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다이 황제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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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 13대 황제
保大
바오다이 | Bao D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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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153E 묘호}}}
없음
{{{#94153E 시호}}}
없음
{{{#94153E 제호}}}
말제(末帝)
{{{#94153E 연호}}}
바오다이(Bảo Đại, 保大/보대, 1925년 ~ 1945년)
{{{#94153E 성씨}}}
응우옌(Nguyễn, 阮/완)
{{{#94153E }}}
푹 티엔(Phúc Thiển, 福晪/복전)
{{{#94153E 신장}}}
182cm
{{{#94153E 출생}}}
1913년 10월 22일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인도차이나 연방
파일:프랑스령 안남 기.svg 안남 보호령 후에 시 후에 황궁
{{{#94153E 사망}}}
1997년 7월 30일 (향년 83세)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파리
{{{#94153E 재위기간}}}
1925년 11월 13일 ~ 1945년 3월 11일
{{{#94153E 재임기간}}}
베트남국 국장(國長)[1] 1949년 6월 13일 ~ 1955년 10월 26일
1. 개요
2. 생애
3. 평가
3.1. 긍정적
3.2. 부정적
3.2.1. "빙쑤옌" 문제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바오다이 황제베트남 제국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이자, 허수아비 군주, 그리고 베트남국의 초대이자 마지막 국장이다. 즉위하기 전에 이름은 완복영서(阮福永瑞)이었으나, 즉위 후에는 완복전(阮福晪)으로 고쳤다. 계정제의 아들. 황후로는 남프엉 황후가 있는데 미인이다.

마지막 황제였기에 묘호시호는 받지 못했고,[2] 보통 연호를 따서 바오다이[3] 황제(혹은 보대황제)로 불린다.(비슷하게 고구려의 마지막 왕 보장왕도 이름이 고보장이라 보장왕이다.)

바오다이는 그렇게 무능한 인물이 아니었지만, 식민지 국가의 허수아비 군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몇 차례의 기회가 왔었는데도 허송세월만 하여 암군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많다. 응우옌 왕조에 대한 마지막 기대까지 버리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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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10월 22일 베트남 후에의 황성인 후에 황궁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프랑스 지배 체제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전혀 없었다. 프랑스 유학 및 프랑스 감시 체제에서 살아가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술과 여자에만 탐닉해 살아가게 된다. 이런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베트남에 쳐들어올 당시에도 일본의 허수아비 황제로 그 지위를 유지했는데, 그야말로 부의와 똑같은 신세였다.

하지만 그래도 아예 개념은 없지 않았고, 베트남에서 착취하는 일본에 대하여 "짐은 외국군이 짐의 백성을 해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소."라며 막으려고 나서긴 했다. 물론 일본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베트남에서 착취하여 수백 만 베트남 민중을 굶어죽게 하였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일본에게 빌어붙은 그가 벌인 짓이라고 믿은 베트남 민중들에게 증오를 받게 된다. 그래도 호찌민은 그를 일절 죄인으로 대우하지 않고 황제로서 정중하게 우대하며 제위에서 흔쾌히 퇴위하길 권유했고, 그도 순순히 받아들여 베트민(越盟) 최고 고문 자리에 앉았으나 실권자는 따로 있었으니, 여기서도 허수아비였다.

파일:external/fs.chungta.com/Vua-Bao-Dai-1913-1997.jpg

나중에 베트남국 체제의 초대 국장(國長, 국가원수)이 되었지만 여전히 프랑스의 허수아비였기에 자포자기한 그는 짐의 시대가 이렇게 왔다며 절규 아닌 절규를 하며 술과 탐욕에 찌들어갔다.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가 패하고 더 이상 프랑스의 힘을 빌려서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바오다이는 1954년 저명한 민족주의 독립운동가 응오딘지엠을 총리에 임명해서 상황을 타개하려 했지만 프랑스와 프랑스의 꼭두각시인 바오다이를 아주 싫어했던 응오딘지엠은 프랑스 퇴거 운동과 더불어 군부의 친불파들을 대량으로 숙청했고 1955년 민중투표를 실시해 바오다이의 퇴위 여부를 물었다. 여론은 압도적으로 바오다이 황제의 퇴위를 요구했고[4] 바오다이 황제는 마침내 끌려나오게 된다. 하지만 당시 바오다이는 오히려 "이제서야 지겨운 허수아비 생활을 마감하는군. 30년이나 걸렸어."라며 홀가분하게 퇴위 서명을 하고 베트남을 떠났다.

