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 퇴화점문 나한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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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173호
청자 퇴화점문 나한좌상
靑磁 堆花點文 羅漢坐像


소재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분류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청자
수량/면적
1구
지정연도
1974년 7월 9일
제작시기
고려시대(12세기 전반)
파일:국보173호청자퇴화점문나한좌상.jpg

1. 개요
2. 내용
3. 외부 링크
4. 국보 제173호


1. 개요[편집]


靑磁 堆花點文 羅漢坐像. 청자 퇴화점문 나한좌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형 고려청자이다. 1950년대에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며, 발견 당시에는 6조각으로 깨져 있던 것을 수리하여 복원해 놓은 것이다.[1]

문화재 명에서 언급되는 퇴화점문은 퇴화기법(堆畵技法)을 뜻하는데, 퇴화기법이란 검은 흙(흑토)과 흰 흙(백토) 등을 물감처럼 물에 풀어 갠 뒤 이걸로 무늬나 그림 등의 문양을 그리고 그 위에 유약을 바르는 기법이다. 청자 퇴화점문 나한좌상은 퇴화기법 이외에도, 가루를 안료로 써서 문양을 표현하는 철채(鐵彩)기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청자 퇴화점문 나한좌상은 1974년 국보 제173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다.


2. 내용[편집]


청자 퇴화점문 나한좌상은 높이 22.3cm의 크지 않은 고려청자인데, 고려시대에는 청자로 그릇이나 항아리 같은 것만 만든 것이 아니라 불상이나 장식품도 청자로 만들기도 하였다. 본 청자는 승려 형상의 앉아있는 나한을 표현하였는데, 불상으로 모시려는 용도로 제작했거나 또는 장식품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청자 퇴화점문 나한좌상은 크기는 작지만 상당히 섬세하고 정교한 표현 수준을 드러낸다. 전체적인 형상은 청자의 비색을 띄고 있는 나한이 바위에 놓인 작은 탁자 위에 두 팔을 모두 올려서 기대고는 오른 무릎을 약간 일으켜 세우고 앉아있는 모습인데, 나한의 표현이 상당히 뛰어나다. 우선, 나한의 표정은 반쯤 감은 눈을 뜨고는 숙연 혹은 근엄한 표정을 짓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데, 이마에 맺힌 주름과 굳게 다문 입, 코와 입가의 팔자 주름 등을 음각으로 정교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나한의 눈썹과 눈동자, 법의의 옷주름 일부는 철가루를 이용해서 표현하였다.[2] 특히 나한이 입은 법의는 철가루 뿐만 아니라 백토를 점처럼 찍어서 장식성을 나타내고 있다.[3]

청자를 덮고 있는 유약의 광택은 아직도 잘 남아있는 편이지만, 일부는 산화되어 변색된 부분이 약간 있기도 하다. 나한좌상의 내부는 비어 있다.

청자 퇴화점문 나한좌상은 제작 기법 상에 있어서 특별히 난이도가 높거나 구현하기 어려운 방식을 사용하진 않았고 장식적인 면에서도 눈에 띄는 화려한 표현이 나타나진 않지만, 철채와 퇴화기법이 모두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가 드물며 섬세하고 정교한 나한의 묘사로 그 예술성을 높게 평가할 수 있는 빼어난 작품이다. 특히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나한의 형상과 표정에서, 선종이 가르치는 깨달음을 사색하며 고요하게 추구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청자 퇴화점문 나한좌상은 그 예술품적인 아름다움과 불상으로서의 엄숙함, 고려시대의 완숙한 청자 제작 공예 수준을 드러내는 등의 중요성을 인정 받아 1974년 7월 9일 국보 제173호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편집]




4. 국보 제173호[편집]



1950년대 강화도 국화리에서 발견되었는데, 당시에 여섯조각으로 부서져 있던 것을 복원시켜 놓은 것이다.

바위 모양의 대좌(臺座) 위에 팔짱을 낀 채 작은 책상에 의지하여 오른쪽 무릎을 반쯤 일으켜 세우고 앉아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다. 눈은 반쯤 뜨고 있는데, 눈썹과 눈이 수려하고 코는 오똑하다. 머리와 옷주름 일부, 눈썹, 눈동자, 바위 대좌 등에는 철분이 함유된 검은색 안료를 군데군데 칠하였으며, 옷의 주름가에는 백토를 사용하여 도드라진 점을 찍었다.

이 작품은 사색하듯 숙연히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세와 책상, 바위 대좌의 처리 등에서 고려시대 공예조각을 대표할 수 있는 걸작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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