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r2021030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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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erial_View_of_Central_Tehran.jpg
밀라드 타워
항공 뷰
파일:Northern_Tehran_skyline.jpg

파일:external/kingofwallpapers.com/teheran-006.jpg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도시
تهران‎

테헤란 | Tehran




지역
테헤란
면적
1,200km²
인구
9,030,000 명
도시권 인구
16,000,000 명
인구밀도
7,525명/km²

파일:테헤란 인장.png
파일:external/kingofwallpapers.com/teheran-002.jpg

  • 페르시아어: تهران (Tehrân 테흐런)
  • 영어: Tehran
  • 도시 인구: 약 810만 명
  • 광역지역 인구: 약 1200만 명
1. 개요
2. 역사
2.1. 수도 이전
2.2. 수도화
2.2.1. 1796, 이란 숭고국의 카자르 왕조때부터
2.2.2. 1925, 팔레비 왕조때 급속한 근대화 추진
2.2.3. 1943, 테헤란 회담
2.2.4. 1974, 아시안 게임
2.2.5. 1977, 서울로, 서울공원 건설
2.2.6. 공화정 하에서
2.2.6.1. 이란-이라크 전쟁
2.2.6.2. 현재
3. 대기오염
4. 교통
4.1. 자동차
4.2. 지하철(1999~)
4.3. 비행기
5. 기후
6. 유명 건축물
7. 사건 사고
8. 선거



1. 개요[편집]


이란의 수도. 페르시아 제국부터 해서 세계적으로 유구한 역사로 유명한 이란이지만, 정작 이란의 수도 테헤란은 서아시아의 다른 역사적 수도들에 비하면 수도로서의 역사는 비교적 짧은 편이다.


2. 역사[편집]



2.1. 수도 이전[편집]


테헤란 지역 자체는 고대부터 사람이 살고 도시가 발달한 곳이었지만, 테헤란보다는 근처에 있던 도시 레이(라이)가 더 유명했다. 레이는 고대 페르시아어나 그리스어로 라가이(Rhagai)라고도 알려졌으며, 고대 메디아 시대부터 중세 셀주크 제국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란 중부 지역의 주요 도시로 기능하였다. 테헤란은 레이 근처에 형성된 소도시였는데, 오늘날에는 레이 지역이 테헤란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다.


2.2. 수도화[편집]



2.2.1. 1796, 이란 숭고국의 카자르 왕조때부터[편집]


그렇게 소도시 수준에 머무르던 테헤란은 1795년 카자르 왕조의 '모하마드 칸 아자르'가 이곳에서 로 즉위한 이래, 이듬해인 1796년 수도가 되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2.2.2. 1925, 팔레비 왕조때 급속한 근대화 추진[편집]


카자르 왕조의 뒤를 이어 1925년 성립한 팔레비 왕조에서도 수도가 되었으며, 이 때 성곽과 구식 건물들을 철거하고 신시가지와 건물들을 건설하는 등 급속한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팔레비 왕조 성립 당시 30만이었던 인구가 1966년에 272만으로 크게 증가하였으며, 시가지도 크게 팽창하였다.


2.2.3. 1943, 테헤란 회담[편집]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에는 미국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윈스턴 처칠 수상,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서기장 사이에 테헤란 회담이 열렸다.


2.2.4. 1974, 아시안 게임[편집]


1974년에는 아시안 게임이 개최되었다. 그 악명높은 아자디 스타디움도 이때 만든 것.


2.2.5. 1977, 서울로, 서울공원 건설[편집]


파일:8411181.jpg

1977년 골람레자 닉페이 테헤란 시장이 방한한 것을 기념해 대한민국서울테헤란로를 만들고, 이란은 테헤란에 서울로를 만들었다. 다만 테헤란에 있는 서울로와 서울공원은 서울시내의 대표적인 헬게이트로 못박혀서 테헤란을 널리 알리게 된 테헤란로와는 달리 상당히 소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테헤란로부터도 1977년 당시에는 작은 길거리였던 것이, 강남 개발과 함께 1980년대 후반부터 금융기관 본·지점들이 밀집, 금융시설이 늘어나면서 지금처럼 확 달라진 거였다.


2.2.6. 공화정 하에서[편집]


그러나 팔레비 왕조 시절 급속히 현대화된 테헤란은 호메이니 공화정 체제가 성립된 뒤에는 서방과의 접촉이 없는 폐쇄적인 모습을 보였다.


2.2.6.1. 이란-이라크 전쟁[편집]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사담 후세인이 민간인 피해 그딴 거 신경 안 쓰고 스커드 미사일을 퍼부으면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2.2.6.2. 현재[편집]

이후에도 전후 경제 파탄, 서방과의 관계 악화와 핵 개발로 인한 경제 제재 등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만, 수도인 만큼 그나마 이란 국내에서는 가장 발전되고 현대화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오바마 정부 때 경제제제를 해제했을 때 잠시 안정적으로 되었다.


3. 대기오염[편집]


도시의 규모가 크고 사는 사람이 1,000만명의 규모인 만큼, 심각한 교통난과 도로 위에서 낡은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배기가스, 그리고 심각한 대기오염이 가장 큰 골칫거리다. 이란의 국민차는 중고 프라이드 베타 혹은 이란의 자동차 기업 사이파가 프라이드 베타를 라이선스 생산한 '사바'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내가 탄 차도 프라이드, 앞 차도 프라이드, 옆 차도 온통 프라이드라 묘한 기분이 든다. 거친 운전에 오랜 연식으로 군데군데 찌그러지거나 녹슨 디테일은 덤이다.

