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성(시인)/사건사고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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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
2. 여혐 이슈 관련
3. 성폭력 무고 사건의 피해자
3.1. 트위터 내에서 성범죄자로 지목당함
3.2. 도의적 사과 및 성폭력 의혹 결백 주장
3.3. 무혐의와 무고
3.4. 혐의가 있다고 핍박을 받았다. 그리고 혐의가 없다고 핍박을 받는다.
3.5. 자살 시도와 이와 관련된 그의 이후 행적
4. 미투 운동 관련
4.1. 고En의 성폭력에 대한 증언
4.2. 그 외
5. 트위터 계정 일시 정지 사건
6. 비노&비문성향 남초 커뮤니티의 조롱


1. 개요[편집]


박진성(시인)의 사건사고 및 논란을 서술하는 문서. 사건 사고는 피해자로 겪은 부분이 있고, 그외 입장 표명으로 인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다.


2. 여혐 이슈 관련[편집]


이러한 자기 고발은 이후 ‘성폭력을 시인했다’는 내용으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나 박진성 시인 본인이 적극 해명에 나섰고 GQ 코리아 등에서 정정보도를 내기도 했다. 이후의 여러 정황들을 봤을 때 자신의 죄과를 시인했다고는 볼 수 없고 당시 문단 분위기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성찰하고 회고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1] 문제는 성폭력이 무혐의 판정이 나자 이 글을 빌미로 사생활이 문란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무고를 당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이다. 사생활이 어떻든 범죄 사실과는 관련이 없다. 성범죄를 당한 여성에게 평소 행적이 문란했다고 몰아가는 경우와 똑같다. 박진성을 가해자라 주장하는 측은 계속 이 건을 근거로 물고 늘어지며 박진성이 '면죄부'를 얻으려했다거나 '피해자'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아래에서 보듯 박진성은 무혐의, 무고가 밝혀졌다.

  •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레진코믹스 집단 환불 및 탈퇴 사태에서 극단적 페미니스트적 성향을 보였던 이자혜 작가를 옹호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있었다. 하단에 서술된 성폭행 무고사건에 휩쓸린 후, 2017년 12월부터 웃긴대학 커뮤니티를 시작하였는데, 이때 한 유저의 이자혜 작가 옹호발언에 대한 해명글을 요구하였고, 이에 답하였다. 해명글을 요약하자면,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당시에 이자혜 작가는 명실상부 촉망받고 있는 작가였으며, 본인이 알고 있었던 점과 비교해 볼 때, 이자혜 작가가 그런 사람인 줄 전혀 몰랐다는 입장. (덧붙여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도 없을뿐더러, 메갈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가 과거 쓴 트위터에 대한 답변으로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할 말을 잃었을 때는 침묵하거나 사과드리는 게 맞겠지요. 죄송합니다.'였다. 성폭행 무혐의 사건 이후에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관점이 바뀐 듯 하다. 다만, 본인도 메갈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자혜 작가가 자신을 성찰하고 잘못됨을 인지하려 한다면, 그에 대한 기회는 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3. 성폭력 무고 사건의 피해자[편집]


형법 제11장 무고의 죄
제156조 무고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2항 허위 사실 유포의 죄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쉽게 말해서, 무고 피해자이다. 그런데 박 시인이 2018년에 미투 운동과 관련된 활동을 한 탓인지, 그가 미투 운동의 무고 피해자 중 한 명인 걸로 잘못 아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 사건은 2016년 문화계 성추문 폭로 사건 때의 일이라 미투 운동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박 시인은 미투 운동의 무고 피해자가 아니다.


3.1. 트위터 내에서 성범죄자로 지목당함[편집]


2016년 10월 19일, 한 트위터리안이 박진성 시인이 미성년자인 자신에게 성희롱을 했다고 주장했고, 이후 여러 트위터리안들이 박 시인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며칠 뒤인 2016년 10월 21일에는 여러 언론사에서 트위터에서 나온 주장들을 바탕으로 박진성 시인이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자 습작생들에게 수년간 상습적으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을 가했다는 기사를 내 파문이 일었다.

박진성 시인이 이후에 공개한 카카오톡 내용을 보면 익명으로 폭로한 최초 폭로자는 박진성 시인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차리자 "그럼 본명 말해도 돼요?"라고 실명 폭로할 것임을 협박하며, "주시려면 저는 돈이 좋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 전형적인 꽃뱀의 수법으로 보인다.[2]

이 주장을 처음으로 기사화한 것은 한국일보 소속의 황수현 기자이며, 이 기사(@)를 보면 메갈리아 성향의 페미니스트로 보인다. 위의 보도 이후로는 대표적인 기레기로 평가되고 있다. 박 시인은 2017년 2월에 한국일보와 황 기자를 상대로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2018년 4월 27일에 말하길 26일이 1심 6차 변론 기일이었는데, 한국일보 측이 정정보도를 할 것은 확실해졌고 손해배상의 규모 정도만이 남은 기일 동안 정해질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7월 18일에 1심에서 승소, 한국일보와 황수현 측이 정정보도와 함께 5천만 원의 배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2심이 진행 중일 때 합의하는 데 성공해, 2018년 12월 21일에 트위터에서 허위보도에 대한 정정보도문이 2019년 1월에 나오기로 결정되었다고 밝혔다(#).

드디어 2019년 1월 30일에 정정보도문이 나오게 되었다.(#) 무려 23개월 만에 얻어낸 정정보도문이며, 그 와중에 단 한 줄도 사죄, 사과, 하다 못 해 유감이란 표현조차 나오지 않았고 기사를 작성하며 박 시인을 공격했던 황수현 기자도 이에 대해 별 말을 하고 있지 않았으며, 올린 시간은 보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00:02인 등 여전히 치졸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3] 역시나 기레기답다는 댓글이 많다.


3.1.1. 구체적 사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박진성(시인)/사건사고 및 논란/성폭력 무고 사건의 구체적 사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 본 문서에도 서술되어있는 "'A여성'에 의한 무고 사건"에 대한 문서이다.

