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 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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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 광해군의 간택 후궁. 아버지는 홍주 목사[1] 를 지낸 홍매(洪邁)이며, 어머니는 이천 서씨 서극홍(徐克弘)[2] 의 딸이다.
광해군의 후궁이 되면서 집안이 혜택을 누렸지만, 인조반정으로 폐출되어 보령에 유배되었다. 그 이후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2. 생애[편집]
1617년(광해 9) 후궁 간택에서 윤홍업의 딸과 함께 선발되어 숙의(淑儀)로 봉작되었다.
본래 내명부의 예법에 따르면 숙의는 세 명만을 둘 수 있는데, 광해군은 홍씨를 포함하여 다섯 명이나 두어서 비판받았다. 또한 여러 후궁의 일족들이 관직에 제수되고 은총을 받았다고 한다. 홍씨는 이듬해인 1618년(광해군 10년)에 소의(昭儀)로 품계가 올랐으며, 이후 귀인(貴人)으로 한 단계 더 승격되었다.[A][3]
한편, 귀인 홍씨의 아버지 홍매는 고양군수였다가 딸이 후궁이 되자 연안부사가 되었고, 홍주목사의 자리까지 올랐다. 1619년(광해 11년) 황연도(黃延道)[4] 순안 어사 한명욱(韓明勖)이 홍매가 가렴주구를 일삼는다 하여 탄핵하였으나 광해군은 처벌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홍매가 세력을 믿고 재물을 탐하여 가는 곳마다 고을을 텅 비게 만들었다고 한다.
1623년(인조 1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홍매는 강릉에, 귀인 홍씨는 보령에 유배되는 처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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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치상. (2020). 광해·인조 연간의 해인사 수다라장과 법보전 상량문 연구. 건축역사연구, 29(1), 65-76.[1] 홍주는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이다. 조선시대에는 홍주목(洪州牧)이라고 하였다. [2] 서희의 직계 후손(16대손)이다.[A] 서치상. (2020). 광해·인조 연간의 해인사 수다라장과 법보전 상량문 연구. 건축역사연구, 29(1), 65-76.[3] 정확한 진급 시기는 미상이나 1622년(광해군 14년)에 귀인으로 칭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그 이전에 귀인에 봉작된 것으로 보인다.[4] 1616년(광해군 8년) 황해도를 황연도(黃延道)로 고쳤으나 인조반정이 일어나면서 도로 황해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