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대 이치카와 단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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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야 파일:71265600-B5C9-4AC7-B421-E2F29A4C32EC.png
이치카와 신노스케이치카와 에비조(공석)이치카와 단쥬로(11대, 12대)
오토와야 파일:1F9D7293-D46B-4798-BF05-D2DD4F530D37.png
오노에 우시노스케 → 오노에 키쿠노스케오노에 키쿠고로
코오라이야 파일:C65C1B3C-3EF6-4809-986D-880BA53AB71A.jpg
마츠모토 킨타로(공석)이치카와 소메고로마츠모토 코시로마츠모토 하쿠오
나카무라야 파일:C52585F0-9C97-4BBA-AB6D-FD9D0441A623.png
나카무라 칸타로 → 나카무라 칸쿠로나카무라 칸자부로(공석)
現 당주는 볼드체 처리



제12대 이치카와 단쥬로
第十二代目 市川團十郞| Ichikawa Danjūrō XII

파일:12대 이치카와 단쥬로.jpg
본명
堀越(ほりこし夏雄(なつお(호리코시 나츠오, Horikoshi Natsuo)
예명[1]
초대 이치카와 나츠오
6대 이치카와 신노스케
10대 이치카와 에비조
12대 이치카와 단쥬로(1985년 4월 습명)
출생
1946년 8월 6일
도쿄도
사망
2013년 2월 3일 (향년 66세)
도쿄도 미나토구
국적
[[일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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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70cm, 70kg
학력
유치원(수료)
아오야마 학원 초등부(졸업)
아오야마 학원 중등부(졸업)
아오야마 학원 고등부(졸업)
니혼대학(예술학부 / 학사)
가족
친할아버지 7대 마츠모토 코시로(1870-1949)[2]
아버지 11대 이치카와 단쥬로(1909-1965)[3]
어머니 호리코시 치요
여동생 초대 이치카와 쥬코(1949-)[4]
아내 호리코시 키미코(1952-)
장남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1977-)
장녀 4대 이치카와 스이센(1979-)[5]
친손 (13대 단쥬로의 혼외자)(2002-)[6]
친손 4대 이치카와 보탄(2011-)[7]
장손 8대 이치카와 신노스케(2013-)[8]
사촌형 2대 마츠모토 하쿠오(1942-)
직업
가부키 배우
야고[9]
나리타야(成田屋)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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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연기 스타일
4. 여담


1. 개요[편집]


일본가부키 제1명문가 나리타야 이치카와 종가의 선대 당주이다. 가문의 현 당주인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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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마츠모토 코시로 일가의 가족 사진
할머니의 품에 안긴 12대 단쥬로[10]

1946년, 나리타야의 가부키 배우 11대 이치카와 단쥬로와 호리코시 치요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남이자 맏이로 태어났다. 출생명은 호리코시 나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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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택의 정원에서 아버지 11대 단쥬로와 함께
가부키 명문가의 당주에게 장남이 태어났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경사인 일이지만, 나츠오의 탄생은 세간에게 알려져서는 안 되었다. 이는 아버지인 11대 이치카와 단쥬로가 결혼 사실을 숨기고 가부키 배우 활동을 하였기 때문이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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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12대 이치카와 단쥬로
때문에 나츠오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가부키 배우라는 사실을 모르고 자랐었다. 밝혀져서는 안 되는 아이였기에 제약되는 일들이 많았지만 가정이 안정을 찾고 나서부터 11대 이치카와 단쥬로는 혼인 사실과 함께 자신의 자녀를 세간에 공개했다. 이로써 나츠오는 비교적 늦은 6세의 나이에 첫 가부키 무대를 이치카와 나츠오라는 예명으로 밟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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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이치카와 나츠오로서 하츠오메미에
11대 이치카와 단쥬로는 장남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한다. 때문인지 나츠오는 연습 때 아버지가 자신에게 화를 내는 모습을 한 번도 못봤다고 전했다. 물론 이건 나츠오의 성격이 내향적이고 조용한 아이였던 것과 몸이 허약한 것도 컸다. 나츠오는 초등부 생활 내내 심각한 편도염에 시달렸으며 늘 감기로 인한 몸살을 앓는 아이였다고 한다. 그나마 아오야마학원 초등부 3학년이던 시절, 담임의 권유로 럭비하며 면역력이 강해졌고 이듬해에는 야구를 취미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1958년 5월, 나츠오는 6대 이치카와 신노스케의 명적을 습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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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로쿠 무대에서
15살의 당시 6대 이치카와 신노스케