3.2. 도의적 사과 및 성폭력 의혹 결백 주장[편집]


2016년 10월 22일, 해당 이슈가 불거지자, 박진성 시인은 본인의 블로그를 통해서 사죄하는 글을 올린다. 해당 블로그 글 링크 박진성 시인의 이 사과문에는 성폭력 가해를 시인하는 내용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의혹을 초래했던 것 자체에 대한 "도의적 사과"로 보인다. 이 사과문의 작성 경위를 박진성 시인은 자신의 트위터에 2017년 11월 22일 밝힌다.(해당 트위터 링크)

2016년 11월 11일, 박진성 시인은 해당 사안에 대하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그것을 입증할 증거가 있음을 밝힌다.(해당 기사 링크)


3.3. 무혐의와 무고[편집]


박진성 시인에게 당했다는 이들 중 2명이 박 시인을 성범죄로 고소했는데, 2017년 9월에 무혐의불기소 처리되었다. 고소한 경우 중 일부는 고소가 취하되었고, 진행된 부분은 무혐의로 처분된 것이다.(해당 기사 링크)

박진성 시인은 이 2명을 무고 및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했고 11월에 유죄로 인정되었다. 그런데 초범이었기에 심신미약을 주장한 사람은 기소유예, 다른 한 사람은 벌금 30만 원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해당 기사 링크, 뒤늦게 거짓임을 고백하는 고발자의 카톡 내용) 박진성 시인에게 당했다는 이들 중 한 명으로, 2017년 10월에 박 시인을 고소한 유진목 작가[4]의 경우에는 쌍방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5].

2017년 이후로 박진성 시인은 2016년에 나온 기사들에 대해 정정보도를 요청했는데 한국일보가 받아들이지 않자, 자신의 블로그트위터를 통해 황수현 기자를 허위사실유포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일보와 황 기자를 상대로 한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2019년 1월에 합의로 끝나자 고소하지 않기로 한 듯하다.


3.4. 혐의가 있다고 핍박을 받았다. 그리고 혐의가 없다고 핍박을 받는다.[편집]


2017년 11월에 시인의 아버지가 쓴 글에 따르면, 성폭행 혐의로 보도가 난 이후 집 앞에서 피켓 시위가 일어나기도 하고, 지인들의 연락이 모두 끊겼으며, 출판사는 책을 내주지 않는 등 결론이 나기도 전에 보도만으로 이미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것과 같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어떤 지인은 '한국일보 같은 신문사에서 성폭행을 했다고 기사를 썼으니 사실 아니겠냐'며 면전에서 면박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박진성 시인의 출판을 담당했던 출판사는 사건이 나자, 무죄여부 확인 과정없이 일주일 만에 출판 계약 해지에, 출판된 시집은 출고 정지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관련된 소송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출고 정지 처분을 풀지 않고 있는데, 계약 해지에 대해 물었더니 "아직 시인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요구받은 적이 없다. 언제든지 연락을 주신다면 논의하겠다"고 답했다.(해당 기사 출처)[6] 2018년 7월에 박 시인은 문제의 시집은 아직도 출고정지 상태이며, 이에 대해 민사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2월에 이에 대한 기사가 나왔는데, 출판사 측은 박 시인과 합의를 해 출고정지 처분을 했으며 현재로선 이를 유지할 생각이고, 박 시인은 자신이 먼저 절판하라고 요구한 건 맞지만 당시 자신은 어떠한 해명도 할 수 없는 '그로기' 상태였기 때문에 온당한 의미에서 합의로 볼 수 없으며 합의한 것으로 보더라도 의혹이 풀린 지금은 처분을 풀어야 하지 않냐고 했다고 한다.(#)[7]
2018년 3월 26일에 2016년 10월 당시 출판할 예정이었으나 취소한 글과 2016년 10월 이후에 대해 쓴 글을 엮은 산문집 '이후의 삶'을 출간하기 위한 펀딩을 시작했는데, 4월 1일에 후원금이 목표치를 초과[8]했다. 4월 15일, 출간비를 제외한 남은 후원금은 성범죄 피해 여성들의 소송을 돕는 작업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펀딩은 5월 4일까지 진행되었고 책은 24일에 나왔다. 그리고 일반 서점에선 31일부터 판매 중이다.

그러나 허위로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정신 못 차리는 인간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 가리지 않고 많다. 조리돌림해놓고 사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건 양반이고, 아직도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 #@[9] 심지어 이 중 송승언(@)이라는 사람은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인데 2017년 5월 17일 이후로 주로 트위터에서 박진성 시인을 성폭력 가해자로만 단정짓고 이야기했으며, 무혐의 처분 후에도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후 박진성 시인의 무고가 확실해지면서 자신에게도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한동안 트위터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하였다가 사태가 잠잠해지면 다시 공개로 전환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10] 그리고 ㅁㅊ(@)이라는 전형적인 트페미는 자기 말로는 이미 등단한 실제 시인인데도 익명을 쓰고 있다고 추측되는 @을 올렸다. 심지어 ㅁㅊ은 저 글 전체에서 간이 부었는지 트페미, 여성시대, 메갈리아, 워마드를 비판하는 박가분유아인과 박진성을 같이 엮어 비꼬았다. #@[11] 이외에도 SNS에서 페미니스트를 표방한 계정(트페미나 남페미 포함)들의 악플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이 악플 중에서는 여전히 박진성 시인을 성범죄자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박진성 시인은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트페미들을 향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고, 이 중 몇 명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범죄 등의 혐의로 고소하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2017년 11월 25일에 이외수 작가가 박진성 작가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참고로 탁수정은 박진성 시인 외 다른 시인들도 성범죄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서 무고임이 증명된 시인들은 그녀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었다. 이 중 일부에서 그녀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12] 이때 그녀는 '좋은 소식'이라고 웃었는데 이 반응은 비판을 받고 있다. 박진성 시인은 이에 대해 탁수정의 이중잣대를 지적했는데, "무혐의"는 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탁수정 본인이 예전에 적어놓고서는, 본인의 "무혐의"에 대해선 '무혐의 = 애초에 죄가 없었음' 식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참고 또한 박진성의 이 지적은, 탁수정의 의견을 비판 없이 수용하고, 그 내용대로 박진성 시인을 그대로 공격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도 해당한다. 이들은 "무혐의 ≠ 결백"이라는 식의 논리로 박진성 시인을 공격했는데, 똑같이 무혐의 처분(증거불충분)을 받은 탁수정에게는 "무혐의 = 결백"이라는 식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즉, 성별에 따른 이중잣대와 진영논리로 가득 찬 사고로 인해 객관성과 합리성을 상실한, 아전인수내로남불 그 자체인 상황.

