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국가/브리튼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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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플레이 가능 국가
3. 플레이 불가능 국가
3.2. 브리티셴 인젤른 군정청



1. 개요[편집]


하나의 제국은 오랜 시간이 흐르면 갈라집니다. 또 오랜 시간이 흐르면 하나의 제국으로 뭉쳐집니다.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의 연합왕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제2차 세계 대전과 독일의 침공은 나라를 분단시켰습니다.

국가의 수장인 옛 대영제국이였던 곳은 잉글랜드가 있습니다. 한때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선진국이였지만, 현재의 잉글랜드는 어려운 시기에 처했습니다. 게르마니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세력들의 느슨한 연합인 근왕당의 협력정부가 결정적으로,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나라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알렉 더글러스 흄의 지도 하에 협력자들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행정부를 조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영국인이 독일인의 굴레에 복종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왕 폐하의 충성스러운 저항군, HMMLR은 파시즘에 대항하는 투쟁 조직의 선두에 있습니다. 공산주의자, 군주주의자 그리고 모든 것이 뒤섞인 HMMLR은 오로지 협력자들과 이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반감으로 뭉쳐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세력의 균형이 불안정하며, 국제 무대가 예측 불가능하게 바뀐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지 상상이 될까요?

북쪽에서 스코틀랜드 공화국이 섬에서 남은 최후의 민주주의 국가로써 버티고 있습니다. 일종의 조약으로 결성되지 않고, 오직 독일군의 진격을 막기 위한 최후의 시도로써, 윔벌리 야전 원수와 존 맥코믹의 스코틀랜드 국민당이 건국한 스코틀랜드는 망명자, 원주민, 군인 등이 라이히에 대한 증오심으로 뭉쳐있는 국가입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존속하고 있는 공화국은 근본적으로 불안정하며, 아직도 민족주의자와 노동조합원, 그리고 다른 정당들 간의 분열로 나뉘어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미래는 잉글랜드의 미래에 달려 있으며, 미래의 독립된 스코틀랜드가 남아 있을지, 아니면 역사의 레이다가 한 순간을 포착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잉글랜드의 서쪽으로는 웨일스 국가가 있습니다. 항복 조약 과정에서 잉글랜드에서 강제로 분리된 웨일스는 7세기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자신들의 나라를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며 다시 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웨일스는 내부적으로 형제 스코틀랜드보다 노동조합의 문제 때문에 더 많이 분열되어 있으며, 이 문제에 대해 정치성향에 상관없이 모든 정당들이 대해 다양한 의견 차를 갖고 있습니다. 미래 웨일스의 문제점이 될 수 있는 것은 주요 수출품일 것입니다. 웨일스의 석탄 자원은 주로 독일에게 모두 팔려나갔으며, 신생 켈트족 국가에게 재앙이 닥칠 수 있습니다.

아일랜드해 건너편에는, 아인하이츠팍트에서 두번째로 빈약한 동맹국인 아일랜드 공화국이 영국 제도에서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독일이 북아일랜드 정복을 지원했기에, 아일랜드는 팍트 영향권 밖에서는 친구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유럽에서 상황이 점점 더 불안정해지면서 에메랄드 섬의 미래는 불투명해졌고, 영국에서 누가 승리하든 큰 영향을 받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일랜드인들은 피할 수 없는 결과에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영국인들은 때가 되면, 그 사실을 직접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영국은 혼란의, 불안의, 기회의 땅입니다. 누가 일어나며 누가 쓰러질지는 스스로 권력을 잡는 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승자가 모든 것을 쟁취할 것입니다!



2. 플레이 가능 국가[편집]



2.1. 잉글랜드 왕국[편집]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원조가 도착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역사상 처음으로 영국은 외세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제국은 무너졌고 '좋은 질서와 예의'를 강요하는 점령군 때문에, 이제 영국을 구해줄 아서왕이 없는 가장 어두운 시간에 직면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의지가 강하다는 것과, 20년이 지난 지금도 반란의 속삭임이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이제 나라는 전환점에 있습니다. 사악한 훈족과 협력하겠습니까, 아니면 모든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겠습니까?"


잉글랜드 왕국

영국인들은 전 세계의 여러 곳을 침략했다는 주장에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할 것 입니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독일의 손에 약 1천여개 나라에 벌인 약탈처럼 호되게 당한 것은 피할 수 없을 일이였을 겁니다. 이 새롭고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의 잉글랜드는 예전과 같은 나라가 아니며, 전통적인 권력 구조 대신 라이히와 더 이상 전쟁을 원치 않는 모든 이들의 느슨한 연맹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바로 근왕당입니다. 알렉 더글러스 흄 정권하의 이 정당은 전쟁이 남긴 비참한 참상과 1953년 런던에서 벌어진 공산 혁명 이후의 혼란에서 많이 나아졌습니다. 흄이 이끄는 RP의 온건파는 연정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너머의 어떤 진정한 이상보다도 안정에 전념했습니다. 그의 옆에는 명목상으로는 민주주의 원칙을 따르지만 잉글랜드를 위해 기꺼이 흄과 협력할 생각이 있는, 해럴드 맥릴런과 개혁파가 있습니다. 또한 독일형 국가를 지지하는 아서 케네스 체스터턴이 이끄는 헌신적인 파시스트, 강경파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저마다 다른 이상을 꿈꾸지만, 잉글랜드의 재건을 위해 기꺼이 협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 재건 노력이 순탄치는 않은데, 바로 다른 세력인 HMMLR의 존재 때문입니다.

여왕 폐하의 충성스러운 저항군은 "보스"라고 불리는 알려지지 않은 한 남자를 따르는 여러 반란 단체들의 조직입니다. 조직 자체는 2차 세계대전의 여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제 3차 케이블가 전추에서 영국 공산당이 패배하고 거의 전멸하고 나서여 HMMLR이 영국 반군 조직의 전면에 부상했습니다. HMMLR의 목표는 잉글랜드의 정당한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귀환입니다. 다소 보수적인 조직이지만, 두 번째로 큰 세력인 좌익 저항군과 동맹을 맺은 사실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서러시아 전쟁, 스페인 내전과 그 사이에 있었던 여러 전쟁에서 경험을 쌓은 빌 알렉산더와 제 3차 케이블가 전투의 생존자들이 이끄는 좌익 저항군은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 심지어 대부분은 옛 노동당원이며 공통의 기치와 명분 아래 단결한 연합체입니다. 퍼즐의 세번째 조각은 데이비드 스털링과 특공대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탈영 군인들의 유일한 조직인 스털링의 특공대는 HMMLR의 세 개의 조직 중에서는 가장 적지만, 제일 훈련이 잘 되어있고 최고의 장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형제들과 구별되는 점은 맹렬한 공화주의와 잉글랜드의 반역자들에게 타오르는 복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세력은 결국 어떤 상황에서 언제가 됐든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하지만 승자는 영국의 운명뿐만 아니라, 미래 영국의 운명도 결정할 것입니다.

텔리호!

플레이 가능
  • 유니티-팍트전우국
  • 집권이념: 통제민주주의(권위민주주의, 근왕당-온건파)
  • 경제: 자유시장 자본주의/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국가 정신
    • 국민의 미움을 사다
    더글러스 흄 내각은 독일과의 전쟁이 끄난 이후 4년 이상 지속된 유일한 행정부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 정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독일인이나 그 앞잡이 정부에게 살해당한 사람들에 대한 복수 열망에서부터 현 체제 자체를 불법적으로 여기는 것 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적 기반 약화는 근왕당과 그 파벌이 매 순간마다 실각의 위기에 노출되어 있음을 의미하고, 곧 의회의 자유로운 입법활동 제한으로 이어집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일일 정치력 획득: -1.50
    여왕 폐하의 충성스러운 저항군은 10년이 넘은 세월동안 지속된 잉글랜드 정부의 골칫거리입니다, 그들은 런던 봉기 이전부터 정부에 대항하고 있는 공산주의자들과 반체제적인 군부대 등을 흡수하며 세를 불려나갔습니다. 우리는 저 조직이 연합왕국의 독일에 대한 항복 직후에 생겨났다는 것을 암시하는 여려 증거들을 확보했지만, 이들의 광범위한 방첩능력과 교묘한 책략은 우리의 더 적극적인 대응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통칭 '저항군'에는 평범한 테러리스트 외에도 상당수의 전직 고위 군인들이 소속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언젠가 그들이 우리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행동에 나설 의도가 있지 않겠냐는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징병 가능 인구 획득치: -20%
    • 폐허 속에 눕다
    독일군의 폭격은 전후 우리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나마 독일 경제는 50년대에 대붕괴를 겪기 전 잠깐이나마 회복의 조짐을 보았지만. 미국 등 옛 식민지와의 단절따윈 단숨에 덮어버릴 브리튼 제도의 통제권 상실을 겪은 작금의 잉글랜드 경제는 가장 호황인 시기에도 익사한 사체같이 보일만큼 심각합니다, 그러나 비록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이 우리 국민 사이에 심각한 수준의 불안을 가져왔다 해도, 이것이 확실히 해결되기만 한다면 내각은 한시름 놓을 수 있을겁니다.
    생산 효율성 한도: -200.00%
    GDP 성장률: -5.00%
    Taxable Population: -10.00%
    소득률: -10%
    월간 빈곤률 변화: -2.00
    • 해협을 건너서
    영국은 끽해봐야 4km가 채 되지 않는 영국해협으로 독일과 나뉘어져 있으며, 우리가 그들과의 관계 유지에 최선의 노력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라이히는 콘윌 주둔군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언제는 우리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번의 종전 조약은 베르사유 조약과는 정반대로 우리의 탱크, 전투기 수와 해군의 건조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지만, 만약 게르마니아나 잉글랜드의 상황이 급변한다면 조약 또한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일일 육군 경험치 획득량: -1.00
    부대를 훈련하거나, 해체하거나 부대 템플릿을 수정할 수 없습니다.
    독일의 허락 없이는 수송선을 제외한 어떠한 장비도 생산할 수 없습니다.
  • 플레이 요소
    • 선거와 정치 활동을 통해 잉글랜드의 운명을 결정하세요.
    • 좋든 나쁘든 브리튼 제도를 재통일하세요.
    • 라이히와 OFN이 벌이는 그레이트 게임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세요.

    영국은 승리할 것입니다!
  • 내각
    인물설명
    알렉산더 더글러스 흄은 권력의 중심에서 태어난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지역방위군에서 지루한 군생활을 보냈고 아내 엘리자베스와도 평범한 결혼식을 올렸으며 영향력 없는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다 1937년, 총리 네빌 체임벌린의 보좌관으로 발탁돠었습니다. 그는 처음엔 총리의 눈으로 활동했지만, 불행하게도 이내 청사를 떠나 결핵성 척추염 치료를 위해 3년간 치료에 매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덕분에 흄은 앞으로 이어질 체임벌린 내각에 대한 수많은 비난을 회피할 수 있었으며, 독일군의 침략에 대한 것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1942년 아버지의 작위를 물려받아 영연방을 해체한 평화조약 체력에 참석했지만, 이후 10년간은 잉글랜드 정계에 영향력을 거의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50년대가 되자 상황이 그에게 조금씩 유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여러 파벌들의 동맹으로 구성되어 있는 근왕당의 다른 총리들이 내분, 폭동, 독일의 견제 등으로 실각할 때 마다 그의 정치적 입지는 계속해서 확대되어 왔습니다. 그는 제 2의 침략을 막기 위해 근왕당의 전형적인 대변인으로 등장하여 상원 당수에서 마운트배튼 내각의 외무장관을 거쳐 1958년, 잉글랜드 왕국의 총리에 임명되었습니다.

    흄 행정부는 전임 내각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는 근왕당의 불안한 연정을 유지했고 콘월 주둔군에게 간신히 용인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저항군의 영향력 증대라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가 왕국을 살릴 수 있을까요? 혹은 파멸로 이끌까요.

    인물설명
    알렉 더글러스 흄 이전의 근왕당은 불평분자들의 모임에 불가했으나, 그는 독일 주둔군의 공포를 이용해 당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마운트배튼 공 사후 수습도 그가 맡았으며, 맥밀런과 체스터턴을 설득해 정부를 위해 협력하게 한 것도 그였습니다. 이제 그는 잉글랜드를 이끕니다. 또 한 번 독일과의 전쟁이 벌어진다면 이번에는 잉글랜드가 살아남을 수 없음을 알기에, 오직 그만히 해낼 수 있기에.

    • 퀸틴 맥가렐 호그 외무장관(권위민주주의, 정치적 임명)
    • 해럴드 맥밀런 재무장관(보수민주주의, 개혁가)
    • 아서 케네스 체스터턴[1] 내무장관(파시즘, 군에서 미움받는 자)
  • 지휘관
    인물설명
    브리튼이 국방군의 군화에 짓밟혔을 때, 버나드 몽고메리는 독일의 거대한 노여움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고, 협력정부를 섬기는 것으로 국가의 기틀을 유지하고 자신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잉글랜드의 이름으로 다시한번 자신의 의무에 응했습니다. 굳은 입술과 손으로 몽고메리 장군은 남부 임시 군구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일이 끝나는 순간, 잉글랜드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인물설명
    출생: 1898년 9월 11일, 영국 에섹스

    경력: 제럴드 윌터 로버트 템플러 경은 윌터 템플러 중령의 유일한 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모두 탁월한 복무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그는 이스트 앵글리아 방어를 담당했습니다. 독일군이 공격하자 그의 부대는 2군급 부대로 취급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용맹하게 싸웠고, 심지어 아이젠하워 장군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제럴드 템플러는 전간기 동안 몽고메리 육군 원수에고 조언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몽고메리의 높은 신임을 얻은 그는 전쟁 이후에 육군 원수로 추천받았습니다. 템플러는 마지못해 수락하기는 했지만,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충성을 바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1942년 본토 방위 임무를 맡은 제47(런던)보병사단장을 지냈으며 이후 몬테카시노 전투안치오에서 제56(런던)보병사단을 지휘했다. 제6기갑사단의 지휘를 맡기도 했지만 한 달 만에 지뢰 밟고 후송행. 이후 SOE 대독부서를 총괄했다. 전후 말레이시아 비상사태 당시 암살당한 전임자 헨리 거니를 대신해 말라야 고등판무관으로 부임해 성공적인 대게릴라 작전을 벌여 "말라야의 호랑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인물설명
    출생: 1903년 2월 26일, 영국령 인도제국 아그라 오우드 연합주

