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감찬(고려 거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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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수 서북면행영도통사
강감찬
姜邯贊


캐릭터
지위
상원수 (프롤로그)
충주 판관 (2 ~ 4회)
예부시랑 (4회~ )
가족
강감찬 처 (배우자)
등장회차
프롤로그, 2 ~ 32회
배우
최수종

1. 개요
2. 배우
3. 작중 행적
3.1. 1회
3.2. 2회
3.3. 3회
3.4. 4회
3.5. 5회
3.6. 6회
3.7. 7회
3.8. 8회
3.9. 9회
3.10. 10회
3.11. 11회
3.12. 12회
3.13. 13회
3.14. 14회
3.15. 15회
3.16. 16회
3.17. 17회
3.18. 18회
3.19. 19회
3.20. 20회
4. 인간관계
5. 묘사
6. 총평
7. 어록



1. 개요[편집]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1 '''고집 센 70의 늙은 문관.'''
'''고려의 운명이 걸린 마지막 전투의 승리를 이끌다!'''

어린 황제에게 거란 40만 대군이 침략해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어린 황제는 겁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 황제를 향해 강감찬은 날이 선 목소리로 고한다.

"항복은 언제든지 할 수 있사옵니다. 지금은 어떻게든 이길 방도를 찾아내야 할 때이옵니다."

전쟁의 참담한 잔해를 뒷수습하면서도 고집 센 신하는 황제를 늘 책망했다.
하지만 현종은 이 고집쟁이 신하를 무척이나 아꼈고,
또 다시 침략을 감행한 거란의 대군을 강감찬의 손에 맡겼다.

"내 사지가 갈갈이 찢겨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승리하리라..."

강감찬은 70의 노구에 갑옷을 입으며 결전을 준비한다.





단 한번이라도 이 늙고 보잘것없는 신하에게 고려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진다면, 나는 기꺼이 목숨을 바쳐 그 일을 해낼 것이다.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주인공. 배우 최수종이 맡았다.


2. 배우[편집]


배우 최수종은 본작이 KBS 대하드라마 네 번째 출연이다.[1] 역대 대하드라마 중 태조 왕건의 주인공 왕건, 대조영대조영, 대왕의 꿈김춘추로 모두 타이틀 롤이었으며, 이번에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현종, 양규와 함께 핵심 주역으로 출연한다.[2][3]

고려 거란 전쟁 캐스팅이 확정된 이후 2023년 4월 27일 자의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밝힌 비화에 의하면,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보면 장보고, 대조영, 강감찬, 서희가 한 소절 안에 같이 등장하는데 본인은 장보고, 대조영을 이미 연기해봤고, 이번 작품을 통해 강감찬까지 연기하게 되었으니 서희 역까지 연기해서 한 소절 안에 등장하는 위인들의 배역을 모두 맡아봤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이점으로 최수종이 맡은 KBS 사극 배역 중 유일한 백면서생 캐릭터이다. 대왕의 꿈의 김춘추조차도 삼국시대라는 시대적 특성과 화랑도의 풍월주를 맡았다는 점 때문에 자기 몸 지킬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을 갖춘 반면,[4] 대놓고 무예에 소질이 없었다고 고려사에서 못 박은 강민첨만큼은 아니어도, 메이킹 영상에서도 나왔듯이 강감찬은 귀주 대첩으로 대표되는 제3차 여요전쟁 이전까지는 한 번도 갑옷을 입지 않은 문신이다.

또한 3차 여요전쟁 기준 배우와 나이대가 매우 유사한 배역이기도 하다. 강감찬은 강조의 정변 당시 기준으로 이미 60대라는 고령이었는데, 최수종또한 2023년 기준 딱 환갑을 맞이한 60세이다.[5] 그런데 최수종이 40대처럼 보일 정도로 엄청난 동안[6]이다보니 사전에 기사로 본 사람들이나 시청자들 중에선 '강감찬 배역치곤 지나치게 젊은거 아니냐'라고 생각하다가 뒤늦게 최수종이 60살이라는걸 알고 놀랐다는 사례도 많다.


3. 작중 행적[편집]



3.1. 1회[편집]


프롤로그에서 등장. 1019년 귀주 대첩 당시, 소배압거란군에 의해 고려군 선봉이 무너지자, 2군의 모든 병사들이 혼란에 빠져 패퇴할 위기에 놓인다. 이에 부원수 강민첨이 전열을 무너뜨린 도주병들을 베어서 군율을 세워야 패퇴를 막을 수 있다며 진언하는데, 고민하다가 혼자 앞으로 나가 검차를 잡고 '고려는 승리한다. 우리는 죽지 않는다.'는 혼잣말을 작게 되뇌인다.

이를 본 군사들의 사기가 올라가기 시작해 도망치려던 다른 군사들도 마음을 고치고 그를 도와 거란군에게 진격한다. 이 순간 김종현이 이끄는 고려의 중갑기병대가 나타나 거란군을 향해 돌격하고, 강감찬을 비롯한 보병들이 검차를 밀면서 돌격하는 장면으로 프롤로그가 마무리된다.


3.2. 2회[편집]


충주 판관으로 본격적으로 등장. 거란에 잡혀가 7년 간 타국에서 노비가 되었다가 탈출하여 고향으로 왔으나, 그보다 3년 전에 도망쳐서 거란을 피해 멀리 달아났다는 나머지 가족들을 찾으러 떠돌아 다닌 백성의 사연을 듣고 적으면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사연을 전한 백성도 놀라 말문을 끊으면서 "이리 울어주시는 분은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정작 본인은 "미안하네. 늙어서 그렇다네."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이어갔다.[7]

그 백성에게 사재를 털어 쌀 한 포대를 주면서 보냈지만, 이 광경을 지켜 본 아내의 타박을 견디다 못해[8] 다시 관아로 가서 김종현과 거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거란의 재침이 반드시 있을 것이고 지금은 단지 명분을 찾고 있을 뿐'이라고 단언한다.


