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자스시티 치프스/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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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AFL 창단, 그리고 NFL-AFL 통합의 주역
3. 20년 가까이 이어진 흑역사
4. 마티 쇼튼하이머 시대
5. 딕 버밀 시대
6. 과도기, 그리고 라마 헌트 시대의 마감
7. 2차 흑역사, 스캇 피올리 시대
8.1. 2013 시즌
8.1.1. 오프시즌
8.1.2. 전반기
8.1.3. 후반기
8.2. 2014 시즌
8.3. 2015 시즌
8.3.1. 6주차까지
8.3.2. 7주차부터
8.3.3. 플레이오프



1. 개요[편집]


창단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역사를 정리한 문서다.


2. AFL 창단, 그리고 NFL-AFL 통합의 주역[편집]


1960년에 정유재벌 H.L. 헌트의 아들이자 스포츠 프로모터인 라마 헌트(Lamar Hunt)의 주도로 창단했다. 라마 헌트는 The Foolish Club[1]이라고 자칭한 8명의 AFL 창단 구단주 가운데에서도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미 1952년 NFL 팀 뉴욕 양크스가 댈러스로 연고이전해 '댈러스 텍산스'로 활동했다가 1시즌만에 해체됐고, 선수단은 신규팀 볼티모어 콜츠에 넘어갔다. 대신 6대 메이저 볼게임 중 하나인 코튼 볼 클래식과 텍사스 대학교, 텍사스 A&M 대학교 등 풋볼 명문 대학이 존재했는데,[2] 레인저스매버릭스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풋볼이 독보적인 인기스포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텍사스의 중심도시 댈러스에서 팀을 창단하여 팀 이름을 댈러스 텍산스라고 했다.[3] 1960년대는 미국도 전국 발전이 가속화되던 시기라, MLB에서 브루클린 다저스, 뉴욕 자이언츠의 LA, 샌프란시스코 이전이 말해주듯 서부와 남부의 도시발전이 이루어지면서 AFL은 새로운 노다지인 서부와 남부 대도시를 먼저 먹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렇게 영업망의 빈틈을 노리고 있던 AFL의 움직임을 더이상 좌시하지 않은 NFL측에서는 1950년대 미국 경제 호황을 타고 급격하게 성장하는 서남부 지역으로 마침내 리그를 확장했다. 그래서 AFL 팀이 창단을 기다리고 있던 미네소타주의 미니애폴리스에서는 발빠르게 바이킹스를 창단하여 AFL의 진출을 막고 댈러스에서는 카우보이스를 창단하며 맞불을 놓는다. 안그래도 듣보잡 신생리그로 2부리그 취급을 받던 AFL팀인 텍산스로서는 졸지에 인지도 있는 기존 NFL 명문팀과의 경기를 펼치는 카우보이스와의 흥행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국 텍산스는 3년만에 댈러스에서 GG를 치고 미주리주의 캔자스시티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연고이전 과정에서 해롤드 로 바티(1901~1974) 당시 캔자스시티 시장이 적극적으로 팀을 모셔오려 하자, 헌트 구단주가 4달 안에 티켓 35,000장을 팔아야 한다고 조건을 붙였다. 이에 바티 시장은 지역 사업가 20명을 모아 '골드 코트'를 결성하고 2달만에 티켓 35,000장을 팔아치웠다.

그리고 나서 더이상 텍사스 팀이 아니게 된 관계로 텍산스의 닉네임을 버리고 연고이전을 적극적으로 도운 바티 시장을 존경하는 의미를 담아 그의 별명 '칩스(Chiefs)'를 새로운 닉네임으로 정하였다. 칩스는 AFL 후반기부터 강호로 도약해, AFL이 NFL과 대등한 위치에서 설 자격을 인정받게 된 제1회 AFL-NFL 월드챔피언십 게임에 AFL 우승팀으로서 참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대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쿼터백 바트 스타가 이끄는 NFL의 전통의 명문 강호 그린베이 패커스였고 그 경기에서 10-35로 대패하면서 신생리그의 한계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AFL-NFL 통합에 지대한 역할을 한 뉴욕 제츠의 제3회 슈퍼볼 승리 이후 다음해 열린 제4회 슈퍼볼에서 AFL 우승자로 출전해 쿼터백 시지 도슨[4]의 활약, 그리고 초대 감독인 행크 스트램[5]의 용병술로 NFL 우승팀 미네소타 바이킹스를 꺾고 AFL에 두번째 슈퍼볼 우승을 가져온다. 여기서부터 바이킹스와 프랜 타킨턴의 원조 콩라인 전설이 시작된다. 그리고 칩스의 우승은 제츠의 우승이 단순한 이변이 아니라 AFL이 NFL과 동일한 실력을 갖춘 대등한 리그라는 점을 전 미국에 증명하였으며 제4회 슈퍼볼이 끝난 후 마침내 NFL은 AFL에 통합을 제의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날 NFL의 기틀은 이때 갖추어지게 된다.


