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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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경상북도지사는 경상북도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1910년까지는 관찰사(觀察使)라고 했다. 1910년 8월 1일에 부임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경상북도 관찰사는 알려져있지 않으며, 기록상 확인되는 마지막 관찰사는 1908년 6월부터 1910년 7월까지 재임한 박중양(朴重陽)이다.
이른바 보수의 텃밭으로, 광역자치단체장 중 유이하게[1] 내리 3선이 2차례나 성공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지역에서 전임 단체장을 비판하고 정책을 뒤엎는 것이 선거 마케팅의 일환인 반면, 경상북도의 경우 서로 전임 경상북도지사와의 인연을 강조하며 도정을 이어가겠다는 것이 중점을 두었다.
지역적 격차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동부, 북부 출신 도지사는 없는 상황.[2][3] 다만 관선직으로 임명되었던 과거에는 안동시, 예천군, 상주시 출신의 인물들이 도지사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역대 민선 경상북도지사 3명이 모두 중앙 정계에서 약간 비껴난 직업공무원[4] 출신이다. 정확히는 대권이나 중앙 정계에 도전하는 네임드 정치인이 없다고도 할 수 있는데, 경상북도지사보다 규모가 작은 강원도지사는 지상파 언론사 사장 최문순이나, 중앙 정계에서 네임드급 국회의원으로 활약한 이광재, 김진태가 거쳐갔고, 바로 아랫동네의 경상남도지사는 서울특별시장, 경기도지사와 더불어 대권을 노리는 다크호스의 자리로 인정받아 직업공무원 출신인 박완수 현임 지사 외에 역대 민선 지사들이 모두 대권 주자 하마평에 올랐으며, 전라남도지사나 충청남도지사, 심지어 제주특별자치도지사도 각각 이낙연, 안희정, 원희룡 등 대권 주자들이 거쳐갔지만, 경상북도지사는 임기 이후 국무총리 등 내각의 주요인사로 발탁되거나 대권을 노리는 네임드급 인물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5][6] 다만 3선 단체장이 많았고 대구광역시·경상북도의 선출직과 고위공무원들이 그들의 손을 거쳐가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TK 정치권에서는 대부와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다. [7] 이후 김관용 전 지사가 윤석열 정부에서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 임명되며 명예직이지만 경상북도지사 중 임기 이후 처음으로 부총리급 위상의 직위에 임명되었다.
유독 3선 연임 단체장이 많은 편인데 민선 1-3기 경상북도지사를 지낸 이의근, 민선 4-6기 경상북도지사를 지낸 김관용이 3선 임기를 모두 채우며 각각 경상북도지사직을 최대한으로 역임 가능한 11년[8] 과 12년 3선 임기를 모두 채웠으며 민선 7·8기 경상북도지사를 역임 중인 이철우 지사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다면 전직 경상북도지사들과 같이 12년 3선 임기를 모두 채우게 되며 경상북도지사는 전국 광역자치단체장 중 모든 도지사가 3선에 성공하고 3명 연속 3선에 성공한 유일한 광역자치단체장이 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1.1. 경상북도지사 선거 100% 적중 지역[편집]
경상북도지사의 경우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지금까지 총 8번의 선거가 있었는데, 이 중 경상북도지사 선거 적중 지역은 다음과 같다.
- 포항시
- 경주시
- 상주시
- 문경시
- 군위군
- 의성군
- 영덕군
- 청송군
- 봉화군
- 울릉군
- 경산시
- 청도군
- 성주군
- 예천군
- 울진군
2. 목록[편집]
2.1. 일제강점기[편집]
경상북도지사라는 직함은 1919년 8월에 기존의 경상북도장관을 경상북도지사로 개칭한 것이 최초이다. 아래 표에는 편의상 경상북도장관을 포함했다.
2.2. 미군정[편집]
2.3. 대한민국[편집]
2.3.1. 관선 1기[편집]
2.3.2. 민선 1기[편집]
2.3.3. 관선 2기[편집]
2.3.4. 민선 2기[편집]
3. 역대 선거 결과[편집]
3.1. 1960년[편집]
3.2. 1995년[편집]
[경상북도지사 시군구별 개표 결과 보기]
처음으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처음부터 접전이 나왔고, 이 선거가 현재까지 치러진 경상북도지사 선거 중 유일한 접전이다. 이유는 그 당시 TK지역에서는 민주자유당에 대한 반감이 있었기 때문이다.[26]
3.3. 1998년[편집]
3.4. 2002년[편집]
이의근 전 지사가 얻은 득표율은 역대 경상북도지사 최다 득표율(85.49%)을 기록하고 있다.
3.5. 2006년[편집]
3.6. 2010년[편집]
3.7. 2014년[편집]
예상대로 김관용 현 지사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게다가 김관용 후보 자체가 워낙 넘사벽급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던 터라 17개 시도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가장 주목도가 떨어진 건 사실이다. 한편, 오중기 후보는 0.07% 차이로 새정치연합 광역단체장 후보들 가운데 유일하게 선거비용 전액을 보전받는데 실패했다.
