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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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전 공포영화
1.1. 스토리
2. 미국의 헤비메탈 밴드
2.1. 역사



1. 고전 공포영화[편집]


화이트 좀비
White Zombie
파일:attachment/화이트 좀비/WZ1.jpg
개봉
1932년 7월 28일
감독
빅터 할페린
제작
빅터 할페린 프로덕션
배급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제작
에드워드 할페린
각본
가넷 웨스턴
촬영
아서 마르니텔리
음악
가이 베비어 윌리엄스
편집
해롤드 맥레넌
분장
잭 P. 피어스

1932년 작 미국의 공포영화. 벨라 루고시가 주연을 맡았다. 세계 최초로 제목에 좀비가 들어간 영화이며 현재의 좀비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전, 부두주술로 되살아난 시체인 좀비를 소재로 한 공포영화. 마누엘 푸익의 소설 거미여인의 키스에도 내용이 언급된다. 5만 달러로 만들어져 87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는데 감독인 빅터 핼퍼린(1895~1983)은 1936년에 후속격인 좀비의 복수를 만들지만 이건 흥행에 실패하여 부두교 좀비 시리즈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1.1. 스토리[편집]


아이티 섬으로 신혼여행을 온 닐(잔 해런 분)과 매들렌(매지 벨러미 분) 커플은 배에서 알게 된 섬의 농장주 보만트(라버트 프레이저 분)의 저택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다. 하지만 매들렌을 짝사랑하게 된 보만트는 좀비를 부리는 주술사 "머더" 러잔드러(벨라 루고시 분)에게 의뢰해 매들렌을 빼앗으려는 음모를 꾸민다.

결혼식 날, 보만트가 장미꽃 속에 넣어둔 비약과 머더의 주술에 의해 매들렌은 가사상태에 빠진다. 죽은 것으로 여겨진 매들렌은 매장되는데 그 시신은 머더가 부리는 좀비들에 의해 빼돌려진다. 좀비가 된 매들렌은 절벽 위에 세워진 머더의 성에 유폐된다. 아름다운 매들렌에게 마음을 빼앗긴 머더는 방해가 되는 보만트에게도 좀비가 되는 비약을 마시게 한다.

한편 비탄에 빠진 닐은 선교사 브루너(조지프 커손 분)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머더의 성에 도착한다. 매들렌을 구하기 위해 성에 잠입한 닐. 하지만 그의 앞에 머더가 조종하는 좀비들이 막아서는데...


2. 미국의 헤비메탈 밴드[편집]


파일:white zombie.jpg

1번 항목에서 이름을 따온 미국 뉴욕주 출신의 헤비 메탈 밴드.

원래는 하드코어 펑크노이즈 록을 섞은듯한 음악을 하는 팀이었으나 2집 <Make Them Die Slowly>에서는 스래시 메탈의 요소를 받아들였고[1] 3집이자 메이저 데뷔 앨범인 <La Sexorcisto: Devil Music, Vol. 1>에서는 2집의 사운드에 그루브 메탈[2], 4집 <Astro Creep : 2000>에서는 3집의 사운드에 인더스트리얼 메탈까지 배합한 독특한 음악 세계를 들려주었다. 베이시스트 션 이설트는 "활동 당시 밴드 멤버들은 메탈리카, 슬레이어, 라몬즈, KISS, 모터헤드, AC/DC 등 다양한 락 밴드들을 즐겨듣는 동시에 비스티 보이즈, Run DMC, 퍼블릭 애너미같은 힙합 그룹들도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여러 장르를 짬뽕시킨 독특한 음악 세계 말고도 밴드는 공연 무대에 다양한 조명 기구들과 사이렌 등을 설치해서 화려한 조명 쇼를 선보이는 파격적인 라이브 퍼포먼스로도 소문이 자자했다. 또한, 밴드를 결성한 롭 좀비와 션 이설트는 미국의 고전 B급 서브컬처의 팬으로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SF/호러 영화 대사를 샘플링하거나 앨범의 부클릿을 50년대 유행했던 호러 코믹스 풍으로 꾸미는 등 자신들의 음악에 서브컬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투영하기로 유명했다. 이러한 성향은 이후 롭 좀비의 솔로 활동에서도 두드러지게 된다. Schecter사에서 발매한 션 이설트의 시그니처 베이스 기타도 모양이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화이트 좀비는 활동 당시 메탈헤드들에게 괴짜 밴드로 취급받았다.