3. 20년 가까이 이어진 흑역사[편집]


영광이 있으면 쇠락도 있듯, 팀 창립 초기부터 활약하던 쿼터백 렌 도슨이 나이로 인한 기량 하락으로 은퇴하고, 행크 스트램 감독까지 사퇴한 이후 칩스는 중위권 팀으로 내려갔다. 1978년에 전 CFL 팀 몬트리올 알루에츠 감독 마브 레비가 부임해 1981년 드래프트 때 무명대학 노스웨스턴 주립대 출신 RB 조 딜레이니를 전체 41번으로 뽑아 러싱중심 기술 '윙-T 오펜스'를 짜내 재기를 모색코자 했다.

그러나 1983년 오프시즌 때 딜레이니가 물에 빠진 어린이 3명을 구조하려다 사망해 공격진에 구멍이 생겼고, 드래프트에서 전체 7번 픽으로 지명한 하인즈먼 트로피[6] 수상자 출신인 쿼터백 토드 블랙리지[7]가 상당히 실망스러운 활약을 보여주면서 5년만에 방출[8]되고, 그새 칩스 감독을 역임한 마브 레비, 존 맥코빅 등 5명 모두 공격과 수비 양면에서 팀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등, 뭘해도 안되는 팀의 전형을 보여주면서, 행크 스트램 & 랜 도슨 시절이었던 1971년 플레이오프에서 마이애미 돌핀스에게 패배한 이후[9] 1990년 시즌 전까지 단 한차례 밖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는 길고 긴 흑역사를 이어갔다.


4. 마티 쇼튼하이머 시대[편집]


이에 라마 헌트 구단주는 1989년에 전 USFL 팀 필라델피아 스타즈 단장 칼 피터슨을 새 단장에, 전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감독 마티 쇼튼하이머를 새 감독에 각각 앉히고, 드래프트에서 앨라배마대 출신 라인배커 데릭 토마스[10]를 지명해 개혁을 선포했다. 데릭 토마스와 닐 스미스가 패스러쉬 콤비네이션을 만들어내면서 수비 위주의 팀 정체성을 확립했고, 1993년 시즌에 웨스트코스트 오펜스에 능한 전 피츠버그대 감독 폴 해킷을 OC로 부른 후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심장 조 몬태나를 모셔오고, 알 데이비스와의 불화로 오클랜드 레이더스에서 쫓겨난 주전 러닝백 마커스 알렌이 들어오는 등 노장들의 투혼으로 4시즌 연속 두자리 승수를 거두어 플레이오프 단골 손님이 된다.

하지만, 유독 플레이오프에서는 약한 면모를 보여줬는데[11], 1993년 AFC 컨퍼런스 챔피언쉽에서 버펄로 빌스에게 패하고, 조 몬태나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1994년 플레이오프에서는 댄 마리노가 이끄는 마이애미 돌핀스에 패배했고, 1995년 시즌 때 몬태나의 후임으로 나이너스에서 스티브 보노를 사서 나름 선방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는 키커가 필드골 3개를 실축하면서[12]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에게 10-7로 패배하는 등, 운까지 따라주지 않으면서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게 된다.[13] 1997년 시즌에는 AFC 전체 1번시드를 따냈음에도 불구하고 와일드 카드로 밀려나 칼을 갈던 지구 라이벌 덴버 브롱코스에게 디비전 플레이오프에서 패하기도 했다.[14] 결국 1997 시즌을 마지막으로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 행진은 끊기게 되고, 마티 쇼튼하이머 감독은 1998년 시즌을 끝으로 사임한다. 그 이후 수비 코디네이터였던 건터 커닝햄이 감독으로 부임하지만 부진한 성적을 보여주면서 2년만에 해고를 당했고, 팀의 심장 토마스도 NFC 챔피언십 전날인 1999년 12월 23일에 공항으로 운전 도중 전복사고로 중상을 입어 2000년 2월 3일에 숨졌다.

