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1957/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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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준영과 일가 지인
1.1. 프레드로 일가
1.2. 한국의 준영 일가
1.3. 미래의 주변 인물
1.4. 집안 고용인
1.5. 회사 사람들
1.6. 이웃들
2. 축구계
3. 非 축구계 등장인물
3.1.1. 왕실
3.1.2. 정계
3.1.3. 재계
3.1.4. MI6
3.1.5. 음악계
3.1.6. 배우
3.1.7. 문학계
3.1.8. 화이트 디펜스
3.2.2. 정치인, 정부 각료
3.2.4. 독립운동가
3.2.5. 재계
3.2.6. 스포츠계
3.2.9. 기타
3.8. 그 외 국가


1. 준영과 일가 지인[편집]



1.1. 프레드로 일가[편집]


  • 이준영
본작의 주인공. 나이는 2026년 기준 23세. 경기도 화성 출신.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1] 카톨릭계 보육원에서 자라서 종교는 천주교.[2]
어릴 때 열차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보육원에서 컸다. 2026년 북미 월드컵이 끝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지만, 뜻밖의 타임워프를 겪고 1957년으로 왔다.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빌 샹클리가 있는 허더스필드에 입단하고, 여기서 보인 놀라운 활약으로 맷 버스비와 조 암스트롱의 눈에 띄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 버스비의 아이들이 일원이 된다. 당시로선 극히 드문 동양인 선수[3]였기 때문에 이단아 취급. 단순히 외국인 용병 축구 선수로 온 것만이 아니라 비행기 사고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팀을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독려해 유로피안 컵과 리그 우승까지 이끌어내고, 선수 외적으로도 맨유의 주식을 상당한 지분으로 산다거나, 투자자들을 영입해 오다 보니 구단 임원들 조차도 눈치를 볼 정도다.

성격이나 언행은 상당히 거침없는 편. 미래인이라는 게 들통나도 딱히 감추려고 들지 않고 정면 돌파로 해결했다[4]. 1950년대 상황을 몰라서 언행에 실수하는 일도 종종 있다[5]. 사교성도 좋고, 영어도 유창하다보니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안면 튼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편. 그래서 버스비의 아이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한편으로 명예욕이 상당히 강한 성향이 있다. 갑자기 과거 시대로 떨어진 것에 대한 보상 심리로 레전드로 역사에 남겠다는 욕심도 있지만, 인종차별 성향이 강한 시대에서 출세를 해야 그만큼 대접을 받기 때문. 그렇게 명예욕이 강하다 보니 영국과 한국 양국 축구의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레전드가 되는게 목표다[6].

2026년 기준으로도 월등한 신장(194cm)[7]과 피지컬을 갖고 있고, 장신치고 스피드도 빠르다. 주 포지션은 수비수지만, 유년팀 때부터 온갖 포지션을 다맡아 봤기 때문에 멀티 플레이어 능력도 뛰어나고 개인기와 득점력도 우수한 편. 190대 장신에 어릴때 태권도를 배웠다는 언급이 있는 걸 봐서는 캐릭터 모델은 즐라탄인 듯. 축구와 별개로 요리도 잘하고, 노래나 연주 실력도 좋다[8]. 이 시대 선수 주급[9]으로는 노후보장이 힘들다 보니 식품 사업을 비롯해 몇 가지 사업을 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등번호는 5번이고, 뮌헨 비행기 사고 이후 팀 주장을 맡고 있다, 1958년 5월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에 선발되었다[10]. 월드컵에서 활약으로 로열 빅토리아 훈장[11]을 받았고, 이후 고국에 돌아가서도 훈장과 대한민국 국적을 받았다.

1962년 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에 선발되는데, 본인의 희망도 있고 FA측의 선수발탁 거부도 있었다.
  • 알버트 J 프레드로
2026년에 준영이 매입했던 저택의 주인. 은퇴한 정치인으로 남작 작위를 받은 일대귀족이다. 옥스포드 출신에 1차 세계대전 참전자로 J. R. R. 톨킨(!)과도 친분이 있다[12]. 아들 루이스는 한국전쟁때 전사, 현재 가족은 세 손녀들 뿐이다. 자신의 손녀 리즈를 구해준 준영에게 상당히 호의를 느끼고 있으며 여러모로 도움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13].

준영이 21세기에서 들은 바에 따르면 말년에 불행이 잦아 가문이 망해버렸다. 손녀 리즈가 교통사고를 당했던 게 그 시작이었던 것 같은데, 다행히 준영의 도움을 받아 불행은 모면한 듯.

선조가 19세기에 망명온 폴란드인이라 그런지, 폴란드 망명자들에 대한 동정심도 크고 폴란드 망명 정부 인사들과도 알고 지내는 듯 하다[14]. 그래서 준영이 영국 파시스트들에게 습격을 당한 후, 알버트의 소개로 자유 폴란드군 공수부대원들을 경호원으로 구할 수 있게 되었다.
  • 루이스 프레드로
고인. 알버트 J 프레드로의 아들이다.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한반도에서 전사한 참전용사로서, 준영을 1957년의 영국으로 데려온 인물이다. 엘리자베스의 결혼으로 준영의 장인이 되었다.

  • 엘리자베스 프레드로
루이스 프레드로의 장녀, 리즈라는 호칭으로 불린다[15]. 교통사고로 인한 심정지 상태에서 준영에 의해 목숨을 구하게 되고, 준영과는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준영이 미래에서 왔다는 사실을 눈치채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매우 상냥한 성격의 미소녀로, 안 그래도 낯선 시대에 떨어져서 불안감이 있었던 준영을 지탱해주는 소중한 인물로 꼽힌다. 준영이 미래에서 가져온 모바일 기기들에 관심을 가져서 대학 진학도 컴퓨터 공학 쪽으로 잡게 되었다. 한편으로 리복이 나이키가 되게 하는 원흉(...)이기도 하다. 폴 매카트니의 인터뷰에서 폴 본인을 이준영의 동서로 소개하는 것을 보면 이준영과 결혼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 졸업식 이후 비행선을 동원한 프로포즈 이벤트를 받고 준영과 결혼식을 연다. 이후 준영이 반쪽이 되어서 나왔다.

  • 안젤리카 프레드로
루이스 프레드로의 차녀, 앤지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언행이 수상쩍은 준영을 소련 스파이로 의심했다. 평소에 쿨하기 짝이 없는 소녀이지만, 실제론 빠순이(...). 쿼리멘의 광팬으로 몰래 콘서트를 보러 가기도 한다. 준영이 들려준 Imagine을 단번에 듣고 연주할 정도로 음악적인 재능이 있다. 한편으로 할아버지 친구 톨킨의 팬이기도 한지, 준영이 실마릴리온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는 탐을 내기도. 후일 폴 매카트니의 인터뷰를 보면 결국 좋아하는 밴드의 멤버 중 한명인 폴과 결혼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 카리나 프레드로
루이스 프레드로의 삼녀, 카린이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언행이 수상쩍인 준영을 외계인이라 의심했다.[16]준영을 오빠라고 부르며 좋아하며[17], 그래서 준영이 알버트의 반대를 순응할 때 '카린은 오빠야한테 실망했어!'라는 소리까지 한다. 생일날 하마터면 무시무시한 장난감을 받을 뻔 했지만, 준영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다. 원래는 고생을 많이 해서 노년에 치매가 든 상태였지만, 준영이 과거로 오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유명 SF작가이자 영국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되었다고.

  • 안나 리/이안나
준영의 딸. 1962년생.


1.2. 한국의 준영 일가[편집]


  • 준영의 부모
열차 탈선사고로 사망. 이후 준영은 보육원으로 보내진다.

  • 이씨[18]
준영의 증조부. 낙선재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어 황실에 우호적이다.[19] 미래에서 온 증손자를 실종된 작은아버지의 손자로 생각하고 족보상 준영의 당숙이 된다. 순정효황후의 결혼선물로 원앙세트를 가지고 온다. 한편 부인, 즉 준영의 증조모는 결혼하는 리즈를 위해 한복을 지어 선물해준다.

  • 이태석
일제 때 독립운동하러 간다고 중국갔다 실종된 준영의 작은 고조할아버지. 하지만 실상은 술김에 순사패고 도망친 게 미화되었다. 호적상 준영의 할아버지로 되어있다.

  • 이강윤
준영의 조부. 그렇다보니 용모가 준영과 많이 닮았다. 4월 혁명 당시 시위에 동참한다. 죽을뻔 하다가 순정효황후 덕에 위기를 넘긴다. 족보상으론 준영의 6촌.

  • 최소희
4월 혁명 당시 시위 중에 깡패에게 맞아 죽을뻔한 준영의 할머니. 혁명 당시 중학생. 강윤보다 연상이다.

1.3. 미래의 주변 인물[편집]


21세기 준영의 주변인물들.

  • 손웅민[20]
준영의 국가대표 선배. 폭삭 망한 맹구(...)로 가는 후배를 우려한다. 준영이 과거로 간 후에도 종종 근황이 언급되고 있는데, 미래가 바뀌면서 플래시백 현상을 겪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는 역사가 제법 바뀌면서 자신의 후배 이준영에 대한 기억은 모두 잃어버렸다. 하지만, 최초의 해외파 선수 이준영에 대해 관심을 두고 계속 조사하고 있는 중.

  • 윌리엄 터너
이준영이 보육원에 있을때 보살펴준 할아버지 같이 인자한 노 신부. 젊었을 때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광팬으로 준영이 맨유에 가도록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다[21]. 준영이 과거로 와서 젊은 시절의 그를 만나지만, 모드족으로 한참 반항기를 불태우고 있는 중이다[22]. 프랑스 백작가문의 사생아로 부친이나 이복형과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다. 준영은 쫒기고 있는 터너를 받아들여 숨겨주고, 직원으로 고용하는 등 나름의 은혜를 갚고 있었다. 이후 맨유의 서포터로 왕성하게 활동하다 준영을 따라 한국으로 가는데, 청계천의 판자촌[23]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준영에게 부탁해서 구호품을 전달하지만, 오히려 그 구호품 때문에 화재가 난 것[24]을 알고 심하게 자책하게 된다. 단순히 동정 만으로 사람들 도울 수 없다는 걸 통념했기 때문인지, 자기 역량을 높이기 위해 그만두었던 기숙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대한축구협회 전략본부장을 맡고 있다. 준영의 존재를 찾는 웅민에게 피곤해서 헛게 보이는거 아니냐면서 준영의 기록을 웅민에게 보여준다.

프리메라 리가에서 뛰고 있던 선수로 준영의 무덤에 성묘하는것으로 첫 등장. 이준영이 1958년 뮌헨 참사 때 죽은 줄 알고 있던 손웅민의 말에 2002년까지 살아 있었다며 증언, 웅민을 어리둥절[25]하게 만든다.


1.4. 집안 고용인[편집]


  • 체트리
인도인 운전기사. 알버트에게 리즈를 구한 준영을 소개했다.
  • 몰리
하녀장.


1.5. 회사 사람들[편집]


미스터리 푸드 한국 지부 부사장. 보험회사 부사장 출신으로 억관이 상공화의소에서 만나 의기투합해서 영입했다. 삼성의 창업주를 모시고 와서 준영에게 소개했다.

  • 헨리 케일
미스터리 푸드의 본사 상무.

본래 미스터리 푸드를 세운 노르웨이 이민자. 준영과 의형제를 맺었다.


1.6. 이웃들[편집]


  • 이필립
이억관의 아들. 준영의 할아버지 강윤과 절친을 맺는다.

  • 캐시 홀딩
퍼거슨의 연인. 후일의 부인이 되는 인물이다. 잉글랜드로 가는 퍼거슨을 우려해 맨체스터로 따라온다. 퍼거슨이 준영이 사는 모슬리 마을에 집을 사면서 동거중. 리즈와 친구가 된다.

  • 찰스 신부
준영이 다니는 모즐리 성당의 주임신부. 왕년의 골키퍼 출신.

2. 축구계[편집]



2.1. 잉글랜드 풋볼 리그[편집]



2.1.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편집]



2.1.1.1. 임원진[편집]

  • 해롤드 하드먼
맨유의 회장. 동양인인 이준영을 영입하는 게 논란이 될 거라 생각해서 달갑잖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준영이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고, 뮌헨 사고 이후로 이를 수습하는 한편, 팀 재정에도 도움을 주자 호의를 보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명문의 반열에 올린 위대한 아버지. 조 암스트롱의 이야기를 듣고 준영에게 관심을 보이고 결국 영입해 온다. 상당한 인격자로 낯선 이방인 선수인 준영을 잘 보살펴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지적하는 문제들[26]에 대해서도 깊이 관심을 가지며 동의하는 편. 뮌헨에 비행기 사고가 터져 팀 전력이 파탄이 나고 감독 본인도 중상을 입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준영이 주장을 맡아 더블 우승[27]까지 이끄는 모습을 보고 무척이나 감격한다. 그 때문에 버스비는 훗날 이 시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대표하는 선수로 이준영이 지목될 거라는 얘기까지 했다. 심지어 아직 활약할 여지가 한참 남아있고 지금도 활약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한 소리였다.