3.3. 3회[편집]


호족을 동원해 정권을 장악하려는 김치양에 의해 지방의 사병들이 무장 태세를 갖추는 것을 김종현과 함께 지켜보고,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에 황급히 개경으로 향한다.

홀로 개경으로 향하는 것을 만류하는 김종현에게, 자신은 변란을 진압하러 가는 게 아니라 '전쟁을 막으러' 가는 것이며, 거란의 책봉을 받은 현재의 성상(목종)에게 변고가 생기면 거란에게 침공 명분을 주게 되므로 무조건 성상이 살아있어야 한다며 떠난다. 하지만 개경에 도착했을 땐 한 발 늦어 목종이 승하하고 대량원군이 즉위한 이후였다.


3.4. 4회[편집]


황보유의에게 그 사이의 경위를 듣고 대책을 고심하다 최항을 찾아가 거란의 침공을 막기 위해 사신을 보낼 것을 건의한다. 이에 최항은 그를 아예 예부시랑으로 조정#朝廷에 끌어들인다.[9]

조정에 돌아오고 첫 조회에서 강조가 은대와 중추원을 중대성으로 합쳐 조정의 목줄을 틀어쥐려 하자 아무 것도 모르는 현종[10] 앞에서 침묵하던 조정 신료들 사이에서 임금의 측근 역할인 은대와 중추원의 기능을 설명하며 황제의 명을 전함과 동시에 황제를 지키는 곳이니 폐지되면 안 된다며 홀로 나아와 반대한다. 이에 그를 천거한 최항에게도 적어도 말을 가려서 하고 거란에 보낼 표문을 작성하라면서 한 소리 듣는다.

거란에 보내는 사신단 표문에 목종병사했다는 내용을 넣으며 전쟁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강조에게는 중대사가 자행한 일이 전쟁의 단초이며, 자신이 직접 책임지겠다는 강조에게 '전쟁은 혼자 책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이후 현종에게 직접 표문[11]을 올리고 독대하면서, 조정에서 홀로 강조에게 맞선 강감찬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현종에게 차근차근 시작하면 된다며 현종의 정치 스승 역할을 자처한다.


3.5. 5회[편집]


현종과 독대 장면이 여럿 나온다. 강조를 제거하여 전쟁의 명분을 없애보겠다는 현종의 말에 애초에 강조를 제거한다 해도 전쟁의 구실을 찾던 거란이 전쟁을 물리지 않을 것이라고 만류한다.

이후 초조하게 밖에서 기다렸는데[12], 그사이 현종의 강조 암살 시도는 실패하고, 강조가 이를 불문에 부치고 나오다가 그를 발견하곤 "퇴궐 안하고 뭐하냐?"고 묻자 어쩔 줄 몰라하다가[13] 사신의 일정을 묻는 강조에게 내일 귀국 전 알현이 있다고 일러주곤, 이후 폐하는 어떠시냐고 넌지시 현종의 안위를 걱정하는데 강조로부터 내일 정전에 드실 것이라고 답을 듣는다.

전쟁 준비 중 각 부서를 돌며 격려하던 현종의 고뇌를 들으면서 백성을 위하는 마음과 결단이 황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며 이를 갖추셨으니 아직은 설익은 모습일지라도 장차 성군이 되실 것이라고 격려한다.[14]


3.6. 6회[편집]


거란군이 시행하는 타초곡[15]이 무엇인지 현종에게 설명한다.[16] 그 후 불안해 하는 현종에게 잠이 안 오면 개경의 사찰을 찾아가서 불공을 드리는 백성들을 위로하라는 권유를 한다. 그 권유에 따라서 절을 찾아간 현종은 가족을 사지로 보낸 백성들의 마음이 어떤지 공감하게 된다.

그런데 집에 와 보니 아내가 충주에서 개경으로 와서 식사를 차려놓고 있었다. 그래도 죽을 때는 같이 죽자는 심정으로 상경했다고. 다만 저녁 먹는 내내 아내에게 바가지를 긁힌다(...). 식사 중에 아내가 계속 푸념[17]을 늘어 놓자 밥맛이 떨어졌는지 숟가락을 내려 놓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많이 먹었다면서 밥상을 물리려 하나,[18] 바로 또 밤에 배고프다고 일어나서 찬장 뒤지지 말고 빨리 다 먹으라며 잔소리를 듣는다. 그 말에 빈정 상한 표정으로 밥술을 다시 뜨자 이번에는 또 밥 먹는 거 하나는 장군감이라면서 또 구박을 받는다.[19] 죽상이 되면서도 아내 말은 잘 들으며 밥을 꼭꼭 씹어먹는 표정 연기가 일품이었던 장면.


3.7. 7회[편집]


유진을 포함한 조정의 재상단들이 몰래 가족들을 개경 밖으로 피신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대노한 현종이 유진을 질책하고, 이에 유진은 한 때 김치양의 변란 당시에 목종을 지켰던 일을 거론하며 가족 걱정 없이 폐하를 지키고 싶었을 뿐이라고 호소하면서 강감찬을 쳐다보는데, 강감찬 역시 고까운 표정으로 유진을 바라본다.