2.1. 역사[편집]


보컬리스트 로버트 커밍스와 여성 베이시스트 션 이설트를 주축으로 1985년 뉴욕에서 결성되었다. 로버트는 프랫 인스티튜트에, 션은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다니고 있었고 학교간의 교류 수업을 통해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밴드 결성 당시에 막 연인으로 발전한 상태였다. 화이트 좀비는 데뷔 해에 EP인 <Gods on the Voodoo Moon>를 300장 한정으로 발매한 것을 시작으로 몇 장의 EP를 발매하면서 뉴욕 클럽 씬을 돌며 서서히 지명을 쌓아간 끝에[3] 캐롤라인(Caroline) 레이블과 계약했고 1987년 정규 1집 앨범인 <Soul Crusher>를, 1989년 2집 <Make Them Die Slowly>를 발표하였다.

이후 이들의 사운드에 매력을 느낀 이기 팝의 추천으로 메이저 레이블 게펜 레코드(Geffen)과 계약에 성공한 밴드는 1991년 5월, 뉴욕의 321 Studios에서 앤디 월리스[4]의 프로듀싱 하에 3집이자 메이저 데뷔 앨범인 <La Sexorcisto: Devil Music, Vol. 1> 를 녹음했고 이후 뉴욕에서 LA로 활동 거점을 옮겼다. 라인업이 갖춰지기 전까지 기타리스트가 자주 바뀌었는데 메이저로 진출했을 무렵의 멤버인 제이는 다섯 번째 기타리스트였다. 또한, 인디 시절까지 롭 스트래이커(Rob Straker)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었던 보컬이자 프론트맨인 로버트 커밍스는 밴드가 메이저로 진출하게되자 예명을 롭 좀비로 바꾼다.

그런데 하필이면 당시 게펜이 화이트 좀비의 앨범과 동시에 발매를 준비하던 앨범이 너바나Nevermind. 먼저 발매된 <Nevermind>가 대성공하는 것을 본 레코드사의 임원들은 "그런지와 정반대의 정서, 음악색을 가진 이들은 절대 팔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판단하에 갑작스레 밴드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다.[5] 밴드의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롭 좀비와 션 이설트는 자주 다투는 등 사이가 소원해졌다가 결국 완전히 관계를 정리했으며[6][7] 밴드의 드러머 이반 데 프룸(Ivan de Prume)은 화이트 좀비에서 탈퇴하고 LA에 녹음실 Burningsound를 차렸다.

잊혀질 뻔 한 메이저 데뷔 앨범은 평소 화이트 좀비의 팬이었던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을 포함한 동료 뮤지션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1992년 3월 17일에 겨우 발매되었고[8] 밴드는 새 드러머로 필 부에스타트(Phil Buerstatte)를 영입하여 투어를 돌기 시작, 1994년 5월까지 무려 350여회의 공연을 통해서 점차 인지도를 넓히는데 성공한다. MTV의 여러 방송애 자주 출연하고 MTV에서 제작한 만화인 비비스와 벗헤드의 사운드 트랙에도 참여하면서 일반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그 결과, 앨범은 플래티넘 레코드를 수상하는데 성공했다. 1993년에는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기나긴 투어가 끝나고 전과자이자 헤로인 중독자[9]인 드러머 필 부에스타트가 다른 멤버들과의 불화 끝에 화이트 좀비에서 해고당했고 밴드는 드러머를 존 템페스타(John Tempesta)로 교체해서 4집 <Astro Creep: 2000 - Songs of Love, Destruction and Other Synthetic Delusions of the Electric Head>를 1995년 4월 11일에 발표하였다.[10] 녹음은 1994년에 완료된 상태였다. 앨범은 전작보다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싱글 커트된 'More human than human'은 빌보드 상위권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했다.(이 곡은 지금도 방송 시그널로 심심찮게 쓰이곤 한다.) 4집 앨범은 전작의 그루브 메탈 사운드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전작보다 기타의 헤비함과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강조되었으며 1996년 그래미에서 Best Engineered Album에 노미네이트 되었을만큼 잘 가공되어있는 앨범이다. 앨범의 가사는 롭 좀비 본인의 헤로인 중독과 자살 시도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는 등 어두운 내용이 많다.