  • 지미 머피
팀 코치. 뮌헨 사고로 맷 버스비가 입원하자 임시 감독으로 맨유를 지휘했다. 웨일즈 국가대표 감독을 겸하며, 스웨덴 월드컵에서 팀을 8강에 올려놓았다. 얼마든지 감독을 맡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지만, 본인은 보좌하는 게 편하다는 이유로 쇄도하는 명문팀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맨유의 코치로 남았다.

맨유의 수석 스카우터. 바비 찰튼과 던컨 에드워즈를 영입해 올 정도로 뛰어난 안목을 가졌다. 뮌헨 참사 이후 준영과 함께 퍼거슨을 데리러 간다. 이후 준영의 말을 듣고 독일에서 미래 바이에른 뮌헨의 레전드들을 싹쓸이 해왔다.

2.1.1.2. 뮌헨 참사 이전 선수들[편집]

본래는 참사로 희생되었을 선수들. 준영의 활약으로 전원 생존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에이스. 자신보다 체격이 좋은 준영과 1 대 1에서 밀리지 않는 뛰어난 피지컬에 바로 준영의 테크닉을 습득할 정도의 천재 플레이어. 주인공이 직접 그 펠레에게도 밀리지 않을 것이라 할 정도이다. 1957년 기준으로 준영보다 어리지만, 자신이 팀 선배라며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준영에게서 한국 욕도 배운 듯(...). 열차 사고 트라우마가 있는 준영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면서 깊은 우애를 쌓았다.

모든 포지션이 소화 가능한 천재 선수다 보니 멀티 플레이어인 준영과도 손발이 척척 맞는다. 여기에 바비 찰튼까지 가세하며 맨유 중원은 역대급의 전력을 갖추게 된다.

역사대로 뮌헨 비행기 사고를 겪지만, 준영이 보낸 전문 때문에 비행기 좌석을 비교적 안전한 비행기 앞자리[28]로 바꾼 덕분에 신장 파손으로 인한 사망은 피하게 되었다. 다만 양다리 골절이라 재활하거나 복귀하는데는 꽤 시간이 걸릴 듯.

이 후 1958-1959 시즌에 부상을 떨쳐내고 복귀하게 된다. 풀백 포지션을 맡는데 던컨 본인에게 완전 최적화 된 포지션. 펠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다음 번 월드컵에서는 자신이 상대해 보겠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인다[29]. 이후 FA컵 8강에서 펠레와 맞붙었다.

칠레 월드컵에서는 중요한 경기에 골을 넣는 활약을 펼치며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다. 결승에서도 브라질을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하지만, 이후 펠레의 활약에 역전패하며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친다.

  • 재키 블란치플라워
토트넘의 에이스 대니 블란치플라워의 동생. 참사에서 생존했지만 중상으로 은퇴한다. 이후 선수 스카우터로 활동하고 있는 듯.


  • 로저 바인
참사 전 팀의 주장.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현역 은퇴 후 전력분석관 일을 하다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월터 윈터보텀 사단에 들어간다.

  • 리암 휄란
참사로 두다리를 모두 잃었다. 퇴원 후 세무 행정 방면으로 전업했다.

  • 마크 존스

  • 알버트 스캔론
뮌헨 사고 당시 두개골 골절, 다리 골절, 신장 손상으로 회복 불능의 판정을 받았으나 기적적으로 재기했다.

  • 데니스 바이올렛
뮌헨 사고 당시 부상이 그나마 경미해서 시즌 중에 복귀했다.

  • 케니 모건스
뮌헨 사고 당시 상대적으로 부상이 경미했던 선수. 1957-58시즌 유러피언컵 준결승 2차전에서 체사레 말디니를 상대로 본의 아니게 이천수(...)를 시전하고 퇴장.

2.1.1.3. 참사 이후 선수들[편집]

잉글랜드 축구의 영웅[30], 1957-58 시즌 초반에는 주전라인이 빡세서 두각되지 못하다가 미드필더로 자리를 잡고, 1957년 연말부터는 신들린 수준으로 좋은 활약을 이어나간다. 던컨 처럼 번득이는 재능은 없지만, 상당히 활동량이 많고 공수에서 폭넓은 활약을 하는 전천후 플레이어. 뮌헨 비행기 사고 당시, 다들 사고를 경고하는 주인공의 전보를 무시했지만, 비행기를 타지 않아 화를 면했다. 하지만 참혹한 사고로 고통받는 동료들과 달리 홀로 사고를 피했다는 점 때문에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리다 다시 복귀하여 힘을 보탰다[31].

화려한 구석은 없지만, 투지는 상당히 강해서 유러피언 컵에서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를 끈질기게 마크했고, 월드컵에서도 가린샤를 밀착마크하는 활약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우승이 걸린 그 두 경기에서 모두 결승골을 기록하면서 영국 축구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다[32].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1958년 연말에 발롱도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33]

  • 해리 그레그
이 시대 맨유의 레전드 골키퍼이자 뮌헨의 영웅. 맨유에 오기 전에 돈캐스터 로버스에 있었는데, 이때 준영과 한 차례 맞붙어 본 적이 있다. 비록 완패했지만, 더 실점할 수 있는 상황을 몇 차례나 막아냈기에 다들 놀라운 실력을 가졌다고 감탄한다[34]. 뮌헨 비행기 사고가 터지자, 실제 역사에서처럼 생존자들을 구조하며, 멍하니 구경만 하는 사람들에게 호통을 쳤다. 스웨덴 월드컵에서 북아일랜드 대표로 출전해서 올스타로 선정된다. 하지만 비행기 사고 이후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데다, 이후 준영의 활약으로 외려 우승을 연달아 차지하며 강호들과 겨루는 것과 최고의 골키퍼로 추켜세워지면서 남몰래 심한 중압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를 버티지 못해서 의사의 처방 하이긴 하지만 암페타민에 손을 대었다. 비록 증상 발현 시에만 복용했긴 한 정도지만, 이런 상황을 그냥 두면 안된다고 판단한 준영은 금지약물에 대한 규칙을 FA의 스탠리 루스에게 부탁했고, 루스가 이를 수락하면서 1959-60 시즌부터 약물금지 규정이 만들어진다.

뮌헨 사고로 주전 선수들이 대거 이탈하자 주인공이 스코틀랜드에 가서 데려왔다[35]. 작중 시간대 기준으로 10대 중후반의 풋풋한 소년. 과감하고 적극적이라 심판에게도 거칠게 항의하는 등 성깔이 장난 아니다. 데니스 로와 어째 앙숙이 될듯. 벌써부터 미래의 마누라가 될 여친에게 잡혀 살고 있다.(...) 차를 고를때도 말티즈[36]가 준영이 관여한 차임을 알고 있었으나 더 싸다는 이유 때문에 아내의 강권으로 미니를 선택할 정도. 원 역사 대로 미래에 맨유의 감독이 되는데 2001-02 시즌을 무관으로 삽을 펀 선수들을 갈구면서 던컨 에드워즈, 바비 찰튼과 함께 라때 드립을 친다.

모두가 아는 그 배우가 맞다. 실제 아마추어 선수로 활동할때 맷 버스비에게 영입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고. 소설에서는 프로 선수가 되었지만, 축구선수로도 연극 배우로도 확실히 자리매김 하지 못해 방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언젠가 대기만성 할 것이라는 준영의 이야기[37]를 듣고 기운을 차리고 예전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이게 된다.배우라 그런지 헐리우드 액션의 달인이시다. 188cm의 장신을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가 주특기로, 뮌헨 사고 이후 토미 테일러를 대신해서 최전방 공격을 맡게 되었다. 이후 연극 무대에서도 주연을 맡는 등 커리어가 상승하게 되는데, '언딘'이라는 연극에 열연을 하면서 유명 배우에게도 눈길을 받게 된다. 유러피언컵 우승이후 스코틀랜드 리그 팀들의 이적제의를 받았지만 다 거절하고 은퇴를 선언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찰턴 헤스턴과 함께 영화 엘 시드에 출연[38]한 후, 역사대로 007 시리즈의 주연을 맡으며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역시 모두가 아는 그 그룹의 가수. 실제로 축구선수를 해볼까 고민할 정도로 축구실력이 뛰어났는데, 여기선 아예 선수생활을 겸하면서 쿼리멘에서 가수활동을 하고 있다[39]. 준영은 존 레논의 안좋은 일들을 알고 있었지만 모친의 이른 사망 등 주변 환경 문제로 인한 영향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와 친하게 지내면서 주장으로서 그를 잘 돌봐준다. 이에 존 레논도 준영을 잘 따르게 되고, 그가 부르는 노래도 인상깊게 들었는데, 그중 가장 좋다고 한 노래가 방탄소년단Dynamite였다. 쿼리멘이 리버풀에서 공연하던 장소가 안필드 바로 옆이라 리버풀을 패배시키고 도발까지 날렸던 준영은 혹시 리버풀 팬한테 주목받을까봐 애써 몸을 숨기고 공연구경을 하는데, 여기에 제일 존경하는 주장이 공연을 보러와줬다며 마이크로 외쳐서 준영을 당황시켰다[40]. 브리지트 바르도의 팬이라 준영과 얘기한 이후 사인을 받을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녀의 무례한 언행을 듣고 나선 친절한 주장을 매도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이후 암페타민 복용 문제로 준영이 복용자들에게 자수를 권유 하자, 손을 들었다. 준영을 모티프로 한 곡을 2곡 정도 비틀즈 앨범으로 내놓았다. 거기서 자신이 축구 선수이면서 가수로 있을 수 있었던 건 주장 덕분이라고 인터뷰 자리에서 말한다. 오노 요코와 처음 만났을 때는 분위기에 끌렸는데, 오노 요코가 준영의 험담을 계속 하자 뺨을 때리게 되어 원역사와 달리 악연으로 끝나게 되었다. 1964년 미국 공연에서 미국 정부가 인종 분리 정책에 의거하여 관객들을 인종별로 나누려고 들자, 이에 반발하여 시정시정하게 만든다[41]. 이 일로 마틴 루터 킹과 친분을 다지게 되어 준영은 그가 백인우월주의자들에게 암살당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1964년 발롱도르 수상자. 맨체스터의 왕. 그러나 1957-1958 시즌에서는 아직 허더스필드 타운에 몸담고 있던 애송이 공격수. 준영에게서 21세기식 훈련법이나 미래의 테크닉들을 전수받았다. 준영과 형님 아우 하는 사이. 알렉스 퍼거슨과 첫대면에서 신경전을 벌였다. 1959년 2월에 레이 윌슨과 함께 맨유에 영입되었다. 데니스 바이올렛과 함께 뛸 때는 팀 내에서 작은 데니스라고 불렸다. 1960년대 들면서 완전히 팀의 핵심 공격수가 되었다. 준영의 얘기를 듣고 이탈리아로 이적하지도 않고, 맨시티로 가지도 않았다. 이대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가 될 듯.

맨유와 리즈 양팀에서 뛴 레전드 플레이어. 같은 아일랜드 출신인 리암 휄란의 부상 은퇴를 안타깝게 여긴다. 미드필드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치다 주전경쟁이 심화되자 원 역사대로 리즈로 이적한다. 준영에게 한국 미녀를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가 혼났다(...).

론 예이츠 영입에 실패해서 대타로 영입한 장신 수비수.

  • 짐 박스터
레인저스에서 노리고 있던 스코틀랜드 유망주. 상당히 뛰어난 발재간과 패스 능력을 가지고 있다.

비(Be)폭력주의자 1958-59시즌 2부 미들스브로에서 42골로 득점 2위를[42]기록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 원 역사와 마찬가지로 실력은 출중하지만 거만하고 독선적인 성격이다. 이준영에게 경쟁의식도 갖고있다. 퍼거슨과는 의외로 죽이 잘 맞는지 친하게 지낸다는 언급이 있다. 1960-61시즌 초반에 SL벤피카의 주제 토히스[43]와 맞트레이드 되었다.

뮌헨 비행기 사고가 났을때 첫 등장. 까메오 수준으로 등장하는 듯 하다가 나중에 이준영이 다른 팀에 하이재킹 당할까 싶어 팀에 추천하여 실제 역사보다 일찍 데려왔다. 다만 엄청난 재능 때문에 주변에서 오냐오냐 해주는 바람에 콧대가 높아져 버렸다고. 그래도 언급되는 걸 봐서는 실제 역사처럼 타락하지는 않는 듯[44]. 1963-64시즌에 프로에 데뷰한 이후로 매경기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는 중. 걸출한 실력에 준수한 외모를 갖추고 있어 경기장에 소녀 팬들을 구름같이 몰고 다니는 중이다.

1959-60시즌을 앞두고 맨유가 독일에 방문했을때 등장. 이후 준영의 요청으로 맨유의 스카우터 조 암스트롱이 게르트 뮐러, 제프 마이어와 함께 영입해온다. 유소년 팀에 있을 때는 이희택의 룸메이트가 되기도. 1963-64시즌 말에 데뷔했고, 그 다음 시즌부터는 주전급으로 활약 중이다.

