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승려)/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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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전에 생긴 논란점
2.1. 무소유에 대한 오해
2.2. 법정의 사망 원인에 대한 논란
2.3. 디시인사이드의 왜곡 짤방 사용
2.4. 타 종교 비하 논란
3. 법문 관련 논란
3.1. 미디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3.2. 미국 및 세계무역센터 비판
3.3. 소비 문화에 대한 과도한 비판



1. 개요[편집]


법정의 논란과 오해를 서술하는 항목.

법정이 생전에 사회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끼쳤고, 사후에도 그 영향력이 아직도 남아있을 정도로 법정의 행적은 불자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승려도 사람이고 살면서 논란이 아예 없기는 어렵기에 법정 역시 생전에 이런 저런 논란이 있었고 그와 동시에 본의 아니게 오해를 산 경우도 여러번 있었다.

아래의 논란은 법정 본인의 논란과 법문 발언에 대한 논란 두개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법정 본인이 문제가 아닌, 법정을 보는 시선으로 발생한 오해에 해당하며(즉 확대해석), 후자도 법정의 법문 도중 실제로 나온 말로 인한, 다시 말해 본인이 실제로 일으킨 오류에 해당되나, 이는 의도는 좋았으나 발언 속에 전통에 호소하는 오류나 편견, 과격한 발언 등을 섞여 있고, 일반 불자나 시민들은 승려 같은 수행자들처럼 의무적일 필요 없이 알아서 결정해야 하는 경우를 강조하여 강요에 가깝게 말하다 보니 이로 인해 생긴 오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2. 생전에 생긴 논란점[편집]



2.1. 무소유에 대한 오해[편집]


본인의 항목에도 나오는 것처럼, 법정은 생전에 무소유를 철저하게 지키면서 살아갔고, 이에 관련한 책을 동명의 제목으로 집필했다. 그러나 이 무소유의 의미에 대하여는 여전히 이를 접한 사람들 사이에서 찬반 및 논란에 놓여져 이에 대한 논의도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무소유에 대한 말뜻은 불교의 소욕지족, 즉 적은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의미로, 쉽게 말하자면 '가지지 말자. 즉 가지더라도 많이 가질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무소유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시기에는 적은 물건으로 생활하는 미니멀 라이프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는데 즉, 가지지 말라는 것은 노숙자와 유사하게 빈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냐는 의견과 동시에 법정의 의견은 승려가 자주 밖에 나오지 않다보니 현대 시대의 시장 경제와 제도의 장점을 완전히 역행하는 것에 불과한 보수적인 발언이란 의견도 있다. 아예 이를 비판한 기사도 있을 정도이며 심한 경우에는 법정을 비하하는 정도에 이르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법정은 어디까지나 소유로 인한 부작용 및 사회 문제를 우려해서 무소유를 하라고 주장했을 뿐이지 시장 경제와 사유 재산 제도 자체를 부정한 적은 없다. 또한 무소유 항목에 나와있듯이, 법정이 말한 무소유는 '가지지 말자'가 아니라 '가져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1]는 의미라고 밝힌 바 있고, 법정이 생전에 화초에 대해 집착심이 생긴 것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망설임 없이 준 일화를 밝혔다. 즉 불필요한 소비로 자연과 경제를 무너뜨리지 말고 자연과 화합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도인데, 이를 잘못 해석해서 생긴 오해.[2][3]

법정의 무소유 건만이 아니라 법정 본인이 무소유를 실천하는지에 대한 오해도 있는데, 법정이 사실은 상당한 인세유럽, 인도 여행을 다니는데 사용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명확한 근거가 없는 허위사실로, 유럽의 경우 프랑스 파리에 송광사 분원이 있어 법문을 위해 갔다오는 것으로 여비는 종단에서 내주고, 인도의 경우 기행기를 신문에 연재한다는 조건으로 조선일보에서 대줬다.[4] 정작 인세는 모두 장학금이나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했다고 한다.[5]


2.2. 법정의 사망 원인에 대한 논란[편집]


법정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도 소수 있는데, 이건 그의 병명이 폐암이고 병원에 입원한 것에 대해 안 좋은 추측이 돌았기 때문인 듯 하다. 대개 폐암의 원인은 담배라는 인식 탓인데, 폐암의 원인은 절대 흡연만 있는 게 아니며 실제로 전체 폐암 환자의 15% 정도가 비흡연자임에도 폐암에 걸린다. 실례로 평생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는 최영의도 사인은 폐암에 의한 호흡부전이다. 이에 대한 말을 많이 들었는지 자신이 폐암에 걸린 건 집안 내력이라 따로 말하기까지 했다. 링크

