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경(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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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배우.
2. 생애[편집]
1936년 경기도 경성부 수송일정(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에서 오용목(吳龍睦)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시인 오일도(吳一島)의 종손자이며[9][10] , 서울고등학교(8회)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엘리트 출신이다. 부유한 집안환경에서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서울고등학교는 오현경이 입학할 1952년 당시 손꼽히는 명문고등학교였고, 연세대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가 없는 명문대이다.
1961년 KBS-TV 개국 당시 특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그후 동양방송으로 이적해 활약했으며 주로 희극적 인물들을 연기했고, 연극계에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2023년 현재 대한민국 연예인들 중 최고참으로 분류된다.
아내였던 윤소정도 배우였고, 딸인 오지혜도 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영화감독 윤봉춘의 사위이다.
궁금한 스타쇼 호박씨에 출연해서 윤소정이 말한 바에 따르면, 극에서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깐깐하고 잔소리가 많은 편이라고 한다. "연극과 의상샵을 병행하지 마라"는 오현경의 참견으로 인해 잘 되던 의상 샵도 접을 정도였다.
TV 드라마에서의 대표작은 TV 손자병법에서의 만년과장 이장수 역. 1987년부터 1993년까지 6년간 방송된 이 드라마에서 늘상 부장승진에 실패하는 자재과 만년과장 역을 맡아 굉장한 호연을 보인다. 위에서 눌러대고 아래에선 치고 올라오는 중간관리직의 애환을 정말 잘 살렸다. 저때만 해도 직장 드라마를 직장에서 연애하는 드라마로 찍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 뒤 각종 작품의 만년과장 캐릭터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장욱제의 바보연기 이전에 60년대 말 TBC에서 원조격인 바보연기를 선보였었다.
식도암과 위암으로 2차례나 암 투병을 겪으면서 TV나 영화에선 활동이 조금 뜸한 편. 그러나 연극 무대에는 계속 섰다. 2014년에는 참 좋은 시절에 출연했다.
2017년 6월에는 부인 윤소정과 사별했다.
3. 그 외[편집]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으로 응원단장으로 선출될 정도로 이미 고등학교, 대학교 때부터 연기자 및 엔터테이너로서의 끼를 충분히 보여 주었으며, 연세대에서 무엇을 전공했느냐는 질문이 오면 "연극을 전공했다"[11] 고 답할 정도로 연극에 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015년에는 EBS와 연극 인생을 회고하는 인터뷰(EBS 초대석 - 연극은 내 인생이다 - 배우 오현경 (2015년 6월 29일 방송))를 하였다. Part1Part2Part3
부인 윤소정이 생전 토크쇼에 출연해서 말한 바에 의하면 꽤나 애처가였던 듯하다.#
본래 유쾌한 성격으로 학창시절 이런저런 짖궂은 장난도 많이 쳤었다고 한다.
그의 집안은 본래 경북 영양군의 지주출신으로 그의 조부대에 서울로 이주했다고 한다. 오현경 본인은 서울에서 1930년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서울의 과거사를 잘알고 있으며 그시절 고학력 배우들이 으레 그렇지만 학자를 방불케 할정도로 학문적 소양이 탄탄하다.
이름이 같은 후배 여배우와 직접적인 인연이 있다. 직접 찾아와서 인사도 나누고, 이름이 같아서 개명해야 할지를 상의하자 그대로 이름을 쓸 것을 조언했다고. 유명한 그 비디오 사건이 터지자 이름이 같은 그에게 연락이 자주 오거나 중년 남자들이 집을 찾아와 만나려 해서 경비원과 다투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
4. 출연[편집]
4.1. 영화[편집]
- 나랏말싸미 (조철현, 2019) - 노승
- 전국 노래자랑 (이종필, 2013) - 오영감
- 후궁: 제왕의 첩 (김대승, 2011) - 윤기훈
- 평행이론 (권호영, 2009) - 손기철
- 연리지 (김성중, 2006) - 아버지
- 여름이 준 선물 (이영재, 2006) - 오길재
-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이영은, 2005) - 지회장
- 혈의 누 (김대승, 2005) - 김치성 대감
- 행복한 장의사 (장문일, 1999) - 장판들
- 참새와 허수아비 (윤삼육,[12] 1983) - 김영감
- 땅콩껍질 속의 연가 (이원세, 1979)
- 회상 (이성구, 1974)
- 해벽 (이성구, 1972)
