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천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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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읍성

1. 개요
2. 역사
3. 여담




1. 개요[편집]


웅천읍성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소재한 성내동읍성이다. 성벽 일부만 남아있던 것을 2011년 읍성 복원사업으로 동문 일원과 해자, 남쪽 성벽 일부를 복원하였다.

2.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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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읍성 객사(1968년 해체)

1407년(태종 7) 개항한 제포(또는 내이포)에 불법으로 거주하는 일본인의 수가 늘면서 고을을 보호하기 위해서 1439년(세종 21) 웅천읍성을 지었다

1510년(중종 5)에는 삼포왜란이 일어나 일시 함락되어 동문인 견룡문이 소실되기도 했고, 임진왜란 때에는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오랫동안 남해안을 방어하는 거점으로 사용되었으나 1895년(고종 32)부터 읍성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걸로 보고 있다.

1968년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읍성내 건물이였던 객사[1]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웅천국민학교(現 웅천초등학교)이 들어섰다.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2011년, 동쪽 성벽과 동문인 견용문 일원 그리고 남쪽 성벽 일부를 복원했다.


3. 여담[편집]


파일:IMG_7852.jpg
. 웅천읍성 성곽 전체를 완전히 복원해서 관광 상품으로 재탄생 시키려 했던 것 같은데 어쩐 이유에서인지 2011년 이후 복원이 중단됐다. 웅천고등학교 본관 2층 중턱 계단 벽에도 복원 예상도가 있고 2023년까지 복원을 완성한다고 적혀있다.

2022년부터 이 웅천읍성을 기리는 축제인 웅천읍성축제가 진행되고 있다. 2023년 제2회 웅천읍성축제에서 인근에 위치한 웅천고등학교에서 사람을 뽑아 하마비, 조선수군, 도공행렬을 했다.

웅천읍성에는 4개의 대문이 존재했었는데 각각 동문은 견룡문
(見龍門), 서문은 수호문(睡虎門), 남문은 진남루(鎭南樓), 북문은 공신문(拱宸門)이라 불렸다.현재 남아있는 곳은 2011년 복원된 견룡문(見龍門)과 서벽·남벽은 일부만 있고, 도로 개설로 인해 북벽은 흔적도 없는 상태이다.

맞은 편에 주기철 목사 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성벽에 있는 명문석을 통해 창녕, 진주부민들과 인근 군현의 주민을 동원하여 축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여지도서(輿地圖書),웅천지(熊川誌) 등의 기록에 의하면 성안의 시설물로 객사[2](現 웅천유치원 자리), 동헌, 장적고, 향사당, 인리청, 군관청, 장관청, 훈도청, 지인방, 사령방, 관노방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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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당시 웅천국민학교 교무실로 쓰였다고 하지만 더이상 유지 보수가어렵다고 판단 이를 해체 한 것이다.[2] 위의 흑백 사진을 참고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