흡연 외에도 결핵 등 폐질환 병력이 있을 시 폐암 발병률이 높으며, 육식과 오신채를 금하는 식생활의 불균형과 무리한 수도 생활 역시 폐암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등 의외로 폐암의 원인은 상당히 다양하다. 여성 비흡연자임에도 폐암에 걸린 환자가 많아 연구해보니 요리하면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도 원인이라고 한다. 향(香)을 피울 때 나오는 독한 연기가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독실한 불자 신성일은 자신이 폐암에 걸린 원인이 향(香)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6] 오랜 세월 부모 영정 앞에서 향을 피우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故신성일이 언급한 폐암 원인 ‘향’


2.3. 디시인사이드의 왜곡 짤방 사용[편집]


"믿지 않는다 하여 자신의 자식이라 하는 인간들을 지옥불에 던져버리는 당신네들의 신을 난 당최 이해 할 수가 없다... 차라니 난 지옥에 가서 당신네 신에게 버림받은 그 억울한 영혼들을 구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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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방면으로 주로 전파된 짤방(삭제됨)


한때 법정이 '믿지 않는다고 자기 신자들을 지옥불에 던지는 기독교가 혐오스럽다고 차라리 난 지옥에 가서 버려진 영혼들을 구제하겠다.'는 기독교 비하 발언을 한 바가 있고 이를 디시인사이드의 종교 갤러리에서 짤로 사용한 게 인터넷 상에 전파되었다. 이로 인해 법정이 불교 외의 다른 종교에 대한 포용력이 부족하다며 그에 대한 비난도 많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를 혐오하는 반기독교 세력들이 '한 승려'가 한 이야기라 주장한 게 퍼진 것이 와전되었고, 애초에 이 발언이 사실인지도 그 말을 법정이 한 말이란 근거조차도 없는 카더라 통신이다. 이를 진짜로 믿은 어리석은 케이스도 있다. 어찌나 심각한지 길상사에서 직접 사실이 아니라고 공문을 올리기도 했다. (길상사의 해명 공지)[7]

거기다 법정이 사망한 현재 시점에서 보면 이름 있는 고승에 대해 짤로 고인비하 및 종교 비하를 저지른, 디시 특유의 문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2.4. 타 종교 비하 논란[편집]


생전 법정은 타 종교에 대해 호의적인 편으로 크리스천함석헌을 존경하거나 이해인과 교류를 가지는 등 타종교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천주교에서 불교로 개종하려는 사람에게 "천주교나 불교나 사랑의 근본은 모두 같으니 개종하지 말라"고 권유했다. 이 부분에 대해 "사람이 어느 종교에 지내든 종교를 개종하든 그 사람의 자유인데 사랑의 근본은 모두 같다고 개종을 반대하였다"며 종교의 자유를 가로막을 수도 있는 위험 발언이 아니냐고 비판을 하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이 일화는 초당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문현철이 법정을 추모하는 기고문을 모은 <법정, 나를 물들이다>에 서술한 실제 일화로(#), 이를 지나치게 과장하여 해석하거나 전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판단한 오류에 가깝다.

