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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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금림왕릉(錦林王陵): 현의 서쪽 2리쯤 되는 곳에 옛 무덤[古藏]이 있는데, 금림왕릉이라고 일컫는다.
錦林王陵[縣西二里許有古藏俗稱錦林王陵]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9권 경상도 고령현 조 고적 편에서. 금림왕에 대한 유일한 기록.
반파국의 왕. 사서에서는 등장하지 않고 조선시대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기록이 전무한 왕이기 때문에 업적이나 정확한 재위 기간은 전혀 알 수가 없다. 무덤 축조 연대는 4세기경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382년 왕좌에 있었던 기본한기와 대략적으로 일치하는 연대이다.
錦이라는 글자는 寐錦 등에서 쓰였던 글자이므로, 금림이라는 명칭은 "마립간인 림(林)"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2. 유물[편집]
지산동 고분 47호에서 출토된 금관.
주요 유물로는 호암미술관에 보관 중인 대한민국의 국보 제138호 가야 금관이 있다. 이 가야 금관의 경우 발굴 비화가 존재[1] 하는데 삼성그룹 측에서는 부정하고 있는 상황.
3. 기타[편집]
-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현의 서쪽 2리쯤 되는 곳에 있다”라고 밝힌 금림왕릉은 1939년 부분 발굴 당시 국보 138호인 가야 금관을 비롯해 칼, 금귀걸이, 은팔찌, 금동 화살통 등 6,500여 점의 유물이 이곳에서 출토되었다.
- 1939년에 발굴된 고령 지산동 고분군 47호가 금림왕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의 왕릉으로 전해지는데, 고령지역이 대가야의 중심지인 점과 지산동 고분군이 5세기경 조성된 고분군임을 감안하면 대가야의 3대 ~ 4대 왕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2]관련 링크
- 다른 대가야 왕들보다 인지도가 가장 낮은 편. 2017년 경상일보에서 연재된 소설인 하지태왕기에서 금림왕이 대가야 관등을 정비했다고 언급되는 것을 제외하면 미디어나 매체에서의 등장은 거의 없다.
- 고령초등학교 교가에서 금림왕이 언급된다.
- 2023년 고령군은 금림왕릉으로 알려진 지산동 5호분을 재발굴하자고 문화재청에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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