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도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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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대관식을 받은 적이 없는 로마왕이지만 사실상 황제였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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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라틴어: Guido II / Guido III Spoletensis
이탈리아어: Guido II di Camerino / Guido III di Spoleto
귀도 2세(카메리노) / 귀도 3세(스폴레토)
생몰년도
? ~ 894년 12월12일
재위기간
889년 ~ 894년 12월12일
사망지
타로 강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카메리노 변경백국의 변경백, 스폴레토 공국 28대 공작, 중세 이탈리아 왕국의 국왕, 신성 로마 황제.

카메리노 변경백으로서는 귀도 2세이고, 스폴레토 공작으로선 귀도 3세이며, 이탈리아 국왕과 신성 로마 황제로서는 귀도 1세이다.


2. 생애[편집]


스폴레토 공국 23대 공작 귀도 1세의 아들이자 낭트 백작이자 스폴레토 21대 공작이었던 랑베르 1세의 손자이다. 어머니 이타는 베네벤토 공국의 대공 지코의 딸이다. 860년 아버지로부터 스폴레토 공국을 물려받은 형 람베르토 1세와 함께 이탈리아 국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도비코 2세에 대항하여 여러 차례 무장 투쟁을 벌였다. 871년 형이 루도비코 2세에 의해 폐위되었을 때 형과 함께 베네벤토 공국의 대공 아델치스의 보호를 받았다. 이때 아델치스의 누이인 아젤트루데(Ageltrude)와 결혼했다.

875년 루도비코 2세가 사망한 뒤 이탈리아 국왕을 겸임한 서프랑크 왕국의 국왕 샤를 2세는 876년 귀도 형제를 사면시켰다. 람베르토 1세는 스폴레토 공작에 복위했고, 귀도 3세는 카메리노 변경백에 선임되었다. 880년 람베르토 1세가 카푸아를 포위 공격하던 중 사망한 뒤 아들 귀도 2세가 스폴레토 공작에 선임되었다.

그 후 귀도 2세는 공국의 영역을 남서쪽으로 확장하기 위해 교황령을 지속적으로 침략했고, 귀도 3세는 조카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에 교황 요한 8세카를 3세에게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인정해줄 테니 교황령을 구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카를 3세는 프리울리 변경백 베렝가리오 1세에게 교황령을 구하게 했지만, 전염병이 창궐하는 바람에 별다른 공세를 취하지 못하고 철수해야 했다. 그 후 간질과 뇌졸중으로 시달리고 바이킹의 침략에 직면했던 카를 3세는 교황령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882년 2월, 카를 3세가 라벤나에서 회의를 소집해 양자의 화해를 주선했다. 귀도 2세와 삼촌인 카메라노 변경백 귀도 3세는 빼앗아간 교황령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요한 8세는 '두 귀도'가 약속을 지킬 기미가 없다며 카를 3세에게 응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883년 조카 귀도 2세가 사망했다. 귀도 2세의 아들 귀도 4세는 권력을 잡기에는 너무 어렸기에 그가 스폴레토 공작위를 겸임했다.

885년 1월 7일, 아르눌프가 이끄는 바이에른군과 프리울리 변경백 베렝가리오 1세의 군대가 스폴레토 공국 북쪽 경계에 이르자, 귀도 3세는 파비아로 달려가서 카를 3세에게 그동안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요청해 사면을 받아냈다. 이후 새 교황 스테파노 5세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면서도 사라센과 동맹을 맺고, 베네벤토 공국으로 쳐들어가 베네벤토를 공략하고 아이울프 2세를 포로로 잡았지만, 얼마 후 대 니키포로스 포카스가 이끄는 동로마군이 스폴레토로 쳐들어오는 것을 막는 사이에 아이울프 2세가 감옥에서 탈출해 베네벤토로 돌아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887년 11월 아르눌프가 카를 3세를 퇴위시키고 동프랑크 왕국의 국왕이 되자, 랭스의 대주교이자 친척인 폴크가 카롤루스 왕조와 혈연 관계가 있었던 그를 서프랑크 왕국의 국왕에 추대했다. 귀도 3세는 즉시 호응해 프랑스로 향했지만, 888년 1월 파리 백작 외드가 바이킹족을 물리쳐 왕국을 구해낸 공로로 서프랑크 귀족들의 추대를 받아 국왕이 되었다. 이후 외드와의 정쟁에서 밀려 이탈리아로 돌아간 그는 이탈리아 국왕이 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889년 이탈리아 국왕을 자처한 베렝가리오 1세를 성공적으로 물리친 그는 파비아에서 롬바르디아 철관을 쓰고 이탈리아 국왕이 되었다. 891년 로마로 가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서 대관식을 거행했고, 교황 스테파노 5세의 양자가 되었다.

891년 9월 14일에 스테파노 5세가 사망하고 포르모소가 새 교황에 등극했다. 귀도 3세는 포르모소로 하여금 자기 아들 람베르토를 공동 황제로 임명토록 했다. 그러나 포르모소는 교황령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귀도 가문을 꺾어놓고 싶어했기에, 893년 아르눌프에게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인정해 줄 테니 귀도 가문을 타도해달라고 요청했다. 아르눌프는 아들 수벤티발두스에게 군대를 맡겨 이탈리아 전임 국왕 베렝가리오 1세와 연합해 귀도 3세를 공격하게 했다.

894년, 수벤티발두스와 베렝가리오 1세는 베르가모에서 귀도 3세를 격파하고 타렌토와 밀라노를 공략했다. 귀도 3세는 타로 요새에 군대를 집결하기 위해 후퇴하던 중 타로 강 근처에서 급사했다. 사후 아들 람베르토가 아버지의 직위를 물려받고 베렝가리오 1세, 아르눌프, 포르모소에 대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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