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차(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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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키이우 주에 위치해 있는 도시이다.
키이우와 가까운데다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고 비교적 저렴한 집값 때문에 많은 신혼부부가 살았던 곳이었다.
2. 역사[편집]
부차에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898년, 키이브-코벨 철도 노선이 개통되면서 부차 강변에 생긴 작은 간이역 주변에 정착촌이 형성되어 부차는 키이브-코벨 철도 노선에서 오늘 이르핀에 있는 것과 비슷한 기차역 중 하나였다.
부차 기차역 근처에 벽돌을 생산하는 작은 마을 이블룬카가 있었다. 야블룬카는 19세기 폴란드 지리사전에 야부윈차 마을로 기록되었다. 폴란드 지리사전은 이 마을이 키이우에서 37베르스트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고 전했다. 베르스트는 러시아 거리 단위로 1베르스트는 1.0668km에 해당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키이우 주는 독일에 점령을 당했다가 1943년 12월 나치의 압박체제에서 풀려났고, 앞서 부차에 니콜라이 바투틴 장군이 지휘했던 제1 우크라이나 전선 사령부가 주둔하기도 했다.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 영토가 되어 2020년에 키이우주 내 행정구역으로 분리되면서 중요도시로 자리잡게 된다.
러시아군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에 우크라이나군 한 명이 부차로 향하는 다리 한 곳을 자폭하여 파괴하면서 러시아군 진격을 늦추는데 공을 세운다. 이후 점령되면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비무장한 민간인들을 상대로 자행한 학살이 일어났다. 다시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하게 된 것이다.
전쟁 직전에 인구가 5만 3천명이 살고 있었으나, 학살 이후 인구가 1만 5천명 수준으로 줄었다.
2023년에는 재건이 완료되어 서유럽 도시와 비슷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1년 전 참혹했던 곳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도시가 완벽하게 재건되었다. 도시 곳곳에는 추모비들이 많이 세워졌다.#
3. 교통[편집]
작은 철도역 스클로자보드스카가 있다. 도시의 남쪽 끝에 자리하고 있는 이 철도역은 19세기에 지어졌으며 이 도시에서 가장 의미 있는 건축물로 꼽힌다. 주요 고속도로인 M07이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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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2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