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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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지회
기시다파

파일:광지회 로고.png
형성
1957년
설립자
이케다 하야토
회장
기시다 후미오
성향
중도우파[1]
이념
자유보수주의
온건 보수주의
우파공동체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주요 정치인
하야시 요시마사 (좌장)
네모토 다쿠미 (수석부회장, 사무총장)
다케모토 나오카즈 (부회장)
오노데라 이쓰노리 (사무총장대리)
히라이 다쿠야 (사무총장대리)
가네코 야스시 (사무총장대리)
기하라 세이지 (사무국장)
미야자와 요이치 (정책위원장)
가네코 겐지로 (최고고문)
가미카와 요코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
3. 역대 회장 목록



1. 개요[편집]


굉지회(宏池会) 또는 기시다파(岸田派)는 일본의 정당인 자유민주당의 파벌이다. 일본어로는 코치카이((こう((かい)라고 부른다. 현재 회장은 기시다 후미오내각총리대신 겸 자민당 총재이다. 설립일이 무려 1957년으로, 자민당 파벌들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존재한 파벌이다.

보수본류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요시다 시게루의 직계 파벌 중 하나이기 때문에[2] 일반적으로 보수본류 성향의 파벌로 분류된다.[3] 다만 90년대 후반에 고노 요헤이 등을 중심으로 이 파벌에서 지공회가 분파되어 현재 주요 인물급들은 좀 빠져나간 상태이다.

일본의 원맨재상이라고 불릴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던 요시다 시게루의 정치적인 직계에 해당하는[4] 이케다 하야토에 의해 만들어진 파벌로, 마찬가지로 당시 요시다 시게루의 정치적 후손이 되는 정치인들을 양성한 일명 "요시다 학교" 출신의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특히 이 요시다 학교 출신 정치인들은 관료 엘리트쪽에서 출세한 케이스들이 많은데, 이 때문에 굉지회는 일본 관료 집단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지원을 받고있는것으로 유명하다. 현 파벌 회장인 기시다 후미오 역시 일가족에 관료가 다수 분포해있고[5] 좌장인 하야시 요시마사 역시 아버지가 자민당 세제조사회장을 지낸 관료 출신 정치인이다. 미야자와 요이치의 경우 집안이 대대로 도쿄제국대학 출신에 관료를 지내며 출세해온 집안이며 백부인 미야자와 기이치가 마지막 정통 관료 출신 총리를 지냈다. 그의 이후로는 관료 출신 총리는 나오지 않는 추세로 굉지회의 약화와 맥락을 같이한다.[6]


2. 대굉지회 구상[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대굉지회 구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역대 회장 목록[편집]


대수
이름
파벌 호칭
임기
1
이케다 하야토
이케다파
1957년 ~ 1965년
2
마에오 시게사부로
마에오파
1965년 ~ 1971년
3
오히라 마사요시
오히라파
1971년 ~ 1980년
4
스즈키 젠코
스즈키파
1980년 ~ 1986년
5
미야자와 기이치
미야자와파
1986년 ~ 1998년
6
가토 고이치
가토파
1998년 ~ 2001년
분열
7
호리우치 미쓰오
호리우치파
2001년 ~ 2006년
8
고가 마코토
고가파
2006년 ~ 2012년
9
기시다 후미오
기시다파
201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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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어 위키백과에서는 중도~중도우파가 아니라 단순 중도우파라고만 나왔다. #[2] 또 다른 직계 파벌은 헤이세이 연구회.[3] 애초에 현 수장인 기시다 후미오 부터가 평화헌법 개정에는 찬성하는 입장이긴 해도 그것을 지금 당장 시행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확실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4] 또 다른 직계는 사토 에이사쿠. 요시다 시게루의 정치적 후계자인 이케다 하야토와 사토 에이사쿠는 서로 정치적 라이벌 관계였다.[5] 본인도 도쿄대 입학 후 관료의 길을 갈 계획이었으나 3수까지 했음에도 결국 도쿄대 입시에 실패하고 와세다대에 들어갔다. 졸업 후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일본의 세습 정치인들이 늘 그렇듯 아버지의 비서를 지낸 뒤 정계 입문.[6] 오랜만에 굉지회 출신으로 총리가 된 기시다 후미오 현 회장도 관료출신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