사실 박진성 시인도 소송을 건 사람 중 한 명이나, 아래의 자살 시도 이후 부질없이 느껴져서 취하했다. 2018년 4월 11일에 박 시인이 탁수정에게 메인 트윗에 올린 자신과의 카카오톡 대화를 내리라고 요구했을 때, 이때 몇몇 트위터리안들이 대화의 전문을 트위터에 올리는 것을 건의하자, 박진성 시인은 진실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의 사생활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해당 건의를 거절하면서 그 대화록은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4월 19일엔 메인 트윗을 내려줄 것을 다시 요청했는데, 이 때는 '오늘까지 기다린다'는 말(#)까지 한 걸로 보아 당시엔 탁수정과의 소송전 재개도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대신, 한국일보와 황 기자와의 정정보도 요구 소송의 1심 판결문 중 해당 대화를 성희롱으로 보기 어렵다고 한 부분을 7월 20일에 공개했다.


3.5. 자살 시도와 이와 관련된 그의 이후 행적[편집]


  • 2017년 12월 2일, 오전 1시 29분 자살을 암시하는 트윗을 작성하여 우려가 이어졌다. 오전 1시 31분에 박진성 시인의 블로그에 '굿바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이후 블로그 갱신은 멈춘다.(해당 블로그 링크) 이후 약을 먹고 쓰러진 박진성 시인을 박 시인의 어머니가 발견하여 119를 불러 병원에 실려가 14시간 만에 의식이 돌아왔다는 내용을 박진성 시인의 아버지라고 밝힌 사람이 트위터에 올린다. 해당 트위터 내용, 해당 기사 자료
그리고 자살 시도 관련으로 박진성 시인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남긴다.(해당 트위터 인물 정보)

  • 2017년 12월 7일, 오전 00시 47분에 의식을 회복하고 블로그에 첫 글을 남긴다. 그 이후에는 언론들에게서 받은 심적 피해가 심대했는 듯, 한국일보 황수현 기자를 고발하는 글 등 언론들의 무고 관련 보도 태도에 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들을 남기기 시작한다. 또한 블로그의 내용을 보면 박시인의 아버지 분도 거기에 적극 협력하고 있는 듯하다.해당 게시글 링크
그 와중에도 페미니스트들과 박진성 시인을 앞장서서 비난했던 사람들은 '자살하면 죄가 없어지냐' 같은 소리를 하거나 '박진성이 자살하기 전에 여성 습작생들에게 집적거렸다', '과거에도 자살을 빌미로 여자들을 꼬시고 동정심을 유발했다(본인의 고백 내용)' 같은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도 2017년 12월 7일 기준으로, 트위터를 이용해 마녀사냥한 주요 오프라인 가해자들은 비판을 받아 재판에 불리해질 것 같아 비공개로 돌리거나 계정을 폭파시키기까지 했지만, 가해자들의 편을 드는 SNS에서의 옹호자들(#@[13])은 아예 사건에 입을 다물거나 익명의 계정에 숨거나 검색을 막기 위한 부계정과 스팸계정을 아직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해당 트위터 링크 이들은 어쨌든 관계를 맺고, 인정한 사실을 발설하더라도 해당 상황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따른 보호 조치라고 설명한다.

  • 2018년 2월 초에도 어떤 사람이 열심히 박진성 시인의 트위터로 계속해서 허위사실을 유포하길 멈추지 않고 있다(@ @2-1 @2-2 #3@3). 결국 박진성 시인이 다시 고소 예고(#@#2@2)를 하였고, 우선 자신의 해명 요청을 여러 차례 묵살했던 위근우에게 먼저 선전포고를 날렸다. 그러나 위근우는 이에 대해서 여전히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 2018년 2월 7일 JTBC 뉴스룸에서 탁수정을 인터뷰하며 미투 운동을 보도한 것(#)을 보고 격분, 그동안 거절해 왔던 무고 관련 인터뷰에 자진해서 나서겠다고 밝히고는 그녀를 비난했다. 그리고 탁수정이 이에 대해 반박한 것을 시작으로, 둘 사이에서 4월까지 설전이 진행되었다.(2018년 2월 9일 시점에서 정리된 글)[14] 실제로 박 시인은 2월 28일에 MBN과 이와 관련된 인터뷰를 했다.#
2월 19~20일에 그는 이 상황을 보면서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트위터리안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고[15], 마녀사냥을 그만하라는 의미로 자신의 손목에 남아 있는 흉터를 공개하기까지 했다.[16] 2018년 4월 11일에는 다시 자해를 시도하기까지 했다.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중으로 리스트컷 증후군도 의심해볼 수 있는 상황. 이 일 때문에 입원하게 된다면 자신이 진행 중인 싸움이 전부 중지되기 때문에 버티고 있었지만, 며칠 뒤에 당뇨병 악화라는 다른 이유로 한동안 입원했었다.[17]
당시 탁수정을 인터뷰한 사람은 손석희였다. 2019년 1월에 손석희가 기자 폭행 논란에 휩싸여 상대방을 고소하자, 박 시인은 1월 25일 트위터에 그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시를 올렸다.(#)

  • 3월 21일, 박진성 시인은 3월 14일의 탁수정의 인터뷰와 관련된 인터뷰를 리얼뉴스와 가졌다.(#) 인터뷰어는 박가분.[18]

  • 2018년 7월 13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간 21개월 동안 '남혐주의자'들에게 공격당했음을 밝히며, 자신과 같은 피해를 당한 성폭력 무고 및 남혐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초기라서 개인적으로 하는 정도지만 뜻이 있는 변호사와 각계의 전문가들을 모아 연대체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참고로 박 시인은 자신을 공격한 이들과 11월 현재까지 소송 중인데, 무고 피해자들을 지원하겠다는 것과 관련해 웃긴대학의 일부 회원에게 강하게 비난을 받자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건지 17일 오전에 페이스북에다 자살을 암시하는 글과 동영상을 올렸다. 다행히 지인이 이 게시물을 보고 신고해, 신고를 받은 경찰에 의해 병원에 가 안정제를 맞았다고 한다. 자세한 건 한국 래디컬 페미니즘 동조자들의 박진성 시인 자살 유도 사건 참조.