1996년, 4집의 곡들을 리믹스한 <Supersexy Swingin' Sounds>를 발표했다. 기존의 곡들을 당시 유행하던 테크노방식으로 리믹스하여 기존의 메탈헤드들 뿐 아니라 전자 음악 팬들에게도 환영받았다.

이렇게 한창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화이트 좀비는 멤버들간의 불화로 1997년에 해체했다.[11] 1996년 4집 투어가 완료된 뒤 보컬인 롭 좀비헤로인 중독 치료를 위해 약물중독 요양소에 들어갔고 롭 좀비와 함께 밴드의 공동 창립자였던 베이시스트 션 이설트는 그루피들과 잦은 성관계를 가지다가 결국 헤로인까지 하기 시작한 롭 좀비의 말초적인 쾌락만을 쫓는 라이프스타일에 학을 떄며 그와 같이 밴드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환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게다가 기타리스트 제이는 라이브 투어보다 스튜디오 프로듀싱에 더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4집 활동에 참여한 드러머 존 템페스타는 건강상의 문제로 장기간 투어가 불가능했다.

롭 좀비는 "화이트 좀비는 이미 지나간 추억일 뿐이야. 성공은 결코 미리 계획할 수 없는 큰 사건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다르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저나 밴드의 다른 멤버들을 탓하고 싶지 않아. 그저 밴드가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았을 뿐. 그 때 나는 밴드가 허접한 앨범들을 내놓는 것 보다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어."라고 화이트 좀비 해체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나 션 이설트는 2016년 인터뷰에서 롭 좀비의 말을 반박하면서 밴드 해체 당시 롭 좀비가 보여준 행동은 그간 그와 함께 밴드를 이끌어온 자신과 제이를 배반한 것이었다고 롭 좀비를 디스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1996년 Astro Creep : 2000 투어를 마친 후 롭 좀비헤로인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약물중독 요양소에 들어가면서 밴드 멤버들은 롭 좀비가 치료를 마치고 돌아올 때 까지 짐시 휴식기를 가지기로 했으며 휴식기 동안 밴드의 작곡가였던 제이와 자신은 새로운 곡들을 쓰면서 화이트 좀비의 다음 앨범 녹음을 계획하고 있었다 한다. 그런데 1997년 재활치료소에서 나온 롭 좀비는 멤버들과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끊고 매니저를 통해 "이제 화이트 좀비 활동을 그만두고 싶다"며 밴드에서 탈퇴한다는 통보를 했다고.

이렇게 롭 좀비가 밴드에서 일방적으로 탈퇴 통보를 전해오자 화이트 좀비의 매니저는 새로운 보컬을 고용하여 화이트 좀비 활동을 지속하자고 건의했으나 두 사람은 롭 좀비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그 제안을 거절하고 최종적으로 밴드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렇게 밴드가 활동을 멈춘지 2년째 되던 해인 1998년, 게펜 레코드사는 화이트 좀비의 해체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동시에 롭 좀비의 솔로 1집 Hellbilly Deluxe의 발매 및 홍보를 시작했다고 한다. 재활치료소에서 이미 롭 좀비는 뱐드 맴버들 몰래 화이트 좀비의 컨셉을 그대로 이어받은 자신의 솔로 앨범을 구상하고 있었고 재활치료소에서 나오자마자 션과 제이에게 말하지 않고 세션 멤버들을 고용하여 자신의 솔로 1집을 녹음했던 것이다. 션과 제이는 롭 좀비가 자신들에게 말하지 않고 1년 동안 몰래 그의 솔로 1집을 제작했다는 사실을 듣고 롭 좀비와 레코드사에게 제대로 뒷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고... #