문현철이 법정을 처음 만난 것은 고교 2학년 때인 1982년 12월 초였다. 시골 중학교에서 전교 1~2등을 하다 광주에 올라와 떨어진 성적 때문에 말 못할 방황을 할 때 학교 상담 교사가 법정의 책 <산방한담>을 읽어볼 것을 권했고, 하룻밤 만에 <산방한담>을 읽은 지 일주일 후 평소 좋아하던 광주광역시 금남로1가에 있는 클래식음악감상실 '베토벤'[8]에서 실제로 법정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9] 그는 법정 앞에 앉아 “군인도 되고 싶고, 교수도 되고 싶은데 뭐가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당돌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법정은 “‘무엇이 될 것이냐’보다 ‘어떻게 살 것이냐’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가톨릭 입문을 준비하던 문현철은 다음해(1983년) 3월 다니던 명동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는데, 영세를 받고 신자가 된 바로 그날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다 1주일 만에 깨어났다.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된 바로 당일에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맬 지경이 되었던 문현철은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까지 품게 되어, 당시 김수환을 찾아가 "하느님이 의로우시다면 왜 내가 세례를 받은 바로 첫날부터 이렇게 내 목숨을 거둬가려 하셨느냐?"며 따지듯 물었고 김수환이 "하느님께서도 생각이 있으셨던 것"이라며 그를 위로했지만, 의문이 가시지 않아서 5월 말 퇴원하자마자 법정이 있던 조계산 불일암을 찾았다. 이때 문현철이 법정에게도 김수환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하느님이 계시다면 나를 친 차를 붙잡아주지 않고 영세받은 바로 그날 들이받게 내버려둘 수 있겠느냐”고 질문하자, 법정은 “천주님은 그런 만화 같은 일을 하는 분은 아니다. 이런 아픔을 통해 네가 더 성숙해져, 더 큰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문현철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머니의 도움으로 살면서[10] 조선대 법대 1학년 1학기를 겨우 마친 뒤 등록금을 마련 못해 학업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고, 문현철은 1987년 6월 항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이라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법정에게 이러한 생각을 털어놓으며 "차라리 스님 따라서 불교로 개종할까 싶습니다."고 말을 던졌는데, 그때 법정이 “누구는 청국장을 좋아하고, 누구는 김치찌개를 좋아할 뿐이지만 천주님의 사랑이나 부처님의 자비는 풀어보면 한 보따리다. 개종할 거 없으니 그대로 있어라.”며 개종을 말린 것이다.[11] 법정은 일부 개신교 목사들처럼 가톨릭의 교리를 공박하거나 가톨릭 자체를 비난하면서 개종을 권한 적도 없고, 문현철이 개종을 말한 것도 학업 스트레스나 시국의 불안 속에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면서 어디가 마음 둘 데가 절실한 와중에 반쯤은 던지듯 나온 발언이라 그 점을 지적하면서 "굳이 개종까지 할 필요 없다"고 말린 것이다. 이는 전의 항목에서 말한 것처럼 개종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 개종까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고민하던 사람의 길을 잡아준 것에 가깝다. 문현철은 이에 대해서 "법정 스님 덕분에 내 가톨릭 신앙을 지키면서도 스님을 따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문현철이 법대 1학년 1학기를 겨우 마치고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학업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도 법정은 불현듯 “등록금 고지서를 베토벤에 맡겨놓으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졸업 때까지 빠짐없이 법정은 문현철에게 등록금을 지원해 준 것은 물론, 문현철에게 같은 대학 친구 가운데 돈 없어서 공부 못하는 사람 3명만 알아오라고 해서 그 학생들의 등록금도[12] 졸업 때까지 도와주었다. 그러면서도 문현철이나 베토벤의 주인에게 그가 도움을 준 사실을 일절 함구토록 해 지금까지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 이밖에도 법정은 자주 문현철에게 학문을 배우는 태도와 자세에 대한 조언을 해 주었으며, 문현철은 그 인연으로 재단법인 맑고향기롭게 창립식에 참석해 법정을 만나 축하했고, 법정이 사망하자 장례식에도 참석했다. #


3. 법문 관련 논란[편집]



3.1. 미디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편집]


접기/닫기 ▼

"첫째. TV 보는 시간을 줄이라는 것입니다. 삶의 속도, 가정의 평화, 사고력에 대한 통제력을 우리가 회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의 속도, 가정의 평화, 혹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궁리, 사색,

이것들을 그동안 온통 텔레비전에 빼앗겨 버렸기 때문입니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는 TFA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이 단체는 1979년 4월 22일부터 지구의 날을 시작했는데,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살리자는 뜻에서 만든 것입니다.

그들은 매년 4월 22일을 시작으로 일주일 동안 테레비전 보지 않기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의 구호는 '텔레비전을 끄고, 인생을 켜세요.'입니다.

(중략)

이 단체에서는 테레비전의 시청 대신 산책이나 등산, 자녀에게 책 읽어주기,

저녁노을 바라보기, 별자리 찾기, 또 편지 쓰기, 정원 가꾸기, 집 고치기 등 백여가지 활동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회원들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테레비전 방송의 질도 문제지만 우리는 그것에 많은 시간을 뺏기고 있습니다.

귀중한 가치를 무가치하게 소모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잠재된 좋은 능력을 무가치한 일에 아낌 없이 쏟아 버리고 있습니다."

"둘째. 부스러기 뉴스를 피하라는 것입니다.