    군사 경력: 군인 가족에서 태어난 오드 찰스 윈게이트는 1923년 왕립 육군사관학교에서 졸업하면서 왕립 포병대에 장교로 임관했습니다. 1927년 수단 방위군으로 이동했고 거기서 아랍어를 배우고 사막 원정을 조직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1933년 영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기계화를 위한 왕립 포병대 재훈련을 담당했습니다. 1936년 정보장교로 팔레스타인에 파견된 그는 시오니즘의 원인을 재빨리 파악했습니다.그는 아랍인 파괴공작원에 맞서는 대게릴라전 임무를 맡은 정찰대인 특수야간분대를 지위했습니다. 그의 집단 처벌 정책이 상당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그래도 그의 복무는 특별복무훈자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1939년 고위 사령부는 그가 유대인 가운데서 엄청난 인기를 유지했다는 점을 이유로 윈게이트가 시오니즘적 이상에 너무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의심하여 그를 소환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아비시니아에서 이탈리아 전선 후방을 공격할 현지인 습격대를 조직하기 위해 중동으로 파견되었고, 이번에도 대단한 효과를 거뒀습니다. 나중에 그와 병사들의 처우 문제로 지휘관급 장교들과 커다란 갈등을 빛었는데, 이로 인해 우울증과 자살 기도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1942년 극동으로 이동한 그는 버마 정글에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한 장거리 침투부대를 훈련시키기 시작해고, 일본군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깊은 후방에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친디트 부대가 창설되었습니다. 친디트 부대원들은 적영토 깊은 후방에 위치한 본부에서 작전을 지속하기 위해 공중 보급과 라디오 통신에 의존했습니다. 이들이 거둔 전술적 전략적 효용성을 의심하는 이들이 많이 있기는 했지만, 친디트 부대는 런던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니게이트는 수많은 부하들과 함께 포로로 잡혔고 일본 포로수용소에서 몇년간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결국 잉글랜드 왕국은 협상을 통해 그를 꺼내올 수 있었고 1955년부터 군 복무를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중요 사항: 계속해서 다른 장교들이나 지휘관들과 충돌하는 윈게이트는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소규모 특수부대 전술과 강력한 정신무장이 필요하다는 이론을 확고하게 지지하는 인물입니다.||
    게릴라전 전문이었던 육군 장군. 현실에서는 동아프리카 전역에서 활약한 기드온 부대와 버마에서 활약한 친디트 부대를 이끌었다. 전쟁 전에는 팔레스타인에서 복무했는데 그 영향 때문인지 열렬한 시오니즘 지지자였다고. 1944년 인도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1]
  • 제독
    • 필립 비언, 3, 3/2/3/1: 해군 제독. 현실에서는 알트마르크 나포 당시 HMS 코사크의 함장이었다. 이후 지중해, 노르망디, 오키나와 등에서 함대를 이끌었다.
    • 빅터 크러츨리, 3, 1/3/2/3: 해군 제독. 현실에서는 노르웨이 침공과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 사보섬 해전에서 연합군 함대를 지휘하다가 털린 인물이기도 하다.
  • 주요 도시
    • 런던
    한때 대영제국의 수도였던 현대의 런던은 옛 모습의 그림자입니다. 2차 세계 대전과 런던 봉기의 결합된 효과는 도시의 방대한 양을 잔해로 만들고 정부의 지급 불능으로 몇 년 후에도 남아 있는 판자촌을 급히 세우게 하였습니다. 빅 벤과 버킹엄 궁전과 같은 랜드마크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포탄과 총알 자국은 여전히 남아 있어 영국 자체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 포츠머스
    포츠머스는 한때 영국의 주요 해군 기지였던 도시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거의 잔해로 변해버린 독일군에 의한 짧은 점령 이후 잘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포츠머스는 영국 상품이 유럽으로 들어오는 관문 중 하나로서 독일 경제 블록 내에서 잠시 성공을 거두었지만 현재는 해협 너머 부르군트 때문에 도시의 경제가 쇠퇴하고 있습니다. 영국 대부분의 지역에 비해 포츠머스 시는 여전히 전쟁에서 회복 중입니다.
    • 트루로
    수세기 전에 트루로시는 휴양지로 알려졌습니다. 긴장을 풀고 현대 영국 생활의 광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입니다. 트루로는 영국 제도의 서쪽 변두리인 콘월에 있습니다. 트루로로 여행을 떠나면 어둡고 푸른 대서양의 전능하고 거센 파도에 직면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길고 유서 깊은 역사 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장벽 저편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생각해 왔습니다. 신세계의 많은 도시는 주민들이 마침내 해안에 도착했을 때 목가적인 콘월어 마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트루로는 이제 그 그리운 기억에만 매달릴 수 있습니다. 독일군이 영국 땅에 상륙하고 나치 제국의 압도적인 힘에 무릎을 꿇도록 영국을 강요했을 때, 그들은 플리머스를 지배할 개인 영지로 선택했습니다. 트루로가 아직 게르마니아의 강철(Kruppstahl) 주먹 아래 있지 않은 동안 할더의 부하들은 리조트 타운의 목을 졸라매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카페에 내리던 태양은 사라졌습니다. 섬의 네 모퉁이에서 온 아이들이 거리에서 놀고 거리의 풀이 무성한 들판에서 사라졌습니다. 희망과 영광의 땅은 사라졌습니다. 남은 것은 영국이 사슬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게르마니아가 목표로 삼을 첫 번째 도시는 트루로가 될 것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뿐입니다.||
    • 노리치
    이스트 앵글리아의 주요 도시인 노리치는 독일 폭격의 영향을 받았지만 나머지 잉글랜드 남부에 비해 비교적 적은 피해로 제2차 세계 대전을 피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운이 좋았습니다. 전쟁의 여파로 노리치는 독일 이외의 유럽에서 가장 큰 맥주 양조 중심지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영국 상류층의 런던 외곽 시골 도시로의 도피 덕분에 어느 정도 성장했습니다.
    • 버밍엄
    영국 민주주의의 태동 중심지 중 하나이자 18세기 이후 급진주의의 고향인 독일 군화가 버밍엄에 크게 짓밟혓다는 것은 이제 놀라운 일입니다. 한때 강력했던 노조가 억압되고 도시의 산업이 여전히 회복을 시도하고 있는 버밍엄은 반정부 정서의 중심지로 변모했습니다. 버밍엄에서는 경찰이 거리에서 매복을 당하지 않도록 총을 들고 이동해야 합니다.
    • 맨체스터
    영국 노동조합과 산업의 본고장인 맨체스터는 협력정부에 대한 노동계급 불만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런던 봉기가 정부의 약점을 폭로한 이후 가혹한 규제에 시달린 맨체스터는 불안의 온상입니다. 영국에서 갈등이 시작된다면 거의 틀림없이 맨체스터의 공장 노동자들이 결정할 것입니다.
    • 리버풀
    리버풀은 지금까지 특별히 좋은 20세기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과 영국 경제 위기가 결합하여 대량 실업과 경제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잉글랜드의 아프리카-카리브해 공동체의 중심지인 리버풀은 또한 팍트 외부에서 잉글랜드로 넘어가기 위한 물품의 주요 밀수 항구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단순한 상품 이상일 것입니다. 부두 경찰은 더 큰 화물 내용물 중 일부를 너무 자세히 살펴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 뉴캐슬
    뉴캐슬은 잉글랜드 최북단의 주요 도시이며 점령 기간 동안 독일군의 방해를 받지 않은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입니다. 스코틀랜드에서 밀입국의 중심지가 되었고 영국 반체제 인사들과 독일이 협력주의 정부를 없애기로 결정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난민 경로에 필요한 중지가 된 뉴캐슬은 HMMLR 작전의 주요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정부 통제는 항상 미약하며 아마도 곧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 멸망 문구

    Bind her, grind her, burn her with fire, Cast her ashes into the sea,- She shall escape, she shall aspire, She shall arise to make men free.

    묶어보거라, 갈아보거라, 불태워보거라, 재를 바다에 뿌려보거라. 그녀는 탈출할 것이다, 열망할 것이다,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들고자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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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이 1943년 바다사자 작전으로 영국을 멸망시키고 에드워드 8세를 다시 왕으로 앉혀 세운 국가이나, 시민들 사이에선 매국노 정부라 취급받는다. 지도자는 네빌 체임벌린의 비서를 지냈던 알렉 더글러스 흄.

보수당노동당이 사라지고 근왕당이라는 단일 정당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 근왕당은 세 파벌로 나뉘어져 있다.
  • 안정을 추구하는 더글러스흄 총리의 온건파.[1]
  •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해럴드 맥밀런의 개혁파.[2]
  • 독일식 파시즘을 추구하는 아서 케네스 체스터턴의 강경파.[3]

그나마 프랑스에 비해서는 정치 사정이 나아서 구 자유주의 정치인들이 의회에 들어가기도 한다. 독일도 러시아에 더 신경쓰느라 브리튼 제도에 신경을 많이 쓰지는 못하는중. 후술할 클로드 오킨렉 장군도 의회에 있다.

첫번째 중점을 끝내면 경관과 저항군 단원이 서로를 지나치는 이벤트가 나온다. 이후 두번째로 고르는 중점을 통해 영국 내전에서 어느 세력을 고를지가 결정된다. "총리의 연설" 중점을 고르면 잉글랜드 왕국 정부의 시점으로 플레이하게 되며 "그들 발 아래의 나라" 중점을 고르면 밑에 있는 HMMLR의 시점으로 플레이하게 된다.

이후 반란 진압에 성공하게 될 경우 선거가 열려 근왕당(권위민주주의), 잉글랜드 연합당(보수민주주의), 국민전선(파시즘)의 세 정당 중 하나 가 집권할 수 있다. 그리고 팍트(보어만 또는 슈페어)와 OFN이 잉글랜드를 서로 동맹으로 끌어들이려 하는데, 어느 쪽이든 세력에 가입하게 되면 일부 중점을 올리는 조건이 막히니 세력 가입은 선택을 잘 해야 한다.

선거 이후 2년 반이 지나면 웨일스와, 4년이 지나면 스코틀랜드와 통합논의가 시작된다. 침공이건 협상이건 이들을 성공적으로 합병했다면 영국 통일 이벤트]가 뜬다.

참고로 동생 조지 6세는 잉글랜드에 남았으나,[4] 조카 엘리자베스 2세는 캐나다에 있다.

잉글랜드 내전이 협력정부의 승리로 끝나면 에드워드 8세는 조기 퇴위하고 글로스터 공작 헨리 윌리엄 프레더릭 앨버트 왕자가 핸리 9세로 즉위한다.

2.1.1. 마거릿 대처[편집]


  • 집권이념: 국민보수주의(권위민주주의, 국왕당)
  • 영국 통일 노래
  • 인물설명

    무엇이 위대한 지도자를 만들까요? 타협할 수 있는 능력일까요? 혹은 모든 반대파를 뭉개버리거나 애초에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강한 힘일까요? 마가렛 대처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필요한 것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강철같은 의지와 그것을 끝까지 관철하는 용기에서 나옵니다.

    사람들은 식료품집 딸이자 화학자가 1951년 보궐선거에서 전도유망한 무소속 후보에게 승리를 얻어낼 수 없으리라고 떠들어댔지만 대처는 그 예상을 보란듯이 뒤엎었습니다. 그녀의 동료들은 그녀가 단지 통계 상에 잡힌 사소한 오류일 뿐이며, 결코 성공하지 못할 거라 확신했지만, 이후 여론조사에서 그녀는 보통 시민의 입장을 대변함으로써 근왕당의 유력 정치인 중 한명으로 부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전과 더글러스 흄 총리 사임의 여파 속에서 어느 누구도 확고한 권력기반조차 없는 여성이 총리가 된다 한들 당 지도부의 꼭두각시 노릇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이제부터 꽤나 재밌어질 겁니다.

    마가렛은 강하고 독립된 잉글랜드의 국민이 게르마니아나 워싱턴의 협박에 겁먹지 않고 사의로 정부에 충성하게 되는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마가렛 대처는 세계가 그녀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든 아니든, 영국이 승리하는 미래를 위해서라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한발짝 잘못 디딘 그 순간이 바로 파멸의 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내각
    집권 1기

    집권 2기

근왕당 소속으로 권위민주주의 성향. 통일시 음악은 Rule Britannia. 잉글랜드 세력들 중에서는 가장 경제를 잘 살린다. 외교적으로는 OFN과 팍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이득을 받아먹다가 어느 한 곳에 가입하게 된다.
  • 고유 시스템
    • 엘리트와 대중 지지율: 대중 지지율이 오르면 정치력 획득에서 패널티를 받는 대신 건설 속도와 전쟁 지지도에 버프가 붙고, 엘리트 지지율이 오르면 정치력 획득/소비재 공장 비율 감소/안정도에 버프가 붙는다.
    • 대처파와 보수파: 대처는 본질적으로 원로들의 꼭두각시이기 때문에 보수파의 영향력이 매우 강한 상태다. 대처가 원하는 정책을 추진하려면 대처파의 영향력을 키워야한다.

  • 1기 중점
    • 식료품점의 딸(경제 중점) - 대처리즘을 경제에 도입시키며 자유무역을 시작한다. 철강법을 통한 전면 민영화와 기업과의 협상을 통한 민영화 중 하나를 고른 후 석탄 민영화를 다룬 석탄법 통과 이후에는 대처와 민중의 의견을 따라 '통신법'(통신 민영화), '항공법'(항공 시설 민영화), '철도 및 도로법'(일부 기반시설 민영화)을 제정시키거나, 보수파들과 엘리트의 의견을 따라 개혁을 미룰수 있다.
    • 다툼가 있는 곳에 용서를(사회 중점) - 영국 내전으로 인하여 국가가 분열된 상황 속에서 대처는 민중들의 지지를 받고 직장부패법을 제정해서 직장에서의 부패를 근절하고 족벌주의를 막거나 엘리트의 의견인 산업보호법을 제정해서 기업의 세금을 감면할 수 있다.
    •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정치 중점) - 대처는 정책 기조를 결정하기 위해서 원로파들이 원하는 방식인 잉글랜드 연합당을 비난하거나, 당에 신인을 등용하고 당을 흔들어 놓아서 대처파의 영향력을 늘려 자신의 당으로 만들 수 있다.
    •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국가 통합 중점) - 대처는 망가진 국가를 위해 국가를 치유하려 여러 가지 일을 하려 한다. 먼저 전국 순회를 할때 가난한 북부를 챙겨주거나 부유한 남부를 챙겨줄 수 있다. 그 후에는 미디어에 출연하거나 직접 국민들과 만날 수 있다.
    •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복지 중점) - 대처는 복지 상태 역시 개선하려 한다. 하층민들을 위해 주택법을 제정해 주택법을 제정해 주택 건설을 늘리거나 중산층들을 위해 신건강보험법을 제정시켜 보편적 의료보험을 실현할수 있다. 그 후 농촌의 실업률을 개선하거나 도시의 실업률을 개선할 수 있다.

집권 2기가 되면 랩 버틀러 등 당내 원로들을 내각에서 자르고 대처파로 내각을 채운다.

  • 2기 중점
    • 경제 - 통화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산업 규제를 완화한다. 또한 양성평등을 실현한다.
    • 정치 - 대처파로 내각을 장악하고 빈곤법을 개정해 빈곤층에게 식량을 나누어주나, 환경규제와 안전규정을 느슨하게 만든다. 또한 보안기관을 강화시키고 전국에 CCTV를 설치한다. 그리고 정당법을 다당제에서 관제 야당으로 수정한다. 최종적으로는 두갈래 길로 나뉘는데. 우측 루트는 자유화 루트로. 투표권을 "상류층만"에서 "등재된 사람만"으로 바꿀 수 있고, 반파시즘법을 제정해 파시즘을 분쇄할 수 있다.[5] 좌측 루트는 우민화 루트로. 포르투갈의 살라자르처럼 교육을 통제하거나 탈세 천국화중 하나를 고르고 집회를 통제시킨다. 여러모로 브이 포 벤데타가 생각나는 결말.
    • 정부 - 대처는 공권력을 강화시키고 정부를 통제하려 하기 시작하는데, 민중들의 지역 정부를 폐지하거나, 엘리트적인 CEO들을 무릎꿇릴수 있다.