쇼튼하이머 시대는 나름대로 강팀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기도 했지만 포스트시즌의 실패가 번번이 발목을 잡았는데 그 이유에는 쇼튼하이머 감독의 성향도 있다. 쇼튼하이머 감독은 NFL에서 능력은 검증되었지만, 성격도 있고 변칙과 상대팀의 허를 찌르는 작전을 즐기는 지도자로 유명한 감독이다. 그러한 점이 정규시즌에는 신의 한 수가 되어 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 일조하는 것도 사실이다. NFL의 대표적인 약체팀들이던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캔자스시티 치프스, 샌디에이고 차저스 등을 단숨에 플레이오프 컨텐더로 끌어올린 실적만 봐도 쇼튼하이머 감독이 훌륭한 감독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시즌만 되면 경기의 중요성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상대팀의 허를 찌르는 작전을 쓴다거나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욱해서 강공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도리어 무리수가 되어 팀을 곤경에 빠뜨리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이는 자신이 감독을 맡은 팀들이 정규시즌에서는 강팀으로 자리잡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실패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또 NFL 전문가 제이강의 분석에 따르면, 몬태나와 보노의 예에서 보듯 팀은 참신한 전술을 만들기보다 최고의 선수나 지도자를 모셔다 전술을 복사하는 전통 역시 쇼튼하이머 때부터 확립됐다.

5. 딕 버밀 시대[편집]


2002년 시즌 전 칩스는 세인트루이스 램스를 슈퍼볼 우승으로 이끌고 은퇴를 고려하고 있던 딕 버밀 감독을 삼고초려 끝에 모셔왔다. 딕 버밀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램스에서 해오던 것 처럼 닥치고 공격 노선으로 팀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레프트태클 윌리 로프, 레프트가드 브라이언 워터스, 센터 케이시 위그먼, 라이트가드 윌 실즈[15], 라이트태클 존 테이트라는 리그 최고의 공격 라인맨 5인방을 결성하여 강력한 오펜시브 라인을 구성하고, 딕 버밀 감독이 있던 램스에서 커트 워너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트레이드된 쿼터백 트렌트 그린[16]타이트엔드토니 곤잘레스와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면서 3년 연속으로 4000야드 넘게 던지는 활약을 펼치고, 러닝백 프리스트 홈스[17], 래리 존슨이라는 특급 러닝백들이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다. 이 시기의 공격력은 칩스 역사상 최고였다고 할 수 있었을 정도.

하지만 공격 위주로 투자가 이뤄지다 보니 수비는 마틴 쇼튼하이머 시대에 비해서 상당히 약해졌다. 2003년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에게 38-31로 패한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양팀 모두 펀트를 하지 않은 '노 펀트 게임' 나온 것은 당시 칩스가 공격에 비해서 수비가 얼마나 약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경기. 결국, 화려했던 공격력에 비해서 초라했던 수비는 팀의 발목을 잡으면서 2003년 시즌을 제외하고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뤄내지 못하면서 상위권으로 도약하는데에는 실패한다. 그리고 2005년에 10승 6패의 성적을 거두고도 타이브레이커에 밀려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이후 딕 버밀 감독은 은퇴를 선언한다.


6. 과도기, 그리고 라마 헌트 시대의 마감[편집]


딕 버밀 감독 은퇴 이후, 뉴욕 제츠를 지속적인 플레이오프 컨텐더로 만든 허먼 에드워즈가 감독으로 부임한다. 허먼 에드워즈 감독은 수비 위주로 팀 방향성을 급격하게 선회한다. 2006년 시즌은 딕 버밀 감독 시절 영입한 공격 선수들이 많이 남아있던지라 공격과 수비가 어느 정도 밸런스를 맞추면서 9승 7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18]. 하지만 수비코치 출신인 에드워즈 감독 성향상 선수층이 보강된 수비팀에 비해서 공격팀은 2006년 시즌을 끝으로 쿼터백 트렌트 그린이 트레이드되는 등 제대로 된 보강이 이뤄지지 않았다. 게다가 2006년 드래프트에서 팀의 주전 쿼터백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지명했던 쿼터백 브로디 크로욜이 번번이 결장하여 유리몸이라는 것이 드러났고, 그마저도 뛴 10번의 경기에서 1승도 기록하지 못하는 등 실력면에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팀은 2007~2008 두 시즌 동안 6승 26패를 기록하게 된다.