시시한 정치꾼들의 정파 싸움이나 횡령 같은 뉴스들입니다. 제발 그것들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것에 아까운 시간과 내 맑은 영혼을 내던지는가!"

셋째. 때로는 핸드폰을 놓아두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편리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그것때문에 얼마나 귀찮습니까.

조용히 있으려면 전화를 걸어서 불러내지 않습니까.

물론 필요한 도구지만 때로는 핸드폰을 놔두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을 때도 얼마든지 잘 살았습니다."

"넷째, 광고에 저항해야 합니다.

물론 광고를 통해서 새로운 상품도 선택하고 사기도 하지만, 신문에 잔뜩 곁들여져 온 그 광고지를 누가 다 봅니까.

아까운 자원만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숲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광고지를 즐겨 본다는 것은, 간접적으로 나무를 베고 있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법정의 법문집 제2권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의 문명의 소도구로 전락하지 말라((2001년 2월 18일 2월 정기 법회) 중에서.(206~207P) 실제 법문


저는 9.11 테러를 보면서 이것은 인과관계다, 업의 파장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를 비롯해 폭력물이 얼마나 난무했습니까. 가상 세계에서 비행기가 폭발하는 장면들이 지속적으로 나왔습니다.

드라마에서도 나오고, 소설에서도 나오고, 영화에서도 나왔습니다.

작가의 시나리오에 의해서 만들어 진거지만 테러 집단이 여기에서 배운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업이 지금의 나를, 오늘의 우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법정의 법문집 제2권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의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2001년 11월 4일 뉴욕 불광사 초정법회) 중에서.(161~162P)


접기/닫기 ▼

"김포공항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가까운 동광양 쪽에 공단이 있어서 거기에도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가서 출입국 증명을 때기 위해 제 주민등록을 넣으니, 제가 지금까지 이 세상에 나와서 외국에 나갔다 들어온 기록이

컴퓨터에 다 나왔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편리한 것에 놀란 것이 아니라 "컴퓨터라는 것이 우리를 옴싹 못하도록 감시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기계인데, 저는 그 결과를 보며 섬뜩했습니다. '아 우리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에는 전혀 몰랐습니다. 제가 겪어 보니 알 것 같았습니다."

"전자우편 아시죠? 이 메일이라고 하는데 무척 신속합니다. 지구 끝에서 보내도 바로 답장을 알수 있습니다.

빠른 것이 좋은 것인지 생각해보십시오.

물론, 사무적인 일 때문에 즉시 답을 내려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문안 인사라던가, '달이 밝네. 꽃이 피네.'같은 편지도 있습니다.

그런 편지는 오히려 육필로 쓰는 경우가 좋습니다.

또, 뜸을 들인 뒤 답을 내려야 하는 기다림이 있어야 하는데, 즉각 답장이 오니 얼마나 싱겁습니까?"

법정의 법문집 제2권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의 문명의 소도구로 전락하지 말라((2001년 2월 18일 2월 정기 법회) 중에서.(203~204P)


"또한 할리우드에서 만든 서부영화들이 인디언들의 실체를 그런식으로 왜곡했습니다. 모든 영화가 인디언들을 머리 가죽이나 벗기는 미개하고 잔인한 종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침략자인 자신들을 합리화하기 위해 인디언들을 미개한 야만인으로 몰아세운 것입니다.

법정의 법문집 제2권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의 미국에 와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말하다((2000년 11월 17일 뉴욕 불광사 초정법회) 중에서.(247P) (실제 법문)


사람들은 어릴때부터 곧 잘 다룬다. 뿐만 아니라 전쟁놀이도 겸하고 있다.

장난감 가게에는 예쁜 인형과 함께 총과 칼도 팔고 있다. 귀여운 고사리 손이 살육하는 현장에 익숙해지도록 성인들이 몸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운동 경기 종목 가운데에는 권투와 레슬링이라는게 있다.

이 두가지 경기는 그 어떤 경기보다 관중들을 미치게 하고 환장하게 만든다.

그것이 나라와 나라의 경기일 경우 링 위에서 치고 받는 선수뿐 아니라 관중들도 함께 싸우고 있다.

"밟아라! 죽여라!" 하는 함성과 함께 때로는 돌맹이가 날고 술병이 던져진다. 이런걸 가리켜 그래도 친선 경기라고 한다.

인간끼리 마주 붙어 치고받는 이런 행위가 경기 종목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한, 인간 촌락에 싸움이 그칠 날은 멀다.