역사대로 가공할 득점 센스를 가졌다. 분석이 끝난 수비수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능력이 대단해서 준영도 혀를 내두른다.

해리 그랙의 장기 부상으로 인해 주전 골키퍼로 발돋움 했다. 리버풀과 경기에서 펠레의 감각적인 슈팅을 막는 등 대활약을 펼쳐 보였다.

  • 스탠 크루더

2.1.2. 리버풀 FC[편집]



2.1.2.1. 임원진[편집]

  • 토마스 발렌타인 윌리엄스
리버풀 FC의 구단주. 빌 샹클리의 요청에 마침 FC 포르투에 와 있던 펠레를 영입한다.

  • 필립 테일러
성적이 좋지 않아 샹클리에게 지휘봉을 넘긴다.

1957년 기준으로 허더스필드 타운의 감독을 맡고 있었다. 2차 대전 시절에 루이스의 당번병이라 그의 부친인 알버트와 친분이 있는 걸로 나온다. 그 인연으로 준영이 테스트를 받고 허더스필드에 입단한다.
축구에 열정이 깊고 상당한 야심을 가졌지만, 허더스필드 타운 운영진이 별다른 의욕이 없어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다 1958년 4월에 리버풀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45] 이후 영국리그에서의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선수의 영입금지가 풀리자 뛰어난 실력을 가진 공격수를 요청한다. 전개 상황으로 봐선 앞으로 준영의 상대가 될 듯 하다. 이후 1958-59 시즌 FA컵 8강에서 맨유와 맞붙지만, 맨유에 비하면 아직 리버풀이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걸 알고 패배를 순순히 인정했다. 맷 버스비와 친분이 있어서 그런지 아주 당당하게 올드 트래퍼드에 염탐을 하러오고, 유러피언 컵을 대비해 전력 분석을 할때도 본인이 감독인양 배놔라 감놔라 참견을 한다.(...)[46]

  • 밥 페이즐리
리버풀의 코치.

2.1.2.2. 선수[편집]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 브라질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한다. 주인공이 맞상대를 가장 고대하던 상대중 하나로 조별리그에서 펠레가 부상으로 나오지 않자 주인공이 짜증을 내고 내심 브라질이 결승전까지 올라와 다시 맞붙기를 소망할 정도이다. 이후 웨일스와의 8강전에서 웨일스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고, 프랑스와의 4강전에서는 무려 헤트트릭을 기록한다. 그리고 결승에서 주인공의 영국과 맞대결을 펼치는데, 경기 전 2대1로 브라질이 승리할 것이라 예언해 본의아니게 주인공의 부담을 던다.

본 경기에서 브라질이 4분만에 선제골을 먹었음에도 자신만만한 태도를 유지하며 절묘한 백페스로 주인공을 속여 동점골에 기여하고, 가린샤의 역전골로 승리를 굳히는 듯 했으나 주인공의 활약으로 막판 10분동안 두 골을 얻어 먹어 마라카낭의 비극을 재현하고 이에 주인공에 복수의 칼을 갈기 시작했다. 그래도 주인공 또한 다음 월드컵에서 더 실력을 쌓고 체격이 여문 채로 나오면 자신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대회 신인상을 탈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뽐냈다.

이후 이대로 산투스FC에서만 머무르면 복수에 4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유로 유럽으로의 이적을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단식에 칩거까지 하며 부모님 속까지 썩이다 결국 가출을 하여 유럽으로 떠난다. 일단은 말이 통하는 포르투갈의 FC 포르투에 입단하려 했으나 원 소속팀인 산투스 FC와의 반대[47]로 입단에 차질을 빚는다. 그러다 영국에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외국인 선수의 영입제한이 풀리자 리버풀 FC의 회장인 발렌타인 윌리엄스가 직접 찾아와 각서까지 써주고 영입한다.[48]

리버풀에 입단한 뒤 FA컵에서 주인공과 맞대결을 펼칠 날을 고대하며 매 경기마다 골과 어시스트를 넣는 어마어마한 퍼포먼스를 보이다 마침내 FA컵 8강에서 맨유와 만났다. 하지만 잔뜩 별렀던 이준영과 바비 찰튼에게 제대로 앙갚음을 해주기도 전에 또 다른 천재를 만나 고전하게 되고, 분투하나 패배한다.

이후 50골로 2부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고 리버풀을 1부로 승격시키며 1부에서도 초반에 골폭풍을 몰아치면서 팀을 1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드디어 리그에서 맞붙게 되는데, 그동안 주인공의 현대 축구 기술들을 습득하여 자신에 맞게 개량, 어마어마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어 주인공에게서 월드컵과 FA컵 때의 실력에 비해 일취월장 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축구에서도 초일류에 속할 완전체 축구황제라는, 다른 이들에게도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심지어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보다도 다소 유연하고 자유롭다고 평가받을 정도이다.[49] 이를 바탕으로 3골 1어시스트라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보여줘 주인공이 전이후 처음으로 공포를 느끼게하나, 이에 비례하여 리버풀 선수들이 흥분하는 바람에 결국 4대4의 무승부로 경기를 끝낸다.

59-60시즌 리버풀을 승격 첫해 우승시킨다. 세계관 최강자 중 한 명이지만, 이준영에게 적용되는 주인공 보정 때문인지 매번 고통받는 역할이다. 62년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다가 결승전에 출전하여 골을 넣고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에 이바지한다. 66년 월드컵에서는 부상당하지 않고 팀을 3위로 이끌었다. 우승권이 아닌 전력의 대표팀을 이끌고 우승한 마라도나와 메시에 비해 몸이 멀쩡했으면서도 우승에 실패했으니 후대에 평가가 낮아질 듯하다
  • 론 예이츠
스코틀랜드 출신의 센터백. 실제 역사에서 리버풀의 영광을 일궈낸 뛰어난 수비수라 준영이 사전에 영입하려 시도했지만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50] 190대에 육박하는 장신 수비수로 준영과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고 세트 플레이에서도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1940~50년대를 주름잡은 리버풀의 스타 플레이어. 이준영과 첫대결에서 오프사이드 트랩에 농락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 알란 아코트

  • 쿠티뉴
본명은 안토니오 윌슨 비에이라 호노리오. 펠레와 같은 산투스 출신.

2.1.3. 블랙풀 FC[편집]


초대 발롱도르 수상자. 작중에서 이미 40살이 넘었지만, 자기 관리를 잘해서 웬만한 젊은 선수들보다 체력이 좋다. 뿐만 아니라 투박한 축구화를 신고도 빠른 스피드에 정교한 드리블을 해내서 주인공이 굉장히 놀라기도 한다[51][52]. 이준영의 거머리같은 마크에 고전하고 팀은 대패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PK를 얻어내는 끈기의 소유자. 무례할 정도로 자신을 거칠게 마크하는 준영에게 감정을 드러내기는커녕 이긴 것을 축하해 주고 다음에 또 만나자고 할 정도로 인격자다[53]. 단 한번의 만남으로 준영이 그를 무척 존경하게 된다.

상당히 출중한 기량을 갖춘 풀백 플레이어. 맨유에서 영입을 시도했지만, 블랙풀의 거절로 무산되었다.

  • 어니 테일러
30대 노장 공격수. 실제 역사에서 처럼 뮌헨 참사 후 맨유로 임대를 가서 도움을 준다. 1957-58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도 뛰지만 골키퍼와 충돌하며 부상을 당했다. 이후 맨유는 10명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맞서는 불리한 상황에 처하지만, 바비 찰튼과 이준영의 활약으로 승리한다. 그 덕에 어니 테일러도 우승 메달을 받았다.

2.1.4. 토트넘 핫스퍼[편집]



2.1.4.1. 임원진[편집]

  • 지미 앤더슨

토트넘에 더블 우승을 안겨준 명장.


2.1.4.2. 선수[편집]

북아일랜드의 레전드 플레이어이자 토트넘의 주장. 동생 재키 블란치플라워는 맨유에서 뛰고 있다. 스피드도 빠르고 패스 능력도 뛰어나다. 준영을 상대로 알까기를 해낼 정도의 실력자. 코치인 빌 니콜슨과 궁리 끝에 토트넘 특유의 푸시 앤 러시 전술을 더욱 가다듬어 맨유를 위기에 몰아넣었다. 맨체스터에 가서 먹은 치킨 맛[54]에 반해서 나중에 동생과 런던에다 체인점을 냈다고 한다. 은퇴후 월터 윈터보텀 사단에 들어가 한국에서 코치를 한다.

리버풀이 펠레를 포르투갈에서 줏어왔다(?)는 얘기를 들은 빌 니콜슨 감독이 포르투갈에 갔다가 벨라 구트만의 추천을 받고 임대 영입했다. 엄청난 스피드로 이준영과 첫 대면한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맨유를 패배시킬 정도로 강력한 포스를 보여줬다. 데뷔 첫해 득점왕과 팀의 더블 우승을 동시에 차지하며 토트넘 팬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아예 완전 영입을 하자며 모금운동까지 일어났을 정도.

1959-60시즌 맨유의 비시즌 독일 투어 때 처음으로 등장했다. 당시에도 굉장한 수비력을 선보이며 버스비 감독과 머피 코치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맨유에는 수비수가 이미 충분히 많아서 영입하지 않았다. 그러다 1960-61 시즌 토트넘으로 영입되어 걸출한 활약으로 더블 우승에 공헌했다.

본명은 수비말 고스와미. 인도 축구 리즈 시절의 레전드 플레이어[55]. 이준영의 활약이 아시아에 알려지면서 아시아 선수들의 도전의식을 자극했는데, 추니도 그런 도전 의식을 갖고 풋볼 리그에 진출했다. 처음엔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뛰다가 이후 토트넘으로 이적해서 더블 우승에 힘을 보탠다.

  • 로버트 A 스미스
당대 리그 득점왕에 올랐을 정도로 출중한 공격수. 원래 역사에서는 부상 때문에 스웨덴 월드컵 때 잉글랜드 대표로 뽑히고 출전을 못했지만, 역사가 변동되어 4강전 부터 출전해서 서독과 경기에서 골을 기록했다.


2.1.5. 맨체스터 시티[편집]


  • 레스 맥도웰
1955-56시즌 맨시에 FA컵 우승을 안겨준 감독. 스코틀랜드 출신이라 그런지 작중에서는 같은 국가 출신인 빌 샹클리, 멧 버스비와도 친분이 있는 걸로 묘사된다. 준영에게 눈독을 들였지만, 멧 버스비에게 하이재킹 당하고 말았다[56]. 해외 선교사인 부친의 영향으로 국적이나 인종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개방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57] 전술부분에 많은 흥미가 있어서인지 매직마자르의 MM전술을 도입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허더스필드에 있을때 선보인 4-1-2-3 전술을 잽싸게 베껴서 써먹기도 했다.

모 축구 온라인 게임에 카드로 출연하시는 맨시의 레전드 골키퍼. 이준영과는 연습 경기에서 처음 만났다. 목뼈 골절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58]과 장남의 사망 등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님에 불구하고 준영이 혀를 내두르는 선방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뮌헨 참사 당시에는 역사대로 통역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

나치독일군에서 복무하며 나치이념에 동조하던 시절을 흑역사로 여기며, 이 때문에 인종문제에 개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은퇴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코치가 된다.

  • 케네스 반즈
맨체스터 시티의 주장. 윙어로는 영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 장난끼가 심해서 준영과 악수할 때 바선생을 쥐어주는 만행(...)을 저질렀다[59].

  • 바비 존스턴
맨체스터 시티의 공격수. 스코틀랜드 대표로 선발될 정도의 실력자라 데니스 로가 알 정도였지만, 정작 주인공에겐 듣보 취급을 받았다.(...)[60]

월북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괄시당하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천재적인 재능에 주목한 준영에게 발탁되어 맨유 유소년 팀에서 뛰다가, 2부 리그로 강등 당한 맨체스터 시티에 임대되어 프로 데뷔를 한다.


2.1.6. 블랙번 로버스 FC[편집]


  • 조니 캐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비수 출신 감독.

  • 샌디 버스비
맷 버스비의 아들. 팀에서 첩자로 놀림받고 있다.