결국, 2006년에 구단주인 라마 헌트가 암으로 사망한 이후 새로운 구단주가 된 장남 클락 헌트는 2008년 시즌 이후 감독 허먼 에드워즈[19]와 1989년부터 20년간 단장을 역임했던 칼 피터슨을 모두 해임한다. 특히, 라마 헌트의 최측근이었던 칼 피터슨 단장의 해임으로 라마 헌트 시대의 마감을 대내외적으로 알렸다.

이 시기의 한가지 긍정적인 면은, 허먼 에드워즈가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시원치 않았던 반면, 선수 발굴에 있어서는 최고의 능력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러닝백 자말 찰스를 포함해서 2010년대 초중반에 팀의 주축을 이뤘던 선수 상당수가 허먼 에드워즈에 의해 드래프트되거나 영입돼 과도기였지만 흑역사는 아니였던 시기로 평가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뒤에 진짜 흑역사가 도래했기 때문

7. 2차 흑역사, 스캇 피올리 시대[편집]


구단주 클락 헌트는 칼 피터슨의 후임으로 많은 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던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선수 관리 총책이였던 스캇 피올리를 새로운 단장으로 영입하는데 성공한다. 그 이후, 스캇 피올리는 애리조나 카디널스에서 공격 코디네이터를 역임했던 토드 헤일리를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하고, 뉴잉글랜드 출신인 공격 코디네이터 찰리 와이스와, 수비 코디네이터 로미오 크리넬을 영입, 그리고 2008 시즌에 부상을 당한 톰 브래디를 대신해서 풀 시즌을 뛰었던 뉴잉글랜드 출신 쿼터백 맷 캐슬을 2라운드 픽을 주고 트레이드했다.

그야말로 뉴잉글랜드 출신이 팀을 장악하게 되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팀의 핵심 보직 중 유일하게 뉴잉글랜드 출신이 아닌 감독 토드 헤일리와 단장 스캇 피올리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일어남과 동시에, 팀을 강제로 뉴잉글랜드 스타일로 바꾸려는 스캇 피올리와 기존에 팀에 있던 직원들과의 충돌이 일어나서 해고 사태와 소송전이 일어나는 등, 팀 분위기는 점점 엉망이 되어갔다.

게다가 성적 또한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2010 시즌에 10승 6패를 기록해서 플레이오프에 진출[20]한 것을 제외하면 5할 승률을 기록하지 못했고, 2011 시즌 도중 토드 헤일리가 경질당하고 2012 시즌을 앞두고 수비 코디네이터인 로미오 크리넬이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었지만, 2승 14패로 리그 최하위의 성적을 기록하고 시즌 도중에 주전 라인배커였던 조번 벨처가 동거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감독과 단장이 보는 앞에서 권총으로 자살하는 팀 역사상 최악의 사고가 발생하면서 4년간의 스캇 피올리 시대는 짧지만 강력한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결국 2012년 시즌 후, 구단주인 클락 헌트는 시즌 티켓 멤버들에게 사과의 편지를 전송했고, 스캇 피올리를 비롯한 코칭 스태프 대부분은 해고되었다.


8. 알렉스 스미스 & 앤디 리드의 시대[편집]



8.1. 2013 시즌[편집]



8.1.1. 오프시즌[편집]


구단주인 클락 헌트필라델피아 이글스를 이끌던 검증된 명장 앤디 리드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해고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전용기를 타고 날아가 인터뷰를 하고 영입에 성공한다. 이후, 클락 헌트는 앤디 리드와 합의하에 그린베이 패커스 선수 관리 총책을 담당하던 존 도시를 단장으로 영입하고, 감독과 단장이 대등한 관계에서 구단주에게 보고하게 하는 등 팀 구조를 개편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서 주전경쟁에서 밀린 쿼터백 알렉스 스미스를 트레이드 해오는 것을 시작으로, 전체 1번 픽으로 라인맨인 에릭 피셔를 지명하고, 시즌시작 직전 다른 팀에서 방출된 7명의 선수를 새롭게 영입하는 등 로스터의 절반 이상을 교체하면서 팀 리빌딩에 나선다.


8.1.2. 전반기[편집]


감독 하나 바뀐 것이 얼마나 크게 작용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1주차에 지난 시즌 최하위 승률 동률이었던 잭슨빌 재규어스를 28-2로 압살한 것으로 시즌을 시작. 3주차에 지난 시즌까지 앤디 리드가 감독직을 역임했던 필라델피아 이글스를 상대로 26-16으로 승리를 거두는 등, 시즌 초반에 몰려있던 NFC East 팀들과의 경기에서 3연승을 거두면서 기세를 이어나가기 시작했고 9주차까지 전승을 거두어 가장 강력한 1번시드 후보가 되었다.