2.1.2. 해럴드 맥밀런[편집]


  • 집권이념: 가부장적 보수주의(보수민주주의, 연합 잉글랜드당 - 맥밀런파)
  • 영국 통일 노래
    잉글랜드의 푸르고 아름다운 대지 위에 우리가 예루살렘을 세울 때까지.
  • 인물설명

    어떤 이들은 조국을 위해 시간이 그들의 뜻에 굴복할 때 까지 싸우곤 했습니다. 그들은 참호에서, 농장과 밭도랑에서, 그들의 영토 아래에서 싸워왔지만 얻은 것은 잿가루와 뼈다귀 뿐이었습니다. 해럴드 맥밀런은 1894년, 빅토리아 시대에 태어나 대전쟁에 참여해 영국의 승리를 직접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일이 잘 풀릴것만 같았지만, 이어진 2차 세계대전은 너무 많은 것을 산산조각 내버렸습니다. 대영제국의 정신이 가장 먼저 몰락하는데 뒤이어 조국이 파멸하고, 청년들이 참살당하고, 심지어 런던조차 라이히의 멍에 아래 짓밟히는 것을 보며 맥밀런은 자신이 사랑하고 소중히여겨 마지않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용감한 이들과는 달리, 그는 조국의 영광이 아니라 국민의 보전을 위한 항복조약에 서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더이상 조국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싶지 않다고 해서 조국을 망친 사람들에 대한 증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파시스트 독재에 반하는 사람들에게 합법적 피난처를 제공하고자 맥밀런에 의해 규합된 근왕당 개혁파는 대독협력정부의 마지못한 묵인 하에 결성되었습니다. 그는 훗날 파시스트들과 근왕당의 부패한 귀족들이 다시는 잉글랜드를 망치지 못하게 막기 위해 잉글랜드 통합당을 창당하는 것을 지원받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잉글랜드 국민은 맥밀런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그중 대부분은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는 연설이나 유세에 재능있는 인물이 아니지만, 그런 일을 대신 해줄 사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독재자 유망주 쯤으로 보지만, 그런 치들은 그의 진짜 동기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해럴드 맥밀런은 그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어떤 잉글랜드인도 타지의 해안가에서 죽어나가지 않도록 지킬 것입니다.

  • 내각
    집권 1기

연합 잉글랜드당 맥밀런파 소속으로 보수민주주의 성향. 통일시 음악은 Jerusalem. 고유 시스템으로 모들링과 맥밀런의 힘싸움과 영국의 민주화 정도가 있다. 대처보다 더 자유주의적 후보이지만 경제는 덜 잘 살리는 것이 특징... 이지만 맥밀런이 힘싸움에서 승리하여 집권 2기가 되면 본색을 드러낸다.

  • 1기 중점
    • 정치 -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서 군대의 주요 장성과 접촉하고, 반부패법을 제정해서 야당의 지지율을 줄이고 부패를 일소한다. 또한 자유파의 요구를 받아들여서 교육개선법을 제정해 교육을 발전시킨다. 그러나 모들링의 의회 연설과 난장판 이후 맥밀런은 자유파들이 우리를 배신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유파들의 권한을 줄여버리고, 파시스트들은 검은 셔츠단을 금지시켜버리고 반-파시스트 법으로 조져버린다. 또한 국왕당은 부패를 명목으로 정적들을 체포한다. 그 후에는 모들링을 밀어내고 당 의장인 자신이 총리가 되고
    • 경제 - 맥밀런의 경제 계획은 옛날의 영광을 복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무역, 경제, 산업에 대한 분석을 한 후 맥밀런은 의회에서 연설하며 경제 계획을 발표한다. 산업에 대한 태스크 포스를 구성한 후 철강 산업 증대, 농업 투자, 탄광 확장을 벌인다. 그 다음에는 가난한 북부, 잊혀진 중부, 부유한 남부중 한군데를 골라 실업률을 줄인다. 내전의 피해를 복구한 후에는 자유파들이 지지하는 OFN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선택하거나 독미 가운데 중립을 지킬 수 있다.

  • 2기 중점
    • 경제 - 맥밀런은 전문적인 영국을 만들기 위한 정책을 펼친다. 좌측 트리에서는 잉글랜드인에게 직업 보장, 족벌주의 종식, 차별 철폐 및 여성노동법을 제정한다. 우측 트리에서는 공정고용법으로 실업급여를 늘리고 노동법으로 노동시간을 일 12시간으로 바꾸고 최저임금을 늘린다. 그리고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법률을 제정해 의료보험을 확립한다.
    • 정치 - 이 부분부터 맥밀런의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정치 부분의 좌측 트리는 배신자라는 명목으로 반대파를 조지는 건데, 국왕당에 대한 표적수사로 정적들을 체포하고 부패법을 제정하거나, 체스터턴을 독일로 추방하거나 체포하고 반-파시스트 법을 제정한다. 우측 트리는 국왕당을 부수는 것인데 국왕당의 온건파들은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리고 대처파들은 꼭두각시로 만들거나 재판에 보내버린다. 마지막으로는 모들링과 연합 잉글랜드당의 자유파들을 부수는 것이다. 자유파들을 침묵시키고 저항하는 자는 출당시키며, 민주주의의 보호를 위한 법으로 집회와 언론을 규제하고 안전한 거리 법[6]으로 전국을 CCTV로 도배한다. 그리고 자유파들을 정치적으로 사망시킨 후에 마지막 중점인 "맥밀런,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내 충성" 중점을 찍으면 이벤트가 등장하며 영국이 일당제로 변화하게 된다.

보면 대처보다 더욱 급진적으로 민주주의를 없애고 싱가포르와 비슷한 독재국가로 변화하지만, 자신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정도까지 하는 이유는 영국인이 또다른 전쟁으로 타지에서 죽어나가는걸 보기 싫어서다. 이쯤 되면 보수민주주의도 아니고 전제주의의 민간 독재로 서브이념을 바꿔야 할 것 같지만 그래도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있는지 바뀌진 않는다.

2.1.3. 레지널드 모들링[편집]


  • 집권이념: 자유민주주의(연합 잉글랜드당 - 자유파)
  • 영국 통일 노래
    물론 자랑스러우리라, 크게 외쳐라. 브리턴인들이여, 깨어나라. [...] 잉글랜드는 언제나 있으리. 잉글랜드는 자유로우리. 잉글랜드가 나에게 만큼 당신에게도 의미가 있다면.
  • 내각
    집권 1기[1]

연합 잉글랜드당 자유주의파 소속으로 자유민주주의 성향. 의회 개막 중점에서 모들링의 편을 들어주고 재선 후 마지막 중점을 찍으면 등장한다.

  • 1기 중점
    • 정치 -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서 군대의 주요 장성, 자유주의자들, 보수주의자들과 만나고 민주화의 개념을 소개한다. 그 후엔 탄압방지법을 제정해 소수집단 탄압을 막고 맥밀런을 돕는다. 그 후에는 집회 규제 완화/맥밀런 밀어내기/여성 교육 증대중 하나를 고르고 투표권을 투표명부에 적혀진 사람까지 할 수 있도록 확장한다. 그 후에는 평등투표법, 투명한 의회를 위한 법률등을 제정하고 공공 고등교육을 보장하며 관제언론 정책을 언론 검열로 바꾸고 언론을 현대화한다. 마지막으로는 언론을 완전히 자유화한다.
    • 경제 - 위의 맥밀런과 같다.

  • 2기 중점
    • 경제 - 모들링은 경제적으로 사회자유주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교육 부문에서는 고등교육을 넘어서 감당할 수 있는 교육을 위한 법을 제정해 무상교육을 확립한다, 세제에선 일률 과세를 확립하고 소득세법으로 소득세를 감세한다. 또한 노동법적 부분에서도 일 12시간 노동을 확립하고 자유노동법을 제정한다.
    • 정치 - 좌측 트리는 반민주적 세력과 싸우는 트리다. 협동조합주의와 싸울 때는 거대한 돈을 소유하고 있는 조합[7]과 싸운다. 국가와 기업을 분리하고 군산복합체를 견제하며 공정정치법을 제정한다. 파시즘과 싸울 때는 맥밀런과 같은 스탠스로 검은 셔츠단을 금지시키고 파시스트들을 회개시키며 민주적 교육법을 제정한다. 우측 트리에서는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맥밀런파와 대립각을 세운다. 좌파와의 화해를 위해 최소한의 환경 규제를 만들고 노동조합법을 제정해 모든 노조를 합법화하고 안전규정을 적당한 수준까지 올린다. 보수파를 배신하고 헌장법을 제정하면 약자를 돕기 중점이 열리며 일 10시간 노동을 만들고 양성평등 사회를 만든다. 그 후에는 근왕당을 비판하고 투표법을 모두가 투표 가능으로 더욱 확장하며 옛날의 노동당을 복원한다. 마지막 중점인 "부서졌지만 완벽한 시스템"을 찍으면 이벤트가 등장하며 집권 정당이 자유파로 바뀌고 모들링이 지도자가 된다.

실제 역사에서는 보수당 소속으로 해럴드 맥밀런 총리 시절 식민장관을, 그다음에는 재무장관을 했다. 이 재무장관 직위는 알렉 더글러스 흄 총리 시절에도 유지했지만 노동당에게 정권이 넘어가며 아웃. 이후 에드워드 히스 정권에서 내무장관으로 있다가 정경유착이 드러나 사임했다. 덤으로 이 양반이 내무장관으로 있을 때 일어났던 일이 피의 일요일 사건인데, 이 때문에 북아일랜드 민족주의자 의원에게 두들겨 맞기도, PIRA가 택배로 보낸 폭탄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1977년 1월 12일에 부부동반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2.1.4. 아서 케네스 체스터턴[편집]


  • 집권이념: 협동조합주의(파시즘, 국민전선)
  • 영국 통일 노래
  • 인물설명

    아서 케네스 체스터턴은 실로 양파 같은 남자입니다. 세계대전의 참호 속 상처 입은 베테랑, 연극 비평가, 알코올 중독자에다가 과거 페이비언 협회 회원이었지만 지금은 파시스트죠. 모즐리의 영국 파시스트 연합이 망할 조짐을 보이자 황급히 당을 떠나긴 했지만, 그의 신념은 그가 속해있던 동아프리카 방면 영국군이 암바 알라기에서 공세를 질질 끄는 동안 추축군이 이집트에 입성하면서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북쪽 방면에서의 추축군 공세에 의해 이탈리아 군에 대한 포위를 풀어야 했을 때, 그는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을 물리치기 위해 본국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상황이 풍전등화에 놓인 가운데, 체스터턴은 독일군의 진격으로부터 탈출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그동안 새로운 영국을 구성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강력한 파시스트 영국을요.

    그를 중심으로 근왕당의 강경파를, 그러니까 국민전선을 결집한 것은 그런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해냈고, 영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그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버렸고, 당은 분열과 파벌싸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니 오직 시간만이 그가 자신의 작은 파시스트 섬에 대한 비전을 구현할 수 있는지, 혹은 동맹국이라고 부르는 나치 사기꾼들에게 쓸려나갈 것인지 말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전선 소속으로 파시즘 성향.

현실에서는 극우 정치인이었던 인물. 전쟁 전에는 영국 파시스트 연합에서 활동했지만 오스왈드 모슬리에게 실망해 1938년 탈당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자 군대에 자원, 아프리카 전선에서 복무했다. 전쟁이 끝난 후 대영제국 해체에 반대하는 제국 충성파 연맹이라는 단체[8]를 설립했으며 1967년에는 신생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초대 당수가 되었다.

TT패치 이후로 집권이 가능해졌다. 지지도가 바닥이라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집권하기가 불가능한 수준이나 잉글랜드 내전을 질질 끌면서 각 주의 황폐도를 올리고 콘월 주둔군에 도움을 요청하고 체스터턴과 그의 검은 셔츠단을 대대적으로 투입하면 파시즘 지지도가 천장을 뚫으면서 전후 체스터턴이 집권하게 된다.

2.1.5. 버나드 로 몽고메리[편집]


  • 집권이념: 군사독재(전제주의, 잉글랜드 구국 군사정부)
잉글랜드 군사 위원회 소속으로 전제주의 성향.

협력정부가 잉글랜드 내전에서 승리한 후 콘윌 군정청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합병 협상에 실패하거나 전쟁이 발발했을때 제한시간 내에 콘윌 군정청을 밀지 못했을 경우 쿠데타를 일으킨다. 몽고메리의 인물 설명란에는 일단 임시정부라고 표방하고 있지만 현재 개발상태로는 쿠데타 후에는 중점도, 디시전도 사라지니 사실상 게임 오버라 보면 된다.


2.2. 저항군의 잉글랜드[편집]


  • 멸망 문구

    There are vast numbers whose names will never be known, whose deeds will never be recorded. This is a War of the Unknown Warriors.

    이름이 절대 알려지지 않을 사람들이 수없이 있습니다. 이들의 행적도 절대로 기억되지 않을겁니다. 이것이 무명 용사들의 전쟁입니다.


독일 내전 발발 이후 영국 저항군의 연합인 여왕 폐하의 충성스러운 저항군(Her Majesty's Most Loyal Resistance, HMMLR)이 봉기하며 등장하는 잉글랜드. "보스"라는 의문의 인물이 이끌고 있다.

본래 캐나다에 있는 엘리자베스 2세를 잉글랜드의 국왕으로 추대하는 보수주의 저항군이지만 대독 투쟁을 위해 다른 세력과 손을 잡았다.
  • 좌익 저항군: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전직 노동당원으로 이루어졌다. 지도자는 스페인 내전과 2차대전과 서러시아 전쟁[9]에 참전, 20년 넘게 반파시즘 투쟁을 계속해오고 있는 빌 알렉산더[10]. HMMLR이 등장하기 전에는 제일 큰 세력이었지만 1953년 런던 봉기가 실패하고 제3차 케이블 스트리트 전투에서 영국 공산당이 거의 몰살당하며 쪼그라들었다.
  • 코만도: 데이비드 스털링이 이끄는 코만도SAS 잔당.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당시 탈영한 이들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항군 활동을 계속 이어온 유일한 조직이다. 저항군 삼대 세력 중 제일 규모가 작지만 제일 정예다. 공화주의와 배신자에 대한 복수를 열렬히 부르짖고 있다. 근데 배신자에 대한 복수심이 너무 열정적이라 문제, 이들은 극단적이며 전제적이다.

잉글랜드 왕국과 마찬가지로 선거 이후 2년 반이 지나면 웨일스와, 4년이 지나면 스코틀랜드와 통합논의가 시작되고 성공적으로 합병했다면 영국 통일 이벤트가 뜬다.

개그성 더미 데이터헨리 HMMLR가 있다.


2.2.1. 해럴드 윌슨[편집]


  • 집권이념: 혁명전선(사회주의, 사회노동당-개혁파)
  • 영국 통일 노래
    지하 감옥의 어둠이나 교수대의 냉혹함이여, 어서 오라. 이 노래는 우리가 석별하며 부를 찬가가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붉은 기를 높이 들어라. 우린 이 그늘 아래에서 살고 죽을 것이다. 겁쟁이들이 위축되고 배신자들이 비웃어도 우린 여기서 계속 적기를 휘날릴 것이다.
  • 인물설명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어떻 방법으로든 양립할 수 없다는 주장이 존재합니다. 노동자는 그의 노동에 대한 보상을 받는 동시에 정부를 위해 투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럴드 윌슨은 그 주장이 틀렸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말것입니다. 그의 사회노동당에서의 지도력이 여기에 달려있습니다.

    전쟁 중에는 군소 민병대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윌슨은 자신의 나라가 무너져내리는 동안 철저하게 무력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또 자신이 가입한 노동당이 지하로 쫒겨나는 것을 목도하고, 그와 함께 한때 자신이 가졌던 연대관계가 밝혀지는 동안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씩, 오타와에 망명중인 지도부에 대한 지지를 천명하고 심지어 지하의 노동당이 그 실패로 유명한 런던봉기에 함께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손으로 일을 쥐기 시작고, 마침내 빌 알렉산더가 러시아에서의 망명을 끝내고 돌아올 때에 맞춰 협력정부 당국의 잔혹한 탄압에 맞서 자신의 지도력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냉골 지하실에서 두 사람은 은밀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한 쪽은 진압 이후에도 여전히 가장 큰 좌파 무장조직의 지도자로서, 새로이 발견된 절충안의 가능성에 고무되었고, 옥스포드 학사이자 행정가인 다른 쪽은 그저 잉글랜드가 해방되는 것을 지켜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대담은 윌슨에 대한 중요한 무언가를 시사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처음부터 빌 알렉산더에게 좌익 저항군의 지도권을 넘겨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래서인지, 사회노동당 선거 캠페인의 선봉에 설 후보자를 선택할 때 그보다 더 적합한 이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일 지도 모릅니다. 이제 해럴드 윌슨은 사회민주당, 공산당, 그보다 더 많은 정당들과 경쟁하면서 마침내 전 세계가 주목할만한 일을 해낼 기회를 얻었습니다.