화이트 좀비의 기타리스트 제이는 "밴드가 해체될 무렵, 나는 화이트 좀비의 새 앨범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 그러나 그 계획은 실현될 가능성이 전혀 없었어"라고 회고하면서 "나는 늘 기타-베이스-드럼으로 구성된 록 밴드의 일원이고자 했지만 롭 좀비의 솔로 활동 행적을 보면 그가 어떤 것을 원했는지, 어떤 길을 가고자 했는지 알 수 있을거야."라고 롭 좀비를 디스했다. 또한, "당시 나는 슬레이어퍼블릭 에너미를 즐겨들었기에 <La Sexorcisto: Devil Music, Vol. 1> 앨범을 제작하면서 해비 메탈 밴드들 중 최초로 랩을 도입하고 다양한 샘플링을 집어 넣는 멤버들의 시도에 뜻을 같이했고 그것이 성공하여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것을 자랑스러워 했지만 점점 샘플링과 테크노 사운드가 밴드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되었고 나는 밴드의 사운드가 그렇게 변한 것을 싫어했어."라고 말했다.

밴드 해체 이후 롭 좀비는 '롭 좀비 밴드'를 이끌며 솔로 활동을 하는 동시에 호러 영화 전문 감독으로서 활동 중이고 션 이설트는 밴드 해체 후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서프 록노이즈 록이 뒤섞인 음악을 하는 밴드 Famous Monsters를 결성해서 활동하다가 뉴올리언스에 정착해서 2002년부터 The Saint라는 라운지 바를 개장해서 운영했다. 2010년, 션 이설트는 라운지 바를 접고 Star & Dagger라는 밴드에 베이시스트로 가입하여 음악 활동을 재개했다. 또한, 대학교 때 전공을 살려서 패션 디자이너 및 사진 작가로서도 틈틈히 활동하는 중이다. 기타리스트 제이는 스튜디오 엔지니어로 완전 전업하였으며 2021년부터는 스페인 마드리드에 거주중이다. 드러머인 존 템페스타는 세션 드러머로 활동 중이다.[12]

화이트 좀비의 재결합 떡밥이 종종 도는데 그럴 때 마다 롭 좀비는 밴드의 재결합은 절대 없을 것이라는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1년에 롭 좀비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으면서 재결합에 대해 떠들고 있지. 내게는 화이트 좀비를 재결성하지 않을 타당한 이유가 많아. 게다가 나는 존 템페스타를 제외한 화이트 좀비의 전 멤버들과 연락을 끊은지 15년이 넘었어. 계속 말하지만 화이트 좀비의 재결합은 절대 없을거야."라고 못을 박있다.

2010년 11월 1일 밴드의 베이시스트였던 션 이설트가 11년간 화이트 좀비의 멤버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들과 투어 도중 작성한 일기 등을 모아서 <I'm in the Band>라는 책을 발표했다.

2016년 6월 3일 화이트 좀비가 메이저 데뷔 이전에 작업한 음반들을 화이트 좀비의 기타리스트 제이가 직접 리마스터링한 <It Came From N.Y.C>가 발매되었다. 해당 앨범의 부클릿에는 피치포크 소속 평론가 Grayson Currin이 밴드의 음악에 대해 해설한 글과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밴드의 사진들이 100여 패이지에 걸처서 수록되어 있다.

2018년 3월 30일 롭 좀비가 자신의 밴드 멤버들과 <Astro Creep: 2000> 앨범 전곡을 라이브로 공연한 앨범 <Astro-Creep: 2000 Live>가 발매되었다.

