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 쿠로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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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연방 초대 쿠반 군관구 사령관
파벨 알렉세예비치 쿠로치킨
Па́вел Алексе́евич Ку́рочкин
Pavel Alekseyevich Kurochkin

출생
1900년 11월 19일
러시아 제국 스몰렌스크현 뱌지마군 고르네보 마을
사망
1971년 9월 11일 (향년 77세)
소련 러시아 SFSR 모스크바
묘소
노보데비치 묘지
재임기간
초대 쿠반 군관구 사령관
1945년 7월 31일 ~ 1946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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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진급 이력



1. 개요[편집]


소련군인.


2. 생애[편집]


13살부터 제과점, 증기 기관차 정비소에서 근무했다.


2.1. 러시아 내전[편집]


1918년 8월부터 제2특수소총여단 신호중대 소속으로 아르한겔스크에서 전투를 치렀다. 1920년 12월부터 제56소총사단 제1기병연대에서 탐보프 봉기를 진압했다. 1924년 5월부터 제2기병사단 직할 사관학교 임시 총장을 역임했다.


2.2. 제2차 세계 대전[편집]


1939년 12월, 제28소총군단장이 된 뒤 겨울전쟁에 참전했다. 임무는 빙하를 건너 비보르크 근처 핀란드 공화국군의 통신망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2.2.1. 독소전쟁[편집]


제20군에 제5기계화군단, 제7기계화군단이 신설됨과 동시에 쿠로치킨은 총 1,500여 대의 T-34 전차, 보로실로프 전차로 부대를 편성할 수 있었으나 무의미한 소모전만 치르다 후퇴했다. 1941년 7월 10일, 스몰렌스크 전투가 개시됐는데 나치 독일 육군은 16일 이미 스몰렌스크를 돌파했다. 쿠로치킨은 여전히 지휘권을 가진 채 후퇴와 반격을 계속했다. 또 다시 큰 성과를 내지 못하자 8월 8일 포위에서 탈출한 뒤 제43예비군 사령관으로 좌천됐다.

1942년 10월까지 레닌그라드 공방전, 데미얀스크 전투 당시 북서부전선 사령관으로 활동했다. 마침내 3번째 패배를 맞이한 쿠로치킨은 부사령관, 이후 제11군 사령관으로 강등당했다. 1944년 2월 24일 제2벨로루시전선군 사령관으로 임명돼 폴란드 공세를 지휘하게 됐는데, 또 패배해버리자 해당 전선은 1944년 4월 5일 해체됐다.

1944년 4월 15일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제1우크라이나 전선군 제60군 사령관으로 임명돼 리보프를 포함한 8개의 도시에서 나치 독일 육군을 궤멸시킨 덕분에 과거의 실책을 만회하고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획득했다.


2.3. 사망[편집]


1989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이로서 쿠로치킨은 가장 마지막에 사망한 전선 사령관이 됐다.


3. 진급 이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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