  • 내각
    집권 1기
    • 레그 버치 정부수반
    • 피터 쇼어 외무장관
    • 알프레드 로벤스 재무장관
    • 빌 알렉산더 내무장관

    집권 2기
    • 이가엘 글뤽슈타인 정부수반
    • 피터 쇼어 외무장관
    • 알프레드 로벤스 재무장관
    • 오르데 윈게이트 내무장관

노동당 개혁파 소속으로 사회주의 성향. 경제도 대처 다음으로 잘 살리고 영국을 복지국가로 개혁한다. 전용 시스템으로 사회노동당의 민주화, 온건파와 강경파의 힘싸움이 있다.
통일시 음악은 적기가. 2019영국 노동당 컨벤션에서 연주된 버전이다.#

  • 1기 중점
    • 정치 - 대중들을 연합시키고 국가민주연맹을 비판해 지지율을 올린다. 그러나 중점이 되는 사안은 당 내의 갈등이다. 이를 위해 온건한 노조사민주의를 끌어들이고 적, 대의, 계획을 확실히 한 후 준비를 통해 레그 버치를 당 내에서 제명하게 된다. 그러나 강경파의 영향력이 강할 시 해럴드 윌슨이 제명당하고 부하린주의자인 레그 버치가 집권한다.
    • 외교 - 사노당의 잉글랜드는 예전의 제국주의적인 대영제국이 아닌 잉글랜드 연방이라는 것을 세계에 알린다. 또한 민주주의 국가와 우호적 관계를 구축한다. 그 후로는 엘리자베스 2세의 처우를 정하고[11] 다시 세계에 대사관을 구축한다.
    • 경제 - 윌슨의 경제 재건은 천연자원과 소비재 둘 중 하나를 중점으로 한다. 소비재를 중점으로 할 시에는 공장을 건설하고 석탄을 광범위하게 공급하며 대량 생산을 장려해 OFN에 수출한다. 천연자원을 중점으로 할 시에는 석탄을 위한 뉴딜철강산업 확장을 진행한다. 또한 천연자원 추출 기술을 발전시키고 OFN에 수출한다.사실 버그가 있어서 둘 다 찍을 수 있다 또한 노동자 연준을 유지하고 농장보조금이나 어업 지원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 동맹 - OFN과의 외교 관계를 위해 캐나다와 관계를 개선하고 영국에 해군기지와 공군기지를 건설한다. 또한 태평양 국가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세인트헬레나 어센션 트리스탄다쿠냐 영유권 주장을 포기한다. 그리고 국제 사회주의 국가들과 관계를 개선한다.
    • 국가 - '귀족원법'을 제정해 귀족원을 개혁하고 동성애를 합법화한다. 그 후에는 온건한 버전인 '여성연금법'과 좀 더 강경한 버전인 '평등법'을 제정한 후 교회에 대한 정책을 정한다(강경파는 국가 무신론, 개혁파는 세속주의). 그 후에는 카운티 제도를 고치고 '평등투표법'을 제정해서 공정한 투표를 보장한다.


  • 2기 중점
    • 사회 - 제도, 사회, 당의 문제점을 수리하고 '친족등용금지법'을 등용해 행정을 개선하고 부패와 싸운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법'을 통해 민주주의 유지를 위해 힘쓴다. 그 후에는 의회와 당을 청소하고 사회주의적인 교육을 하도록 '사회주의적 교육법'을 통과시킨다.
    • 복지 - 사회노동당 경제 정책의 중점은 베버리지 보고서에 언급된 다섯 가지 문제점[12]이다. 빈곤 해결을 위해서 푸드 스탬프, 신혼 지원금, 건물 수리비등 정책을 진행하고 실업급여를 높이며 '토지재분배법'을 진행해서 토지개혁을 진행한다. 질병 해결을 위해 '보편건강관리법'을 제정해서 보편적 의료보험을 제정한다. 무식함을 고치기 위해서 학교에 지원금을 지급하고 '기회균등법'을 제정해 고등교육까지 지원하게 된다. 내전으로 생긴 불결한 슬럼 해결과 주택 위기의 해결을 위해 '국민주택법'을 제정한다. 게으름을 개선하기 위해 직업을 공급하고 최저임금을 개선한다. 마지막으로 건강과 필요 부서를 창설한다.
    • 첩보 - MI6의 수장인 킴 필비에 관한 문제이다. 개혁파는 이에 킴 필비를 고립시키고 MI6을 휩쓸어 버리려고 하지만 강경파는 우정을 쌓고 '국가보안법'을 통해 MI6MI5의 권한을 광범위하게 확대시킨다.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인해 노동당이 탄압받고, 그로 인해 공산당의 영향력이 커진 데다가 노동당이 전체적으로 좌경화 된 바람에 윌슨도 현실의 사민주의 스탠스가 아닌 혁명전선 서브이념을 가지게 되었다.


2.2.2. 레그 버치[편집]


  • 집권이념: 부하린주의(공산주의, 사회노동당-폴릿파)
  • 영국 통일 노래
    이것은 최후의 투쟁이니,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키자. 인터내셔널 노동자 계급은 인류가 될 ㄱ-
  • 인물설명

    테러리스트, 군인, 죽음을 각오한 사람들로 가득한 조직에서 엔지니어가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항군의 모든 사람들이 레그 버치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본래 런던 봉기에서 간신히 화를 면한 공산당 중간 간부였던 그는 빌 알렉산더 같은 사람들이 해외로 망명하는 와중에도 운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58년, 붉은 장군이 돌아왔을 때 저항군 좌익 진영에 합류한 버치는 비밀리에 활동중이던 조직 내 첩자들의 명단을 제공하면서 스스로의 유용성을 증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힘, 정보력입니다.

    잉글랜드에서 레그 버치의 영향력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습니다. 그는 협력정부 정보기관부터 전국의 노동조합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내전에서 저항군이 승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한편 이후 만들어진 사회노동당은 그가 보기에 너무 온건하고, 수정주의적이며 노동귀족으로의 타락에 항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훌륭한 정원사가 잡초를 정리하는 것처럼, 잡초를 뽑았습니다. 버치 의장 치하의 사회노동당은 더 급진적 노선으로 개선되었고, 이념적 순수성과 복수심으로 군주주의자, 협력론자, 수정주의자들을 분쇄했습니다. 잉글랜드가 선동적이고 강한 투쟁심을 가진 국가로 요새화되는 동안, 또 혁명의 기치가 더 높이 펄럭이는 동안 버치 의장은 잉글랜드를 미래로 인도하고, 게르마니아의 파시스트 개들이 섬에 발을 내딛는 것을 막고, 조국을 최악의 적인 잉글랜드 그 자신으로부터 보호할 것입니다.


노동당 강경파 소속으로 부하린주의(공산주의) 성향.

현실에서는 영국 공산당의 간부였던 인물. 도구 제작자 출신으로 연합 공학 노조(Amalgamated Engineering Union, AEU)와 영국 공산당의 일원이었다. 중국과 알바니아에 우호적인 마오주의자였다고. 1966년 AEU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위원장 자리를 노렸지만 실패했으며 비슷한 시기 당과의 노선 충돌[13]로 영국 공산당을 떠나 영국 공산당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창당했다.

버치는 노조를 통해 저항군의 첩보망을 담당하며, 다른 저항군들도 광적인 공산주의자인 버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두려워 한다. 버치가 집권한다면 윌슨보다 경제 성장은 높지만 감히 버치의 공산주의 이상에 동의하지 않는 자들을 마구 숙청한다. TT 패치 시점에서 윌슨 1기 중점중 영향력 싸움에서 승리하면 집권은 가능하나 컨텐츠는 없다.

2.2.3. 조지 젤리코[편집]


  • 집권이념: 보수민주주의(국가민주연맹-민주파)
  • 영국 통일 노래
  • 인물설명

    조지 젤리코는 군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지중해에서 이탈리아군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이 코만도는 근래 들어 사뭇 달라 보입니다. 바다사자 작전 초반부에 포로로 잡혀버린 그는 조지 6세에 대한 충성심을 기꺼이 버리는 척 했고, 외무부의 존중받는 공무원 신분으로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유틀란트 사령부 제독의 아들은 결코 완전히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젤리코가 외무부에 있을 때 클로드 오친렉의 요원들이 그를 비밀리에 접선했고 그는 재빨리 OFN과 여왕 폐하의 충성스러운 저항군 사이의 주요한 연락책이 되었습니다. 잉글랜드 내전에서 저항군이 승리한 후, 오친렉은 자신의 노령 문제에 직면했고 새로운 문민정부의 지도력을 위해 군사적 선례를 만드는 것을 꺼렸습니다. 따라서 그는 20년 만의 민주선거에서 그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국가민주동맹의 당수로 지목했습니다.

    여왕, 나라, 당에 헌신한 남자, 젤리코는 잉글랜드를 이전의 영광과 비슷한 것으로 이끌고자 하지만, 그가 이 과업을 미국 친구들을 만족 시켜주는 동안 달성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는 서로 다른 출신에도 불구하고 이넉 파월과 노먼 세인트 존스티바스로부터 총리직을 유지할 만큼의 존경을 받지만, 국가민주동맹을 그 자신의 정당으로 만들고 그에게 주어진 오친렉의 신뢰를 벌 수 있을지 두고 봐야 알 수 있는 일입니다.

  • 내각
    • 데이비드 에클스 정부수반
    • 노먼 세인트 존 스테바스 외무장관
    • 설리 윌리엄스 재무장관
    • 에녹 파월 내무장관

국가민주연맹 소속으로 보수민주주의 성향. 제1대 젤리코 백작 존 젤리코의 아들로 제2대 젤리코 백작이다. 현실에서는 좀 다채로운 경력을 지녔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코만도 장교로 복무했는데 부대를 이끌고 크레타의 독일군 비행장에 잠입, 거기 있던 폭격기 20여대를 죄다 폭탄으로 날려버리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전후에는 잠깐 외교관을 하다 영국으로 돌아와 상원 의원이 되었다. 에드워드 히스 정권에서는 국새상서[14]로 있었는데 1973년 매춘부 스캔들로 인해 사퇴했다.[15] 이후 민간 기업에서 10년 정도 일하다가 다시 공직으로 돌아왔다.

  • 1기 중점 - 먼저 엘리자베스 2세를 불러오는 것부터 시작한다.
    • 외교 - 지중해의 이베리아와 이탈리아, 대서양권의 자유 국가 연합, 동아시아의 대동아공영권 등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국제적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마지막으로 자신을 국가로 인정해주는 국가에 대사급 외교 관계를 맺게 된다.
    • 정치 - 자유파한 신휘그파와 권위적인 애국파를 이용해 중도층과 협력정부 잔존층을 흡수하고 두 계파와 타혐한다. 또한 당의 통합을 강조시키고 공동의 적인 사회노동당을 비난해서 당을 유지한다.
    • 경제 - 젤리코의 경제 재건은 빈민, 실업자, 무역에 중점을 두고 있다. 빈민 해결 루트에서는 사회 프로그램을 증진하고 주택의 가격을 낮춘 후 '주택법'을 제정해 주택 공급을 늘린다. 실업자 해결 루트에선 소외된 북부 잉글랜드에 일자리를 늘리고 거대 기업가들과 협상한 후 외국인 노동자와 국내 노동자간의 우선 순위를 정한다. 무역 면에서는 관세를 낮추고 OFN, 유럽과의 무역을 늘린다.
    • 국가 - 영국의 카운티 제도를 복원하고[16] '행정구역법'을 제정한다. 또한 '귀족법'을 제정해 귀족원을 개혁하고, 교육을 개혁하며[17] '국가교육법'을 제정한다.
    • 동맹 - OFN과의 외교 관계를 위해 캐나다에 왕실 방문을 진행하고 영국에 해군기지와 공군기지를 건설한다. 또한 옛 식민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세인트헬레나 어센션 트리스탄다쿠냐 영유권 주장을 포기한다.

  • 2기 중점
    • 사회 - 노동, 사회, 국가를 다루는 루트가 있다. 노동 면에서는 온건 노조와 협상하고 노동법을 확대해 온건 좌파로부터 지지를 끌어낸다. 사회적으로는 휘그파와 애국파의 영향력을 조절하고 '아동과 아내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약자들을 보호한다. 만약 휘그파의 영향력이 30%를 넘는다면 '성범죄법'을 제정해 LGBT를 합법화할 수 있다. 국가적으로는 이민 문제를 다뤄야 하는데 자유파의 지지를 받는 이민 확대를 하거나 애국파의 의견을 따른 '국경법'을 제정해 이민을 제한할 수 있다.
    • 경제 - 국가민주연맹 경제 정책의 중점은 '신 사회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젊은이들의 창업과 함께 기업 보조금을 주고, 의사들의 임금을 늘리고, '감당할 수 있는 교육을 위한 법률'을 제정해 교육을 지원한다. 마지막으로는 현실에서도 유명한 NHS를 만든다. 그 외에는 쓸모없는 세금을 줄이고 소득세를 높여 부자증세를 감행한다.
    • 문제 - 레그 버치등 극좌파시즘적 극우파를 때려잡고 '민주주의의 유지를 위한 법률'을 제정해 파시즘을 분쇄한다. 그리고 대규모 반부패 운동을 펼치고 '수사법'을 제정해 효과적으로 부패를 때려잡는다.

영국의 전통적인 온건보수주의, 예를 들어 일국 보수주의등에 자유주의적 휘그파, 즉 지금의 자유당까지 더해져서 타국의 보수주의보다 상당히 자유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2.2.4. 데이비드 스털링[편집]



행동파 소속으로 전제주의 성향.

실제 SAS부대의 창설자였던 스털링은 이 게임내에서도 누구보다 먼저 저항군으로 활동했었지만 계속해서 누가 도망치거나 배신하는 등의 일을 겪으면서 그야말로 광신적인 반독과 편집증에 시달린다. 통일 이후에는 자신에 뜻에 반하는 이들을 모두 친독주의자로 몰아버리고 학살을 하려한다. 실제로도 통일브금에서는 경쾌한 음악과 함께 총의 난사소리가 들린다.

체스터턴과 같이 TT패치 이후로 집권이 가능해졌다. 똑같은 방식으로 내전을 질질 끌며 황폐도를 올려 지지도를 올리게 된다.

2.3. 스코틀랜드 공화국[편집]


스코틀랜드 공화국은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자들과 영국군 잔당이 군주정의 폐지를 독일인들을 몰아낼 위장막으로 이용했을 때 생겨났습니다. 그 이후로 20년이 지나, 스코틀랜드는 스코틀랜드 민족주의, 잉글랜드 난민과 정치계에 항상 있는 군대의 영향력 등의 문제와 씨름하는 상당히 안정하지만 편집증적인 공화국으로 지속되어 왔습니다. 영국 제도가 불안정으로 무너지자, 스코틀랜드의 결정은 신질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 확실합니다.


