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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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S 1TV 로고(1984-2018) 화이트.svg 대하드라마
파일:대왕의 꿈 로고.png (2012~2013)
大王의 꿈 / Dream of the Emperor


파일:대왕의 꿈_포스터.jpg

캐치프레이즈
삼한일통, 위대한 꿈을 둘러싼 왕들의 전쟁
시청 등급
파일:15세 이상 시청가 아이콘.svg 15세 이상 시청가
방송 시간
· / 21:40
방송 기간
2012년 9월 8일 ~ 2013년 6월 9일
방송 횟수
70부작
장르
대하사극
제작
파일:KBS 로고(1984-2023).svg[[파일:KBS 로고(1984-2023) 컬러 화이트.svg 자체제작
채널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제작진
연출
신창석, 김상휘
극본
유동윤, 김선덕
출연
최수종, 김유석, 박주미(교체 전), 홍은희(교체 후), 이영아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오프닝
4. 줄거리
5. 시청률 및 사건 사고
5.1. 주연들의 연이은 사고와 투혼
5.2. 시청률 고전과 조기종영
6. 평가
6.1. 방영 중
6.2. 장점
6.3. 한계
7. 역사 탐구
7.1. 소품 관련
7.2. 호칭 관련
7.3. 인물 관련
7.4. 각색 관련
8. 방영 전 정보
8.1. 전작들과 차별화되는 점
8.2. 캐스팅 관련
9. 여담
9.1. 배우개그적 요소
11.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2012년 9월 8일부터 2013년 6월 9일까지 방영된 29번째 KBS 대하드라마.

총 70부작. 가제는 '태종 무열왕'이었으나 본격적인 방영을 준비하면서 해당 명칭으로 확정되었다. 고유명사였던 가제 대신 대왕이란 일반명사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는 포커스가 김춘추 1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제작진도 이 점을 노리고 있는 듯. 타이틀에는 태종무열왕의 비중이 가장 크지만 트레일러상에선 김유신을 훗날 추존된 시호 흥무대왕이라고 명시하고 있고 스토리상으로도 김유신의 비중이 진 주인공에 가깝다. 참고로 흥무대왕이라는 이 시호는 최종화의 내레이션에서도 깨알같이 설명했다. 김유신은 부계로 해당 왕국 왕족이 아닌 사람 중에서 왕으로 추존된 한국사 전체에서 유일한 사례다.[1] 즉, 드라마 제목의 '대왕'에는 역대 국왕들뿐 아니라 김유신까지 포함시키는 중의적 의미가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중심 소재 및 배경은 신라의 29대 태종 무열왕 시기(삼국통일전쟁기)이다. 앞서 광개토태왕근초고왕 두 작품이 그 당대조차 끝까지 제대로 못 다뤘던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진평왕 연간부터 문무왕의 재위 중반까지 5대에 걸쳐 포커스를 맞추었다. 당초엔 난세 종식 이후 문무왕 치세 후반에 신문왕 치세까지도 조명할 계획이었다고도 하는데 당시 한국 사극의 고질적 문제였던 후반부 흐지부지 용두사미에 걸려서 신문왕은 아역만 등장하고 생략되었다.

전작들이 군사적 전성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신라의 제24대 진흥왕 소재를 기대했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신라의 전성기'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삼한일통에 박차를 가한 무열왕과 뒤이은 문무왕, 신문왕으로 이어지는 시기 쪽이 더 적격이다.[2] 게다가 진흥왕은 고구려로 치면 광개토대왕보다는 오히려 태조왕이나 미천왕에 가까운 케이스로, 6세기가 신라의 본격적인 도약기임은 사실이나 최전성기라고 보기엔 조금 모자란 감이 있다. 다만 무열왕의 치적은 근초고왕, 광개토대왕, 진흥왕의 무력에 바탕한 정복보다는 외교적 수완에 기운 측면이 좀 더 강한 것은 사실. 그 대신 무력 담당인 흥무대왕 김유신과, 삼국통일의 공로로 그 능역까지 대왕암이라 불리우는 문무왕을 주연급으로 부각시켰다.

메인 주인공의 태종 무열왕(김춘추)역에는 《대조영》 이후 모처럼 사극불패로 유명한 그리고 나라를 두 번이나 건국한 최수종이번엔 통일신라를 세우기 위해 복귀한다. 또 다른 주연인 김유신 역에는 연기파로 유명한 최재성이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최재성이 승마 연습 중 낙마사고로 부상을 입어 하차하게 되었으며 결국 김유석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몸을 추스린 최재성은 계백 역으로 다시 캐스팅 되었다.


2. 오프닝[편집]





3. 등장인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대왕의 꿈/등장인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줄거리[편집]


화수
상세
1~8
김유신과 김춘추의 만남
609~612년
가야계 출신의 김유신은 화랑이 되고자 서라벌에 상경하여 아버지 김서현의 절친인 김용춘의 집에 의탁하면서 그의 아들인 김춘추와 만나 인연을 맺고 함께 삼한일통의 대의를 이룰 것을 약속한다. 이 과정에서 귀문단의 수장인 비형랑과 귀문 사람들과도 인연을 맺는다. 춘추의 아버지이자 폐주 진지왕의 아들 김용춘은 진평왕과 사도태후에게 필요하다면 비굴하게 고개 숙이는 것까지 감수하면서 잃어버린 왕위를 찾으려 절치부심한다. 파진찬 알천과, 자신의 이복동생 비형랑이 각각 춘추와 용춘을 차기 후계자로 밀지만, 용춘은 그들의 도움 없이 용상을 되찾으려 한다.
신라 왕실 최고 어른인 사도태후와, 후사가 없는 진평왕의 왕위 계승자로 거론되지만 광증을 앓는 국반 갈문왕은 춘추를 진평왕의 후사로 세워야 한다는 공론이 일어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춘추를 잠재적 위협으로 판단해 제거하려 한다.
사도태후에 의해 진평왕의 장녀 덕만과 국반 갈문왕의 혼인이 추진되자 김춘추는 화랑들을 모아 이에 반대하려 하지만, 김유신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춘추는 유신과 의절을 선언하고 서라벌을 떠난다.
9~19
김유신과 김춘추의 성장
622~631년
10년 뒤, 김춘추는 서라벌로 돌아와 김유신과 재회하여 의기투합하고, 각각 사정부령과 화랑도 상선이 되어 삼한일통 대업을 위해 노력하지만, 승만왕후와 서라벌 거문대족들의 방해에 부딪힌다. 한편 김춘추는 축국 시합 후 과음한 상태에서 김유신의 집에 의탁했다가 김유신의 누이인 문희와 정을 트며 본의 아니게 사고를 치고, 김유신이 문희를 화형시키겠다며 한바탕 난리법석을 겪은 끝에 문희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김춘추와 김유신, 덕만공주는 백제 태자 의자를 만나 백제와 신라의 화평을 도모하려하지만 조정의 방해 공작으로 번번이 실패하고, 승만왕후는 자신이 원자를 낳아 대통을 잇는 동시에 섭정이 되어 신라를 쥐락펴락할 생각에 권모술수를 마다하지 않다가[3][스포일러], 결국 백제 무왕과 내통하여 당항성을 내어주기로 한 이적 행위가 김춘추에 의해 탄로나 진노한 진평왕에 의해 폐후 당하게 된다.
한편, 고구려 낭비성 전투에서 김유신과 귀문단 출신 인물들이 활약하는 데, 이 덕분에 귀문에게 사면령이 내려져 비형랑은 귀문 병사들을 투항시켰으나, 이들은 승만왕후에 의해 모조리 척살당하고 말고, 이 때문에 비형랑은 복수심에 타오르고 만다.
20~33
승만왕후의 난과 선덕여왕의 즉위
631~642년
폐후된 승만왕후는 그 동안 착복한 재물들로 군사를 키우고 있었고, 칠숙·석품을 휘하에 두고 반란을 일으켜 왕궁을 점령하고 진평왕에게 약을 먹여 혼미하게 만들어버린다. 승만의 난에는, 복수심에 불타 있던 비형랑과 귀문까지 가세하여 신라 조정은 혼란에 빠진다. 김춘추와 김유신, 덕만공주는 승만의 난에 항거하여 진평왕으로부터 덕만을 섭정으로 삼는다는 혈서를 얻어내어 이를 명분으로 항전한다. 이 과정에서 승만의 원자가 진평왕의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주요 인물들에게 알려지고, 승만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김춘추와 덕만은 대야성주 비담을 끌어들였고, 비담은 덕만을 옹립하고 권력의 중심에 들어설 야심을 갖고 서라벌로 진격하여 난을 진압하는 공을 세운다.
승만은 결국 자기 손으로 원자를 독살하고, 난이 진압된 후 겨우 목숨만 부지된 채 유배를 당하며 상황 종료. 난에 협조했던 비형랑 또한 김유신의 손에 최후를 맞이한다. 난이 진압되고 얼마되지 않아 진평왕이 승하하고, 선덕여왕이 즉위한다. 권력의 핵심으로 들어선 비담은 자신의 군권을 통해 조정을 쥐락펴락할 생각에, 김춘추와 김유신을 압박하고, 백제와의 긴장 관계를 조성하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술수를 부려, 백제 태자 의자는 결국 신라와의 화친 노선을 포기하고, 의자왕은 등극 후 신라를 멸망시키기로 작심한다.
성장한 김춘추의 장남 김법민은 혈기만 앞세워 아버지와 숙부 김유신의 걱정을 사고, 승만의 친딸이자 어릴 적 인연이었던 연화가 비담에게 기녀로 거둬져 있다는 것을 알고 연화와의 연을 통하느라 비담과 충돌해 틈만 나면 사고를 친다.
34~43
대야성 전투와 춘추의 고군분투
642~647년
비담이 조정을 내세워 선덕여왕과 춘추, 유신을 계속 압박하는 가운데, 백제 의자왕은 당항성을 노리는 척하면서 대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김춘추의 딸 고타소와 사위 김품석을 죽인다.[스포일러2]
같은 해,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의 정변이 일어나 영류왕이 시해되고 보장왕이 등극한다. 김춘추는 고구려에 사신으로 들어가 고구려와 신라의 화평을 청하지만, 연개소문은 신라가 진흥왕 대에 고구려에게서 빼앗은 죽령 이북의 땅을 반환할 것을 요구하며 김춘추를 억류한다. 이에 김유신은 친히 군사를 이끌고 가서 김춘추를 구해오고, 김춘추를 구명하는 것을 방해하고 죄를 물으려는 비담과 조정 신료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비담이 권세를 키워가며 점점 야욕을 드러내자, 알천은 비담을 멀리하고 다시 춘추를 차기 대통으로 밀려 하고, 비담 역시 김춘추를 포섭하려 하나 김춘추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이에 비담은 알천과 춘추의 회동을 반역 모의로 몰아 김춘추가 왜국으로 피신하게 만든다.
44~52
비담의 난부터 춘추의 등극까지
647~654년
선덕여왕은 숙원 사업인 황룡사 목탑 건설을 추진하면서 병을 얻어 쓰러지고, 김춘추와 김유신이 모두 곁에 없는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비담을 상대등으로 임명하여 정사를 맡기지만, 비담은 상대등이 되자마자 화백 회의를 통해 자신이 섭정에 오르려다가 서라벌로 온 김유신과 선덕여왕에게 일침을 당한다. 게다가 김춘추에 의해 선덕여왕의 후사는 유일한 성골인 국반 갈문왕의 딸 승만으로 결정되고, 이에 반발한 비담은 자신의 세력을 동원해 '여주불능선리'라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에 동참한 귀족 세력들의 추대로 섭정에 올라 기세등등하게 밀어붙였지만 김유신의 활약으로 선덕여왕의 부고라는 상황 속에서도 역전하여 비담의 난을 진압한다. 비담은 백제에서 망명오라는 제안을 거부하고 변방에서 항거하다 최후를 맞는다.
비담의 난 진압과 진덕여왕의 등극 이후, 김춘추와 김유신은 기존의 귀족 세력을 흡수한 알천과 은근한 대립을 하게 된다. 한편, 당에 사신으로 다녀와 당 태종 이세민과 만난 후 김춘추는 친당, 나당 동맹 노선을 천명하며 당의 관복과 연호를 쓸 것까지 주장하고, 이에 평생의 동지인 김유신까지 반발하며 그와 의절하기 직전까지 간다. 진덕여왕은 병에 들자 선덕여왕의 유지대로 춘추를 후계자로 삼으려 하지만 알천은 이에 반발하고, 춘추 또한 사양하며 결국 진덕여왕의 후계는 화백회의를 통해 결정키로 한다. 친당 노선으로 인해 자신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걸 아는 김춘추는 섭정 자리를 포기하여 알천이 섭정에 등극하려는 찰나, 김유신과 김법민은 알천이 고구려와 내통했다는 증거를 밝혀 드러내고, 한 차례 충돌이 있은 후 알천은 춘추에게 섭정 자리를 양보한다. 진덕여왕 사후 김춘추가 등극한다.
53~70
무열왕과 문무왕의 삼국통일전쟁
654~676년
무열왕의 등극 이후 조정은 친당과 반당으로 나뉘어 반목하게 되는데, 김춘추는 이들을 모두 아우르며 내정을 바로잡고, 결국 김유신을 설득하여 그가 나당동맹 대의에 조건부로나마 찬동하도록 협조를 얻어낸 뒤 백제 정벌을 도모한다. 분열되고 민심이 이반된 백제는 나당연합군에게 밀리고, 계백은 황산벌에서 치열한 저항 끝에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다. 백제 정벌과 멸망 이후 당나라가 끊임없이 야욕을 드러내자 김유신은 폭발하여 당군 및 나당 동맹을 계속 유지하려는 무열왕과 조정 내 친당파들과 충돌하게 되고, 이에 태자 법민까지 김유신에게 동조하여 신라 조정은 분열의 위기에 처한다.
간신히 분열이 봉합되고 무열왕은 서거한다. 문무왕의 등극 후, 나당연합군은 백제부흥운동까지 진압하고, 연개소문의 사후 내부 분열된 고구려까지 멸망시킨다. 고구려 멸망 이후 문무왕은 당나라에 맞설 것을 천명하고 이에 당 고종은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을 신라 왕으로 책봉하여 반목하게 하지만, 결국 나당 전쟁에서 승리하고 삼국 통일을 이뤄낸다.