3.8. 2018년[편집]
이철우 후보가 52.11%를 얻으며 당선되긴 했지만, 이는 사실 인물로써 얻어낸 표가 아닌 전임자인 김관용 전 지사가 만들어 놓은 터전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중론을 이루며 포항시 북구와 남구, 구미시, 칠곡군 등에서는 과반 득표에도 실패했다. 그런데 득표율 최저치를 기록한 지역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안동시. 이곳이 고향이자 권 씨 성을 가진 바른미래당의 권오을 후보에게 상당수 표가 가면서 43.83% 득표에 그쳤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의 후보로 출마한 경상북도당 위원장인 오중기 후보도 무려 34.32%를 얻으며 예상 밖으로 선전했다. 특히 사상 첫 민주당계 정당 소속 기초자치단체장이 선출되기도 한 구미시에서는 불과 2.03%차로 석패했고, 자신의 지역 기반인 포항시에서도 42.22%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크게 선전했다. 그 밖에도 0.39%라는 차이로 40% 달성에 실패한 칠곡군과 35.91%의 득표율을 올린 경산시에서의 선전도 주목 받았다. 이로 인하여 보수의 마지막 근거지인 경상북도에도 변화가 생긴 게 아니냐는 언론의 추측이 있었다.
3.9. 2022년[편집]
현직 경상북도지사인 이철우 후보가 77.95%란 매우 압도적인 득표율을 거두며 싱겁게 재선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임미애 후보도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서는 빈약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22.04%의 득표율을 올리 나름 선전하였으며, 공공기관이 밀집된 경상북도청신도시가 들어서 젊은층과 외지인이 많은 예천군 호명면에서는 이철우 후보를 제치고, 과반 득표를 하며 경상북도의 읍면동 전체를 통들어 그나마 유일하게 1위를 기록했다. 물론 낙선이라는 결과는 같지만 대구광역시장으로 출마한 서재헌 후보는 선거비 전액 보전(15%)을 겨우 넘은 불과 17%를 얻어 아예 대구광역시 8개구군 전 행정동에서도 완패했다고 보면 다소 대비되는 부분이다.[27][28]
4. 역대 정당별 전적[편집]
5. 역대 후보별 순위[편집]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6. 생존 중인 전직 민선 경상북도지사[편집]
- 2023년 기준 생존 중인 전직 민선 경상북도지사는 김관용 전 지사 1명이다.(2006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재임, 민선 4-6기, 1942년 11월 29일 출생, 81세)
7. 도정 구호[편집]
8. 관련 문서[편집]
[1] 다른 한 곳은 경북 위에 위치한 강원도[2] 이의근-청도군, 김관용-구미시, 이철우-김천시. 세 곳 모두 경부선 철도로 연결되어 있다.[3] 다만 동부 지역의 인구 비중이 가장 크다. 보통 동부권으로 분류되는 포항시 50만명, 경주시 25만명, 영천시 10만명, 영덕군 3만명, 울릉군 9천명으로 경상북도 전체 인구 260만 중 90만명 정도를 차지한다.[4] 그나마 이철우 지사가 3선 의원을 지내고 당내 요직인 자유한국당 사무총장과 수석최고위원을 역임하였으나 7회 지선 경상북도지사 출마로 직을 길게 역임하지는 못했다.[5] 그도 그럴 것이 도지사 당선 이전 이미 여러 공직을 거쳐 60대에 들어선데다가 초재선 단계에서 자주 갈리는 다른 광역단체와 달리 모두 3선까지 하다보니 도지사 임기 이후에는 70세가 넘는 고령으로 정계에서 은퇴할 나이이기에 그대로 정계를 떠난 경우가 많다. 그러니 도지사 임기 이후 명예직 외에 실권을 가진 다른 직위로 발탁된 경우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6]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자유한국당 경선에 당시 현직 경상북도지사였던 김관용이 참여하긴 했지만 당시는 탄핵 정국이라 더불어민주당 경선에만 관심이 쏠리던 시기였고, 김관용 본인도 그저 문재인을 막기 위해서라는 대답을 하며 큰 의욕을 내비치지 않았다. 대신 홍준표와 김진태의 날선 언쟁을 중재하는 역할을 맡아 경선이 과열되지 않도록 해주었다.[7] 대구광역시장은 지금까지 3선 연임이 한 번도 안 나왔기 때문이다. 권영진 전 시장이 민선 6·7기 재선을 하고 이철우 지사가 7기 초선이라 권영진 전 시장의 선수가 더 높았던 민선 7기 시절에도 권영진 전 시장은 초선 의원에 그조차도 서울특별시 노원구에서 지내다가 뜬금없이 대구광역시장에 내려온 케이스라 TK 내 입지가 좁았지만 이철우는 당 중역에 김천시 3선 국회의원을 지냈어서 이철우 지사의 입지가 더 높았다. 그러나 민선 8기에서는 이게 역전되어 TK의 대부 역할을 이철우 지사가 아니라 홍준표 대구시장이 맡고 있다. 홍준표 시장의 정치적 위상이 주요 대권주자급으로 높기 때문.[8] 민선 1기 단체장직은 임기가 3년이라 민선 1-3기에 단체장을 지냈다면 11년이 직을 역임할 수 있는 임기의 한계이다.[9] 경상북도장관.[10] 2대 장관. 1919년 8월부터 도지사.[11] 모토이 또는 하지메.[12] 上滝은 가미타키, 가미다키 또는 죠타키. 基는 모토이 또는 하지메. 독음 불확실.[13] 창씨명 다케나가 가즈키(武永憲樹)로 활동. 1890년 평안남도 대동군 출신. 공교롭게도 같은 이름의 1891년생 충청남도 부여군 출신 독립운동가 엄창섭이 있다. 둘 다 한국전쟁의 혼란기 탓에 언제 세상을 떴는지 알 수 없다.[14] 미 군정에 의해 해임.[15] 현역 미 육군 중령.[16] 정부 수립 이후 잠시 유임.[17] 이승만 전 대통령이 임명한 도지사가 아니라서 대한민국 도지사로 치지 않는다.[18] 선거 당시 당적.[19] 선거 당시 당적.[20] 선거 당시 당적.[21] 선거 당시 당적.[22] 1995.12.6.
