 탄압하는 이란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1.4.4. 12월 12일[편집]


이란 사법부가 사형 선고를 받은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두 번째 형을 집행했다.#

EU가 이란인 24명, 관련 기관 5곳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결정했다.#


1.4.5. 12월 14일[편집]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이란을 ECOSOC 산하 유엔 여성지위위원회(CSW)에서 제명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1.4.6. 12월 17일[편집]


이란의 유명 배우 타라네 알리두스티가 당국에 체포됐다.#


1.4.7. 12월 19일[편집]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반정부 시위대의 공격으로 진압 부대 대원 4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1.4.8. 12월 23일[편집]


CNN의 보도에 따르면 축구선수 아미르 레자 나스르 아자다니를 포함한 43명의 처형이 임박했다고 밝혔다.#


1.4.9. 12월 26일[편집]


미국 인권단체의 발표에 의하면 이란 정부의 사형 집행이 2021년보다 88%나 증가했다고 한다.#


1.4.10. 12월 27일[편집]


반정부 시위를 지지한 축구선수 알리 다에이의 가족들이 출국을 금지당했다. 현재 알리 다에이는 여권을 압수당하고 운영하는 레스토랑과 보석 가게가 이란 정부에 의해 강제폐쇄당한 상태이다.#


1.4.11. 12월 28일[편집]


이란의 유명한 여성 체스 선수 사라 카뎀이 히잡을 쓰지 않고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당연히 이란 정부가 보복할 것이 분명하기에 사라 카뎀은 남편과 아이와 함께 스페인으로 이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2. 2023년[편집]



2.1. 1월[편집]



2.1.1. 3일[편집]


이란이 프랑스인 2명과 벨기에인 1명을 간첩·사회 불안 조장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2.1.2. 4일[편집]


페르시아 요리 전문가 나바브 에브라히미가 테헤란에서 당국에 붙잡혀 에빈 교도소에 수감됐다.#


2.1.3. 7일[편집]


반정부 시위에 참여해 사형 선고를 받은 모하마드 카라미(22)와 모하마드 호세이니(39)에 대한 형이 이날 집행됐다.#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아흐메드 레자 라단(60) 경찰전략연구소장을 새로운 경찰 수장으로 임명했다.#


2.1.4. 18일[편집]


유럽 의회가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단체로 지정할 것을 유럽연합에 촉구했다.#


2.1.5. 23일[편집]


EU가 이란혁명수비대(IRGC) 소속 부대를 포함해 18명, 19개 기관을 추가로 제재했다.#


2.1.6. 31일[편집]


이란에서 공공장소에 히잡을 쓰지 않고 춤을 춘 커플이 체포되어 각자 10년의 중형이 선고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2.2. 2월[편집]



2.2.1. 4일[편집]


정부를 비판한 자파르 파나히가 옥중 단식 끝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2]


2.2.2. 5일[편집]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수감자들에 대한 대규모 사면을 승인했다. 사면된 사람들중에서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도 있다.#

영국 보안당국은 이란 정부가 해외의 범죄조직들에게 해외로 망명하여 활동하는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암살을 사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2.3. 14일[편집]


이란 일람주 데흐롤란시에서 무장 시위대와 군경이 충돌했다. 군경이 시위대에게 발포하자 응전해 군경 2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

레자 팔라비가 17일~19일간 열리는 뮌헨 안보 회의에 참석한다고 한다. 그리고 유럽에 거주하는 이란인들에게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2.2.4. 17일[편집]


발루치스탄 안정 전선이라는 무장 단체가 레자 팔라비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2.2.5. 28일[편집]


시위가 아직도 활발하다고 하며 출처 불명의 독극물이 여러 학교에 퍼졌으며, 그 독극물이 시위진압용으로 쓰인게 아니냐며 시민들이 불만을 가졌다는 말이 있다.

애초에 경제 문제가 해결을 한 상태가 아니라 시위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현 정부도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한다.#


2.3. 3월[편집]



2.3.1. 12일[편집]


이란 사법부가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가 구금된 2만2천명을 사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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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17일[편집]




정부의 히잡 규제는 계속되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히잡을 아예 벗거나 쓰더라도 스카프처럼 가볍게 두르는 여성들이 늘어났다.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남성이 모녀에게 요구르트 테러를 하자 가게 주인이 해당 남성의 멱살을 잡는 등 국민들의 정서가 히잡을 쓰지 않는 것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0-17 20:39:14에 나무위키 2022년 이란 시위/경과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나를 봐요! 나도 이 나라 사람이라구요.[2] 파나히는 시위 직전 체포되어 투옥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