전쟁이란 무엇인가? 바로 이런 경기의 확대판이 아니겠는가

법정의 자서전 무소유의 불교의 평화관 중에서 (155P)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에 수록된 생전 법문에서 TV, 뉴스, 휴대폰 등의 미디어 자체를 멀리해야 한다는 말을 한 바가 있다. 이때는 시대가 시대라서 법정의 저 발언이 통했지만, 미디어가 중심이 되어가는 현재에 와서는 재평가와 동시에 비판 받을 여지가 있어보인다.

물론 본인은 저 미디어들이 번뇌를 야기시켜 사람의 마음을 탁해지게 할 수도 있고, 시대가 지나면서 미디어로 인한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고려하면 의도는 좋았다고 볼 수 있으나, 미디어에 노출된다고 무조건 탁해지는 것도 아닌데 아주 멀리하다시피 해야 한다는 말은 법정이 너무 성급한 일반화를 한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 뉴스를 보지 말라는 것은 사회 활동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정작 법정 본인은 사회 활동에 관여했다는 점에서 위 발언은 무리수로 보인다. 애초에 이런 시선으로 보면 박근혜 탄핵 운동 역시 뉴스를 본 사람들의 맑은 영혼을 내다버리고 쓸데없이 시간 낭비한게 돼버리지만, 이 경우는 오히려 뉴스가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 순효과이다.

또한 핸드폰이 없어도 잘 살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핸드폰이 없으면 여러운 환경이며, 광고에 저항하라는 부분도 위의 TV와 뉴스에 대한 비판과 같은 이유도 있지만 수 많은 숲이 사라지니 광고 전단지를 만들지 말라는 것은 광고도 하지 말라는 의미로 오해 받을 수도 있다.

SNS에 대해서도 부정적인데, 부산 초청 강연 당시에 가상세계는 인간의 온기가 없는 곳이란 발언을 한 바가 있다. 확실히 SNS 같은 가상 매체가 타인과 직접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소통이 어렵거나 남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긴 하나, 거리가 멀어서 직접 마주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SNS 같은 가상 세계가 소통에 도움이 되고 거기다 아무리 그런 단점이 있긴 해도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경우나 적극적으로 교류를 하는 경우도 있는 만큼 법정의 이 발언은 SNS의 긍정적인 면모를 외면하는 문제가 있다. 만약 법정의 이 논리대로라면 사람들은 무조건 직접적으로 소통해야 하며 아예 번거롭더라도 서울↔부산 같은 먼 거리를 직접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는 게 된다. 즉 법정의 위 발언은 저런거 다 외면하고 원시인이나 노숙자처럼 살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만큼 위의 무소유의 케이스와는 반대로 진짜로 시대를 역행하는 발언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 즉 드라마나 영화에 관해서도 부정적인데, 2001년 11월 4일 뉴욕 불광사 초정법회에서 9.11 테러를 언급하며 영화 등의 폭력적인 게 많다보니 이에 노출되어 이런 일이 반복된다, 즉 미디어가 사람들을 폭력적이게 만든다라는 발언을 했다.

다만 이 논란은 법정만 해당되는 편이 아닌데, 현재 일본 승계를 떠난 코이케 류노스케 역시 자신이 쓴 저서 및 인터뷰를 통해 청정해지고 싶다면 뉴스 같은 미디어를 멀리 해야 하며, SNS는 분노의 번뇌모드에 침투되기 좋은 환경이니 하지 않아야 한다.고 밝히는 등 승려 중에 미디어에 대해 부정적인 승려들을 의외로 꽤 많이 찾을 수 있으며, 승려가 아니더라도 알렉스 퍼거슨처럼 SNS를 두고 딱 잘라 인생의 낭비라고 하면서 SNS의 안 좋은 부분만 강조하여 부정적인 시선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물론 해당 법문에서의 발언은 앞일을 우려한 비교적 온건한 조언[13]이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이해가 간다 쳐도, 미디어가 폭력적이게 만든다는 발언은 충분히 무리수가 된다. 법정은 업에 대해 쉽게 설명하기 위해 언급한, 의도는 좋은 편이지만 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사건 등의 기사나 발언이 특정 미디어 요소가 폭력적이게 만든다는 말을 했다 비판만 받은 것을 감안하면 이는 충분한 편견. 애초에 영향이 아예 없다고 볼 순 없지만, 사람이 폭력적인 사태가 되는 것은 드라마, 게임 등의 미디어보다는 인성 문제가 더 큰 문제점이다. 위 논리대로라면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폭력성에 물들어져 폭력적이게 변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폭력적이게 변한 사례나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 물론 생전 수기에서 TV에서 레슬링 같은 무력이 들어가는 스포츠나 정치 싸움 등의 뉴스를 접하다보니 이를 추하게 느껴 거부 반응을 느낀, 본인 경험에서 우러나와 이야기하는 것이라도, 이는 법정 같은 수행자들에게 해당되는 일이지 일반 불자에게는 해당되기 어려울 뿐더러, TV라고 무조건 과격한 이야기나 뉴스만 나오는게 아니며 폭력적이지 않은 스포츠도 많이 있다. 특히 법문 중에 언급한 9.11 테러의 주동자 알 카에다가 미디어의 비행기가 폭발하는 장면으로 테러 방식을 배웠다고 말하나, 이들의 태러 행위는 극단적인 사상에서 나온 것이지, 이게 미디어의 지속적인 노출로 극대화된 것이 아니다. 즉 폭발 장면, 미디어와는 관련이 없다.