가부키에 재미를 느낀 12대 단쥬로는 학업과 배우의 일을 병행하며 무대에 섰다. 부리부리한 눈매, 말끔한 발성은 그가 장차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배우가 될 것이라는 주변인들의 기대를 모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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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아버지를 잃은 직후
나리타야 일문에게 무용을 선보이는 12대 단쥬로

그러던 1965년, 스승이자 든든한 후원자였던 아버지 11대 이치카와 단쥬로가 세상을 떠난다. 12대 단쥬로가 19살 때의 일이다. 가문당주를 잃은 일문들을 책임지게 된 12대 단쥬로는 어린 나이에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렸지만 후견인이 되어준 작은아버지 2대 오노에 쇼로쿠와 쇼치쿠의 도움으로 가문을 이끌면서, 당시에 진학했던 니혼대학까지 무사히 졸업한다.

1969년에는 이치카와 신노스케의 다음 명적이자 차기 당주의 세습명이치카와 에비조를 10대째로 습명받으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에비사마'라고 불렸다.

파일:12대 단쥬로 결혼사진.jpg}}}
호리코시 키미코와의 결혼 사진
1976년, 혼담이 오가던 호리코시 키미코와 결혼하였다. 키미코는 단쥬로의 공연을 보러간 적이 있었으며 오사카에 여행을 갔다가 그와 우연히 마주치며 만남을 이어갔다고 한다. 결혼 당시 키미코는 23세로 대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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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호리코시 타카토시와 함께
결혼 이듬해에 장남이자 후계자인 호리코시 타카토시를 득남하였다.[12] 그리고 2년 뒤, 장녀인 호리코시 치에코를 얻으며 안정적인 가정을 꾸렸다.

파일:단쥬로 신노스케 동시 습명.jpg파일:단주로 습명.jpg}}}
1985년, 12대 이치카와 단쥬로
7대 이치카와 신노스케 동시 습명

1985년, 4월부터 6월까지 3개월에 걸쳐서 12대 이치카와 단쥬로 습명 피로 공연을 가부키좌에서 진행하였다. 대표 연목은 칸진쵸와 스케로쿠. 이후 일본 배우 협회의 이사로 취임되는 등 일본 예술의 정점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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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장남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
장녀 4대 이치카와 스이센과 함께 자택 연습실에서

그러나 2004년, 장남인 호리코시 타카토시가 11대 이치카와 에비조를 습명받은 가문의 경사인 시기에 피로연의 연습 도중 연습실에서 쓰러진다. 병명은 백혈병이었고 즉시 모든 공연을 휴연한 뒤 치료에 전념하였다.

