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르 칸국 (r1판)

편집일시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ontic_steppe_region_around_650_AD.png
지도에서 짙은 검은색을 띠는 노란색

고대 불가리아
Παλαιά Μεγάλη Βουλγαρία

Palaiá Megálē Voulgaría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he_Monogram_of_Kubrat.png
국장
존속기간
대 불가리아 한정
632~668년
볼가 불가르 한정
7세기~1240년경
위치
캅카스 일대
중세 그리스어
Παλαιά Μεγάλη Βουλγαρία
라틴어
Magna Bulgaria / Patria Onoguria
불가리아어
Стара Велика България
수도
파나고리아, 불가르(도시)
국가원수

주요 군주
쿠브라트(632~665)
언어
불가르어
종족
불가르족, 오노구르족
종교
텡그리(?)[1], 이슬람[2]
주요사건
668년 하자르에 병합
681년 불가리아 제국 분리
1236~7년 몽골과의 전쟁
1240년경 볼가 불가르 멸망
성립 이전
오노구르족
멸망 이후
불가리아 제국 성립
킵차크 칸국에게 흡수(볼가 불가르 한정)[3]

1. 개요
2. 역사
3. 기타
4. 한국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볼가 강 연안에 있었던 유목국가.

훈족(370년 ~ 453년)이 유럽을 휩쓸고서 멸망한 뒤, 200년이 지난 7세기에 캅카스 북쪽의 스텝 지방과 볼가 강과 카마 강 연안에서 유럽으로 이주한 민족을 말한다. 카스피해흑해, 볼가강에서 카마강에 이르는 국가를 건국했다. 오늘날 남동유럽의 불가리아의 먼 조상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오늘날 러시아의 볼가 타타르인, 바시키르인, 추바시인의 선조이기도 하다. 고대 대불가리아(Old Great Bulgaria)라고도 한다. 우크라이나 동남부 평원지대와 북카프카스 사이에 걸쳐 존속했던 '대 불가리아'와 볼가 강 중류에서 존속했던 '볼가 불가르'를 묶어 부르는 명칭이다. 마찬가지로 불가르족이 세운 나라인 남동유럽의 불가리아는 위치가 많이 다르고 완전히 슬라브족에 동화되었으니 제외한다.[4]



2. 역사[편집]


불가르는 아바르 칸국 휘하에서 동로마 제국 등 여러 국가들을 공격하고 다니다가 7세기 전반에 독립해 캅카스 북부의 대 불가르 지역을 중심으로 칸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대 불가리아를 세운 쿠브라트의 죽음과 함께 그의 아들들이 갈라지게 되었고 불가르도 분리되었다.

3남 아스파루흐(Аспарух)는 오늘날의 불가리아 지역으로 내려왔다. 아스파루흐는 다뉴브 강을 넘어서 이라클리오스 왕조의 콘스탄티노스 4세가 이끄는 50,000명 규모의 동로마군을 무찌르고 681년,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을 건국했다. 불가리아는 9세기경 정교회로 개종했다.

차남 코트라그는 볼가 강 유역에 볼가 불가르를 건국했다. 볼가 불가르는 10세기 초에는 이슬람을 받아들여 러시아 지역의 대공국들과 중앙아시아서아시아, 이슬람 세계를 연결하는 무역 거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11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모피가죽, 곡물들을 수출했고, 이 상업적 부흥으로 인해 볼가 강 연안에는 수많은 도시들이 생겨나고 건설되었으며, 수도인 불가르[5]는 인구가 50,000명이 넘는 대도시로 발전했다.

그러나 1236~7년 사이에 몽골 제국이 볼가 불가르에 대규모 침공을 했고, 볼가 불가르는 결국 멸망하여 킵차크 칸국에 정복되고 말았다. 킵차크 칸국이 멸망한 이후 볼가 불가르의 국경 요새였던 카잔을 중심으로 볼가 불가르인들과 킵차크 튀르크족[6]들이 뭉쳐서 킵차크 칸국의 계승국인 카잔 칸국을 건국했다.


3. 기타[편집]


여담으로 1334년 라마단 기간에 이븐 바투타가 계절에 따라 낮과 밤의 길이가 변하는 것을 보고 싶어 볼가 불가르로 여행을 오기도 했다.

제1차 불가리아 제국제2차 불가리아 제국은 발칸반도로 남하한 불가르의 한 갈래였다. 불가르 칸국의 여러 민족 중 바시키르인이 현재까지 남아 있으며 러시아 유럽 영토의 타타르족(볼가 타타르족)은 이들의 직계 후손으로 생각된다. 추바시인은 볼가 불가르 인과 동화된 핀 우골족 주민의 후손이다.

오늘날 불가리아인들은 이 지역에서 트라키아로 남하해온 불가르족과 토착 트라키아인 및 남슬라브족의 혼혈과 동화로 이루어졌다.

오늘날 불가리아로 남하해온 불가르족의 역사에 대해서는 불가리아/역사 문서 참조.