사실 지난 몇년간 라인배커 탐바 할리, 데릭 존슨, 저스틴 휴스턴, 수비 태클 돈타리 포우, 세이프티 에릭 베리 등 재능있는 수비수들을 드래프트해서 수비진만큼은 강력했지만 헤드코치가 공격팀을 너무 못다뤄서 수비진이 따먹는 점수를 다 까먹고 약체에 머물렀지만, 검증된 헤드코치 앤디 리드가 알렉스 스미스를 중심으로 안정적인 오펜스를 만들고, 저렴한 가격에 사실상 끼워맞추기식으로 영입했던 공격 라인 선수들이 최고의 가성비를 보여주면서 시즌 개막 전에 강력한 슈퍼볼 우승후보였던 지구내 라이벌 덴버 브롱코스를 견제할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는 중.


8.1.3. 후반기[편집]


그러나 2013 시즌 최고의 고비 중 하나인 11주차 덴버와의 원정경기에서 평균 터치다운 3개씩을 기록하던 페이튼 매닝을 어느정도 묶어두는 데는 성공했으나 리그 1위의 수비진이라는 명성에 비해 한참 부족한 퍼포먼스를 보였다. 수비진이 덴버의 오펜시브 라인을 뚫지 못하면서 발목에 두꺼운 테이핑을 하고 나온 페이튼 매닝을 전혀 압박하지 못했으며 공격에서는 알렉스 스미스가 본색을 드러내면서 17대 27로 시즌 첫 패배를 기록하며 지구 2위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다음주에 벌어진 지구라이벌 샌디에이고 차저스와의 홈경기에서 난타전 끝에 4쿼터 막판에 역전 터치다운 허용으로 38대 41로 패배하면서 2연패를 기록했다. 13주차의 홈에서 벌어지는 덴버와의 리턴매치마저 초반 우위를 점령하지 못하고 경기 직전 동점 기회를 놓치면서, 지구라이벌과 대결에서 3연패. 결국 지구 2위로 떨어졌고 남은 경기에선 승리를 잘 챙겼지만 5번 시드에 만족해야 했다.

시즌 마지막주 아무런 의미가 없던 샌디에이고 차저스와의 경기에서 주전을 다 빼고 경기에 임해, 종료 4초전 결승 필드골로 이길 찬스에서 오심이 섞인 결정적인 필드골 미스로 연장전에서 패했다. 자기들은 별 상관이 없었지만 이 덕분에 필드골만 성공시켰으면 앉아서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을 수 있었던 피츠버그 스틸러스가 플옵진출 4초를 남겨두고 탈락하고 차저스가 기적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오히려 캔자스시티보다 피츠버그의 관심이 높았을 이 경기에서 스틸러스 팬들은 정말로 땅을 치고 싶었을 상황.

그리고 3년 만에 나선 플레이오프에서 쿼터백 알렉스 스미스가 미친듯한 활약을 보여주고, 상대팀이 인터셉트 3개에 펌블 1개를 범하면서 조공한 기회를 틈타 쌓아올린 28점차의 리드를 가져갔지만, 공격의 핵심인 러닝백 자말 찰스 선수가 뇌진탕으로 퇴장하는 등, 경기 도중에 무려 6명의 선수[21]가 부상으로 줄줄이 경기 중에 퇴장, 후반전에 콜츠의 앤드류 럭이 맹활약하면서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44대 45로 허무하게 통한의 역전패를 당하면서 또 다시 1라운드에서 광탈했다. 28점차의 리드를 날린 것은 NFL 역사상 2번째로 큰 점수차를 날린 역전패.


8.2. 2014 시즌[편집]


6년간 팀의 레프트 태클이었던 브랜든 알버트가 FA 자격을 획득해서 마이애미 돌핀스로 떠나고, 2013 시즌에 1년차 계약을 했던 공격 라인 선수들도 재계약을 하지 않고, 단장인 존 도시는 다시 한번 저렴한 가격에 공격 라인 선수들을 영입한다. 하지만, 이것은 2014 시즌 공격 라인 대재앙의 전주곡이었다. 2013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 픽으로 지명했던 레프트 태클 에릭 피셔가 부상으로 인해 기대했던 것 만큼의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새롭게 영입한 공격 라인맨들이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여주면서 쿼터백 알렉스 스미스는 상대방 패스러셔들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게 된다. 그야말로, 2013 시즌 공격 라인이 잭팟이었다면, 2014 시즌 공격 라인은 재앙이였던 셈이다.

