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보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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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관점
3.1. 경제관
3.2. 사회관
3.3. 역사관
3.4. 외교관
5. 주요 정당
6. 주요 인물
7. 외부 링크
8. 같이 보기
9.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인도의 보수주의(Conservatism in India)는 인도 전통 맥락에서의 보수주의의 한 형태이다.

인도의 주류 보수주의는 힌두 보수주의이며, 이슬람 보수주의도 있지만 비주류이다.


2. 역사[편집]


근대적 인도 보수주의는 인도 국민 회의 내에서 적극적 세속주의에 찬동하지 않고 일정 부분 힌두 전통에 대한 자긍심과 힌두 내셔널리즘을 옹호한 사르다르 발라브바이 파텔이 그 시초라고 볼 수 있다. 당적으로는 그도 인도 국민 회의 소속이기는 했지만 오늘날 그는 인도 국민 회의보다 인도 인민당에게 더 추앙받는 정치인이다.

이슬람 보수주의자들의 경우 상당수가 파키스탄으로 빠져나갔으나, 소수파로 남아 있기는 하다. 물론 (친힌두 무슬림을 제외하면) 힌두 보수주의자들과의 관계는 상극에 가깝다.


3. 관점[편집]


반드시 힌두 보수주의의 관점만 적을 필요는 없지만, 주류 보수주의자들인 힌두 보수주의자들의 관점 위주로 작성한다.


3.1. 경제관[편집]


인도 보수주의자들의 경제정책은 통일되어 있지 않다. 인도라는 나라가 워낙 넓고 사람이 많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라고 다 같은 경제 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렌드라 모디 총리를 비롯한 현 인도 인민당 주류는 인도 국민 회의보다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보인다. 경제적 개입주의를 주장하는 우파 정당들도 많다.


3.2. 사회관[편집]


인도 보수주의자들, 특히 힌두 보수주의자들은 를 신성시하는 문화를 지닌다. 2017년 이후 집권 인민당은 소고기 도축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인도의 보수주의와 힌두 내셔널리즘 지지자들은 "소 자경단"이라 불리는 그룹을 형성해 소를 도축하였거나 소를 소지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자를[1] 구타하는 등의 행태로 악명이 높다.

소 자경단의 행태는 인민당 총리 나렌드라 모디 집권 이후 날로 악화되어 2012년에는 단 한차례만 일어난 '소 자경단'의 린치가 2018년에는 무려 55회를 찍기도 했다.[2] 또한 1992년 힌두 내셔널리즘 그룹이[3] 역사적인 모스크를 파괴한 아요다야 시[4]의 자리에 힌두교 사원을 지을 것을 주장하였는데, 결국 2020년 모디의 인도 정부가 해당 자리에 라마를 기리는 힌두교 신전을 지을 것을 천명하면서 갈등에 기름을 부어 버렸다. 당연히 인도 인구의 약 15%를 차지하는 무슬림들은 또 다시 폭력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불안에 떨었다.

사마지와디당 등 일부 좌파 사회주의 정당들은 반동성애 등 보수적 성격을 보이기도 한다.[5].

인도 보수주의자들에게 종종 공격 대상이 되는 것은 무슬림이긴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도 우호적이지 않다. 인민당 등 보수 세력이 집권하면 기독교인을 포함한 소수 종교인에 대한 폭력이 증가한다는 논란이 있다. 인도 보수주의자들이 외교적으로 친서방임에도 내부적으로 반기독교 성향을 보이는 이유는, 기독교인들을 영국 식민지 시절 부역 세력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힌두 보수주의자들은 소고기가 아니더라도 고기 요리 자체를 살생이라면서 그리 좋게 보지는 않는다. 채식주의가 보통 진보 진영에서 더 주목받는 구미권, 한국, 일본과 달리 인도에서 채식주의는 힌두 보수주의와 종종 관련된 의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인도 좌파들은 이에 대한 반발로 고기를 소비하기도 한다. 힌두 우파 세력이 강한 구자라트주에서는 아예 계란 요리를 파는 노점상들까지 단속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계란 요리도 고기 요리이기 때문에 불순하며, 힌두인들의 '종교적 감정'을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3.3. 역사관[편집]


인도의 주류 보수주의자들인 힌두 보수주의자들은 마라타 제국을 찬양하고 무굴 제국을 치욕의 역사라고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다. 특히 시바지 본슬레를 존경한다.

