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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문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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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이서(李舒)는 여말선초의 관료, 조선의 정승이다.그리고 조선의 최초의 영의정이다.
2. 생애[편집]
고려 고종 때 문하시중을 지낸 이연수(李延壽)의 6세손이며, 연경궁 제학(延慶宮提學) 이기종(李起宗)의 아들이다. 홍주를 관향으로 하게 된 것은 아버지 때부터이다.
1357년(공민왕 6)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군부좌랑(軍簿佐郞)에 이르렀으나, 세상이 어지럽고 정치가 문란한 것을 보고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은둔하였다.
1392년(태조 1) 태조 추대에 참여하여 음력 8월 20일 개국공신 3등에 책록되어 안평군(安平君)에 봉해지고 형조 전서(典書)에 임명되었다. 1394년(태조 3) 사헌부 대사헌이 되었고, 1396년(태조 5) 신덕왕후가 죽자 3년간 정릉을 수묘(守墓)하였다. 1398년(태조 7)에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에 올랐다.
태종이 즉위한 후 1401년(태종 1) 문하시랑찬성사에 이어 우정승으로 부원군에 진봉(進封)되고 고명사(誥命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같은 해 영의정이라는 명칭으로는 처음 임명되어 고령으로 치사했다.
태조가 이서를 개인적으로 친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두 번에 걸친 왕자의 난으로 상심하여 전국의 명산대찰을 돌고있던 태조를 중 설오(雪悟)와 함께 안주에 나가 맞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1404년(태종 4) 다시 우정승이 되어 정계에 복귀하였고 1405년(태종 5) 다시 치사하였다. 1409년(태종 9) 다시 우정승으로 복귀하였다가, 같은 해 완전히 은퇴하고 다시 영의정이 되어 기로소에 들어간 뒤 말년을 향리에서 보내다 1410년(태종 10)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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