이후 프랑스에서 조용히 살아가던 그는 그동안 2명의 황후와 3명의 후궁을 두었고, 1997년, 83세에 파리에서 숨질 때는 6번째 결혼한 프랑스인 아내 모니크 뱅 튀가 곁에서 자리를 지킨 가운데 눈을 감았다. 6명의 여인들에게 모두 5남 6녀 자식을 얻었다. 그래도 애국심은 남아 있어서 베트남 전쟁 때도 양측 정부에 전쟁을 멈추라고 말하는 등 나름 비참한 상황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이거저거 시도해 본 건 사실이라는 점에서 망국의 황족 중에는 그래도 괜찮은 인물이었다. 사망 후 남프엉 황후 소생의 장남인 응우옌푹바오롱(Nguyễn Phúc Bảo Long, 阮福保隆, 1936~2007)이 명목상 응우옌 왕조의 황실 수장 지위를 이어받았다. 응우옌푹바오롱이 2007년에 사망한 뒤에는 후사가 없었던 관계로 동생인 응우옌푹바오탕(Nguyễn Phúc Bảo Thăng, 阮福保陞, 1943~2017)이 뒤를 이어 수장이 되었으며 2017년에 응우옌푹바오탕이 사망한 현재는 그의 동생인 응우옌푹바오안(Nguyễn Phúc Bảo Ân, 阮福保恩, 1951~)이 그 지위를 이어받았다.

딸 응우옌푹프엉마이(Nguyễn Phúc Phương Mai, 阮福芳梅, 1937~2021)는 이탈리아 왕국 총리이자 1대 아디스아바바 공작인 피에트로 바돌리오의 아들 피에트로 바돌리오 주니어와 결혼했다.

3. 평가[편집]



3.1. 긍정적[편집]


베트남에서 암군으로서 욕을 먹고 그가 죽은 뒤에도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으나 사치 등의 행각과는 별도로 그의 처지 자체에 대해서는 동정하는 이들이 많다. 식민지 치하에서 허수아비로 살아가던 점은 일제강점기영친왕과도 비슷하다.[5]

실제로 이 점을 바오다이 본인도 잘 알고 있어, 젊은 시절 허수아비로서 인생에 대한 좌절감에 취해서인지 프랑스 망명 이후로도 사치를 부리며 잉여스러운 모습만 보였다고 한다. 비록 1972년 북베트남에 보내는 메시지로 전쟁 중단 및 몇몇 언행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다지 부각되진 못했다.


3.2. 부정적[편집]


위에 나온 사치야 확실히 비난받을 점이긴 하다. 1952년 미국에선 바오다이가 1년에 500만 달러 가까이를 홀로 쓰고 있으며 스위스프랑스 은행에 상당수 돈을 숨기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당시 베트남 국가예산 5%에 달했던 거액이다. 미국 카투니스트이던 알 허시펠드(Al hirschfeld/1903~2003)는 1947년 바오 다이를 홍콩에서 만났는데 "거만한 돼지가 된 황제."라면서 만화로도 깠다.

3.2.1. "빙쑤옌" 문제[편집]


파일:external/i780.photobucket.com/4665478774_6bcc7a8336_o1-1.jpg
빙쑤옌의 보스 '바이비옌(Bảy Viễn)' 레반비옌(Lê Văn Viễn, 黎文園) 겉보기엔 멀쩡하게 생겼다.

