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ek Philip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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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ek Philippe
파일:Patek Philippe 로고.svg
정식 명칭
Patek Philippe SA
한글 명칭
파텍 필립
설립일
1839년(185주년)
창립자
앙투안느 드 파텍(Antonie Norbert de Patek), 프랑수아 차펙(Francois Czapek)
본사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위스 제네바 주 플랑레와트(Plan-les-Ouates)
명예회장
필립 스턴(Philippe Stern)
회장
티에리 스턴(Thierry Stern)
CEO
클로드 페니(Claude Peny)
업종
손목시계, 회중시계
직원
2,000여 명
링크
파일:Patek Philippe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PP_6002R_001_DET-4789.png


1. 개요
2. 역사
3. 칼라트라바 십자가(Calatrava Cross)
4. 평가
5. 특징
6. 라인업
8. Patek Philippe Seal
9. 대한민국에서
9.1. 국내 매장
10. 기타



1. 개요[편집]



You never actually own a Patek Philippe, you merely look after it for the next generation.[1]

당신은 사실 파텍 필립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다음 세대를 위해 잠시 맡아둔 것일 뿐입니다.[2]

1839년에 창립한 스위스하이엔드 명품 시계 브랜드.

크라운(용두), 손목시계, 쿼츠 손목시계, 퍼페추얼 캘린더, 애뉴얼 캘린더를 최초로 발명하고 양산화 하였으며 경매 역사상 최고가의 포켓워치와 손목시계 낙찰가 기록을 가지고 있다.

수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시계 산업에서 "최초" 그리고 "최고"의 타이틀을 가장 많이 보유한 명실상부한 개척자이자 끝판왕. 자칭 하이엔드라고 불리는 브랜드는 많으나 최고 중의 최고가 파텍 필립이라는데는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전 세계 어떠한 매장을 가도 미닛 리피터 등 그랜드 컴플리케이션부터 배터리가 들어가는 스틸 소재의 여성용 쿼츠 시계까지 모든 모델에 대기가 걸려있다. 이러한 엄청난 인기와 품귀현상 속에서 파텍 필립은 2020년 새로운 생산시설을 완공하였는데 이는 새로운 기술 개발을 위해서이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공표함에 따라 당분간 이러한 품귀현상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2. 역사[편집]



파일:PP6_049_DSC_1864.png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파텍 필립의 본사
1839년, 폴란드의 망명 귀족 앙투안 노르베르 드 파테크(Antoine Norbert de Patek)[3]보헤미아 출신 폴란드인 시계 장인 프랑수아 차페크(François Czapek)[4]와 함께 스위스 제네바에서 창업했다.[5] 당시 이름은 파텍 차펙 상회(Patek, Czapek & Cie.).

그러나 1845년 파테크와 차페크 두 사람은 불화로 인해 서로 결별했다. 이후 차페크는 새로운 동업자와 함께 독자적인 시계 회사인 차페크 상회(Czapek & Cie.)를 따로 차렸다. 한편 파테크는 파리 국제 박람회에서 금메달을 받은 프랑스캐비노티에 장아드리앙 필리프(Jean-Adrien Philippe)와 동업을 개시해 파텍 상회(Patek & Cie.)를 개업했으며 1851년 회사 이름을 지금과 같은 파텍 필립으로 바꿨다. 이후 대공황 때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파텍 필립에 납품되던 시계 다이얼을 만들던 찰스와 장 스턴(Charles & Jean Stern) 형제가 인수(1932)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도 오데마 피게와 함께 스위스 시계 회사 중 얼마 안 되는 독립 기업이다.

창립 이래 계속해서 시계 기술을 선도해 왔으며, 시계의 역사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회사다. 1845년, 세계 최초의 미닛 리피터 회중시계를 출시했고, 1925년에는 최초로 퍼페추얼 캘린더가 장착된 손목시계를 출시했다.

시계의 역사에 있어서 두 가지 중요한 혁신을 이뤄낸 기업이다. 하나는 크라운.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회중시계의 태엽을 감기 위해서는 전용 열쇠를 넣고 돌려야 했다. 이 거추장스러운 구조를 지금과 같은 간편한 크라운 구조로 바꾼 것이 파텍 필립이다.[6] 크라운 구조는 지금도 태엽을 감을 때뿐만 아니라 시간을 맞추는 데 필수적인 장치다.