5. 시청률 및 사건 사고[편집]



5.1. 주연들의 연이은 사고와 투혼[편집]


이 드라마의 흥행이 지지부진했던 원인은 다른 것도 많긴 했지만 특히 운이 나빴는지 주연급 배우들에게 탈 것과 관련된 사고가 꽤 있었다. 본래 김유신으로 내정되었던 최재성이 낙마사고로 하차하고 김유석으로 교체되기도 했으며, 최수종도 교통사고와 낙마사고를 각각 한번씩 겪었다. 선덕여왕 역의 박주미도 2012년 10월 23일 늦은 밤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는 도중 뜻하지 않은 차량 추돌사고를 당해 매니저, 코디네이터와 함께 부상을 입었는데 다행히 안전벨트 덕에 타박상 정도로 그쳤지만 결국 8주 진단을 받고 하차하기로 결정됐으며, 해당 역은 유준상의 아내인 홍은희가 이어 가게 되었지만 그 여파로 총 4주를 결방하여 총집편 방영으로 대체했다. 관련기사 그러다 연말에는 또 다시 주인공인 태종 무열왕역의 최수종이 촬영 도중 빙판에 말이 미끄러지면서 낙마 사고를 당해 결국 수술을 하게 되었다#[4]. 계속되는 사고와 악재가 겹치는 시청률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결국 제작진은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하기에 이르렀다#. 최수종의 부상이 가볍지 않아 결국 수술을 받았다. 이에 결국 새해 첫 방송은 신년 특집 다큐멘터리로 대체했다. 1월 12일부터 방영 재개. 제작진은 대본상으로 최수종의 출연을 최소화해서 회복을 돕도록 배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그 결과 회복기간인 3주간은 최수종이 드라마에 멀리 가 있다는 설정으로 직접 출연하지 않고 대신 목소리 연기만 나오게 되었다.

이처럼 주연 배우들의 사고로 인한 2~3차례의 방영 중단은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로, 같은 방송사에서 방영했던 《각시탈》에서도 엑스트라 출연자가 사망하게 되었던 사례도 있었는데 이 드라마 역시 배우들의 촬영사고가 이어지는 불운이 겹치게 되었다. 결국 제작진 측에서는 배우들의 신변 안전 등을 고려하여 더 이상 촬영사고가 없도록 배우들의 건강상태 그리고 촬영세트 상태 등을 철저히 점검하고 말 등의 동물들도 수의사 등을 통해서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등 안전한 촬영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드라마 촬영장에 액운이 낀 것이 아니냐', '각시탈도 그렇고 KBS 드라마에서만 유독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배우들이 괜한 고생과 사고를 당하는게 아닌가 걱정된다'는 등의 우려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악재의 연속이라 할 만한 부분들이지만 제작진 측도 이런 갑작스런 사태에 대한 대비가 미흡한 것은 개선되어야 할 점이다.

그러나 이런 악재 와중에도 주연을 맡은 배우들은 배역에 대한 애착과 열의로서 전례 없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특히 타이틀 롤인 최수종은 골절상을 입는 부상 속에서도 작품에 대한 애착이 크다면서 완치되지 않은 몸으로도 중도 하차 없이 목소리라도 출연을 계속 했다[5]. 실제로 맡은 배역에 대한 애정과 관심 또한 대단해서 촬영 중에도 줄곧 김춘추 관련 서적들을 숙독하며 김춘추의 이상과 진정성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고 그에 맞게 연기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대본 리딩 때는 배역에 몰입하다 그만 눈물을 쏟기도 했을 정도라고.

또 선덕여왕 역 박주미 역시 교통사고 후에도 출연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천명하였기에 제작진이 몇주간 거듭 회의를 거치고서야 배역 교체가 이뤄졌고, 낙마사고로 주인공 김유신 역이 불발된 최재성 역시 기어이 라이벌 계백 역으로 컴백하여 열연했다. 이렇듯 주연들과 스텝 모두 드라마에 대한 애착과 투혼 및 상호 배려가 빛났으며, 이러한 미담은 연기자의 갈등과 트러블로 얼룩졌던 근초고왕 등의 사례와 대비된다.


5.2. 시청률 고전과 조기종영[편집]


초반부 시청률은 대략 12~13% 대로 그럭저럭 출발했었다. 그러나 승만의 난 파트와 4주 결방을 기점으로 극의 흐름이 너무 뜬 탓인지 이 시점부터 시청률은 전작인 천추태후광개토태왕보다 낮고, 근초고왕보다는 소폭 높고, 대략 대왕 세종 중후반부의 시청률과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대왕 징크스인가 이후 10% 초반대에 머물던 시청률은 60회가 넘어가면서부터는 68회에서 잠시 두자릿수로 반등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8~9%대 시청률을 기록하였고, 결국 최종회에서 한자리 수 시청률(TNmS 전국 8.9%, AGB닐슨 전국 9.3%)을 기록한 KBS 대하드라마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는 대 히트작 용의 눈물 이래 KBS 대하드라마에서는 단 한번도 없었던 일이다. 평균 시청률 또한 약 11.2%로 한일병탄 100주년을 맞이해서 특별편성된 자유인 이회영(7.6%) 보다는 높았지만[6] 자유인 이회영을 제외한 역대 최저였던 근초고왕(11.0%)보다 겨우 0.2%p 높은 정도였다. 총 제작비 280억을 투입하고 방영하기 앞서 스페셜 방송에 사극계의 거물이라 할 수 있는 최수종까지 투입했음에도 시청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7] 앞서 최수종 주연작 중 태양인 이제마도 중반부터 흥행이 부진했으나 이쪽은 대하사극이 아니었다.

이런 와중 당초 기획인 80회에서 10회 단축한 70회로 조기종영이 결정됐다. 제작진의 입장으로는 주연배우들의 부상으로 인한 약 5주간의 결방이 있었던 차에 종영일자를 맞추다 보니 회수 조정이 있게 된 것일 뿐 시청률로 인한 조기종영은 아니라고 한다.

결국 70회로 종영. 원래 후속으로 강철왕을 편성하려고 했으나 노조의 반대로 무산되었으며 이후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 정도전 방영 이전까지 다큐멘터리 혹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대체하였고, 이후 주로 글로벌 다큐멘터리가 해당 시간대에 편성되었다. 이에 대해 예산 문제라거나 시청률 문제는 아닐까 하는 입담이 오가고 있다.


6. 평가[편집]



6.1. 방영 중[편집]


2012년 9월 2일 스페셜 방송을 시작으로 9월 8일 본격 방영을 시작했다. 김유신이 백제 멸망 이후 신라가 당나라에 접어주는 태도에 반발하여 거병하여 김춘추와 칼을 맞대는 장면으로 긴장감을 조성하고 본편으로 넘어갔다. 이에 대해 실제로 있지도 않은 사건을 무리해서 묘사했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62화 방영분에서 이 인트로 장면은 무열왕의 불길한 꿈으로 밝혀졌다). 물론 이건 무열왕이 그만큼 김유신에 대한 경계가 높았다는 것을 상징하는 극적 장치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김유신은 소정방과의 유명한 대화[8] 등에서도 엿보이다시피 당나라를 상당히 아니꼽게 생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사실 이렇게 당나라의 개입을 두고 김유신과 김춘추가 대립구도로 갔다는 해석은 이미 2003년 사극 영화인 황산벌에도 묘사된 바 있다. 이 영화는 다소 블랙코미디 끼가 있긴 하지만... 그런데 이 장면이 김춘추의 꿈이라고 나온 이후 드라마에서 김유신이 김법민과 손을 잡고 친당파에 맞서 반기를 들다가 결국 전면전 직전 춘추와 유신의 독대를 통한 타협으로 마무리된다.진흥왕 : ???

드라마는 진평왕의 후사 결정을 둘러싼 갈등을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대략적인 인물 등장과 함께 김춘추, 김유신의 아역과 덕만(선덕여왕), 김용춘, 사도태후, 숙흘종, 진평왕 등 주요 비중이 될 인물들이 드러났다. 같은 시기 같은 나라를 다룬 MBC의 《선덕여왕》보다 역사적으로 비슷한 점이 꽤 많은데, 우선 논란이 많은 미실이 나오지 않는다! 이환경 작가의 《연개소문》에서도 초반에 미실이 단역으로 등장한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차이를 보이는 점. 진지왕의 폐위도 미실이 아니라 모후인 사도태후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설정되었다.

드라마 초반 사극 매니아들은 KBS 대하사극 중 드디어 본방사수를 할 만한 작품이 나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예외적으로 선덕여왕미실비담을 돌려달라는 식이라거나, 혹은 뜬금없이 영호남 지역갈등을 대입시키는 괴반응들이 있지만[9] 전체적으로는 호평이 주를 이뤘다. 아예 소재인 태종무열왕 자체를 까면서 반민족 운운하는 반응도 있으나 이는 근현대적 민족주의를 고대사에 대입하거나, 일제시기 식민사관의 잔재로 신라조선을 폄하하는 시각이 개입되었음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그러한 의도적인 폄하와는 별개로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그들과 관계없는 일반 시청자들이나 사극 매니아들에게서도 비판의 소리가 제기되었다. 바로 다음 단락에서 다루는 주연 배우들의 사고로 인한 결방 및 승만왕후의 난 분량을 지나치게 늘리면서 극의 진행이 늘어졌고, 최수종이 목소리 연기를 마치고 복귀한 이후에도 드라마는 삼한통일의 국제전과 정치, 외교를 원하는 시청층의 기대와 달리 김춘추와 김유신 두 사람의 인간적인 관계가 극의 중심 내용으로 부상하며 스케일이 줄어든 드라마가 되었다는 비판이 사극 마니아들로부터 나왔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흥미도가 떨어져 일반 시청자들이 이탈하여 10% 미만까지 떨어진 막판 시청률로 나타나게 되었다.