조회가 파한 후 강감찬은 어디 한 번 할 말 있으면 해보라는 유진의 푸념에 "조정의 대신들이 가족들을 피신시키는 것은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후방을 교란시키는 중죄"라면서 가차없이 비판을 가하고, 이어 그를 말리며 유진을 변호하는 채충순과 최항에게도 "그 분 공이 있는 것 아니까 폐하 앞에서는 말 안 했다. 그리고 당신들도 가족들을 피신시킨 것을 알고 있다"라며 날을 세운다. 이에 강감찬을 조정으로 불러 들여온 최항마저도 "공은 참 가까이 하기 힘든 사람"이라고 한숨을 쉬며 자리를 뜬다.[20]

그 장면 이후 바로 집에서 아니나 다를까 "왜 당신 출사 시켜준 정당문학에게까지 날을 세우냐?"며 아내에게 구박을 받는데, 아내는 마냥 강감찬을 구박만 하는 게 아니라 "마음 속에 뭔가 답답한 게 있어서 이러는 것 아니냐?"며 털어놓으라고 호소하지만 강감찬은 대답하지 않고 그냥 자리를 뜬다.[21]


3.8. 8회[편집]


통주 전투의 패전 이후 패전의 원인을 두고 유진과 설전을 벌이다가, 지나간 일 말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논하자며 현종이 논쟁을 매듭짓고 대책을 요구하자, 아직 거란이 성을 하나도 함락시키지 못했으니 할 만하다는 취지로 현종에게 고한다.

이후 현종과의 독대에서 승전보를 알릴 때와 마찬가지로 패전보도 자신이 백성들에게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현종에게 백성들에게 전투 결과를 함구할 것을 권한다. 백성과의 신의를 저버릴 수 없다는 현종에게 강감찬은 황제가 베푸는 최고의 선정은 승전을 통해 백성들의 터전을 지키는 것이며,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신의를 잃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패전의 고통이라며 현종을 설득하려 하고, 이러다보니 "폐하가 전쟁에 대해 잘 모르셔서 그런 것이다"[22]라며 언성을 높이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날 밤, 잠 자면서 한숨을 푹푹 쉬는 것에 무슨 일 있었는지 알아챈 아내에게 "이번엔 누구에게 싸움닭 기질로 밉보였냐"는 물음에 처음엔 시치미를 떼다가 성상 폐하라고 털어놓고, 이에 충격 받은 아내는 냉수를 뜨러 문을 열고 나가다가 "삼족 멸할 일 있냐? 죽으려면 혼자 죽어라"라며 극대노한다.[23]

곽주와 영주의 함락 이후 최항이 궐로 가던 그를 붙잡고 친조와 항복을 청할 것을 논하자 격하게 반발하다가 "항복(협상)은 싸울 힘이 있을 때 하는 거다. 싸울 힘이 없을 때 항복을 청하면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에 결국 수긍하여 조정 회의에서 현종에게 자신이 표문을 쓰겠다며 거란 황제를 친조할 것을 청한다.

이후 현종과의 독대에서 "다시 말하시오"라고 분노에 찬 추궁을 받는 와중에도 똑같이 친조를 청하라고 했지만, 현종이 용상에서 내려와 자신의 앞까지 다가왔을 때, '친조가 곧 항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진짜 목적을 이야기하며,[24] 친조를 표하여 거란의 진군을 멈춘 다음, 시간을 벌어 동북면의 군사를 끌고 와서 서경에서 반격하자는 전략을 제시하며 현종을 설득한다. 다른 대신들은 반대할 게 뻔하니 조정회의에서는 다른 대신들은 물론, 현종까지도 속인 것이었다. 이후 친히 표문을 들고 사신이 되어 거란 진영으로 향하는데, 이 모습을 지켜보는 현종의 내레이션이 인상적.[25]


3.9. 9회[편집]


집에 가서 부인에게 다녀오겠다는 말을 전하고[26] , 거란 진영으로 간다. 가는 중간에 숙주성이 함락되고 포로로 잡히는 고려 백성들을 보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나, 참아내고 거란 황제에게 가다가 죽은 강조의 목이 효수돼 있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거란 황제 앞에서 고려 황제가 친조를 청했다고 전했고[27], 거란 황제는 친조에 응하겠다면서 진격을 멈춘다. 아울러 고려 백성들에 대한 약탈도 멈춰달라고 청하고, 거란 황제는 이 또한 받아들여 타초곡을 금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친조 제의를 믿지 못한 소배압은 강감찬을 며칠 동안 거란 진영에 머무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황제가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 이에 따라 강감찬 본인은 발이 묶이고, 같이 온 전령들만 개경으로 돌아가 거란 황제가 친조를 받아들이겠다고 한 소식을 조정에 전한다.

거란 진영에 억류된 사이에, 포로로 잡혀온 고려 아이가 와서 날이 춥다며 화로를 전해주고, 고려가 거란한테 항복한 게 사실이냐고 묻는다. 이에 아이에게 사실이라고 답하고,[28] 아이가 나간 뒤에 울분을 토한다.

그리고 소배압으로부터 서경으로 가서 내일까지 항복을 받아오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에 따라 한기를 비롯한 거란 사신 일행과 함께 서경으로 갔는데, 서경부유수 원종석이 고려 조정의 거짓 항복 사실을 폭로하는 바람에 분노하면서 항의한다. 그리고 원종석에 의해 감옥에 억류되고, 이후 밧줄에 묶인 채로 거란의 사신들에게 끌려간다.