  • 7월 19일에 트위터에 자신이 그 최초 폭로자였다고 주장하는 익명 계정이 나타나 '그 발언은 관심을 끌기 위해 장난삼아 한 거짓이며 죄송하다'(@)는 트윗을 올렸는데, 탁수정은 최초 폭로자에게서 이 트윗이 자신이 쓴 게 아니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한 뒤 이 계정과 박 시인을 옹호하는 어떤 계정에 등록된 전화번호 끝자리가 박 시인의 트위터 계정에 등록된 전화번호 끝자리 04와 같다는 점을 들어 두 계정이 박 시인의 다중계정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22일에 이 의혹에 대해 트페미들이 이야기하는 걸 본 박 시인은 한 트페미에게 최초 폭로자가 04로 끝나는 휴대폰 번호까지 개통해 조작을 하는 걸 거라고 말했는데, 그 트페미는 그가 여러 계정을 운영한다는 내용이 있는 트위터 신고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박 시인은 여러 계정을 운영했다는 이유로 제재당한 적 없다고 말했다.(#)
당시엔 이렇게 끝나나 했으나 2019년에 박 시인이 허위 폭로를 이유로 최초 폭로자를 고소하고[19], 최초 폭로자가 맞고소를 했음이 2020년 2월에 알려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3월 5일에 유진목 작가가 밝히기로는 박 시인이 고소를 취하해줄 테니까 맞고소한 것을 취하해달라고 했지만 최초 폭로자가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1, #2)
참고로 유 작가는 2020년 현재 박 시인과 민사소송을 하고 있는데[20], 유 작가는 자신만이 아니라 최초 폭로자에 대해서도 박 시인이 인터넷 상에서 짜깁기를 한 허위 사실을 유포함으로서 박 시인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만들려고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1, #2, #3) 소송과 관련된 최초 폭로자의 입장은 3월까지 위의 익명 계정이 아니라 유 작가가 밝혔고, 이 계정은 위의 트윗을 쓴 이후로 활동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 계정이 최초 폭로자의 계정일 가능성은 낮아진 상황. 그리고 4월 3일, 최초 폭로자 본인이 직접 해당 트윗은 자신이 쓴 게 아니라고 한 뒤에 문제의 익명 계정이 박 시인의 다중계정일 거라는 의혹을 언급했다.

  • 2018년 2월에 2016년 10월 이후로 트위터 내에서 본인에 대해 조롱한 트윗을 모은 책 '혐오의 시대'(가제)라는 책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장 치욕스러운 건 활자로 책으로 남겨서 후대로 만방으로 기록해두는 것. 그러니까 네가 사라지고 없어져도 너의 더러운 말들은 영원히 살도록 그렇게 영원을 살아서 누군가 너를 기억할 때 너의 더러운 말들이 너의 얼굴이 되도록 해주는 것. 그게 진짜 치욕인 것."이라고도 말했다. 3월 28일엔 트위터의 조리돌림에 대해 분석한 책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는데 이 책을 말하는 듯.
그런데 계획을 바뀐 듯하다. 2019년 1월에 결성된 '페미니스트들의 폭력을 기록하는 사람들의 모임(약칭 페폭사)'에 박 시인, 오세라비, 당당위 대표 등이 참여하고 있음이 밝혀졌는데, 페폭사는 인터뷰에서 페미니즘을 자처하면서, 온갖 범죄를 가하고 있는 사례들을 제보 등으로 모아서 사례집으로 출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8년부터 페미니즘 피해사례를 모았다고 하는 것을 보면 페폭사를 결성하기 전에 이미 회원들이 개인적으로 사례를 모으고 있었던 듯하다.


4. 미투 운동 관련[편집]


위의 사건들로 인해 일각에서는 박진성 시인이 미투 운동을 반대하고 무고죄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와전되어 있다. 그러나 박진성 시인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이며, 다른 문인들의 성범죄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즉 박 시인은 탁수정이나 위근우처럼 미투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비판할 뿐, 미투 운동을 지지함은 물론 고은 시인의 성폭력을 폭로하는 등 실제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미 무고 사건으로 뜻하지 않게 큰 홍역을 치렀으며 아직도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완전히 소강되지 않은 이 시기에 미투 운동의 취지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것은 대단한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그만큼 시인의 행보는 인상적이고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박수를 받고 있다.


4.1. 고En의 성폭력에 대한 증언[편집]


페이스북과 블로그, 자신이 활동 중인 웃긴대학고En 시인의 성폭력에 대해 증언하며 최영미 시인을 응원했다.

2008년 4월의 일입니다. C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고En 시인 초청 강연회에 갔었습니다. 200명 넘는 방청객들 사이에서 고En 시인은 정말 빛나는 별이었습니다. 자신의 문학적 여정을 회고하고 나아가 한국문학의 위상에 대해서 말하는 고En 시인은 저의 앞으로의 ‘미래’였습니다. 뒷자리에 앉았던 저는 한 마디라도 놓칠까 싶어 고개를 최대한 앞으로 숙여 시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대학생, 대학원생들, 여러 학과의 교수들, 그리고 인근 주민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 행사는 ‘공개 개방 강좌’였습니다. 시인이라는 존재가 골방에만 쳐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구나,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 감동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당시 저는 H 대학의 문예창작과 교수 K로부터 이 자리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고En이 오는데 자리를 좀 빛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무척 설레고 떨렸습니다. 고En을 만날 수 있다니. 뒤풀이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날 강연 전날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 자리가 마냥 그런 자리로만 알았습니다.

