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그뢰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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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빌헬름 그뢰너는 독일 제국군의 군인이자 독일의 정치인이다. 패전 후 잠시 독일 제국군의 참모총장으로 역임하였다.
2. 생애[편집]
2.1. 초기[편집]
그뢰너는 1867년, 뷔르템베르크 왕국에서 태어났다. 기초교육을 마친 1884년, 그뢰너는 뷔르템베르크 왕국군에 입대하였다. 1893년부터 1896년까지 베를린의 전쟁 대학에서 공부하였다. 그뢰너는 대위의 계급으로 장군참모에 들어갔다. 이후 그뢰너는 철도 부서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철도 부서는 당시 참모총장이었던 알프레트 폰 슐리펜의 슐리펜 계획이 더 잘 실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2.2. 제1차 세계 대전과 독일 혁명[편집]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국경 전투에서 철도 부서는 병사들을 국경으로 보내는 것을 도와주었다. 1915년 그뢰너는 소장으로 진급하였고, 전투식량 부서를 신설하였다. 그뢰너는 루마니아로부터의 식량 배송을 담당하였다. 이후 1916년 중장이 되고, 프로이센의 전쟁부 소속인 육군성의 부장이 되었다. 이후 그 자리에서 계속 있었다. 그러다가 서부전선에서 처음 실전 경험을 쌓았다. 제25 예비 사단의 사령관이 되며 참호전의 분위기와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보았다. 이후 폴란드에 주둔중이던 헤르만 폰 아이히호른의 집단군의 참모총장이 되었다. 그러다 에리히 루덴도르프가 최고 참모차장 자리에서 1918년 10월 26일 물러나자, 그뢰너는 독일 제국군의 최고 참모차장이 되었다. 당시 독일 국민들은 언제 혁명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렇기에 그뢰너는 군대를 전선에서 뺄 준비를 하였다. 이때 이미 그뢰너는 군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빌헬름 2세에게 퇴위를 권유하기까지 하였다. 그뢰너는 독일제국이 항복할때, 독일제국군의 퇴각과 해산을 지휘하였다. 동시에 베르사유 조약 체결에 동의하였다. 이는 당시 타 프로이센의 장교들이나 전쟁장관, 발터 라인하르트의 의견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뢰너는 이후 힌덴부르크의 후임으로 독일 제국군의 참모총장이 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있어 한스 폰 젝트가 임명되었고, 국가방위군으로 완전히 전환되었다. 그뢰너는 대통령이자 총사령관이었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와의 의견충돌로 해임당하였다.
2.3. 정치인으로서[편집]
그뢰너는 전역 후 입당을 하지는 않았지만,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의 부탁에 의해 교통부 장관이 되었다. 그뢰너는 딱히 군국주의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국가방위군의 확대를 제외하고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를 지지하였다. 그뢰너는 동시에 나치 돌격대의 해산을 원하지 않았고 도히려 국가방위군 부대들과의 통합을 원하였다. 이에 반감을 산 파울 폰 힌덴부르크와 쿠르트 폰 슐라이허는 그뢰너를 해임시켰다. 그뢰너는 나치당과는 동맹 관계였다. 1934년 포츠담으로 이사간뒤 1939년 5월 3일,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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