포승에 묶여 끌려가던 중, 현종의 명으로 동북면에서 서경 구원을 위해 달려온 지채문과 그의 군사들이 우연히 거란 사신 일행을 발견, 그들을 화살로 쏴 죽여 구출된다. 이에 지채문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하고, 서경으로 달려가 성을 지키라고 권유한다. 그리고 본인은 거란 진영으로 가서, 소배압에게 서경이 항복했으니 진격할 필요가 없다고 설득한다.[29]


3.10. 10회[편집]


단신으로 돌아와 원종석이 쓴 항복문을 들고 여유롭게 "다녀왔습니다. 서경성이 항복했으니 진격할 필요 없습니다"라고 능글맞게 소배압에게 말한다. 왜 혼자 돌아왔냐는 소배압의 물음에 "거란 사신들은 서경에서 황제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고, 이제 고려는 거란 황제의 신하가 되었으니 무엇이 불안하겠냐"며 다른 사신 일행도 호위 병력도 없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받아친다. 이후 직접 야율융서에게 항복문을 올리고, 다시 그를 속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후 거란 진영 내 막사에서 살아 돌아오라는 현종의 당부를 되새기며 전전긍긍하다가, 다음 날 아침 동북면의 고려군이 서경성으로 진격하면서 거란군이 속았음을 알고 소배압이 즉시 그를 잡으려 막사에 들어갔지만 막사 안은 텅 비었다. 이미 강감찬은 이미 도주 준비를 마치고, 경비병에게 "거란 황제의 명으로 개경으로 간다."고 둘러댔으나 이후 추격대가 자신을 잡으러 쫓아오자 즉시 말을 움직여 거란 군영의 쪽문을 뛰어넘고 도주했다. 그리고 한참 거란 병사들의 추격을 받다가 장연우와 황보유의가 이끄는 군사들에 의해 구조되었다.

이후 서경성이 항전 분위기로 정리된 것에 안도하며, 장연우에게 개경으로 복귀하라고 권한 뒤 먼저 개경으로 향하여 현종에게 무사귀환과 함께 서경의 항전 분위기를 전하며 현종에게는 기쁨을, 다른 재상들에게는 당혹감과 배신감을 안겨준다. 최항과 채충순이 강감찬과 현종의 은밀한 작전을 두고 강감찬에게 강력히 항의하며 "우리도 국익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항복을 주장한 건데, 공이 이렇게 일 저질러놓고 패전하면 후손들이 누굴 원망할지 모르겠다"며 질타하고, 이에 강감찬은 "그렇기에 승리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말로 팽팽하게 대립한다.[30]

이후 집에 들어와 아내에게 밥 달라고 하고 열심히 먹방을 찍다가 아내에게 "내가 소를 키웠다"는 핀잔을 듣고 나서 이후 현종과 다른 중신들과 함께 궁궐에서 서경에서의 낭보를 접하면서 웃다가 드라마 최후반 탁사정이 도망치고, 지채문이 패주, 대도수가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현종과 함께 놀란다.


3.11. 11회[편집]


예고편에서 현종에게 몽진을 주장하는 모습이 나왔다.



3.12. 12회[편집]



3.13. 13회[편집]



3.14. 14회[편집]



3.15. 15회[편집]



3.16. 16회[편집]



3.17. 17회[편집]



3.18. 18회[편집]



3.19. 19회[편집]



3.20. 20회[편집]





4. 인간관계[편집]


  • 현종 - 현종의 정치 스승. 급작스럽게 왕위에 올라 통치에 필요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으며, 강조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정치를 가르쳐 준다.[31] 다만 강감찬은 예부시랑으로서 관직이 한림원 소속이 아니기에 정식 왕의 스승 역할[32]은 아니고, 현종의 물음에 자세히 설명만 해준 정도이다.

  • 아내 - 결혼 생활 내내 외방에만 머무는 자신 때문에 바가지를 긁는 아내를 만나면 늘 피해다니거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도 국난이 닥쳐오자 아내가 '죽어도 같이 죽자'라면서 그의 곁을 지키러 개경까지 상경하고, 강감찬의 고충을 이해해주는 걸 보면 벼슬길이 잘 안풀린 과거와는 별개로 부부 관계는 끈끈해 보인다.

  • 김종현 - 충주에서부터 인연을 쌓은 아랫사람.

  • 강민첨 - 강감찬의 사촌동생[33]격이지만, 중반 서경에서 만나기 전까지는 접점이 없었고, 후에 전쟁을 끝장내는 최종전에서 상하관계로 거란에 맞선다.

  • 소배압 - 드라마 오프닝 영상에서 고려를 두고 정면승부할 것임을 보여주었다. 9회에서 야율융서에게 친조 의사를 전달할 때부터 소배압은 계속 강감찬을 의심하였는데 결국 거란 황제를 기만한 강감찬이 달아나며 한방 먹는다.

  • 강조 - 조정을 장악한 권력자와 그런 권력자에게 가차없이 직언을 날리는 관계인데, 이를 두고 강조의 측근인 이현운이 저렇게 일침을 가하는 강감찬을 파직할 것을 건의하지만, 정작 강조 본인은 "그(강감찬)는 원래 그런 사람이고, 조정 안에 자기 편도 없으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면서 놔두었다.

  • 최항 - 자신을 조정에 재입성하게 해준 선임.[34]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자기 생각을 밝힐 줄 아는 강단 있는 신료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어서 조정 내에서 그나마 강감찬을 이해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강감찬과 달리 어느 정도는 눈치를 볼 줄 아는 편이라[35] 그를 제지하는 역할도 한다.

5. 묘사[편집]


거의 〈정도전〉의 윤소종을 방불케 하는 작중 최고의 독설가로,[36] 등장하는 씬마다 본인의 통찰을 바탕으로 주변인들에게 일침을 때려넣는지라 아내는 이것 때문에 지방을 전전한다며 한이 쌓여 바가지를 긁고, 정변으로 실권자가 된 강조는 "앞뒤 안 가리고 말하는 건 여전하다"며 깐다. 해당 캐릭터가 이미 60을 넘은 고령이기에 연륜을 바탕으로 통찰력을 보여주나, 사람 사이에서의 처신은 나잇값을 못하고 서투르다. 아내의 인물 소개에는 아예 '열다섯 살 아이 같다'고 대놓고 디스하고 있다. 오죽하면 본인보다 24살이나 어린데다 역시 강직한 편인 최항에게마저 언행을 교정받을 정도.