[[신한국당|
]]
으로 당명 변경.
1997.11.21.
으로 신설 합당.[23] 2012.2.13.
[[새누리당|
]]
으로 당명 변경.[24] 2017.2.13.
[[자유한국당|
]]
으로 당명 변경.[25] 2020.2.17.
[[미래통합당|
]]
으로 신설 합당.
2020.9.2.
으로 당명 변경.[26] 실제로 제14대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는 보수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TK보다 PK에서 더 득표율이 많을 정도였고 이 당시 반민자 비민주 성향의 TK는 1회 지선에서 대구는 8곳 중 6곳에서, 경북은 23곳 중 15곳에서 비민자당 후보가 당선되었고 심지어 포항시장은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기도 했다. 이후 15대 총선에서도 자민련 돌풍에 기여하면서 역대 보수정당 중에서 가장 TK에서 힘을 못쓴 시기로 꼽히기도 한다.[27] 이건 서재헌 후보가 못해서 진 게 아니라 상대인 대권 유력 주자 중 한명인 홍준표라는 사람의 이름값이 17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들 중 독보적으로 높다는 특수성 때문에 생긴 일이긴 하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34명의 후보들 중 최다선(5선 의원 + 재선 경상남도지사)에 두명뿐이 무소속 당선 이력이 있을 정도라 서재헌 후보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28] 오히려 그래서 송영길이 제일 굴욕적인 결과를 만든거나 마찬가지인데, 아무리 송영길이 인천광역시를 근거지로 삼은 사람이라지만, 5선을 한 엄연히 준 대권 주자인 후보인데 오세훈 후보에게 19.82% 격차, 그것도 전 자치구에서 패배를 했기 때문이다.[29] 3% 이상 득표자만 기재.[30] 보수 성향 후보.[31]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와 단일화.[32] 중도 성향 후보.[33] 민주당계 정당·진보 정당 후보.[34] 진보 정당 후보.[35] 제3지대 정당 후보.
[[신한국당|
으로 당명 변경.
1997.11.21.
으로 신설 합당.[23] 2012.2.13.
[[새누리당|
으로 당명 변경.[24] 2017.2.13.
[[자유한국당|
으로 당명 변경.[25] 2020.2.17.
[[미래통합당|
으로 신설 합당.
2020.9.2.
으로 당명 변경.[26] 실제로 제14대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는 보수후보였음에도 불구하고 TK보다 PK에서 더 득표율이 많을 정도였고 이 당시 반민자 비민주 성향의 TK는 1회 지선에서 대구는 8곳 중 6곳에서, 경북은 23곳 중 15곳에서 비민자당 후보가 당선되었고 심지어 포항시장은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기도 했다. 이후 15대 총선에서도 자민련 돌풍에 기여하면서 역대 보수정당 중에서 가장 TK에서 힘을 못쓴 시기로 꼽히기도 한다.[27] 이건 서재헌 후보가 못해서 진 게 아니라 상대인 대권 유력 주자 중 한명인 홍준표라는 사람의 이름값이 17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들 중 독보적으로 높다는 특수성 때문에 생긴 일이긴 하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34명의 후보들 중 최다선(5선 의원 + 재선 경상남도지사)에 두명뿐이 무소속 당선 이력이 있을 정도라 서재헌 후보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28] 오히려 그래서 송영길이 제일 굴욕적인 결과를 만든거나 마찬가지인데, 아무리 송영길이 인천광역시를 근거지로 삼은 사람이라지만, 5선을 한 엄연히 준 대권 주자인 후보인데 오세훈 후보에게 19.82% 격차, 그것도 전 자치구에서 패배를 했기 때문이다.[29] 3% 이상 득표자만 기재.[30] 보수 성향 후보.[31]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와 단일화.[32] 중도 성향 후보.[33] 민주당계 정당·진보 정당 후보.[34] 진보 정당 후보.[35] 제3지대 정당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