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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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파일:알베르티니 기자회견.jpg

이름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Demetrio Albertini

출생
1971년 8월 23일 (52세)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주 베자나 인 브리안자
국적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신체
180cm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소속
선수
AC 밀란 (1988~2002)
칼초 파도바 (1990~1991 / 임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02~2003)
SS 라치오 (2003~2004)
아탈란타 BC (2004)
FC 바르셀로나 (2005)
국가대표
79경기 3골 (이탈리아 / 1991~2002)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수훈
6. 기타



1. 개요[편집]


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2. 클럽 경력[편집]


파일:알베르티니123.jpg

1989년 17세의 나이로 데뷔하지만 당시 밀란의 중원을 담당하던 카를로 안첼로티, 프랑크 레이카르트라는 걸출한 두 레전드가 있었기에 제한된 기회만을 부여받다가 1990-91 시즌 파도바로 임대를 가게된다. 임대간 파도바에서 주전자리를 차지하여 28경기 5골이라는 준수한 기록을 남기고 밀란으로 복귀한다.

시즌 종료 후 안첼로티의 은퇴와 함께 주전 자리를 차지하고 AC 밀란은 1991-92 시즌부터 1993-94 시즌까지 리그 3연패를 달성하는데, 특히 1991-92 시즌에는 무패 우승을 기록하였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무려 3연속 진출시켰지만 1회 밖에 우승하지 못한다.[1]

이후 밀란 제너레이션의 붕괴와 세대교체 실패로 인해 암흑기로 대표되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전성기를 구사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마드리드 더비에서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넣는 등의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이후 SS 라치오, 아탈란타 BC등을 거쳐 2005년 FC 바르셀로나에서 5경기 출장 후 라리가 우승을 경험하고 은퇴한다.

대항마로 꼽혔던 선수는 드림팀 1기의 멤버였던 로날드 쿠만.


3.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데메트리오_알베르티니-1.png

1991년, 압박축구의 창시자이자 팀의 전임 감독이던 아리고 사키에 의해 발탁되었다. 1994 미국 월드컵에서 공격 전개가 안되던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로베르토 도나도니, 로베르토 바조와 더불어 공격전개의 활로를 이끌었고, 결승전 승부차기 2번째 키커로 나서 성공시켰지만, 주장 프랑코 바레시, 다니엘레 마사로, 영웅이던 로베르토 바조의 실축으로 결국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이후 절차부심하여 참가한 UEFA 유로 1996에서는 팀 전체가 맛이 가버린 상황에서 유일하게 맹활약을 펼치며 사람들이 그에게 찬사를 보냈으나 팀은 조별예선에서 탈락하고 만다. 사키의 후임으로 들어온 체사레 말디니는 알베르티니를 중심으로 팀을 개편하고, 1998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 8강까지 어렵지 않게 진출했으나 그 대회 우승팀 프랑스를 만나 박빙의 대결을 벌이지만 승부차기 끝에 아쉽게 석패하고 만다.[2]

디노 조프의 휘하 아래 참가한 UEFA 유로 2000에서 맹활약을 하는데 조별리그를 가볍게 통과해 8강에서 게오르게 하지가 이끄는 루마니아를 격파하고 준결승전에서는 네덜란드와 대결은 잠브로타가 퇴장당했지만 프란체스코 톨도의 선방으로 혈투 끝에 승부차기로 승리하여 결승전에 진출한다. 프랑스와의 결승전에서는 델베키오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실뱅 윌토르에게 동점골을, 다비드 트레제게에게 골든 골을 허용하여 결국 또 다시 프랑스에 밀려 준우승을 하고만다. 경기가 끝난 후 알베르티니는 눈물을 흘렸다.

파일:알베르티니_눈물.png

이후 2002 한일 월드컵을 준비하지만 발목부상으로 낙마하고 국가대표를 은퇴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패스와 슛 모두가 뛰어난 선수였지만 후계자라 할 수 있는 피를로와 대비해 볼 때 가장 큰 장점이자 차이점은 수비력. 알베르티니는 정말로 일류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수비력을 보유했으며 여기에 훌륭한 공 전개능력을 장착했다. 수비력으로 정평이 난 사비 알론소와 비교해 봐도 수비력은 한결 나은데 거기에 막강한 피지컬로 혼자서도 공을 지켜내고 전개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다. 중거리슛과 프리킥 또한 일품이었다. 피를로가 직접 골문을 겨냥한 프리킥을 자주 찬 데에 비해 알베르티니는 볼을 휘어 공격수의 머리로 배달하는 프리킥을 자주 찼으며 도움닫기 없이 바로 맞고 뒈져라식의 중장거리 프리킥과 페널티 킥을 찼다. 또한 중거리슛의 빈도와 정확도 파워 역시 피를로보다 월등했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2. 개인 수상[편집]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2000
  • AC 밀란 명예의 전당


5.3. 수훈[편집]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4등급: 2006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5등급: 2000


6. 기타[편집]


파일:시대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jpg

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5인을 선정했는데, 1990년대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5위에 이름을 올렸다.

은퇴 후 2006년 이탈리아 칼치오폴리 사태 조사 관련으로 이탈리아 축구 연맹에서는 데메트리오 알베르트니를 조사를 위한 수석 커미셔너로 임명되어 칼치오폴리 사태 조사를 제의하며 한동한 활동하다가 칼치오폴라 사태가 마무리 되자 사임했다.

[1] 1993년에는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승부조작 및 약물 파동의혹이 있었고(결승전에서 패배), 1994년에는 요한 크루이프FC 바르셀로나를 대파하며 우승, 1995년에는 팀의 레전드였던 프랑크 레이카르트를 필두로 한 루이 판할AFC 아약스에게 0-1로 패한다.[2] 이번에도 승부차기에서 2번 키커로 나섰으나 상대 골키퍼 파비앙 바르테즈에게 막히며 패배의 한 축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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