스포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편으로 특히 권투 같은 몸으로 주고 받는 격투기 장르를 유사 전쟁이라 보고 비판했다. 고작 스포츠 가지고 전쟁이니 뭐니 하고 비유하는 것 자체가 과몰입이자 급발진이며, 무소유의 '아름다움 -낯모르는 누이들에게-'에서는 미스코리아미스 유니버스에 대해 혼이 없는 거짓된 아름다움이란 과격한 발언으로 평가함과 동시에 외모를 가꾸는 것을 무의미하게 보기도 했다. 물론 이는 겉에 드러나는 부분보다는 내면의 미를 중심으로 가꾸라는 의도이나, 서술이 너무 과격함이 섞여 있으며, 무엇보다 미스코리아 등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여성들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는 발언에 가깝다.

3.2. 미국 및 세계무역센터 비판[편집]


법정스님 뉴욕 법회 ˝미국은 교만하고 독선적˝

"세계 전체 인구의 5퍼센트밖에 안되는 미국 사람들이 지구 자원의 대부분을 독점점으로 점유하고 소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지구상에서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악순환을 부채질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생활 방식은 한마디로 배타적인 탐욕, 남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탐욕입니다.""

"무역 센터 건물 자체가 무슨 허물입니까? 그 건물이 미국 자본 주의, 부의 상징입니다.

그것은 수많은 배고픈 사람들의 희생 위에 새워둔 탑에 불과합니다."

법정의 법문집 제2권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의 한 평생 몇번이나 둥근 달을 볼까((2000년 11월 17일 뉴욕 불광사 초정법회) 중에서 (101~102P)


법정이 뉴욕에서 법문할 당시, 미국은 교만하고 독선적인 자들이며, 세계무역센터는 국민들을 희생하여 건설한 자낳괴의 산물이라는 과격한 비판을 했다. 문제는 자본주의를 비판한다는 의도만 좋을 뿐, 이 과정에서 미국의 상징인 무역 센터와 미국인 자체를 깎아내렸다는 논란을 일으키기 쉬운, 도가 지나친 비하로 들릴 수도 있는 비판을 했다는 점. 심지어 그래놓고 미국 대다수는 선량하다는 태새전환을 시도했다는 점에 있다. 즉, 세상을 안정적이게 만들기 위해서는 미국은 더이상 생산을 하지 말고 무역 센터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는 말을 한 것은 물론 미국 정부는 쓰레기라는 위험도 높은 말을 한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무리 미국에서 사건 사고가 많고, 이는 미국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게 사실일 지라도 본인이 법문하기 위해 찾아간 타국에서 위 발언은 오해의 소지가 생기고도 남는다.


3.3. 소비 문화에 대한 과도한 비판[편집]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소비 사회라고 합니다. 소비 사회, 사서 없앤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 우리는 소비자라고 불립니다.

나는 이 소비자에 대한 말에 강한 저항을 느낍니다. 세상에 소비자가 될수 있습니까.

소비 사회는 늘 새것을 숭배합니다. 남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물건을 소유한 사람을 부러워 하는 시기입니다.

세상에 새거가 어디 있습니까? 이미 있던것이 변형된것일 뿐입니다.

냉장고가 어떻게 변했든, 세탁기가 어떻게 탈바꿈 했든, 그 기능은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모양만 다르게 해서, 형태만 다르게 해서 그것을 내놓은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현혹 돼서는 안됩니다.