또 하나는 현대 손목시계의 교범을 제시했다는 점. 1932년 출시된 칼라트라바 Ref. 96를 기점으로 아직 회중시계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해서 어정쩡한 모습이었던 손목시계 디자인의 틀을 잡았다.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손목시계 특유의 길쭉하게 뻗어나온 러그 형태는 이 시계에서 유래했다.

연도별 파텍 필립이 시계 역사에 기여한 대표적인 발명품은 아래와 같다.
발명품
발명연도
용두(크라운)
1845
손목시계
1868
Precision Regulator
1881
퍼페추얼 캘린더(회중시계)
1889
더블 크로노그래프
1902
최초의 여성용 컴플리케이션 손목시계
1916
최초의 Split-Seconds Chronograph 손목시계
1923
최초의 퍼페추얼 캘린더 손목시계
1925
현대 손목시계의 교범을 제시한 최초의 칼라트라바
1932
Henry Graves Jnr Supercomplication
1933
자이로맥스 밸런스휠
1949
All-Electronic Clock
1956
타임존 월드타이머
1959
Secular Perpetual Calendar with Retrograde Date
1986
애뉴얼 캘린더
1996
실리콘 이스케이프먼트휠
2005
실리콘 스파이로맥스 밸런스휠
2006
실리콘 펄소맥스 이스케이프먼트휠
2008
오실로맥스
2011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손목시계[7]
2014
▲ 파텍 필립 브랜드 역사에 대해 더욱 자세한 것은 해당 링크 참조

2001년, 당시 파텍 필립의 회장인 필립 스턴[8]의 주도로 스위스 제네바에 파텍 필립 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역사적인 파텍 필립의 타임피스들을 구경할 수 있으며 그와 동시에 파텍 필립의 엄청난 역사와 기술력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최고의 시계 브랜드인 만큼, 파텍 필립을 소유했던 사람들 역시 역사적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많다. 빅토리아 여왕, 표트르 차이콥스키, 리하르트 바그너, 존 데이비슨 록펠러, 엘리자베스 2세, 다이애나 스펜서, 비오 9세, 달라이 라마 14세, 마리 퀴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존 F. 케네디, 넬슨 만델라, 제랄드 젠타, 파블로 피카소, 레프 톨스토이 등이다.


3. 칼라트라바 십자가(Calatrava Cross)[편집]


파일:calatrava_filigrame_500@2x.jpg

오늘날, 칼라트라바라는 이름은 파텍 필립에게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절제된 우아함과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운 디자인 어휘로 돋보이는 손목시계 패밀리 전체를 나타냅니다. 그것은 1932년에 발족한 레퍼런스 96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시계 디자인은 현대 손목시계의 표지석인 형태가 기능을 따르는 원리에 기초한 바우하우스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9]

4개의 백합이 특징인 칼라트라바 십자가를 로고로 사용한다.

뛰어난 손목시계를 위한 최고의 상징[10]
불후의 아름다움의 특징[11]
용맹과 독립의 특징[12]
왕위계급의 특징[13]

이렇게 네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4. 평가[편집]


파텍 필립은 시계 브랜드 중 Top 5 브랜드[14]에 속한다.

그 중에서도 자타공인 최고의 시계 회사이며 빈티지 모델의 가치와 중고 리셀 가격도 프리미엄이 붙는 등 시장에서도 확실히 인정받는다. 초고가 브랜드임에도 매출액이 높은 편인데, 시계 한점 당 리테일가가 매우 비싼 데에도 불구하고 2020년, 2021년 전 세계 시계 시장 매출 순위 4위, 2022년에는 5위를 차지했을 정도이다.

파텍 필립이 최고로 평가 받는 이유는 엔트리부터 최고 컴플리케이션까지 완벽한 품질의 시계를 만든다는 점이다. 퍼페추얼 캘린더, 미닛리피터 등의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같은 경우는 티에리 스턴 회장이 직접 와인딩 해보고, 소리를 들어본 뒤 출고시킬 정도로 명성에 걸맞는 공정을 갖추었다. 또한 생산모델의 아카이브도 완벽하게 정리되있고 구매 후 사후 관리도 철저하게 이루어진다. 그 때문인지 순수 컬렉팅으로서의 가치도 매우 높다.