김춘추가 승하한 후에는 그나마 다행히 막판 들어서의 전개는 밀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특히 68화의 백강 전투는 한국 사극 사상 유례없는 고대의 수상전을 묘사하였으며, 이제껏 사극 속 수상전에서 흔치 않았던 충각 전술과 갈고리 전술, 투석기 활용, 수상 화공 등 시청자들의 갈증을 풀어줄 실감나는 수상 전투 장면들이 묘사되었다. 동시에 병행된 백병전은 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볼만한 전투였다는 평까지 나올 정도이며 방영 여유만 된다면 족히 2회 이상은 끌어도 좋을 정도의 고증과 물량 투입이 엿보이는 묘사였으나 아쉽게 1회 내에서 종결되었다. 이에 그동안 최수종의 인지도나 출연료 탓에 정작 길게 나와야 할 이런 장면들이 편집당하는 대신 무열왕 치세 비중이 높았던 것 아닌가 하는 반응도 나왔다. 마침내 결말에 이르러 주인공 김유신의 죽음 및 후세의 평가가 드라마의 대단원이 되었고, 이후 나당전쟁의 승리와 문무왕의 행적 등의 후일담이 해당되는 장면과 함께 10분만에 내레이션으로 처리되면서 70회에 걸친 숨가쁜 전개도 비로소 그 막을 내렸다.


6.2. 장점[편집]


  • 7세기 당시의 국제관계 조명
지금까지 삼국통일전쟁을 다룬 작품들은 여럿 존재하지만, 당시의 삼국과 주변국인 당나라는 물론 와의 역학관계까지 모두 비중있게 다뤄낸 사극은 사실상 본 작품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신라가 주인공 진영이기 때문에 신라 쪽 묘사가 가장 크고 자세한 것이야 당연하지만, 제작비를 아끼려고 하면 설렁설렁 넘어갈 수도 있는 '다른 나라'인 당나라의 저자거리, 왜국의 조정이나 항구 같은 세트까지도 공들여 묘사하고 그들 나라의 내부 사정을 보여줌으로써 분명 이 작품의 미장센은 한극 사극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고대 일본의 경우 실제 역사에서는 삼국과 매우 긴밀한 연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병풍처럼 묘사된게 사실인데, 본 작품에선 삼국과 고대 일본과의 관계는 물론 당시 한반도를 침공한 왜군의 면면까지도 각본에 비중 있게 포함해 을사의 변, 다이카 개신 등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고대사에 대한 국제적 시야를 넓힘에 하나의 성취를 이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정도 고증이면 시대를 달리했을 경우, 임진왜란 묘사 사극에 세키가하라 전투 씬을 촬영한 것에 비견될 정도이다.

  • 의미 있는 주제 의식
그간 제작된 고대사 관련 사극들이 태고의 영광을 재현한다거나, 혹은 그야말로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전기물적인 요소를 극의 주된 테마로 삼음으로써, 재미 면에선 어떨지 몰라도 사극이라는 장르만이 갖는 역사적 교훈성이라거나 시사점 등의 영양가 면에서는 정말 건질게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나마도 딱지만 정통사극으로 달고 있을 뿐, 아예 각색조차도 아닌 완전한 허구에 기반해서 극이 전개되는 경우[10]도 적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별다른 주제가 있나 싶을 정도인 게 태반이었다. 이에 비해 본 작품은 앞서와 달리 상당히 의미 있는 주제들을 보여주었다. 일단 삼국 통일이라는 한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에 대한 화두는 물론이고, 귀문단을 통해서는 골품제 및 양천이라는 계층갈등 속에서의 부조리에 대한 극복 의지를 보여주었으며, 치열한 대당/대일 외교전을 통해서는 국제적 역학관계가 국가에 끼치는 시사점을 제공했다. 게다가 주 무대인 신라에 대해서도 민족 반역자라는 일각의 관점을 배제 없이 하나의 안티테제로 차용하여 삼국 통일의 역사적 의의를 더욱 강화하였다.

  • 백제 망국에 대한 상당한 비중
이제까지의 삼국통일 관련 사극에서 백제는 황산벌 전투 정도를 빼면 그 몰락 과정이 비루하기 짝이 없게 그려졌고, 의자왕은 그야말로 암군이었으며[11], 특히 백제 정규군 이상으로 나당연합군의 애를 먹였던 치열한 백제 부흥운동은 거진 축약 내지 생략된 바 있었다. 물론 백제와 긴밀한 관련을 맺는 역시도 찬밥 취급되긴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과거 사극들에 비해 본 작품에서의 백제는 그 망국 과정에 상당한 포커스가 배분되었다. 일단 몰락하기 이전부터 신라를 상대로 다양한 첩보전과 외교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의자왕이 비록 말년에 사서처럼 암군이 되긴 하지만 수완가적인 측면이나 성숙한 인품 같은 긍정적인 면모도 자주 보여주었으며 나당연합군에 무릎을 꿇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백제의 왕으로서 정체성을 어필하는 등 이전 사극의 찌질이같은 이미지와는 다른 묘사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앞선 사극들에서 백제 멸망 이후의 전개를 대충 넘어간 것과 달리 줄기차게 이어진 부흥 세력과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상당한 묘사를 할애함으로써, 그간 황산벌 전투 외엔 거의 각인되지 않았던 백제 몰락 과정에 대해 주의를 환기한 것 역시도 특기할 점이다.


6.3. 한계[편집]


  • 영웅 사관에 가려진 인물의 입체성
근래 고대사 사극의 트렌드에서는 벗어났으나, 주인공들의 풍모가 초인적으로 묘사되어 한 개인으로서의 어둡고 나약한 일면이 가려지는 기존 사극의 경향은 여전히 떨치지 못했다. 즉 기존 사극에서 역시 초인적인 풍모로 등장한 왕건, 허준, 이순신, 세종 같은 소위 '위인'들처럼, 이 사극의 주인공들도 인간적인 결점은 그다지 드러나지 않은 다소 붕 뜬 '위인'적 존재로서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묘사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보는 시각과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삼국통일은 어떤 거창한 대의에 입각하기보다 신라가 생존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김춘추의 백제 정벌은 국가적 대업 성취 외에 그 개인의 복수적 동기가 작용했음도 인정되는 부분이다. 게다가 김유신도 실제 사서상으론 동생을 속임수를 통해 김춘추와 엮으려 하는 등 나름대로 권력자로서 인간적인 고뇌와 야심이 있었음도 사실이다. 물론 김춘추 내면에 있는 부정적인 일면 역시 또 하나의 자아로서 수시로 등장한 바 있고, 그 말년에는 불의와 타협하며 타락하는 일면도 묘사되면서 인간적인 한계도 드러내지만, 어쨌든 묘사의 무게추가 위인에 가깝게 기운 것도 사실이고 이는 실제로 그가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진 당대의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과도한 감이 있었다. 이 때문에 드라마적으로도 흥미를 유발하는 역동성이 떨어지고 단조로운 전개가 된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12]

  • 상상 씬의 빈번한 활용
역대 KBS 주말 대하사극은 물론 타 방송사의 사극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꿈이라든가 상상 씬이 많았다. 특히 방송 도중 문제시되었던 연화의 웨딩드레스 신 또한 비록 원래 계획된 장면이 아니라 배우 본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고는 하나 그걸 상상 씬이란 이유로 그냥 덮어갈 수는 없다는 점과 말 그대로 고증파괴, 시공간초월의 사례라서 문제가 되었다.[13] 물론 상상 씬도 잘만 활용하면 배역의 내면을 표현하기에 매우 효과적인 장치이고[14], 주인공 무열왕 역 최수종의 경우에도 1인 2역으로 자신의 페르소나와 다투는 연기가 상상이라곤 해도 초심이 흔들릴 때마다 이를 다잡아주는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긴 했지만, 이런 식의 연출이 필요 이상으로 자주 묘사되는 것은 그만큼 다른 방면에서의 감정 전달이 부족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인트로와 막바지에 묘사된 김춘추와 김유신의 정면대결, 김춘추 사후 즉위한 김법민이 김유신의 하극상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장면 등을 상상 씬으로 처리했다. 이런 잦은 상상 씬은 아시발꿈으로 끝나는 작품들이 그렇듯 시청자들에게 허탈감과 단조로움을 유발하기 쉬우며, 시청률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극의 중요한 부분을 이런 작위적 기법에 의존한 작가적 역량이 아쉽다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작가의 전작인 무인시대에서도 사용되었던 기법인데, 이 드라마에서는 더 남발되었다.

  • 비중 배분의 문제
이제까지 제작된 국내 대하 사극들을 훑어보면 예산 문제라든가 시청률을 의식한 것인지 극의 비율 조정에 있어 밸런스가 맞는다기보다는 언밸런스라는 평가가 오히려 더 많았는데[15], 이런 점에선 본 작품도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70회라는 빡빡한 분량 내에서 긴 연대기와 복잡한 국제 관계에 포커스를 맞추어 핵심적인 내용들을 담아내었다는 것은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극의 전반부 진평왕의 치세는 딱히 주인공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시기도 아니라 극의 초반 분량 정도로만 다뤄도 충분함에도 전반부를 통째로 할애하여 지나치게 비중을 늘려 잡았고 설상가상으로 칠숙의 모반 기도를 픽션인 승만의 난으로 확장시켜 6주 이상의 과도한 분량을 할애했다. 또한 이후 본격적인 통일전쟁 과정에서도 대외적인 전쟁보다는 신라 내부의 정쟁과 갈등 묘사를 훨씬 늘려 잡았다. 주류 시청자들이 삼국통일이라는 소재에 기대한 것은 이러한 궁중정치 사극이 아니라 치밀한 국제외교전과 호쾌한 전쟁 사극일 것이었기에, 조선시대 사극마냥 궁중정치사극에 가깝게 배분된 비중은 시청자들의 이반을 유발했으며, 특히 조기종영으로 인한 삼국통일전쟁의 대미인 나당전쟁의 축약은 안타까운 부분[16]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비율을 반대로 두어 진평왕 치세를 간략하게 넘어가고 태종 무열왕, 특히 문무왕의 치세를 대폭 늘려 잡았다면 더 밸런스가 적절했으리라는 반응이 많다.

  • 조연 캐릭터성의 단순화
등장 캐릭터들 중 극에 감칠맛을 전해야 할 조연급의 캐릭터들이 밋밋한 편이었다. 물론 주인공 김춘추를 맡은 최수종의 연기는 호연이었고[17], 김유신 역의 김유석도 초반 청년기의 뻣뻣함을 중년기 이후의 노익장으로 만회하였으며, 비담 역의 최철호라든가 계백 역의 최재성 등의 숙련된 연기력과 개성도 여느 사극의 주연급 이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극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서는 이런 주연들을 받쳐주는 조연들의 적절한 비중과 개성이 요구됨에도 드라마가 삼한일통이라는 무거운 주제로 일관되게 진지함을 추구한 나머지 주연들을 거드는 비중에 그쳤다. 일례로 비담의 난 과정에서 김춘추의 책사 역을 맡는 강수의 경우 등장 씬에서의 강렬한 이미지[18]로 기대를 받았지만 정작 비담의 난 이후로는 김춘추를 거드는 특색 없는 역할에 머물렀다. 김삼광이나 김군관[19] 등도 잦은 등장에 비해 역할 자체는 행동대장 수준이었고, 김인문은 대당 외교 중개역으로서 단편적으로 묘사되었다. 말하자면 개그 하나 없이 시종 진지한 역할이 대부분인데다 그나마도 평면적이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20]

  • 뜻하지 않은 사고
촬영 도중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바람에 배역이 바뀌는가 하면 주인공 역할의 최수종 역시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중상을 당해 몸을 움직여야 할 씬을 전부다 말로 때워버리는 등 드라마의 품질을 크게 저해했다. 이 때문에 동일인물인데도 얼굴이 크게 달라지고 최재성 얼굴이었다가 김유석 얼굴로 바뀐 장수라든가 박주미 얼굴이었다가 홍은희 얼굴로 바뀐 임금님이라든가 회를 거듭할 수록 일부 배역에서 배우의 얼굴이 바뀌어 몰입감이 엄청 심하게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만약 아무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이 드라마의 퀄리티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올라갔을 것이다.