홈에서 펼쳐진 개막전에서 테네시 타이탄스에게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하고, 이 경기에서 러싱 수비의 핵심인 라인배커 데릭 존슨과 라인맨 마이크 드비토가 나란히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당하게 된다.

그래도 앤디 리드 감독의 용병술로 마이애미 돌핀스에게 첫 승을 거두면서 분위기를 수습하고, 홈에서 펼쳐진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의 먼데이 나잇 풋볼에서 상대방 쿼터백인 톰 브래디를 강판시키면서 41-14로 격파하는 등 반등세를 보인데 이어, 7주차 샌디에이고 차저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경기 종료 직전 필드골로 승리를 가져간 것을 시작으로, 슈퍼볼 디펜딩 챔피언인 시애틀 시호크스를 홈에서 격파하는 등 5연승을 하고 11주차까지 7승 3패를 기록하면서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을 높여간다.

하지만, 이후 부실한 공격 라인 때문에 잇따른 파운딩에 시달리던 알렉스 스미스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12주차에 펼쳐진 써스데이나잇 풋볼 원정경기에서 0승을 기록중이던 디비전 라이벌 오클랜드 레이더스첫 승의 제물이 되고, 이 경기 이후 팀의 러싱 수비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던 세이프티 에릭 베리의 일종인 비호지킨 림프종에 걸린 것으로 알려지며 시즌 아웃이 된다. 그리고, 13주차에 홈에서 펼쳐진 선데이나잇 풋볼에서 잇단 선수들의 시즌 아웃으로 부실해진 수비진이 덴버 브롱코스의 러싱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공격도 리듬을 찾지 못하면서 참패하고, 애리조나 카디널스피츠버그 스틸러스와의 원정 경기에서도 패배하면서, 마지막 경기에서 희망이 낮은 타이브레이커를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가운데, 부실한 공격 라인으로 인해 수비수에게 시달리던 알렉스 스미스 선수가 췌장 파열로 마지막 경기를 뛰지 못하는 상황이 오고 만다. 결국 올 것이 왔다. 그래도 백업 쿼터백이 경기를 뛴 샌디에이고 차저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수비의 활약으로 19-7로 승리를 거두고 9승 7패를 기록하지만, 결국 타이브레이커에 밀려서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된다. 그래도 혼자 가긴 억울했는지 샌디에이고 차저스를 잡는 물귀신 역할도 했지만(...).

여담으로, 이 시즌에 캔자스시티 치프스는 러닝백들과 타이트엔드인 트레비스 켈시가 패싱 터치다운을 기록하긴 했지만, 주전 리시버인 드웨인 보우가 현저한 기량 저하를 보여주고, 다른 리시버들도 시원찮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1990년에 NFL 정규시즌이 16경기로 확장된 이후, 와이드 리시버가 패싱 터치다운을 기록하지 못한 최초의 팀이 되었다. 이런 기록은 없어도 돼...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긴 했지만, 9승 7패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것 때문에 언론과 NFL 팬들 사이에서 2015년에 제레미 맥클린이 터치다운을 기록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8.3. 2015 시즌[편집]



8.3.1. 6주차까지[편집]


결국 지난해 영 좋지 않았던 오펜스는, 제레미 맥클린의 영입과 더불어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지명한 센터와, 샐러리캡의 압박에 시달리는 뉴올리언스 세인츠로부터 2차례 프로볼(올스타전)에 진출했던 가드 벤 그럽스를 트레이드함으로써 다소 보강되었지만, 알렉스 스미스의 영 좋지 않은 패싱 능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림프종 치료를 마치고 기적적으로 복귀한 세이프티 에릭 베리와 지난 시즌 아킬레스건 파열에서 복귀한 라인배커 데릭 존슨, 라인맨 마이크 드비토의 합류로 리그 정상급 수비진이라는 타이틀을 회복하고 시즌 초반부터 플레이오프 진출권에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개막전 원정경기에서 휴스턴 텍산스를 완파함으로써 그것을 증명하는 듯 했다.

