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트 폰 뵘에르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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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에두아르트 폰 뵘에르몰리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인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육군 야전원수가 되었다. 1940년 10월 30일, 명예 독일 국방군 원수가 되었다.
2. 생애[편집]
에두아르트 뵘(Eduard Böhm)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이탈리아 중부 교황령 안코나에서 태어났는데, 오스트리아 제국 군인이던 부친 게오르크 뵘(1813~1893)이 그 곳에 주둔하던 때였다. 부친은 노바라 전투의 참전용사로, 은퇴한 후인 1885년 귀족 작위를 받았는데 그 무렵 부인 마리아 요제파 뵘(Maria Josepha Böhm)의 처녀 적 성씨인 에르몰리(Ermolli)를 합쳐 "von Böhm-Ermolli" 가문이 되었다.
뵘에르몰리는 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1875년 9월에 군 경력을 시작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 제2군사령관이 되어 세르비아 전선에 투입되었다. 러시아 제국이 징병령을 발동하자 제2군은 러시아 전선으로 투입되었다. 뵘에르몰리는 1916년 상급대장(Generaloberst)에 이어 1918년 1월 원수로 승진하였다. 그 해 3월 그의 부대는 우크라이나로 진격하였고, 오데사에서 종전을 맞아 해체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된 이후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오파바[6] 의 집에 거주했다. 체코슬로바키아군에 복무하진 않았으나,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그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등의 예우를 했다.
![파일:220px-Boehm_Ermolli_1.jpg](http://obj-kr.the1.wiki/d/2e/a7/2e951b7002c5dd812f67278ef889d1ddcb41a71e12da5ce151a7b2917d476b83.jpg)
원수 정복을 입은 말년의 모습
1938년 나치 독일이 그가 살던 수데텐란트를 점령하자 독일 시민이 되었고, 1940년 10월 31일 독일군 원수로 명예진급하였다.[7]
![파일:Feldmarschaelle_03.1941.jpg](http://obj-temp.the1.wiki/data/46656c646d617273636861656c6c655f30332e313934312e6a7067.jpg)
1941년 3월, 히틀러 사열을 준비중인[8] 뵘에르몰리, 우측에 선 인물들은 에리히 레더, 발터 폰 브라우히치, 빌헬름 카이텔, 에르하르트 밀히, 루돌프 헤스, 하인리히 힘러.
1941년 사망하자 그의 장례는 빈에서 국장으로 치러졌다.
[1]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대로는 '폰뵘에르몰리'로 표기한다.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 또한 붙임표로 이어진 인명 등의 경우, 여러 요소가 하나의 단어를 이루는 복합어로 보고, 한글로 표기할 때에는 붙여 적는 것이 규정 용례이다.[2] 가문이 귀족 작위를 받은 후의 이름.[3] 1917년 남작 작위를 받은 후의 이름.[4] 오스트리아 공화국에서 신분제가 폐지되고 귀족 접두어가 철폐되면서 개명한 이름.[5] 現 체코 오파바[6] 독일명 트로파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 전에는 리히텐슈타인 공가의 영지였다.[7] 임명 후 28 보병 명예연대장을 맡았다.[8] 1941년 12월 사망전까지, 일정에 이상이 없으면 보통 사열식 및 행사에는 보통 참석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