7. 역사 탐구[편집]



7.1. 소품 관련[편집]


사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 고증과 관련하여, 앞서 당대 신라를 묘사한 사극인 《연개소문》, 《선덕여왕》, 《계백》 등에 비해서는 확실히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고증에 대한 지적 사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 비해서는 상당한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신라계와 가야계의 미묘한 차별 정서도 잘 반영했고, 갑옷도 《근초고왕》 당시 선보였던 근초고왕의 유일한 의의로 인정받는 것들을 다시 활용하여 호평받았다. 다만 근초고왕 때 제작한 갑옷을 계승하여 쓰다보니 목경갑이 옆으로 트여있어 목울대를 가리지 못하는 구조를 그대로 이어받은 점은 옥의 티 아니냐는 반응도 있으나, 실제 당대 유물로 출토된 신라와 가야 갑주들을 보면 의외로 목울대를 가리지 않는 목경갑이 많아서 오히려 이쪽이 더 고증에 부합할 가능성이 높다. 신라 갑옷 유물과 그 복원도, 가야의 목경갑.

초반에는 전투 장면마다 모든 장군과 병사들이 투구를 썼으나 차츰 주연 배우들이 투구를 착용하지 않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건 주인공 신라 진영의 주연 배우들 얘기고, 적국인 백제군의 경우 수장인 의자왕부터 잡졸들에 이르기까지 다들 투구 착용에 충실한 걸 보면 투구 고증에 관심이 없는 것 같지도 않다(…). 그래도 주조연들 모두 갑주는 빠짐없이 착용하고 있었으나 대야성 전투가 나왔던 36회에선 성주 품석과 김춘추의 아들 법민도 갑주를 착용하지 않고 돌격하는 모습도 모여줬다.

디테일적 측면에서는 앞서 사극들에서 다소 소홀하게 넘어간 점이 없잖은 경주의 거대 봉분들과 12지신상도 묘사가 나온다. 초반 한차례 등장한 이후 재등장은 없지만... 또한 도성의 원경을 보여주는 CG에 있어선 KBS 노하우의 집약이라 칭해도 좋을 정도의 최상급 퀄리티를 보여준다. 복식상으로도 왕실의 중년 남자들에게도 당대의 트렌드(?)인 귀고리를 착용시키는 등 여러모로 신경 쓴 티가 난다.

뿐만 아니라 극 중 김춘추가 쓰고 다니는 금관은 실제 경주시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관과 많이 비슷하게 생겼다. 극 중 남성들의 패션은 나름 고증에 신경쓴 티가 났던 반면, 여성들의 패션은 아직 이 당시 유행하지 않던 당나라한푸의 일종이었던 제흉유군이 많이 등장했다. 본격 드라마가 방영하기 전에 방영된 스폐셜 방송에 나온 의상 담당자들 인터뷰에 따르면 극 중 당나라한푸가 나온 건 고증오류가 맞지만 한편으로 가슴 위까지 끌어올려서 입는 제흉유군이 극 중 여성들의 몸매를 예쁘게 잘 부각시켜줘서 일부러 채택을 한 거라고 한다. 참고로 신라에서 당나라 복식이 유행한 건 진덕여왕 이후인데 이 때 김춘추가 당나라 복식 수입을 주도했다. 다만 이 당시 김춘추가 도입한 건 단령 관복이고, 극 중 여성들이 많이 입고 나오는 제흉유군은 조금 더 후대인 문무왕 재위 시기에 본격적으로 수입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극 중 시대적 배경과 그렇게 멀은 것도 아니긴 하다. 비록 의상고증은 살짝 미스가 있긴 했어도 여성들의 귀고리의 경우 실제 경주 고분에서 발굴된 금관귀고리와 비슷하게 생긴 것을 착용하고 나오기도 했다.

다만 극에 등장하는 집단인 귀문의 간부들 패션은 아무리 카리스마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고증에 지나치게 맞지 않는다. 《대조영》의 설인귀나 《주몽》의 철기군의 예처럼 당시의 의상이라기엔 너무 급진적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길달의 부하 중 호랑[21]디아블로 2어새신처럼 손갈퀴를 휘두르고, 비형랑의 부하인 여전사 시노는 건곤권을 쓰며, 설화에서 김유신에게 검술을 가르친 스승인 난승은 무협틱한 봉두난발로 나온다. 그리고 가장 분장의 파격도가 높은 길달의 경우는 실사판 북두의 권에 나오는 레이를 닮았다는 반응도 있다. 이는 다른 캐릭터들의 정석적인 복식과 비교하여 너무 튀어서 아쉬운 부분.

19화를 보면 신라 선대 왕들의 영정들이 그려진 곳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영정이 걸려 있는데 문제 되는게 아니라 영정사진이 이상하다. 분명 네이버에 신라 왕들 표준영정을 검색해보면 허리띠 부분이 노란색인데 이 드라마에서는 대부분이 허리띠 부분이 하얀색이다. 심지어 신라시대에 영정이 있는 거 자체가 이상하다.


7.2. 호칭 관련[편집]


사도태후에 대한 호칭 고증의 경우, 마마 대신 폐하[22]라고 하는 점은 고증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대비와 중전, 왕, 세자를 부를 때 쓰는 '마마'라는 호칭은 고려시대 원 간섭기 때 생겨난 말인데도 이제까지의 다른 삼국시대 사극에서는 이를 씹어버리는 용례가 많았다. 그러나 사도태후에 대한 건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 워낙 기록이 없어 대부분 《화랑세기》 내용을 토대로 한 설정을 적용하고 있는 탓에 사도태후의 정식 품계가 태왕태후나 대왕태후가 아니라 태상태후로 나오는 건 아쉽다.

그러나 비담이나 알천, 김춘추가 섭정 자리에 오르자 너나 할것 없이 '섭정 폐하'라 잘못 부르는 점도 눈에 띈다. 섭정은 왕의 대리인으로서 여전히 왕의 신하이지 왕이나 태후가 아니기 때문. 격식에 맞게 부른다면 '합하' 정도의 표현이 적절하다.

자문에는 정통 한국 고대사 전공자인 성균관대학교 박사 김기섭과 서강대학교 총장 이종욱 교수를 고증 자문역으로 올려놓았다. 고증을 맡고 있는 이종욱 교수가 위서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 진서론을 받아들이는 점에서 《화랑세기》와 연루된 고증이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일단 이 드라마 역시 여전히 《화랑세기》의 흔적은 남아있는데, 화랑들의 리더가 풍월주로 지칭된다든가[23], 등장 화랑 중 한명의 이름이 염장이라든가, 천명공주가 선덕여왕의 언니로 설정된 점[24], 그리고 승만부인 손씨가 《화랑세기》의 행적대로 김용춘과 덕만을 시기하고 사도태후의 뒤를 이어 용춘 세력을 견제하는 인물로 나온다는 점 등은 《화랑세기》의 설정을 고려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 《화랑세기》에만 등장하는 진평왕의 후궁인 보량궁주와 그 아들 보로전군도 등장한다. 그러나, 승만부인은 엄연히 《삼국유사》에도 나오는 인물이고 나머지 인물들도 이름과 기본적인 모티브만 빌린 듯 이들의 드라마에서의 행적은 《화랑세기》와는 크게 다르다. 보량궁주만 보더라도 《화랑세기》에선 오래도록 살아남아 노년에 죽지만, 드라마에선 등장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자객들에게 추격받고 살해됐다. 염장 역시 《화랑세기》에선 젊은 시절부터 풍월주 후계자 갈등 이후 김유신과는 악우로 묘사됐지만, 드라마에선 오히려 김유신이 선뜻 지위를 양보해주려 하는 등 관계 개선을 통해 의리를 유지하며 친우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작진에 의하면 사서만으로 부족하거나 밋밋한 내용은 《화랑세기》를 참고는 하되, 미실과 용수처럼 사서와 정면 상충되는 부분은 사서를 우선해서 따르고, 《화랑세기》의 비합리적인 부분은 배제한다는 방침이라고 한다. 그에 따라 김춘추의 아버지가 김용수가 아닌 김용춘으로 설정되었고, 덕만공주의 혼인에 대해서도 《화랑세기》에 나오는 용춘, 용수, 흠반, 을제 대신 《삼국유사》에 따라 숙부인 갈문왕[25]과 결혼한 것으로 되었고 일찍 사별했다[26]. 결정적으로 미실의 비중을 빼버린 대신 비슷한 기믹을 실존인물인 사도태후와 승만왕후가 서로 나눠서 이어받았다. 미실이 이미 선덕여왕(드라마)으로 엄청난 푸쉬를 받았던 캐릭터임에도 극의 진행에서 일부러 그녀 및 그녀의 혈족을 배제한 것은 사서와 충돌하는 부분이 너무 크기 때문. 이에 따라 《화랑세기》상에서 미실과의 직접적인 친족관계에 있는 세종, 미생, 하종, 보종 등 풍월주를 거친 인물들도 전부 등장하지 않고 미실의 다른 자녀들도 마찬가지로 당연히 등장하지 않는다.

여담으로, 신라 때의 인물 설화에서는 남성에 대한 일반 호칭으로 郞(사내 랑)을 쓰는 것을 반영해서인지(연오랑과 세오녀 설화, 화랑인 기파랑이 등장하는 찬기파랑가, 비형랑 설화 등) 극중에서는 실존 인물에 대해서도 드라마 선덕여왕의 선례를 따라서 郞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다. 유신랑이 대표적이고, 아예 "저 랑(사내)은 누구입니까?"라는 대사까지도 있다.


7.3. 인물 관련[편집]


신라 왕실 특유의 근친혼으로 꼬인 족보는 이 드라마에서도 잘 반영되고 있다. 기록상 국반 갈문왕은 진평왕의 동생으로 덕만과는 삼촌-조카 관계인데, 말하자면 진평왕의 할머니인 사도태후는 자기 손자와 증손녀를 결혼 시키려 하는 셈이다. 또한 용춘은 진지왕의 아들로 진평왕과는 사촌사이인데 김용춘의 부인은 진평왕의 딸인 천명공주로 진평왕과 김용춘은 사촌형제 사이면서 장인과 사위가 된다. 더불어 김용춘 역시 사도태후의 손자이므로 사도태후는 자기의 증손자겸 외고손자인 김춘추를 눈엣가시처럼 보는 셈.(물론 아들조차 폐위시킬 정도로 비정한 성격이라고는 하지만) 게다가 드라마 상 숙흘종과 만호부인은 부부인데 만호부인은 진평왕의 생모[27]이므로 만호부인은 남편이 죽자 남편의 작은아버지에게 재가하여 딸인 만명부인을 낳는 셈이니 진평왕과 만명부인은 이부 동생이자 당고모가 되게 된다. 다시 말해 김유신은 진평왕, 김용춘과는 6촌이 되며 김춘추와는 7촌으로서 김춘추와 김유신은 서로 처남-매제 겸 장인-사위가 되게 된다. 다만 이런 관계도를 막장 드라마 뻘 친인척 관계로 보는 건 요즘의 시각이고, 신분제가 엄격하던 당시의 기준으론 오히려 이것이 지극히 당연했다.

