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수현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灵寿
영어 Lingshou
허베이성 스자좡시의 현. 스자좡 북서쪽 30km 지점의 평원에 위치하고, 인구는 약 35만명이다. 고대 중산국의 수도인 영수 (靈壽)로 시작되어 현재까지 2천년 넘게 지명을 유지하고 있다. 북서쪽 타이항 산맥의 헝샨링저수지 (横山岭水库)가 주요 유원지이다.
2. 역사[편집]
고대부터 지명은 영수 (靈壽)였고, 기원전 414년 중산무공이 태행산 너머로 이주하며 중산국의 수도가 되었다. 당시 영수읍 (靈壽邑)은 현 링수현의 서쪽 15km 지점 핑산현 소속의 황비좡 저수지 북안에 있었다. 비록 10여년 후 위나라에게 멸망했지만, 기원전 381년 중산환공이 유민들을 모아 영수에서 중산국을 재건했다. 그러다 기원전 296년 조나라에게 완전히 멸망되었다.
전한 시기인 기원전 206년, 옛 중산고도 자리에 영수현 (靈壽縣)이 설치되어 상산군 (常山郡)에 속했다. 서진 시기에는 영수현의 치소가 현 시가지로 이전되었다. 북위 시기 정주 (定州)를 거쳐 북주 시기에는 현 핑산현을 중심으로 한 포오군 (蒲吾郡)에 속했다가, 수나라 대에 군이 폐지되어 항주 (恒州)에 편성되었다. 수나라 말엽에는 일시적으로 연주 (燕州)에 속했고, 당나라 들어 정주 (井州)로 편성되었다가 곧 항주로 돌아왔다.
820년 항주는 진주 (鎭州)로 개칭되었고, 북송 시기에는 진정부 (眞定府)에 속했다. 1073년 영수현은 행당현 (行唐縣)에 병합되었다가 1075년 재설치되었다. 원나라 시기에는 다시 항주에 속했고, 곧 진정로 (眞定路)로 개편되었다. 명나라 시기에는 재차 진정부에 속했고, 청나라 시기 진정부는 정전부 (正定府)로 개칭되었다. 신해혁명 후에는 청하도 (清河道)에 속하다가 1929년 하북성에 직속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에는 링정허현 (灵正合县)으로 개칭되었고, 1958년 정딩현에 병합되었다가 1961년 링수현으로 복구되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4-02-26 16:49:55에 나무위키 링수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