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어 아르츠 폰 슈트라우센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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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아르투어 아르츠 폰 슈트라우센부르크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인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마지막 장군참모장이기도 했다.
2. 생애[편집]
아르츠는 1857년 트란실바니아 대공국의 헤르만슈타트에서 개신교 목사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카를 구스타프 아르츠 폰 슈트라우센부르크(Karl Gustav Arz von Straußenburg)는 헤르만슈타트의 우체국 국장이자 헝가리 의회의 상원으로 상당한 거물이였다. 조상은 트란실바니아 작센인으로 헝가리계 오스트리아인은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아르츠는 처음 몇 주 동안에는 수도의 황립 및 왕립 전쟁성의 부서장으로 남아있었으나 제15보병사단으로 배치된 후 동부전선에 참전하였다. 이후 동부전선 및 루마니아 전선에서 성과를 내며 카를 대공의 신임을 받았다. 카를 대공은 황제가 된 후 사사건건 자기와 마찰을 일으켰던 콘라트 장군참모장을 해임하고 아르츠를 선임하였는데, 자신감 있고 야심 찬 콘라트와는 다르게 아르츠는 순종적인 성격으로 카를 1세의 충실한 군인이였다. 그러나 제국은 패배하였고 제국군은 해체되었다. 제국이 공중분해된 후 아르츠는 헝가리의 시민이 되었으나, 그의 고향은 루마니아 땅이 되었고 루마니아는 아르츠에 입국을 금지했기 때문에 아르츠는 죽을때까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헝가리에서도 연금 지급을 거부당한 아르츠는 군인 연금만으로 살아야 했기에 가난한 삶은 살아야했다. 설상가상으로 너무 일찍 이탈리아 전선에 휴전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많은 오스트리아 군인이 이탈리아 군에 의해 포로로 잡혔다는 비난을 받아 재판까지 갔었는데 다행히 무죄 판결을 받았다. 노년을 빈에서 회고록을 쓰며 살다가 연금을 받기위해 부다페스트에 머물던 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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