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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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 법조인.
2. 생애[편집]
1939년 2월 21일 제주도 제주읍 노형리(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노형동)에서 아버지 현도구(玄道久)[4] 와 어머니 광산 김씨 김병운(金炳雲)의 딸 사이의 1남 1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오현고등학교(8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제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로 근무하였다.[5]
1981년 검사직을 사임하고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제주도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6] 같은 해 5월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였다. 1984년 민주정의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87년 민주정의당 원내수석부총무에 임명되었다.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간사로 현행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하는 데 관여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제주도 제주시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7] 1989년 제5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총장(장관급)에 임명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무소속으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는데 당선 후 민주자유당에 복당하였고 1994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95년 민주자유당 원내총무에 선출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탄핵 역풍에 휘말려 자신의 비서관 출신인 열린우리당 강창일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친박으로 분류되어 김동완에 밀려 공천 탈락하고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역시 낙선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다시 새누리당으로 돌아와 재출마하였으나 이번에도 강창일 의원에게 밀려 3연패를 당했다.
2013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맡았지만 19대 총선 당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면서 2015년 12월 1일 사의를 표명했다. # 위 사건을 이유로 불구속 기소되었으나 1심, 2심에서 연달아 무죄를 선고받고 2018년 6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
'친박 원로', '박근혜 대통령의 자문위원' 이라고 불리는 '7인회'의 멤버 중 한 명이다.
3. 여담[편집]
- 5.16 장학회[8] 1기 장학생 중 한 명이다.
- 박근혜와 직접 대면한 것은 1997년부터라고 한다. #
- 마지막 제주시내 지역(동 지역) 출신 제주시 지역구 국회의원이다. 이후 제주시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구 북제주군 출신[9] 이거나 구 남제주군 출신[10] , 서울특별시[11] 출신이다.
- 영락교회 은퇴장로이며 본인과 아들이 영락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 2022년 2월 24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지지 선언한 대한민국 헌정회원 316명의 명단에 포함되었다.#
4. 가족관계[편집]
- 장인은 한국 노동법학의 개척자 중 한 명인 김치선 교수(1922 ~ 1996), 아내는 김성애(金聖愛) 여사[12] , 아내와의 사이에서는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는데 그 중 차녀가 현소혜(玄昭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고 장남 현우영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미국변호사#로 둔기를 이용해 아내를 살해한 살인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으며[13] 맏사위는 이연갑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둘째 사위(정상수)도 변호사인데 둘째 사위네 법무법인에서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다.
5. 선거 이력[편집]
6. 소속 정당[편집]
7. 둘러보기[편집]
[1] 도(道)가 아닌 도(島)로써 일제강점기 당시 제주도와 울릉도에만 적용했던 행정구역 단위의 명칭. 부, 군과 동급의 행정구역.[2] 인근의 아라동과 함께 연주 현씨 집성촌으로 소설가 현기영도 이 마을 출신이다.[3] 제주목사공파-거로(巨老) 문중 28세.[4] 족보명 현승찬(玄升瓚).[5] 변정일과 고교, 대학, 사법시험 동기다.[6] 이한동을 보고 따라서 사직하였다고 한다.# [7] 제주MBC의 개표방송 예행연습이 외부로 송출되는 바람에 부정선거라는 항의가 있었다.[8] 후에 정수장학회가 되었다.[9] 강창일(제주시 갑): 한경면, 김우남(제주시 을): 구좌읍[10] 송재호(제주시 갑): 표선면, 오영훈(제주시 을): 남원읍[11] 김한규(제주시 을)[12] 1999년에 사별하였다.[13] 그러나 언론은 '로펌 출신의 한국인 미국 변호사', '검사 출신의 전직 다선 국회의원'의 아들로 정체를 숨겼다.[14] 1981.5 민주정의당 입당[15] 1992: 민주자유당 복당[16]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17] 총선 공천 탈락 불복으로 인한 탈당[18]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19] 총선 공천 탈락 불복으로 인한 탈당[20]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