  • 가와부치 사부로
실제 일본 축구협회 10대 회장. 자국 선수들을 이준영의 대항마로 키우려는 극우 조직의 계획에 따라 우익 기업들의 자금을 지원하에 영국으로 이적하게 된다.[61] 이준영 쯤은 이길 수 있다며 호언장담했지만, 정작 팀내 주전경쟁에서도 일본의 빽으로 간신히 자리를 잡을 정도로 고전했고, 처음 맨유와 대결했을 때도 이준영을 견제시 했지만 몸싸움 한번에 쇄골부상을 입으며 맥없이 광탈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다시 나올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부상이 회복되고 시즌 후반기부터는 주전급에서도 주 전력으로 활약할 정도로 기량이 늘었다. 알고 보니, 의사가 임상실험으로 준 스테로이드로 인한 근력증강에 의한 효과였었다[62]. 이후 이것이 금지 약물임을 알게되었고 부작용 또한 자각하게 되었지만, 이것이 없으면 다시 주전경쟁에서 다시 밀릴 수 있다면서 안 들키면 그만이라고 생각, 약 복용을 강행하려고 한다.
60시즌 유로피안 컵 준결승에서 바르셀로나의 암페타민 문제가 터져 약물복용 문제가 수면 위에 떠오르자 그동안은 운좋게 피한 사부로까지 궁지에 몰리자 애꿏은 이준영을 비난하며 본인도 약을 먹고서야 간신히 주전 노릇을 하는데 하잘것없는 조센징이 약을 먹지 않을리 없다며 분통을 터트린다[63]. 그러다 결국 맨체스터와의 재전 와중 라커룸 캐비닛에 약을 숨겨 이준영을 약쟁이로 몰아가려고 하는데 거기에도 준영의 경비가 있었고, 결국 실행범인 일본 유학생의 덜미를 잡혔다. 결국 역으로 스테로이드 복용 사실까지 들통나 블랙번은 승점 10점 삭감으로 강등되는 날벼락을 겪는다.
결국 일본으로 돌아가서도 선수활동을 하지 못하고 고향에 칩거하는 처지에 놓이는데, 그러다 한일전 경기에 칼을 들고 난입해서 준영을 죽이려다 경찰에 끌려나갔다.


2.1.7. 리즈 유나이티드 FC[편집]


1961년 선수 겸 감독으로 리즈에 왔다. 본인은 2부 리그에 가난한 구단인 리즈가 싫어 AFC 본머스로 가려 했지만, 본머스도 가난해서 탈출에 실패했다고(...).그래서 계속 남아서 계속 지휘하며 팀을 다시 1부 리그로 올려놓았다.

  • 잭 찰튼
바비 찰튼의 형. 동생과는 사이가 좋지 못하다. 바비 찰튼은 프로로 일찍 자리매김한 형을 질투했고, 잭 찰튼은 강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동생을 칠투했다.(...) 장신에 빌드업에도 능한 수비수라 멧 버스비도 탐을 내지만, 리즈 유나이티드에서는 이적 불가를 외치며 잡아두고 있다.

  • 빌리 브렘너
꽤 전투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미드필더. 리즈를 리즈 시절로 만든 공신.


2.1.8. 볼턴 원더러스 FC[편집]


  • 나다니엘 로프트하우스
비엔나의 사자라는 별명을 가진 전직 잉글랜드 대표 공격수. 과감한데다 결정력이 꽤 뛰어난 편.

  • 더그 홀든

  • 어니 테일러

  • 토미 뱅크스

  • 데니스 스티븐슨
던컨 에드워즈의 사촌형. 수준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 정병탁
연세대 출신으로 준영에게 병역이행 약속을 하고 볼턴에 스카우트된다.

2.1.9.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편집]


축구 역사에 이름을 남긴 레전드 플레이어인 만큼 첫 등장 때부터 굉장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빌드업에도 능하고, 준영이 선보였던 오프사이드 트랩을 그대로 습득해서 실전에 펼쳐보였다. 준영이 틈만 나면 영입 의사를 보내지만 완강하게 거절 의사를 보였다.

  • 제프 허스트

  • 마틴 피터스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들. 츠지 마사노부의 계획에 의해 잉글랜드 풋볼 리그에 진출하지만, 웨스트 햄에서 입지가 미약하다. 어쩌다 맨유와의 경기 때 출전하지만, 준영에게 대차게 발려버렸다. 칠레 월드컵 예선 2차전 홈경기에서 한국에 역대급의 대패를 당한 후 스폰서들이 손을 때는 바람에 팀내 입지는 완전히 무너지면서 하위 리그 방출 통보를 받는다. 그래도 어떻게든 선진 축구를 배워 일본 축구를 발전시키려 애쓰는 이들이다.

2.1.10. 아스날 FC[편집]


  • 잭 크레이스턴
1956~1958 기간에 아스날을 맡았던 감독. 이준영이 허더스필드에 뛸 때 눈여겨 보았지만, 정작 임원들이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 바람에 영입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이후 준영의 활약을 보며 이 일을 떠올리며 임원들에게 불만을 터뜨린다.

  • 데이비드 허드
아스날 공격수. 나중에 맨유로 이적한다.

  • 마이크 티디

  • 스탠 찰튼

  • 데이브 보웬


2.1.11. 울버햄튼 원더러스 FC[편집]


울버햄튼의 주장이자,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 준영에게 헝가리 이야기를 듣고 빡쳐한다. 준영이 잉글랜드 대표팀에 뽑히자, 리그 경기에 뛸 때는 얄미워도 대표팀 동료로서는 든든하다는 평을 내린다. 준영의 활약으로 스웨덴 월드컵에서 우승한 후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이후 대표팀에서 공헌을 높이 평가받아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다.[64]

  • 지미 머레이


2.1.12. 첼시 FC[편집]


  • 찰스 실렛, 피터 실렛
형제 수비수. 체격도 좋고 형제의 콤비 플레이도 좋아 준영도 첫번째 만남에선 패했을 정도. 두 형제 모두 국가대표로 뽑힐 정도로 출중한 기량을 갖고 있고, 찰스 실렛은 스웨덴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로 뽑혔다. 하지만 이준영에게 밀려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찰스 실렛 본인은 그냥 큰 무대에서 많이 보고 배웠다는 입장이지만, 피터 실렛은 수비능력을 따지면 형이 더 출중하다며 불만을 보였다.

  • 멜 스콧

첼시와 토트넘의 레전드 플레이어. 어린 나이에 엄청난 결정력을 가진 공격수로 명성을 날렸다. 그의 활약에 알렉스 퍼거슨도 자극을 받았을 정도.

2.1.13. 풀럼 FC[편집]


  • 지미 힐
선수 노조 회장을 맡으며 주급 상한제 폐지를 위해 준영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 조니 헤인스
필드의 마에스트로라고 불린 최고의 패스 마스터. 펠레도 그의 패스력에 감탄할 정도.

  • 지미 랭글리

  • 조지 코헨

  • 로이 벤틀리

  • 아서 스티븐스


2.1.14.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편집]


출중한 기량을 가진 윙 포워드. 잉글랜드 대표팀에 뽑힌 신참 바비 찰튼을 잘 이끌어 주기도.

  • 도날드 하우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 수비수

  • 데릭 케반
스웨덴 월드컵에서 활약한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 공격수. 탱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저돌적.


2.1.15. 프레스턴 노스 엔드[편집]


스탠리 매튜스와 함께 잉글랜드 축구의 영웅으로 평가받는 선수. 준영이 잉글랜드 대표팀에 선발되자 잘 돌봐주었다. 스웨덴 월드컵 본선에서는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거의 출전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대표팀에서 공헌한 점을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이 수여되었다.[65]


2.1.16. 뉴캐슬 유나이티드 FC[편집]


  • 조지 스탠리 시모어
뉴캐슬의 레전드. 선수와 감독으로 뉴캐슬에 우승컵을 안겨준 명인이었지만, 그로 인한 오만과 독단으로 구단에 심한 간섭을 하고 있다. 선수들의 사생활이나 부업까지 간섭하는 막장 꼰대 캐릭터[66].

  • 찰스 미튼
뉴캐슬의 감독. 맨유 출신이지만, 탈주범으로 낙인찍혀있다[67].

  • 조지 이스트햄


2.1.17. 허더즈필드 타운 AFC[편집]


  • 샌디 케논
허더즈필드 타운의 골키퍼.

  • 레스 마시

  • 레이 윌슨
잉글랜드의 역대급 풀백으로 꼽히는 선수다. 이준영도 처음 봤을때 "21세기에도 잘 할 선수"라며 그의 체력과 수비력에 감탄했다[68]. 1959년에 데니스 로와 함께 맨유로 이적했다.

  • 켄 테일러
축구도 잘 하지만 크리켓은 훨씬 더 잘하는 선수. 크리켓 영국 국가대표팀에 뽑힐 정도의 실력자다[69].

동북고 출신 축구선수[70]. 주인공의 경기모습을 보고 그를 동경하게 되어 조셉 포스터의 도움을 받아 스웨덴까지 주인공을 찾아왔다. 주인공은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훈련을 받으면 쓸만할 것이라 평가한다. 그후 월드컵을 결승전까지 보고 펠레의 실력에 충격을 받은채 부모님 허락을 받으러 한국에 되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주인공이 사는 모즐리를 연고로 한 모즐리 AFC[71]에 들어가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페널티킥을 유도하는 등 성공적인 데뷰전[72]을 치렀다. 이후에도 좋은 활약을 보이며 4부 리그 팀인 올덤 애슬레틱 AFC으로 이적한다. 이후 준영이 뛰었던 허더스필드 타운으로 옮겨 활약을 이어나간다.


2.1.18. 에버튼 FC[편집]


  • 미키 릴

  • 바비 콜린스


2.2. FA[편집]



공식적으로 잉글랜드 축구 협회 회장이지만, 실권은 거의 없는 얼굴 마담.

  • 아서 드루리
FIFA 제 5 대 회장이자 잉들랜드 축구 협회 의장. 작중에서 글로스터 공작 만큼도 안 나오는 공기(...).

FIFA 제 6 대 회장. 소설에서는 잉글랜드 축구 협회 총무로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펼치는 남아공을 두둔한 행적 때문인지, 인종차별사상에 찌든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심판 출신으로, 현대 심판 판정 시스템을 창안했을 정도로 유명하기에 심판 위원회에 끼치는 영향력도 막강하다. 이를 이용해 이준영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곤경에 몰아 넣기도. 이준영을 축출하려 애썼지만, 결국 본인이 판정에 개입한 사실이 꼬리를 밟혔다. 인종차별 성향이 있지만 의외로 뇌물을 일절 받지 않을 정도로 청렴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다.[73] 이준영도 이러한 점을 알게 되었으나, 친해지기에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기에 그냥 소닭보듯 지내기로 한다.

이후로도 준영만 보면 투덜투덜대지만, 월드컵 우승을 안겨다 주었기 때문인지 이전보다는 덜한 편. 거기다 금지 약물 조항을 지정해 달라는 준영의 요청에 대해선 순순히 들어주며 상당히 엄격하게 규칙을 제정했다.[74]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예선에서는 본의 아니게 준영을 도와준다. 아파르트 헤이트에 대한 반발과 아프리카에 배당된 본선 티켓 0.5장에 불만을 품은 CAF를 분할하려는 시도를 했다가 아프리카 국가들이 빡쳐서 전원 보이콧 해버렸기 때문. 덕분에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플레이오프 없이 호주, 북한만 이기고 본선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대한민국 국대로 미련없이 합류하는 준영을 보고 자기가 멍청한건지 준영이 멍청한건지 알수 없어했지만 4강전을 보고 월드컵 수익이 오른것을 보며 결국 준영을 내심 인정한다.

1946년에서 1962년까지 잉글랜드 대표팀을 지휘한 감독. 뮌헨 비행기 사고로 주축 선수들을 잃고 고심하다 이준영을 잉글랜드 대표팀에 선발했다[75]. 그 효과는 실로 대단해서 잉글랜드는 8년 일찍 월드컵 우승을 거두게 된다. 프레드로 남작과도 친분이 있는데, 그의 아들 루이스와 공군에서 같이 복무한 사이라고 한다[76] 1962 칠레 월드컵 준우승 이후, 잉글랜드 감독직에서 하차했다가 준영의 요청으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사령탑을 맡는다.


2.3. 해외 리그[편집]



2.3.1. 레알 마드리드[편집]



2.3.1.1. 임원진[편집]

레알 마드리드의 구단주. 유러피언 컵 결승 전반전이 끝나자 바로 영입 제의를 날릴 정도로 준영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77]
이후에도 틈만 나면 준영을 영입하려 한다.

  • 루이스 카르니글리아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


2.3.1.2. 선수[편집]

펠레가 아직 풋내기인 현 시점에서는 그야말로 세계 최정상에 있다 해도 무방한 선수이다. 주인공도 그의 경기 모습을 보고 미래에 갖다놔도 금방 적응할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직접 맞붙어 보고는 21세기의 쟁쟁한 크랙들과 비교해도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릴 정도이다.

이런 압도적인 실력에 적수가 없어 따분해하던 와중에 주인공이 부각을 들어내고 유로피안컵 결승에서 맞붙게 되자 마침내 마땅한 적수와 붙을 기회가 생겨 즐거워 한다. 심지어 준영의 우주방어에 번번히 공격이 막혀도 수비가 이 정도는 돼야지라는 여유만만한 태도를 보인다. 팀이 패배 위기에 몰리자, 그제서야 정색을 하지만 경기를 뒤집진 못했다.

랭스 출신의 프랑스 축구 레전드. 뛰어난 공격수지만, 주인공과 맨유의 우주방어에 막혀서 그런지 활약은 없다.(...)선수인지 통역사인지 헷갈릴 정도다 원 역사에서는 1958년 발롱도르 수상자지만, 유러피언 컵을 날려먹은 탓인지 바비 찰튼에게 수상을 빼앗기고 만다.