브랜드의 명성을 차치하더라도 시계 제작에 있어서 중요한 발명을 여럿 해냈다. 울트라 컴플리케이션 회중시계들의 압도적인 기술력은 당연하고 하이엔드 벨런스 휠의 기준이나 다름없는 자이로맥스, 손목 시계. 현대의 시계 디자인을 정립한 러그와 용두, 세계 최초의 애뉴얼캘린더, 버튼 클릭으로 조정 가능한 월드타이머 등도 파텍 필립이 최초로 발명해 상용화 했다. 자세한 건 후술하겠지만, 심지어 1948년에는 최초로 상용 손목 쿼츠 시계를 만들기도 했다.

하이엔드 브랜드 중에 드레스, 스포츠, 컴플리케이션 등 모든 분야의 시계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는 건 파텍 필립이 유일하다.


5. 특징[편집]


현재는 조립 과정에서 일부 기계화된 생산 공정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마지막 마감 부분에서는 전문가들의 조정이 손수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조정'이 복잡하고 미세한 부품들을 설계도에 맞도록 미세하게 갈고, 실제로 조립하고, 조립 시에 어긋나는 부분을 연마하고, 일부 CNC 선반으로는 할 수 없는 마감 작업을 하는 공정이어서, 다른 부분이 기계화가 되었다고 해도 사실상 수제작이나 마찬가지다. 간단하게 사람손으로 하는 것보다 기계가 하는 게 나은 부분이 기계로 대체되었다고 보면 된다.

이 때문에 한정된 수량과 높은 가격이라는 고가 브랜드의 특성이 있다. 직원 1200여 명이 1년 동안 생산하는 시계는 약 4만여 개. 제법 많아 보이지만 비교적 저렴한 모델이 상당수고, 가격대가 올라갈 수록 생산수량은 적다.[15] 의외의 사실이지만 생산량이 많지 않으나, 하나하나가 매우 비싼 데다 거의 다 팔리기 때문에 매출액은 2022년 기준 전세계 시계 브랜드 중 5위다.

판매정책도 독특하다. 파텍 필립 모델 중 최상급이나 한정판 모델을 구매하기 위해선 자신의 시계 구매 이력을 제출해야 한다. 즉 파텍 필립을 소유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상급, 한정판 모델로 가면 로또에 당첨되는 정도로는 엄두도 못 내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이 나온다. 실제로 이베이에 양면 시계인 Sky Moon Tourbillon 모델이 169만 달러[16] 즉구가로 올라왔던 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역사가 오래되었고 잘 만든 시계들은 소더비 등의 유명 경매에 나왔다 하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시계라는 기록을 경신한다.

  • 2008년 홍콩 소더비 경매장에서 판매된 시계가 1175만 홍콩 달러(1149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파일:Patek Philippe Henry Graves Supercomplicatio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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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11월 온리 워치 제네바 경매에서 '파텍 필립 그랜드마스터 차임 Ref. 6300A-010'이 3100만 CHF(3127만 8783달러), 당시 한화 약 363억 원에 낙찰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시계에 등극했다. 롤스로이스에서 개발한 완전 맞춤 제작 한정판인 보트 테일이란 모델이 2800만 달러, 현재 한화로 대략 375억 정도[17] 하니 시계 하나 값이 가장 비싼 차 한대값보다 약 85억 정도 더 비싼 값을 자랑한다


6. 라인업[편집]


  • 칼라트라바
심플 드레스워치의 최고봉. 이름은 중세 스페인의 칼라트라바 기사단의 십자가에서 유래했다. 하이엔드 워치메이커들의 수동 무브먼트가 그렇지만, 코스메틱 피니싱의 끝을 볼 수 있다(Cal 12.600AT 등). 보통 바쉐론 콘스탄틴의 패트리모니, 트래디셔날레, 랑에 운트 죄네의 삭소니아와 같은 드레스 워치와 비교되는 라인이다. 현행 Ref. 6119가 출시하면서 신형 무브먼트가 탑재되었다.