후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나리타야의 가부키 공연으로 복귀하며 배우 활동을 재개했다. 다만 2006년, 다시금 백혈병이 재발하며 병과 함께 배우 활동을 하는 등, 오랜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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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을 위해 삭발을 한 12대 이치카와 단쥬로
길어지는 투병 생활로 인해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고 오히려 가부키 가발을 쓰기 편하다며 아예 삭발을 하였다. 2008년에는 유일하게 혈액이 일치한 여동생 초대 이치카와 쥬코로부터 골수 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때 백혈병의 영향으로 본래 A형이던 혈액형이 O형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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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대 이치카와 단쥬로의 장례식
2011년, 첫 손녀의 탄생에 기뻐하던 것도 잠시, 투병에도 불구하고 여러 무대에 서며 맡은 배역을 해내던 12대 이치카와 단쥬로는 2013년, 폐렴으로 사망하고 만다. 장손의 탄생을 겨우 몇 달 앞 둔 시기였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사망에 참담한 심정을 토로하던 장남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은 아버지를 속이거나 가출을 해가며 연습을 나가지 않았던 때를 회상하였고 이에 눈물로 추도사를 읊으며 그의 하나미치를 배웅했다.[추도사]

3. 연기 스타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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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대 이치카와 단쥬로의 니라미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피로

니라미를 피로할 때, 눈을 두 번 치켜뜨며 목으로 긁는 소리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아버지인 11대 이치카와 단쥬로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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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명 피로연 中 무사시보 벤케이의 토비 롯포
짙은 눈매와 함께 묵직하면서도 또렷한 발성을 갖고 있다. 투병 이후로는 체중이 늘고 줄기를 반복하여 그때마다 무용의 흐름이 달랐다고 전해진다.

18대 나카무라 칸자부로와 스케로쿠
만담에도 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2대 마츠모토 하쿠오, 7대 오노에 키쿠고로, 2대 이치카와 엔오, 15대 카타오카 니자에몬 등 여러 배우들과 하나가타 가부키를 여럿 올리기도 하였다.


4.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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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드레스코드 어긋나는 부자로 넷상에서 유명하기도 했다. 몇 번이고 알려두었지만 장남인 13대 단쥬로가 언제나 본인 멋대로 옷을 입고 행사에 참석하였기 때문.

  • 생전 피아제 시계를 즐겨 착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손녀인 4대 이치카와 보탄을 '레이레이'라 불렀다고 한다. 며느리가 손자인 8대 이치카와 신노스케를 임신했을 때, 장남으로부터 아이의 이름을 '칸겐'으로 정했다는 얘기에 좋은 이름이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다만 안타깝게도 손자의 탄생을 못 보고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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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부키 배우로서의 예명이다.[2] 본명은 후지마 킨타로.[3] 본명은 호리코시 하루오. 본래 코오라이야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렇기에 출생명 또한 후지마 하루오.[4] 본명은 호리코시 하루요. 11대 이치카와 단쥬로의 장녀이자 12대 이치카와 단쥬로의 여동생이다. 현재 일본 무용 이치카와류의 수장을 맡고 있다.[5] 市川翠扇. 본명은 호리코시 치에코.[6] 前 가수 히오키 아키코 소생.[7] 이치카와 보탄은 나리타야의 직계 영애가 일본 무용계에서 사용하는 예명으로, 본명은 호리코시 레이카. 애칭은 '레이(レイ)'.[8] 3대 독자에다 늦둥이다. 본명은 호리코시 칸겐. 애칭은 '칸칸(かんかん)'. 별탈없이 가부키 배우업을 이어나간다면 칸겐이 훗날 12대 이치카와 에비조, 14대 이치카와 단쥬로가 될 수 있다.[9] 가부키 배우로서 가지는 집안 이름. 세습명 구도를 중심으로 창시되며, 가부키계에는 10대 명문가를 포함한 40개 정도의 야고가 있다고 한다.[10] 제일 왼쪽 눈매가 짙은 남성은 아버지인 11대 이치카와 단쥬로이다.[11] 12대 단쥬로의 생모인 호리코시 치요의 신분이 애매하였기에 세간에 밝히면 결혼을 막을까봐 우선 가정부터 꾸린 케이스에 가깝다.[12] 현 나리타야의 당주 13대 이치카와 단쥬로 하쿠엔.[추도사] 당신이 남겨준 것을 지켜나가게 해주세요. 부디 나와 함께 해주세요. 이제 더는 도망가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