4. 한국[편집]


부여족(백제왕족)의 후예설
부여(扶餘) 녹산(아사달)왕조(鹿山王朝)의 왕손이 부여가 망하자, 본래 왕성(王姓)인 여씨(餘氏).부여씨(扶餘氏)에서 서씨(徐氏)로 하였다. 백제(百濟)왕조(王朝)는 부여(扶餘) 왕조를 계승하여, 왕성(王姓)을 부여씨(扶餘氏).여씨(餘氏)로 사용하였다. 일본(日本) 진무천황(神武天皇)이 부여족(扶餘族)=서이족(徐夷族) 후손이고,또한 부여족(扶餘族)=서이족(徐夷族)은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고추불가제국(현재,타타르 자치공화국) ,1차 불가리아제국을 세웠다.
의자왕의 태자인 부여융이 당나라로 건너가 살다가 당 고종에게 서(徐)씨 성을 하사받았다는 설이다(만성대동보). 하지만, 최근 부여 융과 여동생의 유적이 중국 장안 근처에서 발견되었는데, 성씨를 여전히 부여씨(扶余(餘)氏)로 기록하였다. 따라서 이 설은 신빙성이 낮다. 그렇지만 일부 학계에서는 백제의 왕성인 부여씨(백제에서 성씨를 처음 쓴 근초고왕은 여씨(余(餘)氏)로 기록했고, 이후 무왕 때 부여씨(扶余(餘)氏)로 개칭했다)가 삼국통일이 되면서 성씨를 부여(扶余(餘))에서 서(徐)로 바꾸고 숨어서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한다. 실제 발해 대조영의 후손인 대(大)씨가 고려로 망명한 뒤 성을 태(太)로 바꾸고 살았던 것, 또 고려의 왕(王)씨가 조선 건립 이후 성을 전(全), 옥(玉) 등으로 변형해서 살았던 사례를 볼 때, 이 주장의 신빙성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이천서씨는 통일신라 아간대부 서신일(徐神逸),내의령 서필(徐弼),내사령 서희(徐熙),문하시중 서눌(徐訥) 좌복야 서유걸(徐惟傑),평장사 서정(徐靖),우복야 서균(徐均) 판대부사 서린(徐嶙), 평장사 서공(徐恭) 추밀원사 서순(徐淳) 등 7대가 연속 재상이 되어 고려의 최고 문벌 귀족 가문으로 성장한다.


고려 초기에 나라의 기틀의 튼튼히 한 서필(徐弼)이다. 이어 손자 서희(徐熙)와 증손자 서눌(徐訥) 서유걸(徐惟傑) 서유위(徐惟偉) 서주행(徐周行), 고손자 서정(徐靖) 서존(徐存),서균(徐鈞) 서린(徐璘), 서원(徐元) 서공(徐恭) 서성(徐成) 서순(徐淳),서숭조,서희찬,서능(徐稜),서효손,서신계, 서린(徐鱗),서성윤,서념,서원경,서충,서신,서윤,서후상,서윤현 등이 15대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대구달성 서씨(달성 서씨 대구 서씨)(大丘達城徐氏)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주행(徐周行 달성군)-서한(徐閈 군기소윤 종3품.차관)-서신(徐愼 이부판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무질(徐無疾 밀직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진(徐晉 판도판서 정3품.장관)-서기준(徐奇俊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영(徐穎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균형(徐鈞衡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 서익진(徐益進 판전객시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침(徐沈 조봉대부 정3품.장관) 서의(徐義 호조전서 정3품.장관) 이다

연산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직(徐稷 연성군)-서준영(徐俊英 연성군)- 서보(徐寶 공조전서.정3품 .장관) 으로 이어진다.


부여 서씨 계보는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춘(徐椿 판내부사사 정2품.부총리 재상) 서박(徐樸 봉례공) 으로 이어진다.

남양당성 서씨 (남양 서씨 당성 서씨) 계보는 서간(徐趕 태사.남양군. 종1품. 국무총리 재상)-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적(徐迪남양군)으로 이어진다.


중화서씨(中華徐氏) 계보는 단군조선 여수기(余守己)-번한조선(番韓朝鮮) 서우여(徐于餘)-고조선(古朝鮮) 소호(少昊), 고도(皋陶), 백익(伯益)의 아들 약목(若木)-서국(徐國)에 30세 서구왕(駒王=徐駒王), 32세 서언왕(徐偃王)-진나라 재상 서복(徐福)-삼국시대(三國時代) 서선(徐宣),서유자(徐孺子; 徐穉) 서서(徐庶), 오(吳) 나라에는 서성(徐盛),부여 동명왕(東明王),백제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신라 서두라(徐豆羅)- 남송(南宋) 서희(徐煕), 서도(徐道), 서도(徐度), 서숙향(徐叔嚮), 서중융(徐仲融), 서문백(徐文伯), 서사백(徐嗣伯)- 북제(北齊) 서지재(徐之才), 서임경(徐林卿), 서동경(徐同卿)- 원위(元魏) 서건(徐謇), 서웅(徐雄)- 수 나라 서민제(徐敏齊) -.명나라 말기 호족 서수휘(徐壽輝)청나라- 지리학자 서진객(徐震客),대학자 서광계(徐光啓)


서씨일가연합회 https://band.us/@seosarang
https://open.kakao.com/o/gBQB1q6c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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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 탕그라(ΘΥО ΤAΓΓΡΑ)로 비문에 기록되었다는 주장이 있다.참조 참조2[2] 볼가 불가르 한정. 불가리아 제1제국은 정교회로 개종.[3] 이후 볼가 강 유역의 여러 튀르크계 민족의 직계 기원이 됨[4] 불가르 칸국을 방문한 이븐 파들란이 볼가 불가르를 슬라브인 국가로 기록한 것을 보면 불가르 칸국도 슬라브화가 많이 진행되었던 듯 하다.[5] 오늘날의 카잔 근처에 위치했다.[6] 주로 노가이족들과 위구르 상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