무왕과 의자왕이 출연하면 으레 나오는 서동요선화공주 관련 내용은 거의 없다. 사실 선화공주가 등장해 무왕의 아내이자 의자왕의 어머니로 나온다면 무왕은 진평왕의 사위가 되고 선덕여왕의 형부가 되며 김용춘의 동서가 되고, 의자왕은 진평왕의 손자이자 선덕여왕의 조카이자 김춘추의 이종사촌이 되므로 극의 전개에 있어 조금 애매해 질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초반 승만의 난 파트에서 눈에 띄는 연출 오류가 노출된 바 있는데, 대표적으로 초반 승만왕후에 대해 악역성을 부각시키고자 진평왕의 후계자로 쓸 자식을 몰래 바꿔 키우는 출생의 비밀 클리셰를 설정함으로써 연출과 관련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 드라마상에서 반란이 성공했다가 비담에 의해 수포로 돌아간것과 다르게 기록상 칠숙은 석품 등과 함께 반역을 모의하다 처형당했지 실제로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파트에 묘사된 화백회의의 결의 장면이 만장일치가 아닌 다수결로 나타난 것도 연출 문제가 제기되는데, 그 전까지는 잘만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다가 여기서 다수결 결정 묘사가 나왔다.[28] 이 와중 진평왕은 승만왕후가 먹인 환약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짐으로써 그 직전까지 신하들을 호령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천추태후(드라마)의 성종 캐릭터처럼 왕후에게 휘둘리는 처지가 되기도 했다. 아마도 MBC의 히트 사극 선덕여왕(드라마)의 인기 요소를 참고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런 것치곤 그리 재미가 높지도 않았고 승만왕후 역시도 미실같은 매력적인 악역과는 거리가 먼 일방적인 악역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승만의 난 파트에서 사서와 어긋나는 부분이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생몰년과 관련해서는 이전 《선덕여왕》에 비해 대체로 실제 사서 기준 나이를 잘 따르고 있는 편이긴 하나, 몇몇 인물들(백석, 김후직, 호림, 김용춘)의 극중 나이와 생몰년은 사서와 맞지 않아서 역사왜곡 사례로 지적받는 부분이 있다. 구체적으로 580년에 병부령에 올랐다는 김후직이 진평왕 말기에도 병부령을 지내어 실제 역사대로면 30년 넘게 병부령을 맡고 있는 셈이 되었고, 31화에서는 호림이 선덕여왕 재위 초 비담에게 살해됐으나 실제 호림은 비담의 난 평정에 공을 세우고 선덕여왕 사후 상대등 알천과 함께 화백회의에 참가하는 조정의 고위 관료를 맡을 만큼 오래 살았다. 645년 황룡사 9층 목탑 건설을 주관했다는 기록이 나타나 있는 김용춘도 극중에서는 다소 이른 시점인 642년 대야성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되었다. 그리고 김용춘을 죽인 검일도 실제로는 대야성 함락 후 백제에 투항하여 백제가 멸망할때까지 살아있었는데도 김용춘을 찌르고 자신도 김용춘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사서처럼 김춘추가 단지 딸이 백제군에게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이성을 잃고 복수에 매몰된다는 전개는 너무 찌질해보여서 시청자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어서 당위성을 주려고 이런 설정을 둔 것으로 보이나, 역사왜곡 시비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대야성 전투와 관련해서는 성주인 김품석을 백제군의 계략에 말려든 충직한 용장처럼 묘사한 것도 역사왜곡 문제가 제기됐는데[29], 여기에 대해서는 일단 대외적으로 백제군의 계략 전말이 드러나지 않아 신라에선 기록처럼 죽었다고 알려진 걸로 처리 됐고 또 극중 김춘추의 입을 빌어 "성주가 그렇게까지 용렬한 인간이었다면 어찌 대야성 백성들이 투항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일치단결해 결사항전했겠는가"라는 발언을 밝혀 각색하였으나 정사의 내용과는 크게 상충된다. 작중 품석은 등장하지 않은 대야성의 충신 죽죽의 역할까지 흡수했다고 볼 수 있는 셈. 물론 이 부분은 김품석이 주인공인 김춘추의 사위 보정을 받아서 지나치게 미화된 것이긴 하다.


7.4. 각색 관련[편집]


본작의 진평왕은 초반에 군약신강의 구도 하에 있기는 하지만 이제까지 사극에서의 역대 진평왕들처럼 권신들에게 휘둘리는 무기력한 군주가 아니라, 신하들의 공세에 고심하면서도 나름대로 자기 주장이 있고 사려가 깊은 왕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막판에 가서 찌질해지는건 똑같다.

진평왕의 맞수인 백제 무왕에 대해서도 역대 사극 가운데 가장 무왕다운 호전적이고 냉철한 군주로 묘사했다. 오히려 무왕 본인이 주인공인 사극 서동요나 무왕 치세 백제가 주 무대인 《계백》에서보다 더 무왕스러울 정도. 덕분에 그동안의 사극에서 인식된 유약하고 숫기없던 무왕의 이미지를 일신해냈다.

또한 여태까지 신라 관련 사극에서 별로 존재감이 없었던 국반 갈문왕에게 어느 정도 비중을 부여한 것도 주목할 점. 전형적인 광인이지만 간간이 사도태후에 대한 디스라든가 김춘추와의 대화, 숙흘종 및 알천에게 뼈 있는 소리를 던졌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비형랑[30]에 대해서도 조명을 맞추었는데, 귀신들의 우두머리라는 원전의 설화적 내용을 '귀문'이라는 의적 집단의 리더라는 설정으로 현실감 있게 각색했다. 마찬가지로 원전에서는 비형랑의 수하였다가 여우로 변신하여 도망쳐 배신을 저지르고 처단된 도깨비 길달 역시 금빛 여우라는 이명의 악역으로 각색되어 등장한다. 그 외 비형랑의 심복으로 설정된 난승과 길달의 심복으로 설정된 모척 등은 모두 실제로 기록상에 있는 인물들이다.

초반 로맨스라 할 수 있는 천관녀와 김유신 사이의 러브라인에 대해서는 한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커플링으로서 사실상 결말이 예정되었던 셈인지라 시청자들은 일찌감치 안타까움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7화에서 마침내 동굴에서 키스와 합방(?)[31]까지 진도가 나갔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만명부인이 올라와 설화대로 둘을 갈라놓았다. 근데 이건 실제 설화가 그러하니 어쩔 수 없는 부분. 근데 그 유명한 김유신이 말 목을 베는 일화가 나오지는 않았고, 천관녀가 김유신에게 일방적인 절연 선언을 하자 김유신이 천관녀에게 받았던 정인의 징표를 버리고 바위를 베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천관녀는 8화에서 길달에게 붙잡혔다가 김유신과 길달이 대적하다가 위기에 처한 김유신을 위해서 길달의 등을 은장도로 뒤에서 찔렀고 분노한 길달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또한 김춘추와 김유신이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룰 것을 맹세하며 그 내용을 비석에 새기는 것은 오늘날에도 전하는 임신서기석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이 맹세를 하는 작중 시점인 서기 612년은 바로 임신년으로 실제로 임신서기석의 임신년은 서기 552년설과 서기 612년 설이 있다. 다만 실제 임신서기석이 나라에 대한 충성과 유교 경전을 습득할 것을 맹세한 비석인 것과 달리 여기서는 삼한일통의 맹세로 바뀐 것이 차이.

10화에서는 강남스타일이 패러디되었다! 염장이 사정부와 화랑도의 화해를 위한 연회자리에서 술에 취해 "우린 모두 서라벌 풍이야!"라는 대사를 치더니 말춤을 작렬하며 "이랴"라는 추임새까지 넣었다. 서라벌서울의 어원이 되었다는 설이 현재 국문학계 다수설인 만큼 매우 절묘한 패러디.

김춘추와 문희의 만남도 각색이 가해졌다. 축국을 하긴 하지만 삼국유사에서 옷고름이 찢어져서 그걸 꿰메려고 한 것이 아니라 김춘추가 술에 취해 김유신의 집에 묵게 된 사이 문희가 김춘추의 숙소로 들어가 술에 취해 자신의 부인인 줄 착각했던 김춘추와 거사를 치르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보희가 문희에게 꿈을 팔지 않는데, 이는 만명부인에게 그 꿈이 어떤 꿈인지 들어버렸기 때문인 듯. 결국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김유신의 여동생 화형식도 나오는데 여기서는 사서처럼 동생을 김춘추와 무리하게 엮으려고 쇼를 연출한 것이 아니라 승만왕후의 계략과 가문의 존망, 그리고 문희 스스로 김춘추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함이라는 여러가지 당위성을 부여해 각색되었다.

클리셰적 측면에서 보자면 천민 체험 코스라든가 출생의 비밀 같은 무리수급 클리셰에서 벗어난 것은 주목할 만 하다. 김유신의 경우 이 비슷한 부모의 연애 비사가 묘사됐지만, 김유신 출생에 얽힌 김서현과 만명부인의 이야기는 엄연히 삼국사기에 존재하는 실제 이야기이며, 내용도 "자네에겐 내 딸 못 주네!" 식의 흔한 장인-사위간 갈등 스토리라서 사실 출생의 비밀 축에도 못 낀다. 일단 여태까지 연개소문, 대조영, 선덕여왕, 광개토대왕 등 주요 사극 주인공들이 실제로는 별 문제없는 성장기를 보낸 것과 별개로 천민 체험과 출생의 비밀을 적용시켜 고증을 씹어먹었다는 지적을 받았고, 심지어 대왕 세종세종대왕조차도 생뚱맞게 유배 체험 코스를 다녀왔던 것을 상기해보자(…). 다행히 이 작품은 위와 같은 상투적인 클리셰를 벗어났다.

그러나 정권 전복을 꾀하는 비밀결사의 존재[32]는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그리고 13회에서, 물론 주인공에게 적용된 것은 아니지만 단골 클리셰 중 하나인 출생의 비밀이 묘사됐다. 승만왕후가 낳은 첫아이가 딸인지라 왕자를 낳지 못했다고 폐출될까봐 두려워 한 승만왕후가 자신의 딸을 살수에게 넘기고 시골 아낙의 아들을 훔쳐와 원자로 삼은 것. 단, 설령 데려왔다 하더라도 승만왕후 소생의 아들은 일찍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쪽도 그런 운명을 밟을 듯하며, 실제 방송분에서도 두통으로 쓰러지며 사망 플래그를 세우는 모습이 나왔다. 결국 끈질긴 왕후의 난 끝에 왕의 핏줄로 인정해줄테니 죽이라는 협정에 맞추어 이미 위독한 상태에서 승만왕후에게 독을 받아 마시고 죽어버렸다. 그 이후에야 이 끈질긴 난은 그 협정으로 목숨을 건져 유배가는 것으로 끝났다. 이렇듯 승만왕후가 전형적인 악역으로서 등장이 길어지면서 선악대립이 단순해지고 조정의 당파싸움을 조장해서 주인공인 김춘추와 김유신을 사지에 내몰려 하는 등 대부분의 캐릭터가 선역인지 악역인지 종잡을 수 없었던 무인시대에 비해서는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진정한 악역이자 보스인 의자왕에 대해선 그래도 상당히 입체적인 캐릭터를 부여하고 있다. 다른 사극에서 적국 왕들이 대부분 찌질이소인배, 혹은 전투광 수준으로 묘사되는 것에 비하면 은근히 대접이 좋은 것 같기도….

스토리 초반 진평왕에 대해선 나름의 강단있는 묘사에도 불구하고 권신들과의 파워 게임에서 압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쉽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당시 외세의 잦은 침공을 겪은데다 남성 후계자가 부재한 탓에 집권 후반 레임덕이 상당했을 점은 감안하더라도 딸에게 성공적으로 왕위를 물려줄 만큼 더욱 강단있게 묘사했으면 하는 반응도 뒤따랐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13화에서 놀라운 반전이 벌어졌는데, 병세를 위장한 진평왕이 절묘한 기만책을 사용하여 단숨에 권신들을 굴복시키고 군강신약의 구도를 만든 것이다. 이에 깜놀한 상대등 숙흘종이 고개를 내리깔고 "우리는 폐하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소이다"라며 움츠러드는 장면은 압권.