매직 마자르 최강의 공격수. 악마의 왼발로 악명이 자자하지만, 헝가리에서 망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출전하지 못했다. 뮌헨 사고 이후 레알 마드리드에서 맨유에 임대를 제안했지만, 영어를 못하면 뛸 수 없다는 규정에 걸려 무산되었다. 주인공이 손꼽아 대결을 기다리는 선수 중 하나지만, 아직까지 전면에 나타나진 않았다. 하지만 워낙 명성이 자자하다 보니 심심찮게 언급된다.

그리고 마침내 1958-59 시즌 유러피언컵 4강 2차전에서 이준영과 맞붙는다. 엄청나게 강력한 슈팅으로 맨유 문전을 위협하다 급기야 이를 육탄 방어로 막아낸 준영에게 가벼운 뇌진탕 부상까지 안겨주었다. 이로 말미암아 준영의 상태가 거의 최악으로 떨어지면서[78] 맨유는 탈락 일보 직전까지 몰린다. 하지만 맨유의 반격이 시작되고, 본인은 왼발만 고집하는 약점이 노출되면서 끝내 고배를 마시고 만다. 그래도 두 골이나 넣으며 거의 보스급 포스를 발휘했다.[79]


2.3.2. FC 바르셀로나[편집]



2.3.2.1. 임원진[편집]

  • 프란세스크 미로 산스
FC 바르셀로나의 회장. 레알 마드리드의 유러피언 컵 연패를 저지한 이준영의 활약에 기뻐하며 그를 바르셀로나의 명예 선수로 등록한다. 한편으로 진짜 이준영의 영입도 시도하지만, 본인의 거절로 무산.

금욕적으로 알려져있지만 실상은 선수들을 똥군기로 지도하고[80] 몰래 도핑을 시키는 인물. 오만한 도발로 맨유의 어그로를 끈다.


2.3.2.2. 선수[편집]

흡혈귀의 대선배. 굉장히 출중한 득점 능력을 가진 공격수로 1959-60시즌 유러피언 컵 준결승 1차전 맨유 원정에서 승리에 공헌한다.

바르셀로나의 에이스. 스페인에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로 꼽힌다. 에레라 감독과 사이가 몹시 좋지 않다.

매직 마자르 출신의 공격수. 헤딩능력이 무척 뛰어나다. 스위스 월드컵 한국전에서 뛴적이 있어, 이준영이 여느 한국선수들과 다른 별종임을 동료들에게 알려준다.


2.3.3. FC 디나모 모스크바[편집]


영국 국가 대표팀으로 선발된 주인공과 모스크바에서의 평가전에서 처음으로 만난다. 주인공 기준에서 모두 듣보잡(...)들인 소련 국가 대표팀 구성원들 중에서 주인공이 유일하게 알고 있을 정도로 뛰어난 골키퍼이다. 단순히 선방만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잔소리(...)를 통해 수비를 다잡는 현대의 골키퍼와 같은 능력을 보여준다. 웬만한 슈팅은 죄다 걷어내서 아예 공을 잡고 생각하지 않고 바로차는 것이 그나마 들어갈 기미가 보이는 정도이다.

북한이 이준영의 대항마로 소련에 축구 유학을 보냈을 정도의 기대주. 디나모 모스크바에서 뛸 때 야신에게 유럽 일류 수준의 수비수와 동등한 기량을 가졌다고 평가를 받았다[81]. 지주의 아들이라는 치명적인 출신 신분을 숨기고 있다가, 이준영이 기자들 앞에서 북한 대표팀도 지주의 아들을 뽑는다더라며 발언을 하는 바람에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이후 1차전 패배하자 그대로 북한 대표팀에서 이탈, 스위스로 망명한다


2.3.4. AC 밀란[편집]


파울로 말디니의 아버지. 이 시대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선수이다. 맨체스터에서 있었던 유러피언 컵 1차전에서 맨유에 패하고 2차전 산시로에서 설욕을 노리지만, 도리어 이준영에게 카운터 결승골을 먹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AC 밀란 선수들은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폭력축구로 대응하다 도리어 시간만 축내고 공격수 지안카를로는 제풀에 부상을 당해 실려나가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수습하려 애쓰던 말디니는 맨유의 공격을 저지하다 상대 선수 케니 모건스에게 뒤통수를 걷어차였다(...). 결국 시합에서도 지고, 경기 전에 준영과 내기를 했다가 애마인 알파 로메오 줄리에타 스파이더까지 잃었다. 그래도 1962-63 유러피언 컵에서 맨유를 꺾고 우승하면서 복수에는 성공한 듯[82].

1940~50년대를 주름잡은 스웨덴 그레놀리 삼총사의 일원. 유러피언 컵 맨유전에서 미드필더로 여러차례 좋은 패스를 밀어줬지만, 공격수들이 죄다 날려먹었다.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8강에서 잉글랜드 대표팀과 맞붙으면서 또 한 번 이준영과 만나지만, 그 경기 역시 역전패로 패배하고 말았다.

  • 로렌초 부폰
잔루이지 부폰의 할아버지의 사촌. 같은 골키퍼 포지션.

1962-63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알렉스 퍼거슨에게 거친 파울을 하고, 을용타를 맞았다고 한다(...).


2.3.5. 스타드 드 랭스[편집]


프랑스가 자랑하는 최강의 공격수. 유리몸 기질이 있어 이준영의 거센 마크에 속절없이 당했다.


2.3.6. SL 벤피카[편집]


포르투에서 감독으로 있던 시절 펠레를 마음에 들어하지만, 산투스 구단의 반대로 영입하지 못했다[83] 펠레가 영국으로 간 후에 벤피카를 맡았는데, 이때 유망주였던 에우제비우를 토트넘 감독 빌 니콜슨에게 소개해 줬다.
실제 역사와 달리 유러피언 컵에서 우승을 거두지 못하는데, 이 때문에 우승을 위해서는 선수들의 사기를 높여야 한다고 판단, 임금을 인상해 줄 것을 구단에 요구[84]하지만, 벤피카는 이를 거절, 분노한 구트만은 역사에서 했던대로 저주를 내렸다.


  • 주제 아우구스토

  • 주제 토히스

  • 제르마누


2.3.7. CA 페냐롤[편집]


자메이카 출신 영국인 아버지와 에콰도르 국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사실상 페냐롤을 먹여 살린 에이스 선수로, 실제 역사에선 산토스의 펠레에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공격수라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 유럽 챔피언 맨유와 경기를 해보고 유럽 진출에 의욕을 보였고, 이후 맨유로 임대, 주전 공격수로 상당한 활약을 펼쳤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2.3.8. PSV 에인트호번[편집]


맨유가 유럽 전지 훈련으로 네덜란드를 방문했을때 주인공과 잠시 조우.


2.3.9. AFC 아약스[편집]


맨유와 아약스의 친선 경기때 출전하지만, 주인공에게 발린다.(...)[85] 이후 감독으로 부임한다.

아버지와 함께 맨유와 아약스의 친선 경기를 구경한다. 이후 1964년에 프로무대에 데뷔, 준영이 영입하려 했지만, 미헬스 감독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준영은 이후 조지 베스트에게 네덜란드에 진짜 천재가 있으니 경계하라고 일러준다.


2.3.10. FK 두클라 프라하[편집]



  • 밀란 드보르작

북한 팀의 주장. 지주아들이냐는 준영의 도발에 발끈한다. 준영에게 아프리카 선수급의 운동능력이라는 평을 듣는다.

2.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2.4.1. 대한축구협회[편집]


  • 김윤기
1957에서 1959년까지 축협회장을 맡은 인물. 등장 시점에서는 교통부 차관. 이준영의 선전 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아들 뻘인 곽영주에게 월드컵 출전 초대장을 분실한 실수가 들먹여져 질책을 당한다.

  • 민관식

2.4.2. 지도자[편집]


준영의 주선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는다. 이후 맨유의 유소년팀 코치까지 맡아 조지 베스트를 지도하기도.

군대식으로 대표팀을 통솔해 준영의 우려를 산다.

  • 위혜덕

  • 이유형
한일전에 지면 대한해협에 빠져 죽겠다고 선언했던 감독. 부친이 독립운동가라서 반일의식이 유달리 강하다.

시대에 앞서 여자 축구 선수를 지도하고 있다.


  • 박병석
동북고 감독. 실제 역사에서 조윤옥이나 김기복, 이회택 등 60~70년대에 활약한 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가르친 명장이다. 윈터보텀 사단의 코치로 합류하여 월드컵 진출에 힘을 보탠다.

2.4.3. 선수[편집]


시위 진압을 거부하다 함흥철과 함께 영창에 끌려갔다. 거기서 꿈에서 카잔의 기적을 본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최정민과의 단짝. 은퇴하고 코치가 된 정민과는 달리 66년 월드컵까지 현역으로 뛴다.

연세대 출신. 이준영의 첫 방한때 연고대연합팁과 특무대와 특별 경기에서 출전하여 준영에게 과감히 도전하는 용맹함을 보인다. 이후 준영에 자극 받아 자비로 영국행. 동물원에서 일하며 축구를 배우다 보이텍 탈주사건을 잘 해결 한 덕분에 하트 오브 미들로시언 FC에 입단한다. 이후 보이텍과 친해져 레슬링 놀이를 하며 몸싸움 실력을 키우게 된다.

준영이 21세기에 있었던 시절 격려차 방문한적이 있었다.

부산사투리가 걸걸한 투머치 토커.

중학교에서 교장이 우승했는데도 불고기 파티 약속을 파토내버리자 우승기를 담보로 파티를 벌이는 패기를 보이고 트집잡혀 전학을 가게 된다. 이후 동북고로 진학한다. 선배 조윤옥의 도움으로 영국에서 잠시 축구를 배우고 귀국, 이후 국가대표팀에 선발된다.

캄보디아에서 열린 잉글랜드 월드컵 예선 호주전에 출전. 준영은 실제 역사에서 그가 큰 실책을 저지른 것을 떠올리며 걱정하지만, 뛰어난 활약으로 승리에 공헌한다.

실업팀 승리 제화에 뛰고 있는 어린 공격수. 남다른 신장 덕분에 주목을 받고 있다.

  • 정강진
북한과의 경기중 한봉진에게 아구창을 맞지만 끝까지 침착하게 경기를 플레이한다.

  • 박승옥

월드컵 경기에서 준영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라떼를 시전한다[86]


2.5. 중화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 리후이탕
통산 1260골을 넣은 홍콩의 축구왕. 중화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홍콩 시민권자로 알려진 준영이 중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괄시받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보석을 놓쳤다며 한탄한다.


2.6.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2.6.1. 감독[편집]


  • 타카하시 히데토키
일본대표팀의 감독. 준영을 기합으로 막으라고 독려하지만 결국 0-10으로 대패한다.

자칭 작전의 신인 츠지를 불신하여 흑룡회의 스폰서를 거절하고 자력으로 서독유학을 간다. 이후 준영의 정보를 대표팀에 전달하지만 팀은 이를 제대로 보지 않고 흘려버리고 한일전에서 대참사를 일으킨다. 이후 감독이 되어 예선에 안나가려는 자국을 설득해 예선에 나가지만 북한에 참패한다.


2.6.2. 선수[편집]


  • 미야모토 마사카츠
히라키와 나가누마에게 준영에게 몸싸움을 걸자하지만 두사람은 고개를 젓는다. 한편으로 선배 가와부치를 안타깝게 여긴다.
  • 미야모토 테루키
한국의 골대를 향해 중거리슛을 날리지만 홈런볼이 되고 준영은 고시엔이냐고 비웃는다.



2.7.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북한 팀의 감독. 김일성의 간섭에 내심 한숨 쉬는 중. 남한에 패하자 경질당한다.

남한팀을 상대로 페널티킥을 차지만 함흥철의 선방에 막혀버린다.

  • 한봉진
예선전에서 정강진을 주먹으로 후려갈기는 등 더티플레이를 하다 퇴장 판정을 받는다. 이에 불복하고 심판의 휘슬을 낚아채며 대들다 빡친 주심이 경기중단을 선언, 북한은 몰수패를 당한다.


2.8.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 벵트 구스타프손

  • 레나트 스코글룬드
엄청난 드리블 능력을 가진 스웨덴의 레전드 윙어. 심한 알콜중독자로, 경기 시작 전에 취한 상태로 출전해서 준영과 잉글랜드 선수들을 어이없게 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선제골을 어시스트 할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펼쳐 보였다.


2.9.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2.10.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한 수비수. 영국에 망명해서 막일을 하며 살다 준영의 눈에 띄여, 모즐리 AFC의 감독이 된다. 조윤옥이 프로 무대에 갈 수 있게 잘 지도해 줬다.

3. 非 축구계 등장인물[편집]



3.1. 영국[편집]



3.1.1. 왕실[편집]


1957-58 시즌 FA컵 결승전 직전에 등장. 주인공이 미래인임을 알고 있음을 준영과 프레드로 일가 앞에서 말한다. 직간접적으로 준영을 후원해 주고 있다. 빼빼로를 좋아하는 듯.

축구를 좋아해서 아스날 경기를 보러오곤 한다.