이러한 성격 때문인지 외직을 전전하면서도 존재 자체는 유명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중앙에 있었기 때문에 강조나 최항 같은 웬만한 중신들과도 안면을 트고 있고[37], 실제로 그 덕에 눈앞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최항이 국가적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중앙의 고관으로 복귀시킨다. 강조도 앞뒤 안 가리고 비판을 쏟아내는 강감찬에 대해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듯 신경쓰지 않는다. 능력은 있고 집안도 금주(광명시)의 호족 가문에 개국공신의 아들이니[38] 본인도 사교성이나 의지만 좀 더 있었다면 출세에는 특별히 문제가 없었을 법도 한데, 존재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괴짜 이미지가 박힌 듯.

그런데 사극 드라마 캐릭터적인 문제가 발생하는데, 해당 인물인 강감찬 장군은 인생 초중반기에 대한 사료적인 기록이 너무 없고 그나마 지방을 전전했단 것도 설화에 불과하기 때문에 온전히 상상력과 추리로만 그 제2차 여요전쟁 시절이라는 빈 공란을 메워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인물이다.[39]

그래서 일차적으로 위 설화를 각색해 캐릭터 해석을 "타고난 자질은 매우 뛰어나나 처세술에 전혀 신경쓰지 않고 거침없이 할 말을 하는 성격 때문에 오랫동안 출세하지 못하고 지방 한직을 전전했다"는 설정을 도입한다. 이는 오랫동안 기록이 없다가[40] 60이 넘은 나이에 갑자기 출세하여 큰 공을 세운 강감찬의 행적과 맞아 떨어지기에 이리저리 개연성을 부여하고 있다.[41]

또한 캐릭터 외적으로는 작중에서 일종의 해설 역할도 맡고 있다. 승려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즉위해서 국정에 대해 잘 모르는 현종에게 외교, 정치, 행정 등에 대한 각종 배경 지식을 설명해 주는데, 이것은 현종뿐만 아니라 제4의 벽을 넘어 시청자들에게도 작중 시대적 배경 및 상황을 이해시키는 설명 또한 되기 때문이다. 1회 프롤로그 한정으로 김기현이 짤막하게 한 것 외에 드라마에서 배경이나 거란에 대한 정보 일부는 강감찬이 휘하의 김종현이나 강조, 현종에게 설명하는 내용이 전부이다. 덕분에 거란 1타 강사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독설가 + 해설 역할만으로는 캐릭터성이 빈약할 소지가 있었는데, 제작진은 여기에 '공처가'라는 설정을 추가하여 극적 긴장감이 넘치는 드라마에 소소한 웃음거리를 제공하였다. 작중 말투를 보면, 조정에서는 최수종 특유의 또렷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당당하게 직언을 올리거나 소신을 밝히지만, 정작 아내 앞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쭈뼛거리며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 공처가 설정은 작품 전체에도 무겁고 진중한 분위기를 적당하게 풀어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실제로 강감찬 장군의 가문은 개국공신(삼한벽상공신) 출신이므로 시집 온 입장에서는 그 좋은 배경을 마다하고 아낌없이 베푸는 청백리에 지방직만 전전하는 늙은 남편에게 푸념할 법도 했고, 무엇보다 고려 시대 여성의 지위는 조선 시대 중후반대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에[42] 개연성 있는 설정이다.


6. 총평[편집]




7. 어록[편집]


두려워 마시옵소서. 고려의 군사들도 30만의 대군이옵니다. 목숨 걸고 분전하여 반드시 승리할 것이옵니다.

거란은 이미 수많은 이민족을 정복하고 유학을 받아들인 대제국[43]이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살아온 방식을 고수하는 철두철미한 자들이옵니다.[44]

기회를 엿보는 것과 기회를 잡는 것은 다른 일이옵니다. 중대사께서는 저들이 원하는 명분을 만들어주셨사옵니다.


소신이 보기엔 그렇지 않사옵니다. 아직은 군주로서 설익은 면도 분명 있으시옵니다. 허나, 백성들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감수하실 각오가 되어 계시질 않사옵니까. 그것이야말로 황제가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이옵니다. 점차 경험이 쌓이시면, 곧 훌륭한 성군이 되실 것이옵니다.

그건 폐하께서 전쟁을 너무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옵니다! 폐하께서 막연하게 생각하시는 것보다 천 배 만 배 더 고통스러운 것이 전쟁이옵니다. 인간이 살아서 겪는 유일한 지옥이 바로 전쟁이란 말이옵니다!
폐하께서 지금 당장 솔직하게 패전의 소식을 전한다면은 놀란 개경의 백성들이 서둘러 피난길에 오를 것이옵니다. 그럼 남도의 백성들까지 두려움에 휩싸여 도망칠 것이옵니다. 그럴 때 전장에서 군사들을 더 보내 달라 청해 오면 어찌하시겠사옵니까? 후방이 다 무너져내렸는데, 무슨 수로 전장의 장수들을 지원하실 것이옵니까!
폐하께서 지키려는 백성들과의 신의가 오히려 백성들을 지옥에 빠뜨릴 수도 있사옵니다. 전쟁이란 그런 것이옵니다. 제아무리 숭고한 가치도 승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가차없이 버려야 하는 것이옵니다. 그러고도 이기기 힘든 것이 바로 전쟁이옵니다!
폐하. 부디 승리만을 생각하시옵소서. 소신도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신의를 먼저 저버린 것은 거란이옵니다. 어린 아이도 비웃을 거짓 명분을 내세워 이 고려를 침략해온 것이 바로 저들이옵니다. 그런 자들에게까지 공명정대한 외교를 펼칠 이유는 없사옵니다.[45]

예, 폐하. 맞사옵니다. 소신은 미치도록 승리하고 싶사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고 싶사옵니다...![46]

승패가 정해져 있는 싸움은 없네! 그건 자네처럼 변명거리만 찾아다니는 자들이나 하는 소릴세! 이 순간만 넘으면 우린 승리할 수 있네. 단 하루만 시간을 벌면 우린 이 서경을 지킬 수 있네. 헌데 그 기회를, 자네 같은 자들이 날려먹고 있는 걸세. 적을 베라고 준 칼로 고려의 폐부를 찌르고 있단 말일세! 자네가 거란 진중에 잡혀 있는 포로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은... 그 간절한 눈빛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은... 절대로 이런 짓은 못할 걸세. 절대로...!

