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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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源治
1943년 9월 5일 ~ 2008년 5월 22일 (향년 64세)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공안검사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당시에 공안검사의 대명사였으며 그 당시의 대한민국 사회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공안 역사의 상징적 인물이며 또한 공안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말하자면 그 당시의 공안검사의 레전드급인 것.[1]
2. 생애[편집]
1943년 9월 5일 제주도 남원면(現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서 태어났다. 1961년 오현고등학교(9회)와 1966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졸업 후 제주여자고등학교에서 잠시 교사 생활을 하다가[2] 1971년 제1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3기로 수료한 뒤 검사로 임용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해군에 군법무관으로 임관해 복무하다가 1974년 중위로 의병전역했다.
이후 1975년 전주지방검찰청 검사, 1978년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 검사, 1980년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검사, 1985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88년 대검찰청 공안 제3과장, 1989년 사법연수원 교수 겸 수원지방검찰청 부장검사, 1991년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특수부장, 1992년 서울지방검찰청 총무부장, 1993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1994년 서울지방검찰청 동부지청 차장검사, 1995년 9월 27일부터 1996년 7월 31일까지 제30대 대구지방검찰청 경주지청장, 1996년 서울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 1997년 대전고등검찰청 차장검사, 1997년 8월 27일부터 1998년 3월 22일까지 제22대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장, 1999년 6월 9일부터 2000년 7월 14일까지 제15대 창원지방검찰청 검사장, 서울고등검찰청 차장검사, 2000년 대검찰청 감찰부장, 대검찰청 형사부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판사 출신의 강금실 법무부장관과 대립했으며 그 당시 노무현 정부의 검찰개혁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보이다가 결국 대검찰청 형사부장에서 물러났다. 200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법과 인생》 등의 저서를 집필하였고, 2008년 5월 22일에 간경변으로 별세했다.
2.1. 학생운동권 세력들과의 악연[편집]
김원치는 공안검사였는데, 1980년대와 1990년대, 전두환 정부와 노태우 정부 당시의 공안검사의 레전드급 인물이기 때문에 학생운동권 세력들과 악연이 있을 수 밖에 없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당시 공안사건들의 다수를 김원치 검사가 담당했기 때문이다. 특히 김근태와도 악연이 깊다.
2.2. 배우 고두심과의 관계[편집]
여담이지만 배우인 고두심과도 연관이 있는데 김원치가 검사 생활을 하기 이전에 제주여자고등학교의 교사로 있을 때 고두심이 그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두심과는 사제지간이라고 볼 수 있다.
2.3. 정계 인사들과의 친분[편집]
공안검사였던 그는 같은 동향 출신인 현경대 전 국회의원과 가까운 사이였으며 이외에도 김석휘 전 법무부장관 등과도 가까웠다고 한다. 그리고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도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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