3.1.2. 정계[편집]


동양인이 축구 종주국의 리그에서 활약한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보이면서 첫 등장한다. 키를 보고 드골을 떠올리며 비아냥 거리는 것은 덤. 이후 준영의 당당한 태도와 역사적인 지식[87]과 소련의 약점을 뚫어보는 식견, 스푸트니크 쇼크를 맞춰낸 것과 경기를 보고 준영을 인정한다.
이후 말년 낙으로 축구를 관람하며 지내고 준영과 친분을 쌓는다. 그와의 친분이 준영의 영향력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갈리폴리를 후회하게 되었고 준영에게 인생을 즐겁게 살라는 마지막 충고를 남긴다.
알버트와는 뮌헨 협정 이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지만 알버트가 작위를 받고 은퇴했다.

알버트의 부탁을 받아 준영에게 신분증을 만들어 주었다. 런던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데, 이후에도 준영의 사업체에 대해서 법적 관리를 맡아 주고 있다. 맨체스터 사교 파티에 처칠을 모셔와 준영과 첫만남을 주선한것도 그녀의 역할. 원래 역사대로 1959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3.1.3. 재계[편집]


  • 데이비드 브라운
애스턴 마틴의 회장. 미래에서 온 준영의 차를 보고 연구한다. 맨유의 원정에 자신의 전용기를 빌려주는 등 가까이 지내며 준영의 사업에도 투자와 도움을 주고 있다.

준영과 함께 제화 및 스포츠 용품 사업하며 번창한다. 이후 회사명을 나이키라 짓는다.

  • 월터 오웬 벤틀리
벤틀리 모터스의 창업주. 알버트의 주선으로 준영의 차를 본다.


3.1.4. MI6[편집]


  • 제이미 번즈
MI6 요원, 미래인인 준영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몰래 조사하다 뮌헨 참사 직전에 이준영 본인과 접선하여 협력 관계를 구축한다. 주인공을 잡아가서 코로 오트밀(...)을 들이부어 미래 정보를 뽑아낼 것이라는 대다수 독자들의 예상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주는데, 호의적인 관계 구축이 미래 정보를 빼내는 데 더 유리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라고.미래 정보를 댓가로 여러모로 준영을 도와주고 있다.


3.1.5. 음악계[편집]



3.1.5.1. 비틀즈[편집]

준영이 원정경기에 가는 도중에 탄 기차에서 처음 등장. 이때 Ob-La-Di, Ob-La-Da를 듣는다. 나중에 비틀즈 맴버들이 나왔을때 다시 등장. 앤지를 보고 첫눈에 반해서 사귀게 된다. 이후 한국에 있는 루이스의 묘소에도 성묘를 온다.

레넌의 공연을 보러갔을때 처음 등장.

실제 역사보다 빠르게 비틀즈의 매니저가 되려고 한다. 주인공이 쿼리멘 맴버들과 부른 Stand up이라는 노래에 감명을 받은 듯.



3.1.5.2. 롤링 스톤스[편집]

LA에서 만나 준영의 팀과 미국대표팀과 특별 경기 게스트[88]로 출전했다. 다만 큰 실수를 저지른 탓에 본인 입장에선 그 당시 경기가 흑역사로 생각될 듯.



3.1.6. 배우[편집]


1957년 시점으로 청소년이라 주인공에게 사인을 받는 축구팬으로 짧게 등장.

120화에 첫 등장. 준영의 빼빼로를 마음에 들어한다. 한국의 전쟁난민과 고아들을 도와주고 있다.


3.1.7. 문학계[편집]


준영이 옥스포드 대학을 방문했을 때 만난다. 이후 가와구치 사부로의 스테로이드 파동때 다시 등장 그가 저술한 한글과 일제강점기 당시의 한글탄압에 대한 가공 저적물 '왕의 문자'는 한국과 일본의 국가 감정에 대해 설명하는 장치로 쓰인다. 4월 혁명 이후 한국 방문 의사를 밝혔다.

주인공의 영향으로 출판사의 압박을 받아 닥터 노의 이름을 닥터 리로 설정변경한다.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를 했다가 준영에게 찍혀 막대한 도박빚을 지고 007 시리즈의 2차 창작과 캐릭터 권리를 넘기게 된다.[89]


3.1.8. 화이트 디펜스[편집]


이준영과 그를 지지하는 한국계 이민자들을 혐오하며, 이준영을 해치기 위해 일본 극우와 손을 잡거나[90] 영국 극우단체들을 지원한다. 하지만 이준영에 대한 영국 정부의 보호와 극우단체들에 대한 영국 시민들의 혐오로 점차 궁지에 몰리고, 결국 미스터리 푸드에 독극물을 몰래 주사한 부하가 걸려 모리타니 밀수꾼들에 노예로 보내진다.[91]

  • 싱클레어
준영의 빼빼로에 독을 넣는 테러를 벌이지만 잡혀서 준영에게 곤장을 맞는다.

  • 더글러스
맨체스터의 불량배로 와일드 테리어라는 조직을 이끌고 있으며 터너의 조직과는 대립관계에 있다. 2차대전때 일본군에 중공군에 당한 일로 동양인에 감정이 안좋다. 모슬리의 사주로 경기장에서 준영을 암살하려 시도한다.


3.2. 대한민국[편집]



3.2.1. 역대 대통령[편집]


준영의 승리 소식을 경무대에서 들으면서 등장. 준영을 빵과 서커스에 이용해보려 하지만 역사대로 혁명이 일어나 하야한다. 하야하면서 군 앞에서 탱크맨 역할을 한 준영을 불러 자신의 독재를 정당화 하는 변명을 하지만, 준영에게서 "당신의 가장 큰 죄는 독재가 아니라 미래를 짓밟은 것"이라는 팩트폭력을 당한다. 이후 크게 자책하고 준영에게 자신처럼 권력에 빠져 괴물이 되지 말라는 충고를 해준다.

중화민국 대사로 첫 등장. 준영이 이야기에 국내 정세가 심상찮음을 깨닫고 이후 대사직을 사퇴하고 국내로 돌아와 본격적인 정치행보를 시작한다. 4월 혁명 이후 민주당과 군부의 지지를 받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3.2.2. 정치인, 정부 각료[편집]


체신부 장관으로 준영의 대표팀 합류에 영국 국적임을 내세워 부정적인 의사를 보인다. 이에 곽영주가 그의 일본군 장교 시절 친일행위를 극딜하자, 당시 군조였던 곽영주의 과거를 언급하며 맞대응한다.

초대 주영 한국대사. 준영이 런던 원정을 왔을때 교민들을 모아 응원하러 와줬다. 제네바 해양법 회의에서 미국 측에 반대하여 평화선을 고수하다가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강제 사임 당했다. 이후 준영의 부탁을 받아 미래 재단의 이사장을 맡는다.

혁명 이후 제2공화국에서도 부통령으로 당선된다.

김홍일의 비서실장으로 등장.


3.2.3. 군부[편집]


안중근 의사의 5촌 조카. 억관이 김홍일과 함께 소개받은 인물.

4월 혁명 당시 부산지역 군수사령관으로 등장했다.[92] 밀항하려는 이기붕을 부산에서 체포한다. 주인공 때문에 역사가 바뀌어서 쿠데타도 못하고 전역, 이후 대한주택공사 사장으로 부임해서 도시 주거 개선 및 농어촌 근대화 사업을 진행해 호평을 받았다[93]. 김홍일에게 고속도로 건설을 주청하면서 차기 도로공사 사장으로 부임할 예정. 이준영을 만났을 때도 이와 관련한 얘기를 하며 관련 토목 업체 소개를 부탁한다. 월드컵이 끝나고는 신문사설에 메르테카컵 같은 정기적 축구대회를 열자고 주장한다.

백범 김구의 차남. 공군참모총장으로 아버지의 정적이었던 자유당 하는 꼴이 못마땅해 체포령을 무시하고 지나갈수있게 도와준다. 이후 군에서 전역한 후 한국독립당의 국회의원으로 정치행보를 나가고 있다.

준영이 탱크맨 역할을 할때 계엄군으로 제15보병사단을 이끌고 서울로 들어온 사단장. 김홍일과 이준영의 설득에 시민들 편으로 돌아섰다.

4월 혁명이 성공리에 끝나자, 후배 육사 생도들을 동원하여 지지 행진을 펼친다[94]. 하지만 혁명이 끝난 상황에서 정치에 숟가락을 얻으려는 이들의 행태에 김홍일이 분노하였고, 이후 군에서 퇴출된다.

육군 본부에서 정보참모로 활동하며 준영의 납북위험 문제에 대한 보고를 올린다.

이준영의 경호담당 장교로 부임하였다 이희택의 처지에 동병상련을 느낀다.

김홍일의 후임 중화민국 대사로 부임한다.
자유당에 팽당한 원한으로 4월혁명에 동참한다.

3.2.4. 독립운동가[편집]


독립운동가, 인도네시아에서 고려독립청년당을 조직해 일제에 대항하는 활동을 하다 체포, 해방 후 귀국했지만 해방 정국에 절망하고 고국을 떠났다.[95] 영국에 와서 맨체스터의 차이나 타운에서 식당을 하며 지내고 있다가 한국인 축구 선수의 활약 소식을 듣고 경기장에 찾아와서 준영과 친분을 쌓는다. 이후 준영의 제안으로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했다. 한국에서 라면 공장을 세워 배고픈 동포들을 구제하는 게 꿈인 선량한 인물이다. 박춘금과 흑룡회의 협박에 맞서 5명을 죽이고 난 뒤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심문과정에서도 의연했으며 일부 경찰들도 그를 이해한다는 말을 할 정도[96]였지만 사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제이미 번즈와 이준영의 개입으로 일본에 다소 적대감이 있는 MI6 협력자로 꾸며져 징역 20년으로 삭감, 이후 MI6의 도움으로 신분 위조를 통해 감옥에서 빠져나왔다.[97] 후환을 우려해 가족들과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 뒤에, 고려독립청년단 시절의 가명인 '이활'이라는 이름의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98]. 준영의 부탁으로 강남땅과 잠실 쪽을 매입하는데, 강남은 식량자급 쪽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했으나, 모래밭인 잠실은 왜 사들이는지 의문을 가졌다.
한편 사업하는 이중섭의 친구에게 소 그림을 진품으로 사들였는데 준영이 그 그림의 유래를 설명하자 놀라는 모습을 보이고 회사의 심볼을 살찐 소로 정한다.

귀국한 억관과 신발 사업을 논의하며 엘칸토금강제화의 창업주들을 소개한다. 그 자리에서 그가 준영과 손을 잡았다는 소식을 듣고 놀란다.

위생검사를 빙자한 부패 공무원들의 돈뜯기 때문에 곤란해하는 억관을 도와준다.

준영과 함께 한영재단을 설립하고 재단의 관리를 맡는다.


3.2.5. 재계[편집]


삼성의 창업주. 사업건으로 준영과 만나게 된다.

원래 일본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영국 유학을 택했다.
맨체스터에 와서 토목 건설 사업에 참여 하는 중. 주인공은 '왕회장'이라고 칭한다.
박정희의 부관으로 등장. 군을 퇴역하고 사업을 하겠다고 영국으로 가겠다고 한다.

곽영주에게 장학재단 명목으로 석유사업금을 뜯기며 불쾌해한다.

엘칸토와 금강제화의 창업주들. 준영을 통해 억관과 함께 합작회사 승리제화에 참여한다. 한편 이 구두방 사장님의 연줄을 통해 윤옥이 월드컵때 준영을 찾아가는 계기가 된다.

3.2.6. 스포츠계[편집]


1960년 로마 올림픽 단장을 맡았다. 축구 대표팀이 영국 전지훈련을 할때 육상선수들도 참여시켜 달라고 요청해서 함께 온다. 네임드급 스포츠 스타다 보니 준영은 그를 만나보는 것을 진심으로 영광스러워한다.

한일전을 관전하며 준영을 응원하다 스승 역도산의 타박을 듣는다.
도쿄 올림픽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따지만 시상식에서 태극기가 거꾸로 올라가는 상황에서 애국가 대신 기미가요가 연주되자 격분한다.

3.2.7. 자유당 정권[편집]


기생집에서 준영을 불러 노래를 부르게 하지만, 빈정대는 어조의 희망가를 들은 후 대국적으로 하십시오[99]라는 소리만 듣고 격분한다.[100] 4월 혁명이 일어나자 실제 역사와 다르게 밀항을 시도하지만 박정희에 체포된다.

법무부 장관으로 준영에게 이단심문관 노릇을 해보려 하지만, 기자로 위장한 검찰의 조사관이 김일성 개새끼 해보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내뱉는 준영에게 역관광당하면서 실패한다.

준영을 잘 이용해보고자 호의적으로 대해준다. 준영은 그의 행적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적당히 거리를 두지만, 곽영주의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미래에 일어날 상황에 대해서 경고를 해 주었다. 하지만 그 경고를 무시하고 결국 발포 명령을 내렸다가 이후 시민들 편에 선 계엄군에게 끌려갔다.