뒤풀이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고En 시인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방이 따로 있는 그런 음식점이 아니었습니다. 고기와 맥주 그리고 소주. 그리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여성을 위한 음료수. 명백하게 ‘오픈’된 공간이었습니다. 오후 5시 경이었습니다. 술 기운에 취해서였는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고En 시인이 당시 참석자 중 옆자리에 앉은 한 여성에게 “손을 좀 보자”고 했습니다. 고En 시인은 그 여성의 손을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손을 만지다가 팔을 만지고 허벅지를 만졌습니다. 그 여성은 당황스러워했습니다. 당시 20대였던 여성은, 단지 고En 옆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만으로 고En 시인에게 그런 ‘추행’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끔찍했습니다. 그리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자리는 도대체 어떤 자리지? 저는 그 당시 그 자리로 저를 오게 한 K교수에게 항의했습니다. 도대체 안 말리고 뭐하는 거냐.

그 교수는 저더러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K교수에게 밉보일까 두려웠고 문단의 대선배 고En 시인에게 밉보일까 두려웠습니다. 고En 시인은 저의 이름 정도를 알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쓰라고 격려를 해줬습니다. 그게 당일 고En 시인과 나눈 대화의 전부였습니다. 그게 고마웠습니다. 그냥 보고만 있었고 그냥 듣고만 있었습니다.

고En 시인의 추행은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그 여성이 저항을 하자 무안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거였습니다. 그러더니 지퍼를 열고 성기를 꺼냈습니다. 흔들었습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습니다. 이제는 알겠습니다. 그건 그냥 당시 동석자였던 여성 3명에 대한 ‘희롱’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엄청난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성기를 3분 넘게 흔들던 고En 시인은 자리에 다시 앉더니 “너희들 이런 용기 있어?” 그렇게 말했습니다.

K교수에게 항의했습니다. 대놓고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저 여성들은 뭐냐, 자리에서 나가겠다. K교수는 저의 항의를 묵살했습니다. 고En 시인에게 추행을 당했던 여성이 못 참겠는지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울고 있었습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다 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먼저 그 여성을 택시를 태워 보냈습니다.

그 여성이 귀가했다는 사실을 K교수와 고En 시인에게 알리자 술자리가 급격한 속도로 가라앉았습니다. 그 여성은 고En 시인의 말을 빌리면 “참석자 중 가장 젋고 예쁜 여성”이었습니다. 고En 시인은 변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것도 못 보면서 무슨 시를 쓴다고. 저는 경악했습니다. 그때 당시 시간이 오후 5시였습니다. 밤이 아닙니다. 옆자리에는 다른 손님들이 있었고 우리 일행의 술자리를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K교수가 노래방에 가자는 걸 고En 시인이 싫다고 했습니다. 세 명 중 나머지 두 명 여성은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노래방으로 끌려갈지 무사히 집으로 갈 수 있을지, 그건 그 여성들의 선택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저 포함 해당 여성들은 K교수의 지도학생이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고En 시인은 알고 있었을까요?

도저히 어떻게 안 되겠는지 K교수는 고En 시인에게 “이만 일어나시죠, 자리가 별로 안 좋네요”하고는 둘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남은 여성 두 명과 처참한 심정을 나눴습니다. 고En 시인의 성기를 봤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해야 할까요?

그렇게 10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저와 그 당시 여성들만 당한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문단에서 굴러먹은 지 17년째, 고En 시인의 그런 만행들은 여기저기서 들려왔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2018년. “30년 전 격려 차원에서 그랬다”는 고En 시인의 변명을 보고 또 한번 경악했습니다. 30년 전이면 1988년인데, 그 이후에 제가 들은 똑같은 패턴의 희롱과 추행들은 유령이 한 짓입니까? 어제 "부끄러울 일 안 했다, 집필을 계속하겠다", 고En 시인의 입장 표명을 보고 다시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정말 궁색한 변명입니다. 그의 추행과 희롱을 보고 겪은 시인만 적게 잡아 수백명이 넘습니다. 수십년 간 고En 시인이 행해온 범죄입니다. 문단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을 왜 노 시인은 부정하는 것입니까.

작가회의 상임고문 직을 내려놓을 것이 아니라 수원시에서 본향으로 귀가할 것이 아니라 사과를 해야 합니다. 고은 시인에 대한 증언은 정말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는 이 세계의 왕이자 불가침의 영역이자 신성 그 자체였습니다.

고백합니다. 밉보일까 봐 당시 동석했던 여성분들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범죄 현장에 있었습니다 저 역시 방관자였음을 시인합니다. 용서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고En 시인의 시를 보고, 고En 시인의 ‘기록된’ 행적만 보고, 고En 시인처럼 되고자 했던 저 자신을 먼저 반성합니다. 최영미 시인을 응원합니다. 제가 보고 듣고 겪은 바로는 최영미 시인의 증언은 결코 거짓이 아닙니다.

작가회의. 창비. 그리고 같은 정치 성향을 지닌 도종환 장관님. 왜 침묵하십니까. 왜 모른 척 하십니까. 정말 당신은 고은 시인의 '추행'을, '희롱'을 단 한 번도 못 봤습니까? 강 건너 불구경하실 겁니까? 이대로 지나가길 바라십니까?

며칠 전 고En 시인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또 한번 놀랐습니다.

“50대 여성 시인 D 씨는 “여성 문인 사이에선 ‘고은 옆자리에 가지 마라’ ‘손이 치마 안으로 들어갔다 윗도리로 나온다’는 말이 퍼져 있었다. 그의 기행을 ‘시인다움’ ‘천재성’으로 합리화하는 이가 많았다”고 말했다.(동아일보, 2018. 2. 27.)

그날, 제가 목격한 자리의 여성들은 노래방에 가서 저 범행을 당해야 했던 것입니까? "손이 치마 안으로 들어갔다 윗도리로 나오는"? 숱한 그날들. 그 여성들은 고En 시인의 ‘접대부’였던 것입니까?