폐하, 절망하지 마시옵소서. 이 고려에는, 폐하가 필요하옵니다. 부디 단단해지시옵소서![47]

무엇이 오든 막아내겠사옵니다. 반드시, 을 전멸시키겠사옵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고려 땅을 침략하지 못하게 할 것이옵니다!


[1] 대하드라마 외에도 조선왕조 오백년-한중록에서 사도세자 역으로 사극에 데뷔했으며, 이후 대원군 편에서 철종 역을 분했고, KBS2 해신에서 장보고, 임진왜란 1592에서 이순신 역을 맡기도 하는 등 사극 배우 경력이 길었다.[2] 배우 개그면으로 보자면 꽤나 아이러니한 상황인데 자신이 세운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했고, 멸망된 발해 유민들을 받아들이고 거란을 적대하라고 훈요십조를 공표한 것 역시 본인이 맡은 왕건이었고, 다시 거란을 상대로 본인이 건국한 나라를 지켜야 하는 강감찬 역할을 맡는다는 요소가 있다. 이 정도면 제작진에서 노리고 캐스팅했을지도 또한 후삼국 통일 이후의 사건이라 태조 왕건에는 안 나왔지만, 왕건은 생전 거란이 낙타를 보내자 거란 사신들은 유배 보내고 낙타는 모두 굶겨 죽인 바 있어 이것까지 포함하면 거란과 대립 관계인 역할은 세 번째다. 마침 강감찬의 아버지인 강궁진의 경우 왕건을 도와 고려의 후삼국 통일을 도운 삼한공신인데, 따라서 자신을 도운 신하의 아들로 환생했다는 배우 개그 역시 성립되었다.[3] 최수종은 이 작품 홍보 겸 출연한 2023년 방송의 날 특집 모던코리아에 출연하여 자신을 KBS 공무원이라 자평했다.[4] 화랑은 후대에 외모로만 너무 유명해진 감이 있어서 그렇지 엄연히 준군사조직에 가까운 무장집단이었다. 그 수장이면 사실상 개인의 무력이나 카리스마, 신분도 동시에 높았던 인물이라는 뜻.[5] 실제 나이만 유사할 뿐 고려시대는 40대만 되어도 장년을 넘어 노년 취급할 시기였고 그런만큼 60살이상 살았던 강감찬은 매우 장수한 편이었다. 그에 비해 현재 2020년대는 60세마저 중장년층으로 인식하는 기조가 짙어진만큼 최수종은 고령이긴 하나 아직 노년층은 아니다.[6] 해신에서 함께했던 배우중 이원종보다 3살 가량 연상이며 조희봉보다 9살 연상이다. 조희봉이 유독 노안이 심하고 반대로 최수종이 워낙 동안이다보니 액면가로만 보면 조희봉이 최수종의 삼촌뻘(...)처럼 보일 정도지만 상술했듯 최수종이 한참 연상이다. 이원종또한 워낙 노안이 빨리 찾아온 케이스인데, 대신 구마적시절 이후로 얼굴이 더 삭진 않았는데 최수종은 그후 20여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3살 아래인 이원종보다도 액면가가 젊어보이는 수준이다.[7] 여담으로 눈물이 떨어지는 장면은 촬영진이 뒤에서 인공눈물을 떨어트리면서 찍었는데, 머리 위에선 너무 각도가 안나오다보니 어깨 부분에서 떨어트렸다. 위치상 최수종의 등에 업히다시피 찍어야 해서 최수종이 기겁을 하기도 했다.#[8] '퍼줄 거면 윗사람에게 퍼주지 뭐하냐, 남들 재상 할 나이에 아직도 5품 판관이니 속이 터진다, 내가 이런 사람이랑 결혼하려고 500리나 말타고 왔냐, 부모님이 원망스럽다'라며 박박 긁어대는 게 정도전최씨 부인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다. 고려사에도 강감찬은 매우 늦은 나이(36세)에 관직에 들어간데다 청렴하고 검약해서 가정 사정을 돌보지 않았고 옷도 더럽고 해졌다거나, 전쟁 후 이부상서가 된 뒤에 왕에게 아뢰어 개령에 있는 자신의 밭 12결을 군호에게 나눠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작중 설정으로 성공하기 전부터 백성에게 퍼주는 행보로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최수종 필모에 보기 드물게 바가지 긁히는 모습(...)으로 특히 남녀관계는 사극 주역 이전 젊은 시절 멜로물 주인공을 도맡아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연기가 처음이다.공처감찬[9] 이 소식을 충주에 있던 김종현이 듣고 강감찬의 부인에게 남편이 조정에 올라갔다는 소식을 전달하면서 개경으로 가는 게 어떤가 말했지만, 정작 그녀는 덤덤하게 "어차피 윗분들에게 미운털이 박혀서 다시 내려갈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김종현을 당황하게 했다.[10] 사실 현종은 앞서 보았듯이 이모 천추태후에 의해 사찰로 보내진데다가 늘 신변의 위협을 느껴 왔다. 3회에서 목종이 대량원군을 불러 태자로 삼게 한 것은 본격적으로 정치 수업을 받도록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막상 정변이 터지고, 목종이 폐위된데다가 시해당해 현종은 조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관직과 조정 기구가 어떠한지 모르는 상태에서 덜컥 황제에 오른 것이다.이 모든 게 다 김치양 때문이다.[11] 이 때의 표문은 내용은 같지만 위에 강조와의 대화 이후 또다시 작성한 표문이다.[12] 사실 현종은 강조 암살 시도 전에 강감찬에게 입막음하면서 일에 휘말리지 말고 일찍 퇴궐하라고 말했다.[13] 4회에서 강조에게 신랄하게 밀어붙었던 모습이 무색하게 엄청나게 쩔쩔매는 모습이다.[14] 이 때 현종이 강감찬의 격려가 아버지 같다는 표현을 한다. 전쟁을 앞둔 진지한 상황이지만 현종이 왕건의 손자이고, 최수종 배우의 대표작을 생각하면 일종의 배우개그.[15] 최소한의 보급품만 가지고서 출정하고, 나머지 필요한 보급품은 전장에서 약탈로 확보하는 것.