  • 골든 엘립스
수동 무브먼트가 적용된 울트라 씬 모델. 이름대로 타원형 디자인이 특징이다. 현행 제품은 Cal. 240 채용.

  • 곤돌로
1993년 추가된 라인으로 토너(Tonneau) 디자인이 특징이다. 1900년대 초반에 크게 유행했던 손목시계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발매했다. Ref. 5489와 같이 쉽게 찾아보기 힘든 상하 비대칭 형태의 복각 제품도 있으며 현행품 중 Ref. 5098이 1900년대 초반 시계의 복각품이다.

  • 아쿠아넛
최고위급 군장교가 파텍 필립에 의뢰해 제작된 시계로 알려져있다. 그래서 그런지 다이얼이 수류탄을 닮은 것이 특징이다. 다이버 워치 라인이라지만 스포츠 워치에 가깝다. 120 m 방수를 지원하며, 잠수 시간 확인을 위한 역방향 회전 베젤이 없다.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링고 스타, 전설적인 금융인 조지 소로스가 애용하는 시계이기도 하다. 스포츠워치 중에서는 꽤 착용감이 편안한 편이다. 여성용은 쿼츠 무브먼트를 장착한 모델이 주류이고, 남성용은 듀얼타임의 컴플리케이션을 장착한 모델도 있다.

  • 노틸러스
시계 디자인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대가 제랄드 젠타의 작품. 하이엔드 스포츠 워치로 요트같이 귀족적인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스포츠 시계. 타사 다이버 워치와 비교하면 방수 성능은 그리 좋지 않다. 아쿠아넛과 마찬가지로 120 m이며, 회전 베젤 역시 미장착.[18] 마이크로 로터와 문페이즈 등이 포함된 5712의 경우 60 m이다. 오데마 피게의 로얄 오크, 바쉐론 콘스탄틴의 오버시즈가 경쟁 모델이다. 스포츠 워치임에도 문페이즈, 퍼페추얼 캘린더, 듀얼타임, 크로노그래프 등 다양한 컴플리케이션 기능을 장착한 모델들이 있다. 현재 모든 노틸러스 모델에 최소 3배가 넘는 엄청난 프리미엄이 형성되어 있으며 노틸러스를 파텍 필립 공식 부티크에서 리테일가에 구매하기 위해서는 10억 원 + 5점 구매 이력을 동시 충족해야 대기 목록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 컴플리케이션
말 그대로 복잡시계. 애뉴얼 캘린더나 문 페이즈, 듀얼 타임, 월드 타임 등의 기능이 추가되기 시작한다. 최소 5천만 원대 후반의 위클리 캘린더 5212A-001 모델부터 2억 원대 바게트 다이아몬드 장식이 박힌 5961P 라인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모델들이 있다. 스포츠 워치인 아쿠아넛과 노틸러스도 크로노그래프, 퍼페추얼 캘린더, 듀얼타임 등을 적용한 컴플리케이션 모델이 있으나 아쿠아넛과 노틸러스의 경우 모든 모델이 컴플리케이션 라인이 아닌 아쿠아넛, 노틸러스 라인으로 분류됨에 따라 컴플리케이션 라인의 시계들은 전부 드레스 워치에 가까운 모습이다. 현재 파텍 필립의 모든 모델에 프리미엄이 붙었긴 하나 그 중 5212A-001, 5905/1A-001, 5930P-001 등 모델은 드레스 워치임에도 높은 프리미엄이 형성되어 VVIP들에게 우선 구매기회가 주어진다.

  •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파텍필립의 자랑이자 주력 라인으로 최소 1억 3천만 원대부터 최대 50억 원을 호가하는 라인으로 상기한 스카이 문 뚜르비용이 이 라인에 속한다. 컴플리케이션 라인의 기능은 당연히 포함되고, 추가적으로 스플릿 세컨즈 크로노그래프, 알람, 미닛 리피터, 퍼페추얼 캘린더, 별자리와 달의 궤도를 표기하는 셀레스티얼, 레트로그레이드 인덱스 등, 기계식 시계에 넣을 수 있는 모든 기능은 전부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앞에서 언급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시계[19]인 그랜드마스터 차임 Ref. 6300A-010이 이 라인업에 해당한다.

