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레오폴트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요아힘 카를 빌헬름 프리드리히 레오폴트는 호엔촐레른 가문의 일원으로 프리드리히 카를 니콜라우스의 아들이다. 러일전쟁에 참여하였다.
빌헬름 2세의 동서이자 6촌 남동생이다.
2. 생애[편집]
요아힘 카를 빌헬름 프리드리히 레오폴트는 프리드리히 카를 니콜라우스의 막내이자 유일한 아들로 태어났다. 1875년 독일 제국군에 입대해 기병 병과를 택하였으며, 빠르게 진급하였다. 1893년 소장으로 진급하였으며 후사르 연대를 지휘하였다. 제4차 기병 사찰의 사찰관으로 부임하였고, 기병대장이 되었다. 하지만 동서인 빌헬름 2세에 의해 사임당하게 되자 앙심을 품은 요아힘 카를은 빌헬름 2세 부부의 사생활을 조사하였고, 여러 번의 고소로 인해 대중적인 인기도 얻었다.
1904년 러일전쟁에 군사 고문으로 참전하였다. 1907년 육군 총감이 되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아무런 사단도 지휘하지 않고 자신의 사유지에 있었다.
그는 패전 이후 독일 11월 혁명을 반가워한 유일한 왕족이었는데 빌헬름 2세가 혁명으로 퇴위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재산 문제에서 발목이 잡힌 그는 일부 귀중품들을 팔고, 일부는 자신의 아들에게 주었다.[3] 이후 1931년 바이마르 공화국 서프로이센의 장원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4 13:35:45에 나무위키 프리드리히 레오폴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바이마르 공화국 수립 이후 독일 제국의 황족들은 기존의 성씨 대신 '프로이센'을 성씨로 쓰게 되었다.[2] 빌헬름 2세의 황후 아우구스테 빅토리아의 여동생이다.[3] 장남은 1927년에 말에서 떨어져 사망, 1912 스톡홀름 올림픽 승마 동메달리스트였던 차남은 1차 대전에서 전사하였다. 유일하게 아버지보다 오래 산 3남은 다하우 수용소에도 수감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