역사와는 달리 암살시도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다. 영국으로 준영을 찾아와 대표팀 발탁을 제안하고 밀수 중간책이 될 것을 제안했다가 오히려 준영과 MI6의 공작에 당해 비자금만 탈탈 털리고, 이억관의 대타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동대문 회장이라고 해서 처음에 준영은 이정재인 줄 알았다. 이승만을 찬양하는 관제 영화에 준영과 친분이 있는 오드리 햅번을 출연시키려 해서 준영을 어이없게 만든다. 곽영주와 함께 몰래 준영의 석유 사업에 투자금을 대지만, 혁명이 터지면서 체포된다[101].

임화수의 명령을 받아 이준영을 데리러 왔다. 준영은 드라마와 달리 못 생기고 싸움도 잘 할 것 같지 않다고 깠다.(...)

일명 돼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조직 폭력배로 유지광의 부하.


3.2.8. 구 대한제국 황실[편집]


주인공 일행이 한국에 와서 창덕궁을 관광할때 만났다[102] 4월 혁명 당시 절에 숨은 학생들을 보호해준다. 그중에 준영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세상의 변화에 순응하지만, 사동궁 이석이 가수가 되겠다고 하자 집안에서 파버리겠다고 대노한다. 그래도 큰엄마 입장에서 조카가 잘되기를 바래서 준영의 재단에 시험을 칠수 있게 부탁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의친왕의 10남.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하다 큰엄마인 황후의 주선으로 시험을 치르고 간 유학길에서 미8군에서 공연하던 때 알고 지낸 신중현과 만나 밴드를 결성한다.

황실의 재산을 관리하던 와중에 자신의 할아버지를 구해준 황후에게 준영이 감사해서 수표를 전해주는걸 인수한다.

3.2.9. 기타[편집]


  • 김인수
맨체스터로 일하러 온 한국인 노동자. 테러로부터 준영을 지키려다 사망. 미래에 그의 후손 제이크 김은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하며 이준영에 대해서 조사하고 있다.

김용우의 추천으로 미래재단에 장학생으로 오게 된다.

영국에서 교포들을 상대로 공연하며 최신 음악을 배우다 다시 만난 이석과 함께 밴드를 결성한다.



3.3. 북한[편집]


준영의 활약으로 남한이 선전하자 문화부 인사들을 갈구며 월드컵에 나가겠다고 벼른다. 자기 욕을 한 준영을 괘씸하게 생각하지만 선전도구로써의 가능성을 점치지만 준영은 대놓고 그를 숙청해야한다고 기자앞에서 떠든다. 개마고원에서 선수들을 특수훈련이라는 명목하에 가혹한 훈련을 받게 하고 소련에서 도핑용 약도 들여오지만 팀은 남한에 패한다. 이후 남한에 단일팀 제안을 하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중국과 소련으로부터 독자노선으로 나가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산다.

  • 손연형
체코슬로바키아 주재 북한대사. 주인공을 선전도구로 끌고가려 하나 면전에서 김일성 욕을 듣는다.

  • 문상철
로동신문의 기자로 전형적인 어용 기레기. 일본에 파견되어 준영을 취재하지만 자본주의자인 그에게 집착하는 김일성을 반동으로 매도하는 준영에 관광당한다. 이후로도 남한 대표팀을 취재하나 준영에게 극딜만 먹는다.

  • 박숭걸
북한의 문화상으로 남한과 비교하며 대표팀을 갈군다. 이후 패배책임을 물어 명례현을 경질하고 직접 지휘하지만 결국 또 패배하며 북한은 탈락한다.

3.4. 미국[편집]


  • 빌 바워만, 필 나이트
원 역사의 나이키 창시자들. 이름을 석점당해 BRS[103]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한다. 준영과 비즈니스를 위해 영국을 방문한다.

  • 로버트 갤빈
모토로라의 CEO. 만국박람회장에서 카린에게 미래의 통신기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라며 재미있어 한다. 이후 준영과 만나 명함을 준다.

3.5. 프랑스[편집]


  • 제라르 드 보그
보그 백작. 터너 신부의 아버지이지만 터너는 사생아였기에 사이가 좋지 않다. 프랑스 축구에 대한 강한 자긍심을 품고 있다.

  • 앙리 드 보그
보그 백작 가문의 아들로 터너 신부의 이복형. 이복동생의 앞날을 걱정할 정도로 선량한 인물이지만, 부친을 닮아서 호색한 인물. 여자보는 눈도 없는지 매번 이상한 여자들을 데리고 나타난다.

개빠 할망구 프랑스에서 터너의 형 앙리의 파트너로서 등장했다.[104]

보그 백작의 소개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클럽하우스 설계를 맡았다. 준영의 현대식 보일러 설계에 흥미를 보인다.

3.6. 폴란드 망명 정부[편집]


  • 로베르트
알버트가 소개해준 준영의 보디가드.

폴란드의 참전영熊. 에딘버러 동물원에 있다가 탈주했다.(...) 이때 보이텍을 동물원으로 데려온 게 한국 선수인 차태성.

애스턴 마틴의 엔진 개발자[105].


3.7. 일본[편집]


일본 총리. 공들여 유치한 올림픽에서 거꾸로 된 태극기와 기미가요 사태로 국제적 망신을 당한 와중에 준영의 사설을 보고 짜증을 낸다. 한일 국교 정상화가 일본의 의도대로 되지 않을 것을 직감, 결국 총리직을 다음 타자에게 넘기고 튀어버린다.

야쿠자 두목. 영국이 외국인 선수 기용 규제를 풀자 츠지 마사노부와 준영을 견제하기 위해 선수들을 부른다. 하지만 한국인 노동자의 동생까지 인질잡으며 벌인 테러로 극대노한 준영과 MI6의 공작으로 죽는다.

패전한 일본의 자긍심을 되찾아 오겠다는 의도로 자국의 대표 선수들을 이준영의 대항마로 진출시키는 계획을 짰다. 하지만 계획은 순조롭지 않았고, 영국 파시스트들이 일으킨 노팅힐 폭동을 틈타 이준영을 제거하기 위해 작전을 짜지만, 이 역시 실패. 이후 수도승으로 위장하고 아일랜드로 튀려 하지만 MI6에 잡히고 만다.

재일 교포 출신의 야쿠자로 한국 이름은 정건영. 코다마와 협력관계에 있던 조폭이었지만 MI6의 사주를 받고 코다마를 배신해 죽인다.

  • 니시 하루히코
주영 일본대사. 준영의 활약을 못마땅해 흑룡회를 부른다. 피해자 코스프레와 대동아공영권을 부르짖는 전형적인 일본 극우.

가명을 쓰고 준영의 라면 특허를 훔치기 위해 영국에 입국하지만 억관에게 참교육당하고 사살당한다.

이미지 그대로 마녀로 나온다. 유명인 옆에서 자신의 인지도를 노리는데 준영에게도 마수를 뻗치지만 거절당하고 앙심을 품는다. 앙리의 곁에 붙다가 레논과 만나면서 관심을 보이는데, 준영을 험담하다 레논에게 뺨까지 맞아서 원역사완 달리 맺어지지 않고 악연만 쌓았다.

제자들과 한일전 경기에 관전을 와서 한일 관객들의 난투극을 제지한다. 태연하게 중립을 고수하며 경기를 지켜보지만, 한국이 크게 이기고 있으니 내심 좋아라 한다.

3.8. 그 외 국가[편집]


베오그라드에서 벌어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의 경기를 관전한다.

벨기에의 왕제(王弟). 1957-58시즌 유러피언컵 트로피를 수여자로 등장했다.

스웨덴 국왕. 한국인인 준영을 보고 자신이 발굴한 경주를 회상한다.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레알이 지자 추가시간을 더주는등 꼼수를 부리지만 결국 패배하자 자리를 비운다.

MI6의 요청을 받아 준영이 가져온 미래의 기술에 대해서 연구한다. 한편으로 시간 이동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리즈가 미래 컴퓨터 연구를 위해 그의 양자역학 강연을 들으면서 등장.

준영이 밀라노에서 말디니와 내기를 하기 직전에 백화점에서 만났다. 밀라노의 광팬.

캄보디아의 국왕. 친북성향이었던 인물답게 남한 선수들에겐 건성으로 인사하지만 북한선수들은 따뜻하게 포옹해준다.

한국의 월드컵 본선진출을 축하하며 김신을 통해 축전을 보낸다.

  • 장 밥티스트 아우구스트 거스 케슬러
로열 더치 쉘의 회장. 네덜란드 유전 발견을 계기로 준영과 북해 유전 사업을 논의한다.