상기한 라인업 이외에도 그랑 푀 샹르베 에나멜, 기요셰, 인그레이빙, 주얼리 등의 수공예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극한의 예술성을 추구하는 모델들이 있다.


7. Henry Graves Jnr Supercomplication[편집]


파일:The-Henry-Graves-Supercomplication_.png
Patek Philippe Henry Graves Jnr Supercomplication
1925년에 미국 뉴욕의 은행가였던 헨리 그레이브스 주니어가 파텍 필립에 주문해서 1933년에 완성된 회중시계.

기능이 무려 24개나 탑재되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파텍 필립 헨리 그레이브스 주니어 슈퍼컴플리케이션 문서 참조.


8. Patek Philippe Seal[편집]


파일:Patek Philippe Seal.jpg
출처

창립 이래 123년간 제네바 홀마크 인증을 받아 왔지만, 2009년 자체적으로 품질 인증을 내세우기 시작하면서 제네바 홀마크 인증 받기를 그만두었다. 품질에 대한 파텍 필립의 엄청난 브랜드 가치와 높은 자부심이 엿보이는 부분이다.[20]

파텍 필립 씰을 도입한 결정적인 이유는 로저드뷔나 까르띠에까지 제네바 홀마크를 받는 등 권위가 예전만 못한 데다가, 제네바 씰은 무브먼트만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파텍 필립 씰은 제네바 홀마크와는 다르게 무브먼트뿐만 아니라 케이스, 다이얼 등 완성품 자체를 인증하고, COSC보다도 더 엄격한 오차율을 통과해야 주어진다.

게다가 파텍 필립 씰은 단순한 권위 자랑이 아니다. 사내에 파텍 필립 씰에 대한 독립적 입법, 집행기관, 위원회를 설립하여 공정상 파텍 필립 씰 기준에 부합하는지 엄격히 감시한다.


9. 대한민국에서[편집]


  • 소위 명품 시계의 끝판왕이다보니 고위정치가나 재벌가, 전세계 셀럽들이 애용한다. 고관대작이나 부르주아들이 많이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일례로 1967년 당시 장택상 대한민국 전 국무총리가 가지고 있던 파텍 필립 시계는 국내 존재하던 시계 가운데 가장 고가였다고 한다.[21]

  • 겟잇기어 시계편 말미에 등장했다. 방송을 진행 중이던 MC들은 시계를 설명하던 전문가 패널에게 패널님은 어떤 시계를 차느냐고 물어보자, 차고 있던 파텍 필립 칼라트라바 Ref. 3919를 꺼내어 보여줬다.

  • 아는형님 49회에 게스트로 출연한 추성훈이 노틸러스를 차고 나왔는데, 강호동이 통행세라며 받았다가 너무 부담스럽다며 돌려줬다.

  • 축구 선수 손흥민 역시 노틸러스를 차고 있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었다.

  • CNBLUE의 멤버 강민혁인스타그램에 노틸러스를 구걸하는 글을 올렸다가 논란이 되자 삭제한 사건이 있었다.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이시언도 재산 20억 대로 알려졌을 당시 2억 원대의 파텍 필립을 착용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22]


9.1. 국내 매장[편집]


  •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EAST[23]
  • 롯데백화점 본점 에비뉴엘
  •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공식 홈페이지의 공인 판매점 목록. 참고로 수입사는 다르다. 롯데 본점과 신세계 센텀시티점 매장은 명보, 갤러리아 명품관은 우림.[24] 하지만 모델을 전부 구비하고 있지는 못하고, 스위스 본사로 주문을 넣어서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기도 한다. 한국의 명품 시계 시장이 2010년대에 들어서 급성장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시장의 크기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0. 기타[편집]