인트로 장면에서 김유신이 신라와 당나라의 친교 정책에 반발하여 거병을 일으키고 주군에게 칼을 겨눈 장면의 사실성에 대해서도 뒷말이 있었는데, 결국 스토리 상 친당과 반당을 놓고 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62화에서 1화 인트로 장면이 다시 나왔고 사실 김춘추의 꿈으로 밝혀졌다. 레알 대왕의 꿈 물론 이후 극중에서 김유신이 태자와 합심해 친당파 척결을 내걸고 반기를 들긴 했으나, 얼마 후 무열왕이 병마에 시달리는 까닭에 재위 중 급하게 통일을 추진하려 했다는 진상이 밝혀지면서 결국 서로의 의중을 읽은 무열왕과 김유신이 한발짝씩 물러나 삼한 통일이라는 대명제를 목표로 원만히 대타협을 이루는 것으로 매듭되었다. 즉 21세기에서 지역주의로서 각색을 통해 신라가 당에 끌려다니기만 했다는 흑역사를 지우고 나름대로 반역자들을 친당파[33]로 뜬금없는 역사왜곡 메시지를 부여한 것. 또한 무열왕이 기존의 대의를 숭상하는 모습에서 벗어나 초심을 잃고 현실에 영합하는 묘사를 보여줌으로써 정치인 김춘추로서의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며,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당에 대적할 당위와 자기합리화를 제공한 것이기도 하다.


8. 방영 전 정보[편집]


2012년 4월 말에 《광개토태왕》이 종영된 후 곧장 편성되는 대신 9월에 편성 계획되었다. 이는 김유신 역 최재성의 부상에 따른 배역 교체가 있었고, 2012 런던 올림픽 기간(7월 27일 ~ 8월 12일)과 2012 여수 엑스포 기간(5월 12일 ~ 8월 12일)도 있었던 것으로, 공백 기간에는 주로 올림픽 특집프로와 다큐멘터리가 편성되었다. 사실 올림픽 기간 사극 시청률의 전반적인 부침은 피할 수 없기 때문.

사실 사극 방영 시점의 간격이 벌어지는 경우는 대왕 세종 종방 때에도 있었다. 게다가 불멸의 이순신 종방 때에는 대체할 작품이 없어서 중국 드라마인 칭기즈 칸을 땜빵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었다. 또한 광개토태왕막장성 탓에 100부작에서 92부작으로 약 한달가량 급 조기종영되었던 것도 원인 중 하나.


8.1. 전작들과 차별화되는 점[편집]


앞서 KBS 대하사극이 3연타(천추태후-근초고왕-광개토태왕)로 시망했던 점과 제목이 전작들처럼 뒤늦게 확정되었다는 점이 우려로 거론됐었다. 다만 전작들이 꽤나 뜬금없는 이유로 뜬금없게 제목을 바꾼 것과 다르게, 이 작품은 충분히 그럴 만한 당위성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웰메이드 사극으로 유명한 무인시대 사단의 재참여도 주목을 받았다. 무인시대 당시 참여했던 PD, 작가, 그리고 서인석, 임혁, 장동직, 홍일권 등의 주요 배우들까지 10년만에 다시 뭉쳤다는 점 또한 기대를 모았다.[34] 거기다 다른 연기자들의 연기력도 대체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편. 맞수인 의자왕 역에는 최철호가 투입되어 모처럼 그가 보여줄 폭군 연기 또한 기대되었으나 의자왕의 배역 비중이 커지면서 스케줄 문제로 배역이 빨리 하차하는 비담 역으로 바뀌었으며, 의자왕 역에는 대신 이진우가 투입됐다.

전작들과는 다르게 별도의 원작을 인용하지 않고 유동윤 작가가 집필한 각본이 스토리의 얼개가 되는 것 역시도 차이를 보인다. 덕분에 전작들의 경우엔 원작의 방향성과 결부되어 이런저런 논란들이 많았으나, 이 작품은 그런 논란에서 한발 벗어나게 되었지만 승만의 난 파트에서는 조연에 대한 출생의 비밀 등 과거 사극에서 써먹은 클리셰와 무리수적인 설정이 나와 비판이 일기도 했다. 이후 신라, 백제, 고구려의 본격적인 외교전이 중심이 되면서부터 궤도에 올랐던 드라마는 백제의 멸망과 부흥운동, 신라 내부의 정쟁과 계속되는 반란, 김춘추와 김유신의 우정과 갈등과 화해, 김춘추의 승하, 백강 전투 격전이 묘사되는 가운데 조기종영이 확정되면서 자연히 이후 벌어지는 통일 과정의 비중은 줄어들게 되었다.

대왕 세종》이나 감독의 전작 《천추태후》처럼 방영 직전에 다큐멘터리처럼 작품 제작 컨셉과 메이킹 과정, 제작진과 출연진 인터뷰, 의상 제작 등을 다룬 스페셜 방송을 내보낸 것이 이색적이다. 여담으로 같은 시대를 다룬 《삼국기》도 방송 전 전야제라는 이름으로 촬영 뒷이야기 등을 담은 다큐를 방송한 적이 있는데, 이는 국내 최초 드라마 제작 다큐멘터리라고 한다. #


8.2. 캐스팅 관련[편집]


김춘추 역의 최수종보다 15세 젊은 박솔미가 김춘추의 이모인 선덕여왕 역에 캐스팅 되었다는 소문이 돌며 적절하지 못한 캐스팅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5월 22일 그녀가 종편 드라마에 출연을 확정지음으로서 이 소문은 사실 무근이 되었고 결국 6월 14일 기자 간담회에서 박주미가 선덕여왕으로 출연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녀가 대표적인 동안 탤런트이고 최수종보다 10세 연하라는 것이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었는데...이후 박주미가 부상으로 하차하면서 선덕여왕 역 배우가 바뀔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후기 선덕여왕은 박주미보다도 8살이 더 젊은 홍은희가 맡았다. 당초 논란이 일었던 박솔미보다도 2살 더 젊다.

중요한 것은 작중 선덕여왕 재위기의 김춘추의 나이가 20대 후반 ~40대 중반으로, 최수종의 실제 나이야 어쨌든 결코 50대 최수종이 소화하지 못할 연령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차피 최수종은 이 드라마에서 무열왕이 환갑 가까운 나이로 임종을 맞는 시점까지도 연기해야 하며, 그 자신도 이 바닥에서 알아주는 동안으로 대조영을 찍을 때 아역 없이 10대 시절까지 연기한 바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에서 대조영 때도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의 캐스팅 논란은 최수종이 어린 나이까지 소화해서가 중심이 아니라 엄연한 이모 배역을 조카 배역보다 오히려 10살, 또는 20살 가까이 어린 배우에게 맡겼다는게 가장 큰 문제. 잠깐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선덕여왕 또한 아역부터 시작해 나이들어 사망할 때까지 쭉 등장하는 주연급 배역인데도. 이 외에도 선덕여왕과 사촌지간인 진덕여왕 역에도 1983년생인 손여은이 캐스팅되는 등 나이고증과 맞지 않는 캐스팅이 몇 차례 나왔다.


9. 여담[편집]



9.1. 배우개그적 요소[편집]


재미있게도 주요 출연진 상당수가 과거 출연한 작품에서 신라의 적국 소속의 배역을 맡았다. 즉 이전 작품에서는 신라와 대립하던 배역들이 여기서는 반대로 신라 중흥을 위하여 힘을 모으고 있다는 것.

일단 주인공인 김춘추 역의 최수종부터가 태조 왕건에서 신라를 멸망시킨 장본인이며,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김춘추와 마찬가지로 후삼국을 통일하여 삼한 일통을 이뤄낸 인물이라 묘하게 싱크로율이 있다. 게다가 대조영에서는 무열왕과 15년 생몰이 겹치기까지 한다. 이젠 환생이라고 둘러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대체역사가 된다. 더군다나 최수종이 장보고 역을 맡은 해신[35]에서는 후반부에 장보고가 왕위를 넘보는 진골귀족 김양에게 반발하여 난을 일으키려 했으나 이내 장보고가 염장에게 암살당하고 정년, 최무창 등 청해진의 남은 세력들도 김양이 보낸 군사에 의해 전멸하여 결국 무산되었으며, 장보고의 딸이 아닌 김양의 딸이 문성왕과 혼인하는 등 실제 역사 속에서도 장보고는 미천한 출신(다만 해신에서와 달리 천민 출신이 아닌 평민 출신이었음)의 지방호족으로서 진골귀족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배우개그가 성립되었다. 3번에 걸친 신라와의 악연을 대왕의 꿈에서 끊어냈구나. 더더욱 숙흘종 역의 서인석 역시 태조 왕건에선 후백제의 견훤 역을 맡아 신라를 침공해 경애왕을 폐위시키고 경순왕을 옹립했다. 반면 삼국기에서는 김유신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김유신의 후견인이자 외조부 역을 맡은 것. 그리고 이번 김유신 역의 김유석은 계백에서 백제의 마지막 충신 흥수 역을 맡았었다. 심지어 김유신의 아역인 노영학조차 계백에서는 의자왕의 아역이었다(…). 또한 작중 초중반 화랑도의 책임자로 등장했던 호림 역의 이일재는 SBS 연개소문에서 김춘추의 원수인 백제 장군 윤충 역을 맡은 바 있다. 게다가 백제를 멸망시킨 후 백제의 백성들을 학살하고 약탈을 일삼으며 승전을 기념하는 잔치에서 의자왕에게 온갖 굴욕을 주는 역할로 나온 소정방을 맡은 정흥채씨가 SBS의 연개소문에서는 의자왕과 백제의 백성들을 위해 충절과 목숨을 바치는 계백역으로 나왔던 점이 매우 아이러니하다. 이 정도로까지 배역이 극단적인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또한 견훤 숙흘종 역의 서인석이 날리는 배우개그가 상당한데, 과거 자신이 맡았던 배역의 대사를 적극적으로 패러디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초반에 회상 형식으로 잠깐 지나간 부분(4분 0초)에서 황제는 폐위되었소이다! 드립을 날리며 삿대질까지도 똑같다(…). 항상 '대왕'으로 지칭하는데 여기서만 호칭을 '황제'라고 한 것부터 의도적이라 할 수 있다.[36] 알천을 부를 때는 "이보시오 파진찬!"이란 대사를 치기도 했다(3분 22초). 또한 33회에서는 비담과 알천에게 무릎을 꿇고 비담의 모략으로 옥에 갇힌 외손주 김유신의 구명을 청하며 "우리 유신이를 살려주시게"라고 비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는 근초고왕(드라마)에서 부여구의 할아버지인 흑강공의 대사와 겹친다. 이제 "으으으 고구려 으으으 연개소문"이러면서 당태종 배역 오마쥬만 하면 되었겠으나 이건 무산됐다 무엇보다도 서인석은 상술한 것처럼 삼국기에서 김유신 역을 맡았던 바 있다.

한편 전작인 광개토태왕(드라마)에서 고구려 왕실의 전복을 획책했던 악역인 국상 개연수 역을 맡았던 최동준은 본작에서 연개소문으로 환생복귀함으로써 드디어 수세기만에 꿈☆을 이루게 됐다(사실 그는 무인시대에서도 반역자 조위총 역이었다). 더욱이 서동요에서 그의 배역은 다름아닌 진평왕이었다(…).

더군다나 최수종은 전작 대조영에서는 주인공 대조영으로 등장하며 연개소문을 "합하"라고 존칭하는 등 의붓아버지처럼 각별히 따르며 고구려 부흥에 혼신을 바치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본작에서 그가 맡은 김춘추는 대조영과 반대로 연개소문과 국운을 다투는 정적이며 극중 최수종의 마지막 미션도 고구려 정복이 된 셈이라서(물론 고구려 멸망을 보진 못한 채 죽지만), 대조영에서의 최수종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실로 묘한 위화감을 일으킨다(…). 한편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 역을 맡았던 임혁과는 초반 나름대로의 정치적 동반자 포지션을 맡다가 극이 진행되면서 이 또한 왕위를 다투는 정적이 되었다. 결국 경쟁에서 패한 알천이 왕위를 양보하여 끝은 훈훈하게 마무리. 대조영에서도 결국 대중상은 왕이 되지 못하고 후견인에 머무르며 아들 대조영이 발해의 첫 왕이 된 것까지 생각한다면...