인도의 다수인 힌두교 정치세력이 1947년 이전에 마지막으로 통일 정권을 잡았던 시기는 11세기 프라티하라 왕조가 마지막으로, 그 이후 인도는 1천년 가까이 북방에서 남하한 이슬람계 유목민족의 침략으로 힌두 왕조가 무너진 상태에서, 이들이 세운 무슬림 왕조 무굴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마라타 동맹이 무굴 제국과 항쟁하면서 다시 힌두 왕조로 인도를 통일하나 싶었는데[6] 곧 영국이 쳐들어와 식민지배를 당했고, 힌두교도들은 다수지만 소수 지배층은 이슬람이었던 상태가 지배층만 영국인으로 바뀌어 무굴 제국때 만들어졌던 토후국 연합의 역사가 이어졌다. 영국 동인도 회사는 점령 시점에서 대부분 무굴 제국의 방식으로 백성은 힌두, 지배층은 이슬람이었던 수많은 토후국들을 무력으로 일일이 제압하지 않고 외교권을 뺏고 세금을 거두는 조건으로 굴복시켰으며, 토후국이 완전히 인도에 병합된 것은 독립 이후 파텔의 주도로 진행된 무력진압과정을 거치고 나서이다.[7] 즉, 인도 인구의 약 80%를 차지하는 힌두교 신자, 스스로를 힌디라고 부르는 민족은 1천년 가까이 자신들의 고향인 인도에서 그간 2등 시민으로 살아왔던 역사가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인도 인민당의 주장은 무굴 제국조차 힌두교 입장에선 노예 왕조이며, 힌두교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거의 1천년전까지 시계를 거꾸로 돌려야하는 것이다. 그나마 이슬람보다는 덜 돌린다는게 함정 그래서, 인도 인민당 집권 이후부터는 지속적으로 인도판 역사 바로세우기 운동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과거 관습 중 이슬람이나 영국 식민지 시절의 관습을 없애고 힌두 왕조 시절의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순간 봄베이,캘커타등 인도 대도시들의 이름이 영국식에서 뭄바이,콜카타등 인도식 이름으로 바뀐 것이 대표적이고 그 외에도 지속적으로 힌두교의 근간을 강조하고, 독립과정에서 결국 분단을 일으킨 파키스탄으로 떠나지도 않고 남아있는 약 1억명의 무슬림들에게 자신들을 노예로 삼은데 대한 복수에 가까운 탄압을 통해 지지기반인 하층 힌두에게 힌두트바를 향한 국수주의 선전을 행하고 있다.

인도 보수주의자들은 인도 국민 회의를 포함한 리버럴 진영을 과거의 '식민부역세력'이라고 종종 비난하며 재미를 보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 친일몰이 하는 것과 비슷한데 진영이 뒤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외교적으론 보수주의자들이 더 영국에 우호적인데, 과거 영국 식민주의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슬람이 싫어서 영미권을 포함한 서구권과 잘지내려는 것이다.


3.4. 외교관[편집]


인도 좌파나 자유주의자들과 달리 제3세계 중심 외교에 반대하며 철저한 반중, 반이슬람 우파 포퓰리즘 외교정책과 그에 따른 진영논리로 친서방, 친미 외교 정책을 지지한다. 다만 중국에는 적대적인 반면 러시아에 대해서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파키스탄 초강경파이다. 잠무 카슈미르의 전역을 인도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관철하고 있는데, 현재 40프로 정도가 파키스탄과 중국이 실효지배하고 있다.


4. 힌두트바[편집]


이들은 인도 보수주의자들의 절대 주류를 차지한다.


5. 주요 정당[편집]




6. 주요 인물[편집]




7. 외부 링크[편집]




8. 같이 보기[편집]



9.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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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로 무슬림들이다.[2] 2020년에는 다시 줄어들었는데, 이유는 뭐 알다시피...[3] 인도 인민당의 주요 정치인들도 당시 많이 포함되어있었다.[4] 역사적으로 힌두교도들과 무슬림들간 갈등의 소지가 많은 이슈이다. 아요다야는 비슈누의 7번째 환생인 '라마'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힌두교도들의 성지로 여겨졌다. 하지만 1528년 무굴 제국 초대 황제인 바부르 황제는 이 자리에 모스크를 세웠고, 이는 오랜 기간 힌두교도들의 미움을 받았던 동시에 인도의 무슬림들에게는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모스크로 남아 있었다.[5]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보수정당으로 분류한다.#[6] 타밀나두서벵골 콜카타 주변 해안지대를 지배하지 못해 인도 아대륙 전체에 지배권을 행사하진 못했으며, 델리,하이데라바드등에 존재하던 다수의 소규모 이슬람 토후국과도 항쟁중이었다.[7] 이 과정에서 보통 인도의 토후국과 정반대였던 현재 파키스탄 지역의 토후국들, 대표적으로 카슈미르의 경우는 지배층 힌두들이 인도로 도망간 후 파키스탄에 붙었으며, 이때문에 카슈미르가 펀자브와 마찬가지로 인도, 파키스탄령으로 두쪽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