그밖에도 큰 비난거리 중 하나가 베트남 갱단 기반 군벌 세력인 빙쑤옌(Bình Xuyên, 平川, 평천)을 휘하 부대로 둔 점이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Nu-Anh Tran 교수의 글에 따르면, 빙쑤옌은 당시 남베트남 지역에서 반베트민 성향을 지녔던 3대 군벌 분파 중 가장 작은 세력이었는데, 종교 기반 군벌이었던 나머지 둘과 달리 유일하게 그 근본이 깡패 조직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저 반불 성향 때문에 일본에 협력한 나머지 두 군벌 분파들과 달리 빙쑤옌은 진짜로 일본의 잔학행위에까지 협력하며 악명을 떨쳤는데 일본의 베트남 침공 당시 친일파가 되어서 항일 베트남인들을 가혹하게 학살하고, 그 식솔 및 마을 사람까지 팔다리를 잘라버린 일까지 저질렀다. 그런데 빙쑤옌은 정작 일본군이 베트남에서 물러날 기미를 보이자 이번엔 정반대로 친일파 베트남인들을 돌아다니며 죽여버렸고 그 식솔들 팔다리를 잘랐다. 즉 기회주의자 집단. 그 빙쑤옌의 보스이던 바이 비옌[6]을 친위대장으로 임명하고 대장 계급을 쥐었던 점은 두고두고 비난거리. 이게 응오딘지엠 탓이라고 하는 이도 있으나 되려 그 응오딘지엠이 이걸 반대했었다. 그 지엠조차도 빙쑤옌을 세균덩어리라고 멸칭할 정도였으며 민중들에게 어떤 반응을 받았는지 알만했다.

사실 바오다이가 자기 휘하에 확실히 부려먹을 수 있을 만한 세력이 빙쑤옌 뿐이던 건 사실이다. 일단 베트남국 자체가 프랑스의 괴뢰 정권이라 바오다이가 프랑스에 저항하려는 움직임이라도 보이면 베트남국의 정규군은 바로 바오다이에게 총칼을 들이댔을 확률이 높다.[7] 베트민은 더더욱 안 될 말이었다. 호치민은 말로는 그를 우대해줬다곤 하지만, 응오딘지엠도 통수쳐서 납치하고, 호아하오교와 까오다이교랑 연합 맺고 프랑스랑 싸우자고 해놓고는 그 지도자들도 통수쳐서 납치하고, 심지어 죄없는 지방 유지들도 통수쳐서 협박하는 등 그야말로 통수의 달인이었던 작자들이 40~50년대의 베트민이라 이들과 협력했다가는 자기도 언제 통수맞고 목숨을 위협받을 지 몰랐을 것이다. 다른 두 종교 군벌들은 세력도 강대하고 빙쑤옌보다 도덕적으로는 우위에 있었으나, 자신들의 종교 지도자들의 신병이 베트민에게 위협받자 베트민과의 연합을 깨고 프랑스와 협력한 행적으로 볼 수 있듯이[8]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의 입장에 따라 행동하는 면이 강했기에 동맹이면 몰라도 휘하에 넣고 부려먹을 수 있는 세력은 절대로 아니었다. 물론 프랑스와의 협력에 반발하고 자기만의 강력한 군벌 세력을 순식간에 조직해서 베트민과 프랑스 양쪽과 맞서 싸운 찐민테 같은 독종도 있었지만, 애당초 찐민테가 자기 종교 주류와 다른 행보를 보였던 이유가 뭔지를 따져보면 과거부터가 프랑스와 깊은 연관이 있던 그가 과연 찐민테를 설득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9]