또 과거 드라마 대조영에서는 최수종(대조영 역)과 그야말로 둘도 없는 절친이라 할 수 있었던 최철호(걸사비우 역)가 본작에선 반역자 비담으로 등장해 김춘추와 철천지 원수지간이 된 것 역시 상당한 개그 포인트. 이 또한 대조영을 기억하는 시청자라면 극과 극의 관계 구도가 위화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극중 김유신의 유언 역시 배우를 맡은 김유석의 이력을 생각하면 이런 요소가 있다. 김유신이 신라가 당군을 저지하려면 "육지에서는 매소성, 바다에서는 기벌포에서 저지해야 한다"고 당부하는데, 이는 김유석이 계백(드라마)에서 흥수 역을 통해 백제가 나당연합군을 저지하려면 "육지에서는 탄현, 바다에서는 기벌포에서 저지해야 한다"고 당부한 성충의 유언을 강조했던 모습과 싱크로가 떨어지기 때문.

하나 더 재미있는 건 문무왕 역의 이종수와 당태종 역의 윤승원은 둘 다 SBS 연개소문에서 김유신 역을 맡았던 배우들이다. 이종수는 청년 김유신, 윤승원은 장년 김유신. 즉 이 사극에는 김유신을 맡았었거나 맡는 배우가 서인석과 김유석까지 합쳐 총 4명인 셈이다. 아역이었던 노영학까지 합치면 5명. 분신술

그리고 작중에서 법민이 비담에게 "비담! 네 어찌 힘없는 아녀자를 폭행했느냐!"라고 다그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비담 역의 최철호가 후배 여배우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던 전력에 비추어 보면 어쩐지 미묘한 부분. 설마 노리고 각본을 썼나?

김유신의 아역 노영학선덕여왕에서는 김유신과 대립각을 세우던 악역 석품의 아역을 맡았었으며[37] 좀더 시간을 거슬러 가면 사극은 아니지만 화랑전사 마루에서 화랑의 기운을 받은 주인공들과 대립하는 악당역을 맡았었다. 또 계백에서는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의 아역도 맡았었다. 주인공, 서브악역, 메인악역, 신라의 적. 다방면에서 크게 활약 중이다.
심지어 김유신의 아역 노영학과 김춘추의 아역 채상우는 전작 인수대비에서도 친척이었는데 노영학이 사촌동생 예종대왕이고 채상우가 사촌형 단종대왕이었다... 무열왕과 흥무대왕이 단종대왕과 예종대왕으로 환생했다

대조영에서는 이적 장군을 맡았던 선동혁이 본작에서는 그 부관인 유인원을 맡는다는 점도 개그 포인트. 왜냐하면 극중의 이적 장군이 "내가 한때는 선황제를 따라 요동을 공격했다~~"면서 자신의 리즈 시절 활약을 자랑하는데, 다름아닌 그 연기를 맡았던 배우가 본작에서 부관이 되어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인석과 선동혁은 바로 다음작인 정도전에서 각각 신라를 멸망시킨 고려 최후의 기둥 최영과 그를 죽인 이성계의 의형제 이지란으로 환생하며, 최철호, 임혁, 노영학, 정흥채는 다다음작인 징비록에 출연했는데 신라의 반역자 비담이었던 최철호는 조선의 중신 이항복으로 환생, 그는 10년전 불멸의 이순신에서 선조를 열연했다. 허나 김태우가 맡은 선조가 역대급이라서.. 임혁은 의병대장 곽재우로(!), 노영학은 광해군, 중국 무장 전문 배우가 된 정흥채는 역시나 명나라 장수 이여송으로 등장했다. 최수종 또한 징비록과 같은 시대인 임진왜란 1592에서 이순신으로 등장했다.


10. KBS Drama Classic 연속 무료 스트리밍[편집]


해당 스트리밍은 2021년 6월 딱 한차례 스트리밍된 적 있으며, 스트리밍 당시에도 좋지 않은 평가와 저조한 시청자 수로 인해 1차 스트리밍 이후로는 스트리밍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같은 범주에 있는 삼국시대 영웅 트릴로지 작품 중에서 가장 평가도 좋지 않고 시청자 수도 적은데, 그 이유를 꼽아보면 드립 요소가 많고 스트리밍 시청자 수 상승 요인이 많은 광개토태왕은 차치하더라도 비슷한 상황의 근초고왕과 비교하더라도 너무 느린 전개와 함께 현 시대에서 그렇게까지 좋은 평가를 받지 않고 있는 김춘추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작품의 특성상 시청자 수가 오를 여지가 없다는 부분이 가장 결정적이다.

  • 1번째 스트리밍 (2021년 6월 29일 ~ 7월 2일 / 동시간 최대 2,300명 ↑)
    • 2021년 6월 29일 18시부터 스트리밍했으며, 1일차 1회에서 1,700명을 기록하였고 1일차는 최대 2,000명이 시청하였다. 2일차는 최대 1,900명이 시청하였다. 3일차에서 최대 2,300명을 기록하며 왕과 비의 시청 기록을 돌파하였다. 스트리밍 최종 2,300명을 기록하며 간신히 최저 시청자수 3위[38]를 기록하며 종료하였다.
    • 삼국시대 트릴로지 중에서 최저 시청자수를 기록했는데 비슷한 스타일에 근초고왕에 비해 더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승만의 난과 비담의 난까지 이어지는 신라 내전을 질질 끄는듯한 전개와 퓨전 사극을 방불케 하는 비밀결사 귀문, 그리고 주연배우들의 사고로 인해 중간중간 배우가 바뀌거나 공백이 생기는 등 여러 요인이 얽혀있었다. 거기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과 나당동맹을 체결한 태종 무열왕 김춘추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비판을 제기하는 시각이 많은만큼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39]


해당 스트리밍 채팅 중 흥했던 별명, 드립은 아래와 같다.


  • 주요 인물

  • 신라 측 인물(왕실)
    • 숙흘종(서인석 분) : 견훤, 이의방, 최영, 노태우, 스쿨존, 흑강공 사훌
    • 사도태후(정재순 분) : 명희 할머니, 박금병, 명희야, 치맥갑
    • 국반 갈문왕(홍일권 분) : 양규, 김약진, 홍계훈, 차우석 회장, 국밥 갈문왕, KBS 길태미
    • 진평왕(김하균 분) : 부기원, 태평, 개비스콘좌
    • 김용춘(정동환 분) : 윤두수, 조말생, 최지몽, 최동열 기자
    • 김서현(최일화 분) : 타다르, 송응창, 골드문
    • 만명부인(김예령 분) : 윤석민 장모, 10000명
    • 천명부인(조경숙 분) : 예진아씨, 조윤경, 1000명
    • 김유신 아역(노영학 분) : 징비록 광해군, 신라 조커
    • 김춘추 아역(채상우 분) : 똘복이, 단종
    • 염장 아역(김기두 분) : 염문, 천명훈
    • 승만왕후 아역(김현수 분) : 배로나
    • 덕만 아역(선주아 분) : 왕눈이
    • 승만왕후(이영아 분) : 이승만, 싱먼 리, 미실, 김탁구 여친
    • 보라궁주(추소영 분) : 보라, bora
    • 보량궁주(이시원 분) : 역사저널 그날녀
    • 만화(천보근 분) : 코믹좌, 웹툰
    • 문희(린아 분) : 천상지희, 무늬, 나문희
    • 보희(민지아 분) : 보이, 이보희, 초복이, 하입보희
    • 김인문(전승빈 분) : 지채문, 사기, 인문계, 김인문, 진상구
    • 고타소(박그리나 분) : 근초고왕 단단이
    • 진덕여왕(손여은 분) : 구세경

  • 신라 측 인물(대신, 장수)
    • 알천(임혁 분) : 대중상, 두경승, 하륜, 남만중
    • 을제(이우석 분) : 신종, 임경번
    • 임종(양재성 분) : 선전관, 금성태수
    • 만춘(백재진 분) : 양만춘, 비밀의 남자 청부업자, 짭퉁소,죽빵좌
    • 호림(이일재 분) : 21, 이일, 김동진, 허승
    • 원광(이대로 분) : 도선대사, 벌쳐좌, 염동진, 원광대 총장
    • 염장(배도환 분) : 염문, 한백수, 테마진, 이지식, 원희룡, 짭민국
    • 검군(김혁 분) : 젊은 이정재, 오척
    • 칠숙(이철민 분) : 권상사, 윤태주 실장
    • 석품(염철호 분) : 가토 부하
    • 김흠순(박재웅 분) : 1부 황병관, 킹기훈
    • 비담(최철호 분) : 선조, 신마적, 걸사비우, 이항복, 쿠팡비우, 쿠팡비담, 부왘좌
    • 김삼광(김동윤 분) : 심운택, 젊은 김서현, 3광, 삼광빌라
    • 김품석(김홍표 분) : 이지순, 조수창, 정발, 브래드좌, 브래드 홍표
    • 금강(김명국 분) : 상귀, 채원
    • 예원(최왕순 분) : 최질, 언니 저 맘에 안들죠
    • 양도(이명호 분) : 사야가, 비밀의 남자 삼촌
    • 강수(김태형 분) : 신방
    • 염종(강지후 분) : 김32, 김사미, 안승
    • 비담의 부장(지대한 분) : 병진이 형, 궁병진
    • 사진(이두섭 분) : 포토좌, 픽쳐좌, 최만생
    • 김품일(이원발 분) : 온사문, 윤근수, 이화
    • 관창(윤홍빈 분) : 임해군
    • 김진주(최규환 분) : 생해, 김펄, 여명808 2세
    • 동타천(김형일 분) : 신숭겸, 숭겸아우, 홍윤성, 진고도, 최충수, 김재규, 신립
    • 김진흠(정동규 분) : 대요승, 방계

  • 백제 측 인물
    • 무왕(박철호 분) : 박존위, 이정, 김훈, 박기태, 김창일
    • 계백(최재성 분) : 원균, 마루오카, 강조, 한유라 아빠, 현빈선배 아빠, 마용필
    • 계루(차기환 분) : 신립, 김찬
    • 의자왕(이진우 분) : 허화평, 고종, 체어맨, 성종, 강상현, 체어킹
    • 화시(홍인영 분) : 천향비, 진구공주, 김인문 전처
    • 검일(이병욱 분) : 박진재, 마의태자, 박용택, 윤소종, 부여휘
    • 흥수(임병기 분) : 혁명전사, 신덕, 박헌영, 양소위
    • 부여융(공정환 분) : 을마훌, 낙상지
    • 부여태(허정민 분) : 문차일드, 성녕대군
    • 상영(원석연 분) : 도우, 도우너
    • 충상(김용헌 분) : 양용
    • 도충(김철기 분) : 사갈현, 김경손
    • 복신(김영기 분) : 권율, 자선, 신성, 김기흥
    • 부여풍(장태성 분) : 만력제, 마로, 만력풍, 원발이

  • 고구려 측 인물
    • 백석(조재완 분) : 웅진코웨이, 장평, 요시토시, 실성, 백석대 총장
    • 연개소문(최동준 분) : 개연수, 조위총, 도도, 하파, 김좌진
    • 보장왕(안신우 분) : 김취려, 박인애 오빠, 부여민, 효령대군

  • 귀문 측 인물
    • 비형(장동직 분) : 유태권, 최부, 거란 성종, 김장훈, 신성우, B형
    • 길달(이정용 분) : 김관철, 가토, 금빛여우, 골드폭스, 길딸, 구천수, 6시 내고향 오만보기
    • 난승(김경룡 분) : 유미아빠, 구르친, 헤이하치
    • 천관녀(이세영 분) : 금영이, 신라 제니, 성덕임, 의빈 성씨
    • 호랑(마야 분) : 울버린, 포미닛, 진달래꽃, 호랑나비, 나를 외치다
    • 시노(김진이 분) : 임나영, 스톤나영, 잇지 유나, 원더걸스 선예
    • 묘랑(김현정 분) : 멍, 그녀와의 이별, 다 돌려놔, 류크
    • 차비(이아이 분) : 차비 에르난데스, 차비 알론소
    • 연화(홍수아 분) : 홍드로, 웨딩피치좌