  • 해외에서도 정치가, 재벌, 귀족들이 애용하는 시계로 유명하다.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 빈살만 총리 등의 정재계 및 귀족 인물들이 착용한다.
  • 가품이 굉장히 많은 브랜드기도 하다. 일반인들이 생긴 걸 대충 아는 롤렉스는 가품도 정말 수준이 높아서 구별하기 어렵지만, 이름만 들어봤지 실물은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기 때문에 딱 진품과의 가격 차이만큼 딱 보기에도 싼티 난다. 네이버 지식인 등지를 돌아다니다 보면 파텍 필립 로고가 돌아가는 것부터 각양각색이다. 파텍도 가품 구별하라고 딜러들한테 카탈로그 형식으로 진품 구별법을 명시한 책자를 뿌린다. 회사원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롤렉스정도는 살 수 있지만 아무리 고소득 전문직이라도 그 중에서도 아주 잘나가는 극소수가 아닌 이상 파텍 필립의 가격대는 접근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많이 찾지않아 롤렉스보다 짝퉁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일 수 있다.
  • 엔트리 스틸 라인은 모델 내 하극상을 우려하여 생산을 극도로 제한한다. 스틸을 너무 많이 생산하면 브랜드의 대표 모델이 골드가 아닌 스틸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스틸의 엄청난 수요에도 불구하고 생산하지 않는다고 파텍 필립 회장이 밝혔다. 그래서 노틸러스 스틸의 프리미엄은 리테일가의 두 배에 가까운 수천만 원이 붙어 있다.
  • 중일전쟁당시 중국으로 향하는 모든 항로는 봉쇄되었으며 우회로였던 베트남, 미얀마 등도 일제에 함락되어서, 중국으로 가려면 궁여지책으로 인도에서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비행기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 '길'로서 티베트를 경유하고자 했던 연합군은 미국의 고위 인사 2명을 보내 달라이 라마에게 루스벨트 대통령의 편지와 함께 작은 나무 상자를 전달했는데 그 상자 속에 바로 파텍 필립이 들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달라이 라마의 나이는 7살 정도였고, 당시에 받은 파텍 필립의 영향이었는지 몰라도, 달라이 라마는 시계를 직접 고칠 정도로 시계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가 여러번 롤렉스를 찬 모습이 언론에 나오면서 그가 루스벨트로 부터 받은 시계가 파텍 필립이 아니고 롤렉스라는 설도 있었지만 달라이 라마는 공식적으로 자신이 받은 시계가 파텍 필립이었다고 밝혔다. 그가 받은 파텍 필립의 모델은 Ref. 1526로 추정된다. 1942년 최초로 생산된 모델로 파텍 필립의 최초 양산형 퍼페추얼 캘린더이기도 하다.


10.1. 쿼츠 시계[편집]


파텍 필립은 쿼츠 시계를 제작하는 것은 물론, 세계 최초로 쿼츠 손목시계를 만든 브랜드다.[25]