하지만 2주차 써스데이 나잇 풋볼 경기에서 덴버 브롱코스를 상대로 4쿼터 중반까지 주도권을 가져갔지만, 경기 종료를 앞둔 상황에서 자말 찰스가 펌블한 공을 브롱코스 수비수가 터치다운으로 연결시키는 충격의 역전패를 당하며 팀전체가 멘탈붕괴에 빠졌고, 이어진 그린베이 패커스, 신시내티 벵갈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완패를 당한데 이어, 엎친데 덮친격으로 시카고 베어스와의 홈경기에서 러닝백 자말 찰스가 또다시 ACL 파열로 시즌아웃되면서 전반기 1승후 5연패를 당하며 순위가 뚝 떨어졌다.


8.3.2. 7주차부터[편집]


그런데... 팀이 그 후로 미친듯이 살아나면서 NFL 최고의 반전 드라마를 썻다. 수비는 꾸준하면서 차캔드릭 웨스트라는 2년차 선수와 러닝백 스팬서 웨어가 자말 찰스의 공백을 상당히 잘 메워주고 있고, 쿼터백 알렉스 스미스의 리드 옵션과 러싱 공격이 주효함과 동시에 1라운드 픽이었던 코너백 마커스 피터스가 루키 수비수 중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면서, 피츠버그 스틸러스를 상대로 연패를 끊은 것을 시작으로 런던에서 펼쳐진 홈경기(...)에서 디트로이트 라이언스를 완파하고 디비젼 라이벌인 댄버 브롱코스를 상대로 페이튼 매닝 커리어 최악의 퍼포먼스를 만들어내면서 페이튼 매닝의 덴버 이적 이후 첫번째 승리를 거두는 등 1승 5패였던 팀이 9연승을 거두면서 10승 5패까지 올라온 상황. 16주차에 플레이오프 진출은 확정지었으며 현재 AFC 5번 시드를 컨트롤하고 있는데, 덴버가 레이더스에게 일격을 당하는 바람에 만약 마지막 주에 덴버가 차저스에게 패배하고 본인들이 레이더스에 승리하면 덴버와 동률 승률이 되며, 같은 컨퍼런스 성적에 따라 덴버를 제치고 서부 컨퍼런스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열어놓았다.

그러나, 덴버가 샌디에이고와의 경기에서 승리해서 자연스레 지구 1위가 확정되었고 치프스는 11승 5패의 성적으로 와일드카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10연승으로 시즌을 마친 사기가 높은 상황인데다가 상대인 휴스턴 텍산스는 지구가 약체였던 덕분에 1위로 올라온 것이었고, 치프스보다도 승률이 떨어졌기 때문에 매우 확률 높은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중. 패싱 게임에 매우 취약하고 러싱 공격을 주무기로 삼는 치프스의 특성상 휴스턴의 강력한 수비진인 J.J 왓, 자데비온 클라우니, 브라이언 쿠싱 등을 어떻게 잘 상대하느냐가 관건이 될 듯 하다.


8.3.3. 플레이오프[편집]


AFC 남부지구 챔피언인 휴스턴 텍산스와의 와일드카드 플레이오프 원정 경기에서 오프닝 킥오프 리턴으로 기세를 잡고 수비의 맹활약으로 인해 텍산스 쿼터백 브라이언 호이어의 실책이 이어지면서 30:0으로 NFL 역사상 세번째로 플레이오프 원정 셧아웃 승리를 기록함과 동시에, 플레이오프 8연패의 종지부를 찍고 22년만에 플레이오프 승리를 달성했다. 이는 커리어 막판에 현역생활 연장을 위해서 잠시 이 팀에 몸을 담았던 조 몬태나쿼터백을 하던 시절 이후로 처음.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의 디비저널 라운드 경기에서는 와일드카드 라운드에서 높은 발목 염좌 부상을 당한 주전 리시버인 제러미 매클린이 기적적으로 출전했지만 결국 2쿼터만에 다시 아웃되고, 라인배커인 저스틴 휴스턴이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여덟차례의 스냅 밖에 플레이하지 못하는 등, 공수 양면의 핵심 선수가 거의 뛰지 못한 반면, 뉴잉글랜드는 부상을 당했던 롭 그롱카우스키와 줄리안 에델먼의 복귀로 결국 전력상의 큰 차이가 있었고, 또 치프스 수비가 예상했던 것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 한 데다가 후반전에 쿼터백 알렉스 스미스가 팀을 이끌긴 했지만, 앤디 리드 감독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목되었던 남은 시관 관리(Clock management) 문제가 다시 한번 발목을 잡으면서 27:20으로 석패하고 슈퍼볼 경쟁에서 탈락했다.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 과정을 통해서 2015 시즌에 AFC 상위권 팀들이 평준화되었다는 것이 증명된지라 더욱 아쉬운 부분.