[16] 그 문답으로 당대 거란군의 상황이나 특성이 어떠한지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는다.[17] 성종 치세에 10만이 쳐들어왔을 때도 그 난리가 났는데 40만을 어떻게 이기냐고 말한다. 이에 강감찬이 고려군도 30만이라고 위로하니까 농사짓던 사람까지 박박 긁어모은 30만이 평생 전쟁하던 사람들로만 채워놓은 40만과 같냐고 반박한다. 전체적으로 양군 전력 차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는 대화이다.[18] 민간인인 아내도 아는 사실을 강감찬이 모를 리가 없다. 앞서 현종에게는 결국 고려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 장담하고 격려해 주었지만, 누구보다 고려군의 질적 열세를 잘 아는 입장에서 지난 전쟁을 통해 정반대의 상황을 예측하며 비관하고 있을 여느 백성들의 심정을 면전에서 들은 셈이니 많은 고민이 들었을 것이다.[19] 암만 들어도 후일 역사에 대한 복선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소소한 웃음을 줬다.[20] 그래도 강감찬은 다 알고 있었지만 현종에게 보고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21] 이때 아내의 말을 통해 그동안 노비들도 다 쫓아내고 죽마고우들과도 의절해 사실상 사적인 인간관계는 아내밖에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동체주의가 강했던 전근대 사회에 개국공신 집안 사람이 이 정도로 처참한 인간관계를 자랑한다는 점에서 강감찬이 얼마나 꽉 막힌 성격을 가졌는지를 보여준다.[22] 제1차 여요전쟁은 993년에 일어났났고, 992년에 태어난 이후 궁에 있다가 사수현(현재의 사천시)에 유배되었던 아버지에게 의탁했던 현종은 자라면서 당시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전쟁이 있었단 이야기를 듣는 것 외엔 전쟁을 알 방도가 없었다.[23] 아내의 분노는 당연한데 30년 넘는 결혼 생활에서 명문가임에도 남편 성질머리 때문에 노비 하나 없는 아낙네 생활에 지방을 전전하는 처지다. 그럼에도 바가지 긁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냥 넘어갔지만 폐하에게 간언을 넘어 충고를 했으니 아내 입장에서는 화를 넘어 미칠 노릇이다.[24] 친조문에는 '직접 만나고 싶다'는 내용만 들어갈 것이며, '항복'이라는 말과 언제 만날지는 언급도 안 할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고려는 이후 여몽전쟁에서 여러 차례 이 방법을 활용하기도 했다. 이런 강감찬의 말에 현종은 적어도 외교엔 신의란게 있어야 하지 않냐고 말하지만, 먼저 신의를 저버린 것은 거란이기에, 고려 쪽에서도 구태여 신의를 지킬 필요가 없어 아무 부담 없이 저지를 수 있는 일임을 부각했다.[25] "대체... 경은 어떤 사람이오? 처음에는 아버지처럼 자상한 늙은 신하였소... 그 다음에는, 바른 말하기 좋아하는 고집쟁이 신하였소. 한데, 이제 보니 승리에만 미쳐있는, 광인 같소..." 글로만 보면 강감찬을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강감찬의 기만작전에 감탄하는 것이다.[26] 이때 강감찬이 반쯤 주눅들어 다녀오겠다고 하는데 부인은 쳐다도 보지 않지만, 강감찬이 문 밖을 나서자 그의 뒷모습을 아련히 바라보는 츤데레적인 모습을 보이는 장면은 소소한 개그 포인트이다.[27] 이때 강조의 죽음마저도 기만책을 위해 서슴치 않고 이용한다. 상술한 효수된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고도 야율융서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강조를 역신으로 칭하는 모습이 냉혹해 보일 정도.[28] 시간을 벌기 위한 거짓 항복이라는 건 극비 사항이므로, 적 진영 한복판에서 이를 사실대로 말해줄 수 있을 리 없다.[29] 이 때 강감찬이 쓰고 있는 관모는 한기가 쓰던 것이었다. 압송 도중 관모를 잃고 끌려간 지라 급히 대체한 걸로 보인다. 작중 고려와 거란의 관모는 형태에서 차이가 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강감찬이 쓴 관모는 작중 거란의 관모와 일치한다. # 설명하자면 고려의 관모는 사모뿔이 리본 모양으로 머리 뒤에 꽂히지만 거란의 관모의 사모뿔은 직사각형이다.[30] 양측 다 나름의 논거는 있다. 고려가 항복을 한다면 거란이 포로로 끌고 간 백성들의 삶은 장담할 수 없으며, 이 때의 항복을 빌미로 거란이 후대에 어떠한 요구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본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 이후 250여년이 지나 몽고와의 전쟁에서 화의를 청한 후의 고려와 600여년 뒤에 해당되는 병자호란 때 삼전도에서 항복한 이후 끌려간 백성들의 삶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반대로 최항과 채충순은 아예 멸망하고만 발해의 예시를 들며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전쟁에 패해 나라가 완전히 멸망했을 때 백성들이 겪을 고통보다는 덜할 것이며, 항복의 조건과 거란의 요구 또한 협상에 나서 적절한 수준으로 타협하겠다는 입장이었다.