서울의 공기는 테헤란에 비하면 아주 깨끗한 수준.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면 언제든 테헤란의 하늘을 뒤덮은 대기오염층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게다가 2016년 11월 15일에는 심각한 대기오염이 발생하면서 스모그로 3주 간 412명이 사망했다.# 그래서 테헤란에서는 나무심기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4. 교통[편집]



4.1. 자동차[편집]


지하철이 테헤란 시내는 물론 인근의 레이 시 등 곳곳으로 향하고, 버스도 BRT가 운영되고 있으나 그래도 석유가 많이 나는 나라답게 휘발유 값이 한화로 300-400원 안팎으로 싸기 때문에 가장 주된 교통수단은 자가용이다. 러시아워의 교통정체와 이란인 특유의 운전이 더해지면 안전벨트가 열 개라도 불안해질 것이다. 빈틈이 조금만 보이면 순간가속으로 끼어드는, 우리 기준에서는 너무나도 아찔한 운전이 여기서는 특별할 것 없다는 게 포인트.

테헤란뿐만 아니라 이란 전역에서 이렇게 운전을 한다. 사실 이란 외에도 운전 거칠게 하는 나라들은 수두룩하다! 하지만 여행자 입장에서 몹시 친절한 이란인들의 성품에 감탄하다가도, 운전대만 잡으면 모두가 제로의 영역을 달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기분이 묘해지는 것인 사실이다. 심지어 이런 친절함은 론리플래닛에서 추천하는 이란에서 꼭 봐야할 것 1위로 '친절한 이란 사람들 만나기'가 뽑혔을 정도다. 페르세폴리스를 비롯한 유수한 페르시아 문화유적들도 그 다음으로 밀렸다


4.2. 지하철(1999~)[편집]


테헤란 지하철 개통은 서울 지하철보다 25년 늦은 1999년에 했는데[1], 늦은 시기에 개통된 것을 감안하면 노선망은 제법 잘 갖추어진 편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수도권 전철이나 베이징 지하철, 상하이 지하철, 도쿄권 전철이나 오사카권 전철급의 노선망을 기대하면 실망하겠지만, 그래도 부산지하철 급으로 노선이 짜여져 있으며 중동권에서 가장 지하철망이 잘 갖추워졌다. 여타 중동국가의 지하철이 그러하듯이 남성칸 여성칸이 따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남성 여행자들은 탑승할 때 여성칸에 타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반대로 여성 여행자들도 탑승할 때 남성칸에 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당연하겠지만 출퇴근시간대에 사람들이 많이 붐비기도 한다. 2021년 기준으로 7호선까지 운영 중이며 장기적으로 11호선까지 건설될 예정이다. 개통 순서는 5(테헤란-카라지 통근철도)-2-1-4-3-7-6 순이다.

차량 제작은 CAF와 카와사키 중공업에서 제작된 VVVF 차량을 사용한다.


4.3. 비행기[편집]


현재는 메흐라바드 국제공항테헤란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이 있다. 이란항공이 한때 인천국제공항에서 테헤란 직항을 운항했으나 단항되었다. 대한항공이 운수권을 받아 재취항 예정이며, 화물기부터 띄운다고 전해졌으나 이란 국내의 인프라 미비와 화폐 거래의 불편함 때문에 운수권을 날리기 일보 직전까지 간 상태다. 이란 제재도 부활한 2019년 시점으로 보면 물건너간 듯.


5. 기후[편집]


엘부르즈 산맥의 남쪽, 1,200m의 고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스텝기후에 속한다. 고원 지대라서 그런지 테헤란으로 원정 경기를 온 선수들에게는 거의 지옥같은 도시가 되고는 한다.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대가 이란 국대를 못 꺾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엄청나게 반가워하며아직도 6:2 스코어를 우려먹는 이란인들을 간혹 만날 수 있다.


6. 유명 건축물[편집]


테헤란 국제전시장이라는 전시장이 있다.

파일:external/w0.fast-meteo.com/Tehran.jpg
아자디 타워. 1972년 완공되었으며 당시 이름은 샤야드(Shahyad) 타워.

파일:Azadi_Stadium_Tehran_Iran.jpg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페르세폴리스 FC, 에스테그랄 테헤란 FC의 홈구장으로, 원정팀의 무덤으로 유명한 아자디 스타디움도 이곳에 있다.


7. 사건 사고[편집]


  • 2017년에는 플라스코 빌딩에 화재가 발생하여 소방관 20여명이 숨진 것 외에도 250여명이 실종되었다는 소식까지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 6월에는 호메이니 영묘, 이란 의사당에서 이슬람 국가(IS)에 의해 테러가 발생되기도 했다.
  • 2020년 1월 8일에 테헤란에서 우크라이나 국제항공 752편이 격추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8. 선거[편집]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1인 30표씩 기표해야 되기 때문에 투표소마다 줄을 길게 서느라고 밤 12시까지 투표소가 열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란의 선거법에서는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의회 선거를 치를 때마다 해당 선거구에 배정되는 의원 수에 맞춰서 기표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게 광역단위로 배정되어 있다. 당연히 기표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투표율이 50-60% 정도로 나오더라도 투표 마감시간이 늦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한국으로 친다면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질 때 서울에서 국회의원 후보자 49명의 이름을 일일이 기표해야 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2020년 총선에서 투표율이 매우 낮게 나왔는데 이 선거에서도 투표 완료까지 몇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는 해당이 없다. 어차피 한명만 뽑기 때문이다.


[1] 지하철 건설 계획 자체는 1970년대부터 있었지만 1980년대에 이란-이라크 전쟁가 있던 관계로 지하철 공사가 늦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