-

"세상에는 탐욕스런 부자가 있습니다. 탐욕스런 부자가 있기 때문에 거기애 도둑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법정의 법문집 제2권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의 한 평생 몇번이나 둥근 달을 볼까((2002년 10월 27일 뉴욕 불광사 초정법회) 중에서 (100~101P)


"서방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한 라다크 노인이 말합니다.

물론 가난하게 사는 노인입니다.

「나는 바깥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 식탁과 의자와 카펫을 갖고 편안하게 산다고 들었다. 쌀과 설탕 등, 행복에 필요한 모든것을 갖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보리떡과 죽밖애는 먹을 것이 없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다.

나는 이가 다 빠져서 먹을 수도 없다. 당신들은 좋은 옷을 입었지만 보다시피 내 옷은 다 해진 누더기다.

그런데도 바깥 세상에는 많은 불행이 있다고 나는 들었다.」

기자가 노인에게 현대인들이 불행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노인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마도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옷과 가구와 재산들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거기에 마음을 빼앗겨 기도하고 배우면서

차분히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없을 것이오.」

노인은 불행의 원인을 이렇게 진단합니다. 저도 이 글을 읽고 움찔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는 메세지입니다. 물질에 혼을 다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자질구레한 도구들에 혼을 다 빼앗겼기 때문에 조용히 기도하고 배울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불행한 것은 가진 재산이 당신들에게 주는것보다 빼앗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소.」"

법정의 법문집 제2권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의 미국에 와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말하다((2000년 11월 17일 뉴욕 불광사 초정법회) 중에서 (244~245P)


소비 문화에 대해서도 비판을 한 적이 있다.
특히 자신은 소비자란 말을 극도로 혐오한다고 밝힌 적이 있으며, 소비란 것은 남들이 가지지 않은 물건을 사치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1] 불교의 핵심 교리인 사성제에서 고통의 원인을 집착으로 본다는 점을 생각해보자.[2] 다만 이는 잘못 해석할 경우 자기가 가진 물건 및 주변 인물들에게 애정도 우정도 주지 않고 냉담하거나 무감정한 태도로 대해야 한다고 오해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일부 경전(특히 아함경)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해석해서 부처는 돈을 벌라고 했다며 주장하는 유사 경제학자도 있다.[3] 사실 법정의 이 발언 자체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이러한 관점에서는 부자나 재벌 등 기득권층은 가진 것에 집착하는 마치 졸부 그 자체로 인식될 수 있다.[4] 이 기행기는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책으로 나왔다. 이것을 보면 1980년대 후반의 인도, 네팔 배낭여행이 어땠는지를 대략적으로 볼 수 있다.[5] 그 때문에 자신의 병원비를 댈 돈이 없었으나, 독실한 원불교 신자로 유명한 이건희의 부인 홍라희가 법정의 임종 직전 밀린 치료비 수천만 원을 대납해줬다.[6] 신성일 역시 평생 담배를 멀리했다.[7] 다만 성철의 열반송을 두고 개신교계에서 일방적인 해석을 들이대자 법정이 "진정한 참회와 함께 지옥에 가서라도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커다란 서원"이라고 풀이했는데, 1994년 PC통신 하이텔 상담실에 올라왔다는 이 해당 질의응답이 불교 신문에 게재된 적이 있는데 # 이게 어찌저찌 와전되어 전해진 결과일 수도 있다.[8] 1982년에 문을 열었으며, 전남도청 앞 금향빌딩 6층에 있고 지금도 운영한다. 2007년에 경영난을 겪어 문을 닫을 뻔했지만 준태, 성진기 등 단골 고객들의 도움으로 폐점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9] 바로크 시대의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 법정은 불일암에서 광주에 올라오면 그 감상실에서 지인들을 만나곤 했다.[10] 법정 역시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다.[11] 출처: <법정, 나를 물들이다>에서[12] 학과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나 성적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묻지 않았다.[13] 실제로 가짜 뉴스, 사이버 렉카의 등장 및 과도한 PPL, 악플 등의 사회 문제라든가, 심리존 의존과 거복묵, 백내장 등의 건강 문제 등 등 여러가지 문제점이 현재 진행중에 있다. 즉 아예 쓰지 말라가 아니라 자중하면서 스스로의 성찰 및 바깥에서의 교류도 등외시하지 마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되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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