[1]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시설갈때 도움도 안주던 친척들이 선수로 성공하자 득달같이 달려와서 알려준 사실. 이때문에 영국에서는 왕족으로 알려졌다.[2] 처가도 카톨릭교도여서 집안에 잘 녹아들수 있었다.[3] 아예 없진 않고 예전에 프랭크 수라는 중국계 선수가 있었다.[4] 그렇다고 사방팔방에 떠들고 다니는 건 아니고, 알버트 일가처럼 가까운 사람들이나 극히 일부만 알고 있다. 별외로 워낙에 플레이가 뛰어나다보니 미래에서 온 것 같다는 평을 듣고 있기도.[5] 적응이 덜 되었다고 할만한게, 2021년 3월 최신 연재 기준으로도 1년이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몸만 달랑 온 것도 아니고 2020년대의 애스턴 마틴 차량과 같이 넘어왔기 때문에 숨긴다고 완전히 숨겨지기도 힘든 상황이기도 했다.[6] 일부 독자들은 당시 후진국인 한국은 버리고 영국에 올인하는 게 맞다며 한국에 미련을 두고 있는 주인공의 행동을 비판하기도 하는데,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런 독자들의 주장은 근시안적이라 할 수 있다. 축구든 경제든 미래에 한국도 훗날 엄청난 발전을 할 텐데, 당장 모국이 가난하고 본인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손절했다가는 후대에 절대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없다.[7] 1950년대 기준으로 굉장히 사기적인 신체 스텟이다. 당시 축구계는 180대만 되어도 굉장한 장신으로 취급했을 정도.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 선수인 최정민만 해도 178cm로, 아시아에서 거인 선수 취급을 받았다.[8]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니 음식 문제로 곤란을 겪어서 유튜브로 백모씨의 요리를 배웠다고.욕쟁이 요리사의 레시피도 습득하고 있는 듯 하다. 노래는 클럽 가수들 보다는 낫다는 평.[9] 1958년 기준으로 최대상한선인 17파운드를 받았는데, 일반 노동자 주급의 2~3배는 된다. 준영은 21세기 자기 주급에서 만단위나 깎였다고 허탈해 했다.[10] 21세기에 태극마크를 달았던 적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대표팀 선발에 대한 미련이 있었지만, 아직 FIFA에서 국적제한도 하지 않고, 당장 월드컵에 나가고 싶은 욕심도 있어 승락했다.[11] 대영제국 훈장은 의회의 심사를 받아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 이에 영국 여왕이 자신의 권한으로 수여할 수 있는 이 훈장을 내렸다.[12] 이 때문에 준영이 서재에서 반지의 제왕 책을 고르면서 실마릴리온(톨킨 사후에 출간)을 본적이 있다고 했다가 금방 정체가 들통났다. 사실 그 전에 준영이 미래에서 가져온 애스턴 마틴 자동차를 보고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다.[13] 하지만 리즈와의 연인관계를 바로 허락하진 않았다. 허나 이는 인종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한낱 축구 선수에게 시집을 보낼 순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지금보다 더 훌륭한 인물이 되어야 준영도 자리를 잡을 것이고 리즈도 더 행복해질테니 노력해서 성공부터 하라는 조언과 응원의 말이었던 것. 이를 준영은 이해했고, 할아버지에게 서운해 하던 자매들도 준영의 설명을 듣고 납득했다.[14] 준영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이유도 그 역시 이방인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이점은 리투아니아 이주민 2세인 맷 버스비도 마찬가지.[15] 본명 때문인지 준영은 곧잘 '여왕님'이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 리즈가 준영에게 부르는 호칭이 '기사님'.[16] 그 과정에서 앤지랑 아웅다웅하다 결국 준영의 방에 숨어들어 뒤지기도. 결국 소란이 커질 것을 우려한 준영이 자매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려주게 된다.[17] 언니들 뿐이라 오빠가 있는 아이들을 부러워 했다고.[18] 작중에서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19] 이 때문에 황실에 부정적인 억관에게 핀잔을 좀 들었다.[20] 논란이 야기될 우려 때문인지 다른 스포츠 판타지 웹소설처럼 한국 축구인들의 이름을 살짝 바꾸어 놓았다.[21] 준영이 아는 과거 영국 축구에 대한 지식은 대부분 터너 신부에게 들은 것이다.[22] 회귀 전 준영이 알던 노 신부가 되는 계기를 준영은 뮌헨 참사 때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사망으로 인한 심경 변화로 추측하고 있다.[23] 가장 열악한 개미굴까지 보게 되는데, 자신이 컸던 맨체스터 뒷골목은 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실감한다.[24] 어린 애들이 구호품에 있던 라면을 끓여먹다가 불이 났다.[25] 주인공의 행보에 따라 미래가 바뀌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변동이 있다.[26] 주로 21세기에 비해 부족한 축구 인프라와 선수 관리, 지원 등등.[27] FA컵 우승, 유러피언 컵 우승[28] 실제 뮌헨 참사 당시에도 선수들이 비행기 추락을 우려하여 뒷좌석에 앉았다. 추락하면 비행기 머리부분 부터 떨어지기 때문. 하지만 사고 당시에는 양력부족으로 비행기가 꼬리부분 부터 내려앉으며 다수의 사망자가 나왔다.[29] 실제 칠레 월드컵 8강에서 브라질과 잉글랜드가 맞붙는다.[30] 그렇다 보니 첫 만남에서도 이준영이 깜짝 놀라 어버버 했다. 술이 취한 상태지만 바비 찰튼 경이라고 부르기도. 이후에도 종종 Sir라는 칭호를 붙인다.[31] 아직 젊어서 그런지 맨탈이 휘청대는 모습이 보인다. 월드컵 결승에서도 자신의 발에 맞고 가린샤의 골이 터지자 잠시 공황 상태에 빠졌다.[32] 실제 역사에서는 유러피언 컵 4강에서 탈락해서 레알 마드리드와 맞붙을 기회는 없었고, 월드컵에서도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실제 역사와 다른 경험이 한층 실력과 자신감을 상승시킨 듯 하다.[33] 원래 역사에선 프랑스 레전드 레몽 코파가 받는다. 바비 찰튼 본인은 굉장히 뻘쭘해 하는데, 자신보다 이준영의 활약이 더 좋았기 때문. 던컨은 발롱도르에 대해서 바비도 받는 상이라며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깠다(...)[34] 실제 당시 골키퍼 포지션에서 최고 이적료를 기록한 선수다.[35] 원래는 선수생활 은퇴할 때까지 스코틀랜드에서 뛰었다.[36] 애스턴 마틴의 자회사 스마트에서 개발한 경차로 미래 기술이 반영되었으나 그 때문에 미니보다 가격이 비싸다.[37] 이 과정에서 톰 히들스턴의 일화를 듣게 되었다. 물론 미래에 태어난 배우의 일화라는 건 모르는 상태로.[38] 실제 역사에서 존 프레이저가 맡은 알폰소 6세 역할을 맡았다. 본인은 처음에 역사와 달리 알폰소 6세가 찌질하게 나와 싫어했지만,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찰턴 헤스턴 같은 대스타를 갈궈 보겠냐는(...) 생각에 열연을 펼친다.[39] 리버풀에 입단해 있었는데, 뮌헨 사고로 리버풀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보낸 5명의 선수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40] 이후 준영이 라이브로 루이 암스트롱의 노래를 불러 수습은 했다.[41]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42] 원 역사에서는 득점 1위를 기록하고 몬스터 시즌이라 평가받을 기록이지만 하필 개변된 역사에 왠 괴물이 대서양 건너 리버풀에 입단하면서...[43] 에우제비우와 단짝이었던 장신 공격수로 현대 축구의 포스트플레이를 정립했다고 평가받는 선수다.[44] 맨유에서 지도자 연수 중인 김용식 선생이 조지 베스트를 가르친 것으로 나온다. 사실 그게 아니라도 개변된 역사의 맨유에는 무서운 형님들이 있어서...[45] 원래 역사보다 1년 정도 더 빠르다.[46] 실제로 빌 샹클리는 자주 맨유 구단에 찾아와서 조언도 하고 참견도 했다고 한다.[47] 멋대로 유럽에 가서 입단테스트를 하고 있으니 산투스 구단 입장에선 어이없고 빡칠 수 밖에. 그 탓에 FC 포르투만 펠레를 돈으로 꼬셨냐며 엄한 오해를 받아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고....[48] 역설적으로 영국의 축구환경이 외국인 선수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아 펠레를 영국에 빼앗길까 우려하는 브라질측을 설득할 수 있었다고 한다.[49] 심지어 현시점의 펠레의 나이는 19세로 아직 유망주라 불릴 나이이다![50] 대신 맨유는 셀틱의 레전드 수비수인 빌리 맥닐을 영입했다.[51] 후에 다시 맞붙었을 때는 심한폭우로 경기장이 논두렁이 되었는데도 자유자제로 날아다닐 정도이다.[52] 이후에는 크루이프 턴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습득한 걸 보고 준영이 경악했다.[53] 실제로 인종문제에 대해서도 깨어 있는 사람이라 은퇴후 아프리카에서 빈민 청소년들을 지도하기도 했고, 아파르트헤이트 치하의 남아공에서 흑인 선수들로 구성된 팀을 지휘하기도 했다.[54] 이준영이 '미스터리 치킨'이란 브랜드로 프라이드 치킨과 양념치킨, 탄두리 치킨을 판매했다.[55] 실제 역사에서도 토트넘의 영입 제안을 받았으나 본인이 거절했다.[56] 사실 맨유에 맘을 두고 있던 준영은 애초부터 맨시에 갈 생각이 별로 없었다.[57] 한편으로 성실함을 중시했는데, 리즈시절의 리즈 유나이티드를 이끌었던 돈 레비가 현역시절 맨시에 있다가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이 사람에게 찍혀서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58] 선수들과의 몸다툼을 다소 피하려하는 경향이 생겼다. [59] 작가의 말에 남겨진 일화에 따르면 장난은 심해도 젊은 선수들과 잘 지냈고 특히 데니스 로와도 절친하게 지냈다고 한다.[60] 바비 찰튼, 바비 롭슨, 바비 무어는 아는데 바비 존스턴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61] 대표팀 선배 나가누마 겐, 히라키 류조는 웨스트햄으로 이적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잉여(....)[62] 부작용도 어김없이 왔는데, 전보다 이성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고, Roid Rage라 불리는 분노행동 또한 생겼는지 원래는 예의바르던 녀석이 별거 아닌 걸 가지고 선배인 나가누마 겐에게 극대노 하는 것을 보고 같이 온 히라키 류조가 깜짝 놀랐다. 금지 약물 공표 당시엔 탈모까지 생겼다고 한다.[63] 이는 잘못된 것이 루스에게 먼저 약물 검사를 요청한 것도 있고, 협회에 찍힌 것이 결정적이라 이준영은 자주 약물검사의 표적이 되고, 한번도 안걸려서 루스가 분통까지 터트리기까지 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64] 실제로 빌리 라이트는 1959년 3등급 대영제국 훈장(CBE)을 받았다. 1959년 6월서훈명단(1959 Birthday Honours)에 등재.[65] 실제로 톰 피니는 1961년 4등급 대영제국 훈장(OBE)을 받았다. 1961년 6월서훈명단(1961 Birthday Honours)에 등재. 그 이후 축구계 원로로서 공훈을 계속 인정받아 1992년 3등급 대영제국 훈장(CBE)을 받은 데 이어, 1998년 기사작위(Knight Bachelor)에 서임되었다.[66] 이 인간과 비견될 정도로 막장 캐릭터가 후술되는 엘레니오 에레라. 그래도 시모어는 선수들에게 도핑을 시키진 않았다.[67] 현역 시절에 급료가 적다고 계약을 무시하고 콜롬비아 리그로 튀었다.[68] 실제 1966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의 우승에 공헌한다.[69] 켄 테일러 외에도 이 시기에 축구와 크리켓 리그에서 모두 뛰는 선수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토트넘 항목에서 소개된 인도 선수 추니 고스와미도 그랬다.[70] 실제 역사에서 제 2 회 아시안컵 득점왕이다.[71] 작중 체셔 카운티 리그에 속한 아마추어 팀인데, 현재 영국 리그로 치면 7~9부 리그 팀이다.[72] 상대는 3부 리그 팀인 렉섬 로버스의 리저브 팀이었다.[73] 사실 악인이 아니라 사고 방식이 구식일 뿐이다.[74] 이는 루스 본인이 아편전쟁에 대해서 대영제국의 수치로 여기고 있는 데다, 서독처럼 약물 복용 의혹으로 명예가 손상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75] 이준영은 가라로 홍콩 시민권을 갖고 있었는데, 이 시기 영연방 시민권자라면 잉글랜드 대표팀에 발탁할 수 있었다.[76] 실제 윈터보텀은 2차대전때 공군 장교였다. 상류출신이기 때문에 언론으로 부터 노동자 계층 출신인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만든 반반무마니를 먹으면서 포크와 나이프를 찾았던 것도 이 때문인 듯.[77] 전혀 지나친 행동이 아닌게, 이 사람은 야신을 영입하려 했을 때도 백지수표를 건넸던 적이 있다.[78] 뇌진탕 쇼크로 판단력이나 대응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79] 경기가 끝나고 준영에게 또 보자고 했지만, 준영은 다시 만날 엄두가 안난다고 느낄 정도.[80] 혹독한 강훈련은 물론, 숙소 이부자리가 삐뚤어진 것도 지적하며 처벌할 정도로 선수들을 군대식으로 몰아붙였다. 준영도 얘기를 듣고 무슨 대한민국 특무대 축구단이냐며 깠다.(...)[81] 실제로 신영규를 그렇게 고평가 한 사람은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피파 회장인 스탠리 루스다.[82] 참고로 결승전은 웸블리에서 열렸는데, 맨유의 성공에 배아파한 런던 방면 잉글랜드 클럽 서포터들이 명예 이탈리안이 되어 밀란을 응원했다.(...)[83] 산투스는 포르투가 펠레를 꼬셔간 줄 알고 욕했고, 펠레는 포르투가 인종차별을 해서 자신을 영입하지 않는다고 오해하고(...) 화를 냈다가 나중에 진짜 이유를 알고 구트만에게 사과했다.[84] 원 역사에서는 우승을 하고 자신의 연봉을 높여줄 것을 요구했다.[85] 실제 허리부상으로 은퇴할 시기였다.[86] 참고로 준영이 찾고 있는데, 정작 차범곤은 준영이 자란 보육원이 있는 경기도 화성에 살고 있다.(...)[87] 대영제국과 로마제국을 비교했다.[88] 숀 코너리, 존 레논, 오마 샤리프, 율 브린너도 출전[89] 실제 골드핑거에 한국인이 나오긴 하지만 일본계 미국인 프로레슬러 해롤드 사카다가 맡았다. 참고로 그는 역도산을 프로레슬링으로 이끈 인물인데 한국어를 못해 벙어리 캐릭터로 나왔다. 이후 어나더데이에서 한국에 대한 막장고증을 선보이며 당시 큰 비난을 받았다.[90] 물론 어디까지나 이이제이의 일환일 뿐, 일본인도 좋게 보지 않는다.[91] 모리타니는 노예제가 살아있는 나라다.[92] 공교롭게도 등장한 편이 업로드된 날짜가 10월 26일이다(...)[93] 실제 역사의 새마을 운동과 비슷한 걸로 성과를 냈다.[94] 실제론 5.16 쿠데타 이후에 있었던 일이다.[95] 원래 역사에서는 홍콩으로 떠난 뒤 행적이 사라졌다.[96]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과 전쟁이 끝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참전용사 출신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죽은 놈들이 일제의 전범조직인 흑룡회 소속임도 한몫했다.[97] 후술하듯 김창룡이 이 세계관에서는 1957년에도 살아있는데, 김창룡이 이준영을 도쿄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할 목적으로 김치국 거하게 들이키고 찾아왔다. 그러나 준영은 그가 자신을 밀수 중간 거래책으로 부려먹으려 드는 데 분노, 제이미 번즈의 협조를 받아 김창룡을 이억관으로 위장시켜서 감옥에 보냈다. 동양인의 얼굴을 서양인들이 쉽게 구분하지 못하는 점을 이용한 것.[98] 이 과정에서 양우조김현철 등과 친분들 갖게 된다. 또 이억관이 윤봉길 의사의 가족을 돌봐준 것에 안춘생과 김홍일도 큰 호의를 느끼게 되었다고.[99] 이 말을 들은 당사자처럼 이기붕도 총에 맞아 죽은 인물이다.[100] 내심 이기붕을 싫어하는 곽영주가 무마해 준 덕분에 준영은 무사히 지나갈수 있었다.[101] 이 투자금은 장학금으로 세탁되는데, 준영은 진짜 장학금으로 활용했다.[102] 주인공의 증조할아버지와 안면이 있는 걸로 언급된다. 증조부가 낙선재 관리원으로 일한 적이 있기 때문.[103] 블루 리본 스포츠라는 이름의 약자로 원래 나이키로 바꾸기 전의 회사명이다.[104] 그녀의 행적을 아는 이준영으로서는 첫 인상도 좋지 않은데, 그걸 드러내지 않고 악수를 하니 악수한 손을 닦거나(상대방 면전에서 악수한 손을 닦는건 심각한 결례이다.), 앙리에게 충고를 하자 주제를 알으라고 하는 등 준영의 예상을 한치 앞도 벗어나지 않는 답변을 해서 준영을 빡치게 만든다. 급기야 야만인이라 매도하자 한마디 말로 바르도를 침묵시킨다. 바르도의 이 같은 무례한 행동 때문에 원 역사에서 그녀의 팬이었던 존 레논이 큰 충격을 받는다.[105] 실제 역사에서 영국 센추리온 전차의 엔진 미티어의 개발에 참여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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