스코틀랜드 공화국

브리튼의 가장 암울한 시기에 300년 동안 지속되었던 빛이 마침내 꺼졌습니다. 그 자리에 300년 동안 빛을 보지 못한 새로운 무언가에 불이 붙었고, 스코틀랜드는 51 하이랜더 사단의 유명한 장군인 더글라스 윔벌리와, 스코틀랜드 국민당으로 알려진 소규모 민족주의 정당의 창시자인 존 맥코믹에 의해 절박하게 형성되었습니다. 침공 후 계속되는 혼란 속에서 스코틀랜드는 독일군이 지원하는 정권에서 도망치려는 잉글랜드 난민들로 넘쳐났습니다. 스코틀랜드 국민과 SNP는 그들을 300년 동안 자신들을 지배한 압제자로 보고 불신하며, 많은 사람들은 이 난민들 중 일부가 협력자들이 보낸 대리인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보여주듯이 이러한 두려움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1962년 스코틀랜드 공화국은 건국자이자 대통령인 존 맥코믹이 이끄는데, 애칭으로 "왕"으로 알려져 있으며 옛 스코틀랜드 왕에 비유됩니다. 그의 제자인 로버트 매킨타이어는 총리를 지냈을 뿐만 아니라 SNP의 당원을 역임했습니다. 그러나 영국 제도의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 중 하나에서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은 아닙니다. 맥코믹은 점차 쇠약해지며, 건강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19년 동안 나라를 이끈 그의 죽음은 극적인 결과를 남길 수 있습니다. 의회가 법안 및 기타 안건을 논의함에 따라 많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그의 사후 국가가 마비된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러나 일부 반대자는 그의 끊임없는 통치로 인해 맥코믹의 별명을 그를 유럽의 독재자에 비유하여 사용했습니다.

지난 19년 동안 SNP의 지배로 인해 일당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대표자를 모으기 위해 캠페인을 벌이 두 개의 다른 정당이 있습니다. 이 둘중 하나로 독립노동당이 있습니다. 영국 몰락의 혼란과 불확실성 속에서 노동당은 분열과 점진적인 몰락에 직면했습니다. 많은 회원들이 스코틀랜드로 도피하면서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어 구금되었습니다. 노동당의 스코틀랜드 지부는 이 새로운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혁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통해 독립노동당이 창당됐지만 SNP의 폭발적인 인기로 인해 쇠퇴하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한때 해산될거같이 보였습니다 SNP의 전 의원인 윌리암 울프가 합류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그들을 개혁할 때까지 말이죠.

셋 중 작은 정당인 프리슬라 버컨이 이끄는 연합당은 SNP와 ILP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거물에 비하면 실제 경쟁자라기보다 우둔한 정당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버컨과 그녀의 정당는 미래에 대해 희망적입니다. 버컨 자신은 스코틀랜드에 도착하기 전에 보수당의 전 당원이었습니다. 불가사의한 후원자로부터 많은 지원와 자금이 도착한 후에 연합당이 결성되었습니다. SNP와 ILP 모두에게 비웃음거리로 여겨지는 UP은 투표소에 꽤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진 헌신적인 의원들로 가득 찬 정당이며, 그 당원은 서서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요소가 작동하고 있으며 이는 스코틀랜드에 영구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 인물 중 하나는 스코틀랜드군의 사실상 지도자인 더글러스 윔벌리 장군입니다. 그의 군인과 스코틀랜드의 많은 대학생들에게 사랑받는 그는 그가 좋아하는 많은 부분에 대한 헌신과 자부심을 되살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현 공화국의 다른 창시자 중 한 명인 그는 꽤 대중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와 조언자들은 윔벌리가 편집증적인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시민들에게는 모든 것이 괜찮아 보일지 모르지만, 군대는 항상 경계 상태에 있습니다. 협력자들이 국경에 있는 한, 공격의 위협은 계속됩니다. 이 이상은 군대에 심어져 있으며, 또한 이것은 장군과 제독이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윔벌리는 똑똑한 사람이며 스코틀랜드의 독립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지켜내라!


짧게 플레이 가능
  • 집권이념: 자유민주주의(스코틀랜드 국민당)
  • 경제: 자유시장 자본주의/미국 경제권 소속국
  • 내각
    • 로버트 맥킨타이어 지도자
      인물설명

      비전 있는 사람들은 종종 무시되지만 그들의 비전은 때때로 보상을 받습니다. 로버트 매킨타이어가 그랬습니다

      에든버러 대학의 의대생이었던 로버트는 처음에 노동당에 끌렸고 1936년에 당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점점 더 조직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 1940년 스코틀랜드 국민당을 지지하며 당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빠르게 지위가 상승하여 총무가 된 다음 장관의 비서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영국 전역의 여러 병원에서 공중보건 분야의 개업의로 활동을 계속했으며, 전쟁 중 보궐선거에서 첫 SNP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 헌법 대회가 영국으로부터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선언한 후 독립 스코틀랜드의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보상을 받을 때였습니다. 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정치인이자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해 보다 온건한 존 맥코믹과 종종 맞붙었던 사람인 맥킨타이어는 스코틀랜드 수상을 위한 명백한 선택이자 격동의 시기에서 공식적으로 스코틀랜드를 이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독립 초기 몇 년 동안 상당히 성공적으로 그 일을 수행했습니다.

      안팎에서 젊은 국가를 괴롭히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매킨타이어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스코틀랜드에 대한 확고한 약속은 학생 시절부터 흔들리지 않고 항상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이 시대를 헤쳐나가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 아서 도날드슨 정부수반(자유민주주의, 조용한 일꾼)
      • 이안 맥코믹 외무장관(자유민주주의, 정치적 후임)
      • 조지 레슬리 재무장관(자유민주주의, 개혁가)
      • 지미 할리데이 내무장관(자유민주주의, 겸허한 교육자)
  • 국가 정신
    • 북쪽의 빛
    스코틀랜드는 2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의 붕괴와 함께 오랫동안 원하고 힘들게 얻은 독립을 얻었습니다. 영국인은 독일의 멍에 아래에 있고 웨일스는 부패한 정치 기계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국민은 자신이 진정으로 자신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소수의 선별된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우리 국민은 우리나라의 존재 자체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외로운 등대로서의 위상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로움은 또한 이 민주주의를 내부와 외부의 공격에 취약하게 만듭니다...
    안정도: +10%
    • 위험한 방아쇠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면, 스코틀랜드는 어두운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군대의 영국 유산은 언뜻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훈족의 손에 패배한 기억에 괴로워하는 군대는 편집증에 사로잡혀 독일의 침공을 두려워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야전 원수 더글러스 윔벌리의 격려와 교사 같은 국가 방위에는 유용하지만 때로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군대가 개혁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군대가 즉시 스코틀랜드를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고 능력이 있다는 애국자의 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은 독일 침공의 불길 속에서 탄생했지만, 군대는 스코틀랜드의 자유가 다른 나라에 의해 절대 파괴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3
    항복 한계치: +15%
    전쟁 지지도: -10%
    사단의 핵심 영토 방어력: +15%
    • 데리-스캐퍼 조약
    스코틀랜드가 독립했을 때 우리는 우리 나라가 남쪽에 있는 독일의 잉글랜드인 꼭두각시에게 끊임없는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북부 잉글랜드의 산맥은 육상전에서 우리에게 이점을 제공할 수 있지만 바다는 새로운 독일 거대 산업에 의해 지배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얼스터의 아일랜드 수비대와의 거래가 성사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배를 사고 그들과 거래를 하여 우리의 방위를 위한 선박의 지속적인 흐름을 제공할 것입니다. 이것이 매우 효과적이었으며 우리 해군은 영국 제도 중 가장 큰 규모지만 그로 인해 국가 예산이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스캐퍼플로 해군 기지의 유지와 아일랜드 정부에 지불하는 데 사용되는 GDP 액수는 상당히 큰 편입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독립을 위한 일입니다.
    건설 속도: -5%
    조선소 생산량: +15%
    기타 예산 비용(1조달러 단위): +0.20
    • 잉글랜드인 소수집단
    독일의 침공과 그에 따른 영국의 붕괴 여파로, 잉글랜인들은 스코틀랜드 공화국 국경과 북쪽으로 달아났습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스코틀랜드가 어떤 식으로든 영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근왕당이나 HMMLR 파벌에 맹세함으로써 말입니다.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가난합니다. 이것은 물론 급진화로 매우 쉽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스코틀랜드가 불안정화를 피하거나 스스로를 스코틀랜드인이 아니라 영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한 쿠데타를 피하려면 이러한 영국인과 충성파를 처리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46
    인구 징집율: -26%
    안정도: -24%
    전쟁 지지도: -19%
    공장 생산량: -14%
  • 플레이 요소
    • 유럽의 마지막 자유민주국가 스코틀랜드의 미래를 결정하십시오.
    • 피해망상 시스템을 통해 스코틀랜드군의 균형을 맞추십시오.
    • 브리튼 제도를 다시 통일하고 잉글랜드를 부역자들로부터 구하십시오.
  • 지휘관
  • 제독
  • 멸망 문구

    에든버러에서 백파이프가 더이상 노래하지 않습니다.

  • 주요 도시
    • 에든버러
    중세 이후 스코틀랜드의 수도이자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에든버러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시대부터 스코틀랜드 문화와 철학의 중심지였습니다. 잉글랜드가 파시즘에 함락되고 뒤이어 스코틀랜드 독립이 선언된 것은 에든버러의 정치적 중요성에 뜻하지 않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때 "천재의 온상"으로 묘사되었던 이곳은 이제 구 영국에서 자유주의적 가치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 글래스고
    에든버러가 스코틀랜드의 정치 수도라면 글래스고는 경제적 수도입니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산업화된 도시인 이곳은 해양 산업에서 화학 공학에 이르는 다양한 산업의 중심지입니다. 글래스고의 대다수는 노동계급이며 스코틀랜드 내에서 빈곤, 과밀, 급진적 정치체의 중심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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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스코틀랜드여 영원하라】

태초부터, 스코틀랜드는 자유를 위해 싸워왔습니다. 로마인에 맞서. 바이킹에 맞서. 믿을 수 없는 앨비언에 맞서. 1707년 연합법으로 스코틀랜드는 소중히 여기던 자유를 빼앗기고 잉글랜드의 연합왕국을 구성하는 일부분으로 전락했습니다. 이후 몇 세기 동안 많은 이들이 알바의 주권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1943년, 다시 한번 에딘버러에 성 앤드루기만이 휘날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스코틀랜드인의 투쟁 덕분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이 독일에 손에 파괴되며 벌어진 혼돈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몇십 년 동안 스코틀랜드는 폭군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존 맥코믹 대통령과 매킨타이어 총리는 20년 전 독립을 선언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 국가를 다스렸습니다. 여기에는 명목상으로는 충성스러운 더글러스 윔벌리가 지배하는 신생 스코틀랜드군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스코틀랜드 국민당을 이끄는 그는 스코틀랜드 민중의 정신과 번영을 새롭게 하기 위해 많은 일을 했으며 독립국의 원칙과 독일과 협력할 필요의 균형을 조심스럽게 맞췄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맥코믹은 늙고 지쳤습니다. 많은 이들은 이 위대한 정치인이 마침내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합니다. 거기다가 남쪽의 억눌린 이웃 국가에서 계속 도망쳐오는 잉글랜드계 디아스포라는 끊임없이 증가하며 거리와 권력에 중심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국민당을 스코틀랜드를 놀라울 정도로 잘 단결시켜왔습니다. 하지만 브리튼 제도와 유럽의 세력균형이 계속 바뀌는 와중에 스코틀랜드의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스코틀랜드를 위해! 자유를 위해!


1945년 영국이 항복하자 스코틀랜드 국민당 창립자 존 맥코믹과 제51(하이랜드)사단 지휘관 더글러스 윔벌리의 주도 하에 세워진 국가. 게임 시스템 상의 지도자는 로버트 매킨타이어 총리다.

독립 이후 독일의 괴뢰국이 된 잉글랜드에서 난민들이 밀려들어왔다. 스코틀랜드인들의 반응은 "지난 시기에 상전 노릇하니 이제는 지들 힘들다고 기어들어 오려 하네 ㅗㅗ"로 요약된다. 잉글랜드 스파이로 의심하기도 하는 듯.

맥코믹 대통령의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더니 결국 게임이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버린다. SNP의 지배적 권위가 맥코믹의 존재 때문에 유지 가능했었기에 맥코믹의 죽음은 집권당이던 SNP의 힘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조기 선거를 통해 세 정당이 차기 여당 자리를 놓고 대결을 벌인다.
  • 스코틀랜드 국민당 (SNP): 독립의 주역들. 자유민주주의 성향이다.
  • 독립노동당 (ILP): 영국 멸망 이후 잉글랜드 노동당게슈타포에게 멸망한 뒤, 전직 스코틀랜드 국민당원 윌리엄 울프의 주도 하에 개혁에 들어간 노동당 스코틀랜드 지부. 진보적 민주주의(사회민주주의)다.
  • 연합주의자당 (UP): 전직 보수당프리슬라 버컨이 의문의 후원을 받아 세운 정당. 보수민주주의 성향이다. 영국계 피난민들을 지지기반으로 하기에 세 정당 중 세력이 기장 미약하며, 일반적으로 선거준비기간이 65일정도밖에 되지 않아 1962년 집권이 무척 어렵다.

스코틀랜드 군을 이끄는 총사령관 윔벌리 원수는 모든 군인과 대학생의 사랑을 받지만 독일과 잉글랜드가 언젠가는 스코틀랜드를 침공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이러한 점은 군부에 편집증적인 사상으로 남아서 수치로 표시되며, 군부 통제에 실패할 경우 윔벌리가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뒤엎어버린다.

잉글랜드 내전이 끝나고, 잉글랜드 내전이 독일 협력자들의 승리든 HMMLR의 승리든 그에 따라 앞으로 영국의 통일을 대비하면서 중점을 찍게 된다. 독일 협력자들의 승리인 경우 잉글랜드와의 일전을 준비하면서 이야기가 끝나게 된다. 저항군의 승리의 경우 스코틀랜드 국내를 마저 정리하고 영국과 우호관계를 맺으면서 끝나게 된다.[스포일러]

여담으로, 에든버러에 폴란드인 구역이 존재한다. 2차 대전동안 영국으로 피난온 폴란드인들이 스코틀랜드까지 피난와서 이곳에 정착한 모양새.

연합주의자당 히든루트
사실 연합주의자를 돕는 의문의 후원자는 저항군의 SAS 파벌이었다. 연합당도 이 사실을 모르며 UP 포커스에서 보수적 경제, 친잉글랜드 난민정책 외에도 스털링들의 HMMLR SAS 군국주의 파벌들이 정부의 잉글랜드 저항운동 지원이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은밀히 쿠데타를 준비하는 포커스가 존재한다. 잉글랜드 내전이 발발하면 이들은 기존 버컨 내각을 뒤엎고 쿠데타를 일으키는데, 여기서 루트가 2가지로 나뉘어진다
  • 쿠데타 성공: HMMLR 군국주의파인 스털링계의 SAS 소속 페디 메인이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독재(전제주의,HMMLR-군국주의파) 정권을 세운다. '북풍 작전'을 실시하여 HMMLR 영국에 대한 인력, 장비, 자원병등을 보내는 등 잉글랜드 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이 가능해지며, 저항군이 승리하면 스코틀랜드 군정이라고 국명이 변경되며 통합을 준비하며 엔딩을 볼수있고, 저항군이 패배하면 전쟁 준비를 다시 하여서 국명을 영국으로 바꾸고[1] 잉글랜드를 침공하여 통일할수 있다. 다만 군정청, 웨일스 등을 건드리지 못하고 핵심 주가 설정되지 않은채 엔딩 슬라이드가 뜨는 등 약간 불완전하게 완성된 상황.
  • 쿠데타 실패: 쿠데타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얼마 가지않아 윔벌리 등이 주도하는 스코틀랜드군이 역습을 가하여 SAS를 축출하고 군사정권을 세운다. 의도하건 의도치 않았건 쿠데타의 책임이 있는 UP에 대해 대대적인 숙청과 통제를 실시하며, UP 계열이 정리되면 다시 민주주의 제도를 복원하고 선거를 재실시한다. 내전 도중 저항군이 승리할 경우에는 추가적으로 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자유선거[2]를 보장해주며, 협력정부가 승리할 경우에는 독일등의 위협이 남아있다는 판단하에 SNP를 지지하며 일당우위적 민주제를 만드려 한다. 선거재개, 민정이양 발표와 함께 북해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뜨면서 엔딩.