[31] 여담으로 강감찬의 배우 최수종의 대표 배역이 이 캐릭터이다보니 마치 할아버지손자에게 제왕학 공부를 시키는 배우 개그가 자주 느껴진다. 특히 거란 관련해선 그야말로 1타 강사로 나온다. 아닌 게 아니라, 왕건이 죽기 전 박술희를 통해 남긴 10개의 유언 중 하나가 '거란족을 믿지 말라.'였다.[32] 이 당시 현종의 스승 역할을 한 신하는 최항이었다. 6화에서 강감찬 아내가 '폐하가 스승으로 삼은 재상이 엄연히 따로 있지 않냐'고 하는 대사가 있다.[33] 실제 사촌은 아니고, 『진주 강씨 세보』에 따른 것으로 강민첨이 15살 아래라고 하며, 진주 강씨의 분파에서도 강감찬은 '인헌공파(仁憲公派)'의 파중시조(파조는 아버지인 강궁진)이고, 강민첨은 '은열공파(殷烈公派)'의 파조이다.[34] 정작 나이는 강감찬이 24살이나 많다. 한마디로 강감찬의 아들뻘 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최항은 강감찬에게 강공이라 부르며 상호존대한다.[35] 강조가 은대와 중추원 폐지 및 개편안을 들고 나왔을 때 최항 역시도 침묵했다. 그리고 여기에 이유를 물어본 강감찬에게 위험한 짓하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했다.[36] 심지어 강조의 반역을 대놓고 비판한 그 최항조차도 지나치다며 한소리 할 정도다. 그런데 강감찬이 하는 말들이 죄다 팩트인지라 시청자들 사이에선 팩트폭격기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37] 10회에서 서희의 아명인 염윤을 말해 서희와 친분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서희와 강감찬은 5~6세 정도의 나이 차가 있어 친분이 있다는 설정을 넣어도 어색하지는 않다.[38] 부친인 강궁진이 후삼국통일에 공을 세운 삼한벽상공신이다.[39] 이는 2차 여요전쟁을 다룬 원작 소설 1부에 해당하는 전개인데 원래는 '양규'가 주인공인 파트이기 때문에 강감찬의 등장이 원작에서부터 적었기 때문이기도 하다.[40] 관직 생활 자체는 36세인 983년(고려 성종 2)부터 시작해 제법 오래하였다.[41] 사실 이 때문에 전작인 천추태후에서는 각색해서 연배가 나름 위라 할 수 있는 '경주원군 왕욱'의 친우로 설정하고, 황주 가문(천추태후인 숭덕궁주 황보수 집안)의 문객으로 있다가 조정에 들어가는 등의 설정을 넣었다.[42] 관직 진출은 막혔을지언정, 가정에서만큼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지위에 있었다. 재산 균분 상속이라던가 제사 주관을 무조건 아들이 하는게 아닌 딸이 하는 등, 조선 초기까지도 살짝만 바뀌고 이런 상황이 지속됬다. 그 증거로 율곡 이이 집안의 재산 상속 관련 문서를 보면 제사 몫으로 빼는 1/5를 제외한 나머지 재산을 딸이나 아들 가리지 않고 균분 상속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흔히 알고있는 선남후녀나 제사는 무조건 장자같은 규칙은 임진왜란 이후 남성의 인구가 확 줄어든 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다만 사회적 지위가 동등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 여성이 가족 내에서 지위가 동등했던 것은 혈통의식 때문이며, 절대 현대의 성평등과 같은 개념이 아니었다.[43] 다만 제국이란 말은 사실 구한말 시기에나 등장하는 어휘다.[44] 학계에서는 이를 이원(二元) 체제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작중에서는 이를 의도적으로 보여주듯, 거란족 신하와 한족 신하의 모습이 이전의 사극들보다 뚜렷하게 구분되고, 이들이 함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소배압한덕양, 오르도(군주의 천막) 안에 황제의 좌우로 앉아있는 거란족 신하와 한족 신하들, 현종을 만나러 오는 거란의 사신인 한족 한기와 그를 말 밑에서 호위하는 거란족 병사 등이 그 예시. 한기 등은 복장도 붉은색 관복을 입어, 복장만 보면 옆에 있는 고려인 신하들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국명을 한식 명칭인 '대요'가 아닌 '거란'으로 언급한다. 성종 시절에는 한자 국명도 '대거란(大契丹)'이었기 때문(김인희, <움직이는 국가, 거란>, 25~28쪽). 한편으로, 거란족 군주인 성종 역시 유학을 받아들였다는 강감찬의 말을 입증하듯, 전쟁을 일으킬 '대의명분'을 세심하게 골몰한다.[45] 강감찬의 기만 작전을 듣고, 아무리 적국이라도 외교에는 최소한의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현종의 말에 대한 대답.[46] 8화 마지막에 내레이션으로 나온 대사. 강감찬의 기만작전 내용을 듣고 현종이 감탄하자 한 대답.[47] 언뜻 보면 되게 단순하지만, 현종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 같은 신하로서 의미심장할 만큼 든든하면서도 진심 어린 조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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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4 16:12:08에 나무위키 강감찬(고려 거란 전쟁)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