2022년 3월 17일 <La Sexorcisto: Devil Music, Vol. 1> 발매 30주년을 맞아서 롭 좀비를 제외한 나머지 화이트 좀비 멤버 3명이 Metal Injection 팟캐스트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2022년 현재, 션 이설트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종종 옛 화이트 좀비 활동 시절의 자료들을 올려주고 있다. 또한, 그녀는 인스타그램에 롭 좀비를 제외한 나머지 화이트 좀비 멤버들과 찍은 사진들을 차례차례 올리면서 그들 모두와 아직까지 연락을 하며 친구로서 지내고 있다는 것을 밝히기도 했으며 나머지 멤버들도 그녀의 포스트에 답글을 달아 그녀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2023년 9월 1일, 션 이설트가 인터넷 쇼핑몰 Zombie Truckstop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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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밴드가 장르를 바꾼 것에 대해 롭 좀비는 "우리들은 그저 우연히 노이즈 록 씬에 편입되었던 것에 불과했기에 노이즈 록 씬에 지긋지긋해지고 더 이상 그런 장르를 할 열망이 사라지자 고심끝에 본격적인 해비 메탈을 시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원래 롭 좀비는 해비 메탈을 싫어했지만 드러머 이반이 빌려준 메탈리카Ride the Lightning 음반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2] 이들이 메이저로 데뷔하면서 그루브 메탈로 방향을 선회한 것에는 동료 밴드 판테라의 영향이 컸다. 두 밴드는 같이 투어를 여러번 돌았으며 멤버들끼리도 무척 친했다. 롭 좀비와 헤어진 션 이설트는 판테라의 보컬 필립 안젤모와 사귀기도 했다.[3] 밴드 결성 초기에 롭 좀비는 밴드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피위의 플레이 하우스 조연출로 잠시 일하기도 했다.[4] 슬레이어Season in the Abyss를 프로듀스하고 너바나Nevermind 재믹싱을 맡은 프로듀서.[5] 롭 좀비는 90년대 초반 인터뷰에서 당시 음악 트랜드를 강타한 그런지의 우울한 정서나 관객과 호응하지 않는 슈게이징을 "가식적(Pretentious)"이라고 비판하면서 "나는 쇼크 록의 대부 앨리스 쿠퍼처럼 한바탕 쇼를 관객들에게 선사하는 엔터테이너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6] 1991년 두 사람의 연인 관계는 정리되었지만 1992년 3월에 묻힐뻔한 화이트 좀비의 메이저 데뷔 앨범이 발매되자 두 사람은 뜻을 같이하여 투어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7] 션 이설트와 헤어진 롭 좀비는 3집 투어 도중 알게된 그루피 쉐리 문과 1993년부터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했으며 2002년 9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상당히 깨가 쏟아지는지 쉐리 문은 남편 영화에 반드시 출연한다.[8] 앨범은 가사가 문제되어 대한민국을 포함한 몇몇 국가에서는 클린 버전으로 출시되었다. 앨범 타이틀도 <White Zombie>로 변경. 클린 버전으로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 첫번째 트랙의 타이틀이 무려 "Welcome to Planet Motherfucker"(...)[9] 투어 도중 필 부에스타트로부터 헤로인을 처음 접한 롭 좀비는 곧, 헤로인에 중독되었고 롭 좀비의 마약 중독은 밴드 해체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10] 전작과 마찬가지로 국내에는 클린버전이 유통되었다.[11] 1996년을 마지막으로 화이트 좀비는 활동을 멈추었고 밴드가 공식적으로 해체를 발표한 것은 1998년이다. 화이트 좀비의 해체 발표와 동시에 롭 좀비의 솔로 1집 Hellbilly Deluxe가 발매되었다.[12] 존 템페스타는 롭 좀비의 솔로 1집 Hellbilly Deluxe와 솔로 2집 The Sinister Urge에서 드럼을 맡기도했다.