2.4. 아일랜드[편집]


제2차 세계 대전에 아일랜드가 뛰어든 것이 영토 통일은 보장해 주었지만 그에 따른 대가를 치뤄야만 했습니다.

1950년대 내내 아일랜드는 번창해 보이는 독일국과 더욱 가까워졌고 군대를 모델로, 회사를 그 수익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긴밀한 관계로 인해 침몰하는 배인 독일 경제에 아일랜드가 함께 끌려가 침몰해버렸습니다. 경제 붕괴 이후 양 쪽에서 극단주의가 대두되는 동안 에이먼 데 벌레라의 후임자인 산 레마스는 아일랜드의 민주주의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했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는 크게 희생되었습니다.

한편 닐 블레니가 이끄는 북아일랜드 주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고 하나의 실수가 민주주의의 관에 박을 마지막 못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일랜드 공화국

20세기는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암울한 시대를 열었고, 그들은 런던에서 그들의 대군주들에게 정복당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황과 그들의 완고함은 아일랜드인에게 다시 한 번 자신의 국가를 갖게 했고 한동안은 영국인과 그들의 이전 주인 사이에 평화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독일 제국이 공격했습니다. 바르샤바, 파리, 심지어 런던까지 통해 독일 군화가 진군했고, 피아너 팔과 아일랜드의 영웅이자 지도자이자 수상인 에이먼 데 벌레라는 한쪽 편을 들어야 할 선택지에 직면하였습니다. 파멸당할 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피를 통해 보장된 새로운 질서에서 공화국을 자리잡는 것을요.

드 벌레라 행정부는 에메랄드 섬의 유일한 부분인 영국의 통치하에 있는 북아일랜드로 알려진 지역을 독일의 도움으로 아일랜드의 침공을 승인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오랜 선거운동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캠페인을 바탕으로 피아너 팔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아일랜드 정치를 지배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유일한 여당이 되었습니다. 피너 게일은 포도나무에서 시들었고 사회주의당인 신 페인은 완전히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상황, 특히 독일이 지배하는 아인하이츠팍트에서 아일랜드가 회원국이 된 것에 만족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부 러시아 전쟁 당시 북부에서 독일 수비대가 철수한 후 북부 카운티에 대한 통제가 점점 어려워져 북부 카운티 장관으로 닐 블레니를 임명해야 했습니다. 정부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방법을 통해 말이죠. 그는 통제 하에 지역은 끓는 냄비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FF(피아너 팔)의 지배력은 50년대의 격동의 시간을 거치면서 약해졌고, 드 벌레라는 일반적인 아일랜드인에게 큰 사랑을 받았지만 작은 실수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쌓이기 시작하자 그의 통치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따라서 션 레마스가 드 벌레라가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대통령직을 맡을 것을 제안했을 때, 노인이 받아들이는 것은 사소한 문제였습니다. 그는 레마스에게 노동당과 연합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새로운 수상이 현 정부를 FF-노동당 연정으로 구성하고 데 발레라가 그것을 막을 힘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노년 혁명가에게 불쾌한 충격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 속에서 FF는 이전보다 훨씬 더 취약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61년 선거에서 실망스럽게도 가까스로 승리한 후, FF의 3개 파벌이 미래의 정당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드 벌레라 파인, 보수적인 노장의 지지자이자 레마스의 지지 기반. 앞서 언급한 닐 블레니의 강경파, 북쪽에서 열렬히 미워하는 가톨릭 우월주의자, 그리고 어색하게 이름이 붙여진 잭 린치의 리버럴입니다. 이념과 공통점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FF에서 가장 개혁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파벌들이 세속적인 정치를 놓고 흩어지는 동안, 대부분이 개신교였던 이전 영국 영토였던 북부 카운티의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습니다. 닐 블레니의 통치를 잘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으며 얼스터에서 데리까지 테러가 만연합니다. 3개의 파벌이 더블린의 코앞에서 계속해서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최근의 파벌은 IRA의 비밀 분리주의자 그룹인 아일랜드 시민 경비대입니다. 독일의 간섭에 반대하는 사무스 투메이가 이끄는 아일랜드 민족주의 단체와 사회주의 단체의 연합인 아일랜드 공화국군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명한 장로교 설교자인 이안 페이즐리가 이끄는 아일랜드와 독일의 통치에 동등하게 반대하는 세력인 얼스터 의용군이 있습니다.

1962년 아일랜드에는 불확실한 미래가 놓여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두 가지 비전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상 유지와 안정에 대한 피아너 팔의 비전 또는 피너 게일의 변화에 대한 비전입니다. 좋은 통치와 행운만이 제국의 이익에 의해 경제적으로 지배되고 내부적으로 정치적으로 찢긴 국가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세상은 이것을 가져올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에린이여 영원히!


짧게 플레이 가능
  • 유니티-팍트동맹국
  • 집권이념: 일당 우위 민주주의(권위민주주의, 피어너 팔-레마스 파)[18]
  • 경제: 자유시장 자본주의/그로스라움 소속 경제권
  • 내각
    • 션 프랜시스 레마스 지도자
      인물설명

      션 프랜시스 레마스가 아일랜드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절제된 표현입니다. 1916년 영국에 대항한 봉기 이후, 그는 국가의 안전하고 번영하는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참석했습니다. 그의 헌신에 대한 궁극적인 인정은 직책에서 은퇴한 티셔흐(Taoiseach, 총리) 에이먼 데 벌레라의 지지였습니다. 따라서 레마스는 아일랜드 정치의 최전선에 뛰어 들었지만 그 나라의 끔찍한 상태를 발견했습니다.

      집권 직후 그는 경제 붕괴, 북부 카운티의 반란, 불안정한 지위에 직면했습니다. 북아일랜드를 공격하는 동안 데 발레라가 독일군에 합류하도록 설득한 그의 역할에 대한 유산은 아일랜드가 베를린에 점점 더 의존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를 괴롭힙니다. 총리로 시간을 보낼 때마다 레마스는 자신의 행정부가 임박한 붕괴를 늦추는 것 이상은 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비관주의에도 불구하고 레마스는 아일랜드의 영토 보전을 확보하고 정치 시스템을 변경하지 않고 유지해 왔으며 그의 신용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레마스가 국가를 스스로 구할 수 없다면 그의 말없는 업적은 거의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이 직업의 난이도는 야당인 피네 게일의 세력에 비례하고 북부 카운티의 테러 공격 횟수에 비례하지만 불가능한 작업은 아닙니다. 레마스가 그것을 수행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면 레마스는 아일랜드 건국의 아버지의 신조에 설 것입니다. 그가 실패하면 그는 그 장의사가 될 것입니다.

      • 션 프랜시스 매슨티 정부수반(일당 우위 민주주의, 신뢰받는 오른팔)
    인물설명

    아일랜드 공화국의 타나이스테[1]

    인 션 매슨티는 젊은 공화국 역사의 모든 순간을 보았습니다. 그는 우체국에서 일하며 부활절 봉기에서 영국군과 싸웠습니다. 그는 초대 의회(Dáil)에 있었고 독립 전쟁에서 벨파스트에서 군대를 지휘했으며 아일랜드 내전에서 드 벌레라를 위해 싸웠습니다. 독립을 쟁취한 이후로 그는 피아너 팔에서 충실하게 봉사했으며 30년 동안 정부에서 충성스럽게 일했으며 당 회의에서 오래된 전설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수십 년이 지나면서 아일랜드가 발전하고 독일인이 오고 영국인이 가고 드 벌레라가 물러나고 레마스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이제 70대에 접어든 매슨티는 아일랜드 정부의 최전선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마침내 그가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TD 자리에서 내부 활동을 관찰하는 데 만족하게 될 때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 매슨티의 충성스러운 헌신은 그를 티나이스테 자신에게만 복종하는 아일랜드 전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위치로 상승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그의 가장 결정적 순간이였습니다.


    • 프랜시스 토마스 에이킨 외무장관(일당 우위 민주주의, 정직한 중재자)
    인물설명

    독립 전쟁과 남북 전쟁 모두에서 유명한 장군인 프랭크 에이킨은 오늘날 아일랜드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 중 하나입니다. 그는 피아너 팔의 부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했으며, 그 이후 반세기 동안 피아너 팔의 오른편에 자랑스럽게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그가 몇 년 전에 얻었던 바로 그 군사적 명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에이먼 데 벌레라는 국방부 장관을 선택할 때 그 역할을 채우기 위해 에이킨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운명적인 선택이 될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초기 아일랜드의 군사화에 대한 에이킨의 주장은 독일이 노크할 때 대비할 수 있도록 했고, 남겨진 빈약한 영국 수비대와 맞닥뜨렸을 때 얼스터로 휩쓸리는 것을 산들바람처럼 만들었습니다. 물론 그 대가는 제국이라는 악마와 악수하는 것이었다. 에이킨의 행동이 오늘날 볼 수 있는 독일의 영향력이 큰 상황으로 직접 이어졌지만 그는 히틀러의 팬이 아니며 레마스와 함께 아일랜드가 그녀의 나치 "동맹"으로부터 자유로운 미래를 계획하고 꿈꿉니다.


    • 잭 린치 재무장관(자유보수주의, 개혁가)
    인물설명

    아일랜드의 모든 사람들의 존경과 숭배를 받은 피아너 팔의 진보적인 발전기 잭 린치를 어떻게 설명하기 시작합니까? 처음에 그의 경력은 정치가 아니라 게일 축구와 헐링과 같은 게일 게임에서 시작하여 즉시 역대 최고의 선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의 스포츠 경력이 끝난 후 그의 정치 경력은 꽃을 피우고 곧 Dáil에 합류하여 39세의 당시 아일랜드 역사상 최연소 정부 장관이 되었습니다.

    이제 40대가 된 린치의 급격한 상승세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산업통상부 장관으로 승진하면서 그는 아일랜드의 경제 방향에 대한 폭넓은 통제권을 갖게 되었으며, 그는 자유 무역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좌파 노동당과 잘 협력할 계획입니다. 그의 솔직함과 비정상적으로 많은 활동은 그를 정직한 정치인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아마도 그러한 사업에서 진정으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당 보수주의자들은 대중적이고 노동 친화적이며 확실히 특이한 린치로 인해 티셔흐(Taoiseach)의 자리에서 할 일에 몸을 떨 수 있습니다.


    • 카헐 세마스 호히 내무장관(귀족적 보수주의, 고귀하고 실용적인)
    인물설명

    오늘날 정부의 모든 구성원 중에서 카헐 호히의 경력은 가장 짧고 아마도 가장 논란이 될 것입니다. 맹렬한 보수주의자이자 아일랜드의 독일과의 긴밀한 유대를 실질적으로 지지하는 호히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만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반대하는 사람들로부터 순수한 혐오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모헤어 수트를 입은 남자에게 중간이란 없습니다.

    짧은 의회 경력에도 불구하고 호히는 36세의 기록적인 나이에 션 레마스의 법무부 장관으로 선출되어 아일랜드의 내부 보안군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임명 후, 호히는 시위와 IRA 캠페인을 모두 진압하기 위해 새로 얻은 힘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호히는 야심 찬 사람이며 그의 야망은 현재 사무실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어느 날 그는 포퓰리즘 웅변가를 타고 피아너 팔의 정상에 올라간 다음 티셔흐의 자리까지 가는 상상을 합니다. 거기에서 호히의 특권은 아일랜드가 신질서에서 번영하기 위해서는 아일랜드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위치를 개척하는 것입니다.


  • 국가 정신
    • 피가 있을 것이다
    북부 자치주에서 닐 블레이니의 통치가 불과 6년 만에 폭발할 정도로 절정에 달해 보였던 상황을 안정시킨 반면, 북쪽에서는 섬뜩한 느낌이 듭니다. 북부의 주요 준군사집단 간의 싸움. 즉 IRA, 세오르 에이라, 그리고 얼스터 의용군은 최근까지도 긴장하고 있으며, 션 레마스는 아일랜드의 미래를 결정짓을 충돌을 예감하면서 얼스터에 구름 폭풍이 모여든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안정도: -11.30%
    • 거인의 모욕
    아일랜드의 짦은 역사에서 대부분은 피어너 팔은 아일랜드를 지배해왔고, 아일랜드의 하원에서 안정을 유지하는 다수당이었습니다. 50년대 내내 당 밖의 정치 상황이 폭력과 충돌로 바꼈음에도 불구하고, 데 벌레라는 리더로서의 엄격한 언론 통제와 중앙집권적 권력으로 자리를 유지해왔습니다. 하지만, 영원한것은 없으며 피너 게일은 과반수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여전히 제1당이지만, 그들의 권력이 밀려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일일 정치력 획득: -0.50
    안정도: -10.00%
    • 히틀러씨, 가질게 별로 없습니다.
    사람들은 아일랜드가 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쥐었다고 말하지만 아일랜드에선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자유 세계와 OFN은 팍트와 아무 관련이 없길 바라며, 그들에게 이 섬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독일이 경제를 결속시킨 것은 독일 경제 붕괴 이후 침체된 상태로 재해를 입증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악인 것은, 이런 상황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전쟁의 승리에 동참함으로써, 아일랜드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건설 속도: -10.00%
    생산 효율성 한도: -5.00%
    한때 효율적이었던 아일랜드 방위군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주로 쇠르너파 장교에 의해 수행된 20년 동안의 독일의 "자문", 실업 감소를 위한 도구로 징병을 사용하는 드 벌레라의 정책, 얼스터 점령으로 인해 생성된 자원의 막대한 고갈이라는 세가지 합작은 독일 정책의 복제품같은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

    "기형적으로 부풀어 오른", "정치가 침투한", "위험할 정도로 비효율적인" 상황은 확실히 실업률을 낮게 유지하고 독일인을 기쁘게 하지만 아일랜드 군대의 유감스러운 상태를 가장 잘 설명합니다. 그러나 언젠가 이것은 아일랜드의 급성 통증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육군 경험치 획득량: -50.0%
    사단 조직력: -7.5
    징병 가능 인구: 1.50%
    공중 우세: -10.00%
    사단 공격: -10.0%
    사단 방어: -10.0%
    부대를 훈련하거나, 해체하거나, 부대 탬플릿을 수정할 수 없습니다.
  • 지휘관
    • 칼 오설리반 원수, 3, 2/3/2/1
    • 팻 퀸란 장군, 3, 1/3/2/2
  • 제독
    • 토마스 멕케나, 1, 1/2/1/2
    인물설명
    출생: 1908, 코크, 아일랜드 공화국

    군 경력: 아일랜드 해군의 토마스 맥케나 중장은 영국 소유의 해운선에서 복무하면서 민간 부문에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1942년에 멕케나는 킬데얼의 캠프 커리에서 공부하여 대잠전, 지상전 및 주입식 교육 과정을 신속하게 완료했습니다. 그 후, 그는 아일랜드 방위군 장교, 지휘 및 참모 과정의 최고 수준의 역량에 대한 힘든 교육을 받았습니다.