참고로 응오딘지엠은 바오다이 황제가 퇴위하자마자 빙쑤옌을 군대로 뭉개버렸다. 빙쑤옌은 그냥 조직폭력배나 정치깡패의 수준이 아니라 사실상의 군벌 세력이나 다름없었기에 경찰로 뿌리뽑을 수 없었던 걸 지엠이 알았던 거였다. 참고로 빙쑤옌 소탕전은 거의 내전세력 소탕과 똑같을 정도였는데 기관총은 기본이고 박격포에 일부 빙쑤옌은 남베트남군에 대포로 응전할 정도였다. 그래도 결국 빙쑤옌 다수를 뭉개면서 간부들을 공개 총살시켜버리며 거의 뿌리를 뽑았다. 바이비옌은 프랑스로 도망가서 살다가, 1971년에 천수를 누리고 사망했는데, 참고로 1956년, 남베트남 법원은 궐석 재판으로 그에게 사형을 언도했고 파리에서 몇 번이나 암살을 당할 뻔했는데 갱조직 문제로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빙쑤옌을 미국도 안 좋게 봤기에 거기를 뭉갤 때 미국에서 격찬하며 지지했다. 반대로 빙쑤옌 일로 바오다이는 더더욱 욕을 처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릴 적부터 허수아비로 자라나서 저렇다는 변명도 있겠지만, 우리나라로 치자면 순종이 저런 짓을 묵인해주는 상황을 대입한다면 이해해 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빙쑤엔은 한 가지로만 보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빙쑤옌과 응오딘지엠의 싸움은 프랑스미국의 대리전이라고 볼 수도 있었으며, 빙쑤엔은 프랑스군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10] 빙쑤엔의 패배로 프랑스는 완전히 베트남과 손을 끊게 되었고 남베트남은 미국의 책임이 되었으며, 빙쑤옌이 사라진 후 사이공에 베트콩들이 득실거리게 된 것으로 보면 그들이 비록 악했지만 그 시절에는 나름 필요악이었을 지도 모른다.

이와 별개로 혹자는 비슷한 시기 이웃나라 캄보디아노로돔 시아누크 국왕과 대조하기도 한다. 바오다이나 시아누크나 무능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시아누크는 왕조와 상극인 크메르루주와 제휴하면서까지 권력을 쟁취하려 한 끝에 복위에 성공했던 것과 반대로 바오다이는 누군가가 떠먹여주기만을 바라다 (즉 권력의지가 없었다) 객사했다는 것이다.


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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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완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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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트남국국가원수다. 대통령과 같은 직위였다. 한국사로 치면 영친왕광복 이후 대한민국 임시 국가원수를 역임했을 경우에 가깝다.[2] 정식 시호는 없더라도 선통제영친왕의 사례처럼 종친 차원에서 사시 정도는 올릴 수 있을 텐데, 이상하게도 사시를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3] 보대(保大). 출전은 춘추좌씨전초장왕이 무에 대해 논하는 구절인 "綏萬邦、屢豐年… 保大、定功、安民、和衆…"에서 따온 것이다.[4] 하지만 투표는 부정투표였다.[5] 그가 마지막 군주라는 점에서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에 빗대어지기도 하지만,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황제 지위까지 박탈한 것과 달리 프랑스는 베트남을 식민지로 만들었지만 허울뿐인 황제 지위만 그대로 유지했다. 즉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그리고 즉위한 뒤에도 이미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굳이 한국사와 비교하자면 보대제는 영친왕 혹은 이구(1931)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한국사의 고종이나 순종에 해당하는, 즉 식민지로 전락하는 시점에 재위하던 베트남의 황제는 7대 건복제나 8대 함의제이다.[6] 1904년~1971년. Bảy Viễn. 본명은 레반비엔(Lê Văn Viễn, 黎文園).[7] 물론 응오딘지엠은 재빨리 수뇌부를 제거해버리고 자기 편으로 만들었으니, 그저 능력의 차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듯.[8] 물론 이건 먼저 통수를 친 베트민의 잘못이다.[9] https://escholarship.org/content/qt4407j6sj/qt4407j6sj.pdf [10] 실제로 빙쑤옌 두목 바이비옌이 프랑스로 도주할 때도 프랑스군의 도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