고En 시인의 진정한 사과를 바랍니다. 묵살하지 마십시오. 그 당시 고En 시인에게 ‘성범죄’를 당했던 여성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실 수 있는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방관자로서,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씁니다. 제발, 사과하시기 바랍니다. 고En 시인님.

고En 시인의 추행에 대해 증언합니다.(#)


이에 최영미 시인이 박진성 시인에게

박진성 님의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지요.

동아일보의 페이스북 캡쳐본(#)

라고 위로어린 답변을 보냈다.

K 교수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진성 시인은 이후 자신에게 고은 시인의 성폭력과 관련된 여러 구체적인 제보가 들어오고 있다고 반박했다.(#)

2019년 2월 15일 고은최영미와 박진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1심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최영미에게는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으나 박진성은 다른 동석자들 증언과 차이가 있어 박진성의 주장은 진실로 보기 어렵다며 고은에게 천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4.2. 그 외[편집]


자신을 다룬 기사를 쓴 한국일보 황수현 기자가 사진작가 ROTTA의 성추행 의혹 등 미투 운동을 다루는 기사를 쓰자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 미투 운동을 기사로 다루는 것이 말이 되냐면서 일침하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2018년 6월 7일, 3월에 성추행 논란이 생긴 하일지 교수와 고발자와의 문자 내역을 공개하면서 그가 허위 고발당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고발자의 실명을 언급한 탓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해, 부분 불기소와 부분 구약식 처분을 받았다.

2018년 시점에서 그의 성폭력 무고 사건이 워낙 유명한지라 미투 운동의 부작용 혹은 미투 운동에 편승한 허위 고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사건은 단골로 언급된다. 예를 들어, 헤럴드팝은 미투 운동과 관련한 부작용을 이야기할 때 허위 폭로의 대표적인 사례로 배우 곽도원을 언급하면서, 이와 유사한 사례로 박 시인의 건도 언급했다. 2018년 2월 26일 네이버-헤럴드팝 [POP초점] 끊임없는 폭로전…#미투 운동이 가진 양날의 검 또한 트페미들은 끝까지 박진성이 무고 피해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이를 갈고 있다. 예시@[21]


5. 트위터 계정 일시 정지 사건[편집]


사건 이후부터 일베가 박진성 시인에게 접촉을 시도한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박진성은 일베를 배척했기에 초반엔 무시를 했지만, 그래도 접촉을 자꾸 시도하자, 분노가 폭발해 아래와 같은 트윗을 작성했다.

일베 새기들아 말 좀 걸지 마. 세상의 모든 쓰레기에 쓰레기를 곱하고 더하고 적분해도 답이 안 나오는 쓰레기들아.

2019 4월 2일 7:38 PM 오전 12:05 - 2019년 4월 5일 에서 재인용

그런데 트위터는 이 내용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정지했다.

가학적인 행위와 관련된 트위터 원칙을 위반했습니다.

특정인을 목표로 한 괴롭힘에 참여하거나 특정인을 괴롭히도록 다른 사람을 선동해서는 안 됩니다. 트위터는 다음 사람을 괴롭히거나, 협박하거나, 침묵하도록 하는 시도를 가학적인 행위로 간주합니다.

(중략) 결과적으로 트위터에서 귀하의 계정 기능 일부를 일시적으로 제한했습니다.

오전 12:05 - 2019년 4월 5일 에서 재인용


일베를 쓰레기라 욕하는 일 = "특정인을 목표로 한 괴롭힘에 참여하거나 특정인을 괴롭히도록 다른 사람을 선동"으로 취급당해서 정지된 것이다. 어찌보면 트위터의 비판점을 간접적으로 알려준 사건이 된 것이다.


6. 비노&비문성향 남초 커뮤니티의 조롱 [편집]


2019년에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으로 인해 정치적 사안에서 논란이 일자 박 시인은 조국을 응원하는 글과 시를 트위터에 여럿 올렸다.

이런 충격적인 행보에 안티페미 성향의 몇몇 남초 사이트대깨문부터 시작하여 멍청하다는 조롱, '이러니까 페미한테 무고나 당하지'라는 반응 무고를 당해 한바탕 홍역을 치러놓고도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고 선언했을 정도였던 문재인 정부와 여당을 지지한다는 것이 보통 충격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러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박진성 시인의 고초를 위로하려 한동안 도네 후 인증 열풍이 불기도 했었던지라 그 충격이 더 컸을 것이다.

허나 이는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 그리고 역시 같은 개혁, 진보계열 정당인 정의당, 녹색당, 민중당 등만 친페미니즘이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우호적 태도는 현실적으로 거의 모든 정당에 일정부분이나마 있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페미니즘에 반감이 있는 정당을 이야기한다면 우리공화당이나 새로운보수당, 자유의새벽당 정도의 대안 우파 - 극우 정당을 꼽을 수 있다.[22][23]

대표적으로 여성할당제는 정당 상관없이 비율만 다를 뿐 시행되고 있으며[24], 보수 지지층이나 심지어 대안 우파 성향 지지층[25]이 있는 자유한국당에서조차도 페미니즘에 친화적인 혹은 대놓고 친화적이진 않아도 페미니즘에 대해 비교적 온건적인 정치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자유한국당이나 새로운보수당, 그리고 현 미래통합당 한정으로는 바른여성인권연합이나 이준석, 하태경 등을 통해 안티페미니즘 성향을 드러내는 빈도가 늘어나고는 있다고 하지만, 그나마 이것도 비교적 최근인 2018년대 중반에서야 일어난 일이다. 그마저도 현 미래통합당조차 투표에서 항상 열성적인 여성표를 버릴 수가 없기때문에, 당내 주류에서는 안티페미니즘 정책을 펼 수가 없다.

이때문인지 이 일이 있은 뒤 보배드림이나 루리웹, 뽐뿌 등의 커뮤니티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까기 성향의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박진성 시인을 언급하는 일이 극도로 줄어든 상황이다.

