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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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덴마크의 국왕. 크리스티안 9세의 장남이다.
2. 생애[편집]
2.1. 왕세자 시절[편집]
프레데릭은 부왕의 업적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태도를 보여 왕세자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어느 정도 개입이 가능했다.
파일:294429-1340798138.jpg
매제 에드워드 7세와 사돈 구스타프 5세, 프리드리히 3세처럼 왕세자 시절에 손주를 봤다.
2.2. 힘겨운 즉위[편집]
영국의 에드워드 7세나 독일의 프리드리히 3세처럼 오랜기간을 왕세자 자리에 있었다. 아버지 크리스티안이 즉위하기 8개월 전 즉 프레데릭 본인이 왕은 커녕 왕세자가 되기도 전에 첫째 남동생이 먼저 그리스의 국왕이 되었고, 본인은 43년이나 왕세자 자리에 있었는데 차남 칼 왕자가 아직도 왕세자로 있는 자신보다도 2개월 앞서서 노르웨이의 국왕 호콘 7세가 되었다.(...)[1] 그러다가 1906년 부왕이 죽자 62세의 나이로 덴마크 국왕으로 즉위했다.
매제 에드워드 7세의 장례식에서. 뒷줄 왼쪽부터 노르웨이 국왕 호콘 7세, 불가리아 차르 페르디난트 1세, 포르투갈 국왕 마누엘 2세, 독일 제국 황제 빌헬름 2세, 그리스 국왕 요르요스 1세, 벨기에인의 왕 알베르 1세다. 앞줄은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 영국 국왕 조지 5세, 프레데릭 8세 본인.
1912년 독일 제국에서 산책 중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
3. 여담[편집]
평생동안 노예제를 혐오했으며 벨기에인의 왕 레오폴드 2세가 콩고에 자행한 만행에 대해 가장 매섭게 비판을 가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는 프레데릭 8세의 아들이자 당시 왕세자였던 크리스티안 10세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물론 제국주의가 팽배했던 당시에도 레오폴드 2세의 만행을 안 깐 사람들이 없었지만, 특히 프레데릭 8세 부자는 제국주의와 별다른 연관이 없는 평범한 정서의 소유자들이라서 더더욱 그랬다.[2]
4. 가족[편집]
4.1. 조상[편집]
4.2. 자녀[편집]
아내는 스웨덴의 로비사[6] 로 슬하에 4남 4녀를 낳았다.(1851년 ~ 19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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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내 스웨덴의 로비사가 칼 15세의 외동딸이자, 오스카르 2세의 조카였기 때문에 차남 칼 왕자가 노르웨이의 국왕으로 즉위할 수 있었다.[2] 물론 덴마크 역시도 식민제국을 운영하였고 그린란드의 원주민들을 탄압하긴 했지만 그래도 타 식민제국에 비하면 신사적일 정도로 온건한 통치를 펴긴 했다.[3] 프레데리크 5세의 3녀이자 조지 2세의 손녀이다.[4] 조지 2세의 외손자이다.[5] 프레데리크 5세의 3남이다.[6] 스웨덴 국왕 칼 15세의 외동딸이다.[7] 프레데리크 9세 등[8] 에드워드 7세의 3녀이자 크리스티안 9세의 외손녀이다.[9] 올라프 5세[10]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 프리드리히 페르디난트와 카롤리네 마틸데의 셋째 딸.[11] 오스카르 2세의 3남이다.[12] 노르웨이의 왕세자비 메르타, 벨기에의 왕비 아스트리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