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 중앙수사부 (r2020030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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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출처]
3. 권력기관의 상징
4. 매체에서의 등장
5. 역대 담당 사건들
6. 역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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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2013. 11. 29. 대통령령 제2488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현행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제4조(대검찰청에 둘 부와 대검찰청 검사의 직무) ① 대검찰청에 기획조정부, 중앙수사부, 형사부, 강력부, 공안부, 공판송무부 및 감찰부를 둔다.
제4조(대검찰청에 둘 부와 대검찰청 검사의 직무) ①대검찰청에 기획조정부, 반부패부, 형사부, 강력부, 공안부, 공판송무부, 과학수사부 및 감찰부를 둔다.
지방검찰청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대형 부패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1981년 설치된 부서. 그전에 있던 특별수사부의 후신이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폐지됐으며 대부분의 기능이 현재 대검찰청 반부패부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부로 이관된 상태다.

2. 역사[출처]


1981년 청와대나 검찰총장의 하명(下命)사건 수사를 담당해 오면서 이철희 · 장영자 씨 부부 어음사기사건, 명성사건, 5공 비리사건, 수서사건, 율곡비리,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과 한보사건, 김현철 씨 비리사건, 이용호게이트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획을 긋는 굵직한 사건들을 맡아왔다. 이처럼 중수부 수사는 그동안 내로라하는 권력층 인사들을 처단함으로써 '성역 없는 수사'의 대명사로 비유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표적 사정시비를 불러일으키면서 '정치 검찰'의 오명을 받아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1990년대 후반부터 중수부 폐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2003년 2월 대검찰청에서 마련한 '검찰개혁방안'에서도 대검 중수부의 2 · 3과를 폐지하고 1과도 원칙적으로 수사지도 기능만 수행하도록 해 중수부의 인지수사 기능을 사실상 폐지하기로 했으나 시행되지는 않았다. 이후 2009년 중수부 중앙수사1과에서 수사 도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한 것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폐지론이 재점화됐다.[1]
그러나 2013년 2월 25일 출범식을 가지게 될 박근혜 정부가 연내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를 확정하였다고 2013년 2월 21일 인수위원회가 발표하였다. 이후 2013년 4월 직접 수사권을 가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전면 폐지되었다.
폐지 이후 바로 대검 산하에 반부패부가 신설되면서 이 부서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로 기능이 이관됐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신설되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보던 업무는 자연스레 이곳에서 보게된다. 애초에 공수처안은 중수부가 해체되고 그 빈자리를 대신할 의도로 나온 안이다.

3. 권력기관의 상징


대한민국에서 국정원보다도 힘이 더 센 게 검찰인데 그중 최강 지위의 부서였던 대검 중수부장은 검사 인사를 총괄하는 법무부 검찰국장, 전국에서 가장 많은 특수사건을 처리하는 서울중앙지검장, 묵직한 공안사건을 담당하는 대검 공안부장과 함께 빅4로 불렸다. 그래서 권력기관의 최강 부서를 표현할 때는 항상 'XX의 중수부'라는 표현이 붙기 마련이다. 대표적 예시로 경찰청 특수수사과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 등이 있다.

4. 매체에서의 등장


펀치에서는 중수부가 폐지된 시점에 방영되었기에 작중 명칭이 중수부는 아니지만 중수부만큼 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것으로 묘사되는 대검찰청 반부패부가 등장하고 후반부에는 박정환, 신하경, 최연진, 이호성이 소속되어 있다.
황금의 제국에서 굵직한 경제범죄를 저지른 주요 등장인물들이 패배하고 마지막에 조사받으러 가는 곳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최동진, 최원재 등이 있다.

5. 역대 담당 사건들


  • 2002년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전달사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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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결과 발표하는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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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결과 발표하는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4]>

추가바람.

6. 역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 이종남 (1981~1983)
  • 김두희 (1983~1985)
  • 한영석 (1985~1987)
  • 김경회 (1987~1988)
  • 강원일 (1988)
  • 박종철 (1988~1989)
  • 최명부 (1989~1991)
  • 신건 (1991~1992)
  • 송종의 (1992~1993)
  • 정성진 (1993)
  • 김태정 (1993~1994)
  • 이원성 (1994~1995)
  • 안강민 (1995~1997)
  • 최병국 (1997)
  • 심재륜 (1997)
  • 박순용 (1997~1998)
  • 이명재 (1998~1999)
  • 이종찬 (1999)
  • 신광옥 (1999~2000)
  • 김대웅 (2000~2001)
  • 유창종 (2001~2002)
  • 김종빈 (2002~2003)
  • 안대희 (2003~2004)
  • 박상길 (2004~2005)
  • 박영수 (2005~2007)
  • 이귀남 (2007~2008)
  • 박용석 (2008~2009)
  • 이인규 (2009)
  • 김홍일 (2009~2011)[5]
  • 최재경 (2011~2012)
  • 김경수 (2012~2013)[6]

[출처] A B 박문각 시사상식사전[1] 당시 중수부장은 이인규, 수사 담당 검사는 우병우(!!!), 언론 담당이 홍만표였다![2] 이 사건은 가장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지켜졌다고 평가받는 사건이다. 당시 중수부장 안대희는 한나라당 뿐만 아니라 여권에도 칼을 겨눴고 안희정, 강금원 등 여권 실세를 구속하였다. 이에 국민검사, 국민검찰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대검 중수부에 꽃이 배달되기도 하였다. 당시 참여정부는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려고 하였으나 이 수사의 보복성조치로 비춰질까봐 하지 못했다고 한다. 후에 대검 중수부는 대통령 노무현을 퇴임 이후에 수사하게 된다.[3] 왼쪽부터 이인규 춘천지검 원주지청장,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문효남 대검 수사기획관, 남기춘 대검 중수1과장[4] 왼쪽부터 이동열 대검 범정1담당관, 우병우 대검 중수1과장,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5] 충남대학교 졸업, 지방대 출신으로는 무려 22년만이다.[6] 김경수 경상남도지사와는 동명이인, 드루킹 사건의 변호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