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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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성우, 배우.
본격적으로 연기자 활동하기 이전엔 1957년에 연극배우로 데뷔했으며, 1961년에 MBC 라디오 성우 연기자로 활동했다. 2023년 7월 1일 폐렴으로 사망하였다.
2. 생애[편집]
1938년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났다. 대학 시절 농민들 앞에서 연극 공연을 한 것을 계기로 연기자를 꿈꾸게 되었다고 한다. 1962년 KBS의 전신인 서울중앙방송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였다. KBS 공채 출신이지만, 주요 출연작은 MBC 드라마가 많다. 특히 1980년대에 제1공화국에서 이기붕역을 시작으로 공화국 시리즈,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에 많이 출연하였다. 2006년 SBS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당 고조 이연을 연기한 이후로는 방송에서 간간히 얼굴을 비추었다.
주로 현대사를 다룬 드라마에 많이 출연했으며, 이기붕, 김성곤 등과 같은 정치인들을 연기하였다.
배재대학교 공연영상학과 겸임교수, 한일장신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겸임교수, 한남대학교 사회문화대학원 문화예술학과 객원교수 등을 지내면서 연기자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연기활동 외에도 사회활동을 많이 하였다. 1976년 한국TV방송연기자협회 회장, 1986년 방송문화원 원장, 1994년 서울대방종사회복지관 관장, 1997년 영화진흥공사 사장, 1999년 국립공원협회 부회장, 1999년 속초국제관광 엑스포조직위원회 홍보위원 등을 지냈다.
3. 출연작[편집]
3.1. TV 드라마[편집]
- 1979년 안국동 아씨(MBC)
- 1981년 제1공화국(MBC) - 이기붕
- 1981년 새아씨
- 1982년 남강 이승훈(MBC)
- 1982년 공주갑부 김갑순 - 김갑순
- 1982년 한 - 신성우
- 1982년 박순경(MBC) - 박순경
- 1982년 여인열전 황진이 - 송도 유수
- 1983년 조선왕조 오백년:뿌리깊은 나무(MBC) - 맹사성
- 1983년 야망의 25시(MBC) - 김유장
- 1983년 ~ 1984년 간난이(MBC)
- 1984년 조선왕조 오백년:설중매(MBC) - 김처선
- 1985년 억새풀(MBC) - 윤경순
- 1986년 조선왕조 오백년:회천문(MBC) - 윤방
- 1987년 사랑과 야망(MBC) - 태준 부
- 1987년 퇴역전선(MBC) - 천두일
- 1989년 제2공화국(MBC) - 이기붕
- 1989년 제5열(MBC) - 장연기
- 1990년 조선왕조 오백년:대원군
- 1990년 반민특위 - 이기용
- 1990년 ~ 1991년 사람과 사람(MBC)
- 1992년 마포 무지개(MBC) - 최 회장
- 1993년 위스키와 돼지갈비(KBS1)
- 1993년 제3공화국(MBC) - 김성곤
- 1993년 산바람
- 1993년 폭풍의 계절(MBC) - 진희의 조부
- 1993년 테마 시리즈(SBS)
- 1994년 지붕위의 남자
- 1994년 마흔살에 얻은 행복
- 1994년 숨은그림찾기(KBS2) - 명순의 아버지
- 1994년 인간의 땅
- 1995년 코리아게이트(SBS) - 신현확
- 1996년 남자대탐험(SBS) - 강정국
- 1998년 삼김시대(SBS) - 김성곤
- 2001년 새엄마
- 2005년 제5공화국(MBC) - 김정렬
- 2005년 그 여자
- 2007년 연개소문(SBS) - 당고조 이연(유작)
3.2. 라디오 드라마[편집]
- 일요 기획드라마 이웃(MBC) - 나레이션
3.3. 영화[편집]
4. 여담[편집]
- 거부실록에서 김갑순역으로 '민나 도로보데스'[3] 라는 대사를 하였는데, 원래는 실존 인물인 김갑순이 자주 하던 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방영 당시 희대의 사기사건인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이 터지고 그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이 상황을 풍자하는 80년대 유행어로 발전하였다.
-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 지지하는 찬조 연설을 하였는데, 이는 최초로 야당 후보 찬조 연설한 연예인이었다고 한다. 당시 제5공화국 끝 무렵이었지만, 연예인들이 정치적 소신을 내기는 쉽지가 않았었던 걸 감안하면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이 일로 방송계 윗분들에게 단단히 찍혀서[4] 1987년 ~ 1988년에는 방송가에서 거의 퇴출 상태로 있었다가,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퇴출이 없게 되었다. 결국 이때 고생을 했던 탓에 정치 쪽에는 깊이 관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담으로, 김영삼이 개신교 신자인데 비해 박규채는 불자인데, 나중에 이에 대해 묻자 정치적 신념과 종교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현답을 남기기도 했다. 위의 찬조연설 등의 인연으로 김영삼 전 대한민국 대통령의 국가장때 장례위원회의 일원으로 선정되었다.
- 월남 이상재를 기념하는 활동을 하였다. 이상재를 기념하여 그의 아호를 따서 특별상을 수여하는 월남장(月南章)을 증정하는 위원회의 대표 월남장증정위원회장, 월남이상재선생기념사업회 재정위원장 등을 지냈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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