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파루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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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스파루흐.jpg
이름
아스파루흐
(영어: Asparuh, 불가리아어: Аспарух)
출생
628년
사망
701년
직위
불가리아 제1제국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불가리아 제1제국 초대 칸. 동로마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불가르족이 불가리아에 정착할 기반을 닦은 인물이다.


2. 생애[편집]


628년경 볼가 강 연안에 세워진 불가르 칸국의 귀족 가문인 둘로 씨족의 지도자 쿠브라트의 3남으로 출생했다. 665년경 부친이 사망한 뒤, 두 형과 함께 영토를 나누었다. 그러나 668년 하자르의 침입으로 인해 불가르 칸국은 멸망했고, 그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다뉴브 강 이북 지대로 이동했다. 당시 그를 따르는 무리는 3만에서 5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동로마 제국우마이야 왕조군의 침략에 시달렸고, 급기야 674년부터 678년까지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을 치렀다. 아스파루흐는 이 틈을 타 다뉴브 강을 건너 동로마 제국의 여러 요새를 공략했고, 도브루자 북부 일대를 손에 넣었다.

680년, 황제 콘스탄티노스 4세는 우마이야 왕조와 강화를 맺은 뒤 발칸 반도의 제국 영토를 잠식해가는 불가르족을 공격하기로 했다. 그는 대규모 함대를 직접 이끌고 보스포루스를 거쳐 흑해로 들어가 다뉴브강 삼각주 바로 북쪽에 상륙했다. 아스파루흐는 적군의 수가 많은 걸 보고 페브키 섬에 건설된 요새로 후퇴했다. 황제는 즉각 이 요새를 포위하러 진격했지만, 사전에 척후병을 보내지 않아 이 지역이 늪이 많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결국 동로마군은 조직적인 행군을 하지 못했고 병사들 사이에 전염병이 창궐했다. 급기야 콘스탄티노스는 통풍에 걸려 인근의 메셈브리아로 가서 며칠 쉬었다. 그런데 돌연 황제가 도망쳤다는 소문이 돌자 병사들이 겁먹고 도주했다. 불가르군은 이 기회를 틈타 추격하였고, 다뉴브 강을 건너 모에시아까지 진격하여 제국군 병사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했다.

아스파루흐는 여세를 몰아 동로마 제국과 동맹을 맺었던 7개의 슬라브 종족을 손쉽게 정복하였고, 발칸 산맥 이남의 동로마 영토까지 약탈했다. 결국 동로마 제국은 불가르족과 협상하여 681년 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평화 협약을 체결하여 불가리아의 건국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공물을 매년 바치는 대신 불가르족이 발칸 산맥 너머로 약탈하는 걸 금지했다. 또한 양측은 무역 관계를 맺기로 했다. 이렇게 동로마 제국의 동의를 받아낸 그는 폴리스카를 수도로 삼고 왕위에 올랐다. 이 당시에는 차르를 칭하지 않았지만, 후대에 시메온 대제차르를 칭하면서 그를 초대 차르로 추존하였다.

이후 하자르의 거듭된 침략에 맞서 드네프르 강 일대에 여러 요새를 세웠지만, 701년 하자르족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사후 테르벨이 뒤를 이어 불가리아의 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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