하이엔드 중의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가 쿼츠 시계를 제작한다는 게 놀랍지만, 파텍 필립은 수지 맞추는 용도로 쿼츠를 제작하는 건 아니고, 쿼츠 열풍이 불었던 시기 이전부터 쿼츠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던 브랜드다. 파텍 필립은 명품이기 이전에 당연히 더 정확한 시계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는 시계 회사이기에 쿼츠라는 아주 정확하고 좋은 메커니즘에 발을 안 들일 리가 없었을 것이다. 1948년도에 첫 쿼츠 시계를 만들었다. 허나 현재는 쿼츠를 최대한 자제하는 추세라 여성용 몇몇 모델에만 장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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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처[2] 1996년에 대중에게 처음 공개된 슬로건이다. 출처[3] 본명은 안토니 노르베르트 파테크(Antoni Norbert Patek).[4] 본명은 프란치셰크 차페크(Franciszek Czapek).[5] 당시 폴란드러시아 제국 치하에 있었다. 폴란드의 귀족 장교였던 파텍은 폴란드인이 러시아 제국에 저항하여 일으킨 11월 봉기에 참여했다가 봉기가 진압되면서 스위스로 망명했다.[6] 정확히 말하면, 이는 장아드리앙 필립이 1844년 파리 국제 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은 아이디어다. 단순히 태엽을 감는 용도를 넘어서, 지금같이 크라운을 쓰는 방식은 40년 뒤인 1889년에 개발되어 특허 출원됐다.[7] 파일:Patek-Philippe-Grandmaster-Chime-5175.png Grandmaster Chime Ref. 5175 [8] 2009년 티에리 스턴 회장 취임 이후 명예 회장이 되었다.[9] 출처:https://www.patek.com/en/company/the-manufacture#calatrava-cross[10] 지금까지 130년 동안, 파텍 필립이라는 이름과 연관된 그래픽 심볼은 고급 시계 제작 예술에 대한 감식가들과 광신자들을 매료시켜 왔습니다. 1887년 4월 27일, 고귀한 제네바의 제조사가 법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상표로 공식 등록한 것은 칼라트라바 십자가입니다. 이 등록은 1908년 1월 25일에 갱신되었으며, 언어 식별자 및 브랜드 요소로서 파텍 필립을 위한 "Croix de Calatrava" 예약도 포함되었습니다.[11] 1887년 장 아드리엔 필리프가 칼라트라바 십자가를 채택하도록 설득한 좋은 이유는 그래픽 장식적인 특성과 그것이 수세기 동안 지속된 상징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패션 트렌드에 영향을 받지 않는 아름다움의 심볼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파텍 필립의 가치와 기업 철학의 장기적인 전망을 나타내는 이상적인 특징입니다.[12] 칼라트라바 십자가는 그 이름에 내재된 노블레스도 표현합니다. 칼라트라바는 12세기 말에 설립된 스페인 기사단의 이름입니다. 그 화려함은 용기, 기사도, 독립을 상징하며, 이는 그 시대의 기사들과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이것들은 또한 파텍 필립이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특성들입니다.[13] 칼라트라바 십자가를 구성하는 네 개의 백합은 한 때 프랑스 왕실의 훈장을 장식했던 전통적인 플뢰르 드 리를 연상시킵니다. 장 아드리앙 필리프가 태어난 라 바조슈 구에의 공동체를 포함한 유레에 루아르 지역의 문장도 3개의 백합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위신과 주권의 상징이 파텍 필립의 뛰어난 기술과 디자인 능력을 표현하는 상표에 백합 테마를 선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큽니다.[14] 흔히 파텍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 브레게, 랑에 운트 죄네를 묶어서 'Big 5'라고 부른다. 그 다섯 브랜드 중 Top 3인 파텍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를 'Holy Trinity'라고도 부른다.[15] 참고로 롤렉스의 1년 생산량은 약 100만 개이다.[16] 한화로 약 23억원[17] 위의 파텍 필립 시계는 현재 환율(CHF)로는 대략 460억 원 정도이다.[18] AP의 로얄오크 오프쇼어 다이버 모델이 300 m 방수에 회전 베젤을 다이얼 내부에 장착하여 고유의 팔각 디자인을 지켜낸 것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다.[19] 3100만 CHF(3127만 8783달러), 당시 한화 약 363억 원[20] 다른 회사들도 자체적인 품질 검사 기준이 있지만 JLC를 제외하면 대놓고 자랑하진 않고, 오메가는 METAS와 아예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으며, 롤렉스도 2016년부터 COSC보다 엄격한 자체 기준을 만들었다.[21] 1967년 기준 휘발유 1리터가 21원이었으니 당시 60만원은 요즘으로 치면 4,800만원 정도 된다.[22] 이후 본인 소유 물품이 아니고 잠시 빌린 것이라고 해명했다.[23] 여기가 국내 최초 진출 매장, 즉 1호점이다.[24] 우림은 시티즌의 수입사로, 갤러리 어 클락이라는 편집 샵 브랜드로 유명하다. 또다른 하이엔드 워치 메이커인 쇼파드도 수입했다.[25] 쿼츠 시계는 벨 연구소가 발명했다. 흔히 쿼츠 파동을 일으킨 장본인인 세이코가 쿼츠 시계를 처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세이코는 쿼츠 시계를 발명하거나 최초로 만든 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여러 브랜드가 저렴한 가격에 쿼츠 시계를 판매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물론 최초로 출시된 세이코의 쿼츠 시계 아스트론은 당시에 자동차 한대 가격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