    1946년에 새로 설립된 해군 지휘부는 국내 장교의 필요성을 인용하여 멕케나를 그가 충실하게 복무해 온 중장으로 영입했습니다.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가장 겸손한 해군 중 하나이며 영광스러운 해안 경비대에 불과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멕케나가 자부심, 명예, 존엄성을 가지고 임무를 수행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 플레이 요소
    • 최악의 경우를 피하거나 정계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모든 수를 써서 피어너 팔 내부 현안을 관리하십시오.
    • 예산과 투자자의 신뢰를 지키며 아일랜드를 빈곤에서 끌어내십시오.
    • 대중을 조종하고 정치적 스캔들의 흐름을 관리하십시오.
    • 북아일랜드라는 시한폭탄을 가능한 현명하게 다루십시오.
  • 주요도시
    • 더블린
    아일랜드의 다른 많은 도시와 달리 더블린은 아일랜드인이나 영국인에 의해 설립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10세기에 바이킹 약탈자들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1171년에 섬의 최초의 노르만인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1921년 아일랜드 독립이 달성될 때까지 이후 750년을 잉글랜드의 중심지로, 나중에는 영국인이 아일랜드를 통치했습니다. 아일랜드 공화국은 에메랄드 섬의 왕관에서 가장 큰 보석인 이 도시를 수도로 선택했습니다. 그로부터 40년 후, 이곳은 이제 (표면상) 통일된 섬의 수도가 되었으며, 종파적 문제로 목이 막힌 정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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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로의" 독재

션 레마스는 티샤흐의 공식 거주지가 없다는 것을 아일랜드 정치 전통의 가장 짜증나는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인하이츠팍트 회의에서 그의 유일한 독립 상대인 불가리아 군주조차도 궁전을 자랑할 수 있었지만 그는 더블린 아파트에 갇혀 있었습니다.

주거 상황에는 적어도 한 가지 이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의 아들 노엘이었습니다. 불쌍한 도적은 실제로 건물에 살았고 차르 보리스의 하인들과 거의 같은 일을 수행했습니다. 레마스가 집에 올 때마다 그는 저녁 식사가 제공되고 접시가 깨끗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식사는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카헐 호히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레마스는 그날 밤의 토론이 레마스의 수프와 크게 다르지 않기를 바랐지만, 북부 카운티 상황으로 방향을 틀면서 두 지역의 스튜 차이를 설명함으로써 자신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블레이니..." 레마스의 영어는 양조장 억양을 습득했습니다. "아니면 그와 그의... 어, 그들을 뭐라고 부르더라? 블레이니파, 그렇지." 맥주 한 모금이 티샤흐의 목구멍을 장식했습니다. "61년 이후에는 모든 것이 괜찮았지만 그는 그 빌어먹을 내각 직위를 고집해야 했습니다. 진보주의자들도 모든 것을 망치는 데 일조했습니다." 레마스의 비난하는 손가락이 막연하게 아들 쪽을 가리켰습니다. "노엘, 절대 잊지 마. 적에게 굴복하는 것은 실수야. 나는 그 골치 아픈 코스모폴리탄인 린치와 코리쉬가 자유당과 거래를 하도록 허용했고,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빌어먹을 법안을 통과시키고 싶을 때마다 뒤로 몸을 굽혀야 해."

호히는 그 과정에 있었습니다. 피너 게일의 상태에 대한 험담으로 끼어들었지만, 레마스가 다시 말하기 전까지 말을 꺼지지 못했습니다. "카헐 너도 알잖아, 넌 내 아들 같은 존재야. 여기 있는 이 아이를 빼고는 너... 내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너뿐이라고! 이 당, 아니, 이 나라를 구하려면 너에게 의지할거니까!" 그의 34세 아들이 "소년"으로 묘사된 것에 대해 중얼거리는 항의를 하는 동안 카헐 호히는 조용히 움츠러들었습니다. 노인이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았다면 말이죠.

아니면 그가 그랬을지도...


독립투사이자 대통령이던 에이먼 데 벌레라가 이끄는 국가. 지도자는 션 프란시스 레마스이다. 바다사자 작전 당시 나치 독일의 지원 아래 북아일랜드를 공격해서인지 팍트 소속이다.

2차 대전 이후 아일랜드의 경제에 독일 기업이 진출하면서 아일랜드를 종속화시켜버리자 불만이 높아졌고, 결정적으로 50년대의 독일 경제가 붕괴됨에 따라 데 벌레라의 권위가 무너졌고, 피아너 팔의 과반수가 무너지자 비정되던 후임자 숀 레마스가 벌레라를 명예직으로 밀어내고 실권을 잡은 상황이다.

정치 지형은 피아너 팔이 1당으로 독주중이지만 61년 선거에서 실망적인 결과가 나오자 션 레마스가 드 벌레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노동당(브랜던 코리시)와 연정을 한 상황. 62년 기준 아일랜드 데일(의회)는 191석 자리 중에서 FF-노동당 연합체가 107석을 차지하고 있다.[19] 피아너 팔 내부에서는 잭 린치를 중심으로 하는 리버럴파, 보수파인 드 벌레라파, 카헐 호히와 닐 블레이니등을 중심으로 하는 강경파로 나뉘어졌다. 그중 리버럴파와 노동당은 친노동자, 복지 성향의 좌파 연합체를 이루고, 드 벌레라 파와 강경파는 가톨릭 우선주의, 친독 성향의 우파 연합체로 활동한다. 피너 게일은 극초기 설정으로는 파시즘으로 흑화했다는 설정이였으나 현재는 자유민주주의 성향 야당으로 존재하며다만 특별히 언급되지 않는 상황. 현재 컨텐츠는 야당이 집권당으로 올라가는 컨텐츠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편 신 페인은 사회주의 문제 때문에 완전히 금지되었으며, 소수 정당으로 극우 정당인 화폐개혁당(올리버 J. 플레너건)등이 이벤트로 언급된다. 이 외의 과격파 성향 정치체 문제는 북아일랜드 문제와 함께 다루게 된다.

주어진 첫번째 포커스는 독일 내전 직전까지의 좌, 우파의 제안이 담긴 법안 처리가 주가 되며, 이를 통해 50년대의 경제 악몽에서 점차 벗어나며 국가가 안정화되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직후 일어난 독일 내전은 그로스라움 경제권이였던 아일랜드의 경제를 다시 나락으로 빠트리게 되고, 긴급 수혈을 한 이후 위기 상황에서의 의회 결집을 호소한 이후 내전 이후의 경제 대책을 선택할수 있다. 첫 번째로는 잭 린치등이 주장하여 수용한 OFN에 대한 접근, 두 번째로는 션 매슨티가 제안한 고립주의, 보호무역과 긴축정책, 세 번째로 노동당의 브랜던 코리시가 주장하는 하위계층에 대한 구호 프로그램을 통한 중하위 계층의 회생 세가지 정책 중 하나를 골라서 경제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특히하게 파시즘 정당의 지도자가 [편집됨] 으로 표시되어 있다. 해당 지도자를 방치하거나 통제하지 못할 시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2.5. 웨일스[편집]


웨일스

독일 무리가 잉글랜드 남부 해안에 상륙한 직후, 웨일스 민족주의자들은 서둘러 연합왕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이웃이 점령당하며 잃을 것이 틀림없는 자유를 최소한 일부라도 보존하려고 시도하려는 최후의 시도였습니다.

영국을 정복하며 그 정복하는 저항에 의해 충분히 약해진 독일 제국은 새로운 공화국의 독립을 받아들였지만 웨일스의 자유는 대가를 치루어야만 했습니다. 독일과 맺은 협정은웨일스 정부가 석탄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독일로 보내도록 강요했고, 콘월 수비대가 근접해 있기 때무에 이러한 수송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위협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남아있고,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웨일스의 독립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사운더스 루이스는 현재 이 짐을 짊어져야 하는 불운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의 대리인인 그윈포 에반스와 함께 공화국을 이끕니다. 그러나 그들의 민족주의블록은 거대하고 증가하는 분열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 문제를 방치하면정부는 단 한번의 실패만으로 붕괴될 수 있습니다. 두 주요 정당 사이에는 이미 양당의 좌파와 우파를 각각 대표하는 고흐 컴리와 플라이드 컴리 사이에 상당한 균열이 존재합니다. 또한 그들은 정부가 공화국을 멸망시킬 수 있다고 믿는 어떤 조치라도 취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는 자유 웨일즈군으로 알려진 연합 내의 더욱 위험한 문제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FWA의 연관성이 지휘관들이 기꺼이 인정하는 수준보다 휠씬 더 깊다고 의심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들의 지도자 줄리안 카요-에반스는 웨일스에서 가장 크고 가장 두려운 준군사 조직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점점 더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잉글랜드의 침해를 막으려고하고, 웨일즈 사람들과 그들 문화의 진정한 보호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노력은 물밑에서 서서히 나타나기 때문에, 연합주의자당이 웨일스 사람들으 그들의 이웃나라 품으로 다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기 때문에 헛수고를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존 모리스는 광범위한 정치적 동맹들과 함게 FWA로 인한 혼란을 극복하고 수년간의 독립이 웨일스에 끼친 영향을 되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것을 할 겁니다.

향후 몇 년 동안, 이 모든 파벌들은 변덕스러운정치 상황을 길들이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여당이 그들을 추락시킬 것이 분명한 위기를 서서히 타개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 과제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웨일스의 어느 누고도 영향을 받지 않고 남겨지지 않을 것이고 우리 나라의 삶은 영원히 바뀔 겁니다. 비록 이것이 더 나아질지 더 나빠질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웨일스!


짧게 플레이 가능

  • 집권이념: 국민보수주의(권위민주주의, 플라이드 컴리-민족주의자)
  • 경제: 자유시장 자본주의/그로스라움 소속국 경제권
  • 국가 정신
    • 웨일스 문화 혁명
    웨일스가 잉글랜드에 멸망한 이후 잉글랜드의 문화와 언어는 웨일스의 모든것을 위협해왔습니다. 우리의 매력없는 해방은 웨일스 민족에게 한때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것을 되찾을 기회를 주었습니다. 웨일스어는 다시 한번 비주류 민족주의 정당들의 모임을 넘어 고립된 마을에서까지 불려지고, 시인들과 작가들은 새롭고 독창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내며, 전 세계의 위대한 작품들이 웨일스어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한때는 죽었거나 죽어간다고 했던 드래곤이 이제는 새로운 삶을 향해 울부짖습니다!||
    매일 정치력 획득: +0.10
    • 자유 웨일스군
    어떤 이들에게는, 자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범위에서 활동하는 자유 웨일스군은 웨일스와 잉글랜드 모두에게 작은 문제가 아닌 준군사조직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최대 교역 상대국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긴장시키는 위험한 반영 집회와 행진을 넘어 웨일스와 국경에서 잉글랜드인들을 자주 공격해 왔습니다. 저들은 연줄이 있는 카요 에반슨을 국방장관으로 인정함으로써 분노를 가라앉히기를 바래왔지만,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육군 경험치 획득량: -10.0%
    사단 조직력: -5.0%
    • 풍요로운 지구
    웨일스는 양부터 곡물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것으로 대규모로 채굴되는 지하에 있는 거대한 석탄까지, 축복받은 땅입니다. 이러한 천연자원은 우리 경제학의 근간을 이루며 우리를 자원 기반의 수출 경제로 자리매김하게 합니다. 이 석탄 이윤은 현재 0.25B달러만큼의 웨일스 경제에 중요한 가치를 가져다 줍니다.
  • 플레이 요소
    • 나빠지는 정치적 상황을 통제하십시오.
    • 모습을 드러내는 석탄 위기의 공격을 견뎌내십시오.
  • 내각
    • 사인데르스 레위스 지도자
      인물설명

      함께 두면 어울리지 않을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점점 권위주의적으로 변해가는 국가에서 권력에 매달리는 극작가이자 시적인 정치인은 어떨까요? 이 모순적인 말에서 아이러니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어린 웨일스인 국가의 지도자 사인데르스 레위스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제 1차 세계 대전 때 벌어진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던 레위스는 스완지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웨일스 독립 문제는 이 웨일스인과 동료 몇 명이 훗날 플라이드 컴리라고 알려지게 될 민족주의 정당을 창설하게 만들었습니다. 초대 당 대표인 루이스는 자신이 재발명한 웨일스 민족주의에 대해 별로 큰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새 문학 작품을 발표할 때나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죠. 그렇지만 제 2차 세계 대전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플라이드 컴리가 '영국인이 아닌 웨일스 민족을 위해 일할 것' 을 촉구하자 독일인들은 웨일스 점령을 하지 않고 스코틀랜드 전역에 집중할 수 있는 편리한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리하여 웨일스는 독립을 얻어냈습니다. 독일인들의 편의만을 위해서 말입니다. 한편 플라이드 컴리는 이 새 국가의 여당으로 지명되어 하늘 높이 승천했습니다.

      그렇지만 사인데르스 레위스가 취임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 노인은 열정과 활력을 전부 잃고 시골로 내려가 문학 작품을 계속 쓰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레위스 파벌은 절박하게 권력에 매달릴 수 밖에 없습니다. 권력을 붙잡기 위해 점점 더 권위적인 수단이 쓰이고 있습니다. 레위스 파벌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할 수도 있습니다. 루이스의 고립이 만들어낸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수많은 파벌들이 나타났습니다.

      • 엠리스 토마스 정부수반 (사회민주주의, 실용적 정치가)[1]
      • 엠리스 로버츠 외무장관 (권위민주주의, 괜찮은 협상가)
      • 그윈포스 에반스 재무장관 (권위민주주의, 자원산업가)
      • 줄리안 카요-에반스 내무장관 (전제주의, 공포의 왕자)
  • 지휘관
    • 모건 르웰린 원수, 2, 2/2/1/2
    • 메레디스 토마스 원수, 1, 1/2/1/2
    • '조크' 루이스 장군, 3, 4/2/1/3
    • 피터 레이몬드 레우차스 장군, 2, 2/1/2/2
    • 존 체스턴 장군, 2, 2/2/2/1
    • 그로피 인킨 장군, 2, 2/1/2/2
    • 조지 테일러 장군, 2, 3/2/1/1
    • 줄리안-카요-에반스 장군, 1, 1/1/1/1
    • 데니스 코슬렛 장군, 1, 2/1/1/1
  • 제독
    • 스테판 비티 제독, 2, 1/1/1/1
    • 존 월리스 린톤 제독, 1, 1/1/1/1
  • 주요 도시
    • 카디프
    웨일즈의 남쪽에 있는 카디프는 수십 년 동안 도시가 충분히 번영했던 석탄 시장에 불과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존재는 독일군이 영국 해안에 상륙하면서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얼마 후 섬을 휩쓴 공포 속에서 오랫동안 죽은 것으로 여겨졌던 꿈, 독립 웨일스의 꿈이 선포되었습니다. 이 공화국의 내구성은 처음부터 의심스러웠지만 카디프는 앞으로 몇 년 동안 평화롭게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 멸망 문구

    The Dragon breathes its last.

    드래곤이 마지막 숨을 내뱉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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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리

제 2차 세계 대전의 잿 속에서 웨일스의 용이 일어났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독일 독수리가 승자가 되자 웨일스는 몇 세기만에 처음으로 자유가 되었습니다. 독일인들은 이웃 나라인 잉글랜드와 달리 웨일스 정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웨일스인들은 자신들이 완전 중립이라는데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중립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웨일스산 석탄은 이 나라의 주요 수출품이자 독일을 묶어놓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독일을 불구로 만든 50년대 경제 위기를 웨일스가 버텨낼 수 있던 것은 중립과 석탄 수출을 중심으로 한 산업 덕분이였습니다.

외부 영향력은 없지만 지난 15년 동안 웨일스 정계는 점점 더 양극화되었습니다. 독일 침공을 피해 도망쳐온 수많은 잉글랜드 난민들이 작지 않은 역할을 했습니다. 웨일스는 잉글랜드와 웨일스가 통일되었던 수간을 애정을 가지고 추억하는 이들과 웨일스는 웨일스로 남아야 한다고 믿는 이들로 분열되었습니다.

공화국 만세!


독일군이 브리튼 제도에 상륙하자마자 웨일스 민족주의자들이 독립을 선언하며 탄생한 국가. 독일은 잉글랜드 복속도 힘들었기에 웨일스에서 나는 석탄 일정량을 바치는 대가로 독립을 승인했다. 지도자는 사인데르스 레위스[20].

