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 코셰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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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소련의 군인이다.
2. 생애[편집]
2.1. 초기[편집]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1919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부모님의 농장에서 일했다.
2.2. 러시아 내전[편집]
1920년 2월 노농적군에 입대해 제8적군카자크사단 제2적군카자크연대에서 복무했다.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당시 남서부전선에서 게릴라군들을 상대로 전투를 치르다 부상을 입었다.
2.2.1. 전후[편집]
1924년 8월 세묜 부됸늬 기병학교를 수료한 뒤 볼셰비키에 합류했다. 1927년 9월 모스크바 군관구 특수기병여단 제61기병연대 소대장을 역임했으며 연합사관학교 기관총편대 부편대장으로 임명됐다. 1936년 5월 프룬제 군사대학을 수료한 뒤 제15기병사단장을 역임했다.
2.3. 제2차 세계 대전[편집]
2.3.1. 독소전쟁[편집]
후방부대를 지휘했으나 쿠이비셰프 군사 퍼레이드 이후 반강제적으로 최전방에 배치됐다. 레닌그라드 공방전을 성공적으로 끝낸 덕분에 코셰보이의 부대는 전투 1달 만에 적기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신야비노 공세, 로스토프 전투에 참전해 1943년 8월 제63소총군단장으로 임명됐다. 코셰보이는 세바스토폴 공방전에서 6300여 명의 군인을 포로로 잡고 전차 20대, 야포 180여 문을 파괴했다. 소련 최고회의 법령에 따라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수여받았다. 1945년 1월, 제36근위소총병군단장으로서 동프로이센 공세에 참전해 나치 독일 육군을 궤멸시켰다. 이로서 코셰보이는 적극적이고 유능한 사령관임을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증명해냈다.
2.4. 프라하의 봄[편집]
3일만에 군사 작전을 성공해 파벨 바티츠키와 함께 원수로 진급했다.
2.5. 말년[편집]
서부군집단 총사령관을 역임하다 빅토르 쿨리코프에게 보직을 넘기고 소련 국방부 감찰관으로 임명됐다. 이후 1976년 8월 30일 모스크바에서 사망 후 노보데비치 묘지에 안장됐다. 코셰보이는 소련군 역사상 최초로 크렘린 벽 묘지가 아닌 곳에 안장된 원수가 됐다.
3. 진급 이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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