심지어 와이고수 유저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박진성 시인의 정치성향에 실망하여 지지하지 않겠다는 카톡을 남긴데에 30년동안 민주당 지지자였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며,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문파)라고 밝혔다. '난 정치인도 아니다. 나 지지한다고 하지마라. 이따위 카톡도 보내지 말라'고 일갈하는 일도 있었다.#

[1] 어떻게 보면 자충수가 된 글이다. 이 글을 근거로 당시 다수의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트위터리안 및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자신이 이런 글을 써 놓고 이제 와서 무혐의라고 말한다', '스스로 자백했으면서 무고를 주장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냐?'라는 공격을 당했고, 그 트위터리안 및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도 그가 남성들에게 여혐 프레임을 씌울 수 있는 빌미를 줬다고 '보빨남의 최후'라든가 하는 식으로 양쪽에서 공격을 당했다.[2] 이후 사건 전개 과정에서 성희롱을 당했다는 본인이 그 트윗 내용을 스스로 삭제했다. 이는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스스로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그 후 계정 이동을 한 후에 비공개로 바꿨다. 이 탓에 박 시인은 잘못 알고서 2020년 1월까지 계정 폭파했다고 설명했는데, 4월에 최초 폭로자가 새 계정을 만들자 원래 계정을 폭파했다고 착각했는지 왜 예전 계정을 폭파했냐는 트윗을 썼다.). 최초 폭로자가 한 말과 탁수정이 한 말이 비슷한 내용이라 혼동하는 사람이 많은데, 박 시인 본인이 2018년 7월 2일에 올린 이 사람의 이름을 밝힌 트윗을 보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박 시인은 2019년 3월엔 '재발 방지'의 목적이라면 괜찮다는 변호사의 자문을 얻었다며 아예 최초 폭로자의 신원을 폭로했다(해당 글을 트위터, 블로그에 올렸으나 신고당해 삭제되었다.).[3] 그래도 댓글은 기사를 올린 시간을 감안하면 꽤 많이 달린 편이며, 시간이 늦어 보력지원이 없었는지 박진성 시인을 응원하고 한국일보를 비판하는 건전한 댓글들이 대부분이다.[4] 시인으로 1인 영상 제작사 목년사를 운영하고 있다(#).[5] 2016년에 유 작가가 대학생일 때 박 시인에게 스토킹 등을 당했음을 암시하는 산문을 썼고 2017년에 이 일과 관련해 유 작가의 남편과 박 시인 사이에서 언쟁이 있었는데, 유 작가가 박 시인을 고소한 계기 중 하나가 이 언쟁이었던 듯하다(#). 유 작가와 박 시인 사이의 형사소송과 별개로, 당시 박 시인은 유 작가의 남편에게 모욕죄를 지은 것이 인정되어 100만원의 벌금을 냈다(#1, #2).[6] 이 기사에선 출판사 이름이 나오지 않는데, 박 시인 아버지의 글에선 문학과지성사라고 나온다. 즉, 출고정지가 된 시집은 '식물의 밤'.[7] 해당 기사에 양측이 계약 해지에 합의했으나 변호사에게서 이대로 계약을 해지하면 안 된다는 조언을 들은 박 시인이 계약 해지를 보류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2018년 3월 21일에 박 시인이 문제의 출판사와 계약을 해지했다고 한 것은 정확히는 계약 해지 합의를 했다는 의미였던 것으로 보인다.[8] 게다가 트페미들의 조롱과 달리, 후원자들의 성비는 여성이 60%를 조금 넘는다고 한다.(#) 즉 후원자들은 박진성 시인을 헐뜯는 세력과 달리 성별이라는 진영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남녀 모두가 후원을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9] 이 링크에 나온 사람은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 리을과 시옷이라는 닉네임을 쓴 적 있고 김여선 또는 이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며, 주점 레스토랑 Cooper Room(카퍼룸)(#트위터 계정#네이버 플레이스 정보)에서 일하는 요리사이자 시인 지망생#@인데, 이 사건에서 박 시인에게 무고죄로 고소당한 2명 중 한 명(@)이다. 무고죄로 기소유예를 받은 뒤에 트위터 계정을 완전히 삭제했다가 파란이 사그라들자 다시 계정을 복구하였다. 여러 문학 작품들만 인용하는 식으로 한동안 이 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가 탁수정과 박 시인 간의 설전에서 자극을 받았는지 2월에 갑자기 박진성 시인을 공격했었는데, 김여선의 전과를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인지 반응은 대체로 싸늘한 편이었는 데다 도리어 대중들이 자신의 죄를 역으로 캐묻기 시작하자 수세에 몰린 것을 직감했는지 다시 트윗들을 삭제했고, 사태가 다시 잠잠해지자 자신을 비판했던 이들을 고소할 것을 선언했다. 3월에 또 박 시인을 공격했지만 예전에 비해 호응해주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며칠 후부터는 다른 일에만 전념하고 있는 듯했는데, 4월 16일에 '이후의 삶' 펀딩을 망치기 위해 다른 사람인 척해서 거금을 후원하겠다고 했다가 취소하려는 수작이 들켰다고 한다.[10] 웃긴 것은 2017년 5월 24일부터 자신의 전 연인이자 후배 문학도에게 '문단창녀'라 성희롱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박진성을 이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송승언은 이에 대응하지 않고 자신에게 비판하거나 박진성 편을 드는 자들은 무시당해도 싸다는 정신승리로 침묵하고 있으며 박진성 시인을 모욕했다는 증거를 삭제하고 있다(증거 자체는 예전부터 삭제하고 있었다고 한다.). #1@1#2@2#3@3[11] 그리고 ㅁㅊ은 박진성을 비하하는 과정에서 문단_내_성폭력 태그를 처음 돌렸다고 자처했으며, 카페 창비에서 자기 편을 들거나 자기와 처지 같은 모임에 모인 사람 몇몇과 같이 뒷담화와 무차별 고소를 모의했다는 간접적인 자폭 시인(是認)을 해버렸다. 이는 박진성처럼 무고죄 처분을 받은 피해자들의 조사에 쓰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여담으로 이 기사@에 나온 비공식 모금 출판 책 '참고문헌없음'에는 박진성 작가를 허위사실로 조리돌림한 한국일보 황수현 기자, 유진목 작가, 탁수정(책은탁)이 공동 저자로 표기되어 있다(해당 펀딩 주소). 즉, 저 자료도 무고죄 소송에 쓰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12] 2016년에 박진성 시인을 성범죄자로 거짓 고발한 2명 중에 탁수정이 있는 걸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니다. 