8.4. 2016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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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2017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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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패트릭 마홈스 & 앤디 리드의 시대[편집]




9.1. 2018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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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2019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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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hiefs_SBLIV_Champs.jpg


9.3. 2020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캔자스시티 치프스/2020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4. 2021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캔자스시티 치프스/2021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5. 2022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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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2023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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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멍청이들 집단. 불과 10년전에 AAFC라는 NFL의 경쟁 풋볼리그를 천명했던 리그가 흥행실패로 도산하면서 흥행 기반이 흔들흔들하는 판에 겁도 없이 AFL이라는 신생 풋볼 리그를 만들겠다고 나섰으니 저런 조롱을 들을만도 하다.[2] 텍사스주의 풋볼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Friday Night Lights로 별칭되는 금요일 밤 고등학교 풋볼경기가 지역 라디오 방송으로 중계될 정도이며 언급된 두 대학교 외에도 텍사스주 소재 대학들의 풋볼실력은 미국 내 정상급을 자랑한다.[3] 후에 이 텍산스의 닉네임은 2002년에 휴스턴에서 창단하는 신생팀이 다시 사용하게 되나 이 닉네임에 대해서 권리를 가지고 있는 칩스 측에서는 별다른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하긴 미주리에 뿌리를 내려서 그 닉네임은 더이상 필요없을테니.[4] NFL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지만, 주전을 한번도 뛰지 못하는 등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행크 스트램의 권유로 댈러스 텍산스에 입단한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이다. 1987년 NFL 명예의 전당에 입성.[5] 1974년까지 칩스 감독을 역임했으며 그 이후로는 해설자로 커리어를 이어갔다. 2003년 NFL 명예의 전당에 입성 후 2005년 사망.[6] 최고의 대학 미식축구 선수에게 수여되는 트로피[7] 같은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선택된 쿼터백이 존 엘웨이, 짐 켈리, 댄 마리노 말 다했다[8] 그 이후 2017년에 패트릭 마홈스 2세를 지명하기 전까지 칩스는 34년이나 1라운드에서 쿼터백을 지명하지 않았다(...)[9] 이 경기는 NFL 플레이오프 최장 시간 경기로 기록되어 있다.[10] 선수생활 10년 동안 9차례 프로볼에 진출하는 등 당시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었지만, 후술하듯 2000년에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2009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11] 마타 쇼튼하이머는 희한하게 팀을 플레이오프에 올려놓는 실력은 있지만 정작 플레이오프에서의 성적은 시원찮은 감독으로 악명높은데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캔자스시티 칩스, 그리고 샌디에이고 차저스에서 감독으로 지내면서 소속팀을 컨퍼런스 전까지 올려놓고도 슈퍼볼로 이끄는 데는 실패했다.[12] 현재도 이 키커는 칩스 팬들에게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인간으로 남아있다.(...)[13] 칩스는 1993년 AFC 컨퍼런스 챔피언십 이후 22년 동안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지 못하다가 2016년에 드디어 징크스를 탈출했다.[14] 특히 존 엘웨이가 이끄는 덴버 브롱코스는 쇼튼하이머 감독에게는 악몽같은 존재였다. 과거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시절 세번이나 팀을 AFC 챔피언십 게임으로 이끌어서 슈퍼볼을 눈앞에 두었을 때 그 세 경기 모두 상대팀이 존 엘웨이의 덴버 브롱코스였다. 첫번째 대결부터 지금도 The Drive라고 하이라이트 필름으로 회자되는 대역전극을 허용하더니 결국은 그 세 경기 전부 덴버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AFC의 콩라인에 머물러야 했고, 1997년 디비전 플레이오프에서도 1패를 추가하면서 존 엘웨이 시절의 덴버 브롱코스를 상대로 포스트 시즌에서 0승 4패를 기록하였다.[15] 루키였던 1993년부터 은퇴한 2006년까지 233경기 연속 출전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15년 NFL 명예의 전당 헌액[16] 2002~2006 시즌까지 칩스에서 뛰었고, 2008년에 은퇴했다. 현재는 NFL on CBS 경기 해설자[17] 2002년 NFL 올해의 공격 선수[18] 그리고, 다시 한번 콜츠에게 패배[19] 칩스 감독에서 해임된 이후 ESPN에 영입되어 그야말로 맹활약했다. 2018년에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감독에 부임.[20] 볼티모어 레이븐스에게 패배[21] 그 중 3명이 뇌진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