일단 플라이드 컴리는 좌우연정 상태지만 우익 민족주의자와 좌익 민족주의자 사이에 점차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야당 세력으로는 줄리안 카요 에반스가 이끄는 과격 민족주의 준군사조직 자유 웨일스군과 존 모리스가 이끄는 친영단체 연합주의자당(집권 이전까지는 일단 무소속)도 골칫거리.

교육 안건을 진행하게 되면 민족주의자들이 공식 언어 문제로[21] 논쟁이 곪아터지면서 연합주의자와 자유 웨일스군간의 시위 충돌이 벌어지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그렇게 교육 안건 아래 포커스를 가짜 트리로 통과하고 새로운 트리가 나타나는데, 광부들 사이에서 매장된 석탄이 고갈되어간다는 소식이 들리자, 정부가 이를 은폐하려 하는 과정이 드러나면서 연정이 붕괴되고 좌익 세력은 고흐 컴리로 독립하며, 플라이드 컴리는 반드시 실각하며 루이스 총리는 사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후계자를 선출한 과정에 따라 연방주의자(자유보수주의 - 보수민주주의), 사민주의(진보적 민주주의 - 사회민주주의, 고흐 컴리) 정권이 선택할수 있다. 앞서 말한 상황이 언급된 카이저라이히 갤러리의 리뷰 연방주의자 루트에서는 추가적으로 자유 웨일스군의 영향력에 따라 카요 에반스가 정부를 뒤엎을 수 있다.

2번째 정부는 전임 정부가 일으킨 경제 위기와 교육 안건을 재정비하는 포커스를 전부 처리하면 카요의 정부전복이 되지 않는 한[22] 영국과 평화통일을 할수 있는 옵션이 추가되는데, 연방주의당은 잉글랜드 왕국, 저항군의 잉글랜드계열 모두와 평화통일이 가능하며 고흐 컴리는 저항군의 잉글랜드 계열과 통일협상을 진행할수 있고, 협상 결과에 따라 잉글랜드에 통합되거나 전쟁이 일어날수 있다. 카요 에반스의 웨일스국 루트는 협상이 불가능. 웨일스가 만일 잉글랜드-웨일스 전쟁에서 승리할 시엔 '악마와 거래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 웨일스가 승리하였다는 충격적 국제 뉴스 이벤트가 출력되며, 사실상 전쟁 발발시 잉글랜드가 반드시 승리하도록 설계되었다.


3. 플레이 불가능 국가[편집]



3.1. 얼스터[편집]


플레이 불가

  • 유니티-팍트동맹국
  • 아일랜드 공화국분리독립국
  • 집권이념: 민간독재(전제주의, 북부 자치주 관리위원회)
  • 경제: 계획경제/그로스라움 소속 경제권
  • 내각
    • 닐 블레이니 지도자
    인물설명

    1922년 민족주의 운동이 절정에 달했을 때 태어난 닐 블레이니는 통일된 카톨릭 아일랜드의 이상을 발전시키는 데 일생을 바쳤습니다. 블레이니는 중위로서 또는 1948년 의회의 최연소 의원으로 얼스터의 들판에서 카톨릭 민족주의에 꾸준히 헌신했습니다. 그의 급진주의와 시골풍의 매너리즘은 그를 도시 유권자들에게 저주로 여겨졌고, 이는 티샤크가 되려는 그의 야망을 일단으로 중단시켰지만, 블레이니의 충성스러운 시골 추종자는 그를 "영원한 장관"으로 만들 만큼 충분한 정치적 영향력을 얻었습니다.

    한때 얼스터였던 사람들에게 불행히도 영원한 장관의 포트폴리오는 전 북아일랜드의 사실상의 총독이었던 "북부 카운티 장관"입니다. 이 지역을 더블린의 통제하에 두었던 화재로 인해 형성된 "북부 카운티 특별 구역"은 원래 이 지역을 섬의 나머지 부분과 일치시키는 임무를 맡은 임시 행정 단위였습니다. 그러나 경제 붕괴로 통합이 정체되고 안정을 보장한 독일군이 철수하면서 NCSZ는 시한폭탄이 되었습니다. 에이먼 데 벌레라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선택한 사람은 다름 아닌 닐 블레이니였습니다.

    북부 카운티 장관으로 취임한 직후 블레이니는 독일에서 배운 방법으로 노동조합 문제를 끝내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NCSZ는 블레이니가 얼스터 레지스탕스와 그들의 민간인 지지자들을 총알의 소나기로 질식시키는 데 사용한 다양한 준군사 민병대, 가르다 부대, 육군 부대의 연대 연합체이 되었습니다. 그의 공화당 기반에서 블레이니는 아일랜드 통일의 구세주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벨파스트에서의 그의 성공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높은 직위를 얻는 것에 대한 그의 관심을 되살렸습니다.


    • 에디 맥아티어 정부수반(전제주의, 조용한 일꾼)
    • 게리 피트 외무장관(사회민주주의, 정치적 임명)
    • 오스틴 커리 재무장관(보수민주주의, 정치적 임명)
    • 알버트 케네디 내무장관(전제주의, 공세적인 투사)
  • 국가 정신
    • 특이한 정치 기구
    북부 자치주 행정관인 닐 블레이니는 도네갈에서 자신이 이룬 위대한 업적을 재현하기 위해, 이번에는 얼스터에서 피아나 페일 정치 기구를 설립했습니다. 정확이 어떻게 한 것인지, 그가 명목상 대응하고 있는 더블린 정부에게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방법은 분명히 수상한 구석이 있지만, 그가 "법과 질서"를 유지함에 있어 불평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 모든 모서리마다 총을
    영국의 다른 지역과 다르게 계획된 유격 보조부대는 영국령 얼스터를 점령하기에는 더디고 우여곡절에 시달림을 강요하는 목표에 도달케 했습니다. 수십, 아니 수백 개의 치장물자 창고가 북부 자치주 전역에 설치되었으며, 시간이 흘러 "얼스터 지원군"이라는 방패막이 이름으로 알려진, 개신교 저항단체로 발전한 보조부대에게 충분한 무기를 지급하게 되었습니다.
  • 주요 도시
    • 벨파스트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지만 벨파스트는 17세기에 무역과 이민자의 홍수가 일어나기 전까지 거의 주목받지 못한 마을이었습니다. 19세기에 더욱 성장하여 아일랜드 산업의 심장이 되었지만 인구가 늘어나 가톨릭과 개신교 거주자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친영국 연합주의자들이 지배하는 도시였으며 남부의 독립 이후 영국령 북아일랜드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1940년대 독일이 영국을 휩쓸고 공화국이 섬 전체를 인수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벨파스트는 이제 사람들이 현재의 정치적 지위에 대해 매우 강하게 느끼는 자치 지대의 수도인 변두리에 앉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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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멸망하고 난 후 아일랜드북아일랜드 내 세운 자치 국가. 정식 명칭은 북부 카운티 특수 구역. CRF 패치 이전에는 친영파와의 협상을 세워 만든 국가였으나 CRF 패치 이후에는 정부수반이 아일랜드계로 바뀌었다. 지도자는 닐 블레이니.

영국이 몰락한 상황에서 브리튼 제도의 조선업에 높은 비중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스코틀랜드가 얼스터의 조선소에서 군함을 구입하거나, 웨일즈 또한 얼스터와 협상으로 함선을 구매하는 디시전 등이 존재한다.

3.2. 브리티셴 인젤른 군정청[편집]


플레이 불가

  • 유니티-팍트군정
  • 잉글랜드 왕국괴뢰국
  • 집권이념:군정 나치즘(국가사회주의,브리티셴 인셸른 군사행정부)
  • 경제: 군사 주도/그로스라움 소속 경제권
  • 국가 정신
    • 종이호랑이
    콘월에 주둔하는 독일군의 핵심은 전투태세가 완벽한 베테랑 병사들로, 독일 국방군이 배출한 가장 뛰어난 병사들 중 하나입니다. 수년간의 훈련과 전투로 연마되었고 필요하다면 지옥마저 공격할 수 있을겁니다. 그러나 나머지는 자녀들을 위해 안전한 자리를 원하는 게르마니아의 부유한 아들입니다. 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수비대의 전투 효율성에 어느 정도 편중성을 야기했습니다.
    사단 조직력: -10%
    사단 공격: +10%
    사단 방어: +10%
    일일 지휘력 획득: +0.10
    지휘력 증가 최대치: +20
    • 잊혀져가는 상급대장
    프란츠 할더는 그의 마지막 전쟁을 러시아의 차가운 평야에서 치르고자 했습니다. 대신 그는 지난 20년동안 영국 내의 옹졸한 공산주의자와 군주주의 방랑자를 억압했습니다. 사실, 프란츠 할더는 그의 말년을 평화롭게 보내고 싶어하지만, 이것은 그에게 당연하다고 보여지지는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단 조직력: -20%
    사단 회복률: -25%
  • 내각
    • 프란츠 할더 지도자
    인물설명

    프란츠 할더, 역사책에 영원히 기억되고 울려 퍼질 이름입니다. 소련과 폴란드를 모두 무너뜨린 것은 누구였습니까? 프란츠 할더였습니다. 유럽 ​​대륙, 프랑스와 영국의 쌍둥이 거인을 쓰러뜨린 것은 누구였습니까? OKH 참모장으로서 두 가지 작전을 모두 감독한 것은 프란츠 할더였으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무너뜨린 마스터 스트로크인 바다사자 작전의 직접적인 시행을 감독했습니다. 그것은 장교가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이었으며, 소규모 수비대와 협력 정부의 순응을 평화롭게 보장하는 것보다 영광스러운 경력을 끝내는 더 좋은 방법이 없었습니다. 명예로운 할더에게, 비록 그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면 히틀러가 그 제안을 제시했을 때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즐리의 무능함은 그를 해임해야 하는 결과를 낳고, 그를 뒤따른 총리의 하찮은 승계는 인구를 관리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이는 정부의 행동 뒤에 사실상의 힘이 필요한 사람이 프란츠 할더였음을 의미했습니. 그러나 1953년 러시아군이 침공했고, 잠시 동안 할더가 반쯤 은퇴한 상태에서 다시 동부 전선군을 지휘하기 위해 파견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마지막 승리이자 마지막 위대한 전투였을 것입니다. 그러자 공산주의자들이 런던에서 일어났습니다.

    마운트배튼이 상황을 반란이 일어날 수 있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은 가증스러운 일이었지만, 그가 영국 사회의 일부 바람직하지 않은 요소와 접촉했다는 소문은 그의 운명을 막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반란이 시작된 직후에 죽을 것이고, 앞으로 몇 주 동안 런던에서 블록별로 공산주의자들을 불태우는 것은 프란츠 할더에게 달려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기록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그는 히틀러에게 은퇴를 허용하도록 설득할 수 없었고, 지난 10년 동안 노장 장군은 콘월에서 하급 테러리스트와 런던에서 소위 말하는 동맹국의 어리석은 신음 소리를 다루며 앉아 있었습니다. 이제 프란츠 할더에게 남은 것은 잊혀지고 무너져가는 수비대와 과거 영광의 기억뿐입니다.


    • 프란츠 할더 정부수반(국가사회주의, 총사령관)
    • 에버하르트 킨첼 외무장관(국가사회주의, 꿍꿍이가 있는 모략가)
    • 루돌프 슈문트 재무장관(국가사회주의, 군수경제 기업가)
    • 프란츠 직스 내무장관(국가사회주의, 공포의 왕자)
  • 지휘관
    • 프란츠 할더 원수, 4, 4/3/5/3
    • 에버하르트 킨첼 장군, 3, 2/3/3/2
    • 막스 삭센하이머 장군, 3, 3/4/2/3
    • 루돌프 슈문트 장군, 1, 1/1/1/1
  • 멸망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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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멸망시킨 독일이 콘월에 세운 군정청. 총독은 프란츠 할더다. 게임 시스템 상으로는 잉글랜드의 종속국으로 여겨진다. 아프리카나 러시아와 달리 독일군들에게 꿀무지로 여겨진다. 히틀러 사후에 잉글랜드가 독립에 성공하면 얼마 후 잉글랜드에게 멸망한다.

최근 TT 패치로 인해 군정청의 영역이 플리머스 항구에만 극한된 것으로 바뀌었다. 기존에 콘월의 영토였던 콘월과 서머싯은 비무장지대가 되어 잉글랜드의 영토가 되었다가, 영국 내전이 일어나면 이전의 콘월지역을 지배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현실에서는《제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을 쓴 앤서니 비버가 여기 살며, 아돌프 히틀러가 1935년에 암살당해 독일이 무너지고 영국, 미국, 소련이 냉전을 벌이는 대체역사물을 쓰고 있다.

[1] 잉글랜드 내전에서 협력정부가 승리하면 근왕당에 남는다.[2] 잉글랜드 내전에서 협력정부가 승리하면 근왕당에서 분당해 보수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 정당인 잉글랜드 연합당을 창당한다.[3] 잉글랜드 내전에서 협력정부가 승리하면 근왕당에서 나와 파시즘 정당인 국민전선을 창당한다.[4] 초반에 찍는 포커스 중 하나의 설명문에 조지 6세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형과 만나지도 않는다고 한다.[5] 다만 반파시즘법은 맥밀런 루트에서도 입법 가능하다.[6] 파일 상으로는 애국자법이라고 되어 있다.[7] 여기서 조합은 거대기업을 말하는 거지 일반적인 협동조합이나 노동조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8] 더 크라운 시즌 2 5화에서 올트링엄 남작의 빰을 때린 남자가 이 단체 소속이다.[9] 이때 주코프 장군과 서로 아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10] 영국의 공산주의자. 영국 공산당 단원이었으며 1936년 화이트채플 케이블 스트리트에서 다른 반파시스트들과 함게 영국 파시스트 연합의 행진에 난입, 파시스트들과 런던광역경찰청을 상대로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 온갖 사상이 치고받은 스페인 내전에도 국제여단 소속으로 참전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자 스페인 인민전선 지지자였던 아톨 공작부인의 지원으로 영국육군사관학교에 입학, 학년 수석으로 졸업해 영국군 장교로 나치와 파시스트에 맞서 싸웠다.[11] 강경파는 완전한 자산 몰수, 개혁파는 일부 특권의 유지를 주장한다.[12] 빈곤, 질병, 무식함, 불결함, 게으름[13] AEU 위원장이 되지 못한 것도 공산당이 경쟁자인 휴 스캔런을 밀어줘서였다.[14] 영국 국왕 국새를 관리하는 직위. 사실 귀족원 원내대표도 겸한다.[15] 더 가디언부고 기사에서는 이 사건을 "상류층으로 태어났지만 (조지 5세대부였음) 1973년 매춘부 스캔들이 벌어진 후 그가 공직에서 물러나게 만든 것은 하류층과 잠깐 동안 가진 복잡한 관계였다."라는 참 계급사회스러운 방식으로 표현했다.[16] 세율에 대해 선택해야 한다.[17] 교육의 중점에 대해 정해야 한다.[스포일러] 하지만 이야기가 끝난 이후 영국은 스코틀랜드를 통일하기 위해 합병제안을 하거나 침공하게 되고 이에 따라 침공에 대응하는 중점이 생긴다.[18] 아일랜드 노동당(사회민주주의)와 연정 상태[19] 즉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96석의 지지가 필요하다.[20]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한 웨일스의 거물 문학가. 웨일스 민족주의자로 플라이드 컴리의 창립자 중 하나다.[21] 영어를 금지하자라는 안건이 민족주의자들에게서 제기된다.[22] 존 모리스의 연방주의 루트에서는 자유 웨일스군등의 민족주의 진영을 탄압하고 끝내 암살시키는 디시전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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