당시 거짓 폭로자들을 탁수정이 지지하면서 자신도 성희롱을 당했다는 식으로 말한 건 맞기 때문에 이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탁수정의 위치는 1차 가해자가 아니라 1.5차 가해자쯤 된다.[13] 이 사례는 Holden 🔻Weatherfield라는 닉네임과 psychokinesis23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페미니즘 계정이다. 성향은 메갈리아 옹호자이자 가해자 이준행에게 재기라는 남성혐오 고인드립을 들은 피해자 전우용고소하다 용서한 사건의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한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옹호증거1@1#옹호증거2@2). 특히 박진성의 자살시도가 성공해야 기네스북에 올라갈 거라는 조롱을 일삼은 점을 자신의 취향으로 추정되는 아이디와 연관지어 해석해보면, '염동력이라는 초능력이 있다면 저 시인을 자살로 몰고갈 수 있을 텐데'라는 입장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진영논리에 휩싸인 나머지 자기 진영 일원의 범죄의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잃은 최악의 사례라 할 수 있다.[14] 이 글은 설전 초반의 상황이 정리된 글로, 그 이후 상황까지 정리된 글은 없다.[15] 대다수는 그를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린 거였지만, 비난하는 게 아닌 경우에도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에 그에게 트위터를 잠깐 쉬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멘션을 보낸 트위터리안도 있다. 당시 위에서 설명한 무혐의 처분 결정을 탁수정이 공개하고 박진성 시인이 탁수정의 이중잣대를 지적한 탓에, 트위터 내에서 이 설전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었다.[16] 박진성 시인이 카톡 대화 전문 공개 등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탁수정이 이에 대해 자살 시도까지 비꼬는 투로 그러면 병원 영수증을 내놓으라는 식으로 공격하자 2월 28일엔 병원 의무기록지를 공개했다(저 공격을 하기 전에 탁수정과 탁수정을 지지하는 측이 그의 자살 시도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공개하라고 해서 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에 대해 더 이상 공격하지 말라는 의미로 굳이 공개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최후의 카드였던 셈). 이후 그녀는 자신은 떳떳하니까 전문 공개하려면 하라고는 했으나 병원 의무기록지를 공개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별 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17] 탁수정이 또 영수증을 요구할까봐 미리 공개했다.#[18] 여담으로 리얼뉴스는 여타 진보 언론들과는 달리 래디컬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성향이 강하며, 인터뷰를 맡은 박가분 또한 래디컬 페미니즘에 비판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19] 박 시인은 4월에 고소했다고 말했지만, 유진목 작가가 알기로는 10월 17일에 고소를 했다고 한다.#[20] 손해배상 소송으로 유 작가와 유 작가의 남편이 같이 한 것이다. 박 시인은 맞고소했다. 3월 17일에 유 작가 측이 3000만원에서 2억 1천만원으로 소송가액을 올렸다고 하자 박 시인은 보배드림클리앙에 이에 대한 게시물을 올렸다.[21] 본 링크의 트페미는 이선옥 작가를 비판하면서 박진성 시인을 경멸하고 있다.[22] 이 세 정당의 공통점은 2030대 젊은 여성표와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중도층 + 중장년층을 생각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파 성향이 강하거나, 2030대 남성이라도 잡야할 정도로 정치적 기반이 부실한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원내 정당이면 2030대 남성의 투표율이 2030대 여성을 뛰어넘는 일이 없는 이상, 페미니즘에 대한 우호를 완전히 버릴 수가 없다. 그걸 떠나서 40대이상 여성들도 본인들이 2030대일 적에 여성차별을 받은 것 때문에, '내 딸(손녀)는 그러지않았으면...'하는 마음으로 좋게보는 시각도 많다. 그렇지 않으면 다수의 여성표은 물론 중도층과 남성 내부의 소수의 페미니즘 지지자와 중장년층 지지자들이 이탈해버리는 대형 참사가 생기기 때문이다. 거꾸로 정의당과 녹색당이 강력한 페미니즘 공약을 세우는 일이 가능한 이유도 정치성향상 2030대 남성표와 기독교 우파 표를 눈치보지 않아서이다. 애당초 이들은 2030대 여성 + 4050대 블루칼라 노동자에게서 지지도가 높고, 이들을 지지기반으로 삼기 때문이다.[23] 이전 문서에선 더불어민주당의 정치 성향상 절대로 버릴 수 없다고 나와있는데 만약 정치 성향상 페미니즘을 버릴 수 없다면 기독교 우파 눈치보면서 성소수자 관련 공약을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왜냐면 TERF를 제외한 나머지 페미니즘 분파는 성소수자에 대하여 우호적인데다 주류 여성인권단체들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2010년대 후반 따라 메갈리아-워마드의 탄생과 래디컬-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의 대두로 인하여 기독교 우파가 안티페미니즘과 수렴진화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20대 남성의 투표율이 20대 여성의 투표율과 엇비슷하면 페미니즘에 반감이 있는 기독교 우파 눈치는 물론, 20대 남성의 눈치도 보게 된다.그러면 2030대 남성과 기독교 우파가 그나마 수용이 가능한 자유주의 페미니즘이나 기독교계 페미니즘을 제외한 나머지 페미니즘 관련 공약은 이전보단 자제할 가능성이 높다.[24] 이에 반발해 나온 정치인의 대표적인 사례가 자유한국당 진영 현 용산구 의원과 전 이천시장 조병돈이다[25] 대안 우파나 안티페미니즘 성향 지지층이 새로운보수당만 지지하는 게 아니고 의외로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경우를 꽤 많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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