- 마패없는 어사 (진천, 1971)
- 상감마마 미워요 (나영세, 1971) - 자선
- 두 남자 (최상현, 1970)
- 무영탑 (김수용, 1970)
- 식모 삼형제 (김화랑, 1969)
- 몽땅 드릴까요(토끼와 포수) (유현목, 1968)
- 춘풍 (김영효, 1968)
- 내멋에 산다 (김기덕, 1967)
- 일월 (이성구, 1967)
- 하숙생 (정진우, 1966)
- 오늘은 왕 (김기덕, 1966)
4.2. 드라마[편집]
- 2014년 KBS2 《참 좋은 시절》... 강기수
- 2011년 MBC 《절정》... 이중직. 이육사의 조부
- 2011년 KBS2 《가시나무새》... 이영조의 조부
- 2006년 MBC 《누나》... 조부
- 2005년 MBC 《신돈》... 월선스님
- 1998년 KBS2 《싱싱 손자병법》... 이장수
- 1996년 MBC 미니시리즈 《화려한 휴가》
- 1994년 SBS 《좋은걸 어떡해》... 황보대봉
- 1993년 KBS2 《신 손자병법》... 이장수
- 1992년 MBC 베스트극장 《일흔살과 일곱살》
- 1987년 KBS2 《TV 손자병법》... 이장수
- 1982년 KBS1《풍운》... 하나부사 요시모토
- 1981년 KBS2 《포도대장》
- 1981년 KBS 《서울의 지붕 밑》
- 1978년 TBC 《내일도 푸른하늘》... 맹두칠
- 1977년 TBC 《서울야곡》
- 1971년 TBC <검은 별장>
- 1971년 TBC 《양반전》
- 1971년 TBC 《알뜰부인 덜렁부인》
- 1970년 TBC 《고독한 갈》
- 1970년 TBC 《꿈은 좋았는데》
- 1970년 TBC 《두 남자》
- 1970년 TBC 《옥녀》
- 1970년 TBC 《동경유학생》
- 1968년 TBC 《파란 눈의 며느리》... 장남
- 1967년 TBC 《내멋에 산다》... 장남
4.3. 연극[편집]
- 1962년 《포기와 배스》...흑인 변호사 역
- 1966년 《아들을 위하여》...조지디버 역
- 1967년 《화니》...빠니스 역
- 1969년 《휘가로의 결혼》...휘가로 역
- 1969년 《맹진사댁 경사》...맹노인 역
- 1970년 《허생전》...허생원 역
- 1972년 《오델로》...이아고 역
- 1984년 《드레서》...드레서 역
- 1985년 《햄릿》...포로니어스 역
- 1991년 《막차탄 동기동창》...김대부 역
- 2009년 《봄날》...아버지 역
- 2009년 《배니스의 상인》...샤일록 역
- 2010년 《너희가 나라를 아느냐》...최익현 역
- 2016년 《언더스터디》...오선생 역
5. 수상 경력[편집]
- 1970년: 한국문화대상 연극부문 대상
- 1983년: 대한민국 연극제 남자연기상
- 1985년: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 1991년: 서울연극제 연기상
- 1992년: KBS 연기대상 대상
- 2008년: 서울연극제 남자연기상
- 2009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남자연기상
- 2011년: 올해의 서울시 문화상 연극부문
- 2012년: 연문인상(연세대학교 문과대학)
- 2013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선출
[1] 돌도 지나기 전에 안국동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성장하였다.[2] 낙안 오씨(樂安 吳氏) 집성촌이다. 오현경도 어린 시절을 이 마을에서 보냈다고 한다.# #[3] 24세손 현(鉉) 항렬.[4] 영화감독. 아리랑으로 유명한 감독 나운규와 죽마고우였다고 한다.[5] 현재는 폐교되었다.[6] 1971년 2월 28일 중학교 평준화 시책으로 인해 폐교했다.[7] 재수를 한 게 아니라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을 갔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와 복학하여 1년 늦게 졸업하게 된 것이다. 1950년대 중후반 연세대를 비롯한 몇몇 사립대는 이른바 무시험(내신+구두)으로 입학할 수 있는 전형이 있었다. 그가 졸업한 서울중고교는 당시 상당한 명문고였기에 무리 없이 입학할 수 있었다. 더불어 원래는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고자 했으나 연극과 멀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어문계열에서 전공을 찾았고 영문과도 고민했으나 영어에 자신이 없어 국문과에 가면 희곡을 공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선택했다고 한다.[8] 연극학 전공. 석사 과정을 다 마치지 못하고 중퇴하였다.[9] 정확하게는 오일도의 형 오희태의 손자로 아버지 오용목이 오일도의 장조카였다. 오일도 일본 유학시절 두 사람이 찍은 사진이 남아있는데 삼촌과 조카 사이지만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는다.[10] 양복 입고 모자 든 청년이 시인 오일도, 그 옆의 교복입은 소년이 배우의 아버지인 오용목이다.[11] 참고로 연세대에는 연극 전공이 없다.[12] 살어리랏다 감독으로 알려진 영화인. 장군의 아들을 비롯한 영화 각본으로도 유명했으며 오현경의 처남으로 2020년 7월 2일 만 83세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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