  • 당나라 측 인물
    • 당 태종(윤승원 분) : 길상, 하무지, 만적, 비류왕
    • 당 고종(서동수 분) : 털보, 파오후
    • 소정방(정흥채 분) : 부루, 임꺽정, 두고, 막고해, 이여송
    • 동보량(방형주 분) : 퉁소, 여석개, 지장
    • 유인원(선동혁 분) : 이숙번, 이적, 원숭이, 우끼, 이지란
    • 유인궤(김영선 분) : 공양왕, 한인경
    • 방추(미상) : 당 게이

  • 기타
    • 소가노 이루카(정진각 분) : 한뢰, 신호
    • 나카노오에 왕자(안홍진 분) : 연남건, 심원섭


  • 드립
    • 또 브금 드립 : 초반부 드라마 엔딩에 제시카의 마음길 bgm이 등장하는데, 엔딩곡이 나올때 마다 '또시카', '또음길' 등의 드립이 등장한다. 물론 좋은 의미로 나오는 드립이 아니다. 5회 이후 부터는 오프닝 bgm이 엔딩에 깔리면서 드립 숫자는 줄어들 예정이다. 이와 비슷한 드립으로, 엔딩마다 화면을 느리게 연출시키는 전개가 나오는 부분도 이와 비슷한 드립이 등장한다.
    • 빼빼로 드립 : 극 중에서 비담이 들고다니는 철제 무기를 일컬어 '뺴빼로'라는 드립이 등장했다. 무기의 모습이 시중의 '아몬드 빼빼로'와 유사하게 생긴것에서 착안된 드립이다. 본 작품 제작진에 만든 전작 무인시대에서 이의방이 들고 있던 '맛동산'에서 계승되었다는 드립도 등장했다.
    • 평행세계 드립 : 비담의 난 시기를 전후하여 '대조영 탄생' '최수종의 평행세계' 등의 드립이 등장했는데, 이는 비담의 난 시기쯤 하여 '대조영' 드라마에서 주인공 '대조영'이 태어난 시기를 빗대어 나온 드립이다. 이것은 대조영과 대왕의 꿈 주인공이 모두 최수종이어서 가능한 드립이다. 김춘추와 알천이 조우하면 평행세계에서의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말한다.
    • 궁예 드립 : 선덕여왕의 죽음 전 김춘추와 왕 복장을 한 후대의 김춘추가 나와 일갈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김춘추가 왕이 된 환각 김춘추에게 칼을 휘두르는 장면을 보고 '석총이가 또왔어'. '궁수종' 등의 드립이 등장했다.
    • 재회 드립 : 본 드라마에서 출연한 배우들 중 전작에서 이미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서 다시 재회할때 나오는 드립이다. 본 작품에서 대표적으로는 전작 천추태후에서 부부관계였던 계백과 화시는 강조와 천향비의 재회라고 드립이 등장했고, 김춘추와 알천의 대화에는 아버지(대중상)과 아들(대조영)이라는 드립, 김춘추와 비담의 대화에는 형(대조영)과 아우(걸사비우) 드립이 등장했다. 이 외에도 대조영과 퉁소의 재회 등 기술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배우 재회 사례가 있다.


11. 관련 문서[편집]



[1] 모계로는 신라 왕족, 그것도 성골이 유력한 혈통이었으며 부계 역시 신라는 아니지만 금관가야 왕족이기는 했다.[2] 삼국시대 배경의 게임 천년의 신화에서도 신라편 주인공은 무열왕이었다.[3] 진평왕이 권신들을 제압하기 위해 꾀병을 내어 쓰러졌을 때, 승만은 화백회의의 결의로 섭정에 올라 폭정을 하며 춘추를 처형하려 하다가 진평왕에게 딱 걸려 쫓겨날 위기를 맞았으나, 이 때는 원자를 회임한 덕분에 폐후는 간신히 면했다.[스포일러] 승만왕후가 낳은 진평왕의 핏줄은 딸이었고, 결국 승만은 자신의 친딸을 내어버리고 이름 없는 천민의 아들을 훔쳐와 자신의 원자로 삼는 패륜을 저지른다. 이 때 내어버린 딸이 극중 비담의 난 때까지 등장하는 연화이다.[스포일러2] 극중에서는 이 과정에서 김춘추의 아버지인 김용춘도 전사한다.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지만, 담당 배우 정동환의 스케줄로 인해 이른 퇴장이 결정되어 변경되었다.[4] 이 사고로 최수종이 탄 말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5] 게다가 사고 직후에도 자신이 주연한 영화(철가방 우수氏) 홍보 병행이라는 강행군까지 펼쳤다. 물론 이 때는 부상으로 잠시 쉬는 기간이긴 했지만.[6] 2TV에서 방송된 현대극 '열혈 장사꾼' 이후 그 후속작인 '명가'부터 1TV에서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로 방영됐다[7] 게다가 최수종은 전작 대조영이 크게 성공했었기에, 이 작품도 그 효과를 볼 것이라 기대되었으나, 대조영의 절반도 미치지 못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8] 소정방이 하루 늦었다는 이유로 독군 김문영을 참수시키려 하자, 김유신이 군문에 서서 도끼를 부여잡고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백제보다 너희 당나라부터 치겠다!고 일갈했다. 드라마에서는 이 도끼로 책임자인 자신의 아들을 손수 처형하겠다면서 대신 당군도 상응하는 책임을 치르게 하겠다고 으름장 놓는 것으로 쌈박하게 묘사됐다.[9] 일부 의견은 일리가 있는데, 그야말로 폭풍간지 그 자체였던 선덕여왕의 미실 캐릭터에 반해 승만왕후 캐릭터가 사람들에게 현재 크게 어필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악역인지라 식상하다는 반응도 나타났다.[10] 특히 대조영(드라마)부터 광개토태왕(드라마)까지 일련의 KBS 대하사극들은 이런 경향이 매우 강했다.[11] 사실 이건 다수의 사서에서도 견지하는 시각이지기도 하다.[12] 한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이 드라마의 대본을 집필한 유동윤 작가는 원래 영웅 사관에 기초한 사극보다 무인시대여인천하처럼 인물들의 선악구분없이 권력에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타락하는 피카레스크 장르의 사극을 잘쓰는걸로 정평이 난 작가라는 점이다. 그래서그런지 막판에 김춘추가 즉위하고나서 영락없는 타락한 독재자로 전락한 건 맛깔나게 잘 그려낸 편.[13] 이 경우는 배우 본인이 사극에 출연하는 것을 망각했다고 볼 수 있다.[14] 실제로 연극 같은 경우는 내면과의 대화를 통한 독백 등 이런 식의 연출이 굉장히 빈번하다. 한정된 공간과 시간을 두고 최대한 많은 감정을 담아내는데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15] 사실 용의 눈물,무인시대,정도전(드라마)처럼 비율 조정에 성공하여 주연들의 일대기를 제대로 조명한 케이스가 오히려 희귀한 케이스다.[16] 심지어 한반도에서 당군을 몰아내는 최종 전투에 해당하는 매소성 전투, 기벌포 전투가 생략되었다.[17] 초중반까지의 캐릭터성은 올곧은 이미지 위주였지만,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내면의 야심에 흔들리며 번민하는 모습도 보였고, 막판에는 상당히 현실주의적인 측면도 부각되었다.[18] 민담을 받아들여 머리에 뿔 분장을 하고 나온다.[19] 이름이 김군관이다. 진지왕의 외손자로 김진주 이후 병부령으로 승진.[20] 이는 개그 캐릭터들의 맹활약으로 극의 흥을 돋웠던 대조영(드라마)에 비해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대조영의 경우는 이런 요소가 좀 지나쳐서 진중함을 깨는 바람에 심한 허구성과 맞물려 퓨전사극 아니냔 비아냥까지 듣기도 했지만... 지나침은 모자람만도 못한 법이니[21] 이 배역은 가수로 활약중인 마야가 연기한다. 그나마 리타이어 할 때에는 궁녀로 변장한 상태에서 다소곳하게(...) 죽었다.[22] 전하가 아니고 폐하라 한국 사극의 고질병 황제병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지만, 신라에서는 폐하라고 불렀던 것이 《삼국유사》 등에 나온다. 즉 외왕내제의 일환이고 호칭 고증에 맞다.[23] 《동국통감》 등에서는 풍월주를 화랑의 전신으로 보고 있으며 화랑의 리더로 보는 것은 《화랑세기》 뿐인데, 다른 호칭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정사에 있는 국선이나 화주(《삼국유사》) 등의 호칭을 쓰는게 더 낫지 않은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24] 일단 정사인 《삼국사기》에는 덕만이 장녀라고 되어 있다.[25] 기록상으로는 단 한줄, 음(飮)갈문왕이라고 언급되는데 학계에서는 반(飯)을 오기한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에 따라 드라마에서는 국반(國飯)을 음갈문왕으로 상정했다.[26] 선덕여왕 재위 시절 당태종이 모란 그림을 보내어 여왕의 배필 없음을 조롱했던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다.[27] 진평왕의 아버지인 동륜태자가 죽자 숙흘종에게 재가한 것으로 나온다.[28] 실제로는 만장일치가 아닐 시 그 안건은 바로 부결처리되었다.[29] 기록상으로 김품석은 검일의 아내를 빼앗는 등 고타소의 속을 썩이다가 백제 윤충의 항복하면 생명은 보장한다는 사탕발림에 성 밖으로 나가 잡혀 죽었다.[30] 진지왕사생아.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선덕여왕(드라마)에 등장하는 비담의 진짜 모델은 실존했던 상대등 비담이 아니라 이 사람이다.[31] 둘 다 바로 전의 키스 할 때와 의상이 달라져 있다.[32] 최근 퓨전 사극에서 자주 우려먹는 패턴으로 주몽의 다물군, 선덕여왕의 복야회, 계백의 위제단, 대왕 세종의 고려 부흥 결사, 뿌리깊은 나무(드라마)밀본 등이 이에 속하며 본 드라마에서는 귀문이 비슷한 역할을 담당한다. 물론 등장 3회 만에 간부들을 제외한 조직원 전멸(…) 크리로 명맥만 겨우 건졌지만 하여간 이런 기믹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33] 백강 전투를 불참한 김진주가 예다.[34] 무인시대 사단 참여 때문인지 무인시대처럼 묘사를 상당히 많이 쓰는 편이다. 과거의 순수한 자신과 현재의 흑화한 자신이 꿈에서 만나 대화하는 장면도 무인시대와 똑같이 등장했다. 여기는 당장 드라마 제목부터가 대왕의 '꿈'이고.[35] 태양인 이제마가 그랬던 것처럼 퓨전사극이었다.[36] 반면 시대적 배경이 겹치는 선덕여왕(드라마)에서는 진흥왕이 진흥대로 불리고 진지왕이 진지로 불리는 등 신라 왕이 아예 대놓고 황제 칭호를 쓰기 때문에그럼 왜 덕만 본인은 선덕여가 아닌 선덕여이지? 선덕여왕 한정으로는 해당 배우개그의 고의성이 떨어진다. 즉 "황제는 폐위되었소이다!"라는 대사 자체가 MBC 사극 선덕여왕 세계관의 신라인들에겐 단순히 진지왕의 폐위를 선언하는 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셈이다. 따지고 보면 태조 왕건과 해신에서도 신라 왕이 황제 칭호를 썼지만 그 두 사극은 훨씬 이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했으니...[37] 초반에 김유신이 성장하기 전이라 그를 1:1로 패기도 했다.[38] 스트리밍 종료 당시 기준[39] 실제 스트리밍 중에도 김춘추가 이야기한 삼한일통의 대의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의견이 꽤 많이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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